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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잘못된 거다. 아무리 세상을 긍정하려 해도 강남집값만 보면, 세상이 잘못 돌아가도 한참을 잘못 돌아간다는 생각이 든다. 강남 집값이며, 애들 교육비며, 온 나라가 강남 스트레스, 서울대 스트레스에 쌓여 살아가는 꼴이다. 누군가는 어정쩡한 정부 정책 때문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있는 놈들이 죄다 강남에 모여사니 모든 정책이 강남 사람들 중심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냐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사정은 나아지는 것 없이 서울은 미친듯이 팽창되고 있다. 그 속에 맞벌이들이 어엿한 계층 내지 부류로 살고 있다.

이런 대도(大都) 서울에 살다보니, 이젠 경기 일원으로만 이사 가도 밀려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사실상, 서울 인근에 산다는 것이 해법이 되지도 못한다. 오히려 재산세는 강남보다 적지도 않다. 게다가 공시지가는 내 의지와 무관하게 마구 올라간다. 팔 것도 아니고 살 집이어도 마찬가지. 학원비에, 치솟는 물가에 정말 사는 게 죽을 맛이다. 맞벌이도 뾰족한 대안이 되지 못한다. 둘이 벌어 봐야, 세, 네 식구 먹고 살기에 바쁘다. 뭐, 자주 외식을 하거나 그러는 것도 아닌데, 돈을 모은다는 건 글쎄 총수입의 10%나 가능할까 싶다. 워낙 쓰임새가 많으니, 소득이 좀 늘었다고 해도 나아질게 별로 없다. 게다가 줄인다고 해도 온갖 공과금에 별의별 경비가 보통이 아니다. 재벌이 되지 않는 한, 서울에서 산다는 것은 두 가지 방식으로 사는 도리 말고는 없어 보인다. 화를 삭히며 살거나, 체념하고 살거나.

아무리 하루 종일 나가 뛰어도 벌어들이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 월말이나, 연말에 계산기를 두르려보면, 이건 영락없이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장사다. 헛장사만 하다 보니, 속앓이를 하게 된다.

점심 무렵, 가스 활명수나 소화제를 집어 삼켜도 쓴물이 올라온다. 나이 마흔에 아직도 내 집 하나 제대로 마련해 놓지 못했으니,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세상,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데 살아 보니 바보 같은 인생이었다. 옆 동네 사람은 나보다 못해 보여도 완전 딴판이다. 70년대에 시유지에 불법으로 집을 짓더니 그게 아파트 단지가 될 때에는 딱지를 받고 다시 재개발되더니 지금은 50평대 아파트를 갖게 된 사람도 있다. 우리 동네 주민 중에 그런 사람이 있다.

밖에 나아가서는 경제 역군이니, 산업의 기둥이니 하는 말을 들어도 집에 들어오면 동네 앞부터 초라한 월급쟁이 신세가 된다. 오히려 차량 정비업소를 하는 김 씨나, 횟집을 하는 양 씨처럼, 동네 앞 슈퍼에서 여름에 평상을 펴놓고 맥주 한잔하는 자영업자들이 부럽다. 그것도 알고 보면, 한 두가지 어려움이 있는 게 아니겠지만, 그래도 속은 덜 답답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보다 낫다. 누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소리 듣지 않아도 좋고, 정년도 없고. 정말 괜찮은 직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별히 회사 얘기를 누구에게 하는 경우가 없는 나는 얼마 전 그 ‘아저씨’들이랑 슈퍼 앞에 펼쳐진 파라솔에서 맥주 한잔을 같이 하게 되었다. 얘기를 듣다보니 나야말로 영락없이 ‘쫄뜨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들은 일 년에 그래도 몇 번씩은 여행도 가고, 바다낚시도 다니고, 여기 저기 조금씩 사 둔 땅도 있단다. 이사라는 직함을 가진 나는 어떤가? 회사 일에는 전문가인지 몰라도 밖의 일은 전혀 모르는 월급쟁이 아닌가?

“둘이 벌어도 요 모양이니 이 장사를 언제 흑자로 돌리지?”

가게부를 적는다고 컴퓨터 앞에 앉은 아내 물으니, 곧바로 대답이 온다.

“그 아저씨들처럼 서너평 짜리 상가라도 하나 없으면, 군소리 말고 다녀요!”

그날 밤, 나는 밤새도록 주판알을 두드리는 꿈을 꾸다가 새벽이 되어 잠에서 깨어났다. 아직 신문이 오지 않아 아파트 단지나 산책할까하고 나갔는데, 나는 그만 현관에서 아연질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평소 회사 위치가 비슷해 알게 된 옆 동에 사는 젊은 남자가 새벽 전단지를 돌리고 있는 것이었다.

‘무섭군!’

나는 속으로 이렇게 말하고는 얼른 집에 들어와 바로 옷을 껴입고는 회사로 출근했다. 벌서 그 시간에 지하철에는 출근길에 오른 사람들이 적잖이 눈에 띄었다.

‘이 사람들은 아침부터 어디로 가는 걸까?’

나는 지하철 사람들이 예의 전단지맨 같이 억척스럽게 사는 사람들일까 봐 한편으로는 덜컥 겁이 났다. 나는 맞벌이로는 한참 뒤떨어진 자신을 발견하고는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전경일, <맞벌이 부부로 산다는 것>

“돈 때문에 싸웠어, 돈 못 벌어 온다고 징징거리기에... 나 무능하지?”

친구는 술잔을 털어 넣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뭐, 무능? 니가 살기는 살아봤냐? 천당과 지옥까지 갔다 와 보기라도 하고 그렇게 말하느냐고? 그 정도도 안 겪어 보고 무슨 소리야?”

친구 푸념에 나는 대뜸 핀잔부터 주었다. 살기가 편해져서 그런지, 요즘 사람들은 쉽게 포기해 버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을 쉽게 내팽개쳐 버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는 일에 있어서도 결과가 금방 나오기만을 바라고, 돈이 쉽게 벌리기만을 바란다. 그러면서도 벌기 전에 쓸 곳부터 찾는다. 이런 게 요즘 세태다. 하지만 돈이 생각처럼 그렇게 쉽게 벌리는가? 많은 사람들이 같은 목적으로 같은 재화인 돈을 추구하는 이상, 경쟁은 줄지 않는다. 회사에서 직원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돈과 결부지어 부부간에 싸웠다는 얘기를 종종 듣게 된다. 분수에 맞지 않는 소비를 했건, 돈을 다스리는 게 아닌 돈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생활을 했건, 아무튼 돈 때문에 다투고 그것 때문에 이혼에까지 이른다.

“나 혼자 벌어서는 대책이 없는데 나한테만 의지하려 하니 화가 나서 한 마디 해주었지. 도대체 당신이 사회생활에 대해 아는 게 뭐냐? 남편이 어떻게 벌어오는지 알아? 그랬더니, 이를 악물며 행주는 드는데 눈물을 뚝 떨어뜨리더라구. 그리곤 한 달 이상 말 한마디 안했지.”

“좀 심했던 거 아냐?”

“글쎄 속으론 말을 좀 심하게 했나 싶었는데, 이미 주워 담을 수 없게 되더군. 시간이 가니까 더.”

친구는 그러더니 식당 한 켠에 켜져 있는 TV를 잠시 응시했다. TV에서는 청소년 보호 대책인가 뭔가 하는 내용의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애 때문에 안되겠더라구. 이러다가 이혼이라도 하게 되면 애는 어떻게 되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더군. 내 쪽에서 먼저 말을 걸었지. 대꾸조차 안 해. 그리고 며칠이 지났을 땐가 아무래도 은희 엄마 하는 꼴이 수상해 회사 가는 척 하며 집 앞에서 기다려봤지. 마을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가더라구.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는가 싶더니, 불쑥 어느 집에 들어가지 뭐야. 수위 아저씨한테 방근 전에 들어 간 아줌마가 누군지 아냐고 물었지. 그랬더니 1200호 파출부라는 거야.”

잠시 말을 멈춘 친구는 소주를 들이키더니 말을 마무리했다.

“그날 밤, 아내한테 내가 정말 미안했다고 무릎 꾾고 사과했어. 내가 무능해서 그렇다며...”

그런 친구의 표정엔 납덩이같은 그늘이 가득했다.

“당분간 자기가 해 볼 때까지 해보겠다고 한 게 벌써 일 년 째야. 지독한 여자야, 은희 엄마. 내가 한 말이 가슴에 못을 박았나 봐. 돈보다 더 무서운 비수는 말이라는 걸 깨달았지만, 어쩌겠어. 은희 엄만 그때 내 얘길 뼛속에다가 새겨 넣은 모양이야. 그 후로 한번도 아내에게 사회생활에 대해, 남편이 고생 하네 어쩌구 하는 얘기 전혀 하지 못했지. 잠자리엔 언감생심 얼씬거리지도 못하고.”

친구는 그러며 천정을 쳐다보았다. 그의 목울대가 유난히 울렁거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술자리가 끝나고 골목길을 나오며 나는 친구에게 농담 삼아 이런 말을 건네주었다.

“오늘 부텀, 아내를 보면 100m 앞에서부터 낮은 포복으로 기어. 대한민국 남편들, 할 말이 뭐 그리 많냐? 쥐뿔도 해 놓은 것도 없고, 세상 요 모양으로 만든 것도 자기들인 주제에. 가정도 힘들고, 세상도 힘들게 하는 일만 열심히 했지.”

친구와 헤어져서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오는데, 카세트에서 어디선가 자주 듣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는 건 이런 것일까?

님께서 가신 그 길은 영광의 길이었기에....

‘제길, 영광은 무슨 영광, 초라한 남자가 가는 골목길이지.“

내 그런 소리가 택시 기사에게 들였는지 그가 피식 웃으며 일장 연설을 하고 있었다. 그가 뭐라 하거나 나는 그동안에도 친구네 생각과 나와 집 사람이 함께 버는 수입과 애들에 대해 머릿속으론 바쁘게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전경일, <맞벌이 부부로 산다는 것>

부부가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십 수 년 전, 결혼식 당일엔 정신없어서 기억조차 하지 못했던 주례사를 다시 틀어 보았다. 그동안 어디에 뒀었는지 관심도 두지 않았던 비디오 테잎을 돌려보며, 이제야 결혼이 뭔지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지금 들어봐도 주례사 얘기는 하나도 틀린 게 없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살라,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서로를 위해줘라, 참을 인(忍)자를 하루에도 세 번 이상 쓰라, 부모 형제에게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늬이들이 우선 잘 살아야 효도하는 거다 등등...

아직은 결혼 생활을 다 해본 게 아니어서 모르겠지만 다 수긍하게 되는 말들이고, 어느 것 하나 틀린 게 없다. 그 중에, 부부가 뜻이 같아야 뭐든 된다, 는 얘기는 정말이지 나이 들어서도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사는 게 결혼 전엔 철학을 하는 것 같았는데, 살다보니 그게 인생철학인 것을 알게 되었다. 개똥밭에 구르며 만들어진 개똥철학인지는 몰라도 결혼해 살며 인생을 보는 눈도 생겼다. 그러다보니 인생이 뭔지, 사는 게 뭔지 조금은 아는 나이가 되었다. 갑자기 잘 놀던 아이가 탈이 나 오밤중에 병원 문을 두드려야 했던 거며, 갑작스럽게 장인이 골수암에 걸렸다는 얘기를 주치의로부터 듣게 되는 거며, 잘 나가던 사업이 한순간에 개굴창에 쳐박힌 자전거 바퀴처럼 그냥 헛돌다 멈추게 된 거며,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문제로 집안이 시끄러워졌던 거며, 갑작스런 실직을 경험해야 했던 거며, 이쯤이면 사는데 개똥철학 정도는 생긴 게 아닌가 한다. 무던히도 말도 많고 탈도 많았기에 알게 된 인생살이의 진면목이 아닌가 말이다.

더구나 결혼해 사는 동안 지금껏, 맞벌이를 하며 오늘은 어제보다 낫겠지, 내일은 오늘 보다 낫겠지... 그렇게 속아온 인생도 알고 보면, 속는 게 인생이라는 걸 알 만큼 인생을 살아 온 것 아니겠는가? 인생이란 곡식엔 알곡만이 들어있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하는 것 아닌가 말이다.

남녀가 다른 집안에서 태어나 자라나서 만났으니 서로 생각이 같기야 할까. 처음엔 뜨겁게 달아올라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애를 낳아 키우지만, 곧 생활이란 무거운 짐이 짓누르는 걸 알게 되며, 맞벌이 하는 처지가 되어 있지 않은가 말이다. 혼자 벌어서는 집 한칸도 퇴직 전에 마련하기 어렵기에 둘이 마음을 합쳐 나가서 뛰는 것 아니겠는가 말이다.

가끔은 아내에게, ‘나같이 못난 사람 만나 고생이지?’하며 묻곤 하는데, 그럴 때 마다 코끝이 찡하는 건 왜 그럴까? 다들 쉽게 만나 쉽게 헤어지는 게(그들 간에 말 못할 사연이 있겠지만) 유행처럼 번지는 사회라지만, 적어도 우리 가정만은 바로 지키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건. 생각건대, 그런 믿음만 확고하면 가정 하나는 제대로 못 지켜 낼까 싶다.

주말 청소를 하다 켜켜이 먼지 묻은 서고위에서 끄집어낸 결혼식 비디오를 보는 재미는 이런 것이리라. 이제 갓 신혼을 시작하는 젊은 부부의 모습을 가슴 싸하게 바라보는 심정 같은 것 말이다. 오랜 된 주례사는 여전히 부부가 만나 살아가야 하는 진솔한 삶의 철학을 가르쳐주는 데 나는 얼마나 그 말처럼 배우자에게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내가 해 내긴 해 낸 것인가? 주례사 속 이야기가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서로 뜻이 같아야 뭐가 돼도 된다.”

요즘 사람들은 어떤 주례사를 듣게 될런지 모르지만 내 일천한 경험으로는 이만한 교훈이 어디 있을까 싶다. 인생을 동고동락이란 걸 하며 알게 되는 애틋한 심정 말이다. 더구나 아침이면 자는 애까지 들쳐 엎고 나가서 남에게 맡기고 가는 직장생활이라면. 세상에 좀 더 나은 생활은 어떤 것일까?
ⓒ전경일, <맞벌이 부부로 산다는 것>


대학을 마치고 부모로부터 특별히 재산을 물려받지 않은 상태에서 김 인수 씨 내외는 결혼을 했다. 김 씨는 대학 다닐 때에도 아르바이트로 과외를 해서 학비를 마련했고 하숙비를 냈다. 거기다가 조금 남은 돈을 시골에 계신 부모님과 동생들을 생각해 부치기까지 했다. 아직은 중,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생들 얼굴이 늘 김 씨 머리에 떠올랐던 것.

“형, 나도 크면 서울 가서 공부할 수 있을까?”

김 대리의 아내는 직장생활을 하다가 고등학교 학력만 갖고는 세상에 내놓는 이력서로 부족해 이를 물고 야간대학을 다녔다. 신입사원 시절 그런 자신의 노력에 회사가 잔업 등을 이유로 제동을 걸지 않아 그나마 꿈을 이룰 수 있었다.

두 사람이 만난 건, 김 대리가 두 번째 직장에 옮기고 났을 때였다. 둘 다 직급으론 대리였을까. 다들 점심시간이 되자 뿔뿔이 흩어진 틈을 타 김 대리는 도시락을 들고 회의실로 들어갔다. 그러자 불현듯 그 안에서 먹던 도시락을 한 손으로 가리며 그를 맞는 여직원이 있었다. 그녀가 바로 지금의 김 대리의 아내였다. 둘은 그렇게 해서 시간이 갈수록 처음의 어색함을 물리치고 점차 가까워 질 수 있었다. 나중엔 서로 반찬을 바꾸어가며 해오고, 나눠 먹는 사이까지 됐다. 회사 내 둘이 사귄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아무렴 어때, 이런 식이었다.

한번은 도시락을 펼치며 영화표를 슬쩍 건넸다. 둘은 그 날 영화를 보고, 도시락을 싸오게 된 사연을 나누며 동변상련을 느꼈다. 김 대리는 시골 동생들 뒷바라지 때문에 점심값이라도 아껴야 하는 게 가장 주요한 이유였고, 아내는 사업에 실패하신 아버지를 대신해 살림을 꾸려가야 했기 때문이라는 거였다. 게다가 둘 다 장남, 장녀였다. 당연히 속 쓰는 게 깊지 않을 수 없었다.

가끔 둘은 회사 근처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마시게 되었다. 김 대리는 서울 시내 한복판 도심의 건물 사이로 바치는 달빛에 젖은 그녀의 얼굴을 보고, 평소 못 느끼던 연정을 느꼈다고 한다. 누가 보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골목에서 키스를 했고, 그해 가을 결혼을 했다.

결혼은 했지만, 짐은 줄지 않았다. 이런 저런 눈치 때문에 아내가 다른 회사로 직장을 옮겼는데, 둘이 모으면 나아질 것 같았던 수입은 오히려 더 빠듯했다. 양쪽 다 내미는 손이 너무 많아, 둘이 절면 1+1=3이 될 둘 알았던 수입은 지출만이 -3이 되는 형편이었다. 그렇다고 서로의 사정을 아는데, 모르쇠로 양가에 대할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처음엔 서로 상대방 편부터 줄이라고 하다가 언쟁이 되고, 마음까지 상하게 됐다. 어떤 때에는 잘못된 결혼이 아닌가 하고 은근히 상대편을 남 보듯 하기도 했다.

둘이 가지고 있던 부담은 줄지 않았지만, 애가 들면서부터 상황은 급격히 달라졌다. 애를 지울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의논 끝에 시댁으로, 친정으로 찾아가서 하소연을 하게 됐다. 양쪽에서 모두 당장 나오는 말이, “그러길레 뭐랬니, 좀 있는 사람하고 결혼하랬잖니?” “며느리가 아니라 힘이 되는 게 아니라, 짐이다, 짐!” “우린 그렇다치고 동생들은 어떡하란 말이냐? 내가 너 대학까지 보냈으면, 동생들은 네가 책임져야지.” “애 낳는 것도 좀 생각해서 결정하지 그랬니, 뭔 애들이..”

그런 얘기에 욱, 하는 심정이 들기도 했지만, 두 사람은 양가에서 조용히 물러났다. 그러고, 동생들을, 친정 부모님을 불러놓고 선전포고를 했다.

“저희도 살아야 하니 이젠 알아서 하세요. 이젠 예전처럼 다달이 얼마 부쳐드리지 못해요. 애도 생기고.”

“못된 것들!“

그런 소리를 들으며 김 대리 내외는 버스에 올랐지만, 두 사람은 아내 배에 손을 가져가며, 가족들에게 자기네 사정을 말하고, 끊어 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석 달이 못가 정작 들어오는 돈은 별반 차이가 없었다. 둘 다 약속을 지킬 수 없었던 것. 시골에서 이불을 뒤쓰고 누워 있다는 시부모며, 친정 부모의 성화며... 두 사람은 인생 계획을 오년은 뒤로 늦출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 다음에야 두 사람은 전세금을 간신히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이제 시작이야. 이젠 애 생각해 더 열심히 벌어보자구!”

남편과 동네 슈퍼에서 사온 맥주를 마시며, 그런 말을 했던 게 한 달 전이었던가? 어느 날, 김 대리의 아내는 술이 불콰해진 남편이 집에 들어오며 문짝을 걷어차는 것을 보고는 감짝 놀랐다고 한다. 문을 열어주자, 온갖 잠꼬대를 하며, 마루에 쓰러져 잠이 드는 것이었다. 뭔가 미심쩍어, 다음날 회사에 아는 직원에게 전화해 물어 보니, 남편이 명예퇴직 대상자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날 밤, 평소보다 조금 일찍 퇴근한 김 대리의 아내는 술상을 차린 채, 남편을 맞이했다.

눈이 휘둥그래해진 남편을 주저앉히고, 그녀는 술잔을 따랐다. 그러며, 처음으로 포장마차에서 키스를 하던 때를 끄집어냈다. 남편은 처음엔 어색했지만, 차츰 술기운을 빌어 속내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래요, 다시 시작이예요. 번 게 없다구요? 우리 철이 있잖아요.”

부부는 그날 끌어안고 하염없이 울었다고 한다. 남편이 새 일을 찾은 건, 몇 달 지나서 였다. 그 때까지 취직에 관해선 아무런 것도 물어보지 않고 지켜봐 주던 아내가 너무 고마웠다고 김 대리는 말했다.

“세상은 다 살게 되어 있습니다. 믿어 밀어주는 사람이 한 사람만 있어도 말이죠.”

김 대리가 하는 말이다.
ⓒ전경일, <맞벌이 부부로 산다는 것>


 
가끔 거사를 치른다. 아내에게 이걸 사도 돼냐고 묻고 또 물으며 물건을 집었다 놓곤 한다. 백화점에 가서는 가장 저렴한 세일 코너를 찾게 되고, 할인 마트 가서는 우유를 골라도 팩이 하나 더 붙어 있는 1리터짜리 우유를 사게 된다. 30~70% 세일가로 나온 셔츠들은 이월 상품들이고, 팩을 하나 더 주는 우유는 유통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이런 구매는 일상적 소비라 크게 망설일 것이 없지만, 어쩌다 회사 근처 대형 매장에서 할인가로 두들겨 파는 양복이나, 한 여름에 파는 겨울철 외투 세일 같은 것들은 할인가를 적용해도 목돈이 들어가느니 만큼 아내에게 전화해 물어보게 된다. 한 번에 몇 십 만원 씩 쓰이는 소비 아닌가. 용돈으로 해결될 지출이 아니다. 심리적으로는 소모품이 아닌, 자산을 구입하는 셈이다. 가끔 이런 대형 소비를 할라치면, 하루가 다르게 자라며 작아진 애들 옷이 생각나고, 옷 한 벌 못해드린 부모님 생각에 그나마 죄책감마저 든다. 그래서 집었던 물건을 쉽게 계산대로 가져가지 못한다. 부모님 생각을 하게 되면, 내 자신이 한참 못나게 생각된다. 사는 게 어째서 이런지!  


“어머니 웃도리 칫수가 얼마나 되죠?”

“왠일이냐? 난 옷이 많으니 애들 옷이나 사줘라. 얼마 전 보니까, 승희 바지가 작아 보이더구나.”

휴대폰 너머 울리는 목소리는 오히려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불효자식! 스스로를 자책해 보기만, 한 달 벌이가 정해져 있으니, 둘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 옷을 하나 사는데도 마음은 천근만근이나 된다. 뉴스를 보면 슬리퍼 신고 나와 버젖이 몇 백만원짜리 하는 명품을 사곤 하는 부자들이 나오던데, 우린 처음부터 간이 작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매장을 돌고 돌아, 3만원 하는 애들 옷 두벌하고, 어머니 속옷 하나, 내 와이셔츠 하나를 산다. 지금 장만해 두면 좋을 겨울 외투는 나중으로 미룬다. 생각해 보니 장농에 아직 쓸만한 외투들이 두어 벌은 있다. 

집에 돌아와 낮에 있었던 얘기를 아내에게 들려준다.

“행사를 딱 3일간만 한데.”
“그래, 겨울 외투가 어떤데 그래요?”
“물건이야 좋지! 완전히 본사서 나온 정품이더라구.”


그러자 아내가 옆구리를 쿡 찌른다.

“어디 좀 보고요. 당신 겨울 외투가 좀 그렇던데.”
장농을 뒤적이던 아내가 다가와, 한 마디 한다.

“사세요. 정 갖고 싶으면...”

그러며 일 년에 한 두 벌은 평생 두고두고 입어도 싫증나지 않는 옷을 사자던 우리 계획을 상기시킨다. 몇 해 전, 나이가 들고 살이 불면서 쉽게쉽게 사두었던 옷들이 하나같이 몇 해를 넘기지 못하고 재활용품 박스에 버려지자, 우리 부부가 내린 합리적인 결론이었다. 나이 들수록 돈이 더 들어가는 법이다. T셔츠 하나에 청바지 하나만 입어도 번쩍번쩍 빛나던 젊은 시절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한때, 여유가 있을  때 사둔 고급양복의 쓰임새를 아내도 알고 있다. 다른 양복에 비교해 시중가의 두 배를 주고 산 것인데도 십년을 입어도 그대로다. 그래서 명품인가? 돈이 가치를 결정하는 게 분명한 것 같다. 하지만, 무작정 소비를 늘릴 수만은 없다. 대형 소비는 일 년에 딱 한번이나, 두 번만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목돈이 펑펑 들어가는 일은 살며 계속 연중행사처럼 다가온다. 여름휴가라든가, 경조사라든가, 부모님 치아라든지, 애들 수술비라든지, 자동차 수리비라든지 등등.

다음날, 눈에 찍어두었던 든든한 겨울 외투를 한 벌 장만하며, 나는 별의별 생각을 다 해 보았다. 나만을 위한 소비를 하며 당분간 부모님이나, 애들 얼굴은 잊기로 했다. 어쩌겠는가? 나도 좀 차리고 다녀야 하는데. 할인 판매를 하는 행사 기간은 사실 열흘 남짓이었다. 아내는 내가 오늘이 행사 마지막 날이라고 했던 걸 믿어준 것일까? 아니면, 애처럼 보채는 것 같아 측은해 보여 오케이 했던 것일까? 아무튼 맞벌이들은 아빠들도 생각이 많이 든다. 불현듯 - 눈에 들어오는 어머니 얼굴, 아내의 겨울 외투, 아이들 신발...

ⓒ전경일, <맞벌이 부부로 산다는 것>
 
대한민국 가정의 50%가 아침이면 전쟁을 치른다. 맞벌이 부부들이 서둘러 직장으로 달려 나가는 시간. 잠시 켜둔 TV에서는 뉴스나, 아침 시사방송, 유치원 프로가 빠르게 진행된다. 서둘러 TV를 끄는 시청자 시선을 붙잡으려는 의도된 방송편성이다. 이 바쁜 시간에도 경제는 돌아가고 있고, 마구 흐른다. 이런 생활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맞벌이들이다.

아침 시간은 쏜살처럼 빠르다. 대충 빵이나, 시리얼 따위로 식사를 때우거나, 준비라도 해 둔 식단이 있다면, 서둘러 밥을 먹고는 식기세척기나, 설걷이 통에 대충 빈 그릇을 담가 둔다. 아내는 서둘러 화장을 하고, 자는 애들을 깨워 옷을 입히고 나면, 이젠 들쳐 업고 뛰는 일이 남는다. 초등학교나, 어린이 집으로 애들을 데려다 주는 길. 애들이 어디 아프기라도 하면 아침부터 찡찡대 하루의 시작이 무겁다. 또 이렇게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다.

집을 나서면서도 머리는 아직 마르지도 않았다. 이런 건 한 겨울에도 마찬가지. 늘 가슴속엔 애들을 제대로 거두어 먹이기나 하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밥 힘으로 크고, 밥 힘으로 사는 건데, 정작 잠 덜 깬 애들에게 든든하게 아침을 먹이기란 생각처럼 쉽지 않다. 대한민국에서 맞벌이로 산다는 것은 이 만큼 어렵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이 어디 우리 집만의 일인가. 다들 내 집 한 칸 장만하고, 애들 키워내며, 가르치고 살아가는 일상적인 모습일 뿐이다. 그나마 둘이 벌어들일 수 있는 건 요즘 같은 고용 불안, 졍제 불안정 시대에는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육아 문제로 출산휴가다 뭐다 해서 회사 눈치를 봐야 하는 여자 입장에서는 더 말 할 나위없다.

이렇게 바쁘게 뛰는 데에도 현실은 늘 뒤처지는 느낌이다. 실제로도 그런 면이 있다. 가계 소득이나 재산은 늘기는 커녕 오히려 줄고 있다. 게다가 지출은 좀처럼 줄이기 어렵다. 두 사람이 모든 걸 희생하고 쌍끌이로 모은다지만, 자고 일어나면 집값은 천정부지로 올라가 있다. 둘이 버는 게 집값이나 물가를 앞서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대한민국 맞벌이들의 삶은 처절하다. 때론 속아 사는 것 같아 눈물겹기도 하다.

맞벌이들은 바보들인지 모른다. 직장일엔 똑똑할지 모르나, 현실 생활에선 어찌보면 숙맥이다. 회사에서도 일에 몰두한다고 하지만, 경쟁은 나날이 치열하고 늘 마음 한편엔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는 애들이 있다. 그리고 배우자와 자신이 있다. 둘 다 직장 생활하느라고 애들 교육에 많이 신경쓰지 못하는 걸 생각하면, 대책 없이 미안하기만 하다. 그래도 낳으면 애들은 다 큰다고 하던 어른들 얘기를 떠올리면 그나마 위안이 된다. 게다가 학교에선 왠 모임이 그렇게도 많은지, 남들처럼 학교도 쫒아 다니고, 학부형 모임에도 끼고 그러지 못해 늘 꺼림직하다. 당연히 두 몫의 월급을 번다지만,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장사와 별반 다를 바 없다.

이런 전쟁 같은 생활 속에서도 저녁 무렵 애들이 숙제를 하거나, 재롱을 떠는 것을 보면, 삶에 대한 희망이 솟구친다. 자는 애들을 바라보면 세상에 이런 천사들이 없다는 생각에 가슴속에서 뜨거운 것이 왈칵 솟아오른다. 가정이란 보금자리에 뜨거운 사랑이 넘치는 것을 알게 된다. 안도감을 느낀다. 이것이 바로 힘이다. 맞벌이들의 희망. 언젠가는 지금보다 나아지겠지만, 지금이라도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베풀어야 하는 것. 그게 한 가정에 가장 필요한 활력 비타민일 것이다.

아침이면 또 다시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겠지만, 대한민국 맞벌이들에겐 희망이 있길레 오늘도, 집을 나선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금자리를 지키기 위해. 오늘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내일의 아침을 맞이하는 대한민국 맞벌이들에게 파이팅을 보낸다.

하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 맞벌이는 줄고, 외벌이 마저 길가에 내앉는 대한민국 현실은 무엇인가?

ⓒ전경일, <맞벌이 부부로 산다는 것>
* <맞벌이 부부로 산다는 것>으로 독자들과 만나고 같이 시름겨워 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더 어렵고 가시밭길인 시기, 예전을 글들을 손 봐 이제 힘겨운 여러분과 저를 응원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