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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이끌림의 인문학

유목민에게서 배우는 절제의 미학

by 전경일 2016. 8. 31.

유목민에게서 배우는 절제의 미학

 

A: 암말 8, 수말 1, 암소 10, 수소 1마리

B: 30~50, 100, 대형가축 15~20, 염소 20~50마리

C: 15, 낙타 2, 대형가축 6, 50마리

 

A, B, C 위 세 개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초원지대를 잇는 몽골 대초원, 우즈베키스탄 등 각 지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5인 가족 유목민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필요 가축 수다. 유목을 하는 사람들은 목축을 통해 생산한 물품을 농업 생산물과 교환해 살아간다. 유목민 경제는 이 정도 가축은 갖고 있어야 단순 재생산이 가능해 진다. 경제 활동을 유지할 수 있는 절대치라는 얘기다. 아프리카의 경우도 사정은 비슷하다.

 

수단 북부의 카바비쉬인들은 한 핵가족이 독자적으로 생존하려면 대략 낙타 2~25마리와 양 40~50마리가 필요하다. 그 이상이 되면 부유한 편에 속한다. 한 가족의 생활에 필요한 적정 가축수를 가리켜 표준가축단위(Standard Stock Units)라고 부른다. 최대와 최소를 오가는 가축수를 통해 유목민의 생존에 필요한 조건을 알 수 있다.

 

생존에 요구되는 가축 수는 이렇지만, 그렇다고 더 많은 가축을 사육할 수 없는 건 아니다. 한 사람의 목동이 관리할 수 있는 가축 수는 낙타의 경우 대략 150마리, 개의 도움 없이 돌볼 수 있는 양과 염소의 방목 규모는 400마리다. 어느 유목민 집단이나 대략 500마리를 넘지 않는다. 하지만 예외도 있다. 러시아 극동 캄차트카 지역의 순록 유목민 경우가 그렇다. 그들이 다룰 수 있는 가축 수는 최대 1000~1500마리에 달한다. 이들은 왜 다른 지역의 유목민들보다 많은 것일까? 이들은 풀을 찾아 무려 1200킬로미터나 이동하는데 이렇게 하려면 큰 집단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풀을 찾아 이동한다고 해도 한 유목민이 관리할 수 있는 최대 가축 수도 이 정도로 국한된다. 만약 자연 방목 시 더 이상의 가축 수를 늘린다면 그건 한 종족으로선 자살 행위다. 만약 1000마리가 넘는 양떼를 끌고 다니면 양들은 아무것도 안남기고 풀을 모조리 먹어치워 버려 뒤의 양들은 먹을 것이 없어져 뿌리까지 파먹게 된다. 이 때문에 풀을 뜯는 동물 수가 상한선을 넘으면 초지는 완전히 황폐화되어 버린다. 자연 방목에서 욕망 절제는 어떤 경우든 필수요소인 셈이다.

 

초지에서 제어되지 않는 과도한 욕망은 한순간에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다. 아프리카 사헤르 지방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이다. ‘사하라를 낀 지역이라는 뜻의 사헤르는 사막과 스텝 기후로써 비가 적고 강수량이 불안정한 지역이다. 이곳은 원래 인구 증가 때문에 생태계 균형이 무너지기 쉬운 취약성을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20세기 중엽 동안 비교적 좋은 기후가 찾아와 물 확보가 쉬워지자 사람들은 생활양식을 바꿔 가축 사육을 대폭 늘렸다.

 

또 아프리카 신흥국 정부의 원조로 깊은 우물이 파이자 한동안 물이 풍족해져 곳곳에 푸른 목초지가 잇달아 생겨났다. 이제 유목민들은 물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게 되었다. 새로운 오아시스 주위로는 인구가 계속 불어났고, 늘어난 인구 수요에 부응하고자 점점 더 많은 가축을 사육하게 되었다. 게다가 예방 의학의 발달로 유목민과 가축의 수명은 나날이 길어지고 수도 늘어났다.

 

그런데 안정적이던 이들 삶을 바꿔 버리는 일이 느닷없이 찾아 왔다. 한발이 찾아오자 상황이 완전히 일변해 버린 것이다. 지하수의 수위는 급격히 낮아졌고, 점차 모래바람이 불었다. 사하라 사막은 날마다 소리 없이 다가와 목초지를 뒤덮었다. 사막화의 공격으로 막대한 수의 가축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이런 갑작스런 재해의 원인은 무엇일까? 그 원인이 자연에만 있지는 않다. 그 중 하나는 사람들이 새로운 오아시스를 개발했기 때문이다. 수자원을 개발해 초지를 만들고 가축 수가 불어나게 한 정부 정책이야말로 역설적으로 재해의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북아프리카의 베르베르족의 경우에도 인위적이고 절제되지 않은 욕심이 재해를 불러왔다. 사막 지대는 가지나 건조한데 많은 수의 양 떼가 건조지대의 식물을 먹어버려 땅은 더 황폐되어 버렸다. 게다가 강우량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과잉 방목의 결과 불어난 면양은 식물 뿌리까지 완전히 먹어치워 사막화는 더 빨리 진행되고, 이는 결국 동물 수의 급격한 감소를 불러왔다.

 

사막 식물의 황폐화는 전쟁이나 정복, 질병 등 다른 모든 요인들을 합친 것보다 더 크게 토양을 파멸시키는 원인이 된다. 외부인들 눈에는 양떼나 산양이 풀을 뜯고 있는 풍경이 목가적으로 보일 테지만, 속내를 뜯어보면 그것은 인간 스스로 파괴 행위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 것과 같다. 처음에는 아무 문제없지만 느닷없이 어제까지만 해도 가축의 살을 찌우던 목초가 사라지며 재앙은 한꺼번에 몰려온다.

 

중동 지역의 경우도 사정은 비슷하다. 오랫동안 비옥한 반월(Fertile Crescent)지대로 알려진 이라크나 이란의 사막지대는 예전부터 가축을 사육해 왔다. 긴 세월 동안 목축이 계속되자 비옥한 토양은 끝내 사막화되고 만다. 이라크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1953년부터 사막에 180개소의 얕은 우물을 파서 많은 유목민과 양의 식수로 쓰게 했다.

 

그런데 우물이 생겨나자 다른 문제가 잇따라 생겨났다. 방목의 계절이 찾아오면 우물물을 놓고 싸움을 벌여 죽는 자가 속출했다. 이에 이라크 정부는 유엔 식량농업기구에 요청해 최신식 우물파기 설비 기술을 도입한다. 이때로부터 6년간 사막에는 270개의 깊은 우물이 생겨났다. 그 가운데에는 매시간 5900리터나 되는 물을 길어 올리는 우물도 있었다.

 

이때 새로 생긴 우물은 얼마큼의 효익을 가져왔을까? 목초지는 넓어지고 양의 사망률은 급격히 낮아졌다. 유목생활도 바뀌어 촌락에 정착하는 사람들도 늘어갔다. 다행스럽게도 아프리카에서처럼 우물 때문에 지하수면이 급격히 낮아지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언제고 장담할 수는 없다. 사막화는 피할 수 없는 전 지구적 현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상에 벌어지는 사막화는 샘이나 외래 하천의 물을 농경지에 지나치게 끌어다 씀으로써 생긴다. 사막 주변에 샘물을 관개하면 물속에 포함된 미량의 염분은 표토에 쌓인다. 이렇게 염류가 축적 되면 식물은 자라지 못하고 땅은 사막화된다. 이런 식으로 한번 황폐화된 토양층은 자연적으로 원상 복구되는데 50년 이상이나 걸린다. 이런 면적이 약 380만 제곱킬로미터나 된다. 지구상의 건조지역은 지표면의 1/3이상인 약 4900 제곱킬로미터에 달한다.

 

이곳에 약 9억 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건조지역과 반건조 지역은 나날이 넓어지고 있다. 매년 지구상의 약 600만 헥타르의 땅이 사막으로 변한다. 이런 추세로 사막이 넓어지면 사하라 사막 주위는 앞으로 35년에서 70년 내에 완전히 사막화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초원과 삼림이 황폐화 되면 사막화는 더욱 촉진되고 결과적으로 인간이 살 수 있는 땅은 점차 줄어드는 악순환 고리에 빠져든다.

 

사막화화 함께 나타나는 현상을 쉽게 알 수 있는 바로미터가 있다. 명아주(Chenopod)라는 관목 식물이다. 중동 지역에서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으면 이 식물은 예외 없이 널리 퍼져나간다. 이 식물은 주위에 있는 모든 물을 빨아들이기 때문에 다른 식물은 전혀 자라지 못한다. 포기 주변엔 모래가 쌓이고, 해가 거듭될수록 모래산만 높아만 간다. 사막의 동물들은 가시에 독액이 들어 있는 이 식물을 먹을 수도 없다. 게다가 40년이나 생존한다. 이 식물은 사막에만 자라는 건 아니다. 남극을 제외하고 어디든 자란다.

 

중동의 사막화는 자연 현상으로 알 수 있지만, 다른 요인으로 이 지역의 정치적 불안은 언제든지 물 기근 현상에 직면하게 할 수 있다. 지질학자들에 따르면, 모래더미만 보이는 사하라 사막에도 그 밑바닥에는 물이 있다. 그럼에도 그 막대한 양의 물은 자연 문제보다도 오히려 인간의 탐욕으로 식수난 해결책이 되고 있지 못하다. 한쪽에선 과다 방목이 가져 온 물 부족으로 사막화가 진행되고, 다른 쪽에선 정치적 이유로 식수원이 개발되는데 제한을 받고 있다. 과다한 남용으로 물이 말라 버리기도 한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대부분의 물 기근 현상은 인간이 주요 원인이다. 아무리 기술적으로 진보할지라도 방목 짐승수를 제한하지 않으면 비극은 몰려온다. 사막 같이 특히 건조한 기후조건 하에서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기 위해서는 욕망의 최적화가 필수 요소다.

 

가축 수를 관리하는 유목민의 지혜를 보며 생각하게 되는 게 있다. 지속가능성과 절제에의 미학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모조건 많이 가져야 하고, 욕망은 필요 이상으로 넘친다. 그 결과 환경은 황폐화되고, 인간의 이기심이 촉발시킨 사회적 갈등은 줄어들 줄 모른다. 해마다 경기도 크기만 한 아마존 밀림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있고, 앞으로 50년 내 열대우림의 80퍼센트가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무한한 생산의 컨베이어벨트를 돌릴 때 인간은 행복하고 더 큰 효익을 누릴 것 같아 보이지만, 결과는 정반대이다. 한번 사라진 밀림은 복구가 불가능할 수 있다. 어떻게 해야 자연과 인간이, 인간 상호간에 지속성을 꾀할 수 있는 것일까?

 

그 답은 절제다. 모든 양들이 풀을 다 뜯어 먹으면 뒤의 양은 먹을 게 없어진다. 욕망을 절제할 때 초원은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다.

 

19926월에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환경과 개발에 관한 리우선언은 지속가능성의 원칙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현세대의 필요를 충족하되 미래 세대의 가능성을 해치지 않으며, 각각의 인간이 균형 잡힌 사회 안에서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자유롭게 발전할 기회를 갖는 사회를 만든다.”

 

지구인으로서 행동 강령이다. 지구와 인류의 지속성을 위해 일상에서 실천할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절제된 사고와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는 것이다. 사막화로 황폐화되어 떠난 나미비아 폐허에는 이런 아프리카 속담이 써져 있었다.

 

나무를 심어야 할 가장 좋은 시기는 20년 전이었다. 그 다음으로 좋은 시기는 바로 지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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