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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경영/더 씨드(The Seed): 생존을 위한 성장의 씨앗'에 해당되는 글 2

  1. 2012/01/16 회사 신성장 동력은 자기 내면에 있다
  2. 2010/07/20 토요타에서 문익점을 생각하다

조직은 항상 현재의 본업에 충실하면서도 새로운 동력에 목말라 한다. 모든 조직이 구성원들의 노력에 의한 결과물로 생산성과 수익성을 이룬다고 볼 때, 구성원 각자가 지닌 신성장에 대한 욕구는 기업의 지속가능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보다 큰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종 사업에 대한 관심은 어떻게 해서 나올까? 각 개인은 무엇을 해야 할지, 역사적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 조선의 목화는 어떻게 일본 토요타가 되었는가

일본 나고야에 위치한 토요타산업기술기념관에 가면 방적기 등 일본 기계공업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전시관이 자리 잡고 있다. 그 뒤로는 우리에게 익숙한 토요타자동차 전시관이 있다. 이 기념관은 목화가 심어져 있는 화분 하나로부터 시작된다. 토요타와 목화가 무슨 관련 있길레 목화를 전시하고 있는 걸까?

일본에 목화가 전래된 것은 조선을 통해서였다. 목화만 전래된 것이 아니라, 직기류와 제작 방법 등 요즘말로 R&D가 함께 전래되었다. 조선에서 건너간 이 직기를 평생 개발한 사람은 토요타의 창업자인 토요다 사키치(豊田佐吉)였다. 그는 토요타자동차의 전신인 토요타자동직기주식회사를 만들고, 평생 직기 개발에 힘써 인력직기를 동력직기로, 동력직기를 다시 자동직기로 발전시키고, 또 평면직기에서 환상(環狀)직기를 개발해내며 자동직기 혁신에 평생을 바쳤다. 혁신적인 발전을 이뤄낸 토요타는 마침내 산업의 패러다임 전환기에 토요타자동차를 출범시킨다. 이것이 토요타자동차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일본에 건너간 직기 기술은 현재 일본의 유명 도자기처럼 일본을 대표하는 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반면, 우리는 우리가 쌓아온 오랜 산업적 경험에서 큰 성과를 이뤄내지 못했다. 문익점이 1364년에 조선에 가져온 목화씨와 직기 기술이 우리나라가 아닌 일본에 건너 가 꽃을 피운 것이다. 이 같은 사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 누구도 내다보지 않은 발견력

문익점이 외교사절단의 일원으로 중국 원나라에 파견된 것은 1362년(공민왕 11년, 또는 1363년)이다. 이때는 홍건적의 난으로 국가 존립 자체가 위태로운 상태였다. 공민왕을 갈아치우려는 원황제의 명령에 맞선 문익점은 지금의 베트남 위인 교지국으로 귀양을 가게 되고 거기서 목화를 발견하게 된다. (사료에 따라서는 북경 근방에서 목화씨를 채취했다는 설도 있다.) 그는 목화를 보는 순간, ‘가치’를 알아 차렸다. 굶주리고 헐벗은 고려의 경제를 부흥시킬 위대한 씨앗으로 목화를 바라본 것이다. 이것이 우리나라에 목화가 도입되게 된 배경이다. 이로 인해 의료(衣料) 혁명이 일어나며 집집마다 목화를 재배하고 직기를 만들고 무명을 짜게 되는 것이다. 문익점 이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목화의 존재를 알았을 터인데, 어떻게 해서 문익점만이 목화씨를 가져오게 된 것일까? 여기에 신성장 동력을 찾고자하는 문익점만의 평소의 ‘관심력’과 ‘발견력’이 작용한다.

처음 재배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목화는 10년 내 전국에 확산된다. 요즘 애기하듯, 마치 반도체 제조산업에서 얘기하는 ‘무어의 법칙(Moore’s Law)’ 혹은 ‘황의 법칙(Hwang’s Law)’처럼 확산 법칙이 지속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그리하여 국가적 사업으로 완전 자리매김 되어 소금, 광물등과 함께 3대 기간산업이자 심지어는 화폐의 기능도 맡게 된다. 조선 중기 들어 세금을 쌀로 받던 무명필로 받은 이를 잘 증명해 준다.

# 혁신을 위한 부단한 활동
그렇다면 문익점 혁신 마인드는 어디서 나왔을까? 문익점의 목화 발견의 의의 중 하나는 그가 무한한 잠재가치를 찾기 위해 누구보다도 열린 눈과 상상력을 가지고 세상과 사물을 바라보았다는데 있다. 이는 평소 주변 사물이나 일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고 열린 눈과 귀로 새로운 가치를 보고자 하는 혁신 마인드와 상상력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합작품이었다.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의 저자 리처드 포스터와 사라 카플란은 혁신 성공 이유로 ‘확산적 사고(Divergent Thinking)’를 주창하고 있는데 문익점 프로젝트가 이와 같다.

그리고 남들이 미처 보지 못하는 진정한 ‘필요(needs)’를 간파했다. 문익점이 목화씨를 가져와 이를 목면 직조 과정에까지 연결하고 관리한 것은 바로 필요가 수요를 창출한다는 사업적․산업적 마인드 때문이었다. 그는 이 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기에 역사적 과제에 몰두할 수 있었다. 현대적 의미로 해석하자면, 의료혁신을 통해 ‘백성인 고객에게 감동경영의 극치를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이 같은 성과가 폭발적인 목면 수요를 가져왔고, 대확산이 전국적 차원을 넘어 일본에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전형적인 신기술․신제품 혁신 사례에 해당된다. 이것이 현재 토요타산업기념관의 첫 머리에 목화송이가 전시되어 있는 이유이다.

우리는 조직 내에서 늘 새롭고 강력한 새로운 사업을 찾기 위해 목말라 한다. 그러나 신성 동력 발굴의 가장 기초가 되는 디딤돌은 구성원 각자가 지닌 현업에 있다. 고객의 요구를 사전에 알고 철저하게 그에 부응하기 위한 자세를 가질 때 나온다. 현장의 목소리, VOC 등이 성가싫고 귀찮은 것이 아니라, 고객이 새로운 수익원을 찾으라고 힌트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를 대하는 자세부터 달라질 것이다. 생각의 앵글을 달리할 때, 세상을 놀래킬 놀라운 사업의 기회는 내 눈앞에 성큼 다가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우리의 고정관념이다. 성장을 위한 씨앗을 찾아내고 이를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자세는 그 어떤 혁신 활동보다도 크다. 과거의 성과를 야금야금 까먹으며 혁신활동을 하고 있지 않은지 살펴보고 신들메를 고쳐 신고 도약을 위한 자세를 추스릴 때 누구도 못 본 성장 동력이 찾아질 것은 분명하다. 문익점의 목화씨처럼 말이다.#

전경일, <더 씨드: 문익점의 목화씨는 어떻게 토요타자동차가 되었는가?>저자


영원히 지지 않는 도전이 있다. 처음에는 작은 도전이었으나, 추구하는 바의 원대함으로 훗날 큰 족적을 이루는 것이 있다.

처음의 흥분감과 신선함은 차차 대중에 보급되어 일반화되고 나면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혁신이든 초기에는 대단히 어렵다. 이 점을 알게 되면 혁신자들의 숨은 공로에 깊은 경탄을 금치 못하게 된다. 어떤 기술혁신이나 산업혁신도 밟아온 길은 이와 같다.

우리나라 주요 수출 효자품은 반도체, 휴대폰, 자동차, 조선, 철강 등이다. 기술 개발과 도입 초기에는 대단히 어렵고 힘든 과정을 겪었지만, 피나는 노력의 결과로 한 나라를 먹여 살리는 핵심 산업이 되었다. 물론 그 수혜자는 대다수 고객들, 국민들이다. 나아가 글로벌 시대, 해외시장의 고객들도 주요 수혜자가 된다.

중요한 점은 어떤 기술이나 산업도 도입․성장기를 거친 후 적절한 시점에 혁신을 이뤄내지 못하면,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6백여 년 전, 문익점이 들여온 목화씨가 그렇다. 도입과 더불어 최초의 혁신이 이루어진 다음, 지속혁신을 이뤄내지 못했을 때의 처참한 결과를 잘 보여준다.

지금 우리가 문익점과 그가 가져온 씨앗(Seed)에 주목하고 집중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목화 도입을 기점으로 이후 6백여 년의 시간을 꿰면, 오늘날 우리가 무엇을 해야 생존하고 번영할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혁신의 결과는 또 다른 혁신이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역사는 경영의 산 교육장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이 역사와 경영이 맞물리는 접점이다. 이것은 또 미래 경영을 위한 열쇠가 된다.


문익점이 들여온 목화씨는 하나의 단순한 농작물의 씨앗이 아닌, 모든 산업의 패러다임을 전환시킨 ‘혁신과 창조의 원천 씨앗(Innovative and Creative the Original Seed)’이었다. 그러기에 우리는 지금 한 알의 씨앗에서부터 기업의 과제이자 국가담론인 생존과 번영을 위한 혁신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한다. 생존조건은 여기서부터 마련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문익점의 목화씨에는 수많은 피땀이 어려 있고, 혁신의 몸부림이 배어 있다. 또한 사명감과 애정이 녹아 있다. 원나라 사행(使行) 길에 눈여겨보고, 비밀리에 들여온 목화씨는 문익점과 그의 장인인 정천익 일족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그들도 예상하지 못한 놀라운 결과를 빚어낸다. 하나의 작은 의지가 의료(衣料)혁명을 일으킨 폭발제가 되었던 것이다.

그 무렵 목화씨는 원나라 해외유출 금지품목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사료(史料)에 따라 다른 주장도 있긴 하다. 지금의 말로 하면 원천 기술, 시료, 소스(source)와 같은 것이다. 문익점은 바로 이 원천 씨앗을 가져옴으로써 우리의 의료생활은 물론 일본에까지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그가 가져온 목화씨는 단 10알! 그 중 한 알만이 구사일생으로 꽃을 피운다. 그 한 대의 목화 줄기에서 첫해 100알의 씨가 맺히고, 3년에 걸친 집중 재배와 종자 채집의 결과 10년 내 한반도 전역에 보급되기에 이른다. 배양과 재배에 성공하여 보급․확대가 임계치에 도달한 것이다.

그로부터 대략 25년 후인 1392년 조선왕조가 들어서며 목면은 본격적인 재배에 들어가고, 4군 6진의 개척 시 북점화(北點化) 정책에 힘입어 북방 지역의 경제활동과 국토 확장에 크게 이바지한다. 의(衣)생활은 물론 다양한 분야에서 신성장 엔진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매우 지난하고, 고된 작업이었다. 초창기에는 우리나라 기후 여건상 서리가 내리지 않는 무상일(無霜日)이 짧고 장마가 길어 재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민․관 협동으로 이루어진 보급 확대로 이전에는 감히 상상치도 못한 혁신을 이뤄냈다. 씨앗의 보급만이 의미 있지 않다. 목화송이에서 씨를 빼내고 이를 다시 자아내는 직기인 씨아, 활, 물레, 가락, 날틀 같은 면직기구가 고안․제작됨으로써 섬유혁명은 폭발적으로 확산된다. 이때의 의료혁명을 훗날의 산업혁명에 견주어보아도 결코 손색없다. 오히려 더 원천에 가깝다.

지금이야 의료생활에 아무런 어려움도 느끼지 않지만, 불과 1백 년 전만 해도 집집마다 무명옷을 손수 만들어 입었다. 무명은 백성들의 옷과 이불이 되었고, 목화씨로 짠 기름은 면실유가 되었다. 또한 목화줄기는 사랑방 문화를 만들어내 우리만의 훈훈한 문화콘텐츠를 형성해왔다. 나아가 목화는 우리 민족을 ‘백의민족’으로 불리게 했다. 문화적 상징 심벌이 되었으며 민족공동체를 이룬 산물이 되었다.

목화 전래 후 목화씨와 방직기술은 다시 일본에 전파되어 일본의 의료생활은 물론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목면이 전래되기 전, 일본의 서민들은 추위에 처참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러다 목화 도입 후 의생활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자, 생활과 경제에 안정을 꾀할 수 있게 된다. 한편, 임진왜란 때에는 화승총의 심지나 선박의 돛 등으로 쓰이며 오히려 조선 침략의 도구로 사용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훗날 개항을 전후로 한 시기에 급속도로 발전한 일본의 방직기술은 오히려 조선 면업을 초토화시켜버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조선은 원료 공급기지와 소비지로 전락하고,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는 병참기지화되고 만다. 두 나라의 운명이 뒤바뀐 것이다.

일본에 목화가 전래되고, 그 후 일련의 변천사에서 등장하는 기업이 토요타자동차의 전신인 토요타자동직기주식회사이다. 이 회사의 창업자인 토요다 사키치(豊田佐吉)는 실로 탁월한 엔지니어였다. 그는 평생 직기 개발에 힘써 인력직기를 동력직기로, 동력직기를 다시 자동직기로 발전시키고, 또 평면직기에서 환상(環狀)직기를 개발해내며 자동직기 혁신에 평생을 바친다. 혁신적인 발전을 이뤄낸 토요타는 마침내 산업의 패러다임 전환기에 토요타자동차를 출범시킨다.



토요타생산방식(TPS, Toyota Production System)으로 잘 알려진 1백 년간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혁신적 노력은 토요타이즘(Toyota-ism)이란 말을 만들어내며, 전 세계 기업의 벤치마킹 대상이 된다. 현재 토요타는 매출 180조 원에, 10조 원 이상의 이익을 내며 ‘지속성장 가능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2009년 이후 토요타 리콜 사태는 토요타가 향후 어떤 혁신을 이뤄낼지 가늠자가 된다.)

문익점 자신이 직접 전한 것은 아니지만, 일본 목면이 조선으로부터 전래된 것은 부정키 어렵다. 우리는 선도자 역할을 했으나, 그 덕을 톡톡히 본 것은 일본이었다. 일본은 조선 목면을 받아들여 지속적으로 혁신시킨 반면, 안타깝게도 우리는 도입 초기의 발전을 근대에까지 이어나가지 못했다. 결국 가내수공업에 머문 조선 면업은 끝내 일본 면방직업의 식민지가 되고 만다. 일본은 조선의 목화를 받아들이고, 종자개량을 통해 선험자의 경험과 지식을 뛰어넘는 성과를 낸다. 이 과정에서 혁신의 릴레이 현상이 벌어지고, 산업 전환이 이뤄지며, 토요타는 자동차산업으로 환골탈태했던 것이다.

일본 나고야에 위치한 토요타산업기술기념관에는 방적기 등 일본 기계공업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전시관이 자리 잡고 있다. 토요타자동차의 발전 과정도 한눈에 볼 수 있다. 토요타이즘이 확산되면서 한국에서도 많은 기업인들이 이곳을 견학한다. 하지만 생산성 향상이나 효율성 차원의 벤치마킹을 넘어, 오늘날 한국의 경영자들은 목화씨 한 알을 놓고 깊은 반성의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토요타 1백 년 역사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우리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속혁신의 노력 없이는 곧 뒤처지고, 잊히고 만다. 또한 개인이나 기업, 국가 차원의 혁신적 노력 없이 발전을 기대할 수도 없다. 문익점 시대의 탁월한 성과는 21세기 우리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 문익점 시대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혁신과 도전은 절대 멈춰서는 안 될 것이다.
ⓒ전경일, <더 씨드 : 생존을 위한 성장의 씨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