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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인문역사46

일본 경제 침략에 <남왜공정>이 주목받다 일본은 한반도를 주기적으로 침략해 왔다. 일본 신新군국주의는 지금 한반도 재침을 획책하고 있다! 일본은 대륙진출이라는 광포한 욕망으로 1620년간 한반도를 자그마치 900여회나 침략했다. 이는 인류 역사상 유래 없이 긴 ‘전쟁’으로 지금도 현재진행형 중에 있다. 21세기 들어서도 일본의 한반도 침략 야욕은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일본의 침략은 ‘주기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일본의 끊임없는 주기침략, 그 시작에는 왜구가 있다. 저자는 이와 같은 일본의 한반도 침략사를 새롭게 정립하며 그동안 아무도 접근하지 못했던 왜구 침구의 내막을 정교하게 파헤치고 있다. 고대로부터 1149년간 이어지는 왜의 ‘신라 정토계획(761년)’, ‘고려 침공계획(1275/1281년)’, ‘임진왜란(159.. 2019. 8. 12.
부정가복(不正假伏) 상황이 불리하면 거짓항복으로 본심을 꾸민다 부정가복(不正假伏) 상황이 불리하면 거짓항복으로 본심을 꾸민다 일본의 본성을 나타내는 말로 겉과 속이 다르다는 의미의 ‘카라쿠리’ 문화는 왜구 전략을 설명하는 키워드가 된다. 왜구는 상황에 따라 철저하게 그 속을 감추었다. 조선 초 태조는 왜구와 수많은 전투를 겪어본 탓에 누구보다도 왜구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왜구를 일시에 금지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정부는 양면정책을 펼쳤다. ‘착하게 행동하면 좋게 다스리고, 도적질하면 무력으로 다스린다’는 이선치선 이무제도(以善治善 以武制盜)의 정책으로 평화적 통교자와 귀화자를 우대한 것이다. 그리하여 조선 초 대(對)왜구 정책은 고려 말과는 근본적으로 다르게 전개되었다. 대(對)왜구 정책의 변화에 따라 태조 4년에는 기록에 최초로 ‘항왜(降倭)’가 나타나기 시.. 2019. 8. 12.
일조돌변(一朝突變) 변신과 약탈로 지속침구의 조건을 상시화한다 일조돌변(一朝突變) 변신과 약탈로 지속침구의 조건을 상시화한다 왜구의 얼굴은 야누스적(的)이다. 왜구는 동아시아 해역에서 오랫동안 ‘교역의 종사자’를 자처해 왔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해로로 운반되는 재물을 약탈하는 ‘약탈의 주역’으로 활동해 왔다. 그러면서 동아시아 교역 질서를 교란시키는 기생집단으로 암약해 왔다. 왜의 이중적 얼굴은 여기에 있다. 해적 활동을 경제적 측면에서 해석하고자 하는 시도는 일본 학계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일본 측은 왜구에 대해 “11세기 이후 경제적 교역권으로 동아시아 세계가 형성되었는데, 이를 질서화하고 원활하게 운영하기 위한 기구가 없어 ‘해도(海盜)’가 표면화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는 해적의 경제행위에 초점을 맞춘 주장으로 볼 수 있다. 그러다보니 왜구들의 침구.. 2018. 9. 6.
불신불측(不信不測) 기만과 불예측성으로 상대를 혼란에 빠뜨린다 불신불측(不信不測) 기만과 불예측성으로 상대를 혼란에 빠뜨린다 왜구의 특징은 기만과 불예측성이다. 이는 군사 작전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왜구 침구 전략으로 눈에 두드러진 것은 기만전술인데, 1375년 왜구는 무리들 가운데 노약자들만 태워 싸우지 않고 곧 철수할 것같이 행동해 고려군의 방비를 허술하게 하도록 한 다음 은밀히 정예군 수백 명을 고려군 배후로 침투시켜 노략질을 감행했다. 왜구의 이런 기만전술에 말려들어 고려군은 싸울 때마다 번번이 패했고, 왜구가 온다는 소리만 듣고서도 앞을 다투어 달아났다. 손자병법에는 “병(兵)은 속임수(詐)로써 서고, 이(利)로써 움직이며 분합(分合)으로써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는 구절이 나온다. 왜구가 중앙의 조직적인 지지, 지휘, 조종내지 지시 하에 움직였다는 것은 .. 2017. 9. 14.
적시장서(適時場噬) 침구 시점과 장소를 노려 물어뜯고 확장한다 적시장서(適時場噬) 침구 시점과 장소를 노려 물어뜯고 확장한다 유사 이래 왜구의 오랜 침구에는 변하지 않는 확고부동한 목표가 있다. 바로 ‘약탈’이다. 왜구 약탈사는 끈질기며 활동상은 국제적이기 조차 하다. 한반도를 주요 목표로 하여 중국과 멀리 동아시아 일대로 확대된다. 일본이 양산해 낸 왜구는 고대 시기로부터 동아시아 세계가 공유하고 있는 평화의 바다라는 곳간[倉]에 마치 쉴 새 없이 쥐떼를 풀어 놓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왜구 활동은 우리에게는 900여회의 침구와 한 번의 임진왜란, 한 번의 강제 병합으로 귀결된다. 왜구 침범 기사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서기 391년을 기준으로 정유재란이 끝나는 1598년까지 1207년간, 을사늑약이 체결되는 1910년까지는 1519년, 해방 시까지 따지면 무려 1.. 2017. 9. 6.
쟁지선점(爭地先占) 잦은 침구로 주변국의 결정적인 목을 노린다 쟁지선점(爭地先占) 잦은 침구로 주변국의 결정적인 목을 노린다 고려시대 왜구의 주요 침구 대상지역은 남해안 지역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갈수록 점차 활동범위는 넓혀져 서해와 연안지역으로 확장된다. 이곳은 곡창지대와 조운선(漕運船)의 통로로 매우 중요한 길목이었다. 왜구가 ‘조운선 이동 루트’를 목표로 했다는 것은 왜구 전술이 항시 주요 목을 겨냥하고 있는 걸 잘 보여준다. 왜구는 수도인 개경 인근의 승천부(昇天府), 강화, 교동까지 자주 출몰해 약탈과 방화를 자행했다. 그로인해 수도 개경이 위험해지고, 여러 차례 계엄령이 발동되었으며, 심지어는 천도론(遷都論)까지 나온다. 왜구의 발호에 따라 고려는 지역방어와 토벌작전에 주력했다. 하지만 왜구의 규모가 점차 대형화되고 빈도가 증가함에 따라 특수토벌군을 .. 2017. 9.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