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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의 조건은 무엇인가? 많은 전제 조건이 있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으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처럼 ‘페르케(왜why)'를 늘 입에 달고 다니는 것이다. 사물과 세계에 대한, 인간의 행동과 심리적 기저에 대한 끊임없는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다. 깊게 파고 파서 그 끝을 볼 수 있을 때까지 의문을 품고 해법을 찾는 것이다. 자신이 늘 보던 것, 생각하던 것, 행동패턴을 그대로 따라가면 폭넓은 사고를 하기란 어렵다. 물론 창의적인 결과를 얻기도 힘들다. 기존 사고에 꽉 끼인 상태가 되면 진퇴가 불가능한 상황에 맞딱뜨리게 된다. 지금 대한민국호가 처한 상황이 이렇다. 진퇴가 가로막힌 모방의 덫, 외통수의 사고에 빠져 허우적 대고 있다. 이 협곡을 지나는 것은 적잖은 희생을 요구하지만, 넘기만 하면 새로운 평원이 펼쳐진다.

 

21세기 들어 기업에서 찾는 인재상이 급변하는 것은 현재의 방식으로는 기업이 지닌 궁극적인 문제해결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절박감이 목까지 차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방식, 즉 하나의 생산기술이 도입되고 산업화 시대처럼 그 효용성이 적어도 100년은 유지되는 기반이 된다면 이런 고민은 덜할 것이다. 하지만 초당 테라바이트의 정보가 오가고, 기술 혁신이 일 단위, 분초 단위로 이루어지는 시대에는 과거의 방식은 맥을 못 춘다. 지식이 융합하며 새로운 세상을 펼쳐 보이는 만화경의 시대에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는 것은 죽음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 있는 셈이다. 지금은 창조 조직으로 혁신시켜 새로운 차원의 사업기반을 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업 존립 기반 자체가 날아가 버린다. 그러기에 현재의 한계를 뛰어 넘기 위한 혁신의 몸부림으로서 창조는 부상하는 셈이다.

 

창조적 역량은 기업의 미래에 대한 가장 적절한 생존조건으로 다가오고 있다. 창의적 조직은 꽉 막힌 한증막 같은 현실을 벗어나 숨통이 확 트이게 만들 수 있다. 왜 바다의 표면은 보면서 물결이 만들어 내는 심연의 지형은 꿰뚫어 보지 못하는가? 그건 표면적이고 외형적인 이해 수준에 우리 인식이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그간 우리는 산업 사회의 덕목인 일사불란, 절도, 명령복종과 같은 인간의 다양성을 얽어매는 제한된 경영 이데올로기(대부분은 정치·사회적 이데올로기였지만)에 의해 개인과 조직의 창조적 사고와 행동이 크게 제약을 받아왔다. 그러나 전 세계 그 어느 시대의 융성도 획일화된 가치와 세계관으로 이루어진 경우란 없다. 상호교류, 교감, 교차의 개방성과 다양성을 받아들일 때 혁신의 결과를 가져온다. 《훈민정음》의 창제 철학의 하나도 다원성, 차별성을 인정하는데서 나타난다. 해례(解例)의 “각각 그 처해 있는 바에 따라 평안하게 할 것이요, 억지로 똑같게 해서는 안된다.”는 주역의 ‘개물성무(開物成務, 사물을 열어 일을 성사케 한다는 뜻.)’의 정신은 열린 지적풍토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같은 의미에서 세종시대의 르네상스는 전 지구적이며 통사적(通史的)인 지적교류의 일면을 잘 보여준다.

 

세종시대는 세계사에 있어서 강력한 문명의 교류가 일어났던 시대였다. 지금처럼 세계화(globalization)라는 개념이 존재한 것은 아니었지만, 중국ㆍ이슬람ㆍ로마ㆍ그리스 문화권과 직ㆍ간접적인 문화교류는 가히 혁명적이었다. 이미 그 당시에 우리나라에는 이슬람 교도가 있을 정도였다. 1427년(세종 9년)4월 4일 세종은 회회교도(回回敎徒 이슬람교도)들도 나라의 풍속을 따르라는 명령을 대조회에서 내리고 그들로 하여금 이슬람 경전을 암송하지 못하도록 명령을 내린다. 역사상 가장 선진적인 문명을 지녔던 그리스 , 로마, 나아가 이집트의 천문, 역법 및 질학(質學) 등 장구한 과학적 전통은 원대(元代)의 과학기술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고, 이것을 수용하고자 하는 세종의 각별한 관심이 이슬람과의 접촉에서 읽혀진다.

 

그 당시 거대한 문명은 세종의 개방 정책에 힘입어 속속들이 조선으로 넘어 오게 된다. 그것은 새로운 문명(협소하게 보자면 천문학을 중심으로)에 대한 세종의 갈망에서 나왔다. 개방과 상호 교류의 결과 이러한 문명의 창조적 유산은 조선의 과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후 조선 사회의 수구(守舊)로의 이동은 우리가 이슬람 세계와 1970년대 중동 개발 붐이 일기 전 까지 단절되는 역사적 분절 경험을 겪게 한다.

 

수구(守舊)와 구태(舊態)의 본질은 그 자체 변화를 주창하더라도 안정성을 유지하는 가운데의 시도이기 때문에 정작 변화의 주체를 바꾸지 못하고, 그 결과 변혁은 힘을 얻기 어렵다. 최소한의 다양성마저 압살해 버린다. 창조적 조직의 핵심은 다양성이다. 생각과 스타일, 경험이 다른 사람과 어울릴 때 다른 분야에 대한 지식은 확장된다. 나아가 자신의 분야에 대한 다른 관점에서의 응용력도 높아진다. 개방성은 그만큼 창조와 직결된다.

 

르네상스 전성기인 15세기 피렌체나 베니치아 같은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은 경쟁력에 있어서 프랑스나 터키를 완전히 압도했다. 심지어는 봉건 영주들의 수도원과 비교해 생산성이 40배나 높았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시오노 나나미는 그 이유의 하나로 교역을 꼽고 있다. 그는 “교역은 이질적인 분자와 교류하지 않고는 성립되지 않는다. 이질 분자와 교류하면, 순수 배양될 때에는 없었던 자극을 받게 된다.”고 말한다. 개방적 교류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토양이었다는 얘기다.

 

요즘엔 기업 내 팀을 구성해도 과거처럼 동일한 스펙을 강조하는 것이 아닌, 다양성을 주요 조건으로 추가하고 있다. 타분야와의 연계를 통해 지식과 경험이 상승작용하는데 착안한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통섭적 역량을 갖춘다면 이 보다 더 좋을 수는 없지만, 그것이 부족하다면 다른 전문가들을 묶어 팀을 만드는 것이 훨씬 더 큰 복합시너지를 낸다. 대표적인 예로 소니(Sony)의 경우에는 디자인 센터 내 기술자, 디자이너, 마케팅 담당자 등 다양한 경력을 지닌 사람들을 중심으로 한 ‘뉴트랜드 제품’이라는 부서를 운영하고 있다. 과거 삼성전자의 ‘싱크탱크’도 이와 같은 목적으로 이루어진 조직이다. 이질적 구성원을 통합해 낼 때 과거에는 상상치도 못한 결과를 만들어 낸다. 개인별 다양성을 인정하는 가운데 조직의 활력을 찾는 것은 창조에로 활로를 찾고 있지 못한 많은 기업에게 구원투수가 되고 있다.

 

다양성과 관련되어 위너(Wiener)는 할리우드에서 활약하는 스턴트 맨들을 예로 들고 있다. 그들은 “비행기로 농약을 살포하는 일을 했던 사람에서 로데오 선수에 이르기까지 일반적으로 다양하고 색다른 전력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스턴트 맨이 빌딩에서 떨어지는 연기에서부터 차에 치이는 연기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종류의 스턴트를 연기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다양한 일을 통해 쌓은 복합적 경험이 어떤 일의 주요부분을 소화해 낼 수 있다. 이 같은 생각은 특정 분야의 스페셜리스트나 일반지식, 경험을 보유한 제너럴리스트들의 조건과 많은 점에서 상이하다. 다양한 인적 자본 레퍼토리를 갖추고 있는 셈이다. 이런 조직은 어떤 돌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효과적으로 대처해 나갈 수 있는 전략적 역량을 더 많이 보유하고 있다. 경험이 있고, 대처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구비되어 있을 때의 기업의 힘은 궁극적인 경쟁력과 맞닿아 있다. 창조적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는 ‘태양의 서커스’는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인재들을 통해 가장 적절한 인적 레퍼토리를 갖추고 있다. ‘서커스를 재발명(Reinvent the Circus)'해 낸 사람들의 면면은 클래식 콘서트, 뮤지컬, 연극, 체조경기, 발레, 패션쇼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로 채워져 있다. 그것이 기존 서커스에 늘 등장하던 동물 묘기를 과감히 없애 버리고 라이브 음악과 현대무용식 안무를 도입해 세련미와 예술성을 더한 ‘아트 서커스’로 발전시킨 원인이었다. 재미와 스릴을 살리면서도 연극처럼 스토리를 가진 공연, 브로드웨이 뮤지컬처럼 예술적인 주제가와 음악이 가미된 지적 세련미와 풍부한 예술성이 서커스 패러다임을 바꾼 것이다. 서커스를 창조적으로 재해석해 낸 이 집단은 지난해 800만명을 포함 지금까지 전세계 100여 개 국에서 50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으며, 최근 5년간의 연매출 성장률만 해도 15%가 넘는다.

 

창립자인 기 랄리베르테는 직원들이 정장에 넥타이 차림을 하고 출근하면 가차 없이 가위로 넥타이를 잘라버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넥타이처럼 정형화된 복장에서 어떻게 창조적 사고가 나올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의 집무실 한 켠에는 잘려나간 넥타이가 수북히 쌓여 있는데, 이 또한 쇼잉(showing)이긴 하지만 창발성을 강조하기 위한 행위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창조적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전혀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서로가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다름으로 인해 생기는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고자 하는 퓨전의 문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런 차이를 수용하는 것은 정확히 글로벌 상식에 따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오늘날 시대는 급변이 가져오는 혼란속에서 새로운 전망을 모색하는 전환기이다. 혼란은 창조를 낳는다. 마치 영화 <제3의 사나이>에서 올슨 웰스(Orson Welles)의 대사처럼 기화가 될 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는 보르자(Borgias) 치정하의 30년 동안 악이 판치는 격동의 세계였지만, 위대한 르네상스 문화를 창출했다. 깨끗하고 평온한 스위스에서는 500년간 민주주의와 평화가 지속되었다. 그러나 과연 그들이 탄생시킨 것은 무엇인가? 그들은 뻐꾸기 시계만을 창조했을 뿐이다.”

 

뻐꾸기 시계가 아닌, 창조의 근원을 이뤄내는 것은 혼란기 경영자들의 과제로 주어져 있다. 창조는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퓨전형 문화에서 나오고, 이런 문화는 다양성을 내재한 인재들을 끌어 모은다. 개방이 다문화 인재의 참여를 가져오고, 둘의 통합이 혁신적 경영을 창조해 내는 것이다. 21세기 인재상은 복합문화적 요소를 스스로의 DNA에 내장시키고 있다. 각기 다른 경험과 문화를 묶으면 과거에는 감히 상상치 못했던 놀라운 일이 잉태된다. 하물며 문화를 통섭을 해 내는 인재라면 창조 깊이와 폭은 훨씬 더해 질 것이다. 오늘날 우리 기업에는 어떤 인재들이 포진하고 있는가? 경영자들은 묻고 있는가? ‘왜’ 그런가? 하고.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

 

 

창조적 힘의 원천은 우주적 교감과 사랑

 

바바라 매클린톡(Barbara McClintock)은 저명한 생물학자로서 초기 시절부터 유전적 전위(轉位)의 신비에 깊이 매료되었었다. 그녀의 연구는 비정통적이라고 무시되곤 했지만, 그녀는 연구를 계속하여 현대 유전학의 지도를 바꾸어 놓았다. 매클린톡의 연구는 인간과 세상의 상호연결이라는 문제를 잘 보여 준다. 나아가 이런 연결 통로를 통해 어떻게 지식이 창조되는지 그 과정을 잘 보여준다.

 

매클린톡은 자신의 연구 대상을 객관화하지도 않았고, 또 그것을 분석하여 데이터로 만든다는 개념으로 접근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연결 가능한 현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세우고 그에 따라 유전적 물질에 접근했다. 작가인 에블린 폭스 켈러(Evelyn Fox Keller)는 매클린톡에 대해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그녀는 살아 있는 유기체의 유전학이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또 상호의존적이라는 사실을 인식함으로써 중요한 발전을 꾀할 수 있었다. 유전자를 독립된 개체라기보다는 환경 속에서 활동하는 상호의존적인 개체로 파악함으로써, 그녀는 유전자 조작이 크로모솜 위에서 움직인다는 것을 발견했다.”

 

켈러가 매클린톡의 전기를 쓰기 위해 그녀를 인터뷰했을 때, 매클린톡의 상호의존적인 전제조건은 유전자들 사이의 관계라는 범위를 훨씬 넘어서고 있었다. 거기에는 유전자와 그 유전자를 연구하는 과학자 사이의 관계도 포함되어 있었다. 켈러는 ‘어떻게 하여 매클린톡이 동료학자들보다 유전학의 신비를 더 깊게 볼 수 있었는지’ 알고 싶어 했다. 그녀의 대답은 간단했다.

 

“자세히 들여다 볼 시간을 가져야 하고, ‘그 물질이 당신에게 건네는 말’을 이해하려는 인내심이 있어야 하고, 그것이 스스로 당신에게 다가오도록‘ 하는 개방성을 가져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유기체에 대한 느낌‘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매클린톡의 과학은 정확한 분석적 사고와 완벽한 데이터로 무장되어 있었다. 이런 것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결코 옥수수에서 새로운 원리를 찾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데이터, 논리, 객관적 거리 등은 위대한 과학적 역설의 한 부분에만 해당될 뿐이다. 그녀는 지식의 핵심에 대해 말해 달라는 요청을 받자, 관계, 연결, 일체감(공동체 의식) 등이라고 대답했다. 켈러는 매클린톡의 천재성을 멋진 한 문자로 요약했는데, 이는 모든 천재의 특성에 해당된다.

 

“옥수수 열매와의 관계에서 매클린톡은 가장 높은 형태의 사랑을 성취했다. 그 사랑은 친밀하지만 서로간의 차이를 절멸시키지 않는 그런 사랑이었다.” “나아가 옥수수와 전적으로 공감하고 옥수수의 세계에 완전히 몰입하여 대상과 관찰자의 경계를 허물어 버림으로서 귀중한 지식을 얻게 된 것이다. 이 같은 말은 과학의 핵심을 찔렀을 뿐만 아니라, 모든 진정한 관계(인간과 역사, 인간과 자연, 인간과 다른 인간, 인간과 사물)의 핵심을 찌른 것이기도 했다. 즉, 타자에 대한 존경 혹은 사랑을 옮겨간 지식의 방법과 삶의 방법을 말해 주기도 한다.”

 

창조를 얘기할 때 우리는 주어진 데이터의 분석 절차와 노력, 그리고 그 결과에 집중한다. 하지만 진정한 창조는 두뇌로는 개방적 인지 태도를 취하면서도 심장으로는 대상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깃들 때 창조의 영감이 떠오른다. 모든 창조에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적극적인 애정이 함께하며, 몰입이 동반된다. ‘몰두조건’이 내부에 충실하지 않으면 생각은 겉돌고, 끝내 타자의 내면에 숨은 비밀을 밝혀내는데 성공할 수 없다. 관심·사랑은 그 대상을 변화시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자신을 변화시킴으로써 과거에는 볼 수 없던(보이지 않던) 꽁꽁 쌓인 베일을 벗겨준다.

 

사랑의 본질에 대해 우리는 내면을 얘기하지만, 실은 외면, 다양한 체험, 인지, 화학적 반응, 상통(相通), 정서적 공감대 등 모든 것이 어우러져서 만들어 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대상을 사랑하는 것은 통섭적 경험이 함께 하는 것이다. 매클린톡은 옥수수와의 사랑에 빠져 옥수수의 세계로 뛰어들 수 있었고, 그런 집중력은 그녀에게 몰아일체의 경지에서 옥수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결과를 가져왔다. 사랑은 대상에 집중된 감정이다. 집중과 몰두 없이는 사물의 본질을 꿰뚫 수 없다.

 

뉴턴은 어떻게 중력의 법칙을 발견했냐는 질문에 “나는 줄곧 그 생각만 하고 있었으니까.”라고 대답했다. 물론 그는 항상 ‘거인의 어깨에 기댔다.“ 아인슈타인도 “나는 몇 달이고 몇 년이고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99번은 틀리고 100번째가 돼서야 비로소 맞는 답을 얻어 낸다.”고 대답했다. 골똘히 생각하고, 끊임없이 문제 제기를 하다보면 사물은 그 이면에 놓여있는 진실의 면을 보여준다.

 

역사적으로 세종이《훈민정음》을 창제할 때 가장 우주적이고 인간적인 교감을 통해 영감을 얻었을 거라는 점은 쉽게 상상이 간다. 《훈민정음》이 지닌 우주적 상상력(철학적 원리로서 음양오행(금, 목, 수, 화 토)과 모든 힘의 근원인 태극(太極, 음과 양) 운동을 문자 창제의 원리로 삼은 것.)과 발성기관의 모양을 상징한 점은 참으로 놀라운 창의적 발상이다. 이는 중국과 우리의 풍토와 성기(聲氣, 발성의 기운)가 서로 다르다는 풍토부동(風土不同)ㆍ성기부동(聲氣不同)의 통찰에서 나온 것이자, 말의 소리를 드러내는 글자 모양을 인간이 우주와 교감하는 방식과 우리 고유의 차이에서 착안해 낸 것이다. 이는 “역(易)의 근본적인 힘의 요소와 그 생성 원리인 태극에서 음양”까지 통섭하고, 인간의 구강구조를 과학적으로 꿰뚫어 봄으로써 글자 자체가 삶을 지배하는 힘을 가지게 한데 있다.

 

세종 시기 천문학을 주관하던 기관은 왕립천문대에 해당하는 서운관이었다. 서운관에는 천문을 관측하기 위해 두 곳에 간의대가 설치되어 있었는데,《훈민정음》을 창제 중이던 세종은 종종 이 천문대를 찾아 밤늦게 홀로 오르곤 했다. 《연려실기술이에 대해 “임금이 때때로 혼자 친히 첨성대에 임하여 윤사웅에게 명하여 천도(天度)를 논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세종은 ‘천상(天象)에 응하기 위해’ 밤 하늘을 응시했을 것이고, 하늘의 운행을 보며 삶의 운행의 이치를 깨닫고, 거기서《훈민정음》창제의 기본 원리를 확신했을 것이 분명하다. 하늘, 땅, 사람에 대한 상형과 발성기관에 대한 상형이 결합된 이 놀랍고도 탁월한 글자에는 이처럼 우주적 상상력과 인간에 대한 따뜻함이 듬뿍 묻어난다. 창조 경영자로서 세종은 밤하늘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세종의 상상력과 줄기 찬 노력의 결과물이《훈민정음》이다. 세종이 훈민정음 창제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연구에 들어간 것을 대략 세종10년에서 15년경으로 본다. 따라서 적어도 한글은 10년에서 15년 간 각고의 노력 끝에 만들어진 것이다. 훈민정음 창제에 밤낮으로 애쓴 까닭에 안질이 나자 세종은 치료차 초정리 약수터에 갔는데, 거기서도《훈민정음》초고를 퇴고했다. 오랜 준비와 우주와의 교감, 인간에 대한 끊임없는 사랑이 위대한 창조로 이어진 것이다.

 

오늘날 경영이 접하는 세계는 무수히 많은 변수들이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다. 그런 까닭에 모든 것은 상효연계 되는 하나의 그물망을 이룬다. 우리가 경영에서 일어나는 창조적 발상을 극대화하려면 따뜻한 마음으로 개개 변수가 상호작용하는 경영의 현장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직접 참여해 오감(五感)할 때에라야 우주는 지난하기만 한 질의에 대한 대답을 준다. 모든 천재적 노력은 우주적 질서에 맞닿아 있다. 복잡계로 진입할수록 경영이 물 흐르듯 가장 자연적이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

 

 

 

미래의 경력닻 내릴 곳 찾기

미국의 심리학자 쉐인(Schein)은 30년 전 ‘경력 닻(career anchor)이론’을 밝히며 개인들이 변화의 풍랑에 좌초되지 않는 무게중심을 가질 것을 강조한 바 있다. 어느 한 두 가지 주요 가치, 목적에 닻을 내림으로써 직업적 자기 정체성을 가질 수 있다는 얘기다. 그가 말하는 경력 닻 개념은 크게 세 가지로 구성된다. “자신의 재능과 능력에 대한 지각, 요구와 동기에 대한 지각, 조직과 삶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태도와 가치에 대한 지각이 그것이다.” 이러한 경력 닻 이론은 발전해 현재 8가지 유형으로 분류되고 있다.

1. 기술, 기능 역량의 닻 : 주로 일 자체에 흥미를 갖고 자기 역량의 기술적 내지 기능적 영역에서의 진보를 선호한다.

 

2. 관리 역량의 닻 : 정보가 부적하거나 불확실한 상황에서 문제 해결 내지 분석에 관심이 높다. 공통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관리를 도전과제로 여긴다.

 

3. 안전, 안정의 닻 : 직무안정과 장기간 한 조직에 복무하는 것을 선호한다. 조직 가치와 기준에 잘 적응하며 변화가 잦은 직무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4. 사업가적 창의성의 닻 : 자신의 프로젝트를 통해 무언가를 창조하거나 얻어 내는 것을 즐긴다. 이 프로젝트에서 다른 프로젝트로 이동하는 것을 좋아하며, 완성된 무언가를 관리 하는 것 보다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데 더 흥미가 있다.

 

5. 자율, 독립의 닻 : 최대한 자유가 있는 작업 상황을 선호한다. 스스로 작업 일정을 계획하고 작업 속도도 스스로 조절하는 것을 원한다. 보다 많은 자유를 얻기 위해 승진의 기회를 기꺼이 포기하기도 한다.

 

6. 봉사, 헌신의 닻 : 세상을 개선하는 것을 추구하고, 사회를 돕는 것에 대해 자신의 가치와 작업 활동이 일치하기를 원한다. 기술보다는 가치에 맞는 직업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7. 순수 도전의 닻 : 장애를 극복하거나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관심이 높다. 일상적인 관행이나 업무로 인해 열정을 쏟을 수 없는 것을 참을 수 없어하고 한 가지 목적만을 추구한다.

 

8. 생활양식의 닻 : 자신의 일상생활과 직장생활간의 조화와 균형을 추구한다. 가족 우선의 가치와 지원 프로그램을 지닌 조직을 선호한다.

 

이런 경력 닻은 본질적으로 개인의 직무선호도를 보여주는 것으로, 조직의 관점에서 보다는 개인의 경력에 대한 의지를 반영하는 면이 있다. 따라서 개인의 경력 추구와 맞물린 조직성과의 향상은 상호연계 되어 있다. 경력 닻 이론은 인간이 가진 복잡한 지향성을 어느 한 두 가지로 국한하는 게 아니다. 대신 다양한 관점에서 어떤 가치에 주안점을 둘지 선택하는 문제라고 본다. 어느 분야에서건 경제활동을 하는 사회인은 현실적으로 자신의 선호도나 조건에 맞는 경력 닻을 내려야 한다. 즉, 자신의 욕구에 의한 경력 닻 보다는 시대의 요구에 맞는 닻을 내리는 것이 개인에게도 성취동기를 크게 부여할 수 있고, 기업에도 직무에 맞는 직원들을 뽑아 일을 맡길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경력 닻은 다양한 개인 선호도를 반영하는 것이지만, 지금은 보다 복잡하고 중층적인 가치가 기업과 개인 간에 요구되고 있다. 물밀듯이 밀려오는 전 세계적 경쟁이 생존 자체를 위협하고 있고, 그러다보니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에서는 단순히 개인 선호도를 반영하거나 밀도 높은 경쟁을 피하려는 개인 의지에 쐐기를 박고 있다.

 

불과 30년 전의 개인 옵션 사항은 크게 위축되고 있다. 물론 어느 부분에서는 여전히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주로 비지니스가 이루어지는 경쟁 분야의 현실을 감안해 본다면 선택의 폭은 확연히 줄어들고 있다. 21세기 들어 기업조직 내 인재관에 대한 가치 변동이 급격히 진행되고 있는 것은 기술진보와 세계화에 기업이 결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조직의 강화, 다기능 전문가의 등장, 혁신·창조의 강화, 팀웍 중시, 자기개발의 강조, 수평적 관계의 확산, 직급 파괴, 팀제 확산 등은 경영에서 시대 변천사를 한 눈에 볼 수 있게 만드는 요인으로 ‘경력 닻’ 이론으로만은 다 설명하기 어렵다. 효율성과 효과성에 기반한 능력 및 성과주의는 단순히 업무 성과만을 바로메타로 해서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 보다는 보다 본질적이고 지속적인 가치를 창출해 내려는 욕구로 개개인들을 바라보게 한다.

 

이제는 과거처럼 맡은 바 업무를 충실히 수행해 내는 단순근로자 의식으로는 창조는 커녕, 현실의 장벽조차 뛰어넘지 못한다. 조직은 개인에게 경쟁력 차원에서 다차원적 가치를 지닐 것을 주문하고 있고, 이 대열에서 낙오하는 개인은 점차 설 곳이 없어진다. 다시 말해 만능형 인재상이 기술이 백업되는 시대에는 인간 고유의 능력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특히 개인은 창의, 혁신, 비전, 가치, 생산성, 성장 등 다방면에 걸친 생존과 직결된 요소들에 경력 닻을 내리지 못한다면, 수시로 변화하는 경영현실에 쉽게 침몰하고 만다.

 

과거 어느 때보다도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는 개인은 엄청난 심리적 부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육체노동자에서 지식노동자로의 전환이 대세라는 피터 드러커의 진단은 이제 지식노동자에서 전인형(全人型) 지식노동자로 개인 성장을 꾀하지 못할 때 성공과 발전의 조건이 날아가 버린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각 개인이 지닌 경력은 복합적 구조를 띠어야 하며, 혼융될 필요가 있다. 이미 테크놀로지의 변화는 통신 기술과 가전 기술의 통합을 통해 가사노동에 대한 개념을 송두리 채 바꾸어 가고 있다. 지식조차도 단순 지식이 아닌, 정보로서 가치를 지니기 위해서는 해체와 재조립을 통한 새로운 부가가치가 부여돼야 한다. 경력 닻은 모든 닻을 내릴 수 있든 사람에게 어느 닻도 내릴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만일 경쟁 환경을 도외시 한 채로 무풍지대에 닻을 내리고자 한다면, 거대한 쓰나미에 한 순간 휩쓸려 가고 말 것이다. 한 두 개의 닻이 아닌, 수십, 수백 개의 대안을 마련해 폭풍이 몰아치는 현실과 당당히 맞설 때 기업과 개인인 산다. 미래의 경력닻은 우리가 어디에 정박할지를 보여주며, 우리가 어디서부터 다시 항해를 시작해야 할지를 보여준다. 닻은 올리고, 돛은 펼쳐들면, 항해를 도우는 순풍은 불어온다.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

 

탈 중심업무주의와 조직 유연성의 상관관계

 

변화하는 경영환경에 기민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과거 어느 때보다 조직 운영상의 유연성이 강조되고 있다. 예전에는 단일한 가치, 단일한 고객 성향, 단일한 시장 법칙이 작용했다. 많은 면에서 이른바 ‘해석 가능’했다. 이런 환경에서 시장 세분화나 맞춤형 서비스, 다품종소량 생산과 같은 개념은 큰 의미를 지니지 못했다. 만들면 팔리는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요즘엔 가장 보편화되어 있는 이런 개념이 불과 20년 전 만해도 생소하기만 했다는 사실은 격세지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시장이 드디어 공급자 마인드가 아닌 고객지향을 띠기 시작했다는 것은 경쟁이 치열해지기 시작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고객접점을 더욱 넓혀 보려는 시도에서 나온 것들이다.

 

공장에서도 한 개 라인에서 다양한 물건들을 만들어 내는 유연한 운영이 필요해 졌다. 필요시 라인을 즉각적으로 교체, 변경 가동할 수 있게 한 것은 경쟁력 향상에 결정적인 도움이 된다. 토요타 자동차의 주요 경쟁력 중 하나는 라인 운영의 유연성이다. 토요타시(市)에 위치한 모토마치 공장은 한 라인에서 다종의 차가 생산되어 나온다. 하나의 라인에서 동일한 차량만 생산되어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방식(이른바 토요타 웨이Toyota way)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토요타의 눈부신 생산성에는 다름 아닌, 이 같은 멀티 프로세스형 생상방식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한 라인에서의 다종생산을 했던 경험을 우리는 지난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세종시대 농업 중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작물과 작물 사이에 다른 작물을 심는 이른 바 간종법(間種法)’의 개발이었다. 즉, 옥수수 사이에 녹두나 팥을 심어 한 두렁(라인)에서 두 세 종의 곡물(차량이나 휴대폰 등)을 수확해 내는 것이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세종 전까지만 해도 이런 농법은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이는 그 당시 가장 혁신적인 농법 교범이었던《농사직설(農事直說)》의 성과로, 부단한 실험의 결과 라인(밭두렁) 운영은 보다 창의적으로 발전된다. 선진 농업지역인 삼남(三南)지방의 노동(老農)들이 지닌 농법, 농업기술을 현장경영을 통해 확보한 귀중한 지식의 보고였다. 세종시대의 이 같은 지식경영의 현재적 의미는 무엇일까? 경영에서 ‘간종법’의 지혜를 적용하면 업무 혁신과 프로세스 혁신을 가져온다. 우리 역사에는 경영의 현재적 의미가 도처에 널려있다. 그 지혜와 경험을 되살려 내면, 이탈리아 르네상스인들이 로마시대의 저 유구한 고전을 불러내 당대의 문화적 향연의 불을 지폈듯, 언제든 통용되는 경영의 교과서를 얻어 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역사상 1차 르네상스에 해당되는 세종시대는 ‘세종 웨이(Seijong way)'로 불릴만 하다.

 

어느 업무에서 건 공통되는 요소의 강화는 역설적이게도 차별화의 조건이 된다. 차별화는 공통요소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편적 경쟁력의 하나로 삼는 바탕 위에 상품이나 제품에 격을 달리하는 혼의 요소(디자인, 마케팅, 브랜드력(力)을 포함하여)를 불어 넣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시장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는 휴대폰 제조 및 서비스 업체 노키아(Nokia)는 생산 라인에 규격화된 전 세계 공통 부품이 80% 이상이나 된다. 어떤 라인을 가동하든 현지에 맞는 부품 20%만 공수하면 즉각적으로 라인 가동이 가능하다. 이 업체는 이 같은 유연성으로 이제 개방형 환경에서 서비스에도 뛰어들어 있다. 반면 삼성전자는 이 점에서 훨씬 불리하다. 노키아와 여전히 격차를 줄이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유연성의 부족에 있다.

 

기업이 지닌 생산방식의 차이는 인재관에도 반영된다. 마크 L. 렝닉-홀은《인재구축과 지식경영》에서 “자원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방법의 하나로 범위는 다소 좁더라도 서로 특성이 다른 인적자본을 보유한 직원으로 구성된 인력을 (규모 면에서) 많이 유지하는 것”을 경쟁력의 한 요소로 보고 있다. 이러한 접근법을 취하면, “다른 상황 하나 하나에 맞춰 인력 구성 형태를 다르게 조합, 동원, 재조합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마치 건축공사에 필요한 다양한 요구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전기공, 목수, 실내장식업자, 배관공 및 기타 다양한 기술자를 모아서 일을 추진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존-스타이너도 나이나 경험이 각자 다른, 다양성이 돋보이는 팀을 조직해야 각양각색의 아이디어와 문제해결법을 모색할 수 있고 성과도 높아진다고 강조한다.

 

에디슨은 평생 걸쳐 열 명 정도의 핵심 협력자를 둔 것으로 유명하다. 그를 밑밭침 해 준 사람들은 “영국의 직물직공, 스위스의 시계공, 물리학 석사학위를 받은 미국의 수학자, 아일랜드의 전기기술자, 독일의 유리세공기술자, 아프리카계 미국인 전기공학자, 귀머거리 전신기술자” 등이었다. 이들을 한곳에 모아놓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에디슨의 경우, 이들 모두가 힘을 합하여 수백 건의 발명특허와 제품을 양산해 냈다. 즉, 즉 세계를 제패한 최고의 드림 팀이 탄생했던 것이다. 마이클 J. 겔브와 사라 밀러 칼디코드에 의하면, 에디슨은 그 엄청난 발명을 하는 데에는 동료들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

 

“1875년 에디슨 주변에는 이미 그의 최측근으로 불릴 만한 네 명의 직원들이 있었다. 최우수 실험가이자 믿을 만한 친구였던 찰스 배츨러, 모형제작 전문가 존 크루에시, 연구실 조수 제임스 애덤스, 기계기술자 존 오트가 바로 그 네 명이다. 이들은 모두 에디슨에게 꼭 필요한 능력의 소유자였다. 폭넓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나무랄데 없는 성격에, 베우고자 하는 열의뿐만 아니라 성과 달성을 위한 몰입”까지도 같았다. 그 외에도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에디슨의 공상적 개념을 방정식으로 만든 수학자 겸 물리학자 프랜시스 업톤, 그리고 연구실 조수인 존 로슨과 마틴 포스까지 모든 이들이 에디슨과 함께 했다. 에디슨은 이들에게 단 ‘두 번의 클릭으로’ 조직 내 모든 직원들과 의사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했다.

 

에디슨이 이들 다양한 경험의 소유자들을 가까이 둔 것은 전문가 집단으로 하여금 특정 프로젝트에 활력을 불어 넣고, 일을 진척케 하며, 전문성이 각 공정내지 기능에 투입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럼으로써 전체 발명 프로젝트의 지휘자로서 전체를 바라보는 통합적 시각을 갖고자 했기 때문이다. 각 분야의 스페셜리스트들은 특정 업무를 수행하며 그 자신도 지식이 광합성되는 현장에서 지식의 양과 깊이를 더해 갔다.

 

오늘날 우리 기업에서 이 같은 전문가를 움직이는 프로젝트 매니저의 역량은 어떠해야 할까? 다분히 전 공정, 전 과정을 꿰뚫 수 있는 통합적 시각, 경험, 지식을 지녀야 한다. “범위는 다소 좁더라도 서로 특성이 다른 인적자본을 보유한 직원으로 구성”하면 각 기능별 시너지를 낼 수 있다. 그럴 때 전체 공정이 특별히 문제없이 톱니바퀴처럼 잘 맞물려 돌아간다. 다분히 매카트로닉스형 인적 구성이다. 그러나 전제투망(透望) 역량과 창조 역량은 부분의 합만으로는 드러나지 않는다. 협소분야의 전문가를 고유의 중심업무가 있는 전문가 집단이라고 표현한다면, 그들의 전문성은 이런 메카트로닉스 유형의 일에 잘 맞아 보인다. 전문성이 퍼즐처럼 맞아 떨어지며 성과를 내는 것이다. 하지만 만일 우리가 큐빅을 돌린다고 생각해 보자. 한 면의 조합은 다른 면에 영향을 미치고, 다른 면의 잘된 구성이 또 다른 면의 조합에 꼭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부분의 곱은 언제나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현재의 조직 운영이 모든 사람을 프로젝트 매니저형 인물로 대체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육성할 수는 있다. 마치 르네상스 시기 도제들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일을 경험케 하고, 그곳에서 통합적 경험을 쌓아가게 한다면, 창조성은 보다 발현된다. 유연한 사고와 조직 운영은 창조력을 강화하는 내부의 가장 혁신적인 활동에 해당된다. 그걸 어떻게 다면적 사고로 확장시켜 나가느냐 하는 것이 경영자에게 주어진 숙제이며, 경쟁의 관건이 된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한 사람이 특정 분야에 전문가 되는 것도 어려운데, 어떻게 전 분야를 꿸 수 있는 인재가 될 수 있는지 의문을 가지게 될 것이다. 분과형, 분절형, 중심업무형, 메카트로닉스형 교육과 업무를 통해서는 쉽게 얻어질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창조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과거의 방식보다 훨씬 크고 심지어는 복잡하기까지 한 사고의 매트릭스(즉, 틀)를 개발해 내야 한다. 그건 생각의 패턴을 바꾸는 것이다. 이 전과 달리 새롭게 시도하는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느냐고? 뿌리부터 달리 생각하는 것이다. 지금의 밀도 높은 경쟁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우리의 사고가 정교해 지지 않으면 안된다. 그럴 땐 아프리카 들소처럼 둔한 발굽 때문에 목숨을 사자에게 내 주어야 한다.

 

때로는 중심업무에서 벗어나 전체를 일람케 하는 것은 경영이 추구하는 목표에 가까이 다가서게 한다. 탈중심업무의 기회는 전문성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창조성을 드높일 수 있다. 어느 한곳에만 매달려 있다 보면 내가 지금 무슨 일을 하는지, 이 일이 지향하는 바가 뭔지 잊기 쉽다. 물론 조직도 유연하게 다른 사고를 할 수 없게 된다. 사물과 사물간의 연결은 전체를 염두에 둘 때 각 기능들이 보다 효과를 드러낸다. 복잡계 전문가인 빌 웰터(Bill Welter)와 진 에그몬(Jean Egmon)은 창의력은 복잡한 것이지만, “상상력은 우리들 모두가 이미 갖춘 능력과 경험에 기초”하며, 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방식으로 조합하는 연습이 필요할 뿐“이라고 말한다. 오늘날 기업 인사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직원들의 잦은 직무전환은 깊이를 더 할 수 없게 한다는 점에서 문제점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 보다 더 큰 문제는 전체를 보고자 하는 의욕을 꺾는 같은 챗바퀴와 같은 업무 방식이다. 생각 없이 하는 반복적인 일에서는 우주적 발견을 얻어 낼 수 없다. 경영자 자신은 물론 직원들을 생각하는 사람으로 만들려면, 현재의 중심업무를 벗어나 자유롭게 관찰하는 경험을 부여해야 한다. 많이 본 조직이 많은 것을 이룬다. 창조시대의 경영자는 다견(多見)ㆍ다문(多聞)의 지식으로 다관(多觀)할 수 있어야 한다. 달관(達觀)은 그럴 때 생겨난다.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

 

크로스 오버를 필요로 하는 다중경력 시대

 

정보화 시대 이전까지만 해도 전공개념은 어느 정도 선을 긋고 있었다. 대학에서 일반 전공영역으로 치부된 문과대, 상경대를 제외하고 이공계, 예체능계, 의대 등은 주로 전공 분야별로 해당 사회의 산업군, 직업군으로 편입되어 들어갔다. 물론, 전공을 불문하고 이른바 대학 간판을 따기 위해 좀 더 지명도 있는 대학을 선택한 사람들도 부지기수였다.(이런 현상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전공에 대한 관심이 낮다보니 이들이 상급 학교 진학을 통해 방향 잡은 분야는 주로 사회적으로 효용성이 높은 경영학 분야였다. 1990년대 이후 급성장한 경영학 전공 대학원이나, 각종 경영자 과정 교육 프로그램의 확산, 해외 MBA 학위자들의 급증은 이 같은 현상을 잘 보여준다.

 

특정분야에 대한 선호는 경제 경영적 마인드를 제고한 면은 있으나, 다른 분야에 대한 상대적 무관심, 소홀, 박탈감으로 나타났다. 전공에 대한 몰개념과 마찬가지로 한쪽으로 치우친 학문적 편식은 복잡한 경영 현상을 포괄적으로 해석해 내는데 그간 한계로 작용해 왔다. 서구가 학제간 연구를 통해 통합적 시너지에 학문적 지향을 하고 있을 때 우리는 기껏해야 복수전공 개념이 도입됐다.

 

전공에 있어서도 대학 선택시까지 구체적으로 어떤 학문을 하겠다는 생각보다는 막연한 전공 선호, 보다 나은 대학으로 가겠다는 기준이 지배적이었다. 현재의 입시 시스템은 자신의 뇌의 구조나 특성에 맞는 전공보다는 갈수록 힘들어 지는 경제 여건을 반영하듯 보다 유리하게 직장을 잡는 일로 자연스럽게 귀결되며 심각한 전공쏠림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그들을 막는 건 관심이 아닌, 점수에 의해 정해진 학과, 계열 선택이다. 한국 대학에서의 상상력의 부재는 단순 지적 기능인을 키워 내는 식이지, 미래의 창조인으로 청년들을 키워 내고 있지 못하다. 엄연히 직장을 잡게 하는 게 웬만한 대학 교수들의 하나의 직무인 판에 이론과 현실의 차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이것은 우리 스스로 창조의 씨앗을 짓밟는 결과가 되고 있다.

 

기업이 단순히 경제경영 영역에 국한해 사업을 영위해 나가는 것이라면 모든 임직원을 경영학도로 다 채울 수는 있겠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타방면의 지식이 요구되고 있고(must requirement), 단순조립 공정상의 일이 아닌 한, 다양성은 가치 증진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개인의 경력에 있어서도 단일경쟁력보다 복수경쟁력이 부각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과거와 달리 앞으로는 더욱 단일 경력으로 자신의 직업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개인들 역시 지속적인 자기계발을 통해 연관분야, 타분야와의 연계성을 모색하게 되고 그것이 실질 업무 성과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방식으로 인식한다. 이를 반영하듯, 새로운 경력을 찾거나, 다수 경력을 찾고자 하는 시도는 과거 어느 때보다 각광받고 있다. 한 개인이 지닌 크로스 오버는 여러 개의 지식, 경험을 보유하는 다중경력으로 자리매김 되며 복잡성의 경영환경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는 인재형을 요구하고 있다. 조직도 변화적응력을 키우고 빠른 의사결정을 위해 조직구조를 수평적ㆍ평면적 조직, 네트워크 조직, 매트릭스 조직, 학습조직 등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다양한 경력, 직무 능력, 지식경험을 통해 다중경력을 확보하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전통적 경력경로와 네트워크 경력경로>

 

                                                          <도표1>                         (도표2> 

 

<도표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과거에는 자신의 전공을 통해 경력 경로가 진행되며 단일한 궤적을 밟아왔다. 심지어는 주로 인문, 경상계열은 직장 내에서 맡은 바 업무가 전공이 되기도 했다. 여기서 좀 더 진화한 모델이 복수전공으로 불리는 전공-부전공의 경우다. 예컨대, 사범대 전공자가 경영학을 부전공으로 하는 경우는 이미 일반적인 교과이수과정이 되고 있다. <도표2>는 과거에는 철저하게 개인적 영역으로 맡겨졌던(앞으로도 통섭형 자기계발이 진행되기에는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교육 시스템 전체가 뜯어고쳐져야 할지 모른다. 물론 사회적 합의도 선결과제로 남아 있다.) 다중경력이 기업 내 교육 프로그램, 직무 전환에 사용되고 있는 흐름을 예시하고 있다. 단일한 전공, 경력 유관 지식, 새로운 직무를 추가 배치함으로써 보다 생산적인 인재상을 구현한다는 얘기다. 물론 직무 순환 배치상의 효과를 노리는 인재교육 및 운영전략의 일환이다.

 

다중경력은 통섭형 지식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다만, 그것을 고무하는 기업 내 활동은 적지 않은 저항과 비용의 문제라는 현실에 부닥칠 위험이 있다. 다중경력에 대한 관심은 지속적으로 높아져 이와 비슷한 의미로 프로틴 경력(protean career)과 무경계 경력(boundaryless career)이 제시되고 있다.

 

“프로틴 경력은 경력변화의 시간적 측면을 강조한다. 즉, 시간이 진행되면서 개인들은 지속적인 학습을 하고 이러한 학습의 과정에서 여러 단계에 따라 여러 개의 경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 무경계 경력은 공간적 개념에서 다중경력을 설명한다. 즉, 조직 내에서의 경력을 조직 간에서의 경력이라는 개념으로 확대한다. 하나의 조직에서만 경력을 갖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여려 개의 조직에서 경력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중 경력의 또 다른 측면을 설명한다. 다중경력은 한 개인이 다양한 복수의 경력을 시간과 공간속에서 확보하게 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과거에는 하나의 조직에 포함되어 그 조직 내에서 경력의 이동과 계획에 따라 자신의 삶을 경영해야 했던 개인은 이제 스스로 자신의 경력을 경영하고 개발하는 주체적인 입장으로 변화되는 경력 상의 변화를 겪게 된다.“

 

그간 우리의 성장을 촉진시켰던 전공분야는 새로운 통섭의 시대를 맞이해 ‘묶인 지식’ ‘다발 지식’을 요구하고 있다. 장미꽃으로만 구성된 꽃다발이 아닌, 경영 생태계가 고스란히 반영된 수많은 꽃들이 묶인 꽃다지이어야만 한다. 죄뇌 기반의 사고는 이제 우뇌기반내지 좌우뇌의 결합형 직무, 직업으로 변하고, 통합되며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창의력, 직관력, 감각적 기능이 강조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디지털 분야는 좌뇌 중심에서 출발해 우뇌로 이동하고 있다. 고객과 참여자의 감성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이다.

 

창의력이 중시되는 시대에는 좌우뇌의 결합이 필요로 하고, 특히 통합분야에서 새로운 유형의 산업이나 직업이 창조될 것으로 보인다. 지적 경계가 무너지고, 무경계의 지식 생태계가 펼쳐지는 세상이 오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가 창조기반의 사회로 이전하고 있는 한 단면을 잘 보여준다. 이럴 때 지식 간 벽을 허물며(또한 지식을 대하는 사고의 편견이 해체되며) 통섭의 역량은 강화된다.

 

앞으로의 기업은 그간 파편화된 지식 유형의 직원들을 필요로 하기 보다는 지적 통합을 이뤄낼 인재들을 필요로 한다. 고도로 분석적이고 통찰력이 넘치면서도 감성적인 직원이야말로 고객의 이성과 감성 모두를 잡아낸다. 변화하는 고객의 인식과 감성 패턴을 읽어 내기 위해서도 경영자들은 감성능력을 보다 강화해야 한다. 전공에 정통하되, 인문학적ㆍ문화예술적 소양을 전공 수준으로 쌓아야 한다. 그럴 때 기업은 통섭의 힘을 경영에 반영할 수 있고, 개인도 다중경력을 갖춤으로서 미래형 경쟁력을 쌓을 수 있다. 미래를 이끌어 나갈 인재들의 역량을 배가시키는 것은 경영자의 본분이다. 경영자 한 사람이 지닌 품격 있는 취향, 지적 깊이, 다름과의 조화, 통섭 역량이 전체 조직의 역량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경영자의 성장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 

미래의 경력닻 내릴 곳 찾기

미국의 심리학자 쉐인(Schein)은 30년 전 ‘경력 닻(career anchor)이론’을 밝히며 개인들이 변화의 풍랑에 좌초되지 않는 무게중심을 가질 것을 강조한 바 있다. 어느 한 두 가지 주요 가치, 목적에 닻을 내림으로써 직업적 자기 정체성을 가질 수 있다는 얘기다. 그가 말하는 경력 닻 개념은 크게 세 가지로 구성된다. “자신의 재능과 능력에 대한 지각, 요구와 동기에 대한 지각, 조직과 삶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태도와 가치에 대한 지각이 그것이다.” 이러한 경력 닻 이론은 발전해 현재 8가지 유형으로 분류되고 있다.

1. 기술, 기능 역량의 닻 : 주로 일 자체에 흥미를 갖고 자기 역량의 기술적 내지 기능적 영역에서의 진보를 선호한다.

 

2. 관리 역량의 닻 : 정보가 부적하거나 불확실한 상황에서 문제 해결 내지 분석에 관심이 높다. 공통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관리를 도전과제로 여긴다.

 

3. 안전, 안정의 닻 : 직무안정과 장기간 한 조직에 복무하는 것을 선호한다. 조직 가치와 기준에 잘 적응하며 변화가 잦은 직무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4. 사업가적 창의성의 닻 : 자신의 프로젝트를 통해 무언가를 창조하거나 얻어 내는 것을 즐긴다. 이 프로젝트에서 다른 프로젝트로 이동하는 것을 좋아하며, 완성된 무언가를 관리 하는 것 보다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데 더 흥미가 있다.

 

5. 자율, 독립의 닻 : 최대한 자유가 있는 작업 상황을 선호한다. 스스로 작업 일정을 계획하고 작업 속도도 스스로 조절하는 것을 원한다. 보다 많은 자유를 얻기 위해 승진의 기회를 기꺼이 포기하기도 한다.

 

6. 봉사, 헌신의 닻 : 세상을 개선하는 것을 추구하고, 사회를 돕는 것에 대해 자신의 가치와 작업 활동이 일치하기를 원한다. 기술보다는 가치에 맞는 직업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7. 순수 도전의 닻 : 장애를 극복하거나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관심이 높다. 일상적인 관행이나 업무로 인해 열정을 쏟을 수 없는 것을 참을 수 없어하고 한 가지 목적만을 추구한다.

 

8. 생활양식의 닻 : 자신의 일상생활과 직장생활간의 조화와 균형을 추구한다. 가족 우선의 가치와 지원 프로그램을 지닌 조직을 선호한다.

 

이런 경력 닻은 본질적으로 개인의 직무선호도를 보여주는 것으로, 조직의 관점에서 보다는 개인의 경력에 대한 의지를 반영하는 면이 있다. 따라서 개인의 경력 추구와 맞물린 조직성과의 향상은 상호연계 되어 있다. 경력 닻 이론은 인간이 가진 복잡한 지향성을 어느 한 두 가지로 국한하는 게 아니다. 대신 다양한 관점에서 어떤 가치에 주안점을 둘지 선택하는 문제라고 본다. 어느 분야에서건 경제활동을 하는 사회인은 현실적으로 자신의 선호도나 조건에 맞는 경력 닻을 내려야 한다. 즉, 자신의 욕구에 의한 경력 닻 보다는 시대의 요구에 맞는 닻을 내리는 것이 개인에게도 성취동기를 크게 부여할 수 있고, 기업에도 직무에 맞는 직원들을 뽑아 일을 맡길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경력 닻은 다양한 개인 선호도를 반영하는 것이지만, 지금은 보다 복잡하고 중층적인 가치가 기업과 개인 간에 요구되고 있다. 물밀듯이 밀려오는 전 세계적 경쟁이 생존 자체를 위협하고 있고, 그러다보니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에서는 단순히 개인 선호도를 반영하거나 밀도 높은 경쟁을 피하려는 개인 의지에 쐐기를 박고 있다.

 

불과 30년 전의 개인 옵션 사항은 크게 위축되고 있다. 물론 어느 부분에서는 여전히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주로 비지니스가 이루어지는 경쟁 분야의 현실을 감안해 본다면 선택의 폭은 확연히 줄어들고 있다. 21세기 들어 기업조직 내 인재관에 대한 가치 변동이 급격히 진행되고 있는 것은 기술진보와 세계화에 기업이 결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조직의 강화, 다기능 전문가의 등장, 혁신·창조의 강화, 팀웍 중시, 자기개발의 강조, 수평적 관계의 확산, 직급 파괴, 팀제 확산 등은 경영에서 시대 변천사를 한 눈에 볼 수 있게 만드는 요인으로 ‘경력 닻’ 이론으로만은 다 설명하기 어렵다. 효율성과 효과성에 기반한 능력 및 성과주의는 단순히 업무 성과만을 바로메타로 해서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 보다는 보다 본질적이고 지속적인 가치를 창출해 내려는 욕구로 개개인들을 바라보게 한다.

 

이제는 과거처럼 맡은 바 업무를 충실히 수행해 내는 단순근로자 의식으로는 창조는 커녕, 현실의 장벽조차 뛰어넘지 못한다. 조직은 개인에게 경쟁력 차원에서 다차원적 가치를 지닐 것을 주문하고 있고, 이 대열에서 낙오하는 개인은 점차 설 곳이 없어진다. 다시 말해 만능형 인재상이 기술이 백업되는 시대에는 인간 고유의 능력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특히 개인은 창의, 혁신, 비전, 가치, 생산성, 성장 등 다방면에 걸친 생존과 직결된 요소들에 경력 닻을 내리지 못한다면, 수시로 변화하는 경영현실에 쉽게 침몰하고 만다.

 

과거 어느 때보다도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는 개인은 엄청난 심리적 부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육체노동자에서 지식노동자로의 전환이 대세라는 피터 드러커의 진단은 이제 지식노동자에서 전인형(全人型) 지식노동자로 개인 성장을 꾀하지 못할 때 성공과 발전의 조건이 날아가 버린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각 개인이 지닌 경력은 복합적 구조를 띠어야 하며, 혼융될 필요가 있다. 이미 테크놀로지의 변화는 통신 기술과 가전 기술의 통합을 통해 가사노동에 대한 개념을 송두리 채 바꾸어 가고 있다. 지식조차도 단순 지식이 아닌, 정보로서 가치를 지니기 위해서는 해체와 재조립을 통한 새로운 부가가치가 부여돼야 한다. 경력 닻은 모든 닻을 내릴 수 있든 사람에게 어느 닻도 내릴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만일 경쟁 환경을 도외시 한 채로 무풍지대에 닻을 내리고자 한다면, 거대한 쓰나미에 한 순간 휩쓸려 가고 말 것이다. 한 두 개의 닻이 아닌, 수십, 수백 개의 대안을 마련해 폭풍이 몰아치는 현실과 당당히 맞설 때 기업과 개인인 산다. 미래의 경력닻은 우리가 어디에 정박할지를 보여주며, 우리가 어디서부터 다시 항해를 시작해야 할지를 보여준다. 닻은 올리고, 돛은 펼쳐들면, 항해를 도우는 순풍은 불어온다.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

 

우리가 아는 것의 대부분은 자연에 있다. 최후의 결정적이고, 통찰력이 번뜩이는 영감을 얻기 위해서는 자연을 찾아야 한다. 창조적 마인드를 얻기 위해서도 때로는 밀폐된 사무실을 벗어나야 한다. 사물에 대한 낯설음, 달리보기는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경영의 본질을 알게 하기 위해서도 자연으로 나가야 한다. 텃밭에 무성생식하며 뻗어 나가는 잡초의 근종을 관찰하거나, 거미가 허공에 실을 늘어뜨리며 팽팽하게 방사형의 네트워크를 짜는 광경을 관찰해야만 한다. 아프리카 흰개미들이 어떻게 완벽한 통풍과 에어컨디셔닝의 기능이 구비된 건축물을 만드는지를 눈여겨보아야 한다. 칠게들은 어떻게 포식자가 나타나면 순간적으로 교신을 하며 재빠르게 몸을 감추는지를 알아야 하고, 말(馬)은 어떻게 피로를 줄이는 젖산 분해효소를 생산해 냄으로써 아무리 뛰어도 숨이 가프지 않은지를 알아야 한다. 이런 연구들은 향후 21세기 새로운 산업으로 각광받을 분야들이다.

1372년 우리나라에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금속활자를 이용해《직지심경(直指心經)》이 간행된 이후, 서양에서는 1450년 쿠텐베르그가 금속활자를 개발한 이후 찾아온 1차 지식 빅뱅이 찾아왔다. 이후, 다시 한참 시간이 지나 20세기 말 들어서 인터넷의 확산으로 2차 빅뱅이 찾아온 뒤로 우리는 지식에 대해 가장 큰 차별적 관점을 가지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지식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 터져 나오면서 그간 갈라섰던 학문 영역들이 서로 만나는 통섭의 차원을 열어 가고 있다. 이는 인류사의 제3차 지식 빅뱅으로 다가온다. 이제 모든 산업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지식세상을 열어젖힐 게 분명하다. 줄기세포라든가, 거미줄에서 뽑아내는 강철보다 몇 십 배나 강한 섬유라든가 하는 것들은 이미 우리를 둘러싸며 새로운 창조혁명 시대의 발견을 예고하고 있다.

상상력이 과학과 만나면 새로운 산업을 탄생시키고, 문사철과 만나면 또 다른 멋진 이야기가 나온다. 세종시대는 어떻게 해서 천문학은 물론 활자, 인쇄, 도량형, 화약, 농업, 의약, 음악 분야 등 과학기술의 모든 분야가 폭발적인 시너지를 내며 대융성 할 수 있었는지 알아야 한다. 다산(茶山)은 어떻게 십여 명의 제자들과 함께 전학문적 연구의 궤를 꿴 500여권의 방대한 저술을 남길 수 있었을까? 홍대용은 어떻게 지구가 자전하여 낮과 밤이 바뀐다는 지전설을 통찰하게 되었을까? 최한기는 어떻게 천문, 지리, 농학, 의학, 수학 등 학문 전반에 걸쳐 약 1000 여 권의 저서를 남기게 되었으며, 음파, 망원경, 온도계, 습도계를 설명하고 빛의 굴절 원리를 알게 되었을까? 이런 모든 것은 ‘간학(間學)’을 통해 설명되어 질 수 있을 것이다.

서양에서 다 빈치는 어떻게 해서 미술뿐만 아니라, 해부학, 물리학, 건축학, 수학, 지질학, 식물학, 심지어는 도시계획, 디자인, 요리에 이르기까지 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재능을 지닌 천재가 되었으며, 한 사람이 이룬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폭넓은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발현해 낼 수 있었을까? 이 모든 것의 해답이 바로 상상의 힘에 있다. 상상은 위대하다. 그것은 우리가 창조하는 인간임을 뚜렷이 드러내는 증거이다. 상상은 어느 하나의 전공을 뛰어 넘어 타학문에 대한 애정에서 싹튼다. 홀연히 사무실을 벗어나 대자연에서 자기 존재를 알고자 할 때 영감처럼 떠오른다. 이제 인류 역사상 최대의 지식 빅뱅을 맞아 나홀로 가는 학문은 고전이 되어 버렸다. 대신, 모든 것을 엮는 초영역 학문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그러기에 가장 창조적인 상상력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통섭형 사고는 경영자들에게 가장 절실한 대목이다. 우리는 늘 과정과 현재에 머물러 미래에 대해 자유로운 상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시간에 쫓기며 살지만 얻은 것은 응용 수준에 불과하다. 이제 하던 일을 놓고 자연을 찾을 때, 마침내 영혼이 샘물처럼 들어차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대자연의 감미로운 바람에서 자연풍이 항시 일정하게 불며 악기를 연주하는 건축구조물을 생각하게 될 것이고, 푸른 이파리를 보면서 늘 광합성이 일어나는 건축물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떨어진 비둘기의 깃털을 살펴봄으로써 그 아름답고 다양한 패턴이 빛을 반사함으로써 색깔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는 발견을 신개념의 컬러 의료(衣料) 개발에 활용하게 될 것이다. 또한 바람에 날린 민들레 홀씨가 바위틈에 와 안착하는 것을 보면서 우주적 질서와 생명을 지탱시키는 지식의 안착을 목도하게 되기도 할 것이다.

비록 척박한 환경에서 경영을 얘기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손 치더라도 우리는 대자연에서 심신의 위안을 얻는 것은 물론, 차별화된 생각을 얻는다. 자연은 이처럼 경영자들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제공해 주는 우주로 다가온다. 우주적 상상력을 통해 우리는 이전에는 감히 넘볼 수 없었던 경계를 허문 사고를 하게 되고, 이를 사무실에 들고 돌아가 실험해 볼 수 있다. 자연을 헤아리는 것은 보다 인간적인 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본질이 자연의 일부로 속해 있는 것을 알고 우리는 거기서 무한한 상상력과 영감을 얻는다. 숲과 계곡의 기능을 통해 친환경적인 상품의 미래를 상상해 볼 수도 있다. 교감이 필요한 시대, 자연을 찾는 경영자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스승을 찾고 싶거든 멘토를 찾고, 스승의 스승을 찾고 싶거든 고전의 위대한 철인들을 찾고, 그 스승의 스승을 찾고 싶거든 자연을 찾아라.”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드가 말한 바처럼 “우리 영혼은 불멸의 바다 풍경을 품고 있다.”

저 창조의 바다에서 우리는 새로움을 잉태하기 위해 자아에 대한 궁극적인 물음을 던져야 한다.#

전경일, <초영역인재>의 저자.



만약 인식의 문이 제거된다면,
모든 것들은 무한하게 있는 그대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윌리엄 브레이크, <천국과 지옥의 결혼(Marriage of Heaven and Hel)l>)

세계적인 혁신가 스티브 잡스의 죽음 앞에 전세계 사람들은 그에 대한 추모를 ‘I sad...'라는 말로 함축적으로 드러냈다. 잡스가 타개한지 3개월여. 잡스가 남긴 것이 무엇인지 전 세계 거의 모든 언론과 기업들은 열광적으로 특집을 내보내며 잡스를 다뤘다. 그런데 정작 수많은 잡스 관련 평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잡스의 혁신이 어디에 있는지 그 본령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잡스를 그토록 혁신의 대명사로 만들어 놓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얼마 전 뉴욕의 한 지인에게 잡스 타계 이후 애플 매장에서의 변화에 대해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매장을 찾는 사람들의 ‘인식’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이폰 시리즈를 구입하는 많은 고객들의 입에서 “나는 잡스의 ‘유품’을 산다”는 말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는 잡스가 왜 초발 혁신가였는지를 잘 보여준다. 세상에 어떤 비즈니스가 상품이 없어서 셔터문을 내리며 고객을 밤새도록 기다리게 하는가? 전통적인 마케팅 이론에 의하면, 이는 고객 불만의 대표적인 예에 해당될 것이다. 그러나 이제 고객들은 잡스와 애플이 대량생산해 낸 모바일 기기를 손에 넣으며 상품을 ‘유품’의 수준으로까지 격상시키고 있다. 그저 모바일 기기일 뿐인 상품이 유품이 되고, 유물이 되며, 아트(art)가 되는 이런 상황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여기에 바로 잡스 혁신의 숨은 힘이 있다.

잡스는 살아서 16세기 영국의 시인인 윌리엄 브레이크(William Blake)에 푹 매료되어 있었다. 가히 잡스의 영적 멘토라 해도 과언이 아닐 브레이크의 힘은 무엇이었길레 이 세기의 혁신가의 영혼을 송두리째 빨아들을 수 있었던 것일까? 이 두 사람은 어떤 접점에서 서로 만나는 것일까?

브레이크는 신비주의(Mysticism)시인이다. 그는 우리 육체의 다섯 가지 감각기관의 작용을 완전히 정지시킴으로써 감각으로는 도저히 체험할 수 없는 신령한 영혼세계의 문을 열어젖히는 시작(詩作) 활동을 했다. 그에 의하면, 하늘을 나는 종달새는 새가 아니라, 신이 보낸 전령이며, 자신은 자기가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신의 음성을 듣고 대필할 분이라는 입장을 취했다. 브레이크에게 있어서 이 신비적인 감응은 그의 시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그에게 있어 예술은 혼신의 열정을 바쳐 추구하는 절대대상이며, 이성적 사고능력이 아닌 직관적인 통합 비전으로 작용한다. 그것을 통해 신(God)이든, 위대한 영혼(Great Soul)으로 불리는 이름이든, 무한(the Infinite)과 만나게 된다. 따라서 창조적 상상력을 말살해 버리는 이성(理性)을 사악함 혹은 죄악이라고 하면서, 그는 이성과 결별하고 자신이 이뤄야 할 문학적 과업이 창조에 있다고 주장한다. 브레이크에게 있어 자기 작품의 진짜 저자는 천국에 있으며, 자기는 그 영적 계시에 대한 비서 역할밖에 하지 않는다. 그는 예술 창작 활동에 있어서도 초능력 현상으로 영계(靈界)의 직접적인 도움을 얻었고, 그 방법 역시 ‘브레이큰 웨이(Blaken way)’라는 특이한 방법을 사용했다. 이처럼 그의 마음속에 형성된 추상적인 영상은 타고난 비상한 상상력을 통하여 그의 시야에서 구체적인 형상으로 시각화되어 나타난다. 잡스는 바로 브레이크와 자신을 통일시 하며 여기에 빠져든 것이다.

잡스는 감히 누구도 생각해 내지 못했을 때, 애플의 매켄토시 컴퓨터에 처음으로 아이콘을 입혀 딱딱한 정보기술에 생명을 불어넣었고, 쫓겨난 애플에서 새로운 비전을 지닌 채, 죽음으로부터 다시 올라왔었다. 훗날 픽사(Pixar)를 인수하고 <벅스 라이프>를 만들게 된 것도 그가 보았던 어떤 비전이 눈앞에 어른거렸을 것이다. 현재의 혁신을 이루기 위해 미래로 가서 현실의 ‘있어야 할 바로 그 모습’을 그리며 새로운 혁신 기기들을 만들어 낸 것이다. 물론 잡스는 거기다가 새로운 비전(미래를 끌어 오는 것)을 송두리 채 들이 부었다. 거기다가 사업적 통찰력으로 시장 추이를 날카롭게 응시하다가 자본, 기술, 마케팅, 디자인, 음악 유통 판도 등 필요한 각각의 퍼즐을 정확하게 꿰맞춘 다음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가 전혀 다른 분야와 시대에 살다간 170여전의 시인에 빠져드는 이유는 이런 놀라운 상상력의 세계를 시인이 열어젖혔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는 죽기 전 윌리엄 브레이크의 콜렉션을 팔았는데, 그때 나는 그가 인생을 정리하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았다. 아마 미래의 역사가들은 스티브 잡스가 픽사와 아이폰의 영감을 얻은 이유를 밝혀내기 위해 브레이크를 탐색해야 할지 모른다.

오늘날 우리 기업이나 개개인에게 필요한 것은 강한 근육질의 몸매(공장)가 아니다. 상상력이다. 그 상상력이 세상을 통찰한다. 미래의 모습을 강한 압축적 이미지로 드러내는 시인에게서 찾고자 한다면, 아마 기업은 새로운 차원의 변신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잡스는 브레이크와 닿아 있지만, 우리 경영자들이나 직장인들이 시집을 들고 있는 모습은 좀처럼 볼 수 없다. 출근길, 휴대폰 속의 어플리케이션 속이나 푹 빠져드는 그들에게서 원천적 영감이 떠오르길 바랄 순 없다. 한국 시인들의 한 달 평균 수입이 25만원 남짓 된다는 말을 듣고, 상상력의 도래를 인식하지 못하는 우리의 수준으로는 잡스가 이뤄낸 것과 같은 차원 다른 세계를 만들어 내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업 혁신의 수준은 그 사회의 문화적 수준과 비례한다. 오늘 우리 수준을 업 그래이드 하기 위해 우리는 낮선 시인들의 세계로 초대받는 ‘초발 혁신의 세계’로 뛰어 들어봄은 어떤가?#
전경일, <초영역인재>의 저자.

세상에는 수많은 지식이 존재하고, 그 지식은 나름 쓰임새가 있다. 어떤 지식은 우리가 말하는 이른바 ‘지식인’들만의 것이 아닌,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이 알고 있는 지식이다. 이런 작은 지식은 때로 생명을 구하는 등 위대한 결과를 가져오곤 한다. 이런 이야기는 2004년 12월 26일 인도네시아 북 수마트라 서쪽에서 지진이 일며 쓰나미나 몰아닥쳤을 때 충분히 입증되었다.

그날, 규모 9의 지진은 8분 동안이나 격렬하게 흔들며 그 지역 일대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수마트라에서는 앞뒤로 흔들리고 동시에 엘리베이터의 하강 가속도보다 훨씬 빠른 상하진동 때문에 서 있기조차 어려웠다. 무너지는 주변 건물에서 피하기란 도저히 불가능했다. 해저가 갑자기 상승해 생긴 큰 파도는 항공기 속도인 시속 700킬로미터 이상으로 이동해 15분 만에 주변 해안에 도달했다. 5미터의 파도가 수마트라 북부 반다아체 25제곱킬로미터를 덮쳤다. 24미터 높이의 파도가 내륙으로 1킬로미터까지 피해를 주었고, 일부 지역은 8킬로미터까지 피해를 입혔다. 쓰나미는 상상할 수 없는 피해를 주고 물러갔다.

많은 사람들은 쓰나미가 물러가자 평온 상태가 온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착오였다. 이런 놀라운 대자연의 위기 속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의 힘을 발휘한 것은 열살된 한 초등학교 여학생이었다. 이 아이는 최근 수업시간에 배웠던 쓰나미 관련 지식을 즉각 떠올렸다.

“쓰나미는 썰물처럼 빠진 다음에 재차 더 강력하게 몰아친다!”

그 초등학생은 쓰나미가 몰려오기 전 해수가 밀려나간 것을 보고 즉시 주변 사람들에게 높은 곳으로 대피하라고 외쳤다. 많은 사람들이 따르지 않아 소중한 목숨을 잃었고, 어떤 사람들을 그 말을 믿고 대피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한 초등학생의 기지와 ‘작은 지식’이 수많은 생명을 구한 것이다.

다른 경우로는 <내셔널지오그래픽> 잡지에서 쓰나미 특집을 읽었던 인도의 외딴 섬에 사는 한 부두 노동자에 의해 증명되었다. 그는 지진을 감지하고 이웃들에게 큰 파도가 밀려온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결국 이 두 사람은 1,500명 이상의 목숨을 구해 냈다. 작은 지식과 훌륭한 행동이 귀중한 인명을 구한 것이다.

우리는 수많은 지식을 이야기 하나 정작 인간의 생존과 직결된 지식에 대해서는 많이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독사에 물렸을 때의 처방법, 사막 여행을 갔다가 전갈에 물렸을 때의 치료법, 아프리카 오지를 탐험할 때 말라리아를 퇴치하는 법, 아기의 목구멍에 걸린 콜크 마개를 신속히 제거하는 법, 불이 났을 때 제일 먼저 취해야 하는 방법 등은 초등학교 시절에나 잠시 배우고 잊고 만다. 그러나 이 같은 지식은 불예측한 환경에서 갑작스럽게 닥치는 위험 앞에서 적절한 대응법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생존에 필수적인 지식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보다 우리는 다우지수가 국내 주가에 영향을 미치는 법, 펀드 이익률 계산법, 부동산 가치 환산법 등에 더 관심을 갖는다. 이는 사회인이자, 경제인으로서 필요한 지식이겠지만, 그것이 삶을 죽음을 나누지는 못한다. 물론, 주식 폭락으로 자살을 결심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다를 수 있다.

우리의 지식은 많은 점에서 자신과 세상을 구하는 일에 더 많이 쓰여져야 한다. 비록 그것이 작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일회용 빨대를 없애자는 한 소년의 캠페인이 크게 호응을 받고 있다. 지구 온난화와 환경오염은 멀리 볼 필요도 없다. 올해에는 추석이 지났어도 한반도에서는 폭염이 이어졌고, 경기도 일부 지역에서는 한여름에 우박이 떨어지는 등 이상기후를 보였다. 여름철의 집중 호우와 산사태는 이 같은 재앙이 남의 일이 아님을 잘 알게 한다. 그러나 우리의 실천은 늘 너무 큰 데나 쏠리고 있다.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해 당장 휘발유차를 모두 전기차로 바꿔야 하는 건 아니다. 그런 주장은 하리브리드카를 내놓은, 역사상 지구라는 환경 오염의 가장 큰 주범인 자동차 회사에서나 하는 말이다. 그보다는 작지만, 실천할 수 있는 ‘지식’과 행동이 필요하다. 국내 주요 커피전문점에서 일회용컵을 없애기로 한 것은 이런 일환이다. 2010년 한해 몇 몇 메이저 거피전문점 3개 업체 900여개 매장에서 사용한 일회용컵은 무려 5,200만개에 달한다. 이들 매장이 일회용컵 없는 매장으로 전환할 경우 연간 약 31억원의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일회용 컵 없애기 운동은 경제적 이유 때문에 벌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일회용컵 없는 매장으로 전환할 때 오히려 크게 경제적 이득을 가져오지 않거나 더 손해가 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환경문제 등을 고려해 동참하는 것은 ‘작은 실천’ 때문이다. 작은 지식만큼이나 작은 실천의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얘기다. 아는가? 이런 작은 실천행위가 우리의 기후를 예전으로 돌려놓는데 중요한 시금석이 될런지.

인간이 행하는 모든 활동 중에 만나게 되는 위험은 늘 죽느냐 사느냐는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어떤 위험은 우리가 이를 무시함으로써 장차 다가올 큰 환란을 조장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대부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일들이 최악의 위험요인으로 부각된다. 2011년 수자원공사의 구미시 단수 사태나, 농협전산망 장애 사태, 그리고 한전 단전 사태 등은 모두 지진이나 쓰나미처럼 불가항력적인 게 아니다. 조금만 신경 쓰면 그 같은 사태는 피할 수 있다. 요는 이를 막으려는 앞서 수마트라의 초등학생이나, 부두 노동자, 빨대를 없애자는 캠페인을 하는 어린이 같은 이들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좀 더 지식을 삶에 맞춰 볼 필요가 있다. 결국 인류가 지식을 만들어 낸 것은 생존하기 위한 목적에서였고, 그것은 이 지구상 가장 큰 욕망과 머리를 지닌 특이한 별종이 그래도 함께 사는 방법을 찾고자 노력했기 때문일 테니까.
ⓒ전경일. 인문경영연구소장.《초영역 인재》저자.

 


경영전략 전문가인 미시건대 경영대학원의 프라할라드 교수는 “영원한 경쟁우위 요소는 없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항상 새로운 원천을 발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끊임없는 혁신이 생존에의 조건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혁신은 개선사항을 찾고 효율성과 생산성을 올리는 다분히 대량생산체제에서의 이노베이션을 뜻하는 경향이 있어왔다. 창조시대에는 이노베이션이 아닌, 인벤트를 통해 문제에 접근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혁신의 보다 광의적인 개념인 창조는 실리콘 밸리의 경우 우리보다 대략 10여년은 앞서 있는 느낌이다. 그간 우리는 벤치마킹 해 온 것의 효율성을 강화하는데 혁신이란 말을 제한적으로 사용해 왔다. 실리콘 밸리 열풍이 불던 1999년《산호세 머큐리 뉴스》지에 실린 휴렛 팩커드사의 기업 PR 광고는 기업사(起業家)정신과 더불어 세상을 바꿀 인벤트를 창조개념으로 강조하고 있다. 창업 자체가 창조 과정을 전제로 한 점이 우리보다 앞선 기업들의 특징인 셈이다. 

Rules of the garage.
차고(車庫)의 법칙

Believe you can change the world.
믿어라, 당신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Work quickly, keep the tools unlocked, work whenever.
빨리 일하고, 도구[수단]을 잠가두지 말라. 언제든지 일하라

Know when to work alone and when to work together.
알아라, 언제 혼자 일할지를 그리고 언제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할지를.

Share – tools, ideas. Trust your colleagues.
나눠라 – 도구[수단], 아이디어를. 믿어라, 당신의 동료들을.

No politics. No bureaucracy. (These are ridiculous in a garage.)
정치란 없다. 관료주의도 없다. (이런 것들은 차고에서는 웃기는 것들이다.)

The customer defines a job well done.
고객이 일이 잘되었는지 정의내릴 것이다.

Radical ideas are not bad ideas.
급진적인 생각들은 나뿐 것들이 아니다.

Invent, different ways of working.
만들어 내라, 다른 방식으로 일하는 것을.

Make a contribution every days. If it doesn’t contribute,
매일 매일 기여하라. 만일 기여치 못한다면,

It doesn’t leave the garage.
차고를 떠나지 못하게 될 것이다.

Believe that together we can do anything.
믿어라, 우리가 함께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Invent.
개발해 내라.


기업의 혁신역량이 강화되려면 창의적 인재가 중요하다는 점은 새삼 강조할 나위 없다. 직원의 자질+전문능력+창의적 사고+도전정신의 합이 승수 작용을 일으킬 때 ‘창조’는 탄생한다. 오늘날 기업들은 직원들의 창발성을 이끌어 내기 위해 직무교육에 여러 기술(스킬), 능력을 터득하도록 교차훈련(cross-training)을 포함시키고 있다. 직원이 혼융된 일을 소화해내고 수행해 내게 하려는 것이다. 나아가 다면적 이해에서 오는 ‘새로운 발견’을 촉진시키고자 한다.

기업 내 인력개발은 구체적으로 기업이 바라는 인재상, 즉 비전과 전략을 수행하는 데 있다. 기업 성장의 주축이 사업이 아닌, 사업을 주도적으로 개발하고 탁월한 성과를 내는 인재에 있다는 것은 두 말할 나위 없다. 글로벌 무한 경쟁의 시대에는 ‘카피(copy)’로는 생존을 보장받을 수 없다. 이처럼 창조적 인재개발은 기업사활의 핵심을 이룬다. 인재가 지닌 지적 깊이와 경험의 폭을 씨줄 날줄로 엮어서 그 기업의 고유한 능력으로 발전시키고, 지적 영역과 깊이를 더하지 않으면, 더 이상의 발전을 꾀하기란 쉽지 않다.

직원들의 표출된 가능성을 더욱 개발하고, 잠재가능성조차 찾아내 현실화시키는 것이 기업의 의무로 부각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런 연유로 기업 교육이 복수학위, 복수 커리어, 복수 스터디 그룹 운영, 독서 마일리지 등 다양한 입체적 지력(知力) 배가 활동을 제시하는 것은 통합적 사고가 그만큼 중요해 졌기 때문이다.

과거의 지식, 사업은 반쪽짜리만을 잘 개발해 나머지 반쪽과 잘 꿰맞추는 것을 목표로 했다. 나머지 반쪽을 찾는 것을 아웃소싱이라고 표현했고, 말 그대로 외부에서 찾으면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내가 궤를 꿰지 않고 통합분야의 지식을 자산화하기는 어렵다. 이 점은 이미 많은 글로벌 리딩 컴퍼니들에 의해 입증됐다. 누가 코어(core) 지식(또는 앞서 언급한 종자지식seed knowledge)를 쉽게 남에게 내어주겠는가? 지식의 산물로써 상품(혹은 서비스 등의 고객가치)을 넣고 끼워 팔 수 있지만, 원천지식은 영구히 자기 소유다. 오늘날 컨설팅 회사 등의 막강한 자산이 다른 학습을 통해 내부 자산화 한 것들이다. 고객의 노하우, 분석 매트릭스 툴(tool), 수많은 사례, 혁신 기법, 새로운 실험을 통한 지식 축적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동안 우리 기업은 지식을 자산화하고, 이를 원천지식으로 발전시키는데 뒤처짐으로써 경영행위 자체가 하나의 ‘결함’을 만들어 왔다. 이런 경험은 통찰의 결핍에서 온 것이다. 어느 하나의 해법으로 기술을 구현하고, 세상을 해석하고, 고객을 대하고자 했지, 전체로써 경영행위를 하나의 자산으로 승화시키지 못했다. 이 점이 우리의 경쟁력을 취약하게 만들고, 기술 종속을 가져온 원인이었다는 점은 부정키 어렵다.

빈센트 꽁트(Vicent A. Conte)는 “한국사회는 외부의 사회, 기업 모델을 채택함으로써 단기적인 성과를 얻었지만 한국의 경쟁 우위를 확보하는데 일관성이 부족했다. 다양한 국가의 모델을 경험하면서 여러 관행이 모아졌지만, 정작 한국적 문화의 기본적인 특징들을 무시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근로자와 일반 시민들에게 스트레스와 불안정만을 야기했을 뿐이다. 한국이 외부에서는 배우려 하지 않고 독자적인 길을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과거 쇄국주의 정책을 폈을 때로 돌아가는 게 좋다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대신 한국 사람의 강점과 전통 문화를 살려 경제적 성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독특한 전략을 창조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는다. 그의 분석을 경영에 비유하면 이보다 적절한 말은 없을 듯 하다.

적어도 십여 년 전쯤에 풍미한 과거 인재론의 중심을 이루었던 사상은 급격한 진화를 이뤄냈다. 한 가지 특출난 전공 분야(업무 분야)의 스페셜리스트와 일반 지식경험을 총체적으로 파고 들어가는 제너럴리스트 개념이 그것이었다. 이 둘은 택일 개념이었다가, 그 후 (예컨대 단순 비유로)우수 영업 인력 정도라면 회계장부 정도는 꿸 수 있어야 한다는 식의 스페셜제너럴리스트(special-generalist)로 논점이 옮겨졌다. 직원의 능력을 키워내는 면적과 깊이의 양면에서 이 같은 결합은 지극히 단순한 것이었지만, 꽤나 설득력이 있었다.

복수 전공은 이 시대 하나의 학습 대안으로 제시돼 많은 사람들이 여러 학위를 따는 학위수집가(degree collector)가 되도록 하기도 했다. 하지만 본질은 통섭형의 학습대안이라기 보다는 졸업장을 하나 더 추가하는 학력 보조의 기능이 강했다. 그나마도 과거보다 진일보한 개념이었다.

그렇다면 21세기형 인재상은 어떠해야 할까? 물리적 결합이 톱니바퀴처럼 얽혀 돌아간다 해도 그것이 화학적 결합에서처럼 전혀 다른 새로운 것을 창출해 내지는 못한다면 가치는 질적 도약을 이루기 힘들다. 이 같은 과거의 방식에 대한 결핍을 인식하며 제기되는 것이 보다 밀접한 학문간 연결, 지식간 연계를 통한 통섭력이다. 학력첨가제가 아닌, 본원적으로 탁월한 인재를 만들어 내는 개념이 초영역 인재이다. 예를 들어 요즘 게임업체에서는 인문학 전공자로 물리엔진의 이론에 박식하고, 상상력을 자산으로 하는 업의 특성상 등단 경험 등 문학적 배경을 갖춘 복합능력형 인재를 찾고 있다. 문사철이 중요해지면서 기업 활동에서 많은 스토리 텔링이 보강되고 있어 글투를 통한(특히 인터넷 환경에서) 고객 소통을 필요로 하는 경영환경은 글에 고명을 얹질 수 있는 인재를 요구하고 있다. 최근 들어 생물학자라든가 자연과학자, 공학자들 사이에 글쓰기 수준이 비약적으로 향상된 서적이 출간되는 것도 양측의 요구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들은 과거의 인재형과 달리 적어도 어느 분야세서는 궤를 꿰는 통섭형 인재 유형에 속한다. 이에 따라 아날로그형 인재에서 디지털로, 디지털에서 크로스 오버형으로 핵심인재상이 진화해 나가는 것은 전 지구적 차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재전쟁의 한 현상이다. 복식조 시대로의 진입은 오늘날 경영자들에게 다학문적 경험을 쌓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모든 것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능력은 비즈니스 현장에서 (조정 능력과 함께) 경영자들에게 요구되는 하나의 통합 능력이다. 잘 묶는 자가 지식의 들판에 펼쳐진 개별 지식의 볏단을 자기 기업에 유리하게 옮겨 놓을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게임의 방식이 멀티로 이루어지는 시대에 복식조 식의 지식과 경험은 새로운 창조적 성과를 가져온다. 지식이 깊고 넓어야 궤를 꿸 수 있다.
ⓒ카인즈교육그룹,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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