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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일에 대한 프로의식을 갖추라.

김재남 차장은 47살 때 회사를 그만뒀다. 그는 평소 농원을 갖고, 화초를 재배해 보는 게 꿈이었다. 회사를 그만둔 다음 이것 저것 알아보다가 화원을 하나 냈다. 농장을 경영할만한 전문적 식견이나 자금이 부족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조그마한 사업체를 위험부담 없이 키워보고 싶기도 했다. 다행히 목 좋은 자리라서 손님들이 들락거렸다.

그는 지금 꽃과 함께 하루를 보내고 있다. 물건을 떼고 돌아와 꽃더미 속에서 차를 한잔 마시는 시간이면 젊은 날의 추억이 아련히 떠올라 미소짓게 된다. 김사장은 죽을 때까지 이 일에서 손에서 놓치 않겠다고 한다. 김사장의 하루 총매출액은 45만원 정도. 월 순수입 375만원 정도다. 그는 지금 버는 것보다도 더 적게 쓸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그래도 괜찮아요. 지금은 남에게 아쉬운 소리 안해도 되니.”

이 점이 그가 더 큰 수입을 찾는 것 보다, 덜 쓰면서 행복한 이유다.



하루를 어떻게 보내나


윌리엄 포크너는 이렇게 말한 적 있다. “
사람이 하루 여덟 시간씩 매일 할 수 있는 것은 일 밖에 없다. 하루 여덟 시간 동안 계속해서 먹거나 마신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여덟 시간 동안 계속해서 사랑을 나누고 있을 수도 없다.”

맞는 말이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우리는 일하는데 보낸다. 일을 통해 배우고 인생의 참맛도 느낀다고 볼때, 우리는 일과 함께 하루라는 시간을 즐기기도 하는 셈인 것이다. 게다가 자신의 노력으로 김사장처럼 남에게 손도 벌리지 않을 수 있다면, 그만한 행복이 어디있을까?

40대는 그런 차원에서 일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사회적 위신을 세우며, 성장해 가는 시기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의 40대에게는 일은 즐거움만은 아니다. 오늘날 한국의 40대는 하루 8시간이 아니라, 10시간 이상 일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 40대의 과로사가 세계 1위라는 것은 일이 즐거움 일 수만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만큼 일이 스트레스이기도 하다. 

내게 맞는 내 일을 돌려다오


일에 대한 부담감은 일하는 것 만큼이나, 일하지 못하는 상황 때문에 커지고 있다. 40대에는 일조차 빼았기게 될거라는 두려움이 급격히 몰려든다. 단순히 나이에 따른 은퇴의 순차성 때문에 물러설 수 밖에 없게 되기도 하고, 그보다 좀 더 영악한 자본의 논리가 40대들을 내몰기도 한다. 가장 활동적이어야 하며, 가장 왕성한 생산-소비의 주체이어야 하는 시기에 말이다. 정년 연령이 낮아지는 것은 이미 오십대를 지나 40대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로부터 일을 강제로 빼앗아 버리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 일을 할 수 없는 나이의 인간은 없다. 일을 할 수 없는 것은 몸이나, 정신이 그렇게 만들 뿐이다. 이제는 늙은 청년의 시대를 지금의 40대가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지금 평균 수명은 10년전보다 10년이나 더 늘어낫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년은 일에서 손을 떼야하는 나이를 의미하게 됐다.
정년은 자신이 사회적 일을 놓고, 자신의 일에 투자하는 가장 황금같은 시간이다. 그런데도 정년=퇴출이 당연시되고 있다. 

일: 세상과 만나는 가장 중요한 방식

누구나 알다시피 40대
는 경험과 숙련도에서, 그리고 젊음의 끝자락과 노년의 초입에서 일과 인생의 풍미로움을 맘껏 드러낼 수 있는 시기다. 인생 전반에서 가장 큰 성과를 드러내기 시작하는 나이다. 이 시기의 일은 보람찬 시간을 유지시켜주기 때문에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일을 손에서 놓는 순간 당신은 세상과 만나는 주요한 방식 하나 놓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살기 위해 일하고, 일하기 위해 산다. 그렇기 때문에 사는 방식을 다시 알아야 한다. 예전의 40대와 달리 이제는 좀더 깊이 있어져야 한다. 특히 일에 대해서는 더욱 영-육이 완성되어가는 모습을 취해야 한다. 100여년 전에 애나 로버트슨 브라운이라는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이 일이 꼭 필요하고, 내 자신의 인격을 강화해주고,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이 세상에 도움이 되는가?”

이 말은 100여 년 전에나 지금이나 똑같다.

일을 소중히 여겨라. 지금부터는 나이들며 특별히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곰곰이 따져보라. 만일 무엇이든 하려거든, 자신의 취미, 평생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을 찾아라. 그리고 그 일 속에 자신을 놓고 키워보라. 그러면 자연히 당신도, 당신이 하고 있는 바로 그 일도 커질 것이다.

전경일 <마흔으로 산다는 것>


40대의 숲은 다르다

40대는 거추장스러운 나이다. 이전 세대에 대한 부채감에서 결코 자유스럽지 못하다. 그만큼 한 세대를 만들기 위해 전세대가 기울인 노력은 지난하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소 팔고 논 팔아 학비를 대야 했던 농투사니 부모님을 기억할 것이다. 경우는 달라도 바로 그런 부모님을 둔 세대다. 산업 시대서 정보 시대로 넘어온 만큼 누릴 수 있는 사회적 풍요도 이전 세대나 이후 세대와 많이 다르다.

겪어온 역사적 환경도 남다르다. 이전 세대가 극단의 이념 대결 양상을 띤 반면, 40대는 참여적 입장을 띠면서도, 객관적 시각을 지니려고 부단히 노력한 세대다. 앞의 세대로부터는 철모르는 진보주의자로, 다음 세대로부터는 아직도 이념에 찌든 보수주의자로 인식되기에 십상이다.

40대는 불완전 시대를 사는 세대

더불어 정치적으로는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역사를 만들고자 직, 간접적으로 노력한 세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결실은 여전히 미완인 채로 후대에 되물림 해줘야 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저 유명한 5.18이나, 직선제 쟁취, 6월 항쟁, 이어 전지구적 차원에서 진행된 동서간 이념 붕괴는 40대가 몸소 겪어온 역사적 흔적이다. 이전 세대로부터 얻었으나, 그것은 불완전하기만 했고, 다음 세대에 넘겨주려하나, 여전히 완성되지 못한 역사를 사는 세대.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40대다.

이런 세대가 지금 오십대, 나아가 60, 70대 노년기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거침없이 몰아치는 세월에 힌머리는 늘어가고 어느덧 나이는 중년의 백미인 오십줄을 향해 치닫는다. 부질없는게 나이다. 나이가 들어찰수록 40대는 유독 자기 삶을 만들고자 안간힘을 쓴다. 그런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다.

내 주변을 살펴보면, 새벽반 어학원에 등록하기도 하고, 헬스클럽에서 조깅을 하며 땀을 흘리는 동료들의 모습도 쉽게 보인다. 아니면 거래처 임직원을 데리고 야간업소 투어에 나서야 하는 중간 관리자로써 살고 있거나, 아니면 임원이 되어 몇 년 더 직장에 다닐 수 있을지, 곧 물러나야 할지 막막해 하는 처지에 놓여 있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내면으로 향한 도전은 세상을 향한 도전 만큼이나 40대가 맞닥뜨려야만 하는 현실이다. 좀 더 마음을 추스르고 살아가려면 말이다. 이것이 우리가 직면한 조건이다.

40대가 이루는 숲

물론 가끔은 대접받지 못하는 세대라는 생각에 분통을 터뜨리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한편으론 이전 세대들처럼 대접 받으며 사는 환경을 그리워하게 되기도 한다. 이전 세대와 같아지고 싶지는 않지만, 그들이 누렸던 지위를 누리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우리의 바램을 받아 줄 세대는 대한민국 어디에고 없다. 40대는 40대만의 군락을 이루는 숲과 같다. 저들끼리 몸을 부비며, 그 나름의 숲을 이루면서 산 하나는 거뜬히 지켜내야 하는 그런 세대 말이다.

당신도 40대로써 나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될런지 모른다.

만일 당신이 다음 세대들로부터 대접을 받고자 한다면, 그런 생각은 하루 빨리 버려라. 쉽게 말해, 꿈 깨라. 더 이상 전(前)세대를 존경하는 의식(儀式)을 젊음이들은 베풀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우리만의 세대를 구가하며, 나름의 문화와 추억과, 경험을 쌓으며 살아가야 한다.

다음 세대는 그 다음 세대를 리드하며 살아야 한다. 그들의 몫 중에 우리 지분은 없다. 만일 당신이 자신이 이전 세대에 한 것에 대한 보상 심리 때문에 다음 세대에 기대고자 한다면 그것만큼 우스꽝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 다음 세대는 그런 당신의 바램을 유산으로 물려 받지 않았다. 그들은 별개다.

40대는 별개

지금 당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은 한국 역사상 천 여 년을 이어온 생각이다. 그러나 지금의 패러다임은 완전히 다르다. 다른 종에게 같은 생각을 불어 넣으려 하는 건, 넌센스다. 그렇지 않은가? 그렇다면 양 세대의 조화는 어디서 올까? 인정하는 것이다.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오히려 같아져서는 안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지향해야할 참다운 참여 정신이다. 상대에 대해, 다음 세대에 대해, 무한히 배려하며, 자기 세대의 삶을 멋지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지향해야할 삶이다.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그들에게 뭔가를 바라고, 기대고, 그것으로 그들을 불편하게 하지 말고, 우리는 우리만의 산에 머물며 그 산을 아름답게 수 놓아야 한다. 그들이 별개듯, 우리도 별개다. 우린, 우리가 다르다는 것 하나만으로, 우리 시대를 구가한 세대들 아닌가? 이것이 40대인 당신이 치러 내야할 세대의 숙제다. 다음 세대가 조금이라도 나아지려면. 그러려면 우리는 뭔가 다른 삶의 가치를 행동에 옮겨 보아야 한다.
전경일. <마흔으로 산다는 것>

 


 

저를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들어 준 책, <마흔으로 산다는 것>의 개정판이 5년만에 나왔습니다. 보도자료 올려드리고, 앞으로 <못다한 마흔 이야기>를 짧은 글로 연재할까 합니다.




20만부
베스트 셀러

40만명
독자가 읽은

40대의
영원한 필독서『마흔으로 산다는 것』이
5
년 만에 다시 대한민국 40대를 만난다!

 



대한민국 사십대여, 다시 일어서라!

아무리 살아도 어렵고 힘든, 이 시대의 사십대!

직장 동료이기도 하고, 옆집 아저씨 같은 우리 주변의 40대는 누구이며, 어디로 향하는가?


대한민국 40대는 누구인가? 온갖 굴곡진 한국 현대사와 함께 성공과 좌절, 희망과 절망을 함께 해온 사람들. 대학에서는 민주주의를 외쳤지만, 세상에 나와서는 사는 건 다 그런 거라고변명을 일삼기도 하는 사람들. 올곧이 떫은 땡감으로 자신의 뜻을 꺾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 민주주의를 얻었지만, 쉽게 쪽박을 깨버린 사람들. 지역주의와 학벌, 연고로 가득 찬 기득권 층을 증오하면서도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는 기꺼이 거기에 뛰어 들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들. 돈과 명예가 따르는 성공을 누구보다 열망하는 사람들. 성공을 위해서라면 초심을 헌신짝 같이 내던져 버리기도 하는 사람들. 자신의 신념과 달리 밥벌이를 위해서라면 철저히 달리 행동하는 사람들. 그러면서도 세상 탓에 그런 거라고 자기 합리화로 위안하는 사람들. 학력 차별 철폐를 주장하면서도 내 자식은 누구보다도 남의 윗자리에 가 있게 하려고 사교육에 몰두하는 사람들. 머잖아 인생의 장년기를 외롭게 보내야만 하는 사람들. 자기 세대의 짐 때문이라는 핑계로 다음 세대를 돌볼 여유조차 없는 사람들. 20대 실업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성난 개처럼 그들과 밥그릇 싸움을 해야만 하는 비정한 사람들.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가장으로서 누구보다도 책임이 막중한 사람들. 노후가 불안정한 사람들, 외면 받는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소외를 키워 가는 사람들직장인들, 실업자들, 퇴직자들, 구조조정의 희생자들, 힘겨운 비정규직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머리띠 둘러 맨 사람들, 철탑 위에 올라 간 사람들, 한강 철교 위에 위태로이 선 사람들힘든 사람들, 무거운 사람들, 버거운 사람들, 길 잃은 사람들, 전짓불 들고 어렵사리 어둠을 헤쳐 나가는 사람들. 내면의 어둠으로 세상을 밝히지 못하는 사람들. 촛불든 사람들. 촛불을 끄는 사람들, 나이든 사람들. 초조하고, 불안한 사람들. 잠 못 이루는 사람들. 삶의 여울목에서 혼돈스러워 하는 사람들… 그럼에도 어느덧 이 사회의 중추가 되어 세상에 뒤섞여 세상을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 어디선가 묵묵히 자기 소임을 말없이 수행하는 옆 집 아저씨 같은 - 당신과 나같은 사람들. 다시 도전하려고 신발 끈 단단히 조여매는 사람들.


-
우리는 눈물도 나는 사십대, 힘 내서 다시 뛰어야 하는 대한민국 사십대들이다.


 
이 나이에 인생의 닻을 어디에 내려야 할까? 다시 활짝 돛을 펴고 인생 항해에 나설 수 있을까?


돌아보면, 다들 힘겹고 눈물난다. 그래도 삶은 지속되는 것이라 출근길이면 파이팅!’을 외치며 현관문을 나선다. 하루를 힘차게 시작하는 나와의 약속을 매일 매일 반복한다. 두 주먹 움켜쥐고, 더 뛰기 위해, 삶을 단단히 부여잡기 위해 삶의 응원가를 부르며, ‘오늘도 힘차게!’를 외친다.


노후 불안에 심적허기에 살아온 인생보다 살아 갈 인생이 더 가파를 것임을 알기에 스스로 채찍질하면서,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을 중간 갈무리 하면서 오늘도 뛴다.


마흔, 지나 온 세월은 아쉽지만 인생을 알게 했다. 세월의 힘이 느껴진다.


내 나이 마흔에야 쓴 탕약 같은 인생의 맛을 알게 됐다. 마흔 들며 곱씹어 본 마흔살이는 어느덧 쉰살이 앞으로 다가서고 삶은 노후 불안 앞에서 사시나무 떨듯 한다. 하지만, 오늘도 가족이 있고, 삶은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내겐 완주해야 할 인생 코스가 있기에 희망의 용기를 내어 본다. 젖 먹던 힘까지 다 내서 앞으로 달려본다. 우리에겐 아직 가야할 길이 있고, 나를 만나 반평생을 함께 한 아내가 있고, 알토란히 같이 커가는 아이들이 있다. 이 시퍼런 나이에, 세상은 얼마든지 나아질 수 있는 것이기에 용기백배한다.

 

눈물은 마흔에 어른다움을 얻게 하고, 한 남자로 성숙시킨 열매였다.


누구나 마흔에 들면, 텔레비전 드라마만 봐도 눈물이 울컥 난다. 멋진 집을 보면, 나도 저렇게 살아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굴뚝 같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아이들에게 희망의 부모가 되고자 하지만, 현실은 버겁기만 하다. 농사짓던 아버지, 평생 그럴듯한 명함없던 내 아버지처럼 살지는 말아야 하는 데나이가 들수록 점점 아버지를 닮아 간다. 그럴 땐 마흔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곱씹어 본다. 마흔이 무엇인지 외투깃 여미며 진저리 친다.


<
마흔으로 산다는 것>

젊은 날의 꿈은 아스라이 멀어져 간다

내겐 아직 뜨거운 열정이 남아 있는데

어디로 가야할지 어디로 흘러갈지

다다를 수 없는 외로운 인생의 길

 


외로운 항해와 같이 나를 혼자 위로하곤 하지

바람불면 밀려가고, 바람 멎으면 밀려오며

마흔으로 산다는 건 뼛속 깊이 외로움을 곱씹는 것

몸살앓듯 누군가를 그리워 하는것

 


나이들어 이제는 사는 게 뭔지 알것 같은데

어느새 머리는 반백,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해

젊어선 아버지와 달리 멋진 삶 살리라 다짐했는데

돌아 와 거울에 비친 내 아버지같은 이여!

 


아직 펄펄 뛸 수 있는 나이이기에 용기내지만

목젖 가득 울꺽거리는 건

나이 때문만은 아니라고 위로를 하네

이제 외로움도 너를 닮아 반백이 되었다고

마흔으로 산다는 건 외로움을 술잔 가득

인생 가득 붓는 것이라고 허허이 웃으며.

 

우리들의 마흔은 외롭고 쓸쓸하지만, 돌아보면 가장 힘을 낼 나이이기에 오늘도 뛴다. 나와 같은 우리 시대 마흔들에게 희망이 되고 싶다. 다시 일어서서 보듬고 달리는 희망의 메시지가 되고 싶다. 나로부터 인생의 마지막까지 올곧게 성장해 나가고 싶다. 아직 시퍼렇게 젊은 이 나이에 영원한 청춘의 노래를 부르며 오늘도 달리고 싶어진다.

 

          ……………………………………………………………………………………………………………………………

   마흔은 세상을 통해 알게 된 자기 목소리를 서서히 듣게 되는 시기이다. 그래서 매사에 조심해야 할 나이다. 어느 시기나 상황은 변해 왔다. 그에 따라 승패도 항시 다르다. 나이 들면 금방이라도 게임이 끝날 것 같아 갑작스런 두려움이 일기도 한다. 득점은커녕 인생의 전반전을 놓고 보면 지금 몇 골이나 먹고 있는지 알 수도 없다. 사십대의 초조함은 이런 데서 온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강박관념이 머리 속을 복잡하게 만든다.(30)

 

   나는 어디서건 잘 나가는 아들이 되어야겠기에, 사는 것에 깊은 천착 없이 살아온 시간들이 쌓여 지금의 내가 된 것이 아닌가? 나의 사십대는 그냥 그렇고 그런 시간뿐인가? 사십대의 고충은 경제적인 문제를 떠나서 바로 이런 데에 생각이 미치면 가슴 한 구석이 꽉 막힌 배수구 마냥 그냥 답답해진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나는 내가 아직도 어른이 되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내 인생의 나머지 절반을 제대로 살아낸다면 나는 스스로 개척한 삶과 거기서 우러난 정신의 폭을 확장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내 나이대의 진실과 마주하고 싶다.

“세상엔 계속 커 가는 나무가 있다. 그게 바로 너다.

언제나 어머니 목소리는 내 주위에서 울린다. 내가 휘청거릴 때에도 내가 작은 것에 들떠 있을 때에도….(56)

 

   애들이 자라면서 부모는 살인적인 사교육비에 허덕이고, 치솟는 물가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왜 이 사회는 경제적 안정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까? 부자들은 왜 돈을 안 쓰면서 부의 파업을 일삼고, 노동자는 왜 경쟁력을 상실해 가는가? 정부정책은 왜 그토록 지지부진하며 기득권의 편에 서있는가? 월급쟁이의 월급봉투는 왜 그렇게 투명한가? 곳곳이 탈세 현장인데, 왜 그런 데서 세원은 보충되지 않고, 애꿎은 월급쟁이 주머니만 터는 걸까? 우리처럼 월급쟁이들의 불만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 달 용돈을 생각하면 동창들과 술 한잔 제대로 못하고, 친한 친구가 상을 당해도 부의금도 수표 한 장 자신 있게 내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사람 구실은, 인사는 해야 한다. 이런 내가 좀스럽다.(90)

 

   아직 푸른 젊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자. 아직 할 일이 많은 것에 감사하고, 그런 사람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해준 모든 것들에 고마움을 표시하자. 여전히 뜨겁게 달아오를 열정의 불씨가 남아 있는 것에 감사하자. 그런 나를 아직 사랑하고 받아주는 아내에게도 고마워하자. 하루살이지만 생각과 행동에 따라서는 무엇에도 견줄 수 없는 긴 시간을 누리며 살 수 있다. 이건 정말로 대단한 축복이다. 마흔은 하루를 천년처럼 살 수 있는 나이다.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노력한다면, 우린 행복의 절정에 다다르게 될 것이다. 적어도 세상에서 한 인간으로, 한 남자로 누릴 수 있는 만큼의 행복은 다 누릴 수 있다.(122)

 

   지금까지 세상을 살아오며 당신은 크든 작든 자기 목소리를 많이도 내 왔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작은 목소리로 승리해 왔다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다. 만약에 소리를 질러야만 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아이들이 뛰어 노는 운동장이나 야구장, 축구장처럼 넓게 트인 곳을 찾아가 맘껏 소리를 질러라. 화도 삭히고, 자기를 위로해 주기도 하라. 운동 경기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팀을 응원하다 보면 당신은 마음속이 다 후련해질 것이다. 또 젊은이들도 기꺼이 당신과 어깨동무를 할 것이다.(146)

 

   더욱 더 중요한 것은 인생의 주요한 고비를 넘기며 슬기롭게 자기를 안착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사십대는 어느 때보다도 가장 큰 시련과 혼돈이 있을 수 있는 시기다. 인생을 통해 시도해 본 것의 가치를 아는 나이이면서, 동시에 앞으로 가장 불확실한 시기를 앞두고 있다. 그런 까닭에 나는 이제 삶의 좌표를 분명히 찍고 가야 한다. 자칫하다간 표류하기 십상이다. 아무튼 마흔이란 나이는 세상을 더 알고, 세상에 대해 바로 참여하기 위해서라도 더 많이 배워야 할 나이다.(176)

 

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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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으로 산다는 것』은 40대를 위한 삶의 노래이다.

누구나 나이 마흔이 되면 삶을 돌아보게 된다. 갈 길은 멀지만, 돌아봄으로써 마음과 몸을 추스린다. 앞으로 나가는 힘은 돌아봄으로써 얻어지고, 삶은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를 얻는다. 때로는 생체 변화가 가져오는 눈물에 온 몸이 흔들리지만, 흔들림은 좌절이 아니라 뽑히지 않는 풀처럼 다시 일어서게 한다. 가족은 그 버팀목이다.

때로는 눈물을 보이고, 가슴이 먹먹하기도 하다. 회사에서는 갑작스런 변화 앞에 허둥거리고 망연자실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삶은 지속되고 우리는 살아가는 힘,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마흔이란 청장년의 시점은 용기백배해 인생의 완성을 위해 치닫는 나이이다.

 

마흔은 영원한 청춘! 사십대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사십대를 위한 저자의 글이 가슴에 콕콕 와 닿는다.

 

40대의 삶의 애환은 공감 부족에서 기인한다. 어려울 때 나 어렵다고 말하고 진지하게 들어 줄 친구가 필요하다. 가족한테도 못하는 말, 직장 생활의 어려움 등 마음을 다 받아주는 사람이 내 곁에 있으면 좋겠다. 삶의 애환을 어디서건 훌훌 털어내고 싶어진다. 그러나 다들 사는 데 바뻐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그 결과 마흔은 우리 모두 각자가 외로운 섬으로 떠돌며 홀로 남는다. 우리 시대 40대를 위한 격려의 메시지는 없는가? 누가 그들의 등을 어루만져주고, 등을 토닥여 줄 수 있을까?

 

저자는 40대라는 공감대를 통해 삶을 일으켜 세워주는 힘을 보여준다. 힘이란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정서와 삶에 대한 뚜렷한 의지에 맞닿아 있다는 것을 일상의 소소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풀어내고 있다.

 

『마흔으로 산다는 것』은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오다 어느 날 문득 텅 빈 들판의 허수아비처럼 느껴지는 대한민국 40대 남자들의 삶의 애환과 희망을 담은 책이다. 대한민국에서 40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그렇듯 동시대의 아픔과 고민, 못다 이룬 꿈과 미련에 대해 저자는 소줏잔을 높고 이야기하듯 솔직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대한민국에서 40대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와 희망 찾기를 진솔하게 이야기한다.

 

나이듦은 거추장스러운 짐이 아니다. 마흔의 자화상을 통해 삶의 디딤돌을 놓는 작업이다. 인생을 알게 하는 것도, 인생이란 깊은 우물 맛을 음미케 하는 것도 나이듦의 덕택이리라. 그러니 삶에 희망을 가질 필요가 있다. 모두들 분투하고 있기에 함께 심호흡하고 용기를 내어 본다.

마흔을 넘어 쉰으로 치달으며 저자는 지난 5년의 마흔 궤적과 살아온 전생애를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가족과 부모님과 직장과 성공이란 말과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도…. 이 책이 40만 독자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베스트 셀러였던 이유를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 같은 삶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다시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 강물에서 우리의 거친 가슴은 부드럽게 씻기고 삶은 재충전된다.

 

그간 독자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이 편지로 다가왔다. 출판사 편집자는 독자들의 편지를 함께 읽으며 가슴 벅찬 감동과 글의 힘을 느끼게 됐다. 특히 『마흔으로 산다는 것』을 읽으며 마음에 박혀 있던 녹슨 칼을 뽑아버리게 되었다.”는 내용에서는 모두들 잠시 숨을 멈추어야 했다. 삶이란 대단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이 책 『마흔으로 산다는 것』을 세상에 다시 선보이는 이유이다.

 

40대여! 희망을 갖고 다시 일어서라, 그대는 혼자가 아니다. 그대는 더는 홀로라는 섬이 아니라 함께라는 섬이 되어 서로의 손을 잡아 줄 수 있다.

독자들이 보내 온 편지 중 일부를 다시 이 책을 접할 새로운 독자들을 위해 옮긴다.

 

 

<마흔으로 산다는 것>에 보내온 독자 편지

 

토론토에서『마흔으로 산다는 것』을 의미 있게 읽은 애독자입니다. 나라가 다르고 ''이 달라서 삶의 배경이 많이 다르지만 40대라는 공통분모 속에서 동감하는 많은 것들을 가끔 웃어가며 고개 끄덕이며 많은 도전을 받았답니다. 마흔이라는 숫자 개념보다는 '40'(사십)이라는 숫자가 주는 느낌을 더 좋아합니다. 왠지 비장한 각오가 느껴지거든요~ 뭔가 새로 시작해도 20대나 30대에게 뒤지지 않을 비장함... 인생의 뜨거운 통찰력을 지니신 분이라 생각하며 존경합니다. 감사합니다. (40 jinnyyoo64)

 

이 책을 우연히 읽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내 마음에 꽂혀 있던 칼을 뽑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 사람에 대한 칼은 녹슬지 않았지만 이젠 용서하고 집착을 버리고 아이들과 내 인생을 살고자 합니다. 고맙습니다. (40 kimjaya62)

 

마흔은 한마디로 만만찮은 일에 직면한 세대이면서 동시에 끊임없이 자신에 대해 질문을 던져야 하는 세대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이해하고, 문제를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할까? 이 책엔 바로 나와 같은 40대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있습니다. 40대답게 뭔가 중후하며, 삶을 생각하게 만드는, 단순하지만은 않은 인생을 사는 법 말 입니다. (40 mommia63)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과 앞으로의 살아갈 날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마흔으로 산다는 것』을 읽으며, 지금 나와 관계되어 있는 모든 것에 감사하고 향후 더불어 사는 삶,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더욱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40 seacloud)

 

책을 구입하여 불과 몇 시간 만에 정독을 했습니다. 새로이 태어난 기분이라고나 할까요!? 이렇게 가슴 깊이 와 닿고 현실적이면서도 어느 누구에게나 공감을 줄 수 있는 책의 내용에 자신을 다시 뒤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남편의 입장에서 뿐만이 아니라 아내의 입장에서도 40대의 주인공들을. 책을 다 읽을 때까지 손에서 놓을 수 없을 것 같은 진솔한 이야기에 메일을 쓰게 되었습니다. 저도 왠 만큼 열심히 살아온 인생이었는데 아직도 꿈도 있고, 이룰 수 있다는 희망도 갖고 있습니다만, 이 책으로 인하여 우리들의 삶에 촉진제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새로운 삶에 도전 할수 있는 계기가 되어 감사 하다는 말씀은 꼭 드리고 싶습니다. 40대를 위한 삶의 지침 28’을 토대로 아름답고 멋진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가렵니다.(40 kawa2)

 

선생님과 동갑이라서 그런지 마음에 와 닿는 글들이 많았습니다. 책 줄거리 마지막 부분에 마흔에 필요한 여러가지 지혜를 알려주셔서 감사하구요. 혼자 알고 있기에 아까운 생각이 들어서 회사 동료들에게 몇 자 퍼 나르려고 합니다. 좋은 글 많이 쓰시구요. 성공한 인생 만드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40 ejeyong)

 

내용을 보니 구구절절 나의생활과 비슷하여 공감하는 부분이 많더군요. 사회생활이나 같은 40대라 그런지 깊은 공감을 받았습니다. 저 혼자만 알기에는 부족한 것 같아 제가 자주 들리는 사이트에 좋은 내용을 소개 하려고 합니다. (40 yhl2022002 )

 

남편 나이가 어느덧 40대 중반을 바라보고 있고 저 또한 내년이면 40이 되는 요즘 이것 저것 후회도 되고 갑자기 조급한 마음이 듭니다. 하나도 이뤄낸 것이 없다는 일종의 위기감 같은 거겠죠? (39 hana)

 

『마흔으로 산다는 것』잘 읽고 제 인생에 커다란 지침서로 삼아 살고 싶습니다. 용서할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항상 가슴에 분노와 상심만 가득하게 살아왔습니다. 벌써 마흔이 훌쩍 넘어서 돌이켜 보면 내 인생은 오직 원망과 분노에 멍들었던 듯합니다. 이젠 내가 먼저 노력해야할 듯합니다. 고맙습니다. (40 kmy1438)

 

시대상이 표현되어 있었다고 얘기해야 할까요? 남편에 대해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잠깐이나마 갖게 되었네요. 삶의 무게는 저울질하자면 서로가 똑같을 것 같네요. 선생님의 책을 독파하고선 치열한 생존 현실을 더더욱 실감케 하네요. 4학년을 달리는 즈음 마흔으로 산다는 것이 가슴에 잔잔하게 다가오네요. 덕분에 좋은 책, 참 잘 읽었습니다. (40 ldw4904)

 

대학 4학년이 되어서 진로에 대해서 고민도 하고 나의 한계에 대해서 그리고 인생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가 선생님께서 쓰신 『마흔으로 산다는 것』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한 의미 그리고 나의 아버지에 대한 이해, 그리고 20년 후의 나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책을 읽게 되었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어떤 분인지 실제로 알고 싶은 마음과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도 많을 실 것 같아서 지혜를 얻고자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20 hongxray)

 

회사에서도 40대 선배들이 겪는 갈등들을 보면서, 40이 되기 전에 그 때를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공감이 많이 갔고, 40이 되기 전에, 그리고 40이 되더라도, 더욱 충만한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30 yunsi4)

 
ⓒ카인즈교육그룹,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감성경영/마흔으로 산다는 것 | Posted by 전경일 2010/05/15 02:00

마흔이 마흔에게

이 시대 사십대들은 누구이며, 어디로 향하는가?

대학 시절에는 군부독재와 맞서 민주화를 이뤄낸 사람들. 온갖 굴곡진 현대사의 성공과 좌절, 희망과 절망의 경험을 함께 해온 사람들. 대학에서는 민주주의를 외쳤지만, 세상에 나와서는 '사는 건 다 그런 거라고' 변명을 일삼기도 하는 사람들. 올곧이 떫은 땡감으로 자신의 뜻을 꺾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 민주주의를 얻었지만, 쉽게 쪽박을 깨버린 사람들. 다시, 민주주의 회복을 갈구하는 사람들. 지역주의와 학벌, 연고로 가득찬 기득권층을 증오하면서도 개인의 영달을 위해 거기에 뛰어 들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들. 돈과 명예가 따르는 성공을 누구보다 열망하는 사람들. 성공을 위해서라면 초심을 헌신짝 같이 던져 버리기도 하는 사람들.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달리 밥벌이를 위해서라면 철저히 달리 행동하는 사람들. 그러면서도 세상 탓에 그렇다고 자기 합리화를 하는 사람들. 학력 차별 철폐를 주장하면서도 내 자식은 누구보다 남의 윗자리에 가 있게 하려고 사교육에 몰두하는 사람들. 머잖아 인생의 장년기를 외롭게 보내야만 하는 사람들. 자기 세대의 짐 때문이라는 핑계로 다음 세대를 돌볼 여유조차 없는 사람들. 20대 실업을 해결하기보다, 그들과 함께 밥그릇 싸움을 해야하는 삶의 여울목에 놓여있는 비정한 사람들. 가족을 부양해야 할 가장으로서 누구보다도 책임이 막중한 사람들. 직장인들, 실업자들, 퇴직자들, 구조조정의 희생자들, 힘겨운 비정규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힘든 사람들, 무거운 사람들, 버거운 사람들, 길 잃은 사람들, 전짓불 들고 어렵사리 어둠을 헤쳐 나가는 사람들. 내면의 어둠으로 세상을 밝히지 못하는 사람들. 촛불든 사람들. 나이든 사람들. 초조하고, 불안한 사람들. 잠 못이루는 사람들. 그럼에도 어느덧 이 사회의 중추가 되어 있는 사람들. 어디선가 묵묵히 자기 일 수행하는 옆 집 아저씨 같은 주변의 사람들. 다시 도전하면 이번에 뭐든 잘 해 낼 것 같다고 불끈 주먹쥐는 사람들...
이처럼 대한민국 사십대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든 표정이 투영돼 있다.

지금, 대한민국 사십대, 우리는 어디로 향하는가, 사연 많고, 눈물 나는 이여! 가장들이여!

오늘부터 우리들의 이야기를 다시 쓰고자 한다.


프롤로그

세월의 칼날이 내려친 자리에 어느덧 반백의 중년으로 남아 있는 사십대들. 그들이 사는 세상은 눈물겹다 못해 가슴 저리다. 극단의 양극화로 신분 상승 기회조차 꿈꿔보지 못하는 사회, 선택의 여지가 없거나 폭이 너무 작은 사회, 열심히 달렸으나 텅 빈 자신만 뎅그라니 놓여 있는 걸 알게 되는 세대...
 
사십대에게 희망은 있는가? 마중물처럼 나를 부으면 희망을 길어 올릴 수 있을까? 사는 게 각박해도 울고 웃으며 주먹을 쥐고 달려가야만 하는 나이, 마흔….


대한민국 사십대의 애환을 달랜 20만부 베스트셀러 <마흔으로 산다는 것>을 쓴 후 7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도서관 대여까지 합치면 대한민국 40대 인구 100만명이 읽었다는 내 생애 최고의 베스트 셀러... 
이제 나는 사십대 중반을 넘어 지천명의 나이로 달려가고 있고, 대한민국은 언제나 그랬듯, 변함없는 격랑의 소용돌이에 놓여있다. 지난 7년 사이, 정치적으로는 참여정부에서 실용정부로 바뀌었고, 두 전직 대통령이 안타까이 유명을 달리했으며, 부동산과 펀드 열풍이 불길처럼 번지더니, 세계경제위기 이후로는 주춤하다가 다시 상승세를 보이는 듯 하다가 다시금 한없는 추락의 길로 접어드는 듯하다. 10년 전이나 7년 전이나 지금이나, 기업의 구조조정은 늘 현재 진행형이다. 그래서 혼동스럽고, 두렵고, 불안하다고들 한다.

세상이 혼동스러운 만큼 사십대 잠자리는 뒤숭숭하다. 지난 7년 사이, 적잖게 나이도 들고, 시련도 겪어봤을 대한민국 사십대들. 격랑 속에서 억척스럽게 살아가고 있지만, 살면 살수록 나아지는 건 별로 없다는 사십대들…. 자녀 양육비, 사교육비, 집값, 구조조정, 해고, 비정규직 문제 등등… 무엇이 문제일까?

그간, 주변의 사십대들처럼 나도 많은 부침을 겪었다. 유력 포털사 임원에서 이동통신사 팀장으로 이직했다가 본의 아니게 회사를 떠나 내 일을 시작해야만 했다. 아마도 이런 개인적 경험은 우리네 사십대가 처해있는 고통스러운 현실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회사형 인간에서 내 일을 시작했다는 걸 두고, 사람들은 인생 2막의 이정표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나의 마흔살이를 다시 보여 달라고들 했다. 내가 사는 삶의 궤적이 이 시대 사십대들의 공통분모라며….

<마흔…> 이후 대한민국 사회는 어떤 빛과 그림자를 투영해 내고 있는가. 갈수록 탁탁하고 돌밭뿐인 사십대를 위한 희망의 등불은 무엇인가? 목숨을 걸고라도 지켜야 할 마흔 삶살이는 무엇인가?

지난 7년간 나의 경험을 통해 생활 속에서 돌아보고, 느낀 것들, 삶은 이래야 되겠구나, 하는 것들을 기록했고, 한데 묶기도 했다. 누구나 겪고 생각해 봤음직한 이야기를 독백하듯 잔잔하게 풀어내며 사람들과 공감하고 싶다. 나의 바램, 지향과 궤를 같이 하는 세상의 벗들의 삶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스냅 사진을 찍고 싶었다. 내 소명을 다하고 싶다. 해서 이제 본격적으로 <마흔으로 산다는 것2>를 쓰고자 한다. 

살며 느끼는 것이지만, 평범한 하루라도 삶에 불꽃처럼 터지는 희망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할 때면 기운을 얻는다. 마흔엔 속으로 우는 것도 때로는 힘이 된다는 것을 안다. 때로 하늘을 올려다보면, 울컥함이 목젖을 뒤흔들며 눈물이 핑 돌지만, 사십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그대는 복되다. 동년배들과 호흡하며 이 순간을 사는 것만으로도 선택받았기에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해서 우리는 다시 한번 더 행복하다.

앞으로 써내려갈 
상념스런 글편을 통해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될 것 같다. 짧으나 긴 이 이야기들은 일상의 부유물이 차분히 가라앉는 침잠과 동시에 정신을 맑게 부상시킬 것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작은 것들이 흔들어대는 힘이란, 아이들의 웃음처럼 얼마나 놀라운가!

우리는 자신에 주목하기 위해 타인이 남긴 긴 그림자를 유심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내가 남긴 그림자를 누군가가 밟듯, 남들이 달린 그 길을 내가 지금 걸어가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엄청난 동질감이 생긴다.

<마흔>의 글편을 주워 모으며 이 시대 동년배들과 함께 걷는 오솔길에는 오늘따라 유난히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다. 가끔, 홀로 묻는다. 그대도 외롭고 서러운 마흔인가? 뻔한 TV 드라마를 보면서도 때로는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그런 마흔인가? 굳게 마음 먹고, 세상을 행해 당당하게 소리쳐야 하는 마흔인가?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부모로서 최소한의 예의와 책임을 다하고 있는 마흔인가?

묻고 또 물으며 내 인생의 뚜렷한 길을 가고자 한다. 지천명이 낼 모레다. 종이 위에 떨어진 물방울처럼 누구에게나  짧은 생애일지라도 우리 삶을 돌아 보며 세상에 조그마한 보탬이 되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글을 쓰고, 인생을 살고, 세상에 환한 전짓불 하나 큼지막히 밝혀두고 싶다. 나는 당당하고, 또렷하며,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다.
ⓒ전경일, <마흔으로 산다는 것 2>


 


한여름, 회사 워크숍차 찾아간 남한산성 숲속엔 매미들이 극성스럽게 울어대고 있었다. 여름 한 철을 살기 위해 삼 년간 굼뱅이 시절을 겪어야 한다는 그 흔한 얘기는 집어 치우고, 그런 굼벵이나 매미나 다들 아득바득 살아간다고 생각하니, 사람 사는 것도 그와 전혀 다를 것 같지 않아 헛헛하기만 했다. 특히 한 가정의 가장으로, 이 사회의 중심으로 살아온 40대라면 누구나 가끔은 그 허전함에 소줏잔도 기울일거라고 생각하니 40대 직딩 모두에게 파이팅을 외치고 싶었다.

생각해 보면 사회에 나와 근 이십여년을 뒹군 이 시간이 긴 것 같아도, 지내놓고나면 정말 짧은 시간이었다. 이런 인생의 짦음은 구태어 역사책의 연대표에 비교해 보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겠지만, 구태어 연표에 빚대어 본다면 대뜸 이같은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내 인생의 시간은 점 하나도 되지 않는구나!’

긴 인생은 하나도 없다

그렇다. 우리의 시간은 유구한 인류의 역사에 비추어보면 점 하나도 되지 않는다. 그런 시간을 살다 가는 것이다. 마치 짧은 시간 동안 나타났다 사라지는 반딧불과 같다. 그런데도 순간을 마치 영원처럼 착각하고 산다. 갑자기 타임 머신을 타고 사라졌다가 백년 후에 지금 있는 장소에 나타난다면, 지금처럼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 사람들의 웃음 소리, 물건 값을 외치는 장사꾼의 고함 등등 그 모든 것은 한순간에 사라지고 없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정말 짧지 않은가? 그런데도 매순간 그걸 잊고 산다. 사는데 무지한건지, 알아봐도 소용없는거니까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건지조차 모르는 것 같다.

그렇다면 마흔이 넘은 나이엔 이 짧은 생에 대해 당신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삶이 허망해 보이기 때문에 염세주의에라도 빠지라는 건가? 아니다. 그건 삶을 방기하는 것이지 책임있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인간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당장 퇴장을 하더라도 인생이란 놀이터가 엉망이 되지 않도록 만들 책임은 당신에게 있다. 모두가 하루살이의 삶을 사는 거지만, 나는 더욱 내 삶을 전심투구로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런 성취를 다음 세대에 넘겨주어야 한다. 삶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도 단 한번뿐이므로 여름날 저녁 무렵 땅 속 깊은 곳에서 길러 올린 우물물 처럼 그런 쾌적함을 갖고 살아야 한다.

행복은 챙기기 나름
마흔이란 나이는 지나온 시간 때문이라도 남아있는 시간에 더 민감해져야 한다. 대충 흘려보낼 시간이란 없다. 더구나 주위에서 누군가 쿵, 쓰러졌다는 소식이라도 들리면 더욱 의미있는 생의 시간을 보내고자 애써야 한다. 이것은 일 만큼이나 소중하다. 매일 매일 잊지말고 행복을 찾아라. 자기의 행복을 챙겨라. 오늘 행복하지 못하면, 앞으로 영영 행복해 질 수 없을지 모른다. 참을성 있게 목적의식적으로 삶에 대해 강인함과 열정을 보여라. 마흔에는 다시 다가오지 않을 젊음을 생각하며 젊음이 맥없이 손에서 미끌어지지 않도록 꽉 움켜 쥐어야 한다. 힘차게 일하고 노력하는 건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 위한 필요 요소다.

아직 이렇게 푸르른 젊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에 감사드려라. 아직 할 일이 많은 것에 감사하라. 그런 사람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해 준 그 모든 것에 고마움을 표시하라. 여전히 뜨겁게 달아 오를 수 있는 열정의 불씨가 남아 있는 것에 감사하라.

하루살이지만, 생각과 행동에 따라서는 역사에 버금가는 긴 시간을 누리며 살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축복이다. 마흔은 바로 하루를 천년처럼 살아갈 수 있는 나이이다.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노력한다면 당신은 행복의 절정에 이르게 될 것이다. 적어도 세상에서 다 누릴 수 있는 만큼의 행복은 자신이 다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하루 하루를 살았으므로 당신은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다. 마흔이라는 숫자는 바로 그런 하루의 합인 것이다. 오늘 가장 멋진 하루를 살아라. 하루 하루는 당신의 인생을 열어주는 내일이라는 것을 알고 멋진 하루살이가 되어라.
ⓒ전경일, <마흔으로 산다는 것>




당신의 인생은 괜찮은 작품이었다


어느 성공한 사내가 죽어서 신 앞으로 갔다. 사내는 살아 있을 때 막대한 금은보화를 모았고, 수많은 시종을 거느렸으며, 마을 사람들이 자신의 땅을 밟고 가지 않으면 어디든 갈 수 없을 만큼 커다란 땅을 소유했었다.

사내는 신 앞에 당당했다. 그는 평생 힘들여 재산을 모았고, 땀 흘려 살아 온 자기 삶이 부끄럽지 않았다.

“어떻습니까? 제 삶 말입니다.”

그렇게 묻는 사내에게 신이 대답했다.

“나는 네가 열심히 살아왔다는 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너의 인생은 졸작이구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처럼 살아 온 사람도 드물텐데.”

그러자 신은 다음과 같이 대꾸해 주었다.

“네겐 한가지가 없어. 세상을 위해 흘린 눈물이 빠진 거지. 삶의 완성은 땀만이 아니라, 한 방울의 눈물이 들어갈 때 완성되는거니까.”


마흔 넘어 살펴 보아야 할 것

마흔이 넘으면 자신을 향해 살펴보아야 할 것이 있다. 그건 앞으로 내 삶이 얼마나 아름다워질 수 있나 하는 것이다. 세상을 살며 당신은 해바라기처럼 성공을 향해 힘껏 달려왔지만, 지금 정작 필요한 건 자신을 향해 얼굴을 톨리는 해바라기가 되는 것이다. 반추는 마흔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너무 늦지도, 너무 이르지도 않은 시기에 말이다.


당신은 지금 나머지 후반생을 한편의 걸작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다른 목적이 없어도 지역 사회를 위해 공헌할 수 있어야 하며, 자신이 이룬 부를 소외층에게 기부할 줄도 알아야 하고, 의로운 생각을 행동으로도 보여줄 수도 있어야 한다. 삶을 대작으로 만드는 것은 그 어떤 성취로도 얻어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에 앞서 위의 일화처럼 세상을 향해 던질 줄 아는 눈물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니까.


올바른 사회적 경험을 살려라

중년은 훌륭한 경험의 극치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삶을 졸작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일까? 특히 우리 사회는 원하든 원치 않든 혼란과 혼동의 근현대사를 겪으며 다양한 형태의 술수가 삶의 진면목인 양 왜곡되어 왔다.


그것은 일제 식민 잔재와 산업화 시기 군부독재 정권과 야합하며 부를 거머쥔 층들의 기회주의적 행태에서 생겨난 것이다. 이제 그런 잘못된 역사는 털어내야 한다.
갑작스런 혁명보다도 강한 것은 성숙한 자신으로 많은 사람들을 거듭나게 하는 것이다.


40대가 지향해야할 삶의 자세는 응당 개선과 맞닿아 있다. 비툴어진 것들에 대한 개선은 남은 삶의 임무로 부과되어 있다. 당신은 가장 영향력있는 계층이며, 연령상 지도층이며, 이 사회와 경제, 나아가 나라의 흥망성쇠를 결정짓는 핵심적인 위치에 있는 계층이다. 더구나 유교적 가치관이 다원적 가치로 대체되면서 새로운 사상적 교류와 접목되어야 하는 세대이다. 그만큼 사회적 책무가 크다.


개인적 차원의 문제

개인적으로는 어떨까? 과거 세대들과 달리 개인을 중심으로 내세우는 새대들이나, 전 세대에 대한 부담에서 결코 자유스럽지도 못하다. 양쪽의 조화를 꾀하고, 두 마리의 토기를 모두 잡아야 하는 시대적 요청에 놓여 있다. 신-구의 경험은 그래서 더욱 40대를 빛나게 한다.


모두가 같은 삶을 살지만, 누구도 같은 시대를 살지는 않는다.
이, 삽십년전 40대와 달리 지금 시대의 40대가 맞이할 노년시기는 분명 이전 세대들과 확연히 다를 것이다.


자, 이제부터는 무엇을 해야 할까? 개인적으로도 인생을 가장 멋지게 사는 방법에 골몰하길 권한다. 이것에 가장 큰 의미를 부여하고, 상생의 철학을 내재화해 사회 전반에 긍정적 에너지를 불어 넣는데 일조하자.

우리가 준비할 수 있는 가장 큰 목적은 우리 삶이다. 예전에 몰랐던 걸 지금에야 알게 되었다고 투덜거리지말고, 노년이 되었을 때 마흔 무렵에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지금 미리 알게 되어 좋다고 말하라. 당신은 앞으로도 분명 더 괜찮은 인생의 시기를 맞이할 수 있다. 당신이 정말 이 시기에 해야할 것을 하고 오십대로 넘어 간다면 말이다.  


|핵심 포인트|

○ 모든 인생은 나름대로 걸작 요소가 있지만, 그걸 찾아내 완성시킬 의무는 각자에게 달려있다.

ⓒ전경일, <마흔으로 산다는 것>


시간과 돈, 다 벌어라


“현명한 사람은 세상을 향해 시간을 보낸 뒤에는 자기 자신의 일과 요양을 위해 시간을 할당한다. 직업을 가지고 있을 때부터 이미 시(詩)와 그림 또는 자연에 친숙한 사람이라면 더욱 손쉬운 일이다... 나이 먹는 기술이란 뒤를 잇는 세대의 눈에 장애가 아니라, 도움을 주는 존재로 비치게 하는 기술, 경쟁상대가 아니라, 상담 상대라고 생각하게 하는 기술이다.”1)


나이가 들며 이같이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기만의 시간을 갖을 수 있고, 문화예술 활동을 할 수 있으며, 다음 세대을 향해 그윽한 삶의 향취가 묻어나는 말을 던질 수 있다면.. 더구나 젊은 세대와 아웅다웅하는 후반생이 아닌 살아갈수록 깊이를 더하는 삶을 살 수만 있다면...


마흔은 완성을 향해 나가는 나이

40대는 자기를 본격적으로 완성시켜 나가는 나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인생 숙성의 기점이 되는 나이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겐 고루하게 늙어가는 시점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중요한 시기다보니 당연히 삶을 위한 기술은 어느 때보다도 시급히 요구된다. 지금은 이,삼십대때처럼 그냥 휘몰아칠 수 있기만한 나이가 아니다. 삶의 진국이 전생애에 계속 배어 나오게 해야 한다. 걸판진 한 판 배지기 승이든, 힘겹게 달라붙어 싸우는 인생의 호미걸이든, 나이 먹는 것에 대해 든든하게 자기 기술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런 것이 궁극적으로 인생을 풍요롭게 만드는 요소다. 어디 그뿐일까?

이와 더불어 경제적 안정성 확보는 나이에 맞는 활동을 도와준다. 경제력은 한 사람을 결정하는 중요 요소중 하나다. 이것 없으면 사람 구실도 못하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세상살이엔 빈손으로 인사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않은가? 그러므로 40대에는 더욱 경제적 인간이 될 수 밖에 없다. 시간에 있어서도, 돈에 있어서도 알뜰하게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시간을 버는 구조를 만들자

40대에 추구할 일은 그것이 무엇이든 인생의 나머지 시간을 꾸준히 투자할 수 있는 게 좋다. 돈도 마찬가지다. 현재의 수입이 미래의 시간 수익으로 이어지는 것에 주안점을 두자. 나이가 들면서부터는 (마음을 사는 것은 별도로 하고) 돈으로 다른 사람의 시간과 노력을 살 수 있어야 한다. 이,삼십대에는 많이 벌면 무조건 좋은 나이였지만, 40대에는 많이 버는 것 만큼 지속적으로 시간과 노력을 향유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주변 사람을 잃으며 하는 사업은 절대 금물이라는 것. 특히 상대에게 거부감이나 부담감을 안겨주는 일 따윈 오히려 마이너스를 가져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닥칠 직장생활의 단절성을 생각해 대안과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새로운 경제적 이중 파이프 라인을 가져야 할 나이대라는 점에서 40대는 남다르다. 학교 다닐 때의 전공-부전공 개념이나, 군복무 시절 주특기-부특기 등의 개념은 40대를 살아가는 대원칙으로 보면된다. 40대의 재테크는 돈을 벌고 그것을 인생의 마지막까지 끌고나가는 행위와 맞닿아 있다. 노년에 필요한 돈과 시간의 상호 선순환을 위해서 말이다.


누가 그렇게 사는가?

조창수 부장은 은퇴후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컨설팅업을 시작했다. 그는 평소 직장 생활을 통해 자기가 다니던 회사 뿐만 아니라, 관련 경쟁사에도 ‘실력있는’ 사람이라는 평을 들었었다. 지금 그가 하는 사업은 건설 기공 컨설팅. 그는 몇몇 업체에 고문, 위원, 자문역 등으로 활동하며 오히려 직장 다닐 때보다 더 많은 수입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배경에는 예전보다 훨씬 더 피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는 게 그의 얘기.

“금방 눈치들 채지요. 준비해서 세미나 가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요. 안의 사람들보다 더 전문적이지 않으면 먹고 사는 건 고사하고 오히려 웃음거리가 됩니다. 실력으로 압도해야 하는 거죠. 내 사업이라 생각하고 빈틈없이 봐 주는 것도 필요합니다. 하나 하나가 원가나 품질에 영향을 미치니까요.”

자기 전문 영역의 연장선에서 이렇게 협력 포인트를 찾으며 수익으로 연결시키는 경우는 바람직한 예다.

“전문가란 그 일을 함으로써 밥 먹는 것 이상을 의미합니다. 보이든 보이지 않든 그 산업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거죠. 긍정적 영향을 갖도록 하는 것, 거기서 장기적인 성공 요인이 보입니다. 우리 나이땐 밀어 부치는 식이 아니라, 꾸준히 쌓아가는 것으로 깊이를 더하고, 연관관계를 통해 맥을 짚어주는 게 필요하죠. 바로 그럽니다. 상대가 도움을 요청할 수 있게 하는 것 말이죠.”

조부장의 지적은 분명 전문 영역을 살리며 살아가는 나이 먹는 기술의 주요 방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두개의 경력키를 만들라

조부장과 같은 경우가 아니더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중심으로 40대 이후의 경력 보조키를 개발하는 것은 이런 경제적요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나이는 함부로 통과하는 것이 아니다. 거기엔 응당 그 나이에 해당되는 별도의 요구가 있다. 아직 어렷을 적엔 부모님 손에 안겨 극장이고 어디고 무료로 통과할 수 있었고, 초등학교 시절엔 버스 요금도 성인보다 낮게 냈지만, 점점 나이들면서부터는 그렇게 되지 않지 않던가? 그건 사회적 지위에 따른 차별화된 비용이다.

사실 그런게 노후를 준비하는 풍요로운 배경이 된다는 걸 아는 사람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만일 이같이 두개의 경력키를 마련할 필요성을 미리부터 알고 행동했다면, 그런 사람만큼 큰 행운을 가진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핵심 포인트|

○ 사업의 목표는 목표 그 자체보다는 목표를 이루어 낼 수 있는 방식을 만들어 나가는 데서 얻어진다는 것을 알라.

ⓒ전경일, <마흔으로 산다는 것>


나이듦에는 결단이 있어야 한다


현명하게 나이들어가는 가장 좋은 방법이 있을까? 있다면 무엇일까? 그건 바로 자신을 그냥 맥없이 나이들게 방치하지 않는 것이다. 아무런 결심도 없이 세월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늙음에 대해 분명한 자기 입장, 견해, 결단을 세우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시간은 마침내 무자비하게 칼날을 휘둘러 당신의 머리칼을 백발로 만들고, 허리를 구부러뜨려 놓을 것이다.

누구거나 마흔이 되면 나이듦에 분명한 자기 철학이 있어야 한다. 그냥 나이들어가서는 안된다. 어떻게 살아 온 인생이었나? 그런 질문과 함께하는 자기 반성과 삶에 대한 자부심이 넘쳐 흘러야 한다.


시드는 것과 원숙해 지는 것의 차이를 알라

만일 당신이 그냥 늙어간다면, 그건 시드는 것이지, 삶의 끝자락을 세련되게 마무리 짓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다. 삶에 대해 예리하고 정교하며 고수답게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남의 손에 내맡기는 꼴이다. 40대는 바로 결단의 분수령에 있다. 청년과 장년을 가르는 나이이며, 동시에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인생의 대변혁기를 겪어야 하는 나이다.

사회에 뛰어든지 이십여년, 돌이켜보면 어떻게 살아온 인생이었나?하는 자기 투영이 따라야 한다. 누구건 특별한 시간을 보낸건 틀림없다. 그건 누구의 인생이든 특별한 이유와 같다. 이제 특별한 삶의 절반이 다시 꿈결처럼 시작되는 것이다. 매우 터푸(tough)하고, 매우 도전적이며, 매우 강인한 인생의 경기, 제2 라운드가 펼쳐지는 것이다.

마흔은 다시 시작하는 나이다. 누구건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을 얘기하고 싶겠지만, 인생의 고수들은 위로도 얼마든지 있다. 더 많이 듣고 배워야 할 나이다. 지금 이 나이는 새로운 전환기라는 걸 알고 뼛속으로도 삶의 폭과 깊이가 가득 채워져야 한다. 몸은 둥글어지고, 마음은 이,삽십대보다 조금은 더 넓어졌으며, 지혜는 쌓여가고 있다. 사회적 지위의 상승은 전 세대가 그랬듯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느껴진다.


얻기만 인생, 이제는 베풀자

가만히 보면 당신은 40대까지 사회로부터 참 많은 것을 얻기도 했다. 만일 당신이 무관심내지 버림을 받아왔다고 생각한다면, 지금 당장 그런 생각을 지워 버리길 바란다. 사회는 당신을 적극 참여시켜 왔다. 사회로부터 배려받은게 별로 없다고? 당신은 직장 내외에서도 자기 경험을 이제껏 얘기해 오지 않았었는가? 그런게 바로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얻은 것이다.

이 시간까지 당신은 첫직장에 출근하던 날의 설레임과, 신랑신부가 되던 날의 애뜻함과, 아빠나 엄마가 되던 날의 경이로움과 승진과 퇴직이라는 온갖 형태의 경험을 겪어오지 않았었는가?  

그처럼 가랑비처럼 언제 옷이 젖었는지 모르는 가운데 세파에 젖어 온 것이다. 그런 인생이 마흔이란 나이엔 고스란히 묻어 있다. 1라운드의 끝으로 전반생을, 2라운드를 처음으로 후반생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니 아쉬움도 새로운 도전에의 의지도 함께 하는 것이다. 


제2라운드의 법칙을 준수하자

그렇다면 인생 제2라운드를 위해 당신이 해야할 일이란 무엇일까? 바로 앞으로 맞이하는 인생을 위해 결단의 행동을 다부지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까지 당신이 가랑비에 서서히 젖어 온 이유이다. 일본 속담처럼 이제 세상에 흠뻑 젖은 당신은 세상을 향해 당당히 걸어 나가야 한다. ‘한번 비에 젖은 자는 비를 두려워 하지 않는다.’ 얼마나 강한 자기 암시인가?

삶의 경험을 통해 얻어진 강함을 부드러운 실천으로 바꾸어 나가는 것이 2라운드에서 해야 할 일이다. 30대였던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생각조차 안해봤거나, 결코 내 일 같이 느껴지지 않았던 늙어간다는 것에 대해서도 이같은 자기 결단을 세워야 한다. 특별히 당신이 지금 그래야 하는 것은 삶의 엄연한 사실을 사실 그 자체로 받아 들이고, 헤쳐나가야 한다. 그동안 반평생의 적당한 지혜와 경험은 당신의 후반생을 빛나게 해 줄 것이다.

이젠 인생 초보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난이도가 쉬운 문제만 푸는 나이도 아니다. 물론 문제조차 주어지지 않는 노년도 아니다. 가장 왕성하게 인생에 대한 질문과 해답을 찾아 뛰어야 하는 나이에 주어진 질문이다.

만일 당신이 이런 문제에서 그냥 멀어지려 한다면 단신은 조만간 지금 보다 훨씬 더 늙은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누구도 당신을 의지하고 따르지 않는 바로 그런 존재로써 말이다.


   |핵심 포인트|

○ 늙어가는 시점에 접어드는 40대의 원칙은 삶을 더욱 생기있게 가꾸는 것이다. 인생 제2라운드의 법칙을 알려주자면 이렇다. 강한 경험을 부드러운 실천으로 바꾸라.
ⓒ전경일, <마흔으로 산다는 것>


완전한 성공 파이는 단 한 조각이다


잘 나가던 회사를 그만 두고 이태리 여행을 떠났던 친구가 불쑥 1년만에 찾아와 내게 명함을 건넷다. 명함엔 <가장 맛있는 파이집>이라는 다소 소박하고, 심지어 마케팅 차원에서 봤을 때 실패하기 딱 십상인 가게 상호가 적혀 있었다. 나는 친구의 그리 설득력 있어 보이지 않은 얘기를 들으며 도대체 이 친구가 사업이 뭔 줄 알고 한다는 것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데 이런 저런 이유로 친구 가게를 들르지 못하다가 1년 정도 지나 그 가게를 찾았을 때 나는 그야말로 경악을 금치 못하고 말았다. 


그 가게엔 고정 고객이 1천명에, 지나가다 들르는 드럽-인(drop-in) 고객이 일일 5백 여 명이나 되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 날 수 있었는지 나는 그 친구에게 물어 보았다. 그러자 그는 간단하게 성공의 비결을 설명해 주었다.


모든 파이는 아직 성공적이기 않다

바로 손님에게 가는 모든 파이가 ‘실패작’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 자신이 시칠리에서 맛봤던 바로 그 맛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는 언제나 사업 목표 그 자체보다는 ‘맛’을 생각하며 만들다보니 자연히 손님이 늘게 된 거라고 설명했다.


그의 얘기에 의하면,
한 판의 파이를 만들어도 불의 강도, 밀가루 반죽 등을 고려해 볼 때, 성공 파이는 단 한 조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나는 그의 얘기를 들으며 인생이란 시간에서 우리가 겪은 수많은 일, 감정, 경험들도 그 중 오직 하나만이 한 조각의 성공 파이일거라고 생각했다. 자신을 위해 불을 지피고, 불에 익혀가며 온전히 한 조각의 파이로 변모시키기 위해서는 단 하나라도 제대로 된 것을 건져야 한다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때 성공은 계량적 측면 뿐만 아니라, 인생을 빛나게 하는 질적인 측면도 아울러 포함한다.


인생은 파이를 굽는 것과 같다?

이와 관련되어 안철효 과장은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요소가 수많은 실패를 겪은 다음에 얻어진 결과임을 잘 알고 있다. 회사가 추진하는 여러 사업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한 그가 자기 사업을 하며 성공할 수 있게 된 배경에는 회사의 실패를 자기 성공을 위한 한조각 성공 파이로 인식하고 이를 활용했기 때문. 많은 경우 대기업에서 검토하다만 아이디어가 그렇듯, 적당한 크기의 시장이 아니어서 포기한 것을 중소기업형에 맞게 최적화시켜 추진하면 성공 파이 한 조각을 제대로 손에 쥘 수 있는 거와 다를 바 없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알고보면 아직 쿠킹 되지 않은 아이디어들은 성공의 파이가 될지 실패의 파이가 될지 누구도 모르는 것이죠. 다만 적당한 크기로 구울 때 내 몫의 파이는 성공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규모에 맞는 성공 방식을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안과장은 지금 새로운 유통 분야의 여엿한 성공 기업을 경영하며 새로운 꿈을 일구고 있다.


성공을 기다리는 파이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모든 파이는 아직 덜 성숙되었거나, 성숙을 위해 참다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까닭에 성공을 위한 당신의 삶은 여전히 과정상에 있을 뿐인 셈이다. 그리고 때로는 기존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 단 한가지 절대 목표만을 추구하는 노력 속에서 얻어지는 것인지 모른다.


모든 실패가 성급한 결과로 치닫는 것은 단 한 조각의 핵심적인 가치를 아직 발견하지 못한 채 외형에만 집착했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일 수 있다. 그것을 안다면, 적어도 지금 당신은 자신이 굽고 있는 인생 파이가 어떠해야 할지 이미 절반 이상은 알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핵심 포인트|

○ 계량적 측면에서의 성공 뿐만 아니라, 질적인 측면에서도 성공을 이루기 위해 두가지 요소를 결합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업이든, 인생이든 이같은 원칙은 언제나 같다.

ⓒ전경일, <마흔으로 산다는 것>


내 인생엔 도돌이 표가 있다


가끔 성공을 위한 방법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게 된다. 그때마다 내가 늘 하는 말이 있다. 성공은 어떤 식으로든 인생의 도돌이 표를 찍는 것이라고. 특히 자신에게 긍정적이며 유리한 요소가 있다면 이를 계속해서 맞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어떤 도돌이 표냐고? 만일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렷을 적 국민학교 시절 음악 시간으로 잠깐 돌아가 보자.  


긍정적 성공 요인을 반복하라

국민학교 시절 음악 시간을 떠올려보면, 나는 지금도 잊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내가 그때 배운 노래 중 마흔이 된 지금도 흥얼거리는 것 대부분이 후렴구라는 것이다. 후렴구, 거기에 과연 무슨 마력이 있길레 유독 그 부분만이 몇 십년 지나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것일까?


그건 다름 아닌, ‘반복’과 관련되어 있다. 듣기 좋고 부르기 쉬운 구절은 악보상에 도돌이 표(음악에서는 [:] 이렇게 표시한다.)로 표시되어 반복 기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화음을 반복하게 함으로써 잊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그건 악보에만 국한된 것일까? 나는 인생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마흔이 넘은 우리 인생엔 알수 없는 도돌이 표들이 계속 나타난다. 심지어 그것을 일상에서도 수시로 만나게 된다. 하루 하루 일상의 반복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좌절과 성공, 실패와 승리의 반복 같은 것들이 바로 그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런 반복적 성향은 개인적 습관과 관련이 깊다. 좋은 습관이라면 긍정적 결과를 가져오는 것일 터이고, 나쁜 습관이라면 부정적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어느 도돌이 표를 둘 것인가는 자기에 달려있다

실패와 성공도 마찬가지다.

성공하는 40대의 대부분은 작은 성공의 기회나 방식을 성공의 선순환 방식으로 채택한다. 그리고 그것이 계속해서 반복적 요인이 되도록 노력을 기울인다. 좋은 습관들, 성공을 위한 요인 강화, 두텁고 믿음직스러운 인간 관계과 유대의 강화 등은 바로 그런 성공 요인이 인생이란 악보 위에서 계속 반복되겠금 하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한번의 성공 이후엔 더욱 강화된 성공 요인들이 바로 그 성공의 분기점에서 파워-업 되어 돌아 온다. 그러다보니, 다시 성공하기 위한 준비나 여건 마련에 유리해 진다.


흔히들 성공하는 사람이나 기업이 갖고 있는 성공 시스템은 바로 이런 성공 도돌이표를 지나오며 더욱더 강화된 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성공의 도돌이 표를 돌게 하라

이와 관련되어 최철환 사장은 작은 기업, 다시 말해 가게에서 기업으로 자신의 사업을 환골탈퇴시킨 대표적인 사례에 해당된다. 그는 작은 성공, 작은 노력, 작은 돈(흔히 ‘푼돈’이라 부르는), 작은 관계나 자신의 작은 장점을 용케 성공의 도돌이 표를 돌게 함으로써 계속 자기 위치를 높여간 경우에 해당된다.
 

처음으로 시작한 생필품 할인마트 납품점에서 백화점 입점 업체로, 나중엔 내로라하는 전국 체인 유통업에 이르기까지 그의 성공 방식은 도돌이 표를 돌때마다 실패 요인을 바로 그지점에 떨어 뜨리고 다시 성공 요인만 강화시켜 온 경우. 창업 초부터 그와 함께 한 임직원들도 비록 학력은 낮지만 그런 과정을 거쳐, 사회적 지능 지수를 남보란 듯이 높인 경우에 해당된다. 가게 점원이었던 그들이 지금까지 최사장을 곁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회사가 성공 지점을 통과할 때마다 부단한 자기 노력을 통해 회사에 걸맞는 인간형(직원)으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선지 그 회사 한 임원은 70년대 상고를 나온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컴퓨터 재고 관리 프로그램을 직접 구현하기조차 했다. 


잘못된 요소를 제거하려는 노력에 모든 것을 걸어라

반면, 실패하는 사람들은 어떠한가? 실패한 사람이 계속 실패하는 이유는 실패를 가져온 요인에 대한 분석을 통해 실패 원인 자체를 제거하려는 노력이 뒤따르지 않았기 때문.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일을 벌려도 실패의 도돌이 표를 멈추게 하지 못해 다시 실패할 확률이 높아 지는 식이다.


잘못된 습관, 독선과 아집 같은 성격상의 결함, 기회 요인에 대한 분석력 및 실행력 부족, 실질적으로 성공을 이루어 내기 위한 방식의 결여 등등. 바로 이런 점들이 문제였던 것이다. 어느 한순간 과거의 잘못된 방식과 결별하고 새로운 성공의 도돌이 표를 돌아 나오려는 뼈를 깎는 노력이 없는 한, 그들의 성공은 요원해 보인다.


천태준 사장이 바로 이런 예에 해당된다. 그는 오래전 끓어 버렸어야 할 잘못된 믿음 때문에 돈이 조금만 모였다 하면 투기에 나선다. 그는 기업 경영에서 투자 대신 투기를 업으로 삼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한탕의 대박주의 때문에 언제나 자신이 거두어 들인 성과가 작아 보여 만족하지 못한다. 게다시 언젠가는 도장 하청업체로써 관계를 끓어 버리겠다는 생각에 본업에서 벌어들인 상당 수익을 비 전문 분야에 집어 넣어 낭패를 보기 십상이었다. 물론 그가 잘못된 믿음의 도돌이 표를 돌아 나논 댓가는 실로 컸다. 최근 같은 등급의 하청업체 중 한 곳이 그동안 모은 자금력으로 신형 장비를 들여 놓음으로써 천 사장은 하청업체의 제2 하청 업체가 돼야 하는 아픔을 맛보아야 했다. “어이, 김사장.” 하고 부르던 동종업종 사장에게 이제는 깍듯이 “김사장님.”이라고 불러야 될 처지가 됐으니 말이다.


생활 속엔 다양한 종류의 도돌이 표가 있다

잘못된 도돌이 표를 도는 것은 비단 이것만이 아니다. 직장 생활에서도, 건전한 한 인간으로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도는 바로 그 지점은 쉽게 눈에 띄이는 것은 아니지만, 매일 매일 이정표가 된다.    
    

인생에서 성공하는 것은 어떤 경우든 자신이 목표로 한 성공을 위한 확실한 도돌이 표를 돌고 그것을 강화시켜 나가는 것임에 틀림없다. 만일 잘못된 것이 자기의 의지나 희망 또는 바람을 대신해서 계속 돌기만 한다면, 당신은 성공에 이르지 못하고 계속해서 좌절이란 무한 루프만을 돌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그것을 끓어 버리고, 성공의 도돌이 표를 돌기 시작한다면, 당신의 40대는 반드시 새로운 이정표를 보여줄 것임에 틀림없다. 그것을 끊어 버리든 그렇지 않든 그것은 당신에게 달려 있다.
마흔은 어떤 경우든 결단을 필요로 하는 나이다.


|핵심 포인트|

○ 긍정적 성공 요인을 반복하는 것은 성공을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시키기 위해서이다. 성공의 도돌이 표를 어떻게 도느냐에 따라 40대의 성공과 실패는 결정된다.

ⓒ전경일, <마흔으로 산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