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는 정사(政事)를 덕(德)으로 하는 것은, “북극성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어도 여러 별들이 그에게로 향하는 것과 같다(爲政以德 譬如北辰居基所 而衆星共之)”고 한다. 따라서 군왕 리더십의 핵심은 인과 덕을 통해 뭇별인 백성들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다.
2012년 올해 사자성어에 ‘생생지락(生生之樂)’이 선정됐다는 말을 뒤늦게 듣고 불현 듯 내가 쓴 <창조의 CEO 세종>이란 책에 나오는 생생지락의 참 의미를 되새겨 보았다.
세종은 유교적 덕목과 질서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태종의 셋째 아들로 국왕의 자리에 올랐다. 3자가 국왕이 된다는 것은 종법질서에 크게 어그러지는 것이었지만, 세종의 탁월한 군주다운 면모는 국가의 지속성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 태종의 마음을 움직여 끝내 국왕의 자리에 오르게 한다.
22살의 국왕은 지금으로 치자면 대통령 취임사, 즉 즉위교서에서 몇 가지 국가 경영의 철학을 밝힌다. 그 대원칙은 “인(仁)을 펴서 나라의 정사를 전개하겠다(시인발정 施仁發政)” 는 것이었다. 취임 일성에서 유교의 생생함, 위민(爲民) 경영을 실천자로서 사명을 다 하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세종이 천명한 ‘백성이 주인’인 사상은 그저 나온 것이 아니다. 세종 경영철학의 밑바탕은 민본사상인 바, “백성은 나라의 근본(‘민유방본 民惟邦本)’으로 국가 경영권이란 하늘인 백성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이라는 사상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하여 국왕은 하늘인 백성을 대신해 백성을 다스리는 것이다.(대천이물(代天而物). 이런 국가경영상 확고한 철학적 신념은 세종으로 하여금 국왕이 된지 6년과 19년 후에도 아래와 같이 언명하게 하는 것이다.
국왕은 “하늘을 대신하여 만물을 다스리는 것이니,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고 양육하는 마음을 먹어야 한다.”(『세종실록』 6년 6월 기미)
국왕의 책무는“오로지 애민(愛民)하는 것이다.”(『세종실록』19년 1월 22일)
그리하여 세종은 자신의 경영 지표로 ‘민본’을 삼고, 자신의 정신 속에 항시 ‘하늘(天)’인 백성을 새겨 넣으며 평생을 살아갔다. 그 때문에 정치를 하는 요체로 세종은 다음과 같은 민생론을 주장하며 이의 완수를 위해 평생 멸사봉공하였던 것이다.
세종이 내세운 대표적인 캐치프레이즈를 뽑아 보라면, 올 해의 사사성어 중 하나인 ‘생생지락(生生之樂)’이다. 이 말은 원래 서경(書經)에 나오는 말로 중국의 고대 상나라 군주 반경이 만민들로 하여금 생업에 종사하며 즐겁게 살아가게 만들지 않으면 내가 죽어서 꾸짖음을 들을 것이다 라고 말한 데서 따온 말이다. 세종은 역사 속 인물의 모범을 찾아 이를 세종정부의 캐치프레이즈로 삼았다. 다음은 바로 그것이다.
“(세종 정부는 조선의 백성 여러분에게) 살아가는 삶의 즐거움을 드리겠습니다.(生生之樂)”
600년 전 세종 정부의 슬로건이라고 생각하기에 어떤가? 너무나 21세기적이지 않은가?
이것 말고도 더 있다.
바로 ‘대평화’와 함께 ‘경제적 풍요로움’ 을 동반하는 세종의 경영관이 압축된 말이다.
세종정부가 어느 특정 계급만 위한 게 아니라, 모두가 다 함께 밝고(희,熙) 너그러운(호,皞) 상태, 즉 ‘희호지락(熙皞之樂)’을 목표로 했던 것은 상위 1%만을 위한 오늘날 국가경영 시스템에 크나큰 경종을 울린다.
다 같이 밝고 너그러운 상태! 이 얼마나 위대한 경영(정치)적 슬로건인가.
대한민국 상위 1%(또한 1%만을 위한 정책 집행자)는 알아야 한다. 1%의 지속성을 위해서도 99%를 위한 정치가 펼쳐져야 한다는 것을. 그것이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의 한 모습이라는데 이의를 다는 건 어려울 것이다. 이 점을 모를 때 모든 역사는 혼란과 폭동과 붕괴로 그 사회, 그 체제의 지속성이 도전 받았다. 지속성은 결국 잘 제어된 욕망에서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는 욕망의 갈기를 꽉 붙잡고, 욕망이 미쳐서 제 주인을 국민을 짓밟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세종은 이런 희호지락의 세상을 꿈꾼다.
“우리 백성들의 생명을 길게 하고, 우리나라의 바탕을 견고히 하며, 가정과 사람마다 넉넉하여 예양(禮讓)의 풍속을 크게 일으켜, 때로 화평하고 해마다 풍년되어 다함께 ‘화락하는 즐거움을 누려갈 것이다.”(『세종실록』 26년 윤 7월 임인)
이것이 다가 아니다. 보다 궁극적이며 중요한 정치 원칙, 삶의 원칙이 있다.
그것은 ‘드높은 평화에의 경지’, 즉 ‘융평(隆平)’ 이다. 조선 초 수많은 피를 흘린 정국을 안정시키고 백성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자 세종은 분별없는 경쟁과 갈등과 대립국면이 아닌, 상호 이해와 조화를 이끌어 내고자 했다. 정적조차 충신의 반열로 끌어 올린 것은 이 때문이다. 조선 창업을 거부한 자들이 수없이 복권되어 나왔다. 일테면 오늘날 정봉주 전의원에 대한 처사처럼 속좁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 점에서 오늘날 우리 정치가 보여주는 속좁은 처사는 정치의 본령에서 한참 멀어져 있으며, 말할 나위없이 함량 미달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점 중에 하나이자,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큰 해법이 되는 세종 정부의 경영 철학을 살펴보자.
그것은 다름아닌, 상향식 경제발전과 분배를 동시에 잡겠다는 이른바 ‘풍평(豊平)’이다. 성장과 분배의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 다른 차원의 국가 경영, 정치 세계를 열어나가겠다는 것이다. 정치인으로 앞으로 내가 하고자 하는 것도 이것이다.
우리 사회를 멍들게 하는 극단적인 '성장 vs. 분배' 의 갈라진 주장은 양쪽 모두 철학 없는 정치의 산표본이다. 어찌 이 둘이 분리될 수 있단 말인가? 성장 없는 분배는 공허하고, 분배 없는 성장은 다수를 절망케 한다. 정치인들은 왜 이 둘을 동시에 해결하는 커다란 숙제에서 빗겨나 반쪽짜리 숙제로 피신해 가는가? 그럼으로써 국민들이 이 문제에 휩쓸려 절망하도록 하는가?
그것은 정치를 하는 자들이 국가를 경영할 통섭의 그릇이 작기 때문이며, 생각이 그저 조랑박처럼 올망졸망 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불행은 이렇듯 작은 정치와 정치인들이 세상을 구한다고 떠들고 나서기 때문이며, 국가의 일에 대해 가장 중요한 몫을 결정 내리는 키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 정치의 불행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선거를 통해 이런 소인배들을 정치판에서 몰아내야 한다. 단 한번도 진정으로 한반도 전체 역사와 민족사,국민의 100년후, 1,000년후 미래를 담론화 해 본 적 없는 자들이 우리의 현실은 물론 후손들의 미래까지 운명지으려 하고 있다. 너무 작은 그릇들이 작은 소란에 요란을 떨어대며 생색 내기에 급급하다. 국가의 창고를 털어 제 배 불리는 데에만 머리만 돌아가는 자들이 연일 뉴스를 타며, 국민들을 절규케 한다. 소인배들의 입신과 출세를 위해 국민 대다수의 미래가 저당잡혀 있다. 이제는 이런 구태를 깨뜨려 버려야 한다.
선거가 있는 올 해, 우리는 세종이 울부짖었던 ‘생생지락(生生之樂)’의 진정한 의미를 알아야 한다.
“(세종 정부는 조선의 백성 여러분에게) 살아가는 삶의 즐거움을 드리겠습니다.(生生之樂)”
살아가는 삶의 즐거움은 누군가의 희생이 크게 따라야 하고, 여기에는 정치인이 제일 앞에 서야 한다.
개인적으로 이제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에 나는 혼신을 다해 국민들과 함께 삶의 즐거움을 정말 아는 그런 세상을 만들고 싶다. 이 일에 일생을 바치고 싶다.
전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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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래 -
"정당 없는 후보 '무소속' 통칭은 위헌" 진정
선거 시 정당에 소속되지 않은 입후보자를 '무소속'으로 통칭하는 것은 헌법에 위배된다는 주장이 나왔다.
민주통합당 서초을 예비후보인 전경일 인문경영연구소장은 5일 "유권자들이 무소속 명칭을 두고 '기존 정당에 의해 공천되기에 부족한 사람'이라고 인식하는 현실상 이런 차별적 명칭을 쓰는 것은 '모든 국민이 정치적 행위에서 평등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헌법 11조 1항에 위배된다"며 선거관리위원회와 국민권익위원회에 명칭 변경 제안서를 제출하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다고 밝혔다.
전 소장은 "4월 19대 총선부터 무소속 후보라는 명칭 대신 '국민의 참정권을 행사하는 후보'라는 의미에서 '국민 참정(권) 후보'라는 이름을 쓰자"며 "이들 후보가 복수일 경우 번호를 부여하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출처: 한국일보, 박우진기자 , 2012.02.06 >
장군은 누구인가? 장군을 생각할 때마다 두가지 생각이 떠오르곤 합니다. 모든 승패의 주역은 결국엔 그 사람의 수양과 수신의 됨됨이며, 이를 요즘말로 표현하자면, 리더십 문제라는 것을. 결국엔 리더 자신의 문제이지, 환경이나 조건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두번째로는, 역사란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미일 강대국에 크나큰 영향을 받는 우리 한반도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강대국의 대(對)한반도 정책이 크게 우려되곤 합니다. 저는 늘 그런 걱정이 앞섭니다. 이런 무거운 마음은 양식 있는 글쟁이의 몫이라고만 볼 수는 없겠지요. 늘 나라 생각을 하게 됩니다.
소주라도 한 잔 올려 놓고 절을 합니다. 저는 이순신을 닮고 싶습니다. 그와 같은 삶, 그의 삶의 철학.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장군의 삶의 철학은 제 자신의 철학이 되었습니다.
권세에 아부해 한때의 영화를 누리려는 것은 나의 가장 부끄러워 하는 바다."
전경일 <이순신 경제전쟁에 승리하라>
생활 속의 정치는 제도 곳곳에 나타나는 비민주적 요소를 바로잡는 것이겠죠.
아래 보도 자료와 진정·제안서 전문을 싣습니다.
보도자료 2012.2.3.
선거 시 ‘무소속 후보’ 명칭은 ‘국민참정(권) 후보’로
올바른 명칭을 다시 부여해야 합니다.
각종 선거 시 정당 소속이 아닌 일반 후보자에 대해 부여하던 ‘무소속’이라는 명칭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전경일 인문경영연구소장(민주통합당 서초을 예비후보)은 기존 통념상 받아들여져 왔던 비(非)정당 후보자에 대한 후보 명칭 표시 시 “무소속”이라 표현하는 것은 헌법 11조 1항에서 정한 “모든 국민은 누구든지 정치적 생활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는 조항을 위반하는 것으로 선거권, 피선거권의 평등성에 위배되고 차등을 두는 명칭이라 판단해 선거관리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에 이의 변경을 진정, 제안했다고 밝혔다.
전 소장에 의하면 우리나라 정치가 대의제를 띠고 있을지라도 국민 고유의 권리인 참정권에서 ‘무소속’이라 표현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인 참정권이 침해 받는 것으로 반드시 바꿔어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거 피부색 명칭으로 미술 물감 등에 표기되었던 “살색”이라는 명칭이 “살구색”으로 변경된 것도 다원적 가치와 다문화 가정이 늘어나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었듯이 “무소속”이라는 명칭은 헌법에서 정한 국민 참정권 정신이 반영되어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전 소장이 제안하는 명칭은 “국민참정(권) 후보”로 정당 소속 후보자가 아닐지라도 마치 소속감 없는 후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오는 4.11. 총선부터 “무소속 후보” 명칭이 “국민참정(권) 후보”로 변경될지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다. 명칭 변경이 받아들여진다면, 제헌의회 이후 사용해온 “무소속”이라는 명칭은 대한민국 선거사상 60여년 만에 사라지게 된다. 전 소장은 “민주주의는 생활 속에서 우리가 간과하는 명칭 같은 것을 바로 잡는 데에서부터 나타나야 한다”고 주장하였다.<끝>
보도자료 문의:
전경일 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주소: (137-070)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1316-4 팔레스 빌딩 604호
전화: 02-812-3583 | 팩스: 02-812-3590 | e-mail: humanity365@naver.com
첨부: 선거관리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에 명칭 변경을 제안한 진정·제안서 전문
선거 시 ‘무소속 후보’는 ‘국민참정(권) 후보’로
올바른 명칭을 써야 합니다.
○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는 대한민국 국민이 선거권과 피선거권 모두를 가지고 있으며,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에 의해 주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 또 대한민국 헌법 11조 1항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따라서 법에서 말하는 “차별을 받지 않는다”는 의미는 정치적 행위인 선거권, 피선거권에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 하지만 매번 치러지는 각종 선거 시 정당 소속이 아닌 입후보자(피선거권자)에 대해서 “무소속” 후보라 명칭하는 것은 국민의 참정권내지 피참정권과 평등권을 심리적, 실질적으로 위배하고 있는 것으로 헌법 정신에 크게 위배되는 명칭이라 사료된다. 즉 “무소속”이라는 명칭은 헌법 11조 1항에서 정한 “정치적...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와 크게 차이나는 것으로 국민들이 받이들이는 “무소속” 명칭의 어감상, 인식상, 직관상 여러 면에서 해당 후보자들에게 “차별”을 주고 있으며, 실제로 선거에서도 불리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본다.
○ 헌법 제24조에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권을 가진다”고 되어 있다. 이는 비(非)정당 소속의 입후보자라고 할지라도, 국민 참정권상 제반 명칭에 있어서 평등성이 부여되어야 함을 뜻한다.
○ 물론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하고 도움을 주는 대의민주제 기본 형식이 정당이자 정당정치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헌법 제8조 2항에서는 정당이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하기 위한 목적을 지닌 조직임을 명시하고 있다. 그렇다고 특정 정당 후보자들은 정당명을 쓸 수 있는 반면, “무소속” 후보들에게는 “무소속”이라는 불평등한 명칭을 사용하게 하는 것은 헌법 정신을 크게 훼손하는 것이라 사료된다.
○ 결과적으로 현재 대한민국의 선거는 무소속 후보의 경우 정당 후보에 비해 훨씬 더 어려운 출마 과정을 겪고 있으며, 선거 진행상의 어려움뿐만 아니라, 명칭면에서도 첫출발부터 불이익을 받고 있는 것이다.
○ 정당이 이익집단이고 특정집단의 이익을 대변하기에 자신의 정치적 의사와 맞는 정당이 없거나 공천을 받지 못한다면 누구나 “무소속” 후보로 출마할 수 있고, 출마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서는 “무소속” 후보로 나온 국민은 실질적이며 명칭상으로 “무소속“이라는 불리함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 그러나 다른 “집단”에 비해 소수의 의견을 대변한다고 해서, 다른 “집단”의 이해나 정책과 다르다 해서, 정당의 공천을 받지 못한 채 입후보 한다고 해서 아무런 소속감 없는 후보자인 것처럼 “무소속”이라 명칭하는 것은 분명 국민 일원으로서 행사하는 참정권의 의미를 십분 살리지 못하는 것이며,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권리행사를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써 헌법 정신에 크게 부합하지 않는다고 본다.
○ 과거 오랫동안 ‘살색’이라는 표현이 당연시 받아들여졌던 것은 “우리”만의 문화가 반영된 것으로 이는 다양한 인종의 차별점을 인정하지 못하는 인식과 풍토에서 나온 잘못이었던 것이다. “살색”이 “살구색”이라는 명칭으로 바뀐 것과 같이, 비(非)정당소속 입후보자에 대해 “무소속”이라는 명칭을 관례적으로 사용해 온 것은 국민의 권리 행사 중 하나에 인식적 제한을 둔 것으로, 헌법 정신에 크게 위배된다고 하겠다.
○ 나아가 유권자들의 의견을 대변해 주는 일꾼을 선출하는 선거에서 국민적 소속감이 결여되거나 부족한 것으로 충분히 비춰질 여지마저 있다.
○ 따라서 진정한 참정권을 함께 이룩해보자는 취지로 기존 “무소속”후보라는 명칭을 “국민 참정(권)후보”라는 명칭으로 변경하고, 이들 후보들이 복수일 경우 1, 2, 3식으로 번호를 부여해, 가장 가까운 금번 4.11 총선부터 사용할 것을 제안 드린다. 이것이야말로 헌법 정신에 부합한 가장 합당한 명칭이라 사료된다.<끝>
(전경일 소장)
“농촌 생활은 좀 어떠냐?”
“시골이라서 바뀔 것도 없지, 뭐. 후후...”
오랫동안 못 만난 대학친구를 동창 어머님 팔순 잔치에서 만났다. 근처 다방으로 몰려간 친구들은 서로의 근황을 묻느라 얘기에 여념 없었고, 나는 말없이 기대앉은 시골친구를 바라봤다. 그에 대한 나의 기억은 강렬하다. 작은 키에 다부진 팔뚝을 걷어 부치고 늘 저돌적인 모습으로 세상을 응시하는 이미지로 내게 남아 있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대학을 떠난 지 이 십여 년만의 일이었고, 삶과의 싸움에 화염처럼 그을린 얼굴들이 거기에 놓여 있었다. 이마엔 영락없이 시간이 든 회초리 흔적이 선명하다. 삶이 남긴 상채기가 어딘들 가겠는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의 만남이 가져오는 짧은 순간의 어색함이란... 겸연쩍어 비싯 웃음이 났다.
궁색한 시골 살림살이는 외모에 그대로 배어나왔지만, 그는 전혀 초라해 보이지 않았다. 너무나 당당했다. 겉으로만 그런지 궁금증이 일어 짐짓 그의 속이 얼마나 깊은지 꾹, 찔러 보았다.
“너는 아직도 꿈속에 살고 있는 건 아니냐? 꿈 밖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냐?”
“꿈이라... 그러냐? 나는 다만 내 자신을 잃지 않고 살 뿐이다...”
시골에서 이장을 하며 살고 있다는 친구. 우리의 생활은 너무나 달랐고, 사는 방식도 멀찍이 떨어져 있었지만, 왠지 그의 삶이 한 수 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그에게선 나와 달리 내가 잊어버린 꿈 하나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런 아마도 - 삶에 대한 뜨거움 같은 것일 게다. 우리는 몇 마디 화두를 던지다가, 늦은 시간 그는 시골로 내려가는 막차 시간에 맞춰 일어났다.
“언제든 사는 게 답답하거든 머리 한번 식히러 내려와라.”
나는 그러 마, 하고는 그를 보냈다. 그에게서 나는 무엇을 찾으려 했던 걸일까?
그는 세상의 기준으로는 뒤쳐져 있었고, 내가 회사에서 겪는 치열한 경쟁 따윈 알 턱도 없었다. 느려터진 시계를 꿰차고 있는 촌부의 이미지랄까... 반면, 나의 처지는 다르다. 세상의 속도계에 맞춰 째깍째깍 움직여야하고, 바삐 뛰어야 먹고 산다.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야 하며, 등짝이 시리기만 할 노후를 준비해야 한다.
이유란, 핑계라고 할지라도 유리하게 하고 싶을 땐 수도 없이 떠오르는 법이다. 그와 마주한 자리에서 내가 그랬다. 그런데도 그가 훨씬 더 커 보였다. 여전히 처음 그대로 있는 친구, 초심을 간직한 친구, 누가 그를 미련한 곰탱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가지치기가 이루어진 가로수를 올려 보았다. 상금머리를 한 나무들은 겨울 동안엔 솟대처럼 서서 온 몸으로 바람을 맞아야만 한다. 내 삶이 저렇듯 을시년스러울 것 아닌가. 거두어 들였으나, 장례 쌀을 빌어다 먹은 듯한 찝찝함... 늘 돌려막기식 삶이 가져오는 다급함...
그간 나는 무엇을 해 왔는가, 무엇을 놓아 버렸는가, 무엇에 매달려 왔는가, 우리는 어떻게 다시 만나야 하는가? 나는 그가 보내 온 문자를 열어본다.
“꼭 오렴. 가끔은 천천히 가는 것도 중요하지. 경쟁 없는 곳도 살만하다...”
전경일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 사람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중에서
40대, 일에 대한 프로의식을 갖추라.
김재남 차장은 47살 때 회사를 그만뒀다. 그는 평소 농원을 갖고, 화초를 재배해 보는 게 꿈이었다. 회사를 그만둔 다음 이것 저것 알아보다가 화원을 하나 냈다. 농장을 경영할만한 전문적 식견이나 자금이 부족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조그마한 사업체를 위험부담 없이 키워보고 싶기도 했다. 다행히 목 좋은 자리라서 손님들이 들락거렸다.
그는 지금 꽃과 함께 하루를 보내고 있다. 물건을 떼고 돌아와 꽃더미 속에서 차를 한잔 마시는 시간이면 젊은 날의 추억이 아련히 떠올라 미소짓게 된다. 김사장은 죽을 때까지 이 일에서 손에서 놓치 않겠다고 한다. 김사장의 하루 총매출액은 45만원 정도. 월 순수입 375만원 정도다. 그는 지금 버는 것보다도 더 적게 쓸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그래도 괜찮아요. 지금은 남에게 아쉬운 소리 안해도 되니.”
이 점이 그가 더 큰 수입을 찾는 것 보다, 덜 쓰면서 행복한 이유다.
하루를 어떻게 보내나
윌리엄 포크너는 이렇게 말한 적 있다. “사람이 하루 여덟 시간씩 매일 할 수 있는 것은 일 밖에 없다. 하루 여덟 시간 동안 계속해서 먹거나 마신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여덟 시간 동안 계속해서 사랑을 나누고 있을 수도 없다.”
맞는 말이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우리는 일하는데 보낸다. 일을 통해 배우고 인생의 참맛도 느낀다고 볼때, 우리는 일과 함께 하루라는 시간을 즐기기도 하는 셈인 것이다. 게다가 자신의 노력으로 김사장처럼 남에게 손도 벌리지 않을 수 있다면, 그만한 행복이 어디있을까?
40대는 그런 차원에서 일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사회적 위신을 세우며, 성장해 가는 시기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의 40대에게는 일은 즐거움만은 아니다. 오늘날 한국의 40대는 하루 8시간이 아니라, 10시간 이상 일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 40대의 과로사가 세계 1위라는 것은 일이 즐거움 일 수만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만큼 일이 스트레스이기도 하다.
내게 맞는 내 일을 돌려다오
일에 대한 부담감은 일하는 것 만큼이나, 일하지 못하는 상황 때문에 커지고 있다. 40대에는 일조차 빼았기게 될거라는 두려움이 급격히 몰려든다. 단순히 나이에 따른 은퇴의 순차성 때문에 물러설 수 밖에 없게 되기도 하고, 그보다 좀 더 영악한 자본의 논리가 40대들을 내몰기도 한다. 가장 활동적이어야 하며, 가장 왕성한 생산-소비의 주체이어야 하는 시기에 말이다. 정년 연령이 낮아지는 것은 이미 오십대를 지나 40대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로부터 일을 강제로 빼앗아 버리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 일을 할 수 없는 나이의 인간은 없다. 일을 할 수 없는 것은 몸이나, 정신이 그렇게 만들 뿐이다. 이제는 늙은 청년의 시대를 지금의 40대가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지금 평균 수명은 10년전보다 10년이나 더 늘어낫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년은 일에서 손을 떼야하는 나이를 의미하게 됐다. 정년은 자신이 사회적 일을 놓고, 자신의 일에 투자하는 가장 황금같은 시간이다. 그런데도 정년=퇴출이 당연시되고 있다.
일: 세상과 만나는 가장 중요한 방식
누구나 알다시피 40대는 경험과 숙련도에서, 그리고 젊음의 끝자락과 노년의 초입에서 일과 인생의 풍미로움을 맘껏 드러낼 수 있는 시기다. 인생 전반에서 가장 큰 성과를 드러내기 시작하는 나이다. 이 시기의 일은 보람찬 시간을 유지시켜주기 때문에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일을 손에서 놓는 순간 당신은 세상과 만나는 주요한 방식 하나 놓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살기 위해 일하고, 일하기 위해 산다. 그렇기 때문에 사는 방식을 다시 알아야 한다. 예전의 40대와 달리 이제는 좀더 깊이 있어져야 한다. 특히 일에 대해서는 더욱 영-육이 완성되어가는 모습을 취해야 한다. 100여년 전에 애나 로버트슨 브라운이라는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이 일이 꼭 필요하고, 내 자신의 인격을 강화해주고,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이 세상에 도움이 되는가?”
이 말은 100여 년 전에나 지금이나 똑같다.
일을 소중히 여겨라. 지금부터는 나이들며 특별히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곰곰이 따져보라. 만일 무엇이든 하려거든, 자신의 취미, 평생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을 찾아라. 그리고 그 일 속에 자신을 놓고 키워보라. 그러면 자연히 당신도, 당신이 하고 있는 바로 그 일도 커질 것이다.
전경일 <마흔으로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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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도 깊고 지속가능한 경영을 위한 Add:(137-070) 서울 서초구 서초동 1316-4 팔레스빌딩 604호
Fax: 02) 812-3590 e-mail: humanity365@naver.com Blog: http://www.humanity.kr |
* 본 강의는 전경일 인문경영연구소 소장의 직강으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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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개요 600여 년 전 찬란한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룬 세종의 국가경영전략과 경제도약 정책, 인재 및 각종 발명 프로젝트의 현재적 의미를 파악하고 이를 혁신경영에 적용함으로써 미래를 뚫고 나갈 원천적 힘을 제공하는 교육 프로그램입니다.
위기의 조선, 세종은 어떻게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끌었을까? 경제위기의 시대, 창조의 CEO 세종대왕의 국가경영 전략을 통해 창조적 혁신의 사례를 살펴보고, 현재의 위기극복 방법과 21세기 창조적 기업의 원천경쟁력을 생존과 발전측면에서 찾아보고자 합니다.
강의목표 -경제 위기의 시대, 왜 세종인가? -변화, 혁신의 조건은? -세종의 자기개발, 지속학습, 경영 철학은? -세종은 어떻게 경제를 일으켰는가? -세종은 혁신을 위한 소통을 어떻게 하였는가? -지식강국을 통한 조선의 르네상스를 어떻게 열어 젖혔는가? -불멸의 CEO 세종에서 배울 점 -세종의 국가경영을 통해 찾는 오늘날 한국경제 해법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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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개요 목화씨와 직기기술을 도입하고 혁신시킴으로써 의료(衣料)혁명을 이끈 14세기 혁신가 문익점과 조선 목면기술을 가져다 시대의 흐름을 포착하고 국가 산업 패러다임을 전환시킨 토요타자동차의 혁신 사례를 통해 우리 기업이 찾을 수 있는 혁신·신성장 엔진 발굴의 교훈이 무엇인지 알아봅니다.
문익점의 목화씨는 어떻게 토요타자동차가 되었는가? 경제 위기,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우리 기업과 국가의 차세대 성장엔진은 무엇인가? 고려말 조선초의 스티브 잡스 - 문익점. 1364년 문익점에 의해 도입된 목화씨는 3년, 10년 만에 임계치에 도달, 전국적 확산을 가져오며 그야말로 의료(衣料)혁명을 이뤄낸다. 초기 변화관리에 실패한 조선 목면은 일본으로 건너가 임진왜란의 도구로 활용되며 훗날 일본은 토요타직기를 만들어 내고, 토요타자동차로 변신한다. 조선의 목화씨와 직기기술을 가져다 강력한 성장 엔진을 만든 것이다. 오늘날 우리 기업의 성장 엔진은 어떻게 찾을 수 있는가? 생존을 위한 한국경제와 기업의 성장 씨앗을 645년의 통사(通史)를 꿰며 직조해 낸 우리 경영의 비전 찾기 교육 프로그램입니다. -문익점 프로젝트의 배경 및 의미 -문익점의 목화씨는 어떻게 경제를 일으켰는가? -문익점의 목화씨는 어떻게 토요타자동차로 전환되었는가? -문익점의 목화씨와 토요타자동차에서 배울 점 -경제위기의 시대, 문익점의 목화씨를 통해 찾아보는 기업경영 해법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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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개요 21세기 경제영토가 넓어짐에 따라 만주는 지정학적 및 경제사적으로 대중국 경제 진출의 핵심 거점이 되었습니다. 만주를 배경으로 흥기한 광개토태왕과 청태조 누르하치의 야생의 경영을 통해 21세기 경영 전략과 리더십을 살펴봅니다. 글로벌 경영을 통해 생존과 번영을 모색한 광개토태왕의 남정북벌의 전략과 청태조 누르하치의 변방에서 대륙의 주인으로 흥기해 가는 모습은 시차를 떠나 21세기 글로벌 경영의 원류가 됩니다. 고구려와 청(淸), 모두 어떻게 척박한 자원을 딛고 일어나 천하경영을 이뤄낼 수 있었을까? 변방에서 역사의 중심이 되기까지. 만주 역사의 산 주역들을 통해 도전과 확장, 혁신과 창조의 경영정신을 배웁니다.
광개토태왕과 누루하치는 어떻게 자원과 환경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경영을 이뤄낼 수 있었을까?
강의목표 -동북아 대륙경영자 광개토태왕 & 누르하치 -대륙의 주인으로 세계질서를 재편하다 -살기 위해 끝까지 싸우는 오랑캐식 경영전략 -21세기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과 창업의 길 -창업과 수성의 정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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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개요 미래형 인재는 어느 한 분야만 정통해서는 복잡계 경영에 대응해 나갈 수 없습니다. 남의 집 우물도 끌어다 내 집 우물처럼 쓸 수 있는 통섭형 인재야 말로 기업 혁신, 창조의 메신저입니다. 영역을 넘나 드는 미래형 인재의 조건을 갖춤으로써 우리 회사의 새로운 수종 사업 기반을 찾는 ‘통섭경영학’
지금 잘하는 것을 더 잘한다고 이기던 시대는 끝났다!
최근 각 대학 최고경영자 과정은 인기가 시들해 지는 반면, 인문학 과정은 경쟁률이 3:1에 달합니다. 초우량 기업들은 통섭적-초영역적 인재를 통해 현재 직면한 위기를 극복하고 경영의 활로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1명의 천재가 1만명을 먹여 살리는 ‘핵심인재’에서 이제는 다른 요소를 끌어다 창조성을 극대화시키는 ‘초영역 인재’로 인재상이 바뀌고 있습니다. 포스코, 아이디오, 구글 등 초우량 기업들은 과거 프로세스 중심에서 창조적 프로덕트로 산업의 활로를 변환시키며 성장의 축을 찾고자 합니다. 이에 따라 남다른 생각과 지식을 지닌 인재들을 찾고 있습니다. 창조적 리더를 위한 버서타일리스트 (VERSATILIST)인재되기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기업과 직원의 창조적 역량을 배가시키고자 합니다.
-기업의 혁신과 창조의 기반 - 초영역 인재 -직원들의 창조적 사고를 어떻게 극대화시킬 것인가? -현업에서의 크고 야심찬 성과 향상을 이뤄내기 위한 창조적 사고법은? -21세기 초영역 인재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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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인생 재도약을 준비하라> 인생고비를 뛰어 넘는 재도약 계획서 20 만부 베스트셀러 <마흔으로 산다는 것>을 통해 짚어보는 우리 시대 40대 관리자급 직장인들을 위한 삶의 응원가. 경제위기의 시대, 불혹의 나이를 넘어서 어떻게 삶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조직생활에서도 보람을 찾을지 살펴보는 감성 교육 시간입니다. 최다 방송출연물.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 사람은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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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즈교육그룹,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40대의 숲은 다르다
40대는 거추장스러운 나이다. 이전 세대에 대한 부채감에서 결코 자유스럽지 못하다. 그만큼 한 세대를 만들기 위해 전세대가 기울인 노력은 지난하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소 팔고 논 팔아 학비를 대야 했던 농투사니 부모님을 기억할 것이다. 경우는 달라도 바로 그런 부모님을 둔 세대다. 산업 시대서 정보 시대로 넘어온 만큼 누릴 수 있는 사회적 풍요도 이전 세대나 이후 세대와 많이 다르다.
겪어온 역사적 환경도 남다르다. 이전 세대가 극단의 이념 대결 양상을 띤 반면, 40대는 참여적 입장을 띠면서도, 객관적 시각을 지니려고 부단히 노력한 세대다. 앞의 세대로부터는 철모르는 진보주의자로, 다음 세대로부터는 아직도 이념에 찌든 보수주의자로 인식되기에 십상이다.
40대는 불완전 시대를 사는 세대
더불어 정치적으로는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역사를 만들고자 직, 간접적으로 노력한 세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결실은 여전히 미완인 채로 후대에 되물림 해줘야 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저 유명한 5.18이나, 직선제 쟁취, 6월 항쟁, 이어 전지구적 차원에서 진행된 동서간 이념 붕괴는 40대가 몸소 겪어온 역사적 흔적이다. 이전 세대로부터 얻었으나, 그것은 불완전하기만 했고, 다음 세대에 넘겨주려하나, 여전히 완성되지 못한 역사를 사는 세대.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40대다.
이런 세대가 지금 오십대, 나아가 60, 70대 노년기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거침없이 몰아치는 세월에 힌머리는 늘어가고 어느덧 나이는 중년의 백미인 오십줄을 향해 치닫는다. 부질없는게 나이다. 나이가 들어찰수록 40대는 유독 자기 삶을 만들고자 안간힘을 쓴다. 그런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다.
내 주변을 살펴보면, 새벽반 어학원에 등록하기도 하고, 헬스클럽에서 조깅을 하며 땀을 흘리는 동료들의 모습도 쉽게 보인다. 아니면 거래처 임직원을 데리고 야간업소 투어에 나서야 하는 중간 관리자로써 살고 있거나, 아니면 임원이 되어 몇 년 더 직장에 다닐 수 있을지, 곧 물러나야 할지 막막해 하는 처지에 놓여 있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내면으로 향한 도전은 세상을 향한 도전 만큼이나 40대가 맞닥뜨려야만 하는 현실이다. 좀 더 마음을 추스르고 살아가려면 말이다. 이것이 우리가 직면한 조건이다.
40대가 이루는 숲
물론 가끔은 대접받지 못하는 세대라는 생각에 분통을 터뜨리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한편으론 이전 세대들처럼 대접 받으며 사는 환경을 그리워하게 되기도 한다. 이전 세대와 같아지고 싶지는 않지만, 그들이 누렸던 지위를 누리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우리의 바램을 받아 줄 세대는 대한민국 어디에고 없다. 40대는 40대만의 군락을 이루는 숲과 같다. 저들끼리 몸을 부비며, 그 나름의 숲을 이루면서 산 하나는 거뜬히 지켜내야 하는 그런 세대 말이다.
당신도 40대로써 나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될런지 모른다.
만일 당신이 다음 세대들로부터 대접을 받고자 한다면, 그런 생각은 하루 빨리 버려라. 쉽게 말해, 꿈 깨라. 더 이상 전(前)세대를 존경하는 의식(儀式)을 젊음이들은 베풀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우리만의 세대를 구가하며, 나름의 문화와 추억과, 경험을 쌓으며 살아가야 한다.
다음 세대는 그 다음 세대를 리드하며 살아야 한다. 그들의 몫 중에 우리 지분은 없다. 만일 당신이 자신이 이전 세대에 한 것에 대한 보상 심리 때문에 다음 세대에 기대고자 한다면 그것만큼 우스꽝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 다음 세대는 그런 당신의 바램을 유산으로 물려 받지 않았다. 그들은 별개다.
40대는 별개
지금 당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은 한국 역사상 천 여 년을 이어온 생각이다. 그러나 지금의 패러다임은 완전히 다르다. 다른 종에게 같은 생각을 불어 넣으려 하는 건, 넌센스다. 그렇지 않은가? 그렇다면 양 세대의 조화는 어디서 올까? 인정하는 것이다.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오히려 같아져서는 안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지향해야할 참다운 참여 정신이다. 상대에 대해, 다음 세대에 대해, 무한히 배려하며, 자기 세대의 삶을 멋지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지향해야할 삶이다.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그들에게 뭔가를 바라고, 기대고, 그것으로 그들을 불편하게 하지 말고, 우리는 우리만의 산에 머물며 그 산을 아름답게 수 놓아야 한다. 그들이 별개듯, 우리도 별개다. 우린, 우리가 다르다는 것 하나만으로, 우리 시대를 구가한 세대들 아닌가? 이것이 40대인 당신이 치러 내야할 세대의 숙제다. 다음 세대가 조금이라도 나아지려면. 그러려면 우리는 뭔가 다른 삶의 가치를 행동에 옮겨 보아야 한다.
전경일. <마흔으로 산다는 것>
머리말_왜(倭)의 재침은 없는가?
미쓰비시의 탄광이 있었던 규슈 나가사키 인근 하시마(端島). 이곳에서 식민지 시기 100여명의 한국인 징용자들이
혹사당해 사망했다.(출처: 서울경제 DB) 나의 부친이 징용을 간 사세오마지 대지자 탄광을 나는 아직도 가보지 못했다. 19 세 나이의 아버지의 청춘을 이곳에 가면 만날 수 있을까?
열아 홉 살 나이에 징용에 끌려가 일본 사세호현 사세오마찌 대지자 탄광에서 해방을 맞이했다. 학교를 다니던 어린 나이, 함춘 나루터에 낚시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면 노무동원 담당자 가와무라를 만난 것이 화근이었다. 그가 “너 몇 살이야?”고 묻고는 횡 하니 자전거를 타고 사라져 버려 여간 꺼림직스럽지 않았는데, 3일 후 불쑥 징용장이 나왔다.
징용에 끌려가던 날 면사무소 앞마당에 모인 이들은 가족들과 뒤엉키며 울음바다를 이루었다. 아버지는 노무담당자의 점검을 받고 신사참배와 황국신민선서 제창을 강요받은 다음 노무담당자와 일본인 순사의 인솔 하에 콩나물시루 같은 트럭에 올라탔다. 아버지는 살아 생전 기억을 더듬어 그때의 정황을 기록해 두셨는데 일기에서 이렇게 묘사했다.
“가족과 헤어질 때 가족들의 울음과 아무개야 아무개야 하는 억머구리 끓듯 하는 울부짖음을 뒤로하며 차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트럭에 탄 그들 중 훌쩍훌쩍 흐느끼는 소리가 곳곳에서 일고 있었다. 고향을 등 뒤로하고 춘천에 도착하여 기차 편으로 서울에 도착하니 일본인 현지 노무감독이 인원을 점검해 우리 일행을 인수했다. 먼동이 틀 무렵 부산에 도착하여 오후 4시경까지 감금상태로 엄중 감시 하에 갇혀 있다가 5시경 관부연락선에 타니 각처에서 동원된 사람들이 수 천 명을 헤아릴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들 모두 어디로 끌려가는지 제각기 인솔자가 있었으며 부두 곳곳에는 일본 현병이 서슬 싯퍼렇케 눈을 번쩍이고 있었다. 배는 잠수함공격이나 수중지뢰를 피하기 위해 갈지(之)자로 운항했으며 무한정 넓은 바다를 향해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 새벽 3시에 일본 하카타(博多)항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기차를 타고 후쿠오카(福岡)라는 도시에 도착하여 기차를 바꿔 타고 오전 10시경 목적지인 사세호현 사세오마찌 대지자 탄광촌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읍내에서 약 10리 정도 떨어진 해변가 탄광 촌락으로 다음날부터 우리들은 3일간 훈련을 받고 바다 속 30리 막장에 들어가 보니 이곳이 바로 강제노동 노역소로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저녁 식사를 하는데 발랑 벌어진 접시에다 바다풀을 섞은 밥이나 다시마국 등을 주는데 그 양이 너무나도 적었다. 밤일을 하고 한숨 자고는 오후 바닷가 방초 둑에 앉아 저 멀리 끝도 보이지 않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저 건너 바다 끝에는 우리 조선 땅 일 터인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언제 전쟁이 끝나야 저 바다를 건너 그리운 부모형제 집으로 갈지 한없이 수평선을 바라보며 마음을 달래보기 여러 번이었다.”
우리 가족 중 징용을 끌려갔다가 구사일생으로 돌아오신 분은 부친만이 아니었다. 아버지보다 앞서 조부께서는 첫 징용 대상자로 남양군도에 끌려갔다가 운 좋게 살아 오셨다. 생전에 아버지는 그 남양군도가 지금의 사이판이라고 말씀 하시곤 했는데, 나는 휴가 차 가족들을 데리고 괌에 놀러갔을 때 홀로 먼 바다를 바라보며 언젠가는 조부가 징용을 갔던 그 섬을 꼭 방문해 보리라고 작심하곤 했다.
가족사를 듣고 자란 나는 어렸을 때에는 부친의 그런 이야기가 그저 먼 나라의 이야기로만 들렸다. 그러다 학교를 다니며 한국사의 본령을 알게 되고, 일본의 침략사와 한국 근현대사의 어두움이 역사의 저 장막 뒤에서만 전개된 과거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현재 벌어지는 숨 가쁜 역사가 거기 있었다. 밥을 먹어 먹이는 식구가 생겨나고, 삶의 바쁨이 내 등 뒤를 밀게 하면서 나는 그 생각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일기가 생각난 것은 아마 내가 한․일관계사에 관심을 갖고 연구해 오던 3, 4년경 지났을 무렵이었다. 아버지 삶에 깊게 드리워진 그 ‘잃어버린 청춘’에 크게 공감한 것은 부자지간의 정 때문은 아니었다.
아버지가 격은 악성 종근(種根)과 같은 역사의 뿌리가 지금 일본의 극우주의와 맞닿아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 역사의 모든 면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뇌리에 박힌 고난사로 남아 있는 고통의 진앙지가 어딘지 나는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나는 그 뿌리의 근원을 찾아 더욱 세게 붙들고 끝까지 들어가 보았다. 그러자 오늘날 일본의 침략성이 일제의 군국주의에 기초하고, 한․일합방과 임진왜란, 그리고 근 1620년간 이어진 900여회에 달하는 한반도 침구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순서만 시간순으로 바꿔 돌리면 역사이자 일본의 한반도 침략사가 되었다. 나는 그 뿌리에 침략의 원흉이자, 악의 근원인 ‘왜구’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오랜 시간 한․일관계사를 관통하는 ‘왜구 침구’의 약탈·살인·피로(被虜)의 연결고리가 끝내 일제 치하 우리 가족사에까지 이어져 조부와 부친의 강제징용으로까지 나타났던 것이다. 내가 한국사의 깊은 굴곡을 헤쳐 나가며, 역사는 되풀이 될 수 있다는 절박함을 가지게 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보면 아버지가 징용을 끌려간 후쿠오까 일대도 오랜 시간 왜구의 활동 거점인 일본의 서남해 지역이었다. 또한 한․일 관계사의 창구 역할과 한반도 침략의 최선전으로 일본 지휘본부가 있던 다자이후(太宰府) 인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왜구와 일본 침구를 통해 한․일관계사이자, 일본의 채침을 우려하는 나의 연구는 이로써 보다 체감 있게 다가왔다. 민족의 성원으로 일본의 독도 침구, 역사교과서 왜곡 사건 등 우리 민족의 생존을 위해 긴요하고 절박한 역사 연구와 일본의 재침에 대비한 예비서(豫備書)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이 때문이다.
이 한 권의 책을 묶어 내는데, 근 7년간 자료를 찾아 뛰어 다녔고, 역사를 통찰하며 스스로를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야만 했다. 과거사가 과거의 사건만이 아닌, 현재와 미래사의 골간을 이룬다는 점에서 뼈저린 각성은 글을 쓰는 동안 한시도 멈추지 않고 내게 엄습했다. 마치 일제치하 운명적으로 강제징용에 끌려갔다 오신 나의 조부와 부친의 근영(謹影)이 이 책을 쓰는 동안 한시도 내 곁을 떠난 적 없었듯이 말이다. 돌이켜 보면, 그 분들은 민초로서 망국(亡國)의 설움을 알고 징용되는 굴곡된 역사의 삶을 대가없이 살다 가셨다. 나는 혈육의 고통을 민족사의 한 줄기에서 읽게 된다.
이 책은 우리 민족의 생존을 끊임없이 위협해 온 ‘왜구’의 존재를 앎으로써 우리 민족의 존립 근거를 보다 튼튼히 하고, 적을 앎으로써 나를 알고자 하는 목적에서 쓰여 졌다. 역사를 아는 민족만이 생존과 웅비의 조건을 마련할 수 있다. 역사를 모르고서 한낱 작은 이해에 급급하다면 생존을 위한 조건은 물론 그 기반조차 임진왜란 때나 구한말처럼 송두리째 날아갈 수 있다.
일본의 재침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이때 이 책이 한반도를 살아가는 우리 민족 성원에게 민족의 존립과 영속성의 전제조건을 새롭게 톱아 보는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자아를 아는 통찰력은 한․일관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우리의 생존을 더욱 강화시켜 줄 것으로 믿는다. 오랜 역사적 경험으로 일본의 숫한 침구를 받아왔지만 끝내 버티고 이겨온 승리의 역사를 통해 더 큰 차원의 힘을 얻어야 한다. 이것이 보다 깊이 있는 역사 성찰의 자세일 것이다.
왜구에 대한 연구가 미미한 가운데서도 왜구의 실체를 파악하고 이를 민족사의 교훈으로 삼고자 노력해 온 학자 제위께 감사의 뜻을 전한다. 그 분들이 앞서 밝힌 등촉(燈燭)은 이 책의 집필에 크나큰 영감을 주었고, 곳곳에 훌륭한 주석으로 인용되었음을 밝혀 둔다. 이 책 ⟪남왜공정: 일본 신(新)왜구의 한반도 재침 음모⟫는 현시대 한중일 각국이 공통적으로 경험한 바이자, 지금도 겪고 있는 첨예한 문제를 구체적 사료에 근거해 풀어내고 있다. 나아가 동아시아사 및 세계사에 적지 않은 영향과 방향타가 되어 줄 것으로 믿는다. 또한 우리의 현대사는 물론 동아시아 미래사의 방향 설정에도 도움을 줄 안다. 물론 대왜(對倭)대응 면에서 발화력이 높을 것으로 판단한다. 이 책을 통해 이 민족이 냉철한 이성과 각성을 높이고 실천적 노력을 견실하게 이루어내길 바란다.
끝으로 이 책을 ‘왜구’에 의해 찢기고 갈린 우리 국토와 한국사, 여전히 분단 상황을 살아가는 우리 민족에게 헌정(獻呈)하고자 한다. 응당 우리 ‘국토의 막내’ 독도에게 보내는 영토 수호의 굳건한 메시지라는 점도 아울러 밝히고 싶다. 고백하건대, 오늘 나의 이 같은 헌정은 이 민족에 대한 ‘징비(懲毖)’의 차원이 크다.
2011년 12월
전경일
조직은 항상 현재의 본업에 충실하면서도 새로운 동력에 목말라 한다. 모든 조직이 구성원들의 노력에 의한 결과물로 생산성과 수익성을 이룬다고 볼 때, 구성원 각자가 지닌 신성장에 대한 욕구는 기업의 지속가능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보다 큰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종 사업에 대한 관심은 어떻게 해서 나올까? 각 개인은 무엇을 해야 할지, 역사적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 조선의 목화는 어떻게 일본 토요타가 되었는가
일본 나고야에 위치한 토요타산업기술기념관에 가면 방적기 등 일본 기계공업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전시관이 자리 잡고 있다. 그 뒤로는 우리에게 익숙한 토요타자동차 전시관이 있다. 이 기념관은 목화가 심어져 있는 화분 하나로부터 시작된다. 토요타와 목화가 무슨 관련 있길레 목화를 전시하고 있는 걸까?
일본에 목화가 전래된 것은 조선을 통해서였다. 목화만 전래된 것이 아니라, 직기류와 제작 방법 등 요즘말로 R&D가 함께 전래되었다. 조선에서 건너간 이 직기를 평생 개발한 사람은 토요타의 창업자인 토요다 사키치(豊田佐吉)였다. 그는 토요타자동차의 전신인 토요타자동직기주식회사를 만들고, 평생 직기 개발에 힘써 인력직기를 동력직기로, 동력직기를 다시 자동직기로 발전시키고, 또 평면직기에서 환상(環狀)직기를 개발해내며 자동직기 혁신에 평생을 바쳤다. 혁신적인 발전을 이뤄낸 토요타는 마침내 산업의 패러다임 전환기에 토요타자동차를 출범시킨다. 이것이 토요타자동차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일본에 건너간 직기 기술은 현재 일본의 유명 도자기처럼 일본을 대표하는 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반면, 우리는 우리가 쌓아온 오랜 산업적 경험에서 큰 성과를 이뤄내지 못했다. 문익점이 1364년에 조선에 가져온 목화씨와 직기 기술이 우리나라가 아닌 일본에 건너 가 꽃을 피운 것이다. 이 같은 사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 누구도 내다보지 않은 발견력
문익점이 외교사절단의 일원으로 중국 원나라에 파견된 것은 1362년(공민왕 11년, 또는 1363년)이다. 이때는 홍건적의 난으로 국가 존립 자체가 위태로운 상태였다. 공민왕을 갈아치우려는 원황제의 명령에 맞선 문익점은 지금의 베트남 위인 교지국으로 귀양을 가게 되고 거기서 목화를 발견하게 된다. (사료에 따라서는 북경 근방에서 목화씨를 채취했다는 설도 있다.) 그는 목화를 보는 순간, ‘가치’를 알아 차렸다. 굶주리고 헐벗은 고려의 경제를 부흥시킬 위대한 씨앗으로 목화를 바라본 것이다. 이것이 우리나라에 목화가 도입되게 된 배경이다. 이로 인해 의료(衣料) 혁명이 일어나며 집집마다 목화를 재배하고 직기를 만들고 무명을 짜게 되는 것이다. 문익점 이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목화의 존재를 알았을 터인데, 어떻게 해서 문익점만이 목화씨를 가져오게 된 것일까? 여기에 신성장 동력을 찾고자하는 문익점만의 평소의 ‘관심력’과 ‘발견력’이 작용한다.
처음 재배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목화는 10년 내 전국에 확산된다. 요즘 애기하듯, 마치 반도체 제조산업에서 얘기하는 ‘무어의 법칙(Moore’s Law)’ 혹은 ‘황의 법칙(Hwang’s Law)’처럼 확산 법칙이 지속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그리하여 국가적 사업으로 완전 자리매김 되어 소금, 광물등과 함께 3대 기간산업이자 심지어는 화폐의 기능도 맡게 된다. 조선 중기 들어 세금을 쌀로 받던 무명필로 받은 이를 잘 증명해 준다.
# 혁신을 위한 부단한 활동
그렇다면 문익점 혁신 마인드는 어디서 나왔을까? 문익점의 목화 발견의 의의 중 하나는 그가 무한한 잠재가치를 찾기 위해 누구보다도 열린 눈과 상상력을 가지고 세상과 사물을 바라보았다는데 있다. 이는 평소 주변 사물이나 일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고 열린 눈과 귀로 새로운 가치를 보고자 하는 혁신 마인드와 상상력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합작품이었다.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의 저자 리처드 포스터와 사라 카플란은 혁신 성공 이유로 ‘확산적 사고(Divergent Thinking)’를 주창하고 있는데 문익점 프로젝트가 이와 같다.
그리고 남들이 미처 보지 못하는 진정한 ‘필요(needs)’를 간파했다. 문익점이 목화씨를 가져와 이를 목면 직조 과정에까지 연결하고 관리한 것은 바로 필요가 수요를 창출한다는 사업적․산업적 마인드 때문이었다. 그는 이 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기에 역사적 과제에 몰두할 수 있었다. 현대적 의미로 해석하자면, 의료혁신을 통해 ‘백성인 고객에게 감동경영의 극치를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이 같은 성과가 폭발적인 목면 수요를 가져왔고, 대확산이 전국적 차원을 넘어 일본에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전형적인 신기술․신제품 혁신 사례에 해당된다. 이것이 현재 토요타산업기념관의 첫 머리에 목화송이가 전시되어 있는 이유이다.
우리는 조직 내에서 늘 새롭고 강력한 새로운 사업을 찾기 위해 목말라 한다. 그러나 신성 동력 발굴의 가장 기초가 되는 디딤돌은 구성원 각자가 지닌 현업에 있다. 고객의 요구를 사전에 알고 철저하게 그에 부응하기 위한 자세를 가질 때 나온다. 현장의 목소리, VOC 등이 성가싫고 귀찮은 것이 아니라, 고객이 새로운 수익원을 찾으라고 힌트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를 대하는 자세부터 달라질 것이다. 생각의 앵글을 달리할 때, 세상을 놀래킬 놀라운 사업의 기회는 내 눈앞에 성큼 다가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우리의 고정관념이다. 성장을 위한 씨앗을 찾아내고 이를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자세는 그 어떤 혁신 활동보다도 크다. 과거의 성과를 야금야금 까먹으며 혁신활동을 하고 있지 않은지 살펴보고 신들메를 고쳐 신고 도약을 위한 자세를 추스릴 때 누구도 못 본 성장 동력이 찾아질 것은 분명하다. 문익점의 목화씨처럼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