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는 것의 대부분은 자연에 있다. 최후의 결정적이고, 통찰력이 번뜩이는 영감을 얻기 위해서는 자연을 찾아야 한다. 창조적 마인드를 얻기 위해서도 때로는 밀폐된 사무실을 벗어나야 한다. 사물에 대한 낯설음, 달리보기는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경영의 본질을 알게 하기 위해서도 자연으로 나가야 한다. 텃밭에 무성생식하며 뻗어 나가는 잡초의 근종을 관찰하거나, 거미가 허공에 실을 늘어뜨리며 팽팽하게 방사형의 네트워크를 짜는 광경을 관찰해야만 한다. 아프리카 흰개미들이 어떻게 완벽한 통풍과 에어컨디셔닝의 기능이 구비된 건축물을 만드는지를 눈여겨보아야 한다. 칠게들은 어떻게 포식자가 나타나면 순간적으로 교신을 하며 재빠르게 몸을 감추는지를 알아야 하고, 말(馬)은 어떻게 피로를 줄이는 젖산 분해효소를 생산해 냄으로써 아무리 뛰어도 숨이 가프지 않은지를 알아야 한다. 이런 연구들은 향후 21세기 새로운 산업으로 각광받을 분야들이다.
1372년 우리나라에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금속활자를 이용해《직지심경(直指心經)》이 간행된 이후, 서양에서는 1450년 쿠텐베르그가 금속활자를 개발한 이후 찾아온 1차 지식 빅뱅이 찾아왔다. 이후, 다시 한참 시간이 지나 20세기 말 들어서 인터넷의 확산으로 2차 빅뱅이 찾아온 뒤로 우리는 지식에 대해 가장 큰 차별적 관점을 가지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지식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 터져 나오면서 그간 갈라섰던 학문 영역들이 서로 만나는 통섭의 차원을 열어 가고 있다. 이는 인류사의 제3차 지식 빅뱅으로 다가온다. 이제 모든 산업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지식세상을 열어젖힐 게 분명하다. 줄기세포라든가, 거미줄에서 뽑아내는 강철보다 몇 십 배나 강한 섬유라든가 하는 것들은 이미 우리를 둘러싸며 새로운 창조혁명 시대의 발견을 예고하고 있다.
상상력이 과학과 만나면 새로운 산업을 탄생시키고, 문사철과 만나면 또 다른 멋진 이야기가 나온다. 세종시대는 어떻게 해서 천문학은 물론 활자, 인쇄, 도량형, 화약, 농업, 의약, 음악 분야 등 과학기술의 모든 분야가 폭발적인 시너지를 내며 대융성 할 수 있었는지 알아야 한다. 다산(茶山)은 어떻게 십여 명의 제자들과 함께 전학문적 연구의 궤를 꿴 500여권의 방대한 저술을 남길 수 있었을까? 홍대용은 어떻게 지구가 자전하여 낮과 밤이 바뀐다는 지전설을 통찰하게 되었을까? 최한기는 어떻게 천문, 지리, 농학, 의학, 수학 등 학문 전반에 걸쳐 약 1000 여 권의 저서를 남기게 되었으며, 음파, 망원경, 온도계, 습도계를 설명하고 빛의 굴절 원리를 알게 되었을까? 이런 모든 것은 ‘간학(間學)’을 통해 설명되어 질 수 있을 것이다.
서양에서 다 빈치는 어떻게 해서 미술뿐만 아니라, 해부학, 물리학, 건축학, 수학, 지질학, 식물학, 심지어는 도시계획, 디자인, 요리에 이르기까지 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재능을 지닌 천재가 되었으며, 한 사람이 이룬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폭넓은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발현해 낼 수 있었을까? 이 모든 것의 해답이 바로 상상의 힘에 있다. 상상은 위대하다. 그것은 우리가 창조하는 인간임을 뚜렷이 드러내는 증거이다. 상상은 어느 하나의 전공을 뛰어 넘어 타학문에 대한 애정에서 싹튼다. 홀연히 사무실을 벗어나 대자연에서 자기 존재를 알고자 할 때 영감처럼 떠오른다. 이제 인류 역사상 최대의 지식 빅뱅을 맞아 나홀로 가는 학문은 고전이 되어 버렸다. 대신, 모든 것을 엮는 초영역 학문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그러기에 가장 창조적인 상상력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통섭형 사고는 경영자들에게 가장 절실한 대목이다. 우리는 늘 과정과 현재에 머물러 미래에 대해 자유로운 상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시간에 쫓기며 살지만 얻은 것은 응용 수준에 불과하다. 이제 하던 일을 놓고 자연을 찾을 때, 마침내 영혼이 샘물처럼 들어차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대자연의 감미로운 바람에서 자연풍이 항시 일정하게 불며 악기를 연주하는 건축구조물을 생각하게 될 것이고, 푸른 이파리를 보면서 늘 광합성이 일어나는 건축물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떨어진 비둘기의 깃털을 살펴봄으로써 그 아름답고 다양한 패턴이 빛을 반사함으로써 색깔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는 발견을 신개념의 컬러 의료(衣料) 개발에 활용하게 될 것이다. 또한 바람에 날린 민들레 홀씨가 바위틈에 와 안착하는 것을 보면서 우주적 질서와 생명을 지탱시키는 지식의 안착을 목도하게 되기도 할 것이다.
비록 척박한 환경에서 경영을 얘기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손 치더라도 우리는 대자연에서 심신의 위안을 얻는 것은 물론, 차별화된 생각을 얻는다. 자연은 이처럼 경영자들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제공해 주는 우주로 다가온다. 우주적 상상력을 통해 우리는 이전에는 감히 넘볼 수 없었던 경계를 허문 사고를 하게 되고, 이를 사무실에 들고 돌아가 실험해 볼 수 있다. 자연을 헤아리는 것은 보다 인간적인 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본질이 자연의 일부로 속해 있는 것을 알고 우리는 거기서 무한한 상상력과 영감을 얻는다. 숲과 계곡의 기능을 통해 친환경적인 상품의 미래를 상상해 볼 수도 있다. 교감이 필요한 시대, 자연을 찾는 경영자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스승을 찾고 싶거든 멘토를 찾고, 스승의 스승을 찾고 싶거든 고전의 위대한 철인들을 찾고, 그 스승의 스승을 찾고 싶거든 자연을 찾아라.”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드가 말한 바처럼 “우리 영혼은 불멸의 바다 풍경을 품고 있다.”
저 창조의 바다에서 우리는 새로움을 잉태하기 위해 자아에 대한 궁극적인 물음을 던져야 한다.#
전경일, <초영역인재>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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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인식의 문이 제거된다면,
모든 것들은 무한하게 있는 그대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윌리엄 브레이크, <천국과 지옥의 결혼(Marriage of Heaven and Hel)l>)
세계적인 혁신가 스티브 잡스의 죽음 앞에 전세계 사람들은 그에 대한 추모를 ‘I sad...'라는 말로 함축적으로 드러냈다. 잡스가 타개한지 3개월여. 잡스가 남긴 것이 무엇인지 전 세계 거의 모든 언론과 기업들은 열광적으로 특집을 내보내며 잡스를 다뤘다. 그런데 정작 수많은 잡스 관련 평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잡스의 혁신이 어디에 있는지 그 본령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잡스를 그토록 혁신의 대명사로 만들어 놓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얼마 전 뉴욕의 한 지인에게 잡스 타계 이후 애플 매장에서의 변화에 대해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매장을 찾는 사람들의 ‘인식’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이폰 시리즈를 구입하는 많은 고객들의 입에서 “나는 잡스의 ‘유품’을 산다”는 말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는 잡스가 왜 초발 혁신가였는지를 잘 보여준다. 세상에 어떤 비즈니스가 상품이 없어서 셔터문을 내리며 고객을 밤새도록 기다리게 하는가? 전통적인 마케팅 이론에 의하면, 이는 고객 불만의 대표적인 예에 해당될 것이다. 그러나 이제 고객들은 잡스와 애플이 대량생산해 낸 모바일 기기를 손에 넣으며 상품을 ‘유품’의 수준으로까지 격상시키고 있다. 그저 모바일 기기일 뿐인 상품이 유품이 되고, 유물이 되며, 아트(art)가 되는 이런 상황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여기에 바로 잡스 혁신의 숨은 힘이 있다.
잡스는 살아서 16세기 영국의 시인인 윌리엄 브레이크(William Blake)에 푹 매료되어 있었다. 가히 잡스의 영적 멘토라 해도 과언이 아닐 브레이크의 힘은 무엇이었길레 이 세기의 혁신가의 영혼을 송두리째 빨아들을 수 있었던 것일까? 이 두 사람은 어떤 접점에서 서로 만나는 것일까?
브레이크는 신비주의(Mysticism)시인이다. 그는 우리 육체의 다섯 가지 감각기관의 작용을 완전히 정지시킴으로써 감각으로는 도저히 체험할 수 없는 신령한 영혼세계의 문을 열어젖히는 시작(詩作) 활동을 했다. 그에 의하면, 하늘을 나는 종달새는 새가 아니라, 신이 보낸 전령이며, 자신은 자기가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신의 음성을 듣고 대필할 분이라는 입장을 취했다. 브레이크에게 있어서 이 신비적인 감응은 그의 시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그에게 있어 예술은 혼신의 열정을 바쳐 추구하는 절대대상이며, 이성적 사고능력이 아닌 직관적인 통합 비전으로 작용한다. 그것을 통해 신(God)이든, 위대한 영혼(Great Soul)으로 불리는 이름이든, 무한(the Infinite)과 만나게 된다. 따라서 창조적 상상력을 말살해 버리는 이성(理性)을 사악함 혹은 죄악이라고 하면서, 그는 이성과 결별하고 자신이 이뤄야 할 문학적 과업이 창조에 있다고 주장한다. 브레이크에게 있어 자기 작품의 진짜 저자는 천국에 있으며, 자기는 그 영적 계시에 대한 비서 역할밖에 하지 않는다. 그는 예술 창작 활동에 있어서도 초능력 현상으로 영계(靈界)의 직접적인 도움을 얻었고, 그 방법 역시 ‘브레이큰 웨이(Blaken way)’라는 특이한 방법을 사용했다. 이처럼 그의 마음속에 형성된 추상적인 영상은 타고난 비상한 상상력을 통하여 그의 시야에서 구체적인 형상으로 시각화되어 나타난다. 잡스는 바로 브레이크와 자신을 통일시 하며 여기에 빠져든 것이다.
잡스는 감히 누구도 생각해 내지 못했을 때, 애플의 매켄토시 컴퓨터에 처음으로 아이콘을 입혀 딱딱한 정보기술에 생명을 불어넣었고, 쫓겨난 애플에서 새로운 비전을 지닌 채, 죽음으로부터 다시 올라왔었다. 훗날 픽사(Pixar)를 인수하고 <벅스 라이프>를 만들게 된 것도 그가 보았던 어떤 비전이 눈앞에 어른거렸을 것이다. 현재의 혁신을 이루기 위해 미래로 가서 현실의 ‘있어야 할 바로 그 모습’을 그리며 새로운 혁신 기기들을 만들어 낸 것이다. 물론 잡스는 거기다가 새로운 비전(미래를 끌어 오는 것)을 송두리 채 들이 부었다. 거기다가 사업적 통찰력으로 시장 추이를 날카롭게 응시하다가 자본, 기술, 마케팅, 디자인, 음악 유통 판도 등 필요한 각각의 퍼즐을 정확하게 꿰맞춘 다음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가 전혀 다른 분야와 시대에 살다간 170여전의 시인에 빠져드는 이유는 이런 놀라운 상상력의 세계를 시인이 열어젖혔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는 죽기 전 윌리엄 브레이크의 콜렉션을 팔았는데, 그때 나는 그가 인생을 정리하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았다. 아마 미래의 역사가들은 스티브 잡스가 픽사와 아이폰의 영감을 얻은 이유를 밝혀내기 위해 브레이크를 탐색해야 할지 모른다.
오늘날 우리 기업이나 개개인에게 필요한 것은 강한 근육질의 몸매(공장)가 아니다. 상상력이다. 그 상상력이 세상을 통찰한다. 미래의 모습을 강한 압축적 이미지로 드러내는 시인에게서 찾고자 한다면, 아마 기업은 새로운 차원의 변신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잡스는 브레이크와 닿아 있지만, 우리 경영자들이나 직장인들이 시집을 들고 있는 모습은 좀처럼 볼 수 없다. 출근길, 휴대폰 속의 어플리케이션 속이나 푹 빠져드는 그들에게서 원천적 영감이 떠오르길 바랄 순 없다. 한국 시인들의 한 달 평균 수입이 25만원 남짓 된다는 말을 듣고, 상상력의 도래를 인식하지 못하는 우리의 수준으로는 잡스가 이뤄낸 것과 같은 차원 다른 세계를 만들어 내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업 혁신의 수준은 그 사회의 문화적 수준과 비례한다. 오늘 우리 수준을 업 그래이드 하기 위해 우리는 낮선 시인들의 세계로 초대받는 ‘초발 혁신의 세계’로 뛰어 들어봄은 어떤가?#
전경일, <초영역인재>의 저자.
세상에는 수많은 지식이 존재하고, 그 지식은 나름 쓰임새가 있다. 어떤 지식은 우리가 말하는 이른바 ‘지식인’들만의 것이 아닌,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이 알고 있는 지식이다. 이런 작은 지식은 때로 생명을 구하는 등 위대한 결과를 가져오곤 한다. 이런 이야기는 2004년 12월 26일 인도네시아 북 수마트라 서쪽에서 지진이 일며 쓰나미나 몰아닥쳤을 때 충분히 입증되었다.
그날, 규모 9의 지진은 8분 동안이나 격렬하게 흔들며 그 지역 일대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수마트라에서는 앞뒤로 흔들리고 동시에 엘리베이터의 하강 가속도보다 훨씬 빠른 상하진동 때문에 서 있기조차 어려웠다. 무너지는 주변 건물에서 피하기란 도저히 불가능했다. 해저가 갑자기 상승해 생긴 큰 파도는 항공기 속도인 시속 700킬로미터 이상으로 이동해 15분 만에 주변 해안에 도달했다. 5미터의 파도가 수마트라 북부 반다아체 25제곱킬로미터를 덮쳤다. 24미터 높이의 파도가 내륙으로 1킬로미터까지 피해를 주었고, 일부 지역은 8킬로미터까지 피해를 입혔다. 쓰나미는 상상할 수 없는 피해를 주고 물러갔다.
많은 사람들은 쓰나미가 물러가자 평온 상태가 온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착오였다. 이런 놀라운 대자연의 위기 속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의 힘을 발휘한 것은 열살된 한 초등학교 여학생이었다. 이 아이는 최근 수업시간에 배웠던 쓰나미 관련 지식을 즉각 떠올렸다.
“쓰나미는 썰물처럼 빠진 다음에 재차 더 강력하게 몰아친다!”
그 초등학생은 쓰나미가 몰려오기 전 해수가 밀려나간 것을 보고 즉시 주변 사람들에게 높은 곳으로 대피하라고 외쳤다. 많은 사람들이 따르지 않아 소중한 목숨을 잃었고, 어떤 사람들을 그 말을 믿고 대피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한 초등학생의 기지와 ‘작은 지식’이 수많은 생명을 구한 것이다.
다른 경우로는 <내셔널지오그래픽> 잡지에서 쓰나미 특집을 읽었던 인도의 외딴 섬에 사는 한 부두 노동자에 의해 증명되었다. 그는 지진을 감지하고 이웃들에게 큰 파도가 밀려온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결국 이 두 사람은 1,500명 이상의 목숨을 구해 냈다. 작은 지식과 훌륭한 행동이 귀중한 인명을 구한 것이다.
우리는 수많은 지식을 이야기 하나 정작 인간의 생존과 직결된 지식에 대해서는 많이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독사에 물렸을 때의 처방법, 사막 여행을 갔다가 전갈에 물렸을 때의 치료법, 아프리카 오지를 탐험할 때 말라리아를 퇴치하는 법, 아기의 목구멍에 걸린 콜크 마개를 신속히 제거하는 법, 불이 났을 때 제일 먼저 취해야 하는 방법 등은 초등학교 시절에나 잠시 배우고 잊고 만다. 그러나 이 같은 지식은 불예측한 환경에서 갑작스럽게 닥치는 위험 앞에서 적절한 대응법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생존에 필수적인 지식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보다 우리는 다우지수가 국내 주가에 영향을 미치는 법, 펀드 이익률 계산법, 부동산 가치 환산법 등에 더 관심을 갖는다. 이는 사회인이자, 경제인으로서 필요한 지식이겠지만, 그것이 삶을 죽음을 나누지는 못한다. 물론, 주식 폭락으로 자살을 결심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다를 수 있다.
우리의 지식은 많은 점에서 자신과 세상을 구하는 일에 더 많이 쓰여져야 한다. 비록 그것이 작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일회용 빨대를 없애자는 한 소년의 캠페인이 크게 호응을 받고 있다. 지구 온난화와 환경오염은 멀리 볼 필요도 없다. 올해에는 추석이 지났어도 한반도에서는 폭염이 이어졌고, 경기도 일부 지역에서는 한여름에 우박이 떨어지는 등 이상기후를 보였다. 여름철의 집중 호우와 산사태는 이 같은 재앙이 남의 일이 아님을 잘 알게 한다. 그러나 우리의 실천은 늘 너무 큰 데나 쏠리고 있다.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해 당장 휘발유차를 모두 전기차로 바꿔야 하는 건 아니다. 그런 주장은 하리브리드카를 내놓은, 역사상 지구라는 환경 오염의 가장 큰 주범인 자동차 회사에서나 하는 말이다. 그보다는 작지만, 실천할 수 있는 ‘지식’과 행동이 필요하다. 국내 주요 커피전문점에서 일회용컵을 없애기로 한 것은 이런 일환이다. 2010년 한해 몇 몇 메이저 거피전문점 3개 업체 900여개 매장에서 사용한 일회용컵은 무려 5,200만개에 달한다. 이들 매장이 일회용컵 없는 매장으로 전환할 경우 연간 약 31억원의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일회용 컵 없애기 운동은 경제적 이유 때문에 벌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일회용컵 없는 매장으로 전환할 때 오히려 크게 경제적 이득을 가져오지 않거나 더 손해가 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환경문제 등을 고려해 동참하는 것은 ‘작은 실천’ 때문이다. 작은 지식만큼이나 작은 실천의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얘기다. 아는가? 이런 작은 실천행위가 우리의 기후를 예전으로 돌려놓는데 중요한 시금석이 될런지.
인간이 행하는 모든 활동 중에 만나게 되는 위험은 늘 죽느냐 사느냐는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어떤 위험은 우리가 이를 무시함으로써 장차 다가올 큰 환란을 조장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대부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일들이 최악의 위험요인으로 부각된다. 2011년 수자원공사의 구미시 단수 사태나, 농협전산망 장애 사태, 그리고 한전 단전 사태 등은 모두 지진이나 쓰나미처럼 불가항력적인 게 아니다. 조금만 신경 쓰면 그 같은 사태는 피할 수 있다. 요는 이를 막으려는 앞서 수마트라의 초등학생이나, 부두 노동자, 빨대를 없애자는 캠페인을 하는 어린이 같은 이들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좀 더 지식을 삶에 맞춰 볼 필요가 있다. 결국 인류가 지식을 만들어 낸 것은 생존하기 위한 목적에서였고, 그것은 이 지구상 가장 큰 욕망과 머리를 지닌 특이한 별종이 그래도 함께 사는 방법을 찾고자 노력했기 때문일 테니까.
ⓒ전경일. 인문경영연구소장.《초영역 인재》저자.
경영전략 전문가인 미시건대 경영대학원의 프라할라드 교수는 “영원한 경쟁우위 요소는 없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항상 새로운 원천을 발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끊임없는 혁신이 생존에의 조건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혁신은 개선사항을 찾고 효율성과 생산성을 올리는 다분히 대량생산체제에서의 이노베이션을 뜻하는 경향이 있어왔다. 창조시대에는 이노베이션이 아닌, 인벤트를 통해 문제에 접근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혁신의 보다 광의적인 개념인 창조는 실리콘 밸리의 경우 우리보다 대략 10여년은 앞서 있는 느낌이다. 그간 우리는 벤치마킹 해 온 것의 효율성을 강화하는데 혁신이란 말을 제한적으로 사용해 왔다. 실리콘 밸리 열풍이 불던 1999년《산호세 머큐리 뉴스》지에 실린 휴렛 팩커드사의 기업 PR 광고는 기업사(起業家)정신과 더불어 세상을 바꿀 인벤트를 창조개념으로 강조하고 있다. 창업 자체가 창조 과정을 전제로 한 점이 우리보다 앞선 기업들의 특징인 셈이다.
Rules of the garage.
차고(車庫)의 법칙
Believe you can change the world.
믿어라, 당신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Work quickly, keep the tools unlocked, work whenever.
빨리 일하고, 도구[수단]을 잠가두지 말라. 언제든지 일하라
Know when to work alone and when to work together.
알아라, 언제 혼자 일할지를 그리고 언제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할지를.
Share – tools, ideas. Trust your colleagues.
나눠라 – 도구[수단], 아이디어를. 믿어라, 당신의 동료들을.
No politics. No bureaucracy. (These are ridiculous in a garage.)
정치란 없다. 관료주의도 없다. (이런 것들은 차고에서는 웃기는 것들이다.)
The customer defines a job well done.
고객이 일이 잘되었는지 정의내릴 것이다.
Radical ideas are not bad ideas.
급진적인 생각들은 나뿐 것들이 아니다.
Invent, different ways of working.
만들어 내라, 다른 방식으로 일하는 것을.
Make a contribution every days. If it doesn’t contribute,
매일 매일 기여하라. 만일 기여치 못한다면,
It doesn’t leave the garage.
차고를 떠나지 못하게 될 것이다.
Believe that together we can do anything.
믿어라, 우리가 함께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Invent.
개발해 내라.
기업의 혁신역량이 강화되려면 창의적 인재가 중요하다는 점은 새삼 강조할 나위 없다. 직원의 자질+전문능력+창의적 사고+도전정신의 합이 승수 작용을 일으킬 때 ‘창조’는 탄생한다. 오늘날 기업들은 직원들의 창발성을 이끌어 내기 위해 직무교육에 여러 기술(스킬), 능력을 터득하도록 교차훈련(cross-training)을 포함시키고 있다. 직원이 혼융된 일을 소화해내고 수행해 내게 하려는 것이다. 나아가 다면적 이해에서 오는 ‘새로운 발견’을 촉진시키고자 한다.
기업 내 인력개발은 구체적으로 기업이 바라는 인재상, 즉 비전과 전략을 수행하는 데 있다. 기업 성장의 주축이 사업이 아닌, 사업을 주도적으로 개발하고 탁월한 성과를 내는 인재에 있다는 것은 두 말할 나위 없다. 글로벌 무한 경쟁의 시대에는 ‘카피(copy)’로는 생존을 보장받을 수 없다. 이처럼 창조적 인재개발은 기업사활의 핵심을 이룬다. 인재가 지닌 지적 깊이와 경험의 폭을 씨줄 날줄로 엮어서 그 기업의 고유한 능력으로 발전시키고, 지적 영역과 깊이를 더하지 않으면, 더 이상의 발전을 꾀하기란 쉽지 않다.
직원들의 표출된 가능성을 더욱 개발하고, 잠재가능성조차 찾아내 현실화시키는 것이 기업의 의무로 부각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런 연유로 기업 교육이 복수학위, 복수 커리어, 복수 스터디 그룹 운영, 독서 마일리지 등 다양한 입체적 지력(知力) 배가 활동을 제시하는 것은 통합적 사고가 그만큼 중요해 졌기 때문이다.
과거의 지식, 사업은 반쪽짜리만을 잘 개발해 나머지 반쪽과 잘 꿰맞추는 것을 목표로 했다. 나머지 반쪽을 찾는 것을 아웃소싱이라고 표현했고, 말 그대로 외부에서 찾으면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내가 궤를 꿰지 않고 통합분야의 지식을 자산화하기는 어렵다. 이 점은 이미 많은 글로벌 리딩 컴퍼니들에 의해 입증됐다. 누가 코어(core) 지식(또는 앞서 언급한 종자지식seed knowledge)를 쉽게 남에게 내어주겠는가? 지식의 산물로써 상품(혹은 서비스 등의 고객가치)을 넣고 끼워 팔 수 있지만, 원천지식은 영구히 자기 소유다. 오늘날 컨설팅 회사 등의 막강한 자산이 다른 학습을 통해 내부 자산화 한 것들이다. 고객의 노하우, 분석 매트릭스 툴(tool), 수많은 사례, 혁신 기법, 새로운 실험을 통한 지식 축적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동안 우리 기업은 지식을 자산화하고, 이를 원천지식으로 발전시키는데 뒤처짐으로써 경영행위 자체가 하나의 ‘결함’을 만들어 왔다. 이런 경험은 통찰의 결핍에서 온 것이다. 어느 하나의 해법으로 기술을 구현하고, 세상을 해석하고, 고객을 대하고자 했지, 전체로써 경영행위를 하나의 자산으로 승화시키지 못했다. 이 점이 우리의 경쟁력을 취약하게 만들고, 기술 종속을 가져온 원인이었다는 점은 부정키 어렵다.
빈센트 꽁트(Vicent A. Conte)는 “한국사회는 외부의 사회, 기업 모델을 채택함으로써 단기적인 성과를 얻었지만 한국의 경쟁 우위를 확보하는데 일관성이 부족했다. 다양한 국가의 모델을 경험하면서 여러 관행이 모아졌지만, 정작 한국적 문화의 기본적인 특징들을 무시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근로자와 일반 시민들에게 스트레스와 불안정만을 야기했을 뿐이다. 한국이 외부에서는 배우려 하지 않고 독자적인 길을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과거 쇄국주의 정책을 폈을 때로 돌아가는 게 좋다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대신 한국 사람의 강점과 전통 문화를 살려 경제적 성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독특한 전략을 창조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는다. 그의 분석을 경영에 비유하면 이보다 적절한 말은 없을 듯 하다.
적어도 십여 년 전쯤에 풍미한 과거 인재론의 중심을 이루었던 사상은 급격한 진화를 이뤄냈다. 한 가지 특출난 전공 분야(업무 분야)의 스페셜리스트와 일반 지식경험을 총체적으로 파고 들어가는 제너럴리스트 개념이 그것이었다. 이 둘은 택일 개념이었다가, 그 후 (예컨대 단순 비유로)우수 영업 인력 정도라면 회계장부 정도는 꿸 수 있어야 한다는 식의 스페셜제너럴리스트(special-generalist)로 논점이 옮겨졌다. 직원의 능력을 키워내는 면적과 깊이의 양면에서 이 같은 결합은 지극히 단순한 것이었지만, 꽤나 설득력이 있었다.
복수 전공은 이 시대 하나의 학습 대안으로 제시돼 많은 사람들이 여러 학위를 따는 학위수집가(degree collector)가 되도록 하기도 했다. 하지만 본질은 통섭형의 학습대안이라기 보다는 졸업장을 하나 더 추가하는 학력 보조의 기능이 강했다. 그나마도 과거보다 진일보한 개념이었다.
그렇다면 21세기형 인재상은 어떠해야 할까? 물리적 결합이 톱니바퀴처럼 얽혀 돌아간다 해도 그것이 화학적 결합에서처럼 전혀 다른 새로운 것을 창출해 내지는 못한다면 가치는 질적 도약을 이루기 힘들다. 이 같은 과거의 방식에 대한 결핍을 인식하며 제기되는 것이 보다 밀접한 학문간 연결, 지식간 연계를 통한 통섭력이다. 학력첨가제가 아닌, 본원적으로 탁월한 인재를 만들어 내는 개념이 초영역 인재이다. 예를 들어 요즘 게임업체에서는 인문학 전공자로 물리엔진의 이론에 박식하고, 상상력을 자산으로 하는 업의 특성상 등단 경험 등 문학적 배경을 갖춘 복합능력형 인재를 찾고 있다. 문사철이 중요해지면서 기업 활동에서 많은 스토리 텔링이 보강되고 있어 글투를 통한(특히 인터넷 환경에서) 고객 소통을 필요로 하는 경영환경은 글에 고명을 얹질 수 있는 인재를 요구하고 있다. 최근 들어 생물학자라든가 자연과학자, 공학자들 사이에 글쓰기 수준이 비약적으로 향상된 서적이 출간되는 것도 양측의 요구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들은 과거의 인재형과 달리 적어도 어느 분야세서는 궤를 꿰는 통섭형 인재 유형에 속한다. 이에 따라 아날로그형 인재에서 디지털로, 디지털에서 크로스 오버형으로 핵심인재상이 진화해 나가는 것은 전 지구적 차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재전쟁의 한 현상이다. 복식조 시대로의 진입은 오늘날 경영자들에게 다학문적 경험을 쌓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모든 것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능력은 비즈니스 현장에서 (조정 능력과 함께) 경영자들에게 요구되는 하나의 통합 능력이다. 잘 묶는 자가 지식의 들판에 펼쳐진 개별 지식의 볏단을 자기 기업에 유리하게 옮겨 놓을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게임의 방식이 멀티로 이루어지는 시대에 복식조 식의 지식과 경험은 새로운 창조적 성과를 가져온다. 지식이 깊고 넓어야 궤를 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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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대학의 학과와 전공 교수의 특징을 밝힌 보고서를 읽고는 깜작 놀랐다. 2006년 2월 기준, 수도권 대학 경제학과 교수 중 미국 박사가 차지하는 비율은 85.7%에 달했다. 흔히 주류경제학이라 불리는 이론을 전공한 비율은 90.5%이고, 아예 100% 미국 박사만으로 경제학 교수진이 채워진 대학도 6곳(경희대, 중앙대, 단국대, 동덕여대, 홍익대, 서울여대)이나 된다고 한다. 지금은 좀 바뀌었을까? 지금 분위기에서 미국식 금융자본주의를 벗어난 경제 질서를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세계 경제가 다원적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과 달리 조사 할 무렵만 해도 우리는 지나치게 편중된 생각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접을 수 없다. 학문에 있어서도 편식이 작용할 것임은 두 말할 나위 없다.
세계를 움직이는 힘으로 21세기 들어 다원적 가치가 크게 부상하고 있다. 이미 사회 곳곳에서 편협하고 획일적인 것들은 뒤로 밀려 난지 오래다. 젊은 층 사이에 유행하는 소셜 커뮤니티는 IT를 배경으로 온라인상의 커뮤니티를 만들어 내며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 유사 이래 이렇듯 다원주의적 힘이 세상을 움직여 온 적도 아마 없을 것이다. 이들은 정보교환은 물론, 상품 홍보, 심지어는 정치적 위력도 발휘하고 있다. 급전하는 세상에 우리가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시기, 세상을 전변시키는 힘이 창조적 발상에서 나오고, 창조의 결과물 또한 다원적 가치를 지닌 것이며, 이런 가치가 창조 기반 사회를 만들어 내는 선순환구조에 우리가 올라 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렇다면, 창조의 조건이란 무엇일까? 많은 전제 조건이 있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으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처럼 ‘페르케(왜why)'를 늘 입에 달고 다니는 것이다. 사물과 세계에 대한, 인간의 행동과 심리적 기저에 대한 끊임없는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다. 깊게 파고 파서 그 끝을 볼 수 있을 때까지 의문을 품고 해법을 찾는 것이다. 자신이 늘 보던 것, 생각하던 것, 행동패턴을 그대로 따라가면 폭넓은 사고를 하기란 어렵다. 물론 창의적인 결과를 얻기도 힘들다. 기존 사고에 꽉 끼인 상태가 되면 진퇴가 불가능한 상황에 맞딱뜨리게 된다. 지금 대한민국호가 처한 상황이 이렇다. 진퇴가 가로막힌 모방의 덫, 외통수의 사고에 빠져 허우적 대고 있다. 이 협곡을 지나는 것은 적잖은 희생을 요구하지만, 넘기만 하면 새로운 평원이 펼쳐진다. 그나마 젊은 층들이 가진 다원적 사고는 많은 방식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다원적이고 창조적인 사회가 될수록 기업들이 찾는 인재상도 많이 바꾸고 있다. 21세기 들어 기업에서 찾는 인재상이 급변하는 것은 현재의 방식으로는 기업이 지닌 궁극적인 문제해결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절박감이 목까지 차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방식, 즉 하나의 생산기술이 도입되고 산업화 시대처럼 그 효용성이 적어도 100년은 유지되는 기반이 된다면 이런 고민은 덜할 것이다. 하지만 초당 테라바이트의 정보가 오가고, 기술 혁신이 일일 단위, 분초 단위로 이루어지는 시대에 과거의 방식은 맥을 못 춘다. 지식이 융합하며 새로운 세상을 펼쳐 보이는 만화경의 시대에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는 것은 죽음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다. 지금은 창조 조직으로 혁신시켜 새로운 차원의 사업기반을 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업 존립 기반 자체가 날아가 버릴 위험이 있다. 그러기에 현재의 한계를 뛰어 넘기 위한 혁신의 몸부림으로서 창조 사회가 부상하는 것이다.
창조적 역량은 기업의 미래에 대한 가장 적절한 생존조건으로 다가오고 있다. 창의적 조직은 꽉 막힌 한증막 같은 현실을 벗어나 숨통이 확 트이게 만들 수 있다. 그간 우리는 산업 사회의 덕목인 일사불란, 절도, 명령복종, 부지런함과 같은 인간의 다양성을 얽어매는 제한된 경영 이데올로기(대부분은 정치·사회적 이데올로기였지만)에 의해 개인과 조직의 창조적 사고와 행동이 크게 제약을 받아왔다. 그러나 전 세계 그 어느 시대의 융성도 획일화된 가치와 세계관으로 이루어진 경우란 없다. 상호교류, 교감, 교차의 개방성과 다양성을 받아들일 때 혁신의 결과를 가져왔다.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시기가 이와 같았고, 오늘날 한국사회가 몸부림치며 변화를 꾀하고자 하는 모습이 그러하다.
세상의 흐름을 리드하는 방법은 ‘낡은 세대’가 아닌, 젊은 세대에 물어보는 것이다. 과거처럼 유산으로 물려받은 지식이 별로 유용성을 지니지 못하는 시대에는 더 빠르게 세상에 적응해 가는 젊은 층들의 새로운 생각과 지식이 세상을 이끌어 간다.
경영 현장에서도 경영자들은 생각을 좀 더 확장해 미래 세대를 품을 수 있어야 한다. 아직도 산업시대처럼 돌격 앞으로! 를 부르짖던 경영자의 시대, 포효하듯 구호를 외치는 경영자의 시대, 날 서고, 거칠기만 하던 경영자의 시대를 신조처럼 생각한다면, 미래 인재를 얻기란 어려울 것이다. 이제는 보다 즐거움과 영감과 감수성을 지닌 경영자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그 만큼 사회적 수준이나 합의된 문화적 밑천이 현격히 높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모든 면에서 바뀌고 있으나, 그 흐름을 읽지 못한다면, 도요새가 될 가능성이 높다. 다들 날아오를 때 멀건이 바라보기만 한다면 너무 안타깝지 않은가. 주크버그(페이스북 창업자)를 꿈 꿀 수 없는 젊은이들에게 주크버그가 되라고 하기에 너무 미안하고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다.
Copyrights 전경일. 인문경영연구소장.《초영역 인재》저자.
오늘날처럼 ‘가치’가 중요하게 취급되는 시대도 아마 없을 것이다. 고객 가치 추구니, 가치 중심 사회니 하는 말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가치가 등장하고 있고, 목말라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에 맞춰 기업들은 남다른 가치를 드러내고자 차별화니, 고객만족이니 하는 말들을 무한정 쏟아내고 있다.
그렇다면 ‘가치’란 무엇일까? ‘가치’는 시대성과 무관하게 그야말로 ‘가치 있는’ 것일까? 금은과 같은 귀금속이나 다이아몬드 같은 보석 등이 가치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꽤나 오래 전부터이다.(다이아몬드가 보석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금은 대비 훨씬 연륜이 짧다.) 이런 광물들은 오랫동안 인류사에 등장해 유효성 있는 가치로 선호되고, 취급받아 온 물질이다. 이런 보화가 가치 있는 물건으로 등장한 것은 그 가치가 널리 받아들여지고, 사회적으로 통용되면서부터이다. 환금성이 있든, 교환가치가 있든, 희귀성이 있든, 유용성이 특별났든, 일반적인 물질 대비, 뭔가 다른 가치가 있었을 것이고, 그것이 사람들 눈에 띠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가치’란 그 물질이 지닌 고유한 무엇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인지하는 사람의 능력이 뒤따를 때 가치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물질만 의미하는 건 아니다. 어떤 물건이거나 시간, 기회 등 유무형의 자원 일체를 포함하는 개념 차원일 수 있다. 결국 가치란 시대적 산물인 것이다. 기업이 말하는 고객만족이라는 가치도 알고 보면 당대를 살아가는 고객의 심상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변화로 기업 활동에 긍정적으로 쓰이는 것을 뜻할 것이다. 이처럼 가치는 시대성을 띠고 있는데, 가치의 시대성과 관련되어 헨드릭 빌렘 반 룬은 <반 룬의 예술사 이야기>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고고학이 등장하기 전인 “16세기나 13세기의 우리 조상들은 (과연 고대의 무덤이나 수만 년 전에 사멸된 동물의 뼈나 사람의 뼈)를 발견하지 못했을까? 물론 그들도 발견했다. 그러나 그때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래서 아무도 그런 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대부분의 경우에 해골은 발견된 그 동굴 안에서 살해되었거나 죽은 불쌍한 순례자 또는 병사의 유골로 오인되었다. 사람 뼈가 아님이 분명한 뼈는 농기구나 비료로 쓰였다. 1805년과 1809년 중에 오스트리아 원정에서 쓰러진 영웅적인 나폴레옹 병사들의 시체가 나중에 영국업자들에게 비료로 팔려간 것과 마찬가지 경우였다.”
이런 경우는 중국 고대의 갑골문자가 쓰여진 거북의 등껍질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갑골문자가 쓰여진 수많은 뼈들이 처음 발견되었을 때에는 그 뼈들은 주변 사람들에 의해 거름으로 쓰이거나, 뼛가루로 갈아져 아무런 약효도 없는 약재로 쓰였다. 그것의 가치를 알아본 것은 고고학적 의미를 그 뼈다귀에 불어 넣은 사람들이었다.
이 두 경우를 보며 궁극적으로 알게 되는 것은 가치는 본질적으로 시대적 산물이라는 것이다. 어떤 가치가 인정받기 위해서는 일정한 시간이 흘러야 하고, 특정한 지식이 사회적으로 수용되어야 한다. 물론 그것을 가치로 받아들일 줄 아는 지식 집단이 등장해야 하고, 그것에 관심 가질 만큼 최소한의 여유가 있어야 할 것이다.
오늘날 고고학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것들이 예전에는, 즉 고고학 등장 이전에는, 사장되거나 무관심거리였을 것은 자명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아직 모르는 상태에 있는 수많은 것들에 대해서 여전히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누구도 생각 못한 발견이나, 과학적 시도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등도 숨겨진 가치가 실현되기 전에는 가치로써 인정되기는 커녕 관심거리도 되지 못했다. 그러나 어느 누군가에 의해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고 해석되면서 이전의 무가치가 가치로 뒤바뀐 것이다. 이런 혁신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기업 경영용어로는 ‘초발혁신가’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렇다면 가치는 어떻게 발견(발현)되는 것일까? 그것은 학문의 발달이나, 사회적 변화, 새로운 인간의 욕망 등 여러 필요조건이 함께 작용해야 한다. 이런 환경 요인(경영용어로 요구needs)이 작용할 때, 가치는 숨어 있다가도 불현듯 등장해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거나, 인간의 욕구 개발을 촉진시켜 주는 것이다.
이런 것이 단순히 물질만이 아닌 사회적 가치로 환원되면 세상을 움직이는 시스템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새로운 질서를 잉태해 내기도 한다. 전세계적으로 친환경이니, 녹색이니 하는 키워드들이 21세기의 첫 10년을 풍미하고 있는 이유도 알고 보면 우리가 그간 간과해 온 ‘가치’에 대해 새삼 환기시켜주는 면이 크게 작용한다. 환경문제가 크게 대두되지 않았을 때 이 같은 관심사는 소수의 사람들의 취미에 불과했었지만, 지금은 대단히 심각한 문제라는 사회적 인식이 함께 하며 환경은 가치의 중심으로 급부상한 것이다.
인간을 규명하는 여러 가치에 대해 우리는 관심을 가지고 해결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가치가 아직 안보일 때 그것은 그냥 굴러다니는 뼈다귀에 불과할런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인간의 역사를 규명할 풍부한 재료임에 분명하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지금 만들어 내는 어떤 것들은 당장 인류의 재부가 아닐지 모르지만, 먼 훗날엔 오늘날을 규명할 가치의 집합체일지 모른다. 요는 그것을 보는 우리의 눈이다. 가치를 보고자 하는 안목에서 가치가 나올 것은 분명하다. 가치를 읽는 힘은 지금 내가 보고, 만지고, 더듬는 사소한 것들에서 나온다.
ⓒ전경일. 인문경영연구소장.《초영역 인재》저자.
A. 암말 8, 숫말 1, 암소 10, 수소 1마리
B. 말 30~50, 양 100, 대형가축 15~20, 염소 20~50마리
C. 말 15, 낙타 2, 대형가축 6, 양 50마리
좀 생뚱맞은 질문을 하나 해보자. A, B, C 위 세 개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몽골초원, 우즈베키스탄 등 지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5인 가족 유목민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필요한 가축 수이다. 유목을 하는 사람들은 목축을 통해 생산한 물품을 농업 생산물과 교환해 살아가는데, 이들은 이 정도 숫자의 가축을 갖고 있어야 ‘단순 재생산’이 가능해 진다고 한다. 경제 활동을 유지할 수 있는 절대치가 이것이라는 것. 아프리카의 카바비쉬인들의 경우에도 한 핵가족이 독자적으로 생존하려면 낙타 2~25마리와 양 40~50마리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 이상이 되면 ‘부유한’ 편에 속한다. 이를 가리켜 ‘표준가축단위(Standard Stock Units)’라고 부르는데 최대와 최소를 오가는 가축규모의 적정수를 통해 유목민의 생존 필요조건을 알 수 있다.
생존에 요구되는 가축 수는 이렇지만, 실제 사람들이 가축을 더 많이 관리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의 목동이 관리할 수 있는 가축의 수는 낙타의 경우 대략 150마리, 개의 도움 없이 돌볼 수 있는 양과 염소의 방목규모는 400마리로 어느 유목민 집단이나 대략 500마리를 넘지 않는다. 그렇지만 예외도 있다. 캄차트카 지역의 순록유목민의 경우에는 다룰 수 있는 가축의 무리가 최대 1,000~1,500마리에 달한다. 이들은 왜 다를까? 이들은 풀을 찾아 이동하는데 무려 1,200km를 이동한다. 풀을 찾아 이동해도 한 유목민이 관리할 수 있는 가축의 최대수는 이 정도다. 자연 방목시에는 더 이상의 가축 수를 늘릴 수는 없다. 왜 그럴까? 1,000마리가 넘는 양떼를 끌고 다니면 양들이 아무것도 안남기고 풀을 모조리 먹어치우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뒤에 있는 양들은 먹을 것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즉 풀을 뜯는 동물의 숫자가 상한선을 넘어갈 경우 초지 자체가 완전히 황폐화되어 버려 초지로써 지속성을 갖을 수 없게 된다. 이는 현대 목장에서 사료를 주어 1인당 2,500마리까지 키우는 것과 비교할 때 많은 차이점을 보인다. 인위적인 관리 방식과 자연방목의 차이점이 이 점이다.
유목민들의 관리 짐승수를 보며 생각해 보는 게 있다. 지속가능성과 절제의 미학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모조건 많이 가져야 하고, 욕망은 필요 이상으로 늘 넘쳐난다. 그 결과 환경은 황폐화되고, 인간 이기심에 의해 촉발된 사회적 갈등은 줄어들 줄 모른다. 해마다 경기도 크기만한 아마존 밀림이 사라지고 있어 향후 50년 후에는 열대우림의 80퍼센트 정도가 사라질 전망이다. 파헤쳐진 밀림은 경작지로 변모되며 무한한 생산의 컨베이어 벨트가 되어 인간에 유익한 쓰임새를 가질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한번 사라진 밀림이 복원되는 데에는 작게는 수십 년에서 수백 년이 걸릴지 모른다. 애당초 복구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아마존 밀림은 지구의 동물들이 필요로 하는 산소의 20퍼센트를 공급하고 있다. 이 ‘지구의 허파’가 사라진다면 그 결과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인간 존재조차 설 땅이 없어진다. 대재앙은 이처럼 불을 보듯 뻔하지만, 인간의 욕망은 멈출 줄 모른다.
어떻게 해야 자연과 인간이, 인간 상호간에 지속성을 위한 노력을 할 수 있을까? 절제의 미학이다. 지구상에 유일하게 냉장고를 만들어 필요 이상의 음식물을 보관하는 존재는 인간 밖에 없다. 냉장고 등장 이후 인류는 거대한 욕망의 사슬을 만들어 내고 결과적으로 썩어가는 냉동음식을 먹게 됐다. 신선한 음식이 웰빙의 대명사가 되고 있는 마당에 냉장된 음식은 죽은 동물의 사체를 더 오랫동안 보관함으로써 신선도가 떨어지고 인간의 건강을 위협하는 문명의 이기로 탈바꿈된 것이다. 이런 인간의 탐욕이 아마존 밀림 파괴와 냉장고 등 문명의 이기에서만 찾아지는 것은 아니다. 경영학적 의미에서도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 토요타는 불과 이태 전 리콜 사태로 큰 사회적 물의를 빚어냈다. 안전 우선의 사고보다 더 많은 생산과 소비의 중심에 있다 보니 과도한 욕망이 부메랑이 되어서 돌아온 것이다. 토요타는 불과 이태 전 세계 시장점유율 15퍼센트를 목표로 해외 생산에 박차를 가했다. 과도한 해외생산 증대는 결국 안전한 차보다는 원가 절감된 차 중심으로 경영 방침을 몰아갔고, 그 결과 리콜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그 뒷두습에 토요타는 적잖은 비용과 사회적 책임을 져야 했다.
모든 양들이 풀을 다 뜯어 먹는다면 뒤의 양은 먹을 게 없게 된다. 결국 방목에는 과도한 개체수가 지속가능성을 망가뜨리며 초원의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다. 이를 인위적으로 조절해 적정 수의 동물을 관리하는 유목민의 지혜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적잖은 교훈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뿌리를 뒤흔들어 놓는 지나친 양극화나, 부의 대물림 같은 현상은 좀처럼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결국엔 지속성을 위해서라도 절제된 사고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앞의 양만 배부르고 뒤의 양이 굶어 죽는다면 그건 삶이 충만한 초원의 질서가 아니다. 그럴 때 초원은 더 이상 푸르지 않다. 절제된 힘만이 이 멋진 세계를 계속 이끌어 갈게 분명하다.
ⓒ카인즈교육그룹,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초영역 인재》저자.
지금으로부터 약 6,500만 년 전인 백악기 말엽, 지구에는 거대한 불운이 몰아닥쳤다. 우주에서 날아온 유성 하나가 중앙아메리카 근방에 떨어진 것이다. 이 충돌로 1입방 킬로미터 이상의 먼지 소용돌이가 생겨난다. 화염은 수백 년 동안 지구 주위를 맴돌다 불꽃을 일으키고 떨어지며 지표면의 초목을 거의 다 불 태웠다. 거대한 화재는 그을음과 연기를 자욱하게 일으켰고, 공중으로부터 지표면에 도달하는 햇빛을 차단시켜 나갔다. 이로 인해 지구의 기온은 급격히 떨어졌으며, 광합성을 할 수 없는 식물들은 속수무책으로 죽어갔다. 결과적으로 상호 먹이사슬로 연결된 생태계는 파괴되기 시작한다. 이 같은 기후 변화로 짧게는 몇 백 년에서 길게는 40만년까지 빙하기를 맞이하게 되는 데 이를 홍적세(洪績世) 또는 제4 빙하기라고 부른다.
이 암울한 시기, 미약한 인간은 어떻게 생존에 성공했을까? 인간은 생존을 위해 뇌의 활용을 가장 왕성하게 해야 했는데, 450만년에서 200만 년 전에 있었던 빙하기 동안 인간의 뇌는 급격히 진화했다. 호미니드가 바로 그것이다. 이들은 인류 최초로 도구를 만든 것으로 알려진다. 또한 190만년 전부터 70만년 전까지는 어떤 기술적 진보도 없어 보이지만, 놀랍게도 인간의 뇌는 3배 이상 커졌다. 기후상 변화는 인류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동식물에 영향을 미쳤고, 주기적으로 나타나 약 11만년 전에도 다시 빙하기가 시작되었다. 이 시기에도 과거와 같이 인간은 생존을 위한 특별한 투쟁을 해야 했다.
갑자기 닥쳐오는 거대한 자연의 불행 앞에서 인류가 배운 게 있다면 생존을 위해 강인한 신체 조건을 갖추는 일과 종족 번식을 위한 고도의 유연성과 적응력을 갖추는 것이었다. 그리고 깊은 동굴에서 언제 끝날지 모르는 빙하기 동안 3가지 ‘마법적인 발견’을 이뤄낸 점이었다. 하나는 사냥을 위해 연장을 혁신한 것과, 인류 최초로 문법적 구조를 지닌 언어가 출현하며 커뮤니케이션이 생겨났다는 것과 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즉, 생존과 관련된 일과 지식을 만들어 내는 ‘제3의 취미’를 개발해 낸 것이다. 이 같은 인류의 적응과 진화 과정은 인류가 멸종하지 않고 존속케 한 힘이었다. 실로 대단한 변화를 겪으며 진화(진보)를 이뤄낸 것이다.
자연이 인간 생존에 위협적인 존재로 비치는 것은 비단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지질학자들의 얘기에 의하면 지구는 2000년에 한번 씩 화장을 고친다고 한다. 지표면의 변화가 서서히 일어나다가 급격히 표출되는 것이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후쿠시마 근해에서 발생한 쓰나미는 2만여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자연 재해 앞에서 우리는 속무무책이지만 예방활동과 사전 경고 시스템을 통해 그나마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인간은 자연보다 더 위협적인 위험 요인을 스스로 만들어 냈는데, 쓰나미가 지나간 후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벌어진 것이다. 이 사고를 계기로 방사능 위험은 전지구적으로 확산돼 지구를 돌아 멀리 북유럽은 물론, 한반도까지 상륙했다. 편서풍이던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 방사능은 우리에게 더 큰 위험으로 지속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현실화 되고 있기도 하다. 또 쓰나미가 끌고 간 쓰레기가 태평양을 건너고 있어 내년쯤이면 미국 서부 해안에 도착할 거라는 예측이다. 각종 쓰레기와 함께 인간을 포함한 생물체의 부패한 시신이 표류하다가 해안가에 닿으면 각종 전염병과 2차적 감염을 가져올 게 분명하다. 2차 대전 때 핵의 위험을 직접 경험한 일본은 이번 쓰나미 사태를 계기로 또 다시 방사능의 경험을 하고 되었다. 그리고 이 같은 사태는 나비효과를 일으켜 전 세계에 위험요인으로 확장되고 있다.
백악기 말엽 지구를 지배했던 공룡은 자연재해에 의해 멸종됐다. 포유류의 일원으로서 인류는 작은 체격이었지만 무엇이든 먹을 수 있는 잡식성과 빙하기를 거치며 강력한 두뇌 확장으로 생존과 번영에 성공했다. 암울한 시기에 제3의 취미로 불리는 지식을 창출해 내며 인류로서 지속가능한 조건을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다. 핵과 원전 위험의 공포 앞에 인류는 생존사의 그 지난한 궤적을 곱씹어 보아야 한다. 현재의 위험을 제거하고 인류가 다 함께 사는 공동체로서 지속가능성을 획득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보다 생존 친화적 지식을 개발하고 이를 현실에 접목해야 나가야 한다. 과도한 욕망은 끝내 전지구적 불행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경계 시스템과 욕망 최적화는 생존의 필수요소다.
1912년 타이타닉 참사를 계기로 전 세계는 모든 선박에 무선장치를 장착하도록 의무화했다. 또한 1914년 1월 30일에는 13개 해양국이 참여한 국제 빙산 감시대가 창설되었다. 이 조직은 지금도 그랜드 뱅크 부근의 95만 제곱킬로미터 해역을 샅샅이 감시하고 있다. 해안 경비대는 빙산의 수를 세고 크기를 측정하며 표류방향을 확인하면서 빙산 감시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재난 이후에야 대책 마련 시스템이 갖추어진 것이다. 일본 쓰나미-원전 사태는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원전에 대한 근본적 대응책을 인류 차원에서 새롭게 수립해야만 한다. 도구-소통-예술의 탄생을 가져온 오랜 선조들의 경험 중, 우리는 원전이란 도구 사용과 전지구적 소통에 지금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인류가 자체적으로 지속가능성을 계속 유지하려면, 우리는 현대문명의 이기에 대해 본질적으로 원점에서 생각해 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것이 오랜 인류사의 경험으로부터 유리가 배우는 생존법일 것이기에 그렇다.
전경일. 인문경영연구소장.《초영역 인재》저자.
현대 사회는 어느 한 가지 분야에만 집중해서 살 수 없다. 복잡계를 반영하듯, 개인의 경력도 집중도가 과거 어느 때보다 크게 대두된다. 이런 변화를 주도한 것은 정보화와 산업화가 엊갈리고, 로컬(local)이 글로벌(global)로 전환되는 외환위기 전후와 맞물려 있다. 개인의 경력 또한 시간과 경험이 쌓이며 피라미드 상층부로 이동하는 식의 패턴이 아직 유효하다 해도 새로운 직장 풍토에는 밀리고 있다. 국내 한 대기업이 ‘같은 직급 내 임금 격차를 최고 3배가 나게 하라’는 인사정책을 들고 나온 것은 평가와 보상 면에서 더 철저한 경쟁 원리를 담아내고 있다. 보통의 평범한 직장인은 승진은 고사하고, 자리보전도 하기 어려워졌다.
여기에 직장인의 심각한 고충이 있고, 기업이 당면한 고민이 있다. 어느 조직이건, 조직 위계상 상위계층은 하위계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 숫자가 적다. 피라미드 유형의 조직이건, 네트워크 조직이건, 평면화된(flat) 조직이건 간에, 상위계층으로의 이동은 경력 상승의 한 방법이고, 직장인이라면 모두가 기대하는 바다. 그러나 우리의 직장에 글로벌 무한경쟁이 뛰어들며 판이 달라졌다. 국내 리그전에 갑자기 월드 스타급 인재들이 뛰어든 것이다. 새로운 판도는 과거의 잣대로는 가늠하기 어려운 형편이 되었다. 그간 우리가 지녔던 경쟁력, 즉 입사시까지 투입한 정규교육과정 12년 동안의 영어 교육과 대학에서의 전공 분야는 글로벌 경쟁이 요구하는 밀도를 밑도는, 범세계적 기준으로 보자면 저밀도 수준에 불과하다. 이제는 경쟁조건을 마련하기 위해서도 철저하게 득실과 효과성을 따져보아야 한다. 전공 영역에 있어서도 우리는 여전히 원천지식, 기술에 한참을 밑돌고 있다. 창의성은 ‘남을 따라 배우는’ 벤치마킹 시대가 끝난 지금 기업 생존의 절체절명의 핵심요소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인식과 투자는 여전히 신통찮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직위 상승은 어느 지점에 이르러 느려지거나 멈추게 되는 게 일반적이지만, 중간 관리층을 중심으로 정체를 맞이하고 있고, 성장은 캡(cap)에 씌워져 있는 듯하다. 고임금의 구조를 대신할 각종 툴과 기술은 얼마든지 있다. 단순 기능 인력을 대체할 대안들은 이미 넘쳐나고 있다. 개인들이 갑작스럽게 찾아 온 경력의 빗장에 걸려 일정한 높이에 이르러 더 이상 진척시키지 못하는 경력 정체현상을 ‘경력고원(經歷高原, career plateau)’이라고 하는데, 이는 개인의 직위상승이 느려지거나 멈추는 것을 말한다.
개인에게 경력고원이 발생할 경우, 개인들은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되고 자신과 조직의 갈등, 불만족을 표출하며, 전반적인 사회생활, 직장생활에 실망과 낭패감을 감추지 못한다. 군중속의 고독감을 느끼며, 고립감, 정체성의 회의에 빠져들며, 삶 자체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된다. 적잖은 도전 환경이 쓰나미처럼 우리 앞에 밀려오고 있는 것이다. 초기 경력고원에 대한 인식은 경력고원은 없어져야 할 대상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의 경향은 경력고원을 나의 변화의 기회, 전환의 시간, 도전과 성찰의 시간 등으로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자신이 하는 전문 분야에서의 경쟁력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십대부터 다원적 가치에 눈 돌리는 것 어떤가? 은퇴 후 자신이 하고픈 일을 찾기보다 20, 30대부터 평생을 두고 하고픈 일을 찾아 매일 조금씩 진척시켜 나가는 것은 경력 증발시대에 자신의 사회적 생명력을 더 늘릴 수 있다. 나는 직장생활을 20년가량 하며, 매일 A4용지 한 장 분량의 글을 썼고, 직장을 그만둘 때엔 스무 여 권의 책을 냈다. 그게 나의 후반생 밑천이 되었다. 글의 초점도 시대에 유행하는 트랜드만 쫒지 않았다. 인문과 경영을 결합시킨 독창적 세계는 누구도 흉내 내기 어려운 나의 고유의 영역이 됐다. 바로 이런 불변의 가치 영역을 찾아내 시도하는 것이 중요할 성 싶다. 그렇다고 시대감각에 뒤떨어지는 주제를 잡지는 말라. 만일 그렇다면 아직도 시골에 가면 한 두 군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대장간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대장장이나 대장간을 ‘경쟁력 있는 경력·직업·산업’으로 인식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이제는 글로벌 경쟁력, 즉 기술이나, 영업, 마케팅, 신제품 아이디어, 시장 노하우, 혁신 가치, 창조성 발현 등에 있어 남다른 역량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기업은 물론, 개인의 존재 가치조차 사라지게 된다. 내가 하는 일이 우물이 말라버리는 산업군, 사업기반, 개인역량에 묶여 있는 것인지 철저하게 자기점검을 이루어야 한다. 개인의 경력이 이렇게 정체를 맞게 될 때 기업들은 어떤 과정을 겪을까? 기업은 성장도 변신도 꾀하지 못한 채 개인이 맞는 경력고원과 같이 사업이 정체되어 시장과 경쟁사에 끌려 다니는 ‘사업고원(事業高原 business plateau)’의 한계국면을 맞이한다.
이제 개인이나 기업은 경력고원에서의 정체를 벗어나기 위해 가치를 잉태하는 지식과 기술을 찾아내고 이를 보강하는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개인의 기술과 능력, 개인의 요구와 가치, 내·외적 동기, 조직성장의 방안을 찾는 기업과 개인만이 경력고원의 덫에 갇히지 않고 새로운 국면을 주도적으로 열어 갈 수 있다. 기업은 직원들과 공동의 생존조건을 마련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생존방식을 찾아야 한다. 개인은 변화한 환경을 능동적으로 자기개발을 위한 장으로 인식하고 총체적으로 자기점검, 자기 발전의 전기로 삼아야 한다. 만일 현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고원의 칼바람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개인과 기업이라면 그들의 운명은 곧 사라지게 될 것이다. 개인의 경력을 확장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조직의 번영을 위해서도 보다 창조적인 방식을 찾을 때다. 정해진 파이를 놓고 벌이는 경쟁이 아닌, 창조성으로 현재의 난관을 극복할 때, 경력고원에서 벗어나 드넓은 평원으로 내달릴 수 있다. 결국 사람을 이해하고, 사람을 끌어안는 인문적 소양이 지금 깥은 때 더욱 빛을 발한다는 얘기다. 그럴 때 새로운 발상의 전환은 이루어진다.
전경일. 인문경영연구소장.《초영역 인재》저자.
미국의 인사관리 전문 컨설턴트인 신시아 샤피로는 앞으로의 시대는 “레이저 빔형이 아닌, 전구형 인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왜 하필 전구형인가? 레이저빔처럼 어느 한곳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전구처럼 사방을 밝히는 인재유형이어야 의미있다는 이유에서다. 마치 360도 시각을 지닌 잠자리가 사방을 주시하며 기회를 엿보는 것처럼, 지적 시계(視界)가 360로 자유자재여야 한다는 얘기다. 이는 다각적(多角的) 시야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면에서 ‘다분히 보는 방식’만을 뜻하지 않는다. 대신 통합적 사고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면적 이해가 총체적 문제분석능력, 해법창출 능력을 통해 전혀 새로운 국면을 창출해 내는 (즉, 비즈니스에 요구되는 다양한 측면이나 문제, 본질을 꿰는) 능력을 드러낼 때 기업은 창조적 국면을 열어젖힐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 의미에서 360도 인재는 다각적(多角的)인 게 아닌, 전각적(全角的)이어야 할 것이다.
이를 학제에 적용해 보면 어느 한 전공에의 초점이 아닌, 학제간 통섭이 필요한 것과 같다. 인재를 구분할 때 쓰는 흔한 비유로 스페셜리스트냐, 제너럴리스트냐 하는 것은 한 우물을 깊게 파느냐, 혹은 여러 우물을 조금씩 파느냐에 따라 구분 지을 수 있다. 즉, 깊으냐(深) 얕으냐(薄), 어느 우물이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반면, 통섭형 인재는 여러 우물을 깊게 파고, 수도관으로 상호 연결시킨다. 즉, 지식 및 경험에서 전방위로 상호 연결, 연계, 연동시킴으로써 남다른 우물을 팔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궤를 꿰는 능력은 다양성과 복잡성의 경영환경에 가장 잘 맞는 인재형이다. 런던 비즈니스 스쿨의 개리 하멜(Gary Harmel) 교수가 말하는 ‘핵심역량’ 중, ‘만화경식 사고(Kaleidoscopic Thinking)’가 바로 그것이다. 복잡한 일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시각적 은유는 모든 데 적용된다. 그러기에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모든 그림은 관찰할 줄 아는 힘에서 나온다.”고 말하기도 했다. 보는 눈을 달리하는 건, 세상을 대하는 사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일전에 나는 한 석유업체의 임원과 얘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가 하는 말이 의미심장했다. 미국 텍사스의 유정(油井)은 직선으로 시추공을 박은 뒤 원유를 다 뽑아 올리고 나자 기존 업자들이 떠나 버렸는데, 그곳에서 다시 사선으로 탐침하면서 직선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던 미발견된 원유를 찾아낸 업자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효율성을 최대한 올리기 위한 방편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직선으로 더 탐침하는 것이 아닌 기회와 만나는 면적을 넓혔다는 면에서 창조적인 발상으로 인식된다. 즉,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거나, 경쟁의 축을 바꾸거나, 다른 시장을 겨냥하거나, 없던 시장을 상상해 내는 것 등은 목적은 같더라도 완전히 내용을 달라지게 할 수 있다. 이 같은 시도들은 기존의 것을 전혀 다른 낯선 눈으로 볼 때 얻어질 수 있는 착안이다.
통섭형 인재의 창조성은 통합적 통찰력을 가지고 새로운 유정을 찾는 사람들과 비슷하다. 지식을 연계하는 역량을 발휘해 달리 사고하고 다른 각도에서 시도해 볼 때 창조는 발현된다. 창조와 혁신을 위한 ‘창조적 파괴’는 실은 전공 영역을 파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어느 한 두 가지 지식과 경험으로는 기업이 당면한 문제의 본질을 다 파악할 수 없다. 나아가 복잡성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도 없다. 눈먼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식이 되어 버린다.
정보화가 진행되면서 지식은 누구거나 간에 마음만 먹으면 전문가 수준까지 될 수 있다. 그 정도 아이디어는 누구나 IT관련 스킬만 갖고 있으면 지식에 접근할 수 있다. PC와 인터넷 등장 이후 개인은 가히 폭발적으로 지적인 경험과 통섭적 경험을 쌓아왔다. 다만 그 연계성에서 질서를 찾아내는 훈련을 쌓아오지 못한 면이 있다. 이 같은 능력이 지식의 전분야로 확대 심화된다면, 이는 2차 지식 빅뱅이 될 수 있고, 새로운 지식 시대가 요구하는 하이브리드 지식(hybrid knowledge)의 신천지를 열 수 있다. 순종간 교배에서 순종-잡종간, 잡종간 교배로 지식이 융합되며 지식경제가 360도로 넓어지는 것이다.
앞으로는 전공, 비(非)전공이 아닌, 다전공(多專攻)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이미 의학-법학(예컨대, 법의학적 지식이 요구되는 보험산정인 같은 직무를 생각해 보라.), 컴퓨터공학-신경학(MIT에서 개발 중인 인간 신경을 이용한 컴퓨터 칩에 대해 생각해 보라.), 소비자학-미디어학(요즘 Web2.0 세대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마케팅 회사들의 활동을 보라.), 디자인학-기계설계공학(산업 디자인 분야에서 디자인은 기구와 같은 기계공학적 원리를 충분히 이해하고 디자인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 봐라.) 등 수많은 분야에서 연계학문, 비교학문의 등장을 눈으로 목격하고 있다. 이처럼 각 학문이 얽혀 한 덩어리가 되는 요구는 곧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학문과 학제에서 벌어지는 영역파괴를 통한 통섭은 기업 활동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쳐 기존의 사업 분야를 확대개편하며 창조성이 대폭 강화된 새로운 경쟁의 틀을 짜고 있다.
생명과학 분야 기업에서 과학자-컴퓨터 공학자-제품개발자가 묶이는 이유는 분명하다. 기업의 역량을 최대한 향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종다기(異種多奇)의 지식 연합체가 일을 내는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그 예로 미국의 시티즌 파이낸셜 그룹은 역동적인 경영을 위해 은행산업 이외의 경력을 갖춘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하고 있다. 이는 통섭적 마인드가 지식경제 사회의 핵심역량이 되기 때문이다. 벗어나고, 깨뜨리고, 꿰뚫는 과정에서 ‘풀고 헤쳐 모으는’ 잡종 역량이 태어나고 있다. 이처럼 지식 접목을 통한 차별화나 독특한 신생 가치가 새로운 종자지식(seed knowledge)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사회현상이 복잡해질수록 지식의 분절, 경험의 분절 현상이 해체되고, 통합이 주요 화두가 된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고자 하는 기업은 탐침의 방식이나 방향을 바꿔서라도 경쟁의 날을 세우고자 한다. 대학에서도 복수전공, 트랙전공을 통해 초전공 학제를 도입하는 시도를 하는 것은 이 같은 사회적 요구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Abraham Maslow)가 말하듯 “망치를 잘 다루는 사람은 못 하나하나의 문제점을 볼 수 있다.”는 얘기는 전체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로 통섭의 시대에 적절한 비유가 될 수 있다.
대학은 세계적인 추세인 통합적 학문 접근법에 따라 융복합의 전공과정을 속속 개설하고 있다. 경영학도 통섭을 ‘새로운 변화’의 상징으로 적극 받아들일 것으로 보인다. 이는 경영학이 그 자체로 독자적인 정체성을 지닌 학문이라기보다는 관계적 정체성에 기반한 학문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쟁에서는 복합형 인재들을 두루 갖춘 세계 유수 기업을 상대해야 하는 초경쟁 환경이 국내 기업에 요구되고 있다. 당연히 요구하는 인재상도 퓨전형 인재로 귀결된다. 피할 수 없는 인재상의 흐름이다.
21세기의 기업의 생존은 인재에 달려있다. 두루 꿰면서도 각 지식을 엮어낼 수 있는 능력은 글로벌 역량보다도 더 중요하다. 지금 대학을 보면 과거 10년 전에는 없던 학과가 대거 등장하고 있다. 어제까지만 해도 없거나 생소하기만 했던 학과는 하루가 다르게 속속 신설되고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초전공이 대학 학제의 기본이 될 거라는 전망이다.
자료: 박건형, <21세기 新다 빈치 프로젝트-통섭을 말하다>,서울신문,2008.7.18. 김상운, <서울대 ‘통섭’으로 간다> 동아일보, 2008.7.28.
이제 개인은 철저하게 초역량 인재로 거듭나야 한다. 웹의 정신이 360도 다면시점, 다원적 가치로 표면화 되고 있는 현상은 이미 기술적으로도 개인화(personalization)의 파고가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다. 모든 면에서 기업은 이전에는 상상치 못했던 새로운 지식의 물결과 맞딱뜨리게 된다.
우리 사회는 이미 인터넷을 통해 분절지식이 포화점을 넘어섰다. 이제는 거의 모든 지식에 접근 가능하다. 우물 물이 넘칠 때에는 옆에 다른 우물을 파서 기존 우물의 수위를 조절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의 손실 없이 충만하다. 지식의 포화는 새로운 지식 우물을 개척하는 것으로 전체적인 균형을 맞출 수 있다. 여러 우물을 깊게 파고, 연계시키는 작업은 21세기 지식 경영자에게 요구되는 가장 큰 덕목이다. 통(統)함으로써 섭(攝)하고, 섭(攝)함으로써 달(達)할 줄 수 있다면, 기업이 요구하는 21세기 인재상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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