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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는 정사(政事)를 덕(德)으로 하는 것은, “북극성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어도 여러 별들이 그에게로 향하는 것과 같다(爲政以德 譬如北辰居基所 而衆星共之)”고 한다. 따라서 군왕 리더십의 핵심은 인과 덕을 통해 뭇별인 백성들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다.

2012년 올해 사자성어에 ‘생생지락(生生之樂)’이 선정됐다는 말을 뒤늦게 듣고 불현 듯 내가 쓴 <창조의 CEO 세종>이란 책에 나오는 생생지락의 참 의미를 되새겨 보았다.

세종은 유교적 덕목과 질서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태종의 셋째 아들로 국왕의 자리에 올랐다. 3자가 국왕이 된다는 것은 종법질서에 크게 어그러지는 것이었지만, 세종의 탁월한 군주다운 면모는 국가의 지속성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  태종의 마음을 움직여 끝내 국왕의 자리에 오르게 한다.

22살의 국왕은 지금으로 치자면 대통령 취임사, 즉 즉위교서에서 몇 가지 국가 경영의 철학을 밝힌다. 그 대원칙은 “인(仁)을 펴서 나라의 정사를 전개하겠다(시인발정 施仁發政)” 는 것이었다. 취임 일성에서 유교의 생생함, 위민(爲民) 경영을 실천자로서 사명을 다 하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세종이 천명한 
‘백성이 주인’인 사상은 그저 나온 것이 아니다. 세종 경영철학의 밑바탕은 민본사상인 바, “백성은 나라의 근본(‘민유방본 民惟邦本)’으로 국가 경영권이란 하늘인 백성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이라는 사상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하여 국왕은 하늘인 백성을 대신해 백성을 다스리는 것이다.(대천이물(代天而物). 이런 국가경영상 확고한 철학적 신념은 세종으로 하여금 국왕이 된지 6년과 19년 후에도 아래와 같이 언명하게 하는 것이다.

국왕은 “하늘을 대신하여 만물을 다스리는 것이니,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고 양육하는 마음을 먹어야 한다.”(세종실록』 6년 6월 기미)

국왕의 책무는“오로지 애민(愛民)하는 것이다.”(세종실록』19년 1월 22일)

그리하여 세종은 자신의
경영 지표로 ‘민본’을 삼고, 자신의 정신 속에 항시 ‘하늘(天)’인 백성을 새겨 넣으며 평생을 살아갔다. 그 때문에 정치를 하는 요체로 세종은 다음과 같은 민생론을 주장하며 이의 완수를 위해 평생 멸사봉공하였던 것이다. 

세종이 내세운
 대표적인 캐치프레이즈를 뽑아 보라면, 올 해의 사사성어 중 하나인 ‘생생지락(生生之樂)’이다. 이 말은 원래 서경(書經)에 나오는 말로 중국의 고대 상나라 군주 반경이 만민들로 하여금 생업에 종사하며 즐겁게 살아가게 만들지 않으면 내가 죽어서 꾸짖음을 들을 것이다 라고 말한 데서 따온 말이다. 세종은 역사 속 인물의 모범을 찾아 이를 세종정부의 캐치프레이즈로 삼았다. 다음은 바로 그것이다. 

“(세종 정부는 조선의 백성 여러분에게) 살아가는 삶의 즐거움을 드리겠습니다.(生生之樂)”

600년 전 세종 정부의 슬로건이라고 생각하기에 어떤가? 너무나 21세기적이지 않은가?

이것 말고도
더 있다.
바로 ‘대평화’와 함께 ‘경제적 풍요로움’ 을 동반하는 세종의 경영관이 압축된 말이다.

세종정부가 어느 특정 계급만 위한 게 아니라, 모두가 다 함께 밝고(희,熙) 너그러운(호,皞) 상태, 즉 ‘희호지락(熙皞之樂)’을 목표로 했던 것은 상위 1%만을 위한 오늘날 국가경영 시스템에 크나큰 경종을 울린다.

다 같이 밝고 너그러운 상태! 이 얼마나 위대한 경영(정치)적 슬로건인가.

대한민국 상위 1%(또한 1%만을 위한 정책 집행자)는 알아야 한다. 1%의 지속성을 위해서도 99%를 위한 정치가 펼쳐져야 한다는 것을. 그것이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의 한 모습이라는데 이의를 다는 건 어려울 것이다. 이 점을 모를 때 모든 역사는 혼란과 폭동과 붕괴로 그 사회, 그 체제의 지속성이 도전 받았다. 지속성은 결국 잘 제어된 욕망에서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는 욕망의 갈기를 꽉 붙잡고, 욕망이 미쳐서 제 주인을 국민을 짓밟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세종은 이런 희호지락의 세상을 꿈꾼다.

“우리 백성들의 생명을 길게 하고, 우리나라의 바탕을 견고히 하며, 가정과 사람마다 넉넉하여 예양(禮讓)의 풍속을 크게 일으켜, 때로 화평하고 해마다 풍년되어 다함께 ‘화락하는 즐거움을 누려갈 것이다.”(세종실록』 26년 윤 7월 임인)

이것이 다가 아니다. 보다 궁극적이며 중요한 정치 원칙, 삶의 원칙이 있다.

그것은 ‘드높은 평화에의 경지’, 즉 ‘융평(隆平)’ 이다. 조선 초 수많은 피를 흘린 정국을 안정시키고 백성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자 세종은 분별없는 경쟁과 갈등과 대립국면이 아닌, 상호 이해와 조화를 이끌어 내고자 했다. 정적조차 충신의 반열로 끌어 올린 것은 이 때문이다. 조선 창업을 거부한 자들이 수없이 복권되어 나왔다. 일테면 오늘날 정봉주 전의원에 대한 처사처럼 속좁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 점에서 오늘날 우리 정치가 보여주는 속좁은 처사는 정치의 본령에서 한참 멀어져 있으며, 말할 나위없이 함량 미달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점 중에 하나이자,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큰 해법이 되는 세종 정부의 경영 철학을 살펴보자.

그것은 다름아닌,
상향식 경제발전과 분배를 동시에 잡겠다는 이른바 ‘풍평(豊平)’이다. 성장과 분배의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 다른 차원의 국가 경영, 정치 세계를 열어나가겠다는 것이다. 정치인으로 앞으로 내가 하고자 하는 것도 이것이다.

우리 사회를 멍들게 하는 극단적인 '성장 vs. 분배' 의 갈라진 주장은 양쪽 모두 철학 없는 정치의 산표본이다. 어찌 이 둘이 분리될 수 있단 말인가? 성장 없는 분배는 공허하고, 분배 없는 성장은 다수를 절망케 한다. 정치인들은 왜 이 둘을 동시에 해결하는 커다란 숙제에서 빗겨나 반쪽짜리 숙제로 피신해 가는가? 그럼으로써 국민들이 이 문제에 휩쓸려 절망하도록 하는가?

그것은 정치를 하는 자들이 국가를 경영할 통섭의 그릇이 작기 때문이며, 생각이 그저 조랑박처럼 올망졸망 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불행은 이렇듯 작은 정치와 정치인들이 세상을 구한다고 떠들고 나서기 때문이며, 국가의 일에 대해 가장 중요한 몫을 결정 내리는 키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 정치의 불행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선거를 통해 이런 소인배들을 정치판에서 몰아내야 한다. 단 한번도 진정으로 한반도 전체 역사와 민족사,국민의 100년후, 1,000년후 미래를 담론화 해 본 적 없는 자들이 우리의 현실은 물론 후손들의 미래까지 운명지으려 하고 있다. 너무 작은 그릇들이 작은 소란에 요란을 떨어대며 생색 내기에 급급하다. 국가의 창고를 털어 제 배 불리는 데에만 머리만 돌아가는 자들이 연일 뉴스를 타며, 국민들을 절규케 한다. 소인배들의 입신과 출세를 위해 국민 대다수의 미래가 저당잡혀 있다. 이제는 이런 구태를 깨뜨려 버려야 한다.

선거가 있는 올 해, 우리는 세종이 울부짖었던 ‘생생지락(生生之樂)’의 진정한 의미를 알아야 한다.

“(세종 정부는 조선의 백성 여러분에게) 살아가는 삶의 즐거움을 드리겠습니다.(生生之樂)”

살아가는 삶의 즐거움은 누군가의 희생이 크게 따라야 하고, 여기에는 정치인이 제일 앞에 서야 한다.

개인적으로 이제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에 나는 혼신을 다해 국민들과 함께 삶의 즐거움을 정말 아는 그런 세상을 만들고 싶다. 이 일에 일생을 바치고 싶다.

전경일.
 



'생활속의 정치'를 표방하며, 관례적으로 쓰여 온 각종 비민주적 명칭, 제도, 법률 개선을 위한 저의 첫 제안으로 '무소속' 후보 명칭의 '국민참정(권) 후보' 명칭으로 개명 제안이 언론에 기사화 되었습니다. 참고 바랍니다.

 - 아 래 -

"정당 없는 후보 '무소속' 통칭은 위헌" 진정

선거 시 정당에 소속되지 않은 입후보자를 '무소속'으로 통칭하는 것은 헌법에 위배된다는 주장이 나왔다.

민주통합당 서초을 예비후보인 전경일 인문경영연구소장은 5일 "유권자들이 무소속 명칭을 두고 '기존 정당에 의해 공천되기에 부족한 사람'이라고 인식하는 현실상 이런 차별적 명칭을 쓰는 것은 '모든 국민이 정치적 행위에서 평등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헌법 11조 1항에 위배된다"며 선거관리위원회와 국민권익위원회에 명칭 변경 제안서제출하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다고 밝혔다.

전 소장은 "4월 19대 총선부터 무소속 후보라는 명칭 대신 '국민의 참정권을 행사하는 후보'라는 의미에서 '국민 참정(권) 후보'라는 이름을 쓰자"며 "이들 후보가 복수일 경우 번호를 부여하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출처: 한국일보, 박우진기자 , 2012.02.06 >



각종 선거시, 비(非)정당 후보를 지칭하는 '무소속' 명칭을 '국민참정권 후보'로 변경할 것을 오늘 선거관리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 제안드렸습니다.
생활 속의 정치는 제도 곳곳에 나타나는 비민주적 요소를 바로잡는 것이겠죠.

아래 보도 자료와 진정·제안서 전문을 싣습니다.



보도자료 2012.2.3.

 

선거 시 ‘무소속 후보’ 명칭은 ‘국민참정(권) 후보’로

올바른 명칭을 다시 부여해야 합니다.


각종 선거 시 정당 소속이 아닌 일반 후보자에 대해 부여하던 ‘무소속’이라는 명칭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전경일 인문경영연구소장(민주통합당 서초을 예비후보)은 기존 통념상 받아들여져 왔던 비(非)정당 후보자에 대한 후보 명칭 표시 시 “무소속”이라 표현하는 것은 헌법 11조 1항에서 정한 “모든 국민은 누구든지 정치적 생활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는 조항을 위반하는 것으로 선거권, 피선거권의 평등성에 위배되고 차등을 두는 명칭이라 판단해 선거관리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에 이의 변경을 진정, 제안했다고 밝혔다.

전 소장에 의하면 우리나라 정치가 대의제를 띠고 있을지라도 국민 고유의 권리인 참정권에서 ‘무소속’이라 표현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인 참정권이 침해 받는 것으로 반드시 바꿔어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거 피부색 명칭으로 미술 물감 등에 표기되었던 “살색”이라는 명칭이 “살구색”으로 변경된 것도 다원적 가치와 다문화 가정이 늘어나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었듯이 “무소속”이라는 명칭은 헌법에서 정한 국민 참정권 정신이 반영되어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전 소장이 제안하는 명칭은 “국민참정(권) 후보”로 정당 소속 후보자가 아닐지라도 마치 소속감 없는 후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오는 4.11. 총선부터 “무소속 후보” 명칭이 “국민참정(권) 후보”로 변경될지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다. 명칭 변경이 받아들여진다면, 제헌의회 이후 사용해온 “무소속”이라는 명칭은 대한민국 선거사상 60여년 만에 사라지게 된다. 전 소장은 “민주주의는 생활 속에서 우리가 간과하는 명칭 같은 것을 바로 잡는 데에서부터 나타나야 한다”고 주장하였다.<끝>

보도자료 문의:
전경일 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주소: (137-070)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1316-4 팔레스 빌딩 604호
전화: 02-812-3583 | 팩스: 02-812-3590 | e-mail: humanity365@naver.com
첨부: 선거관리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에 명칭 변경을 제안한 진정·제안서 전문


 

선거 시 ‘무소속 후보’는 ‘국민참정(권) 후보’로

올바른 명칭을 써야 합니다.

 

○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는 대한민국 국민이 선거권과 피선거권 모두를 가지고 있으며,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에 의해 주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 또 대한민국 헌법 11조 1항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따라서 법에서 말하는 “차별을 받지 않는다”는 의미는 정치적 행위인 선거권, 피선거권에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 하지만 매번 치러지는 각종 선거 시 정당 소속이 아닌 입후보자(피선거권자)에 대해서 “무소속” 후보라 명칭하는 것은 국민의 참정권내지 피참정권과 평등권을 심리적, 실질적으로 위배하고 있는 것으로 헌법 정신에 크게 위배되는 명칭이라 사료된다. 즉 “무소속”이라는 명칭은 헌법 11조 1항에서 정한 “정치적...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와 크게 차이나는 것으로 국민들이 받이들이는 “무소속” 명칭의 어감상, 인식상, 직관상 여러 면에서 해당 후보자들에게 “차별”을 주고 있으며, 실제로 선거에서도 불리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본다.

○ 헌법 제24조에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권을 가진다”고 되어 있다. 이는 비(非)정당 소속의 입후보자라고 할지라도, 국민 참정권상 제반 명칭에 있어서 평등성이 부여되어야 함을 뜻한다.

○ 물론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하고 도움을 주는 대의민주제 기본 형식이 정당이자 정당정치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헌법 제8조 2항에서는 정당이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하기 위한 목적을 지닌 조직임을 명시하고 있다. 그렇다고 특정 정당 후보자들은 정당명을 쓸 수 있는 반면, “무소속” 후보들에게는 “무소속”이라는 불평등한 명칭을 사용하게 하는 것은 헌법 정신을 크게 훼손하는 것이라 사료된다.

○ 결과적으로 현재 대한민국의 선거는 무소속 후보의 경우 정당 후보에 비해 훨씬 더 어려운 출마 과정을 겪고 있으며, 선거 진행상의 어려움뿐만 아니라, 명칭면에서도 첫출발부터 불이익을 받고 있는 것이다.

○ 정당이 이익집단이고 특정집단의 이익을 대변하기에 자신의 정치적 의사와 맞는 정당이 없거나 공천을 받지 못한다면 누구나 “무소속” 후보로 출마할 수 있고, 출마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서는 “무소속” 후보로 나온 국민은 실질적이며 명칭상으로 “무소속“이라는 불리함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 그러나 다른 “집단”에 비해 소수의 의견을 대변한다고 해서, 다른 “집단”의 이해나 정책과 다르다 해서, 정당의 공천을 받지 못한 채 입후보 한다고 해서 아무런 소속감 없는 후보자인 것처럼 “무소속”이라 명칭하는 것은 분명 국민 일원으로서 행사하는 참정권의 의미를 십분 살리지 못하는 것이며,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권리행사를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써 헌법 정신에 크게 부합하지 않는다고 본다.

○ 과거 오랫동안 ‘살색’이라는 표현이 당연시 받아들여졌던 것은 “우리”만의 문화가 반영된 것으로 이는 다양한 인종의 차별점을 인정하지 못하는 인식과 풍토에서 나온 잘못이었던 것이다. “살색”이 “살구색”이라는 명칭으로 바뀐 것과 같이, 비(非)정당소속 입후보자에 대해 “무소속”이라는 명칭을 관례적으로 사용해 온 것은 국민의 권리 행사 중 하나에 인식적 제한을 둔 것으로, 헌법 정신에 크게 위배된다고 하겠다.

○ 나아가 유권자들의 의견을 대변해 주는 일꾼을 선출하는 선거에서 국민적 소속감이 결여되거나 부족한 것으로 충분히 비춰질 여지마저 있다.

○ 따라서 진정한 참정권을 함께 이룩해보자는 취지로 기존 “무소속”후보라는 명칭을 “국민 참정(권)후보”라는 명칭으로 변경하고, 이들 후보들이 복수일 경우 1, 2, 3식으로 번호를 부여해, 가장 가까운 금번 4.11 총선부터 사용할 것을 제안 드린다. 이것이야말로 헌법 정신에 부합한 가장 합당한 명칭이라 사료된다.<끝>


(전경일 소장)


최근 한국 역사학계 일각에서는 '임진왜란'을 '임진전쟁'으로 명칭 변경을 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2012년부터 고등학교 교과서 ‘동아시아사’ 과목 2종(교학사, 천재교육 출판사 간행 예정)이 바로 그것인데, '임진왜란' 명칭 변경 시도에 대해 나는 학자이자, 이 분야에 대한 오랜 팀침으로 최근에 출간한 <남왜공정: 일본 신왜구의 한반도 재침 음모>라는 책의 일부를 옮김으로써 본격적으로 한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역사의 자의적 해석과 이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역사 해석의 지향성을 한국판 '역사 전쟁'이라 정의하고 반박하고자 한다. 학계는 이에 대해 충분한 학술적, 역사적 반론이 있길 바란다.




2011년 한국 교과서 사건의 본질

2000년대 첫 10년을 갓 넘긴 시점에서 ‘임진왜란’과 관련되어 일고 있는 문제점을 살펴보기로 하자. 한일간 역사적 사건에 대한 명칭이나 용어는 국가의 위상과 역사적 사건에 대한 의미의 총체성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이 같은 명칭(용어)문제를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드는 ‘사건’이 2011년 대한민국에서 진행되고 있다. 즉 2012년부터 고등학교 교과서 ‘동아시아사’ 과목 2종(교학사, 천재교육 출판사 간행 예정)에서 ‘임진왜란’을 ‘임진전쟁’으로 ‘병자호란’·‘정묘호란’을 ‘병자전쟁’·‘정묘전쟁’으로 바꿔 기술해 가르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점이다. 이 같은 명칭 변경에 대해 학계의 주장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14)

[‘임진왜란’ 명칭 변경에 대한 한국 학계 일각의 변辯]
■ 조선과 일본, 명明이 7년간 전쟁을 벌였고, 그 결과 명이 쇠망하고 청淸이 중국 대륙을 차지하는 등 ‘동아시아의 판도 변화를 일으킨 역사적 사실’을 표현하는 학술용어로 ‘왜란倭亂’이란 용어는 부적절하다.
■ 왜란이란 표현은 ‘왜인(일본인)이 일으킨 난동’이란 의미로 동아시아 3국이 싸운 국제 전쟁의 성격을 표현하지 못한다.
■ 임진왜란은 우리 입장이 강하게 담긴 용어인데 한국사가 아닌 동아시아사를 편찬하면서 자국 중심적 용어를 고집할 수는 없었다.
■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이란 용어는 피해자의 적대감이 깃든 용어로 조선왕조실록에서 그렇게 기술한 게 굳어져 온 것(이다).
■ 왜구들이 개항장에서 난동을 일으킨 사건을 뜻하는 삼포왜란에는 적절한 표현일지 모르나, 7년 임진전쟁에도 왜란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학술적으로 적절한 용어가 아니다.
■ 학술적 견지에서 임진전쟁이라 바꿔 부른다고 해서 일본이 한반도를 침략한 사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 개인적으로는 역사적 실체에 보다 근접해진 표현이라 생각해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본다.
■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보수단체 등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상할 수 없다.

이런 주장은 ‘임진왜란’의 명칭 변경이 과연 합당한 것인가 하는 문제점을 자연스럽게 지적하게 된다. 이 같은 명칭 변경은 학계가 ‘동아시아사’ 차원에서 고려한 것으로 시대적 간극과 변화하는 국제관계를 고려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오래 전부터 일본이 ‘임진왜란’이라는 명칭에 대해 강하게 반발을 해왔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전前 도쿄대 강사였던 고무로 나오키小室直樹 같은 일본인들은 이 같은 논리로 ‘왜란’이란 표현에 대해 극력 반발하고 있다.

‘왜란’이라니 이게 대체 웬 말인가? 더욱 중대한 것은 ‘난亂’이란 말이다. ‘난’이란 신하가 군주에 대해 폭력을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한국인이 ‘임진왜란’, ‘정유재란’이라고 부른다면, 이것은 ‘조선 전쟁’을 전쟁으로 보지 않고 일종의 반란으로 보는 것이 된다. 즉 일본을 조선의 신하로 취급하는 것이 된다. 이것은‘조선 정벌’보다 더 심한 말이 아닌가? ‘정벌’이라고 말하면, 어쨌든 국외 전쟁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 볼 때, 한국 측이 ‘왜란’이라는 실례되고 있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 이상, 일본 측이 ‘조선 정벌’이란 말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불공평한 일은 아니지 않는가? 이렇게 논하면, 왜 (한국인이) ‘히데요시의 조선 정벌’이란 말에 그토록 집착하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길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이것을 일례로 하여 한일 간에 장애물이 되고 있는 용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필자가 주장하고 싶은 바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히데요시의 조선 정벌’에서 교과서에 있어서의 ‘침략’문제에 이르기까지, 한국 측으로부터 강한 용어상의 요구가 제기되면 일본인은 곧 당황하고 만다. 그 결과 어떻게 되는가 하면, 매스콤 등에서 사용하는 공식 용어에서는 거의 한국 측의 요구대로 되고 만다. 그러나 일본인끼리 이야기할 경우에는 한국인이 가장 싫어하는 용어를 태연하게 사용한다.15)

우리 학계가 ‘왜란’이란 용어 대신 ‘전쟁’이란 용어를 취하려는 이유와 일정 정도 일치하는 바가 있는 이 같은 주장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크게 오류를 범하고 있다. 우선 그의 주장은 ‘왜란’이라 함은 ‘조선이 일본을 신하로 보는’ 용어로 ‘불공평한 것’이고, 따라서 ‘한일 간에 장애물’이 되며, ‘공식 용어에서 결국 한국 측 요구대로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형평성이 크게 어그러져 일본도 똑같이 ‘일본인끼리는 한국인이 가장 싫어하는 용어를 태연하게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고무로는 ‘왜란’이라는 용어로 인해 일본이 대단히 피해를 보고 있는 피해자인 양 위장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임진왜란을 통해 조선과 조선민중이 겪은 처참한 전란의 피해상은 완전히 생략되어 있다. 또한 그로 인해 왜에 대해 갖고 있는 한국인의 정신적 각인도 배제되어 있다. 고무로의 주장은 마치 원폭 투하로 인해 2차대전의 가장 큰 피해자가 일본이라고 주장하는 일본 극우주의자들의 논리와 다를 바 없다.

역사 이해는 당대성當代性을 전제로 하여야 한다. 근대 이전 동북아 질서에서 조선과 일본은 동북아 유일의 강국[上國]으로써 명明을 인식하는 상황이었고, 조일간, 조여진간 관계는 명明과 조선간 관계와 상당 부분 같은 것이었다. ‘왜란’, ‘호란’이라는 명칭의 배경은 적국의 광포한 살육 만행과 함께 당대의 국제질서에 대한 인식이 작용한다. 만일 이 점을 부정한다면, 일본이 주장하듯 상호 대등성을 주장하는 듯하면서도 속내는 일본의 우위성을 획득하려는 교묘한 일본식 논리의 함정에 빠져들게 된다. 이런 교활하기 그지없는 논조는 일본이 한일관계에서 항시 갈등을 점화시킬 때 써온 술책이라는 점을 알 필요가 있다.

그 예로 일본은 1869년 1월 대마도주를 통해 조선의 동래東萊 부사府使와 예조참판에게 보내는 국가 간 외교문서인 국서國書에서 방자하게 ‘황皇’이나 ‘제帝’, ‘칙勅’이라는 용어를 씀으로써 일본 ‘천황’이 조선 ‘국왕’위에 군림한다는 식으로 양국 관계를 상하관계로 바꾸려고 시도했다. 이는 명백히 침구 목적에서 나온 책동이었다. 조선 정부는 이를 조선 국왕에 대한 일본 국왕의 서열상 우위를 확립하고, 조선의 국가적 위상을 낮춰 보려는 시도로 파악해 단호히 거부하였고, 이는 일본이 당초 목적으로 한 바처럼 재침의 빌미가 된다. 오늘날에조차 일왕을 천황으로 호칭하는 행위가 있을 수 없는 것은 양국간 상호 대등성을 종속 관계로 규정하려 드는 일본 측의 저의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일왕이 천황이 된다면, 일본의 조선침략은 근대 이전의 동아시아 세계관인 천황국이 제후(왕)국을 ‘관리’한다는 명분에 부지불식간 동조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한국 학계의 주장이 고무로와 같은 인식하에 전개되고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명칭 변경에 대한 이들의 주장은 대체로, ‘삼국 전쟁이 동아시아의 판도 변화’를 가져왔고, ‘국제 전쟁의 성격을 표현하지 못하며’ ‘동아시아사에 자국 중심적 용어를 고집할 수는 없고’ ‘조선왕조실록에서 기술한 게 굳어져 온 것’이며, ‘역사적 실체에 보다 근접한 표현이라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데 기인한다. 그래서 ‘학술적 견지에서 임진전쟁이라 바꿔 부른다고 해서 일본이 한반도를 침략한 사실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임진왜란’은 ‘학술용어’로써 ‘적절한 용어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처럼 ‘임진왜란’이 ‘임진전쟁’이 될 수 있는 것이며, 이 같은 전제하에 바꿀 수 있는 것일까? 즉 명칭 변경은 타당한가? 이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한일간 용어는 그 상징적 의미가 명칭 자체에만 있지는 않다. 임진왜란과 이를 둘러싼 모든 한일관계의 역사성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알다시피 전전戰前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침략 협박을 담은 서계書契 전달과 일본 내 전쟁 준비 징후 등 일련의 사건들은 ‘전쟁’을 암시하고 있었다. 더구나 왜사倭使 다이라 시게노부平調信·겐소玄蘇가 서울에 왔을 때, 겐소는 김성일에게 “중국에서 오랫동안 일본을 거절하여 조공을 바치러 가지 못하여… 전쟁을 일으키고자 한다”며 “조선에서 먼저 임금에게 알려 조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달라는 패려悖戾한 언사를 늘어 놓는다.16) 이는 전란이 시간만 남겨 놓은 불가피한 것이라는 것을 통보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조선 조정은 이를 위협을 가하는 것으로 파악해 예禮로써 위무할 생각이었지, 조선 침략의 직접적인 선전포고로 간주하지는 않았다. 이는 선전포고가 없으면 전쟁이 아니라는 식의 해석을 하려는 게 아니라, 전쟁으로써 국가간 개전이라고 할지라도 임진왜란은 그 본질이 오랜 왜구 침구사가 보여주는 바처럼, 왜(구)에 의한 침략·침구가 그 원형이며,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이다. 만약 ‘임진왜란’이 명칭상 ‘임진전쟁’이 된다면, 일본 개전에 명분을 실어주게 될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즉 명분상 상호 대등한 관계로 전쟁을 치렀다는 의미가 되는데, 여기서 말하는 ‘상호 대등성’이란 우리가 생각하듯 사전적 의미가 아니라 일본의 역사 해석 방식으로 조일 관계에서 항시 ‘일본이 우위’를 지니고 있다는 식의 일인日人들의 인식관을 반영할 수 있다.

한국 학계가 ‘국제 전쟁의 성격’으로써 ‘임진왜란’을 표현하려면 일본도 당시 연호를 따서 부르고 있는 ‘분로쿠文祿·게이초의 역慶長の役’ 대신 ‘(임진)전쟁’으로 불러야 마땅하다. 마찬가지로 중국에서도 ‘만력동정萬曆東征’, ‘임진왜화壬辰倭禍’, ‘만력의 역萬曆之役’이라 칭하지 않고 ‘전쟁’이라고 명기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이 명칭 변경을 하더라도 타국이 쓰고 있는 명칭에 구속력을 갖기란 어렵다. 이는 국제관계가 ‘자국 중심’의 역사적 배경과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는 그것이 일본처럼 침략적이었느냐 조선처럼 평화 지향적이었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역사에서 형평성을 견지하기 위해, 또는 ‘동아시아사’이기 때문에 ‘자국 중심적 용어를 고집할 수는 없다’면 이는 역사의 몰이해에서 나온다. 한국사에서 전개된 가장 첨예한 사건의 명칭을 ‘삼국’, ‘국제’, ‘동아시아사’ 차원에서 타자他者의 눈으로 바라 볼 때, 객관성과 포괄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주장 또한 근거가 미약하다. 물론 앞서 ‘전쟁’ 용어로 변경을 추진하는 이들이 나름 국민의 여론을 의식한 듯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보수단체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상할 수 없는’ 것 따위의 발언과도 상관없다. 객관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그것이 옳다면, ‘전쟁’ 용어를 취하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라는 점이다.

최근 역사 문제에서 이 같은 주장이 나오는 배경은 경영 분야에서 맹위를 떨쳤던 지나친 ‘글로벌화’ 현상이 무분별하게 한국사 역사 전개 방식에 그대로 얹혀진 결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행태는 일견 대단히 포괄적으로 임진왜란을 보는 듯하나 실은 그렇지 않다. “‘임진전쟁’이라 바꿔 부른다고 해서 일본이 한반도를 침략한 사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듯, “‘임진왜란’이라 부른다고 해서 ‘삼국 전쟁으로 동아시아 판도 변화’를 가져온 ‘국제 전쟁의 성격을 표현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이는 오히려 일본이 원하는 바를 ‘자가自家 희석’하는 것으로 일본 주장에 동조화 되는 결과를 가져올 위험이 크다. 대체 ‘임진전쟁’이란 명칭이 ‘임진왜란’보다 ‘역사적 실체에 보다 근접한 표현’이라는 주장은 어디서 나오는가?
당대 피비린내 나는 전란을 직접 겪은 선조들이 지칭해 온 명칭에 무슨 하자라도 있다는 것인가? 1592년에서 1598년까지 직접적으로 전란을 겪은 선조들보다 ‘왜란’의 성격을 더 잘 규명할 수 있는 ‘역사적 실체’는 없다. 이를 부정한다면 전란을 겪은 실질 주체를 도외시한 채 상대방이나 타국 내지 후세의 관점에서나 전란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이다.

더구나 우리 역사 기록의 정사正史인 ‘조선왕조실록’에서 기술한 게 굳어져 온 명칭이어서 무슨 오류라도 있다는 것이 아니라면 이 같은 근거는 매우 취약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뒤에서 다시 다루겠지만, 임진왜란의 성격 규정에 대해 왜倭가 쳐들어 온 날인 1592년(선조 25년) 4월 13일자 《선조실록》 기사는 그 첫머리를 이렇게 적시摘示하고 있다.

왜구倭寇가 침범해 왔다.17)

이보다 더 명확하게 ‘임진왜란’의 정의를 드러내 주는 말은 없다. 이는 당 시대 사람들이 끊임없는 왜구 침구의 연장선상에서 이 전란을 바라봤다는 것을 뚜렷이 드러내 준다.
용어 변경을 추진하는 이들이 주장하듯 ‘임진왜란’이란 명칭이 ‘학술용어’로 ‘부적절’하며, ‘적절한 용어도 아니’라는 주장은 올바른 역사 인식이 아니다. 첨언하자면, ‘임진왜란’은 ‘학술용어’가 아니다. ‘역사적 사건’을 지칭하는 말이다. ‘역사적 사건’이 ‘학술용어’로 국한되어 사용된다면 역사는 현재를 설명하는 생생한 교훈이 되지 못하고 그저 역사의 본령에서 떨어져 나간 박편薄片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선조들의 피비린내 나는 국란극복사의 교훈은 의미를 갖지 못하거나 저감될 우려마저 있다. 이 같은 점에서 ‘임진왜란’은 ‘임진전쟁’이 아닌 것이며, ‘병자호란’·‘정묘호란’의 명칭도 마찬가지이다.

2011년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이 문제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것은 용어 변경을 시도하는 2종의 교과서가 이미 “국사편찬위원회와 동북아역사재단의 교과서 검정에서 합격 판정을 받았다”18)는 점이다. ‘합격’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이들 조직의 역사 인식은 대체 어디에 기인하는 것일까? 이 점은 대단히 의아스럽기만 하다. 나아가 이와 관련 없을 것이라 믿고 싶지만, 다음의 두 사건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것은 막을 수 없다.

우선 2011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역사교과서 왜곡 현상이 놀랍게도 일본의 ‘식민지 근대화론’ 주장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현대사학회’가 교육과학기술부에 보낸 <역사교육과정 개정안에 대한 건의안>을 보면, “근대사에서 일제 강점기를 ‘경제성장’이라는 이름으로 미화하고, 임시정부를 뿌리로 삼은 대한민국의 국가 정통성을 부정하고 있음”19)을 알 수 있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식민지배는 식민지가 근대화할 수 있는 발판”이라는 일본 식민사관과 맞닿아 있어 그동안 꾸준히 비판을 받아 왔다.20)

이 같은 주장은 1948년 전前 경성제국대학 교수로 ‘대륙병참기지론’이나 ‘북선北鮮 루트론’을 제창한 조선론의 권위자 스즈키 다케오鈴木武雄의 주장과도 맞닿아 있다. 이 자는 다음과 같은 망언을 내뱉은 바 있다.

조선경제가 그토록 처참한 상태에서 병합 후 불과 30여년 사이에 지금과 같은 일대 발전을 이룬 것은 분명 일본이 지도한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21)

이어 1965년 1월 7일 제7차 한일회담시 일본 측 수석대표로 참여한 다카쓰기 신이치高衫晋一의 망언도 같은 맥락하에 있다.

조선의 산에는 나무가 한 그루도 없다고 한다. 이것은 조선이 일본에서 떨어져 나갔기 때문이다. 우리의 노력은 패전으로 좌절됐지만 아마 20년쯤 더 일본과 붙어 있었다면 그렇게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22)

언론에 의하면,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주로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한 여당 정치권, ‘뉴라이트’ 간판 아래 모인 각종 극우 정치·시민단체들, 그리고 낙성대사단·교과서포럼 등이 주도하는 극우역사학계 등”으로 알려진다.23) “이는 일본 극우파들의 역사관이자 극우 정치인들이 ‘망언’ 때마다 단골로 사용해온 레파토리 가운데 하나”24)라는 점에서 더욱 우려되는 부분이다.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이런 ‘식민지 근대화론’과 같은 국가 정통성을 부정하는 역사 인식이 전개될 수 있는 것일까? 이런 논조라면 일제에 맞서 싸운 독립투쟁이나, 해방은 참의미를 잃고 만다. 실로 참담한 현실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
졸저 <남왜공정>의 일부를 인용한 것이나, 이에 대해 일부 역사 학계는 명칭 변경에 대한 뚜렷한 근거를 내놓아야 할 것이다. 나아가 낙성대사단·교과서포럼은 ‘식민지 근대화론’의 구체적 증좌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역사 인식이 크게 본질이 호도되어 가는 작금의 상황은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한 대응뿐만 아니라, 내부적 차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왜곡'을 바로잡아야만 하는 필요성과  절박함을 급박하게 요구하고 있다. 끝으로 이 논쟁에 인용하고픈 한 구절이 있다. 미국 법정 증인 선서문의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진실을 말하되 전체 진실을 말할 것."

부분적 사실이 아닌 전체 진실을 근거로 역사에 접근하기를 바란다. 학계의 대응 논리를 기다린다.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









먹을 갈아 붓을 적신다.

핏물을 머금은 붓은 당대의 부끄러움을 일(一)쪽 죽편(竹片)에 아로새긴다.




이를 어찌할 것인가!


1800년 정조대왕의 갑작스럽고, 의문스런 죽음은 우리 역사에서 가능한 한 삶을 죽음으로 환치시키는 일대 사건이었다. 정조 독살설의 의구심은 그 진위를 가리기 전에 세종시대 이후 민족사의 일대 개혁과 개방 정신을 후퇴시키고, 다시 보수와 사대를 뿌리 깊게 내리게 하는 사건이었다. 그로써 훗날 한일간의 격차는 되돌릴 수 없는 것이 되고, 민족사의 어둠은 길게 드리워진다.


정조가 독살 당했을 것으로 믿는 남인 측의 확증은 당시 남인계 인사였던 다산 정약용의 <솔피 노래(海狼行)>에 우의적으로 드러난다. 경상도 장기로 유배를 갔을 때 다산이 지은 시에는 물고기의 왕 고래가 솔피 무리의 공격에 비참한 죽음을 당하는 장면을 우회와 시사로 드러내며, 눈에 생생히 그 한탄스러움을 드러내 주고 있다.  



          솔피 노래(海狼行) 

 

    솔피란 놈, 이리 몸통에 수달 가죽

    가는 곳마다 열 마리 백 마리 무리지어 다니는데

    물속 날쌔기가 나는 듯 빠르기에

    갑자기 덮쳐오면 고기들 알지 못해. 

 

    큰 고래 한입에 천석 고기 삼키니

    한번 지나가면 고기 자취 하나 없어

    솔피 먹이 없어지자 큰 고래 원망하여

    큰 고래 죽이려고 온갖 꾀를 짜내었네. 

 

    한 떼는 고래 머리 들이대고

    한 떼는 고래 뒤를 에워싸고

    한 떼는 고래 왼편 노리고

    한 떼는 고래 오른편 공격하고

    한 떼는 물에 잠겨 고래 배를 올려치고

    한 떼는 뛰어올라 고래 등을 올라탔네. 

 

    상하 사방 일제히 고함지르며

    살가죽 찢고 깨물고 얼마나 잔혹한가. 

 

    고래 우뢰처럼 울부짖으며 물을 내뿜어

    바다 물결 들끓고 푸른 하늘 무지개 일더니

    무지개 사라지고 파도 차츰 가라앉아

    아아! 슬프도다 고래 죽고 말았구나. 

 

    혼자서는 무리의 힘 당해낼 수 없어라

    약삭빠른 조무래기 드디어 큰 짐 해치웠네. 

 

    너희들 피투성이 싸움 어찌 여기까지 이르렀나

    본뜻은 기껏해야 먹이싸움 아니더냐. 

 

    큰 바다 끝없이 넓기만 하여

    지느러미 날리고 꼬리 흔들며

    서로 좋게 살 수 있으련만

    너희들은 어찌 그리 못하느냐.



피투성이 싸움에서 고래의 죽음은 다산에겐 정조를 사정없이 물어뜯던 노론 벽파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리라. 미완의 개혁의 종착점이 고래의 죽음으로 상징된 것이다.


오늘 불현듯, 다산의 글을 접하며, 민족사의 어느 파고를 지금 우리는 헤쳐나 가고 있는 것인지 묻게 된다. 역사는 반복되는가, 역사에서 정의로움은 패배당하고 마는가? 진실이 승리하는 역사를 어떻게 일으켜 세울 것인가? 숱한 상념이 고개 수그릴 줄 모른다.


뿌리 깊은 사대와 작은 기득권의 끊임없는 강화가 민족사를 어지럽히는 것이라면, 지금의 이 처연한 슬픔은 넘어서야 하리. 그것이 죽음을 삶으로 되돌릴 수 있는 것이기에.


왜 민중의 기세는 늘 꺾이고 마는가? 왜 백성들은 이다지도 무심하고, 늘 뒤늦은 후회를 하는가?


북으로는 함경북도에서 아래로는 제주 마라도에 이르기까지 어느 도, 군에서나 발견되는  아기장수 설화는 이럴 때 문득 떠올려진다. 영웅을 죽인 공범 의식을 우리는 어떻게 떨쳐내고, 부끄러움을 씻어낼 수 있을 것인가?


설화의 내용은 대체로 이러하다.


어느 날 시골 농사군 집안에 아기가 태어난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부터 마을 앞의 험준한 산악 맨 꼭대기에는 어디서 나타났는지 용마(龍馬)가 준령을 넘나들며 울부짖는다. 자신이 태울 주인인 장수의 탄생을 기다리며 용마는 마을이 떠나가도록 울부짖는다.


농사군의 집안에는 사내아이가 태어나자 온 집안이 기쁨에 젖는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아이의 비범한 힘과 슬기와 능력에 집안의 모든 어른들은 근심과 걱정으로 시름에 사로잡힌다.


농사일을 갔다가 오면 아이는 대들보를 뒤흔들기도 하고, 천정에 거꾸로 매달려 까르륵 웃기도 하며, 천리 만물에 대한 식견을 갖는 등 범인(凡人) 부모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능력을 보여준다. 상민의 집안에 비범한 인물이 생기는 것은 절대 신분사회에서는 삼족멸화(三族滅禍)의 대우(大憂)였다.


그러기에 집안 제족들은 마침내 아기장수를 멧돌이나, 볏섬으로 눌러 죽임으로서 화근을 없애 버린다. 용마는 슬피 울며 어디론가 사라지거나 죽어, 이 땅 한반도 도처에는 그에 해당하는 용(龍)자나 마(馬)자가 들어가는 지명이 생겨나며, 이 슬픈 전설을 후세에 전한다.


아기장수는 피박 받는 계급에서 그들을 구하려고 태어나지만 자신의 피붙이인 집안의 제족들에 의해 죽임을 당함으로서 민중의 자식이 민중에 의해 제거되는 아이러니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어떤가? 민주주의가 압살되는 형국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직접 세력, 그의 예견된 죽음을 통한 항거와 그다운 명백함의 의사표현을 구경거리 삼아온 우리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지 않은가.


해서 나는 그이의 유서 한 대목을 다시 살펴보고자 한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주변에 미안해하고, 삶과 죽음이 ‘한 조각’이라는 망자(亡者)의 처연함 뒤엔 문득, 광주 망월동을 외로이 지키는 무수한 혼령들의 그 작은 빗돌처럼 그의 ‘오래된 생각’이 내비친다. 그 생각이란 다름 아닌 민주주의이다.


그대들이 얻은 민주주의는 가장 헌법 정신에 기초한 것이며, 대한민국의 존립 원칙이다.


그 소중한 가치를 이렇듯 쉽사리 조롱의 대상으로, 지켜주지 못한 대상으로 만들어 버린 우리는 ‘솔피 무리’나 아기장수를 죽인 집안사람들과 무에 다르랴.


수십년간 흘린 피로 민주주의를 얻고, 이렇듯 어처구니없이 손쉽게 민주주의를 내던지는 우리는 그리하여 오늘 김수영의 시를 한 손에 쥐게 된다.


시인은 노래한다. 노래는 죽음 아닌, 삶으로의 길을 밝힌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 김수영, '푸른 하늘을'



그렇다. 우리는 혁명의 고독함을 물리치고, 잦은 말거리와 번들거리는 희죽거림으로 민주주의의 가치, 대한민국의 존재 근거를 조롱해 왔다.


지난 촛불집회 때, 대중들 사이에 퍼진 ‘헌법 제1조’ 정신은 그저 노래 부르기 위해 지어진 것이 아닐터다. 그것은 헌법정신이 이 민족이 삶으로 향하는 길이며, 진정 사람다운 세상을 이루고, 이를 지켜 나가는 유일한 길임을 극명하게 보여 주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죽었다. 그이의 죽음은 선홍색 항거의 자결이다.

그러나 그의 고독을 아는 자들이라면, 이제라도 노고지리가 되어 피 터져라 민주주의를 외쳐야 한다.


가볍고, 현란하며, 노회하고, 야비하고, 졸렬하며, 작은 권력으로 백성위에 군림하려는 자들과 주판알 튕기듯 이해득실의 수읽기에 바쁜 이 나라 정치인들에게 민족사의 바른 길을 제시해야만 한다. 정신의 혼탁함을 걷어내야 한다.


화합과 통합이란, 군동 내 나는 썩은 환부를 도려내며 시작되는 것이다. 여기엔 피를 토하는 울부짖음이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를 갉아먹는 솔피의 무리를 내쫓아야 하며, 용마가 민주주의를 태우고 하늘로 치솟을 수 있게 하여야 하며, 피토하듯 노고지리처럼 자유와 민주주의를 외쳐야 한다.


그의 ‘오랜 생각’은 의뭉스럽기만 한 현 국면을 깨뜨릴 새벽녘 부엉이 울음에 다름 아니다. 민주주의 회복의 메신저이자, 진실된 통합의 메시지 아닌가.


해서 그대들은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이 시간, 어떤 ‘오랜 생각’을 해왔는가.


가슴 벅찬 민주주의를 시대의 역사에 쓰고, 사람들의 신명난 삶에 쏟아 부어야 한다. 


민주주의 이름으로 국민 각자는 분별력을 드러내야만 한다. 만세 만만세의 뜨거운 삶의 목적은 오로지 민주주의 일터, 그 소중한 가치를 잃어버린다면 우리는 인간이 아닌, 노예의 삶을 살터이니. 그럴 땐 한 조각 역사에 부끄러움만 남기게 될 터이니.



인문경영연구소장ㆍ작가 전경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