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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왜공정 일본 신新 왜구의 한반도 재침 음모
앞으로 34년 후인 2045년 내 일본은 반드시 재침한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남아있는 고난사가 존재한다. 인류 역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1620년간 이어진 900여회의 한반도 침략사. 일본은 그 장구한 시간 동안 ‘남왜공정南倭工程’이라는 이름하에 침략을 되풀이 해왔다. 현재진행형인 이 침략사의 진앙지는 어디 일까? 그 뿌리를 찾아 들어가 보자.

오늘날 일본의 침략성은 일제의 군국주의에 기초하고, 한일합방과 임진왜란, 결국에는 1620년간 이어진 900여 회에 달하는 한반도 침구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그 시작과 끝에는 일본 ‘왜구’가 있다. 오랜 시간 한일관계사를 관통하는 왜구 침구의 약탈·살인·피로의 연결고리가 현재에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역사는 되풀이된다. 불행한 역사일수록 반복성은 두드러진다. 앞으로 일본의 재침은 없는가? 우리는 일본 왜구의 재침에 대비한 예비서가 필요하다.
저자는 우리 민족의 생존을 끊임없이 위협해 온 왜구의 존재를 앎으로써 한반도의 존립 근거를 보다 튼튼히 하고, 적을 앎으로써 나를 알고자 하는 목적에서 이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우리는 일본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듯하나, 기실 일본이 저지르는 행태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단지 ‘학습된 증오’, ‘막연한 동경’ 내지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런 생각과 자세로는 또 재침을 당하지 말란 법이 없다.

지금 한일관계사에서, 우리는 안팎으로 시련을 맞이하고 있다. 경술국치 100주년이 되는 해인 2010년, 서울 한복판에서 성대히 치뤄진 일왕日王의 생일축하연에 한국의 정치인·기업인들은 일왕을 천황으로 높이며 생일을 경축하였고, 2011년에는 ‘마지막 왜구’ 3명의 독도 침구 시도가 있었다. ‘침구의 현재성’이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을 알려면 ‘왜구’의 존재를 알고, 그들이 행해왔던 ‘남왜공정’의 실체를 알아야 한다. 현대 일본의 ‘극우주의’, 근대 일본의 ‘군국주의’, 고대·중세의 ‘왜구, 사무라이’가 일맥상통 한다. 저자는 이를 지금까지 일본이 지향해 온 침략주의 사상의 발로라는 점에서 ‘남왜공정’이라는 용어로 정의하고 있다. 고구려사 편입을 획책하는 중국의 ‘동북공정’은 귀에 익숙하지만, 일본의 팽창주의적 행태와 재침구를 우려하는 남왜공정에 대해서는 우리 내부에서조차 공론화된 적이 없다.

이 책은 한·중·일 각국이 공통적으로 경험한 바이자, 지금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문제들을 다뤘으며, 이를 구체적 사료를 통해 풀어가고 있다. ‘징비懲毖’의 차원에서 동아시아 사에 적지 않는 영향을 줄 것으로 믿는다. 저자의 오랜 고투의 흔적과 역작으로써 무게감이 읽힌다.
박스

독도문제를 야기 시킨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60년 나비효과와 평행이론을 이야기하다



현재의 ‘독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미건조한 주장이나 감정에의 호소가 아닌 그 실체로의 접근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60년 전,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현장으로 가봐야 독도문제의 실상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4년이 지난 1949년 초부터 미국은 전후 일본 문제의 처리를 위해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구상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은 독도 영유권에 대해 명확한 규정을 삽입하지 못한 채 1951년 9월 8일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49개국이 서명한 가운데 체결되었구요, 당시 미국 측의 전후 최대 관심사는 반공의 교두보로서 일본 경제의 조속한 부흥과 재건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2차 대전 시 미군폭격기지로 사용된 독도는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미국의 국익을 위해 기상 혹은 레이더 기지로 쓰일 이유가 있는 것으로 고려되었고, 그런 차원에서 일본에 유리하게 조약이 작성되었지요. 미국은 일본의 힘을 지켜주고 환심을 사기 위해 한국과 중국의 이익을 희생시켰고, 그 희생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독도와 조어도 열도입니다. 이처럼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충실히 따르는 정책을 수행해 왔습니다. 작금의 한미 FTA도 오직 그들의 이익만을 위한 정책이 될 우려가 큽니다.

국제법상 독도가 일본으로 넘어간다면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언급 안 된 한반도 내 모든 부속 도서를 대상으로 일본 영유권을 주장할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독도와 마찬가지로 다른 섬들도 우리가 실질적 지배·점유를 하고 있는 까닭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으로 보이지만, 역사적으로 일본이 보여줘 온 바를 감안해 볼 때 침구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는 것이지요. 바로 독도문제의 중대성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저자 _ 전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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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조부와 부친이 강제 징용에 끌려갔다 온 가족사를 들으며 자라났다. 민초로써 그들 삶에 천착해 우리 역사의 굴곡사를 바로 잡으려는 작업에 오랫동안 깊은 관심을 기울여 왔다. 왜구의 한반도 침략사를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남왜공정’으로 정의하며, ‘왜구-근대 왜구-신왜구’로 이어지는 일본 ‘신新왜구주의’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다. 2011년 일본 정치인의 침구행위와 2045년 일본 재침을 역사적 증빙에 기초해 예견하면서 오늘날 일본 극우주의의 망령이 오랜 기간 한반도를 침략한 ‘왜구’와 끈질기게 맞닿아 있음을 밝혀내고 있다.
장장 7년 동안 사료를 찾아 왜구사와 그에 맞선 한민족 응전사를 밝힘으로써 일본의 재침을 경고하고 징비懲毖케 하는 육중한 역작의 무게감을 전해주고 있다. 한일 간 독도문제, 역사교과서 왜곡문제 등 치열한 영토?전쟁이 벌어지는 때에 한민족 생존 방향을 돌아봄으로써 민족 생존의 뚜렷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왜구’에 의해 찢기고 갈린 한국사에 중대한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본다.

전경일은 그간 서른여 권의 책을 썼다. 『이순신, 경제전쟁에 승리하라』,『창조의 CEO, 세종』,『더 씨드: 문익점의 목화씨는 어떻게 토요타자동차가 되었는가』,『광개토태왕 대륙을 경영하다』등 주로 역사?경영적 원리를 뽑아내 재해석하는 작업을 하여왔다.
현재 인문경영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Blog: http://humanity.kr
<출처: 폴리뉴스 2012-01-13 >

남왜공정, 왜구의 실체를 잊었는가?

(학살자들은) 부인 등을 보면 양편으로 좌우의 다리를 벌려 생식기를 검으로 찔러 일신一身을 사분오열로 자르며 여자는 이렇게 하여 죽이는 것이 묘미가 있다고 웃으면서 담화하였다. 또 우리 동포를 전차가 지나가는 다리에 목을 매달고 양다리를 끈으로 묶어 좌우에서 다수인이 끈을 잡고 신호하고 호응하면서 그네와 같이 흔들어 죽인 일도 있다. 신체를 전신주에 묶고 처음 눈알을 도려내고 코를 찔러 그 애통한 광경을 충분히 구경한 후에 배를 찔러 죽인 일도 있다. 각 기차 중에서는 다수의 왜노 등이 (조선인의) 사지四肢를 잡고 창밖으로 던져 역살轢殺하였고 남녀 수 십 인을 발가벗겨 보행시키고 또는 춤을 추게 하여 수 시간 동안 동물적 희롱을 감행시킨 후 찔러 죽인 일도 있었다. 또한 죽은 사람의 목을 묶어 끌고 다니면서 찌르고 차면서 시체에까지도 능욕을 가했다. 이후에는 한인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왜倭정부는 각 경찰서 구내 또는 병영에 이송 집합시키거나 광장, 하변에 끌고 나가 기백 기십인을 일시에 죽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동포의 시체가 퇴적하여 우전천隅田川은 흐름이 막혀 우리 동포의 피가 썩는 그 악취는 통행인의 호흡도 막히게 할 정도였다.
<본문중에서>


남왜공정 ⓒ민중의소리
1620년간 이어져온 일본의 한반도 침략을 파헤치면서 신왜구주의의 경계를 주장하는 책, '남왜공정'이 출간됐다.


한반도는 한으로 얼룩져 있다. 그 중에서도 피로 얼룩진 고난의 역사는 일본이 절대적인 원인이었다. 인류 역사상 찾아볼 수 없는 일본의 한반도 침략사. 횟수로 따지자면 한국에는 1620년간 900여 회의 일본 침략이 있었다.

일본은 왜 그 장구한 시간 동안 '남왜공정南倭工程'을 되풀이해왔을까?

1620년간 이어져온 일본의 한반도 침략을 파헤치면서 신왜구주의의 경계를 주장하는 책, '남왜공정'이 출간됐다.

이 책은 '역사는 되풀이된다', '불행한 역사일수록 반복성은 두드러진다'는 전제 아래 저자 전경일이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하는 '일본 왜구의 재침에 대비한 예비서'다.

이 책은 오랜 시간 한일관계사를 관통하는 왜구 침구의 약탈·살인·피로의 연결고리가 현재에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일제의 군국주의, 한일합방과 임진왜란, 결국에는 1620년간 이어진 900여 회에 달하는 일본의 한국 침략을 예로 든다.

실재 한일관계사에서 한국은 안팎으로 시련을 맞이하고 있다. 경술국치 100주년이 되는 해인 2010년, 서울 한복판에서 성대히 치뤄진 일왕日王의 생일축하연에 한국의 정치인·기업인들은 일왕을 천황으로 높이며 생일을 경축했고, 2011년에는 '마지막 왜구' 3명의 독도 침구 시도가 있었다.

3명의 독도 침구 시도는 2011년 8월에 벌어졌다. 일본 자민당 의원들이 '독도 영유권 강화조치 견제 차 울릉도에 가겠다'고 한국에 입국을 시도한 것이다. 이들은 출입국관리사무소의 입국 불허 조치로 일본으로 철수했지만 한국정부와 한국 국민을 상대로 겁박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이에 대해 저자는 당시 입국한 일인들은 일본의 한국 식민 지배와 중국 남경대학살 등 역사적 책임을 부정하고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을 주장해 온 일본 내 강경 우익 극우파들로, 한반도를 오랜 시간 침구한 왜구와 동일 선상에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일본을 알려면 '왜구'의 존재를 알고, 그들이 행해왔던 '남왜공정'의 실체를 알아야 한다면서 현대 일본의 '극우주의', 근대 일본의 '군국주의', 고대·중세의 '왜구, 사무라이'가 일맥상통 한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저자는 이를 지금까지 일본이 지향해 온 침략주의 사상의 발로라는 점에서 '남왜공정'이라는 용어로 정의하고 있다.

저자는 우리 민족의 생존을 끊임없이 위협해 온 왜구의 존재를 밝혀 한반도의 존립 근거를 보다 튼튼히 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이 책을 썼다. 우리는 일본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듯하나 기실 일본이 저지르는 행태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단지 '학습된 증오', '막연한 동경' 내지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는 생각과 자세로는 또 재침을 당하지 말란 법이 없다고 충고한다.

사실 고구려사 편입을 획책하는 중국의 '동북공정'은 귀에 익숙하지만, 일본의 팽창주의적 행태와 재침구를 우려하는 남왜공정에 대해서는 한국에서 공론화된 적이 별로 없다.

이 책은 한·중·일 각국이 공통적으로 경험한 역사이자 지금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문제들을 다뤘으며, 이를 구체적 사료를 통해 풀어간다. 이 책은 '징비懲毖'의 차원에서 동아시아 사에 적지 않는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동권기자 [출처: 민중의소리, 2011.12.20]
 




- 독도, 역사왜곡, 정신대 등 한반도 재침략 '공정' 해석
- 남왜공정/전경일 지음/다빈치북스/1만6500원

   
일본은 우리에게 저지른 역사적 과오에 대해 이제껏 솔직한 사죄를 하지 않고 있다. 멀리 임진왜란은 물론이고 국권강탈에 이어 일제강점기 갖은 만행에 대해서도 피해 당사자가 아직 눈을 부릅뜨고 있지만 외면하고 있다. 일본측의 사죄 등을 요구하는 일본대사관 앞 정신대대책 집회가 1992년 1월 이후 수요일마다 열려 엊그제로 1000회를 맞았지만 요지부동이다.

일본이 이렇게 뻔뻔하고 가증스러운 행태를 자행하는 까닭을 역사적 맥락을 쫓아 찾아나선 것이 남왜공정(南倭工程)이다. 이순신장군 광개토대왕 등의 탁월한 지도력을 재해석한 서적을 다수 써낸 저자가 7년간 한일 관계 사료를 뒤져 일본 저류에 흐르는 침략근성인 '왜구(倭寇)'를 말한다. 일본이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추진하는 중국과 마찬가지로 한반도 공략을 은밀하게 지금도 추진하고 있으며 이를 '남왜공정'이라 이름 붙였다.


언제든 때만 되면 한반도를 어떻게 해볼 요량인 일본이기에 과거 그들의 잘못을 시인하거나 진정어린 사죄가 나올리 만무하다. 책은 이를 역사적 사실을 들어 조목조목 설명한다. 그리고 1910년 한일합방이란 국치를 되풀이 하는 어리석음을 겪지 않게 우리 내부 문제를 응시한다.

   
지난 8월 공공연하게 "독도를 가겠다"며 3명의 일본 의원들이 무단으로 우리 땅을 밟은 것은 1876년 운양호사건에 비견되는 일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사진은 지난 8월 무단 입국한 일본 의원들 모습. 국제신문DB
남왜공정으로 단정짓는 이유는 두 가지다. 주기침략설과 재침설이다. 역사적으로 일본이 주기적으로 우리땅을 침범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란 거다. 일본은 백제말 백제부흥군과 함께 백촌강(錦江)전투(663년)에서 나당연합군에 패해 1차 철수했으며 히데요시가 일본 통일 후 한반도에 출병해 조선인 저항과 명군 출격으로 퇴각해 2차 철수했다. 대동아전쟁 패퇴로 물러나는 것이 3차 철수다. 이는 우리 쪽 사료 기술이 아니라 패전 후 일본으로 돌아간 조선총독부 고급관료 모리타 요시오의 실토다. 그러면서 그는 "앞으로 동아(東亞)를 어떻게 그려나갈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당시 총독 아베 노부유키는 한술 더 뜬다. "다시 100년내 도래하겠다"는 망언도 서슴지 않았다.

책은 2045년이란 시점에 주목한다. 왜구는 1876년 운양호사건을 빌미로 이땅에 발을 붙이기 시작해 34년 만인 1910년 마침내 조선을 삼킨다. 지난 8월 일본 의원 3명이 "독도를 가겠다"고 대놓고 한국에 무단 입국하는 방자함을 저지른 것은 운양호사건을 연상시킨다는 게 지은이의 생각이다. 재침의 흉계를 서서히 드러내는 시발점으로 본다. 2045년는 지금으로부터 34년 후다. 또 이 연도는 아베의 망언과도 잇닿아 있는 100년이 되는 시점이다.

일본 쪽 움직임 못지 않게 우리 쪽의 분위기도 심상찮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조선의 친일 관료 및 지식층들의 모임인 일진회가 왜구에 호응해 민족정기를 흐려놓았듯이 사정이 그때와 유사하다는 거다. 가왜(假倭·가짜 왜구)와 부왜(附倭·친일세력)들이 온갖 감언이설로 준동하고 있다. 한일합방 100년인 2010년 일왕생일기념행사에 정치인과 기업인들이 일본대사관에 줄을 섰다고 개탄한다. 일왕생일기념일 겸 승전기념행사가 열리던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홍구공원에서 몸을 던진 윤봉길 의사가 지하에서 어떻게 생각하겠느냐는 거다.

책은 독도, 역사왜곡, 정신대 등을 개별 '문제'로 보지 말고 '공정'으로 볼 때 제대로 일본이 보인다고 말한다. 아울러 우리 내부의 가왜 부왜도 직시할 때 올바른 역사 해법이 나올 수 있다고 강조한다.

[출처: 국제신문 남차우 기자, 2011.12.16]



새로 쓴 일본의 한반도 침략사

“일본은 대륙진출이라는 광포한 욕망으로 1천620년간 한반도를 자그마치 900여 차례나 침략했다. 이는 인류 역사상 유례없이 긴 전쟁으로 지금도 진행형이다.”

인문경영연구소장인 저자가 일본의 한반도 침략사를 새롭게 정립하며, 일본 왜구의 탄생부터 성장까지 그 이면에 담긴 내막을 파헤쳤다.
저자는 왜구의 한반도 침략사를 ‘남왜공정’으로 정의하고,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침략행위 간 시차를 통해 일본의 한반도 침략은 주기성과 불변성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설명한다. 특히 강화도 조약부터 한일합방까지 34년의 시차가 있다는 점을 근거로 2045년 일본의 한반도 재침이 예상된다는 주장을 펴면서, 이를 막기 위한 주요 원칙과 대응방안을 모색한다.
김도훈 기자 hoon@idaegu.com

전경일 지음/다빈치북스/408쪽/1만6천500원.
[출처: 대구일보, 2011.12.18]




왜구의 탄생과 한반도 침략사


남왜공정=일본의 한반도 침략사를 다룬 책. 일본 왜구의 탄생부터 성장까지 그 이면에 담긴 내막을 파헤쳤다. 저자는 고대로부터 1149년간 이어진 침략행위 간 시차를 통해 일본의 한반도 침략은 ‘주기성’과 ‘불변성’을 띠고 있다고 주장한다. 2045년 일본의 재침을 예견하고 이를 막기 위한 주요 원칙과 방법론, 대일관계 대책을 제시했다. (전경일 지음, 다빈치북스, 408쪽, 1만6500원)
[출처: 한국경제신문 2011.12.15]

남왜공정 = 전경일 지음.
인문경영연구소장인 저자는 책에서 지난 1천620년간 이어져온 일본의 한반도 침략 야욕을 짚어보고 향후 대응 방안을 모색한다.저자는 특히 강화도 조약부터 한일합방까지 34년의 시차가 있다는 점을 근거로 2045년 일본의 한반도 재침이 예상된다는 주장을 편다.
다빈치북스. 408쪽. 1만6천500원.
[출처: 연합뉴스 생활/문화 2011.12.15]

남왜공정
 
 
[독서신문] 일본의 한반도 침략사를 새롭게 정립하며, 일본 왜구의 탄생부터 성장까지 그 이면에 담긴 내막을 파헤쳤다. 이 책은 특히 왜구의 한반도 침략사를 '남왜공정'으로 정의하고, 고대로부터 1149년간 이어지는 침략행위 간 시차를 통해 일본의 한반도 침략은 '주기성'과 '불변성'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주장하며, 2045년 일본의 재침을 예견함은 물론 이를 막기 위한 대책을 제시한다.

남왜공정
전경일 지음 | 다빈치북스 펴냄
★남왜공정(전경일 지음/다빈치북스)= 일본의 한반도 침략사를 새롭게 정립하며, 일본 왜구의 탄생부터 성장까지 그 이면에 담긴 내막을 파헤쳤다. 특히 왜구의 한반도 침략사를 ‘남왜공정’으로 정의하고, 고대로부터 1149년간 이어지는 침략행위 간 시차를 통해 일본의 한반도 침략은 ‘주기성과 불변성’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설명한다.
[출처: 문화일보, 2011.12.16]

남왜공정:일본 신 왜구의 한반도 재침 음모 (전경일 지음, 다빈치북스 펴냄)
저자는 왜침(倭侵)이 단순히 역사책에 있는 과거의 일이 아니라 주장한다. 일본은 대륙진출이라는 욕망으로 1620년 동안 한반도를 자그마치 900여회 침략했고 지금도 진행 중이란 음모를 세세한 증거를 들어 설명한다. 1만 6500원
[출처: 서울신문, 2011.12.17]

남왜공정(전경일 지음, 다빈치북스, 408쪽, 1만6500원)=1620년 동안 한반도를 900회나 침략했던 일본의 한반도 침략사를 정리하며 2045년 일본의 한반도 재침략을 전망하고 있다. 미래의 후환을 경계하는 ‘현대판 징비록(徵毖錄)’이다.
[출처: 중앙일보, 2011.12.17]



남왜공정
일본 신 왜구의 한반도 재침 음모

 

이번에 장장 7년의 세월을 들여  <<남왜공정: 일본 신왜구의 한반도 재침 음모>>를 냈다. 감회가 새롭다. 다룬 바는 그간 쓴 책들의 범주나 주제를 뛰어 넘었으나, 서기 193년부터 2011년까지의 방대한 연구 조사가 선행되어야만 했고, 한일사를 꿰는 지식의 광대함이 요구되었다. 게다가 "역사가 현재를 설명하는 생생한 교훈이 되지 못하면 그저 본령에서 떨어져 나간 박편薄片에 불과하다"는 생각 하에 현대사와 한일 미래사까지 내다보느라 자못 자라목이 기린 목은 된듯하다. 책 중에 친일, 친미의 역사적 뿌리를 더듬어 본 것은 민족사에 크나큰 이정표로 삼을 만하다. 그만큼 영토, 영해 문제의 갈급한 현실에 대한 발언이기도 하고, 감히 서애西厓의 대저를 빌러 보자면 민족 운명에 '징비懲毖'코자 한 면이 자못 크다.  매번 글이 책으로 묶여 나올 때 후미가 흔쾌하지 않은 것은 글의 졸속함 때문이 아니라 생각의 짦음 때문이리라. 자못 글은 현실에 대한 발언이 되고, 창과 칼이 되어야 한다. 난마의 조국 현실은 풍전의 등화와 같으나, 역사 전개를 단견으로 바라보는 작금의 행태는 크게 우려스럽다.  

책 내용을 소개한다.



오랜 구원舊怨과 첩첩한 욕망에 침식된 한일 양국사
1620년간 이어져온 일본의 ‘남왜공정’이 다시 시작된다!

살육과 공존, 균형과 파괴
그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의 시작이 우리 민족 앞에 펼쳐진다. 
 

아무도 접근하지 못한 일본 왜구의 탄생, 성장

그리고 왜구 침구의 음모를 직시하라.

지금, 일본 신왜구는 한반도 침구 시점만 노리고 있다.

앞으로 34년 후인 2045년 내 일본은 반드시 재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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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한반도를 주기적으로 침략해 왔다.
일본 신군국주의는 지금 한반도 재침을 획책하고 있다!


일본은 대륙진출이라는 광포한 욕망으로 1620년간 한반도를 자그마치 900여회나 침략했다. 이는 인류 역사상 유래 없이 긴 ‘전쟁’으로 지금도 현재진행형 중에 있다. 21세기 들어서도 일본의 한반도 침략 야욕은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일본의 침략은 ‘주기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일본의 끊임없는 주기침략, 그 시작에는 왜구가 있다. 저자는 이와 같은 일본의 한반도 침략사를 새롭게 정립하며 그동안 아무도 접근하지 못했던 왜구 침구의 내막을 정교하게 파헤치고 있다.

고대로부터 1149년간 이어지는 왜의 ‘신라 정토계획(761년)’, ‘고려 침공계획(1275/1281년)’, ‘임진왜란(1592년)’ 그리고 ‘강화도 조약에서 한일합방(1876/1910년)’까지, 일본의 한반도 침략의 끝은 어디인가? 각 침략행위 간 시차를 살펴보면, 각각 514/520년, 311/317년, 284/318년의 간극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일본의 한반도 침략은 주기성과 불변성을 띠고 있다.

일본은 한반도를 주기적으로 침략해왔다. 앞으로도 한반도를 재침할 여지가 있고 예정되어 있다고까지 할 수 있다. 일본의 ‘한반도 재침’은 필연적이다. 따라서 그 시기를 예비하는 자세는 우리에게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이율곡은 ‘십만양병설’을 주장하며 일본의 한반도 침략을 대비케 했다. 또한 임진왜란 종전 후, 류성룡은 후대에 있을 일본의 한반도 재침에 대비해 ‘징비록’을 저술한다. 이 책 ⟪남왜공정: 일본 신왜구의 한반도 재침 음모⟫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일본의 한반도 침략을 분석하여 미래에 있을 후환을 경계하는 징비懲毖의 차원에서 쓰여진 것이다.

일본의 ‘한반도 재침설’에는 필연적으로 숫자의 법칙이 뒤따른다. 여기에는 명백한 근거가 있다. 일본 명치유신과 강화도 조약까지의 시차는 9년이다. 이 9년은 일본이 한반도 무력 개입을 법제화한 2002년 상황과 일본 정치인이 독도 침구를 목적으로 한국에 입국한 2011년까지의 시차와 같다.

일본의 한반도 재침이 예정되어 있는 시기는 언제쯤일까? 이의 기준은 강화도 조약에서 한일합방까지의 시차인 34년이 될 수 있다. 이를 반영해 보면 일본의 재침이 가능한 시점은 2045년이 된다. 그렇다면 2011년과 정확히 34년의 시차를 보이고 있는 2045년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이는 일본의 마지막 조선총독 아베 노부유키가 다시 돌아오겠다고 선언한 기한과 같다. 일본은 지금 2045년을 목표로 한반도를 집어 삼킬 준비를 맹렬히 전개하고 있다.


이른바 ‘잘 나가는’ 일본은 왜 왜구의 정체를 은폐·조작 하고 있을까?

한일관계에서 ‘왜구’의 존재는 특별 취급 대상이다. 공존과 균형보다 파괴와 살육으로 점철된 왜구는 일본의 흉기로 한반도를 900여회나 침략한 척후병이었다. 오늘날 일본은 왜구의 실체가 어떻길래 감추려드는 것일까?

1221년, 일본에서는 조정과 막부 간 권력 다툼으로 ‘조큐의 난’이 발생한다. 이 난을 주도했던 일본 고토바 상황은 결국 패하게 되는데, 이때 조정 편에서 싸우던 대다수 무사들은 토지를 몰수당한다. 이후 이들은 새로운 생존 조건을 찾아 해상 무장 약탈 세력인 왜구로 극적 변신하게 꾀하게 된다.

1392년, 일본의 남북조 시대가 남조의 멸망으로 막을 내리자 다시 패배한 일족은 바다에 들어가 해적이 된다. 우리 역사상 극악스런 ‘경인년(1350년) 왜구’는 바로 이들을 가리킨다.

일본은 오랜 한반도 침략의 주역인 왜구의 존재를 부정하려 획책하고 있다. 왜 그럴까? 대륙으로부터 꾸준히 문명의 혜택을 받았음에도 그 사실을 부정하기 위해 과거사를 왜곡하는 열등감이 자리잡고 있다. 일본이 지금은 잘 나가는 듯하나 속내는 과거에 대한 콤플렉스로 뭉쳐있다. 일본이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함께 동반자로 거듭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동아시아 평화의 주역이 될 수 있을 테지만, 지금 그럴 의사가 없어 보인다. 일본의 불행은 여기에 있다.

이보다 더 큰 문제점은 일본은 왜구를 통한 역사 왜곡의 위험성을 전혀 인식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이에 대해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 박노자 교수는 다음과 같이 통찰하고 있다.

"가해자들이 피해자의 탈 쓰기를 좋아하는 것은 ‘역사의 법칙’중 하나이다."

일본이 침략 전쟁과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 해가며 가해 사실을 은폐하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사실에서 벗어난 왜곡은 이성을 마비시키지만, 일본은 이 같은 조작 행위에 익숙하다. 여기에는 일본의 과거를 돌아보지 않는 ‘역사 치매현상’도 한 몫한다.

지금 일본은 ‘현대 왜구’라 할 수 있는 일본 극우주의자들의 득세, 정치 리더십 부재, 끝날 줄 모르는 기나긴 경제 불황, 원전사고 등 잦은 자연재해로 몸살을 앓고 있다. 내부의 혼란을 외부로 분출시켜 해결하려 했던 왜구의 특징으로 보아서 지금 일본의 움직임은 심상치가 않다. 한반도 주기 침략의 밑그림이 다시 그려지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도쿄의 경성(서울) 천도 계획과 한반도민 800만명 강제 이주 계획

1930년대, 일본의 군국주의자 도요가와 젠요란 자에 의해 ‘경성천도론’이 강력 주장된다. 그는 일본 수도 도쿄가 너무 동쪽에 치우쳐 있어서 만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수도를 조선의 경성(서울)로 옮겨, 도쿄와 신경(길림)을 이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일본은 일본인 대량 이주와 정주를 위한 거점으로 황해·발해 지역을 검토하기도 했고, 서울이나 근방인 김포, 용인 지역으로의 도쿄를 옮기려고 계획하기도 했다. 이는 일제가 대동아공영권을 이루기 위한 목적에서였지만, 한편으로는 일본 내 지진으로 인한 잦은 피해로 수도를 한반도로 옮기려는 계획 차원이기도 했다. 수도 이전 시 일본은 조선인 800만 명을 만주로 이주시키고, 대신 일본인 800만 명을 경성으로 이주시킴으로써 한반도를 영구히 차지하고자 했다. 자연 재해든 정치적 격변이든 일본 내 불안은 이처럼 늘 한반도 침구 야욕으로 귀결되고 있다.

오늘날 일본 내 지진·쓰나미 등의 자연 재해가 잇따르고 있고, 총리가 일 년에 한 두 번꼴로 바뀌는 등의 정치적 격변이 일어나고 있다. 게다가 원전 사태가 벌어져 일본 동북부의 땅이 황폐화되고 있다. 이는 역사적 사건과 비교해 보면 한반도 침략으로 이어질 요소가 충분히 무르익어 가는 일본 내 조건이 된다. 일본의 한반도 주기침략과 재침의 역사를 예증하는 주장이 될 수 있다. 지금 일본에서 어떤 극우주의자가 이 같은 팽창주의적 생각을 하고 실행에 옮길 준비를 하고 있을지 주의해 보아야 한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60년 나비효과와 평행이론

현재의 ‘독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미건조한 주장이나 감정에의 호소가 아닌 그 실체로의 접근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60년 전,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현장으로 가야 한다. 우리는 독도문제의 실상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2차 대전이 끝나고 4년이 지난 1949년 초부터 미국은 전후 일본 문제의 처리를 위해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한국은 독도 영유권에 대해 명확한 규정을 삽입하지 못한 채 1951년 9월 8일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49개국이 서명한 가운데 체결된다.

당시 미국 측의 전후 최대 관심사는 반공의 교두보로서 일본 경제의 조속한 부흥과 재건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2차 대전 시 미군폭격기지로 사용된 독도는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미국의 국익을 위해 기상 혹은 레이더 기지로 쓰일 이유가 있는 것으로 고려되었고, 그런 차원에서 일본에 유리하게 조약이 작성된다. 미국은 일본의 힘을 지켜주고 환심을 사기 위해 한국과 중국의 이익을 희생시켰고, 그 희생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독도와 조어도 열도이다.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충실히 따르는 정책을 수행해 왔다. 작금의 한미 FTA도 오직 그들의 이익만을 위한 정책이 될 우려가 크다.

국제법상 독도가 일본으로 넘어간다면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언급 안 된 한반도 내 모든 부속 도서를 대상으로 일본 영유권을 주장할 가능성도 있다. 역사적으로 일본이 보여줘 온 바를 감안해 볼 때 침구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독도문제의 중대성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일본의 ‘독도’ 침구 방식

한일 양국에서 독도문제에 대해 어처구니없는 발언, 망언, 행동을 하는 이는 일본뿐만이 아니다. 우리나라도 만만치 않은 패착을 범해 왔다.

1962년 9월 3일 일본 외무성에서 열린 한·일 예비절충 4차 회의에서 독도문제로 대립하게 되었을 때 김종필은 "독도를 폭파해 버리자"고 주장했다고 보도된다. 이는 오히라와 회담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른 김종필이 기자들 앞에서 "독도에서 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갈매기똥도 없으니 폭파해버리자고 말한 일이 있다"는 자신의 말로 확인되는 듯했다. 후에 김종필은 1987년 13대 대선 토론회에서 한일협정 시 독도문제에 대한 질문에 "젊은 혈기에 폭파하는 한이 있어도 독도를 지키려 했다"고 말함으로써 자신이 최초 발설자임을 시사했다.

2008년 들어서 독도문제와 관련되어 신중하지 못한 태도가 표면화된다. 이 해 7월 15일 일본 <요미우리 신문>은 "2008년 7월 9일 일본 홋카이도 고야코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 때 후쿠다 총리가 (일본 사회과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다케시마를 (일본땅이라고) 표기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통고하자, 이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다는 기사를 대서특필했다. MB의 속마음을 무엇이었을까? 단순 실언인가, 사실무근인가, 진실인가?

그로부터 3년 후인 2011년 8월, ‘독도 영유권 강화조치 견제 차 울릉도에 가겠다’고 나선 일본 자민당 의원들이 한국에 입국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들은 출입국관리사무소의 입국 불허 조치로 일본으로 철수했지만, 한국정부와 한국 국민을 상대로 겁박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당시 입국한 일인日人들은 역사적 궤적으로 한반도를 오랜 시간 침구한 왜구와 동일 선상에 있다. 일본의 한국 식민 지배와 중국 남경대학살 등 역사적 책임을 부정하고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을 주장해 온 이들은 중의원 의원 신도 요시타카, 참의원 의원 사토 마사히사, 중의원 의원 이나다 도모미 등 일본 내 강경 우익 극우파들이다. 이들은 한반도 영토 침탈을 목적으로 침구한 지금까지의 ‘마지막 3인의 왜구’이다.


‘일왕생일연’의 역사적 의미를 알라!

일본에서는 일왕의 생일을 ‘천황의 탄생일’이라는 의미로 ‘천장절天長節’이라고 부른다. 물론 일본 입장에서는 특별한 날일 것이지만 과연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의미가 있고 또 어떠한 일이 일어났을까?

한일합방이 이루어진 1910년에는 전국적으로 천장절 행사가 개최되었다. 충남 익산 보통학교에서는 헌병분견소 주체로 천장절 봉축 행사가 친일파와 지역주민들을 대거 동원한 가운데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또한 진주군수 박창규는 천장절 행사를 위해 조선인은 상당한 예복을 착용하고 참석할 것을 지시한다. 천장절은 이처럼 친일파와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 침략을 위한 상징적 행사였다.

반면 우리에게는 일왕생일연과 관련되어 잊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바로 윤봉길 의사이다.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는 상해 홍구공원(현 노신공원)에서 일본군이 상해사변 승전기념식을 겸해 일왕생일연을 벌이고 있을 때 도시락으로 위장한 폭탄을 단상으로 던져 상해파견군사령관 시라카와 대장과 거류민단장 가와바타 등 2명을 현장에서 즉사시키고, 일본 제3함대 사령관과 9사단장 등 군 수뇌부 10여명에게 상해를 입히는 전과를 거두었다. 이처럼 천장절은 나라를 팔아먹은 자들과 나라를 구하려는 자들 간에 전혀 다른 역사성을 띠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2010년 12월 6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는 주한·일본대사관이 주최하는 연례행사로 일왕의 생일을 기념하는 ‘천황 폐하 탄신 축하 파티’가 성대하게 열렸다. 행사는 500여명이 몰린 가운데 성황을 이루었다. 이날 파티장에서 눈에 띈 것은 기업과 기관들이 보낸 화환이었는데, ‘祝 天皇誕辰日(축 천황 탄신일)’이라는 한자 문안과 ‘Congratulation!’이라는 영어 문안이 주종을 이루었다. 이날 생일연의 주인공은 아키히토 일왕으로 그는 조선을 병탄한 무쓰히토 일왕과 2차 대전 전범인 히로히토 일왕의 손자이자 아들이 된다.

이들은 과연 일왕 생일연의 역사적 의미를 알고나 있을까?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오는 이 같은 사실을 모르고 있다면 정녕 통탄할 노릇이다. 반면, 이 사실을 알고도 그와 같은 짓을 하고 있는 것이라면 더더욱 통탄해 마지않을 노릇이라 하겠다.


‘남왜공정’을 획책하고 있는 일본 ‘신왜구(주의)’를 고립시켜라!

일본은 1620년 간 한반도를 침략해 왔다. 오랜 왜구 침략사는 현재 일본의 ‘남왜공정’으로 구체화 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일본 ‘남왜공정’의 본질을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

● 1차(1602년~1876년: 274년간)
“조선이 화호和好에 불응하면 이는 예가 아니므로非禮 재침하고 말겠다.”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왜장倭將

● 2차(1876년~1945년: 69년간) -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걸릴 것이다. 조선은 위대했고 찬란 했지만 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다.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 
                                     
-아베 노부유키阿部信行 조선총독
● 3차(1945년~2011년: 66년간) -
“독도는 무가치한 섬”이며 “크기가 히비야 공원 정도인데 폭파라도 해서 없애버리면 문제 가 없을 것이다.” 
                                    -이세키 유지로
伊關佑二郞 일본 외무성 아시아 국장

● 4차(2011년~2045년: 34년간) -
“야스쿠니靖國 신사에 합사 된 이들이 A급 전범자라는 것은 군사 법정의 견해일 뿐”이며 “법적으로 명예 회복이 된 만큼 일본에서는 전범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총리

2011년부터 시작된 일본의 4차 ‘남왜공정’은 한반도 영토 침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작금 일본의 극우주의자들은 고대로부터 내려온 ‘왜구’와 그 궤를 같이 한다. 일본 내 ‘21세기형 왜구’를 근절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일본 내부의 평화 세력을 활용하는 방법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는 대다수 일본민으로부터 일본 내 극우주의자를 분리하여 고립화시키는 것을 말하는 바, ‘신왜구’를 막는 일본 내 조건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일본 내 극우주의자들을 견제하는 ‘범아시아 평화세력’과의 연대를 통해 일본 극우주의를 고립·제어하는 방법도 고려해야만 한다. 일본 내 극우주의 준동을 평화 선린 세력을 통해 억제할 수 있게 외교적 영향을 강화하는 작업은 이들 세력의 고립화를 더욱 강화시켜 줄 것으로 본다. 역사상 일본이 일으킨 모든 전쟁의 불행을 고스란히 떠안은 대다수 일본민이야말로 진정한 평화 진영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우방’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일본민을 이용하려는 책략적 차원이 아니라, 일본 극우파에 맞선 국제 평화 연대의 차원이 그 만큼 크다는 뜻이다. 세계 어느 국민인들 자신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전화戰火를 반기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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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_
전경일

일제시대 조부와 부친이 강제 징용에 끌려갔다 온 가족사를 들으며 자라났다. 민초로써 그들 삶에 천착해 우리 역사의 굴곡사를 바로 잡으려는 작업에 오랫동안 깊은 관심을 기울여 왔다. 왜구의 한반도 침략사를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남왜공정’으로 정의하며, ‘왜구-근대 왜구-신왜구’로 이어지는 일본 ‘신왜구주의’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다. 2011년 일본 정치인의 침구행위와 2045년 일본 재침을 역사적 증빙에 기초해 예견하면서 오늘날 일본 극우주의의 망령이 오랜 기간 한반도를 침략한 ‘왜구’와 끈질기게 맞닿아 있음을 밝혀내고 있다.

장장 7년 동안 사료를 찾아 왜구사와 그에 맞선 한민족 응전사를 밝힘으로써 일본의 재침을 경고하고 징비懲毖케 하는 육중한 역작의 무게감을 전해주고 있다. 한일 간 독도문제, 역사교과서 왜곡문제 등 치열한 영토․전쟁이 벌어지는 때에 한민족 생존 방향을 톱아봄으로써 민족 생존의 뚜렷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왜구’에 의해 찢기고 갈린 한국사에 중대한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본다.

전경일은 그간 서른 여 권의 책을 썼다. 『이순신, 경제전쟁에 승리하라』,『창조의 CEO, 세종』,『더 씨드: 문익점의 목화씨는 어떻게 토요타자동차가 되었는가』,『광개토태왕 대륙을 경영하다』등 주로 역사․경영적 원리를 뽑아내 재해석하는 작업을 하여왔다. 현재 인문경영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E-mail: humanity365@naver.com
Blog: http://humanit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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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_왜의 재침은 없는가?

1장. 일본의 한반도 침공 시나리오

일본의 한반도 주기 침략
의 침구 연결고리: ‘신라 정토征討계획’
의 이국정벌론: ‘대고려 침공계획’
지속가능 전쟁의 결정판: ‘임진왜란 7년 전쟁’
일본 재침의 현재성: ‘강화도 조약’과 ‘한일합방’

일본의 한반도 재침론
재침 시차 예측의 단초
‘시차’의 유사성이 드러내는 것들

정한론征韓論, 근대 왜구의 침략 연료
아시아 정복을 위한 가장 가까운 나라, 조선

한반도 재침의 징후들
한반도 침략 불변의 법칙

2장. 일본의 흉기, 왜구의 시작
왜구, 그 질긴 악연의 시작
‘일본발 왜구’의 발호①- 조큐의 난
소강상태가 불러온 더 큰 침구
‘일본발 왜구’의 발호②- 남북조 시대
‘일본발 왜구’의 발호③- 료슌의 정치공작
왜구의 주체는 ‘도망자 무리’
동아시아 전체의 골칫거리, 왜구
일본 정부의 ‘모르쇠’ 전략
가까운 이웃과 만고불변의 원수

3장. 뿌리 깊은 왜구의 한반도 침략사
고구려의 경우 광개토태왕 대 백제와 왜구
신라의 경우 집중 침구 대상
공·수의 전환점: 장보고 시대
고려·조선의 경우 왜구는 한반도의 왕권을 두 번이나 바꿨다

4장. 왜구, 전쟁으로 전쟁을 말하다
병상신속兵尙神速 치고 빠지는 약탈 근성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침소분용侵消紛用 내외부 혼란을 통해 자국의 분란을 해소한다
구사협갈驅使脅喝 위협과 공갈로 광포한 이중 전략을 구사한다
쟁지선점爭地先占 잦은 침구로 주변국의 결정적인 목을 노린다
적시장서適時場噬 적절한 침구 시점을 노려 물어뜯고 확장한다
불신불측不信不測 기만과 불예측성으로 상대를 혼란에 빠뜨린다
일조돌변一朝突變 변신과 약탈로 지속침구의 조건을 상시화한다
부정가복不正假伏 상황이 불리하면 거짓항복으로 본심을 꾸민다
만무근린萬無近隣 철저하게 ‘이웃이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병이사립兵以詐立 사실왜곡으로 끈질기게 목적한 바를 사취한다
위국개동僞國個動 국가적 활동을 개별집단의 준동으로 위장한다
점입대담漸入大膽 초기에 불씨를 끄지 않으면 점점 대담해 진다
우물찬적優物纂敵 상대의 우위요소를 재침구 수단으로 활용한다
폭살왜성暴殺倭性 사무라이와 왜구 근성으로 광포하게 살육한다
만육지락蠻戮至樂 끝없는 노략질과 무자비한 살육만행을 즐긴다

5장. 왜구, 어떻게 막을 것인가?
격왜시장擊倭始場 바다의 적은 기필코 바다에서 막아라
막강 조선 수군이 사라진 이유
현장 중심 사고의 필요성
초비응왜招備應倭 국가혁신으로 대왜구전 우위를 갖춰라
전략무기의 등장
선공후비先攻後備 문제의 근원을 초기부터 뿌리째 뽑아라
강공근절의 방책
왜구토벌사의 생생한 교훈
병형상수兵形象水 적의 형세에 맞춘 ‘맞춤형 전략’을 짜라
왜구 퇴치를 위한 다각화 전략
고려, 힘에 의한 ‘절반의 성공’
조선, 다원적 해법을 찾다
회유책을 통한 외교적 해법의 한계

6장. 가해자의 피해자 탈 쓰기
중국의 ‘가짜 왜구들’
‘왜구’ 왜곡과 미화의 극치
왜구 미화의 말 못할 속사정
‘잘 나가는’ 일본의 역사 열등감
우리 역사에 나타난 가왜·부왜들
임진왜란 시기의 가왜·부왜들

7장. 불사왜구不死倭寇 부절왜침不絶倭侵
죽지 않는 왜구의 망령
왜구적 전통과 경험의 근대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왕국
현대의 왜구들
‘독도 문제’를 가져온 두 외부 세력 일본과 미국
한국 측의 대응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해석문제와 일본의 재침 가능성
한일회담 독도를 국제분쟁화하라
독도문제 전개 방식의 비사秘史
1910년 ‘일왕 생일 행사’ 풍경
2010년 ‘일왕 생일 행사’ 풍경
일본의 ‘남왜공정南倭工程’ 공작
왜구 근절을 위한 역사적 해법들
이이제이以夷制夷 방법론은 유효한가?
아시아 영토 분쟁 대책 동맹

맺음말_일본 ‘신왜구주의’를 경계한다

참고문헌 및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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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침구’와 함께 일본의 한반도 재침·침구가 예상되는 유력한 시기인 ㉬은 언제쯤일까? 이의 기준은 강화도 조약(1876년)에서 한일합방(1910년)까지 시차인 34년이 적용될 수 있다. 즉 침구 행위가 구체적으로 벌어졌고, 이를 조약 형태로 강제한 강화도 조약과 그 결과로 합방에 이르는 시점을 기준으로 볼 수 있다. 이 시차를 반영해 보면 일본 ‘재침설’이 가능한 시차표에 ‘( ? )’으로 남아 있는 시점(㉬)은 2045년이 된다.
그렇다면 일본 ‘신왜구’의 준동이 심각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2011년과 정확히 34년 시차를 보이고 있는 2045년은 한일 양국에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우리로서는 해방 후 100년이 되는 시점이다. 이 시기까지 일본은 우리의 뜻과 상반되게 어떤 식으로든 독도문제를 국제분쟁화하는 데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물론 이에 대한 우리의 대응력이 사태의 악화를 가로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책임은 의심할 나위 없다. –(1장)

조큐承久 원년(1219년) 1월, 3대 쇼군 미나모토 사네토모源実가 조카 구교曉에게 암살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에 막부는 새로운 쇼군으로 마사나리雅成 친왕을 맞이하고 싶다고 고토바後鳥羽 상황上皇에게 요청한다. 이에 대해 고토바 상황은 승인의 전제 조건으로 막부가 자신의 애첩의 소유 영지에 대한 권리를 철회할 것을 내세운다. 호조 요시토키北条는 이것을 막부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으로 보고 거부한다. 호조는 친왕을 쇼군으로 세우려 했지만, 고토바 상황의 반대에 부딪치자, 섭관가攝關家의 후지와라 요리츠네九條賴經를 새 쇼군으로 맞이한다. 이 같은 일련의 사태로 조정과 막부간 긴장은 날로 높아졌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권력 회복의 의지가 높던 고토바 상황은 조큐 3년(1221년) 가마쿠라 막부에 맞서 토벌군을 일으키게 되는데, 이 병란兵亂을 ‘조큐의 난’이라고 부른다. 이 난에서 상황上皇의 조정은 패하게 되는데, 이때 공가(公家, 조정) 편에서 싸우다 패한 무사들[武家]은 대다수 서국西國의 무사들이었다.
난의 결과, 패배한 공가 무사들은 토지를 몰수당하게 된다. 그러자 이들은 새로운 생존 조건을 찾아 세토瀨戶 내해內海에서 해상 무장 약탈 집단인 왜구로 세력으로 극적 변신을 꾀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왜구 발생에는 일본 내 혼란이 크게 작용한다. 또한 내해의 영주와 토착세력들이 약탈 행위에 깊숙이 연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2장)

(학살자들은) 부인 등을 보면 양편으로 좌우의 다리를 벌려 생식기를 검으로 찔러 일신一身을 사분오열로 자르며 여자는 이렇게 하여 죽이는 것이 묘미가 있다고 웃으면서 담화하였다. 또 우리 동포를 전차가 지나가는 다리에 목을 매달고 양다리를 끈으로 묶어 좌우에서 다수인이 끈을 잡고 신호하고 호응하면서 그네와 같이 흔들어 죽인 일도 있다. 신체를 전신주에 묶고 처음 눈알을 도려내고 코를 찔러 그 애통한 광경을 충분히 구경한 후에 배를 찔러 죽인 일도 있다. 각 기차 중에서는 다수의 왜노 등이 (조선인의) 사지四肢를 잡고 창밖으로 던져 역살轢殺하였고 남녀 수 십 인을 발가벗겨 보행시키고 또는 춤을 추게 하여 수 시간 동안 동물적 희롱을 감행시킨 후 찔러 죽인 일도 있었다. 또한 죽은 사람의 목을 묶어 끌고 다니면서 찌르고 차면서 시체에까지도 능욕을 가했다. 이후에는 한인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왜정부는 각 경찰서 구내 또는 병영에 이송 집합시키거나 광장, 하변에 끌고 나가 기백 기십인을 일시에 죽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동포의 시체가 퇴적하여 우전천隅田川은 흐름이 막혀 우리 동포의 피가 썩는 그 악취는 통행인의 호흡도 막히게 할 정도였다. –(4장)

일본 측의 연구를 보면, 가왜에 관한 기사를 근거로 왜구로 인한 피해보다 가왜에 의한 피해가 훨씬 더 컸다는 식으로 평가하고 있다. 심지어는 왜구집단을 “일본인과 고려, 조선인이 연합한 집단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며 ‘왜구=고려인 연합·주체설’을 주장하기도 한다. 제주도민이 왜구로 활약했고, 왜구의 대장이었던 아지발도마저 제주도 출신일지 모른다는 어처구니없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경인년(1350년) 이후 고려 멸망 때까지 약 반세기에 이르는 동안 왜구의 발호 중 ‘연합’이라는 용어에 어울릴만한 대규모 화척이나 재인 집단이 왜구와 공동 작전을 수행했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일본이 이처럼 한국은 물론 동아시아 국가로부터도 공분公憤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왜구 주체와 발생 원인을 한반도 내 사정으로 돌리는 저의는 무엇일까? 이는 문제의 원인을 상대에게 떠넘김으로써 왜구에 대한 책임 부담감에서 벗어나려는 전형적인 ‘왜구식 전술’의 일환이다. 이 점에서 뚜렷한 역사적 증빙으로써 왜구의 근거지가 북규슈 지역 일대의 도서 연안이었고, 발생 원인도 일본 내 혼란한 정치 상황에 기인한다는 점은 철저하게 회피된다. –(6장)

이들의 취지와 의도가 어떻든 간에 한일 간 일본의 독도 침탈 문제,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 등으로 나라의 존망存亡이 달린 상황에서 이들의 행태는 심히 위험천만한 행위이자, 경솔하고 역사 인식에 무지한 태도로 비춰질 수 있다. 나아가 일본에 정치적으로 악용될 우려마저 있다. 무토가 한 "일본은 여러분과 함께 가고 있다"는 발언은 이 점을 잘 보여준다. 그가 지칭하는 ‘여러 분’은 누구를 말하는 것이며, 무엇을 ‘함께 가고 있다’는 말인가? 우리는 일본대사가 하는 발언의 속뜻을 간파할 필요가 있다.
기업과 기관도 비난 받아 마땅하다. 기업이 국가를 대표하는 것은 기업 경영상의 분야일 뿐이지, 민족의 존립 문제와 직결된 국가적 역린逆鱗마저 건드릴 수는 없다. 이 같은 행태는 이들이 주장하듯 ‘예의·예우·관례’ 따위와도 상관없다. 또한 ‘보통행사’로 인식되거나 ‘사업상 차원’에서 벌어질 수도 없다. 이런 행태가 기업들의 ‘비즈니스적’ 차원이라면 일본과 거래를 하는 한국의 모든 기업들이 천황 생일에 화환을 보내기라도 해야 한다는 말인가? 과연 기업과 기관들의 이 같은 행태를 국민들이 선선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기업들이 이 점을 망각하고 국가의 자존自尊과 생존 문제 앞에서 방자히 경거망동 한다면, 그 같은 기업·기관을 공기公器로써 받아들일 까닭이 어디 있을까. 기업 수백 개의 이름을 세운 들 나라가 없어지면 무슨 소용이며, 나라를 구하는 한, 기업 수천 개의 이름을 뇌리에서 지운 들 무엇이 문제이겠는가. –(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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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남아있는 고난사가 존재한다. 인류 역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1620년간 이어진 900여회의 한반도 침략사. 일본은 그 장구한 시간 동안 ‘남왜공정’이라는 이름하에 침략을 되풀이 해왔다. 현재진행형인 이 침략사의 진앙지는 어디 일까? 그 뿌리를 찾아 들어가 보자.

오늘날 일본의 침략성은 일제의 군국주의에 기초하고, 한일합방과 임진왜란, 결국에는 1620년간 이어진 900여 회에 달하는 한반도 침구와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그 시작과 끝에는 일본 ‘왜구’가 있다. 오랜 시간 한일관계사를 관통하는 왜구 침구의 약탈·살인·피로의 연결고리가 현재에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역사는 되풀이된다. 불행한 역사일수록 반복성은 두드러진다. 앞으로 일본의 재침은 없는가? 우리는 일본 왜구의 재침에 대비한 예비서가 필요하다.

저자는 우리 민족의 생존을 끊임없이 위협해 온 왜구의 존재를 앎으로써 한반도의 존립 근거를 보다 튼튼히 하고, 적을 앎으로써 나를 알고자 하는 목적에서 이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우리는 일본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듯하나, 기실 일본이 저지르는 행태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단지 ‘학습된 증오’, ‘막연한 동경’ 내지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런 생각과 자세로는 또 재침을 당하지 말란 법이 없다.

지금 한일관계사에서, 우리는 안팎으로 시련을 맞이하고 있다. 경술국치 100주년이 되는 해인 2010년, 서울 한복판에서 성대히 치뤄진 일왕日王의 생일축하연에 한국의 정치인·기업인들은 일왕을 천황으로 높이며 생일을 경축하였고, 2011년에는 ‘마지막 왜구’ 3명의 독도 침구 시도가 있었다. ‘침구의 현재성’이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을 알려면 ‘왜구’의 존재를 알고, 그들이 행해왔던 ‘남왜공정南倭工程’의 실체를 알아야 한다. 현대 일본의 ‘극우주의’, 근대 일본의 ‘군국주의’, 고대·중세의 ‘왜구, 사무라이’가 일맥상통 한다. 저자는 이를 지금까지 일본이 지향해 온 침략주의 사상의 발로라는 점에서 ‘남왜공정’이라는 용어로 정의하고 있다. 고구려사 편입을 획책하는 중국의 ‘동북공정’은 귀에 익숙하지만, 일본의 팽창주의적 행태와 재침구를 우려하는 남왜공정에 대해서는 우리 내부에서조차 공론화된 적이 없다.

이 책은 한·중·일 각국이 공통적으로 경험한 바이자, 지금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문제들을 다뤘으며, 이를 구체적 사료를 통해 풀어가고 있다. ‘징비懲毖’의 차원에서 동아시아 사에 적지 않는 영향을 줄 것으로 믿는다. 저자의 오랜 고투의 흔적과 역작으로써 무게감이 읽힌다. 감히 평하건데, 21세기 들어 이보다 더 육중한 메시지를 던지는 책이 있었을까? 일독을 권한다.# 


 


 



 





미래 인재 키워드 ‘통섭’을 말하다
詩 쓰는 공학도, 문과 출신 엔지니어

詩 쓰는 공학도, 문과 출신 엔지니어 미래 인재 키워드 ‘통섭’을 말하다
얼마 전 뉴욕타임스는 20세기를 풍미한 경영학석사(MBA)가 저물고 전문이학계열석사(Professional Science Master, PSM)의 시대가 예상된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PSM은 과학, 수학, 경영, 법학 등 실용 학문을 함께 가르치는 석사 과정으로, 이공계 출신들에게는 인문·사회과학적 소양을, 인문·사회계 출신들에게는 과학 지식을 가르쳐 기업에 필요한 융합형 인재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인데요. 미국 대학이 선도하고 있으며, 영국과 호주의 대학들도 속속 PSM 과정을 개설하는 분위기라네요. CEO라도 과학을 모르면 경영이 힘들고, 엔지니어라도 인문학에 관심을 두지 않으면 경쟁력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라고 합니다.

“미래에는 어느 한 곳만 비추는 레이저 빔 형이 아닌 지적 시계가 360도 자유자재인 전구형 인재가 필요하다”는 미국 인사 관리 전문 컨설턴트의 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통섭형 인재는 학계를 넘어 재계까지 사회적 화두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생소한 개념이죠. <미즈내일>이 통섭을 담은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미래 인재의 키워드 ‘통섭’의 세계, 함께 책장을 넘겨보실까요?

진행 정주연·홍혜경 리포터 도움말 최재천 석좌교수(이화여대 에코과학부)·전경일 소장(인문경영연구소)·주경철 부학부장(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김준성 차장(연세대 생활관, 직업평론가)·김성도 주무(포스코 인사과)
인문·자연 소양 갖춘 멀티플레이어 통섭형 인재를 아시나요?
‘열두 가지 재주에 저녁거리가 간데없다’는 말이 있다. 사람은 모름지기 한 우물을 파야 한다는 뜻.
하지만 다양한 기술의 조합이 방점을 찍는 시대. 사회에서 요구하는 인재의 스펙도 변하고 있다. ‘한 우물 형’ 인재이되, 그 외 다른 우물도 넓게 팔 줄 아는 통섭형 인재가 그것. 한마디로 여러 분야의 담장과 경계를 가로지르며 새로운 지식과 가치를 만들자는 취지다.
취재 정주연 리포터 missingu93@naver.com
통섭형 인재는 팔방미인?
“통섭은 ‘줄기’란 뜻의 한자 ‘통(統)’과 ‘잡다’는 뜻의 한자 ‘섭(攝)’이 합쳐진 말로 ‘전체를 도맡아 다스리다’로 정리됩니다. 최근엔 통섭이 미래 학문의 바람직한 형태 중 하나로 거론되면서 점차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적 지식 간 융합’의 의미로 통용되는 추세죠.”
자연과학을 연구하는 학자지만 인문학 관련 활동도 왕성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최재천 석좌교수는 국내에 ‘통섭’의 개념을 처음 소개한 주인공. 과학뿐 아니라 문학, 역사, 철학 등 다양한 장르의 책이 천장까지 가득한 연구실에서 만난 최 교수는 “통섭이란 모든 것을 다스린다는 뜻으로 학문에선 지식의 통합이고, 산업 현장에서는 다양한 분야를 결합해 새롭고 창조적인 것을 만든다는 개념”이라고 정의했다.
“세상은 갈수록 복잡해집니다.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도 어느 것 하나 간단치 않죠. 어느 한 개인의 힘으로 풀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에요. 이런 문제에 접근하려면 통섭형 인재가 되어야 해요.”
하나의 문제를 놓고 다양한 각도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만이 복잡 무변한 시대를 헤쳐나가는 열쇠라는 것. 예컨대 인간의 두뇌를 연구하는 ‘인지과학’ 분야만 봐도 심리학, 철학, 컴퓨터공학, 기계공학 같은 부모 학문들의 통섭 과정이 있어야 새로운 자식 학문에 대한 연구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즉 인문학은 인문학대로 있고, 자연과학은 자연과학대로 있으되 남의 우물과 섞어 뭔가 가능한 것을 찾아가는 것이 통섭의 핵심. 따라서 통섭형 인재는 이것저것 조금씩 잘하는 팔방미인을 뜻하지는 않는다. 자기 우물 하나가 확실히 있되, 다른 전문 분야에도 충분한 소양을 갖춰 그 분야 사람들과 공동 연구가 가능한 인재가 통섭형 인재의 전형이라는 게 최 교수의 설명이다. 통섭형 인재가 되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를 들어보자.
“저는 우리 사회에서 정년이 없어질 것이라는 얘기를 자주 하는데요. 앞으로 다가올 초고령화 시대엔 일생 동안 70여 년을 일해야 합니다. 한 가지 직업으로는 버티기 힘든 시대가 오는 거죠.”
현재 중·고생들이 직장 생활을 할 시점에는 5번 이상 직업을 바꿀 것이라는 예측. 첫 직장을 40대에 나와도 전공이나 경력과 무관한 새 직종에 얼마든지 적응할 수 있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하니, 한 분야에만 갇히지 말고 지속적 넘나들기를 시도하며 통섭형 인재를 준비하는 일은 옵션이 아니라 필수라는 게 최 교수의 의견이다.
시대가 요구하는 통섭
통섭 논의는 학계의 울타리를 넘어 기업 생태계에서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미국의 유명한 디자인 회사 ‘이데오’의 채용 전략 중 하나는 기본적으로 전공에 대한 탁월한 지식과 기술은 겸비하되, 전공 외 다방면 관심과 지식을 갖춘 인재를 찾는다. 예술가이자 MBA 학위 보유자, 해군사관학교 졸업생이면서 역사학 전공자, 건축학 석사면서 가구 디자인을 섭렵하는 등 복수 전공자가 다수 포진되었다. 금융계 역시 경제·경영 전공자 외에 법학, 자연과학대 출신자를 적극 영입해 상경계 마인드에 공학 마인드를 접목하고 있다. 뉴욕 월가의 주요 금융 거래는 선물과 옵션.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직면한 기후 문제와 인류사적 문제 그 행간의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하면 금융 상품에 적용하기 어렵다는 판단. 금융학과 지질학, 생태학을 복수 전공한 인재들을 채용하는 것으로 패턴이 달라졌다.
국내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직업평론가인 김준성 연세대 생활관 차장은 통섭형 인재에 대한 기업의 요구는 미래의 얘기가 아니라 최근 취업 현장에서도 발생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 차장은 덧붙여 “일부 대기업은 공개적으로 통섭형 인재를 뽑겠다고 공언했다”면서 “엔지니어라고 해도 경영에 대해, 영업 통이라도 마케팅 전략이나 정치, 사회, 문화를 두루 이해하지 못하면 조직에서 환영 받지 못하는 시대”라고 전했다.
삼성생명은 의사 자격과 변호사 자격을 동시에 갖춘 보상 직원과 의사 출신 보험설계사 등 다양한 이색 인재를 채용하고 있다. 갈수록 지능적이고 복잡해지는 보험 사기에 대응하기 위해 의료와 법률을 꿰뚫는 인재가 필요하기 때문. 포스코 에서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문리(文理) 통섭형’인재가 많아져야 한다는 비전을 바탕으로 통섭형 인재 양성에 힘쓰고 있다. 신입 사원 채용에 앞서 대학 3~4학년생을 대상으로 일정 규모의 산학 장학생을 선발해 이과생에게는 문과 과목을, 문과생에게는 이과 기초 과목을 듣게 하며 통섭 과정을 실시하는 것. 포스코 인사과 김성도 주무는 “과거 인재상이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갖춘 I자형이었다면, 지금은 창의적인 생각으로 복수의 전문성을 발휘하는 통섭형 인재가 신입 사원 채용의 우선순위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기업들이 이처럼 통섭이란 개념에 매달리는 것에 대해 <초영역인재>의 저자이자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은 “통섭이 상상력의 원천”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기업에서는 제품과 기술에 대한 고정관념을 과감히 버리고 전혀 새로운 개념과 안목으로 무장한 신개념 제품들을 출시하려고 합니다.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개념과 안목을 제시하려면 단편적 지식이 아닌 복합적 사고와 통찰력이 필요하고,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기반으로 한 상상력과 창의력이 있어야죠.” 이렇게 넓고 깊은 사고 유형은 한 종류, 한 분야에 안주해 얻을 수는 없을 터, 다양한 학문 분야를 아우르고 혹은 전혀 이질적인 생각과 관습을 더 높은 차원에서 바라볼 줄 아는 시각, 즉 통섭의 관점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전 소장의 설명이다.
최근 주목 받는 다수의 제품들 역시 통섭을 모태로 한 융·복합 기술의 결과물. 노키아가 개발하는 미래형 휴대폰 ‘모프’는 상황에 따라 휴대폰의 모양과 색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 카멜레온의 보호색 기능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거미줄의 원리를 응용한 것. 최첨단 기술에 생물학이라는 새로운 분야의 특성을 활용한 것으로, 기업이 원하는 통섭의 전형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 받는다. 2007년 <타임>지가 꼽은 ‘올해의 상품’에 선정된 도마뱀 로봇 ‘스티키봇’ 역시 한 번 달라붙으면 절대 떨어지지 않으면서 발걸음을 옮길 때면 매우 사뿐하게 움직이는 도마뱀의 발바닥에서 영감을 얻어 개발되었다. 로봇공학에 도마뱀에 대한 생태 연구가 합쳐져 새로운 아이디어를 개발한 사례다.
Tip 과거에서 현재까지 통섭형 인재는 누구?
■ 세종대왕
수학, 음운학, 음악, 천문학 등 수많은 학문에 열정을 보인 창조적 만능인. 재위 기간 동안 국방과 과학, 경제, 예술, 문화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찬란한 업적을 남겨 위대한 성군으로 추앙 받고 있다.
■ 다산 정약용
조선 정조 때의 문신이며, 실학자·저술가·시인·철학자·과학자·공학자다. 조선 실학을 집대성했고, 수원화성 건축 당시 도르래 원리를 이용해 거중기를 고안하여 건축에 많은 도움을 주는 등 여러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 레오나르도 다 빈치
화가이자 조각가, 발명가, 건축가, 기술자, 해부학자, 식물학자, 도시계획가, 천문학자, 지리학자, 음악가였다.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통섭형 인재.
■ 카이스트 석좌교수 안철수
의사 출신이나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프로그램인 ‘V3’ 제품군의 개발자로 유명하며, 그 활동의 연장선에서 설립된 안철수연구소의 대표이사로 활동했다. 그 후 MBA를 수료하고 현재 카이스트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석좌교수로 재직 중. 그의 모든 궤적이 학문 간을 넘나드는 창의적 관심에서 나온 산물이라고 평가 받는다.
■ 애플 CEO 스티브 잡스
침체 위기에 놓인 애플을 화려하게 부활시킨 스티브 잡스는 다양한 분야를 통섭하여 소비자들의 욕구를 정확히 충족하는 제품을 연이어 히트시키면서 세계 최고의 경영자인 동시에 이 시대 통섭형 인재의 대표 주자로 거론되고 있다.
■ 칼리 피오리나 전 휴렛패커드 회장
1998년부터 경제 전문지 <포천>의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기업인’ 1위에 6년 연속 선정될 정도로 비즈니스에 대한 분석력이 뛰어났다. 대학에서 사학과 철학을 전공하고 MBA, 공과대학 석사까지 두루 섭렵했지만 “비즈니스에 대한 영감은 경제학이 아니라 중세철학에서 얻었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다.
통섭형 인재가 되려면 ‘배우는 법’을 배워라
지식 정보 사회가 요구하는 통섭형 인재는 시대적 대세다.
문제는 방법론. 무엇보다 고등학생 때부터 문·이과로 나뉘어 교육 받는 우리 아이들에게 통섭은 요원해 보인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통섭적인 교육을 받으면 통섭의 시대는 훨씬 앞당겨지고, 가장 먼저 결실을 맺어야 할 곳은 교육”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 추상적 개념이 생명력을 얻어 뿌리내리고 열매를 맺기 위해 어떤 로드맵이 필요한지 알아봤다.
취재 정주연 리포터 missingu93@naver.com
융합 학문으로 지속적 넘나들기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가 바뀜에 따라 교육기관의 인재 육성 목표도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다. 다양한 분야를 섭렵한 통섭형 인재가 부각하며 교육도 분과 학문의 복합이나 융합을 통한 창의적 인력 양성이 이뤄지고 있다.

최근 대학마다 앞다퉈 운영하는 ‘자유전공학부’가 대표적인 예다. 현재 40여 개 대학에서 운영하는 자유전공학부는 세부 전공을 미리 정하지 않고 계열별로 신입생을 모집, 일정기간 동안 기초 교양과목을 이수한 뒤 전공을 선택하도록 하는 제도. 아직은 걸음마 단계라 그 효과와 실적을 논할 수 없지만, 개별 학문의 한계를 극복하고 학제 간 상호 교류를 통해 연구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게 도입 취지임을 감안할 때 통섭형 인재가 되는 데 유리한 고지를 점유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주경철 부학부장은 자유전공학부의 특성에 대해 “‘고기 잡는 법’을 배우는 곳”이라고 전했다. 지식 내용 자체보다 지식을 탐구하는 사고의 방법을 교육하는 것이 주목표라고. 전공이 다른 교수들이 공동으로 한 과목을 가르치는 게 강의 방식인데, 예를 들어 ‘생명’이 강의 주제라면 생물학, 미술, 철학 교수가 참여해 철학 쪽에서 보는 생명, 예술에서 보는 생명, 생물학에서 보는 생명을 가르친다. 이러한 수업 방식은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한 공학도 양성, 공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한 인문학도 양성이라는 통섭형 인재 육성의 산실 역할을 충분히 하는 셈.

하지만 ‘양을 쫓다가 길이 너무 많아 양을 잃어버렸다’는 고사처럼 자칫 여러 가지 분야를 추구하다가 이도저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가 될 수도 있을 터.

이에 대해 주경철 부학부장은 “융합은 학문의 벽을 터서 새로운 방을 하나 만드는 것과 같다”면서”인접한 학문의 면면을 관찰하고 그 과정을 바탕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려면 융합 자체가 깊이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즉 통섭의 개념이 여물려면 얕게 보고 엷게 아는 것을 경계하고, 이종적인 분야를 심층적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각 대학이 뚜렷한 목표 아래 뚜렷한 프로그램을 구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게 주 부학부장의 설명이다.
어느 한 분야 문외한 만들지 말 것
통섭형 인재 육성을 위해 융·복합 학과의 개편과 정착이 교육이 할 일이라면, 평소 자녀가 어느 한 분야에 매몰되지 않게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기초를 두루 갖출 수 있도록 돕는 것은 부모의 역할. 이화여대 최재천 석좌교수의 조언이다.
“글 좀 못 쓴다고 이과 쪽 교육만 하고, 수학 좀 못한다고 자연과학의 문외한을 만들지는 마세요. 자연과학이라는 게 물리 이론을 확실하게 꿰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에요. 과학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나가는 것이 중요하죠. 직업을 여러 번 바꿔야 할지 모르는 미래에 수학, 과학과 관련 없는 직업만 선택할 수도 없잖아요. 언제 어떤 직업으로 갈아타더라도 변신이 가능하도록 융통성과 응용력을 길러주세요.”
현행 입시 체제에서 이게 불가능하다고 생각된다면 적어도 아이가 통념을 깨는 진로를 선택했을 때 “야, 그런 거 해서 어떻게 먹고살려고 해?”와 같은 소리는 피하라는 게 최 교수의 당부.
“무조건 지세요. 아이들의 느낌을 믿으세요. 아이가 춤춰야겠다고 하면 춤추는 것에 미래가 있다는 걸 아이들이 더 직감하기 때문이에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면 스스로 고무돼서 깊고 넓은 공부를 할 수 있답니다. 아이가 하고 싶다는 것에 ‘묻지 마 투자’를 하라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은 학문 간 가로지르기를 손쉽게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독서만 한 게 없다고 조언했다. “특히 고전을 읽으라고 권하고 싶어요. 우리 아이들이 지금 받는 교육도 인류의 누적된 지식의 자산입니다. 고전을 통해 교과서에 나오지 않은 지식의 광야에 자기가 가진 지식의 파이프라인을 들이댈 때 통찰력이 만개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함께 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 역시 필수적인 요소. A 우물을 파다가 B 우물로 옮겼을 때 당황하지 않고 그곳에서 함께 우물을 팔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능력 역시 통섭형 인재가 갖춰야 할 핵심 역량이기 때문이다.
Tip 통섭형 인재 되는 3가지 공부 습관
01 좌뇌·우뇌 영역을 나누지 마라
두뇌 기능은 칼로 자르듯 정확히 가를 수 없다. 다시 말해 자극을 받으면 뇌의 모든 부분이 동시에 작동한다. 통섭형 인재가 각광 받는 시대에 뇌의 기능을 가르고, 학문의 경계를 중시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어느 과목은 쉬운데 어느 과목은 자신이 없다고 생각해 어느 한 분야의 공부만 하는 것은 위험한 행동. 못하는 과목이나 분야도 관련 잡지나 전문 서적을 찾아 읽어 흥미를 되살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02 생각을 확장하라
모든 학문은 인간의 생각과 연결된다. 따라서 공부를 정말 잘하려면 사소한 지식에도 반드시 자기만의 생각을 더해 오래 기억하도록 노력하자. ‘부르주아’라는 단어를 공부할 때 ‘금전이나 물리적인 자산을 이용해 돈을 버는 사람’이라고 정의를 달달 외우면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부르주아란 ‘빵집이나 식당 등 물리적 자산을 가지고 종업원들을 고용해 노동임금을 지불하고, 빵이나 음식을 팔아서 이윤을 남기는 사람’이라고 자신의 생각을 보태 이해하면 아무리 오래 지나도 그 의미가 잊히지 않는다.

03 상상의 연대표를 그려라
그림을 이용해 암기하면 놀라운 기억력을 만들 수 있다. 그림으로 기억력을 높이는 가장 좋은 암기법은 상상의 연대표. 상상한 것들을 머릿속에 그려 순서대로 묶는 것을 말한다. 역사책의 연대표로 시작해보면 좋다. 예를 들어 1945년에 우리나라가 해방되었다는 것을 본다면 연대표에 1945년을 상징하는 줄을 긋고, 그 위에 중앙청에 태극기를 거는 병사들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동시에 우리나라 허리에 삼팔선이 그어지는 상황도 상상해보는 식.
<출처: 내일 신문, 미즈내일> 웹사이트: http://miz2.brainweaver.co.kr/community/board_view.asp?alcode=01&aIdx=4 

이번에 낸 <구씨이야기 허씨이야기>는 동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성공 동업에 대한 스토리텔링이 거의 없는 대한민국 경영계에 LG, GS그룹은 좋은 사례가 아닐까 합니다. 언론을 통해 배포된 보도자료를 아래 옮겨 봅니다.

구씨 이야기

허씨 이야기


누구나 알지만 잘은 모르는 LGGS 그룹 반세기 동업의 진짜 비밀!

“동업은 망한다!”는 세간의 편견을 산산히 깨버린 LG GS 그룹 성공 동업의 주역,

구씨와 허씨 집안 사람들

그들은 어떻게 성공적인 동업을

이뤄 낼 수 있었을까?

2010년 LG는 왜 오너 경영체제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가?

누구나 알지만 잘은 모르는 LG·GS그룹 반세기 동업의 진짜 숨은 비밀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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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고 싶다면 손을 잡아라!

상생 동업 정신은 글로벌 시장을 제패하는 성공의 나침반이 된다!

 "동업은 하지마라!"는 동업 불모지대 대한민국에서 LG GS그룹을 대표하는 구씨ㆍ허씨 두 집안사람들은 어떻게 3 57년간 성공적인 동업을 할 수 있었을까?

자본금 300만 원으로 출발한 LG 2005년 그룹 분리시 자본금 8,794억 원, 자기자본 27,534억 원, 자산 39,949억 원의 그룹이 되어 있었고, GS는 자본금 4,735억 원, 자기자본 15,264억 원, 자산 21,801억 원의 그룹이 된다.

그룹 분리 후 5년이 지난 2010 LG자본금 74000억 원으로 247만 배 늘고, 매출액도 125조 원으로 41만 배 넘게 성장한다. 창업 시 20여 명이던 직원은 국내외 18 6000명으로 9,300배 늘어난다.

GS 그룹도 계열분리 전 LG와 한 지붕 아래 있을 때는 매출이 231,000억 원이었으나, 2008년에는 49 8,000억 원으로 5년 동안 2배 이상 늘어난다. 자산 규모도 2004 18 7,000억 원에서 2009 39조 원으로 109퍼센트 늘어난다.

이렇게 엄청난 성장을 이뤄 그룹이 된 동업의 비밀은 무엇일까? 더구나 그룹 분리시 한마디의 잡음도 없이 57년만의 동업을 완성해 내며, 각자의 길을 걷게 된 원동력은 무엇인가?

세계 경영학계의 연구 대상이 되고 있는 생생한 동업 교과서를 통해 동업의 비밀과 우리가 벤치마크 해야 할 점들을 살펴보면, 회사를 키우는 대원칙이 보인다. LG동업 사례는 대기업만의 벤치마크 사례가 아니라, 소규모 기업 및 창업을 준비하는 이들에게도 훌륭한 산 교육이 된다.

이같은 상생, 협력의 동업 원칙과 진짜 비밀은 무엇인가?

 

혼자 할 수 없다면, 손을 잡아라!

글로벌 경영의 열쇠는 제휴ㆍ협력이다

LG와 GS그룹을 키운 성공 동업정신을 통해

21세기 상생의 조건을 DNA화하라

 

필립스는 1999 9 LG전자에 16 5000만 달러를 투자, LCD합작사를 설립키로 합의한다. 이때 크리스털 리 전 회장은 LG를 합작파트너로 택한 배경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다.    

“한국에 투자를 결정하면서 파트너를 찾기 위해 거의 모든 것을 체크했는데 LG그룹의 구씨와 허씨가 50년 이상 동업자로서 아무런 잡음 없이 경영하는 걸 보고 대단히 깊은 감명을 받았다. LG는 외국기업과의 합작이 이미 13건이나 되는데 이는 LG가 양보와 타협, 신뢰를 바탕으로 한 기업이란 것을 말해 준다.

크리스털 리 회장의 동업 찬사에 구본무 회장은 이렇게 응수했다.

“동업은 결혼과 같은 것이다. 생각이 다르고 자라온 환경이 전혀 다른 남녀가 함께 사는 것처럼 동업자도 서로 신뢰를 바탕으로 양보와 타협의 정신을 잃지 않아야 한다.

이런 화답에 당연히 새로운 파트너사가 흡족했을 것은 당연하다. 성공한 동업 경험이 해외 합작 시 빛을 발했던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우리는 흔히 상생·협력이란 말을 유행처럼 즐겨 쓴다. 말은 그럴듯하지만, 실제 이를 실천에 옮겨 성공했다는 사람이나 회사를 찾기란 쉽지 않다. 자기 욕망만 앞세우다보니 갈라서고 싸우기 일쑤다. 그 틈에 기회를 놓치고, 회사는 더 작아지거나 끝내 문을 닫고 마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동업을 한다고 하지만 혹시 상대가 내가 모르는 다른 주머니를 꿰찼을까봐 늘 좌불안석이고 불신만 팽배하다. 믿고 맡긴 도끼에 발등을 찍히는 경우가 허다하다고들 불평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동업에서 LG처럼 성공할 수는 없을까? 이런 질문에 대해 LG GS그룹의 동업사는 명쾌한 해답을 제시한다. LG GS의 성공적인 동업과 동업 완성은 세기적 사건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들의 성공 동업을 다룬 책은 없었다. 심지어는 재벌그룹이라서 다 잘된 것인 양 오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상생협력을 꾀하고 싶거든 요렇게만 하라!

구씨·허씨간 동업은 단순히 양 집안간 동업이라는 차원을 넘어 필립스와의 제휴 사례에서 보듯, 글로벌 차원의 제휴·협력 관계로 발전해 간다. 두 집안이 잘해 세계적인 기업들과의 협력 관계의 초석을 놓은 것이다. 그것이 오늘날 LG·GS그룹의 글로벌 경영의 초석이 된다.

각자의 욕망에 충실하면서도 더 큰 성공을 위한 팀웍을 탁월하게 발휘한다. 희생과 배려의 정신이 밑바탕에 깔리고 전제가 된다. 자신을 버리고 낮춤으로써 상대를 높이며, 한국 기업사의 일획을 긋는 기업사를 이룬다. 이런 정신은 동업내지 협력 관계를 고민 하는 기업들에 가장 훌륭한 모범이 된다.

계속 성장하기 위해 손을 잡는 원칙은 나홀로 성공보다 보다 함께 손을 잡는혁신적인  성공 동업 패러다임을 보여준다.

LG GS그룹은 창업자 구인회의 기업가 정신에서 발원된 이기는 동업을 그룹 성장의 전략이자, 대원칙으로 내세웠다. 직원들조차 동업자로 인식한 창업자 구인회 회장의 인식의 사고, 철학의 깊이가 21세기적 협력 기반을 이미 오래 전에 놓은 것이다.

이기기 위해 그들은 투명성과 합리성을 원칙으로 세우고 피나는 노력을 함께 했다. 동업 성공의 열쇠는 부단한 상호 신뢰와 피나는 노력의 결과임을 뼈져리게 알게 한다.

여기에는 철저한 동질 의식, 공동체 문화가 함께 한다. 만약 오늘날 기업들이 이와 같은 상생 협력 구도를 취하거나, 직원들이 이와 같은 헌신적 자세를 보인다면 성공하지 못할 기업은 없을 것이다. 인화를 그룹 발전의 정신적 자양분으로 삼은 구인회식 리더십이 오늘날 새롭게 주목되는 이유이다.

요즘 재계에서는 지난 10년간을 풍미했던 전문경영인 중심 경영 논의에서 오너 경영이 크게 부상하고 있다. LG도 그런 경우에 해당된다. 단기적 수익으로 평가받는 전문경영인에게는 장기적 플랜이 나올 수 없다는 판단이다. 많은 임원들이 정해진 짧은 임기성과에 대한 압박때문에 장기적 구상과 실행을 하기 어렵다고 볼멘소리를 하지만, 실은 임원들의 임기가 한시적이거나 매출 압박 때문만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대신, 기업가적 정신으로 리스크를 감수하고라도 더 큰 주주 이익을 위해 조직 내외부를 설득해 내고, 고객가치를 전면에 내세워 실천해 내려는 의지의 부족이 보다 크다. 쉽게 말해 위험을 감수하고 나서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안주하려는 성향, 기본만 하려는 치레형 경영’, 곳감 빼먹는 식의 무사태평주의가 글로벌 경쟁에서 밀리게 만든 주요인이라는 것이다. 그야말로 주인다운 태도가 미흡하다는 얘기다. 그 결과가 국내 휴대폰 업체가 맞딱뜨린 애플과 구글이라는 복병의 등장이라는 것이다.

글로벌 경쟁 환경에서는 과거처럼 관리중심 마인드로는 경영의 본령을 치고 들어가 지배할 수 없다. 21세기 구인회식 각오로 현장에서 살고, 현장에 뼈를 묻겠다는 실천적 각성만이 혁신의 본질이고, 그 힘이 우리 내부에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LG그룹의 창업자 구인회의 사업 일생을 통해 혁신의 본령과 사업이 아닌, 산업을 송두리째 만들어 내는 비결이 무엇인지 상세히 보여준다. 2008년 세계 경제 위기 이후 방향타를 잃은 기업들에 하나의 이정표가 되리라 본다.

더불어 가치 중심적 사고를 통해 멋진 페이퍼로 남는 컨설팅 결과물이 기업을 키우는 게 아니라, 우리 내부의 자산을 통해 진정한 가치를 발굴하는 힘이 회사를 일으켜 세운다는 너무나 명확한 진실을 알게 된다. 이 책 출간과 더불어 기업들에는 내부의 힘을 찾는 작업의 일환으로 사사(社史)읽기열풍이 벌어질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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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창업ㆍ수성보다 더 큰 동업정신

 

1장 부()를 일구어 내는 과감한 도전

3 57년간 동업이 끝나는 날

돈 버는 인연은 가까이 있다

스무 살 청년 구인회의 도전

발 딛는 곳이 사업이 시작되는 곳

기회를 포착하는 매 같이 날카로운 눈

사업의 출발, 피나는 결단

커가는 경험, 확장되는 사업의 눈

주판알 튕기며 처음으로 금융을 접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원칙을 준수한다

원천 경쟁력을 얻기 위한 '찾아가는 전략'

내일이면 내일의 바람이 분다

흐름을 갈아타는 성공의 법칙

돈보다는 기회를 움켜잡아라

사람이 들끓는 곳, 새로운 기회와 시련

 

2장 세상을 바꾸는 기업가 열정

구씨ㆍ허씨의 운명적 만남

사소한 인연이 불러 온 대변화

생산과 유통을 수직 통합하라

혼란의 시대에 극도의 몰입을 하다

'깨지지 않는 뚜껑' 프로젝트를 아시나요?

산업의 머리채를 잡고, 하나에서 열까지

누가 뭐래도 품질만은 꼭 잡는다

시도 때도 없는 창조적 혁신

혼을 다하는 경영만이 해답이다

헌신, 참여, 혁신이 들끓는 용광로 정신

구인회의 복사판, LG '리틀 창업자들'

개척자 정신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

시장 석권의 열쇠, 얼리 버드가 되어라

서로 다른 산업을 엮어내는 컨버전스의 힘

하늘은 언제나 뜻 가진 자를 찾고 있다

80년대식 도움닫기 전략

 

3장 기업은 오로지 사람이다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우위를 향한 싸움

한번 입장 바꿔 생각해 보시오

구인회식 남다른 인재 얻는 법

'열 사람의 못난 힘' 이론

새로운 도전을 향한 불타는 집념

사업은 생존의 방향으로 움직이는 생물

양 날개 전략에서 핵심 3축 전략으로

도약을 위한 일대회전(一大會戰)

혼자 할 수 없다면 손을 잡아라

뿌리까지 야금야금 파먹는 전략

<동업정신을 키우는 골프의 룰>

럭키, 드디어 해외진출의 거보를 내딛다

격전지 한복판에 태극기를 꽂아라

빈손으로 공장 짓는 봉이 김선달식 경영법

재 뿌리는 놈 나타나야 먹음직스러운 사업

LG는 재벌정책의 수혜자인가?

LG, 21세기 지속가능경영의 조건

 

4장 동업이라 불리는 예술

안살림ㆍ바깥살림 보다는 업()에 따라 헤쳐 모여!

성공 동업의 공통 DNA, '골드(Gold)'

기업 건전성과 성장성의 두 마리 토끼잡기

책임 다하는 동업과 깔끔한 이별의 법칙

죽어도 되는 동업과 죽어라 안 되는 동업

동업의 글로벌 확장판: 해외 제휴

동업의 시작과 끝, 그리고 셈법 통일

근수ㆍ의리ㆍ신뢰의 3균형 법칙

 

5 LGGS() 사람들 이야기

자식ㆍ기업ㆍ경영철학의 변천사

안팎을 이끈 맏이 리더십

맏이끼리 내려 받는 숨은 경영철학

몸에 밴 절약 정신: 돈 버는 것 만한 재미가 어디 있어?

잔돈 5환의 경영학

담장 밖으로 소리가 새나가지 않게 하라

시대를 뛰어넘는 지속가능한 경영의 원칙들

더 큰 미래를 향한 동업 정신

 

맺는 말

<부록>

ㆍ구인회 어록

ㆍ구자경 어록

<서로를 키우는 상생ㆍ동업의 20가지 원칙>

<반드시 실패하는 동업의 11가지 특징>

 

<참고문헌>

'<구씨 이야기ㆍ허씨 이야기>를 통해 알아 본 성공 동업의 길' 교육 프로그램 안내

  

책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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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봄, 다도해에 물고기들이 몰려들자 구인회는 부족한 일손을 돕기 위해 배에 함께 올라탄다. 그런데 별일 없을 것 같던 배가 난데없이 고장을 일으키는 바람에 한 밤 내내 파도에 떠밀리며 견뎌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다들 불안해 떨며 잠 못 이룰 때 구인회는 태연하게 코를 골며 잘도 잤다. 주변 사람들이 놀라서 물었다.
아니,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불안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볼 때 구인회는 터무니없이 태평한 사람으로만 보였다. 그가 대답했다.

어쩌겠나? 이미 이리된 것을. 마음 편하게 먹고 뭐 재미나는 이야기나 하면서 때를 기다리세. 내일이면 또 다시 내일의 바람이 불 걸세.”

아직 대기업 LG()로 발전해 가기 훨씬 전의 일이었지만, 이 젊고 야심찬 창업자는 대담함을 든든한 사업 밑천으로 삼고 있었다. -(1)

 

멀리 내다보면서 무리 없이 합리적으로 재산을 지킨 구인회의 부의 철학은 창업과 수성을 동시에 교묘하게 엮은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버는 것보다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원금주의 사고는 부의 증식의 가장 명확한 원칙이라는 것이 입증된다. 이런 판단이 함께 했기에 구인회는 훗날 대기업가로서 성장한다. 구인회식 갈아타기는 숫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훗날 LG를 기약하는 초석이 된다. -(1)

 

구인회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화장품 얘기를 들었던 해는 그의 나이 불혹인 41살일 때였다. 원숙한 사업가로서 사업 전반을 읽고 미래를 내다보는 눈이 어느 때보다 확대되었을 시기였다. 구인회는 쉽게 스쳐 지나 갈 수 있는 이야기에도 귀 기울였다.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는 전깃불이 번쩍 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가치 발굴의 안목이 작용한 것이다.

LG가 훗날 대기업의 반열에 오르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귀인을 꼽으라면 이때 당구장에서 만난 김준환일 것이다. 사업은 사람과의 인연이 빚어내는데, 그가 누구냐에 따라 화를 불러 오기도 하고 복을 불러오기도 한다. 복을 불러 오는 이를 가리켜 귀인(貴人)이라 부른다. 성공하는 기업가는 귀인을 만나게 되고 결정적인 시기에 그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 복이 있어야 사업을 한다는 말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2)

 

그것은 전쟁과 산업을 상호 연결시키는 대담한 착상이었다. 과거 구인 상회나 어물 장사 때처럼 물건을 팔고 얼마의 이문을 남기겠다는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그 보다는 저 막강한 자본주의 본령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기가 막힌 물건들과 한판 붙고 싶다는 야심찬 구상이었다.
내가 저 놈의 제품들과 한판 붙어 봤으면…….”

생존을 모색하고 있는 기업가의 마음속에서 일고 있는 투지는 남다른 전략을 머릿속 캔버스에 그려나가게 했다. –(2)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것끼리 상호 원인이 되고, 결과가 된다면 어떨까? 산업은 이종 간 결합도 가능하지만, 이종을 배태하는 역할도 한다는 것을 LG 발전사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초기 크림 뚜껑을 만드는 데에서 훗날 금성사(LG전자)의 줄기가 뻗어 나오는 것도 알고 보면 같은 맥락이다. –(2)

 

그룹 분리 6년차인 지금도역할분담의 미학이라고 경영학자들이 치켜세우는 구씨ㆍ허씨 간 성공적인 동업은 허만정 씨가 후손에게 당부하고 간 이 말에도 함축적으로 드러나 있다.
경영은 구씨 집안이 할 테니 돕는 일에만 충실해라.”

둘 다 자기 포지션을 지키라는 말이겠다. 이런 당부는 두 집안 간 동업의 원칙과 성공 동업의 절대조건으로 처음부터 역할분담론을 내세웠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나아가 LG에서관습헌법이 되어 그룹 분리 시까지 지속됐다는 점에서 의미롭다. –(3)

 

구인회는 고향사람들에게 점심 대접을 하고는 잔돈 5환을 거슬러 받을 정도로 잔돈푼에 연연했다. 잔돈이 푼돈이 아니라는 생각에서였을 테지만, 그보다는 돈에 대한 습관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점은 창업자면서 동시에 수성 CEO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살아서 골프를 함께 하던 지인들도 구회장을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평소 적은 돈에 대해 무서우리만큼 절약을 강조했던 분이다. 여름철에 코스에 나갈 때면 코스에서 쓸 지폐를 비닐에 싸서 단정하게 호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아무리 적은 돈이라도 땀에 젖지 않게 소중히 간직한 것이다.”

구회장이 라커룸에서 갈아입는 속옷은 고급품이 아닌 평범한 것이어서 지인들을 놀라게 했다. –(5)

 

 

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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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개인이나 기업이든 세상이 깜짝 놀랄만한 기적을 이루고 싶어 한다. 그런데 다들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홀로 싸움에 나서기 때문이다. 원인이야 어떻든 홀로 전투에 임하고, 결과를 독식하려 한다. 그 사이 경쟁자들은 발빠르게 제휴·협력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입지를 구축한다.

우리나라 기업사를 보면 무수한 기업들이 존재해 왔지만, 나홀로 승리가 아닌, 함께 하는 승리를 이뤄낸 기업은 많지 않다. LG와 GS는 함께 씨앗을 뿌리고 함께 열매를 거둔 성공 동업 사례로 가장 돋보인다.


누구도 이룰 수 없는 성공 동업사를 이뤄 냈지만
, 그 원인을 살피기 보다는 재벌기업이라서 그렇게 되었을 거라는 사고에 매몰된다. 하지만 실상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렇지 않다.


창업자 구인회는 스무살 무렵 포목점을 차리며 처음으로 기업가의 길로 들어선다
. 그에게는 숫한 난관과 시련이 닥쳤지만, 이 놀라운 창업자는 시련 앞에서 굴하지 않고, 묵묵히 기술 개발과 상품 혁신에 몰두한다. 남들이 안하는 분야에 뛰어들어 초기 프라스틱과 전자산업의 역사를 온 몸으로 쓴다.


남들은 장사 수준에 머물 때
, 훗날 산업이 될 싹이 될 분야에 미리 뛰어들고 고군분투 한다. 사업은 단일한 사업거리로 국한 된 게 아니라, 산업이 되고, 이전의 성공경험은 성공경험의 확대재생산과 우위범람전략을 통해 급속히 타영역까지 진출하는 괘거를 이룬다.
여기에 시대의 변화를 읽는 눈도 탁월해 통찰과 예지력이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된다. 그것이 그룹의 토대를 갖추게 된 배경이다.


그의
평생에 걸친 기업가 정신은 차별화와 함께 상생과 협력의 정신이다. 전자는 새로운 사업으로 나타나고, 후자는 그룹의 사시인 인화로 집약된다.
인화 정신과 함께 LG를 키운 정신적 뿌리는 동업 정신이다. 믿고 맡기며 철저하게 자기 책임을 다하고 가치에 집중한 것이다. 그것이 그룹의 토대가 됐다. 그 역할을 한 사람들이 구씨·허씨 집안 사람들이다.


이 책은 창업자 구인회를 비롯 구씨·허씨 집안 사람들의 활동과 역할을 통해
LG가 어떻게 성공 동업을 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나아가 서로 상생하기 위해 어떤 양보와 배려의 정신을 기울였고, 프로 기업가답게 명쾌하고 투명한 셈법을 적용해 왔는지 잘 보여준다.


국내 최초로
LG GS그룹의 동업을 다룬 이 책은 그들의 성공의 비밀이 무엇이었는지, 창업과 동업 정신의 뿌리를 살펴보게 한다. 나아가 21세기 LG·GS그룹의 향방에 대해서 가늠케 한다.


동업은 그저 작은 일로 남들과 손 잡는 게 아니라
, 확장판은 글로벌 제휴와 협력
이라는 결과로 나타난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처음의 만남은 결코 작은 게 아니다. 두 집안의 동업이 글로벌 제휴의 원천과 신뢰의 근거가 되었다는 점은 작은 성취가 아닌 보다 큰 성취를 기하고자 하는 기업과 개인들에게 큰 교훈이 된다.


누구나 동업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동업을 통해 양보하고 함께 키우는 정신을 가진 기업이라면 21세기 초우량 기업이 될 정신적 조건을 갖춘 셈이다. LG·GS 동업사는 이를 잘 보여준다. 다만, 그럴 준비가 안되어 있는 기업 관계, 예컨대 LG와 삼성의 동업은 수포로 돌아가며 불신만 남는다. 동업에는 화학적 코드가 맞아야 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LG GS그룹을 키운 성공 동업의 원칙들로 <서로를 키우는 상생ㆍ동업의 20가지 원칙>과 피해야 할 <반드시 실패하는 동업의 11가지 특징> 등은 상생 협력을 통해 성장을 이루고자 하는 기업들이라면 항시 책상 앞에 붙여두고 염두에 두어야 할 바이다. 넓은 의미로 동업은 더 큰 기업, 더 크기 위한 기업만이 취하는 성장의 공식일 게 분명하다.

 

<서로를 키우는 상생ㆍ동업의 20가지 원칙>

ㆍ사업의 귀인을 만나라. 사업은 어떤 경우든 사람과의 소중한 만남에서 비롯된다.

ㆍ인연의 무게를 알라. 크고 작은 인연이 맺어져 성공 동업이 이루어진다. 인연이야말로 기업을 키우는 토양이 된다는 것을 성공적인 동업사는 잘 보여 준다.

ㆍ같이 할 수 없는 차이점보다는 같이 할 수 있는 점을 찾아라.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긍정적 요소는 키우고, 부정적인 요소는 시작부터 완벽하게 통제하라.

ㆍ동업자 모두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피땀 어린 자세로 뛰어라. 동업은 사업에 대해 참여자 모두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뛰어야 한다. 과정 중 목표가 다르거나 같은 목표를 잃어 버렸다면 즉시 짐을 싸서 빨리 떠나라.

ㆍ 딴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일에 몰두하라. 일이 없거나 맥이 빠지면 본전 생각만 난다. 그럴 땐 동업에 균열이 가기 시작하는 악순환 고리에 빠져들 수 있다. 함께 일하기 위해 손을 잡았다는 점을 항시 잊지 마라.

ㆍ자본, 경영, 기술 중 하나 이상의 요소를 완벽하게 제공하라. 공동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 제공에 모든 노력을 다하라. 어느 하나도 상대가 납득할만한 수준이 못된다면 동업은 잡음 나고 깨지게 되어 있다.

ㆍ한번 나눈 파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왈가왈부하지 마라. 동업을 하기 전에 시간을 가지고 상대의 방식대로 서로 사과를 잘라보라. 나눈 결과를 명확하게 비교해보고, 의견을 개진하라. 이해의 접점을 찾고 확고한 합의에 이르라.

ㆍ해당사업의 진행 과정에서 동업자는 모두 일정한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뚜렷한 자기 역할 없이 숟가락을 올려놓는 식이거나 입이나 보태는 식이라면 결과는 뻔하다.

ㆍ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공동 책임이 아니라 끝까지 무한대의 공동 책임을 져라. 나의 책임을 경감시키려 하거나 상대의 성과에 무임승차할 생각이랑 아예 꿈꾸지도 마라. 상대의 리스크를 이해하라.

ㆍ자기 책임을 다하라. 내가 생각하는 책임 완수의 범위를 초월하라.

ㆍ상대의 역할을 이해하라. 선을 넘지 마라. 자칫하다간 업무가 뒤엉키며 서로 넘어지게 되어 있다.

ㆍ동업에 대해 침이 닳도록 상대를 칭찬해 줘라. 입소문 마케팅의 위력은 대단하다. 사람들의 입초가 기업 성패를 좌우한다는 점을 피할 장사란 없다.

ㆍ나를 버리고 상대를 취하는 공존공생의 정신을 뼛속 깊이 아로 새겨라. 공존공생의 정신으로 보다 큰 공동체 의식으로 연결하라. 나를 버리는 것이 동업의 철칙이다. 나를 찾고 싶을 때라면 이미 동업은 종착점에 이른 상태이다.

ㆍ 입 대신 몸을 움직여라. 몸과 헌신의 자세를 일관되게 밀고 나가라. 동업엔 약방의 감초처럼 훈수 두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정작 일할 사람, 책임질 사람이 필요하다.

ㆍ 구체적으로 기여하고 또 기여하라. 가장 작은 일이라도 구체성을 보여라.

ㆍ 원망 말라. 내가 선택해 시작한 동업이다.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내가 더 많이 기여한다고 투덜대지 마라. 동업이 깨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자신이 추해진다.

ㆍ 목숨 걸고 동업자의 책임까지 다하라. 상대의 무책임을 탓하지 마라. 인내하라. 참고 견뎌라. 이해하라. 조정하라. 공동 목표에 부합하는 행동으로 설득하라.

ㆍ 계산에 분명하라. 셈이 흐릿하면 성공 동업은커녕 모두가 죽는다. 동업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간다 해도 안개 속을 함께 걷는 것이다. 흐릿하면 모두가 죽는다.

ㆍ 격려하라. 손을 맞잡아 줘라. 칭찬하고 고무하라. 끝까지 믿어줘라. 동업자를 제1 고객으로 감동시켜라.

ㆍ 다시 손을 잡고 싶은 사람이 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라. 동업의 종료는 더 큰 동업의 시작을 예약한다.

[수요 인문학강좌] 동양의 통치역사 - 중국과 조선 중심 : 창업의 종잣돈
전경일 인문경영연구소장

 역사는 당대 사람들의 삶의 궤적을 집적한 것이다. 당대에 쓰였든 후세 사람이 남겼든 기록은 남는다. 모든 유물에는 그 시대 사람들의 투쟁과 적응, 생존과 번영의 몸부림이 중첩돼 있다. 인류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인 황허유역에서 목기나 철제 농기구로 땅을 파헤치던 때나 과학이 인류를 새로운 혁명의 시대로 인도하는 지금이나 같다. 사람들은 언제나 벅찬 투쟁과 함께 살아왔다.

 
동양의 여러 국가는 중국과 밀접한 관련을 맺어왔다. 상호 관련성이 있다는 얘기다. 영토가 계속 늘어나고 제국이 되고 힘과 국제관계의 상관성을 십분 활용해 고구려는 대륙의 운명을 결정짓는 주인이 된다. 팍스코리아나가 된 것이다. 창(創)-수(守)-도(跳)의 경영은 21세기 무한한 성장과 지속가능 경영에 인문적 해법이 되어줄 것이다.

 

 

대륙을 달리던 ‘야생 DNA’… 이젠 세계시장 누비자

 

인간이 자연에서 삶을 일궈내는 한, 땅을 디디게 되어 있다. 땅은 국가라는 개념이 생기기 오래전부터 싸움을 통해 획득의 대상이 되어왔다. 피가 흐르고, 강약의 구도가 만들어졌다. 강자가 차지한 토지에서는 더 많은 잉여물이 나왔고, 그 결과 문물이 번창했다. 종법(宗法)의 질서가 만들어졌고, “천명(天命)을 받아 왕조가 선다”는 ‘천명관(天命觀)’이 만들어졌다. 사상 통일을 꾀한 것이다.

 
모든 역사는 인간의 욕망에 기초한다. 그 욕망으로 삶은 앞서기도 하고 뒤처지기도 하고, 밀고 당기면서 세상을 바꿔왔고, 세계의 주인이 달라졌다. 세력과 사상의 조류, 흥망과 성쇠가 맞물려 밀물과 썰물처럼 시차를 두고 번갈아 찾아왔다. 유구한 동양 세계도 마찬가지다.

 

동양의 여러 국가는 중국과 밀접한 관련을 맺어왔다. 상호 관련성이 있다는 얘기다. 영토가 계속 늘어나고 제국이 되고 힘과 국제관계의 상관성을 십분 활용해 고구려는 대륙의 운명을 결정짓는 주인이 된다. 팍스코리아나가 된 것이다. 창(創)-수(守)-도(跳)의 경영은 21세기 무한한 성장과 지속가능 경영에 인문적 해법이 되어줄 것이다.

 

▶동양의 각 국가는 중국과 밀접한 관련

근세 들어 서양의 약진은 지중해와 흑해를 기점으로 구분했던 동서(東西)를 확장하는 계기가 된다. 서양이 우위를 보이는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동양에서 개척한 육지 길이 있었음에도 명칭상 동서양은 바다(洋) 개념을 빌려다 썼다는 것이다. 인간의 활동 영역이 확장돼 반영된 말이겠다. 동양이란 명칭조차도 2차 세계대전 중에나 사용되기 시작해 전후 비교적 널리 퍼진 지리적 명칭일 뿐이다. 그리 오랜 연혁이 아니다.

 

‘동양’이라 칭하는 이 대륙과 반도, 군도들을 아우른 땅은 나름대로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서로 같은 면과 다른 면을 동시에 간직한다. 누구나 동양이라고 부르지만, 여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일체감이 있는 것도 아니다. 완성된 하나의 역사 세계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동양의 여러 국가는 각기 중국과 밀접한 관련을 맺어왔다. 상호 관련성이 있다는 얘기다. 이것이 동아시아의 과거이며 현재이자 미래가 된다.

 

우리 역사를 살펴보는데, 중국을 먼저 들여다보는 것은 오랜 시간을 두고 상호 부단한 교류를 해왔기 때문이다. 무력과 화친의 교류가 번갈아가며 이들 국가 사이에 어우러졌다. 땅의 크기와 문물의 풍성함에 따른 중국식 사상·문화 등은 주변국에 강한 힘을 떨쳐왔다. 그 힘을 바탕으로 중국은 패권을 지향하기도, 힘이 부칠 때에는 밀리기도 해왔다. 물론 전적으로 한인(漢人)을 중국인만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뒤섞인 피와 세계관이 역사라는 시간 속에서 함께 어우러지고 만들어져왔던 것이다.

 

▶진(秦)… 중화주의 사고 구체화

춘추전국시대를 계승한 중국 최초의 통일제국인 진(秦)은 중국 주변 지역을 지배하에 두든가 조공이라는 형식을 따르게 함으로써 복속국으로 만들었다. 그 결과 형성된 것이 동아시아 세계이자 중화주의이다. 세계를 중화와 오랑캐로 보는 사고는 이때 구체화된다. ‘동이(東夷)·서융(西戎)·남만(南蠻)·북적(北狄)’ 같은 표현은 중화인민공화국이 대(大)중화주의를 표방하는 지금도 맹위를 떨치고 있다.

 

중국은 끊임없이 도전을 받아왔다. 중국의 정치적 영향력이 약화될 때마다 주변국의 독자성은 증대되어왔고, 때로 이들 이민족은 왕조를 세우며 중원을 지배하고 경영해왔다. 5호 16국과 뒤의 요(遼), 금(金), 원(元)으로 이어진 정복왕조가 바로 그것이다. 국가를 세우지는 못했어도 중국을 지속적으로 노려온 이민족도 무수하다.

 

▶중국, 아편전쟁 이후 전환점 맞아

동양적 세계관만이 세상의 중심으로 알던 중국은 아편전쟁 이후 급전직하한다.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중국은 보다 넓은 세계 가운데로 던져지면서 새로운 전환점에 접어든다. 중화와 오랑캐로 구분하는 화이론(華夷論)을 내세우며 주변 국가들을 비하하고 외국을 국가로조차 인정하지 않던 중국식 사고는 설 곳을 잃게 된다.

 

은(殷)·주(周) 시대를 거치며 주변국을 이적(夷狄)으로 보고 ‘비례(非禮·예도 모르는)’ 족속으로 폄하해온 중화주의는 큰 상처를 입게 된다. 중국을 종주국으로 2000년 이상 장구하게 시행되어온 이 차등적 국제관계는 아편전쟁을 계기로 다시 원점에서 재고되어야만 했다.

 

노쇠한 것 같은 중국의 생명력은 찔레나무에 포도순을 접붙이는 것과 같다. 자기 생명이 다할 때에는 원하든 원치 않든 외부의 피를 수혈해 번영을 추구해온 그들만의 전략이다. 이런 접점은 동양 국가들에 많은 정신적·문화적 유산을 남긴다. 춘추전국시대의 수많은 사상과 담론, 인간의 삶의 역정은 귀중한 유산이 되어 동양 각국에서 다방면에 참고하는 원천 콘텐츠가 되어 있다.

 

관료제가 생겨나고 군현제가 발전하고 행정과 정치 시스템이 생겨났다. 그 원형이 우리를 포함해 동양 각국에 지금도 별 이견 없이 쓰이고 있는 점은 새삼 놀랄 만한 일도 아니다. 황제(皇帝)가 생겨나고 군주권과 중앙집권화로 권력이 모였고, 관료들을 만들어냈다. 관료를 지향한 지식인들은 세상을 경영할 담론과 실행 준칙을 생산해내고 이를 퍼뜨린다. 제자백가가 등장하고, 명분과 실리가 날카롭게 칼을 겨눴다.

 

중국과 중국을 둘러싼 각 국(민족) 사이에는 분열이 있었고 이어 통일이 나타났다. 생각과 방식에서 퇴행과 혁신이 번갈아 찾아왔다.

 

힘이 한곳에 모이자 백성은 고혈을 짜내야만 했고, 전쟁터에 나가서 기꺼이 죽어야만 했고, 식솔은 죽은 자식을 안고 땅을 치며 울어댔다. 가뭄으로 인한 굶주림이 몰아쳤고, 이상 기후가 덮쳤으며, 착취와 억압이 있었고, 마침내 민란이 일어났다. 왕조의 붕괴는 너무나 간단한 공식에 의해 성쇠가 거듭됐다. 백성이나 이민족은 죽지 않기 위해 일어섰고, 핍박과 수탈 때문에 싸웠다. 그것이 역사라는 이름에 쓰인 인간들의 생존욕구였다.

 

▶5세기 독자 생존권 마련한 ‘고구려’

이 장구한 기간에 한국사는 무엇을 준비해두고 있었을까? 고조선을 이어받은 고구려는 흥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5세기 이후 광개토대왕, 장수왕, 문자왕대에 이르러서는 동북아에서 독자적인 생존권을 마련한 하나의 거대한 제국으로 발전한다. 바야흐로 동북아 국제정세에서 웅비의 조건을 갖춘 것이다.

 

역량을 축적하자 더는 국제환경에 끌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동토서략 남정북벌을 통해 유리한 국제환경을 만들어낸다. 우리 민족의 대대적인 약진의 시기였다. 영토가 계속 늘어나고 제국이 되고 힘과 국제관계의 상관성을 십분 활용해 고구려는 대륙의 운명을 결정짓는 주인이 된다. 넓어진 영토에 따라 이민족이 흘러들어왔고 , 다문화를 수용하고 이로 인해 글로벌화가 촉진된다. 팍스코리아나가 된 것이다. 이 중심에는 한국사의 영웅, 광개토대왕이 있다.

 

▶11세기 이후 요·금·원이 중원 지배

중원에서는 수(隋)와 당(唐)이 세워졌지만 현실을 외면한 정치로 피폐해졌다. 무리한 외정과 내치의 혼란은 북방민족의 공세를 부르는 나팔소리가 됐다. 야생의 힘이 천하에 들끓고 있었다. 어제의 강자가 약자가 되는 것을 보며, 이적들의 주변국은 떨쳐 일어났다.

 

11세기 이후로는 요(遼), 금(金), 원(元)으로 이어진 정복왕조가 중원을 지배하는 새로운 역사가 쓰이는 일대회전의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요(遼)는 출중한 야생성으로 북방에서 일어났지만 연운(燕雲) 16주에 머물러야만 했다. 요(遼)에 맞서 금을 일으킨 아구다는 뼈에 사무친 치욕을 갚아줄 날을 기다린 끝에 1115년 요를 공격, 마침내 요를 멸망시키고 금왕조(1115~1234)를 세운다. 그 전통은 훗날 후금(後金), 즉 청(淸)으로 이어진다.

 

만주의 일개 부족이던 여진은 마침내 기다리던 때를 만났다. 서주(西周)시대로부터 수(隋), 당(唐)을 거쳐 송(宋), 요(遼), 금(金), 원(元)에 이르기까지 흥망성쇠를 거듭해온 역사를 일거에 털어내고 중원의 주인이 되려는 기지개를 켠다. 때마침 조선에 불어닥친 조일전쟁(임진왜란)은 명과 조선의 눈과 손을 만주에서 떼도록 한다.

 

고통스런 타국의 현실이 주변국의 기회로 작용하는 흥망성쇠의 불변의 법칙이 1600년대를 기점으로 다시 반복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피나는 노력 끝에 3대 66년 만에 자신의 몸집보다 20배나 큰 중국을 집어삼킨다. 이후 강희(康熙), 옹정(擁正), 건륭(乾隆)의 치세가 이어지며 중국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와 국력을 과시한다. 야생의 피를 지닌 오랑캐들이 중원에 들어가 일궈낸 가장 값진 성과였다.

 

▶고려의 내분과 조선 건국

한반도에서는 원(元)에 의한 수탈로 마침내 고려 조정 내부에 향명(向明)·향원(向元)의 두 파가 생겨난다. 개혁을 부르짖었으나 과격한 혁명을 추구한 이성계의 힘과 통찰이 조선 건국을 가져온다. 위화도(威化島)에서의 회군은 일대 전환점이 된다. 조선은 4대에 들어 마침내 세종이라는 역사상 가장 탁월한 국왕을 맞이하며 일대 르네상스를 일으킨다. 바야흐로 대풍평(大豊平)의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동양이라 칭하는 동북아에서 지난 3000여 년 동안 일어난 일이다. 한반도는 해방과 함께 분단되었고, 중국은 희대의 개혁가 덩사오핑의 개방정책에 힘입어 마침내 오랑캐를 끌어다 중화의 피를 젊게 한 대(大)경제성장이 지난 20여 년간 벌어진다. 중화 입장에서 본다면 이적(夷狄)은 이적(夷狄)의 욕망으로 중국에 들어와 중국을 다시 세계대국으로 만들게 한 것이다.

 

이이제이(以夷制夷)와 기미(羈 : 소에 코뚜레를 꿰는 것)의 형국은 현재 동북아 정치와 경제 등 모든 면에 걸쳐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남북은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는 어떻게 이 고삐를 풀고 울타리를 박차고 나갈 것인가.

 

우리의 DNA에 새겨져 있는 대륙을 질주하는 야생성으로 대륙적 기질과 위상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한국경제가 도약하는 발판을 어떻게 마련하고, 웅비의 날개를 힘차게 달을 것인가. 이제 동북아에 명멸한 역사의 뒤안길을 살펴봄으로써 창업-수성-도약의 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창(創)-수(守)-도(跳)의 경영은 21세기 포스코의 무한한 성장과 지속가능 경영에 인문적 해법이 되어줄 것으로 믿는다. 거친 숨결로 대륙을 내달리던 기상으로 세계 시장을 누비자.

   

전경일 소장

64년생. 뉴욕시립대학원에서 TV&RADIO를 전공했다. 미국 NBC TV와 CBS 방송국, 삼성전자 미디어본부, 야후코리아 총괄이사, KTF 팀장을 거쳐 현재는 인문과 경영의 만남을 꾀하는 인문경영연구소 소장이자 카인즈 교육그룹 대표로 있다.

통섭형 글쓰기를 통해 《세계의 문학》으로 시등단을 하였고, 인문과 경영을 통섭하는 폭넓은 저술 활동을 통해 지금까지 25권의 책을 썼다.
 

     <출처: 멘즈헬즈 2010.9월호>

<출처 : KNN뉴스,  오늘의 뉴스 2009년 7월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