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생활을 시작하기 전, 여러분은 ‘사회’에 대해 나름대로 많은 상상을 하였을 것입니다. ‘나’의 꿈을 실현하는 곳, 치열한 경쟁이 도사리고 있는 곳, 돈을 벌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집을 장만하며 행복한 인생을 꾸미기 위해 매일 매일 출근해서 일하는 곳, 사회적 성공과 장래에 CEO로서 멋진 삶을 펼쳐 나갈 수 있는 곳 등등. 청운의 푸른 꿈을 간직한 채 다부지고 당당한 마음가짐을 가질 것입니다. 게다가 굳은 맹세와 의지는 금석처럼 단단했을 겁니다. 여러분이 가진 꿈은 젊기에 세상 어느 것보다 아름답습니다. 반드시 그 꿈을 실현하십시요. 너무 늦으면 꿈은 꿈으로 끝나 버리고 맙니다.
치열함을 갖고 도전하더라도 우리는 직장생활, 사회생활에서 모든 성취를 이뤄내는 것만은 아닙니다. 인생이 장기전이다 보니 원칙으로 오랫동안 견지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제가 지금 얘기하는 것은 ‘아주 오랫동안’의 기간입니다. 세 가지 보루가 되는 원칙을 꽉 움켜쥐고 절대로 놓치지 마십시요. 그 중 어느 하나라도 버리면 우리의 삶은 절름발이가 됩니다. 그 중 세 개가 하나가 되는 것, 그것이 바로 균형미입니다. 가정, 직장, 사회를 세 축으로 하는 트라이앵글이 우리 삶에서 균형과 조화의 미를 이루어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은 삼각형을 보고 있습니다. 이 삼각형의 각각의 각도가 여러분이 더 많은 관심과 시간을 쏟고 있는 분야입니다. 앞으로 어떤 모양으로 이 삼각형을 만들어 나갈까요? 가정에 더 큰 비중을 둘까요? 아니면 직장에? 따라서 퇴근 없이 일만 하는 직장인이 되는 게 좋을까요? 아니면 봉사활동 등 사회 문제에 더 많은 관심과 시간을 할애할까요? 우리가 지켜야 할 균형미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이 문제는 매우 중요합니다. 직장생활의 첫 걸음부터 이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복잡한 경제 시스템과 사회구조 속에서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들의 삶은 점차 균형감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개인의 삶은 사회적 혼동 속에서 방향을 잃고, 변화의 속도는 개인은 물론 이 사회의 가치마저 뒤흔들어 놓고 있습니다. 건전한 삶은 뿌리내리지 못하고 개별적인 것으로 부유(浮游)하며, 가정, 직장, 사회에서의 3균형은 여러 면에서 심각한 불균형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일과 생활도 분리되어 겉도는 느낌입니다. 이로 인해 사회적 문제도 적잖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가정의 해체가 가져온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사회적 도덕 불감증, 책임감 결여는 이 사회를 구성하는 가치의 밑바닥마저 뿌리 채 흔들어 놓고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가정, 직장, 사회의 3가지 축은 상호 관련을 맺으며 활력과 생명력을 북돋워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모든 게 개별적이며, 심지어는 서로의 발전을 저해하는 결과까지 야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경험해 보지 못했을 수 있지만, 이런 현상엔 특히 지난 10년간의 역사적 경험이 놓여 있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중산층의 붕괴와 한국사회의 혼탁은 불안정성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가정, 직장, 사회에 필요한 건강한 리더십이 밀도 있게 요구되고 있는 이유죠. 보다 성숙한 직장과 세상 만들기는 정말 어렵기만 한 것일까요?
저는 사회적으로는 우리가 서로의 상처를 더듬는 작업을 해 온 적이 있는지 묻게 됩니다. 상처는 곪은 채 그대로 아물었습니다. 그것이 늘 근지럽고 쑤시는 거죠. 우리 사회는 급격한 성장과 변화 이후, 특히 외환위기 위기 이후에 정신적 상처를 크게 입었습니다. 그러나 한 번도 이를 전면에 꺼내놓고 치유하려는 공통된 노력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빨리 빨리 처리하다보니 정작 곳곳에 남은 상처를 돌아 볼 기회가 없었던 셈이죠. 우리가 외면한 동안 이 상처는 더 커졌습니다. 치유할 시간을 놓쳐 버린 것이죠. 트라이앵글이 무너진 여러분이 만나는 선배들, 상사들의 모습이 바로 여기에 기인합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많은 선배 직장인들은 사회인으로, 가장으로 균형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해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 중에도 상처는 그 자체의 치유력으로 많은 면에서 강한 회복력을 드러냈습니다. 놀라운 자정 능력, 자가 반추의 결과인 셈이죠. 지난 10년을 돌이켜 보면 이 사회가 원하는 건 뭐 거창한 것이 아닌, 작은 사회적 관심과 공감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지금부터라도 우리를 둘러싼 가정, 직장, 사회가 보다 조화롭게 3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 세 요소야말로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트라이 앵글이기 때문입니다.
알다시피 트라이앵글을 삼각형으로 만드는 이유는 치는 순간 서로 보강이 일어나서 음이 멀리 퍼져나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삼각의 모양이 음의 힘을 집중시켜 멀리 나아갈 수 있도록 한 것이죠. 우리가 사는 3개의 축이 균형을 이루며 보다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런 조화로운 삶이 시대의 요청이고, 직장에서도 높은 차원의 가치를 만들어 내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이제 우리는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변화의 시기에 여러분은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의 질을 고양시키기 위해 각각의 트라이앵글이 지닌 역할을 살펴볼까요?
우선, 가정은 그 자체로 안전하며 반듯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이러해야 되는 겁니다. 가정은 최초의 가치가 발원해 기업과 사회를 살찌우는 역할을 수행해 내는 매우 중요한 곳입니다. 나아가 원초적인 건강한 에너지를 이끌어 내는 곳이죠. 속도가 빨라질수록 가정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 집니다. 제일 중요한 이 가치를 잘 살리세요. 성공적인 직장생활의 제 1번째 원칙입니다.
두번째로는, 기업은 사회적 공기(公器)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는 점을 항시 기억해 두십시요. 경제활동의 본질이 개인이 부의 증진과 더불어 사회적 부를 향상시키는데 목적이 있다는 점을 주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상적으로 직장에서의 성취도나 업무 몰입도는 이 같은 환경에 영향을 받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커뮤니티, 즉 우리가 속한 사회가 건전성의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공익을 드높여야 할 것입니다. 사회인이라면 당연히 사회적 책임감을 같이 짊어져야만 합니다. 이 점에서 각각의 커뮤니티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 집니다. 우리가 지켜내야 할 중요한 가치는 바로 우리 동네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펜로즈의 삼각형처럼 서로의 착시에 의해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균형잡힌삼각형이 만들어 내는 가치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사회적 노력이 뒤따른다면, 이런 가치들이 쌓여 결국엔 삶의 질, 기업과 사회의 품질을 개선하고 각자의 삶에서 보람있는 인생목표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게 해 줄 겁니다. 다른 시대를 열어가는 다른 마인드를 가지는 것은 그래서 선배들의 시대와 다른 가치를 창조해 낼 것입니다.
3균형을 유지하지 못할 때 우리의 삶은 벼랑 끝에 서게 되며, 삶은 위태로워 집니다. 우리를 둘러싼 이 세 개의 축은 가끔씩 조율해 주지 않으면, 피아노 줄처럼 늘어지며 형편없는 불협화음을 내기 십상입니다. 이 웅대한 목표의 시작은 가장 작은 단위인 개인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향기는 가정과, 직장, 그리고 그가 소속된 커뮤니티의 품격을 높입니다. 3균형을 통해 우리가 보다 확장된 삶의 진전을 꾀해야 할 이유인 것이죠. 시대정신, 가치를 반영하는 직장이이 되십시요. 리더는 이런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을 반추하는 직장인이 되고, 이 사회에서 큰 쓰임새로 불리도록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십시요.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뭔가 잘못된 것이겠죠. 우리가 하는 작업은 서로가 희망을 찾는 지난한 작업이나, 가장 보람찬 일이라는 점을 알게 될 것입니다. 동의하십니까?
ⓒ 전경일, <20대를 위한 세상공부>
'직장경영'에 해당되는 글 82건
- 2010/12/20 트라이앵글의 균형미를 원칙으로 삼고 이를 지키며 살라
- 2010/08/27 배ㆍ겸ㆍ용은 평생 갈고 닦을 직장생활 최대의 미덕이다
- 2010/08/27 영리하게 실패하라
- 2010/08/27 자신을 좀 더 투명하게 보아라
- 2010/03/18 직장생활은 자기 수양과정
- 2010/03/18 궁둥이가 무거운 직원들
- 2010/03/10 문제 불변의 법칙은 회사에서 접하는 가장 보편적인 원리이다
- 2010/03/08 거대한 비구름이 네 앞에 몰려오는 것을 미리 보라
- 2010/02/10 총열 많은 총이 총알을 멀리 보낸다
- 2010/02/03 상사ㆍ동료들과의 대화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자신만의 원칙이 있다
바다거북은 두꺼운 등껍질을 지고 다닙니다. 물속에서라면 그나마 안전하고 오히려 유영하기에 편리할 수 있지만, 육지에 올라와서는 거추장스럽기만 하고 동작을 더디게 만듭니다. 그런데도 벗어 던지지 못하는 것을 보면 답답함만 줍니다. 하지만 역지사지 해보면, 거북인들 이왕이면 요즘식대로 착탈식(?) 껍질을 지니고 싶지 않을까요? 그런데도 진화의 과정이 현재 여기에 머무는 것을 보면 아직까지는 충분히 ‘이유 있다.’고 생각합니다. 불편함을 감수하더라고 그 효익이 훨씬 크기 때문에 무겁게 이고 다니는 것이겠죠. 몸을 보호하는 것보다 더 큰 우선순위는 없기에 이런 불편을 감내해 내는 것일 겁니다. 그 만큼 생존의 문제는 큽니다. 클 뿐만 아니라, 절대적입니다.
바다거북처럼 사람도 누구나 평생 자기 짐을 짊어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궁극적인 생존과 번영을 위해 지고 가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죽는 순간까지 한시도 내려놓을 수 없습니다. 불경에는 구도의 길을 찾는 불자와 뗏목이야기가 나옵니다. 강을 건너기 위해 필요했던 뗏목을 강을 건너고 나서도 힘겹게 짊어지고 가는 중생의 어리석음을 꾸짖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불필요하고, 무지한 뗏목을 매일 져 나르는지요? 회사와 집을 오가며, 오늘은 정말 의미 있는 뗏목으로 강을 건너고, 그런 다음 강가에 그것을 남겨두는지요? 퇴근할 때면 이런 생각도 해볼만 합니다.
버려야 할 뗏목이 있다면, 결코 버릴 수 없는 영토가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배려, 겸손, 용기와 같은 가치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생 짊어지고 가야할 행복한 짐이 이것입니다. 성숙하고 훌륭한 사회인으로 살기위해서는 수많은 조건들, 스킬, 툴, 역량이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인성으로 다져진 바른 태도는 성공적인 직장생활은 물론, 인생을 훌륭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나는 많은 선배, 상사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여러분 눈에 비춰질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 나름의 모습일수도 있고, 여러분이 바라보는 시각에 의해 결정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살건, 여러분이 사회생활에서 지켜야할 덕목이 있다면, 그것은 이 같은 덕목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하다고요? 이 단순한 것을 지키지 못해 많은 사람들이 좌절하고 맙니다. 허망하게 무너진 산을 여러분은 앞으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더 많이 보게 될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진정으로 보고자 하는 의지, 굳굳하게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그것은 더 잘 보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청년기를 지났기에 지금쯤은 신체적 성장을 멈추었을 것입니다. 이제는 지속적인 지적성장이 중요하며, 지적성장 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 됨됨이의 성장입니다. 노력 여하에 따라서 계속 자랄 수 있는 얼마 안되는 영역이 바로 사람됨의 영역입니다. 사람 됨됨이가 어떠냐에 따라 그 사람에게 성공이 찾아올지, 짧은 순간 왔다가 사라지는 찰나적인 것이 될지, 사회에서 은퇴하고 죽는 순간까지 존경 받으며 살게 될지, 그 반대가 될지 결정됩니다. 배ㆍ겸ㆍ용은 인류가 오랜 시간 사람을 관찰하면서 걸러낸 인간학의 정수입니다. 이것을 늘 간직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폭과 깊이에서 남다른 경지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작은 성공엔 큰소리가 납니다. 요란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사회생활에서 가장 크게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이 이루지 못한 저 넓은 경영의 지평을 바라보며 겸손을 배우고, 그것을 향한 도전에 용기를 내고, 함께 갈 사람들에 대해 배려를 합니다. 가짜와 진짜가 구분되는 순간은 시끄러울 때 알게 됩니다. 마냥 좋을 때가 아닙니다. 위기 때 빛을 발하는 등대가 효능을 다 하는 것입니다. 이런 직장인이 된다면, 인생에서 결코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지는 않게 될 것입니다.
사람은 직책이 높아질수록,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 더 빛을 발하는 운이 가장 좋은 거라는 말을 종종 듣곤합니다. 올라갈수록 초췌해지고, 걍퍅해 지고, 쫓기기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반대로 후덕해지고, 인간미가 두드러지며, 인간적으로 훈훈해지는 포옹력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 것이 좋은지는 누구나 다 잘 알 것입니다. 좋은 것을 선택하고, 그것을 좆는 인생은 아름답습니다. 너무 높은 곳에 올라갔을 때, 바로잡을 수 없는 지난 시절, 지난 일들이 여러분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유념하며 살아가십시요. 그런 후회를 하지 않는 슬기를 지금부터 가질 수만 있다면, 여러분은 누구보다도 훌륭한 직장과 사회의 리더가 될 것입니다. 사람됨을 찾아 직장에서든, 사회생활에서든 갈고 닦읍시다. 자신이 쌓은 것들이 훗날 나를 이룹니다.
ⓒ전경일 인문경영연구소장
상담을 하다 보면 모든 실패를 ‘마지막’과 동의어로 몰고 가는 사람이 있다. 이 얘긴 달리 표현하면 그 사람은 앞으로 더 많은 실패를 할 수도, 실패를 종식시킬 수도 있다는 얘기와 같다. 어쨌든 ‘마지막’을 향해 치닫고 있으니까, 종국은 보이는 것 아닌가?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언젠가는 변하게 되어 있다. 당신이 주체적으로 상황을 타개해 나가려 노력하지 않아도 말이다. 그러나 그럴 때의 변화란 변화에 휩쓸리는 피동적 존재가 되는 것 밖에 없다. 시간도 문제다. 죽은 다음에 변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죽은 다음엔 이미 모든 게 변하게 되어 있는데. 성공이나 실패의 시차는 그래서 중요하다.
실패의 두 가지 종류를 아는가?
모든 실패의 가장 위험한 단계는 그것이 회복 시차와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휴스턴 대학의 잭 맷슨은 이를 가리켜 “느리고 우둔한 실패”와 “총명하고 빠른 실패”로 구분하고 있다. “느리고 우둔한 실패”의 위험성에 대해 그는 “그 과정이 너무 긴 시간을 요하기 때문에 당사자가 기진맥진해서 자포자기 상태가 되는 것”에 위험 요소가 있다고 말한다. 반면, “총명하고 빠른 실패”는 한꺼번에 실천에 옮기고 다음에 실천할 일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는 가능한 한 짧은 시간 내 성패가 판가름 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실패든 성공이든 말이다.
이와 관련되어 내가 아는 어느 중소기업 사장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김 인출 사장은 소규모 회사를 경영하며 매월 지출되는 경상경비 조차도 감당하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그때 인수하고자 하는 기업이 나타났다. 그러나 그는 적당한 선에서 합의를 보기 보다는 무리한 배팅을 시작했다. 더 먹고 싶었다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자, 상대사는 그 회사의 속사정을 훤히 꿰뚫어 보게 되었다. 마침내 터무니없는 욕심 때문에 얼마 후 그는 회사를 매각할 기회마저 놓쳐 버리고, 정리해야만 했다. '떨이'도 못한 채 야채와 생선을 다 썩혀 버렸던 것이다.
그런 그가 한 말이 인상적이다. "그렇게 넘기려면 그냥 접어 버리지, 뭐." 지금 그는 파산한 배에서 짐짝 하나도 건지지 못한 채, 다시 월급쟁이로 돌아가, 조금씩 '판 돈'을 다시 모으고 있다.
실패에서 배운 자를 믿어라
나는 김 사장이 재기에 성공하리라 믿는다. 그는 실패에서 제대로 배웠다. 결과적으로 ‘우둔한 실패’를 했지만, 그는 ‘영리해 졌다.’ 내가 그의 재기를 장담할 수 있는 것도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영리하게 실패하기 위해서는 그 모든 것을 잃는 가운데에서도 최소한 시간만은 잡아야 한다. 최소한 자기가 상황을 알고 판단할 시간 감각만 있다면 바로 그런 상태는 당신이 마음의 평정을 유지한 채 상황을 보고 있다는 얘기고, 그만큼 훈련되어 있다는 얘기다.
실패를 ‘우둔하게’만드는 데는 손 쓸 시간조차 없는 상황이 더 큰 실패에 크게 한몫하기 때문이다. 시간의 틈바구니에 끼어 있으면 어떤 판단도 흐려지지 않을 수 없다. 초읽기에 밀리면서도 마음의 중심을 잡고 대국을 바로 볼 수 있는 기사(棋士)라면 쉽게 패배하지도 않을 테니까. 그는 ‘선수(先手)’를 놓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강우동 사장의 경우도 나는 반드시 인생 역전 케이스에 포함될 것으로 믿는다. 강 사장은 퇴직 후 옷가게를 경영했다. 그러나 채 1년이 못가 거래처의 농간과 브랜드 선정의 실수로 그는 막대한 손실을 입고, 가게 문을 닫아야 했다.
성공한 사람의 철칙에서 배워라
그러나 그에게 남은 재산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해외 브랜드를 관리하는 업체 직원을 통해 국내 진출 희망 업체 리스트를 구한 것이었다.
최근에 이 메일로 업체 아시아 담당 이사와 연락을 취했는데, 지역 매니저 역할을 1년만 맡아 할 수 있겠느냐는 거였다. 강 사장의 말에 의하면 1년이면 ‘빠꿈이’가 된다고 한다.
그는 난파한 배에서 아무 것도 건지지 못한 게 아니라, 오히려 큼지막한 자기 커리어를 쌓았다. 또한 ‘실패’를 했어도, 바로 주어진 여건에서 주워 모을 수 있는 가용 자원을 재빠르게 재조합해서 ‘총명한 실패’로 전환시켰다.
영리하게 실패하는 자들에게 기회는 다시 온다. 이건 성공한 사람들이 보여주는 철칙 중에 하나다.
ⓒ전경일 인문경영연구소장
어렸을 때 마을에 엿장수가 나타나면 병을 들고 간 적 있다. 어느 날 나는 기름병을 들고 갔었다. 그 때 엿장수는 내게 단호하게 “기름병은 안돼!”라고 말했다. 기름병은 왜 안 되는 거지?
그 이유를 나는 한참 뒤에야 알았다.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기름 찌꺼기를 분리해 내는 데 별도의 비용과 손질이 필요하고, 그 기름때가 다른 병에도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었다. 그 후 나는 기름병을 들고 엿장수한테 가지 않았다. 그 수염이 덥수룩한 아저씨는 ‘엿장수 마음대로’ “기름병은 안돼!”라고 말하며 거절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부시 맨은 앞을 보는 병을 원한다
그때 내가 들고 간 기름병은 설사 아프리카 초원에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어느 부시 맨도 집어 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 걸로는 앞을 볼 수도 없었을 테니까.
이런 나의 경험은 사소한 것이지만, 나이 들어 내 자신을 바로 보는데 도움이 됐다. 직장을 잡으려고 이력서를 넣으면, 언제나 내가 인식하는 ‘나’와 달리 나의 가치는 형편없이 추락해 있었다.
심지어 나이 들어 좀더 많은 경력을 쌓은 다음에 만나게 되는 헤드헌터들은 “하신 일이 너무 많군요. 그게 흠이 예요.”라며 퇴짜를 놓았다. ‘한 일이 많다?’ 그것도 흠이 될 수 있는가?
그렇다. 세상엔 주어진 영역에서 벗어나는 걸 극히 꺼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 밖의 세계를 경험해 본 사람을 경원시하는 경향도 있다. 그것이 하나의 편견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견디다 못해 취직의 벽을 뛰어넘기 위해 아예 창업을 했다.
그때 남들이 나를 바라봐 준 건 매우 ‘투명한’ 처사였다. 그들이 옳다. 가장 일반적 기준에서는 말이다. 그들에게 그런 객관적 시각이 없었다면, 나는 나를 투명하게 보는데 더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했을 것이다.
인간이 가장 편견에 사로잡혀서 보는 건 단연 ‘자기 자신’이다. 그만큼 자신을 제대로 볼 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내겐 불투명성의 질병이 있다
나이가 들어 기업에 투자를 하면서도 나의 불투명성 질병은 다시 도졌다. 내가 가졌던 치명적인 질병은 게리 벨스키가 말한 <투자할 때 저지르기 쉬운 7가지 실수>에 잘 나타나 있다.
그가 말하는 ‘너무나 인간적인’ 두 가지 성향의 실수는 다음과 같다.
첫째, ‘본전 생각.’ 이는 뭔가에 돈을 치렀을 경우 결과야 어찌되었건 그것을 허비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두 번째는 ‘손실기피증.’ 이는 사람들이 손실에 부여하는 중요성이 이득의 경우보다 대략 두 배 정도는 크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100달러를 벌었을 때 기뻐하는 것보다도 100달러를 잃었을 때 두 배나 더 불행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상상 속에 있는 건 미래만이 아닌 경우가 많다
내가 세상을 살며 얻어낸 것 보다, 나의 상상 속에 있는 ‘과거’가 나의 인생의 시간을 허비하게 만든 경우도 있다. 앞서 사례의 문제들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것은 자신을 투명하게 보지 못한데 기인한다. 실패를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성공을 지나치게 치장하는 행위 모두, 극단적인 판단 착오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게리 벨스키가 말하는 투자할 때 저지르기 쉬운 실수는 본질적으로 자신을 투명하게 보지 못하는데 있다. 불투명성의 색안으로 명암 테스트를 한 것과 다를 바 없다.
투명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것은 단기적으로 불리해 보일 수 있다. 자신을 드러내는 걸 달가워할 사람도 없다. 그러나 당신은 지신의 자원을 점검하기 위해서도 가장 투명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봐야 한다. 투명하게 본다는 얘기는 자신만의 눈이 아닌, 남들의 눈으로도 볼 수 있는 걸 말한다. 남들의 눈보다 스스로 갖고 있는 제3의 눈이 필요하다. 그럴 때 자신에게 보탬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사람들은 보통 이득이 된다고 믿는 거래와 자기 자신에게 실제로 유리한 거래를 혼동한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가치는 결코 ‘객관적’일 수 없다. 과거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분석의 시각도 마찬가지다.
당신이 들고 간 기름병이 퇴짜를 맞지 않도록 하고 싶거나, 당신의 이력서가 ‘왜 이렇게 한 게 많아요?’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는 99%의 투명성을 찾고자 하는 자기 시각 언제나 중요하다.
ⓒ전경일 인문경영연구소장
오래 전, 나의 상사 한분은 직장을 가리켜, “절간이 따로 없네.”라는 말로 정의했었다. 사회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한 얘기일터인데, 그 말이 의미하는 바가 심장(深長)해서 잊지 않고 지금도 간혹 떠올려 보곤 한다. 남들과 갈등이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는 곳이 회사다. 보이든 보이지 않든 경쟁이 만들어낸 결과다. 경쟁은 건전한 발전을 촉진하는 촉매 역할을 하지만, 때로는 그로 인해 불필요한 무효경쟁을 양산해 내기도 하고, 또 인성이 피폐해지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소모적 갈등은 직원들을 일에 몰두하지 못하게 만들고, 서로간의 인격을 좀 먹게 할 수 있다. 인간적이기보다는 무망한 야망에 휩싸이게 하는 게 적극적인 자세로 오인되기도 한다. 또 어떤 경우엔 조금은 야비해 져야 뭔가를 얻을 수 있는 걸로 비쳐지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도 그런가? 실은 그렇지 않다.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 끝까지 가는 경우란 없다. 결국엔 제 마음을 다스려 남을 이끌 힘을 얻을 때, 리더십이 발휘되는 것이다.
정해진 목표를 놓고 남보다 나아지려는 욕망을 가지게 되는 곳이 직장이다. 회사가 가진 자원은 물론이고, 자신이 지닌 자원조차 효율성을 극대화하려는 곳이 직장이다. 아무래도 심적 고충이 따를 수밖에 없다. 이런 갈등을 겪으면서도 때론 절간에 들어선 수도승처럼 심신을 다스려야 하는 곳이 직장이다. 자기 노력 여하에 따라, 사회생활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인격적 수양을 쌓게 될지, 그저 단순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무미건조한 직장인의 삶을 살아갈지 결정된다. 누구에게나 수양의 환경은 주어졌으나, 누구는 그걸 활용하고, 누구는 주말에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것마저도 적잖은 관심과 노력이 들어니 대단한 일이기는 하다.
우리가 먹고 사는 일을 하면서도 스스로를 훈육할 수 있다면, 그만큼 훌륭한 일은 없을 것이다. 남들이 7급수 같은 물에서 허우적거릴 때에도, 어느 곳에서는 자신과 세상을 밝히기 위해 애쓰는 직원들이 있기에 세상은 여전히 살만하고, 직장은 메마르지 않는다. 희망이 보인다.
직장 내 보통 인재들은 인성 면에서 어떨까?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특별히 훈련을 받은 사람은 아니어도 내면의 곧음은 드러난다. 사람에 부댖기며 어느 한 축이 무너진 데가 있어도 살며 가다듬어 온 정서는 표출된다. 세상일은 파도와 같아서 아무리 거친 돌의 표면이라도 매끄러운 조약돌로 빚어내곤 한다. 만일, 보편적 인성을 지닌 사람이라면, 보다 매끄럽게 다듬어져 있을 것이다. 남들보다 뭐 특별하지 않기에 사람들과 어울리며 기울인 심적 훈련은 보통의 사람들을 훌륭한 인격적 존재로 거듭나겠금 만들어 주곤 한다. 직장은 그런 의미에서 결코 우리 삶에 작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삶에 전반적인 구성요소가 된다.
내 상사 한분은 내가 보기에도 풍부하게 완성된 인격을 갖추신 분이었다. 그 분과 종종 얘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내가 훌륭한 인격을 갖춘 걸 보는 것 같아 많은 점에서 배우고 있다고 말하니까, 그 분은 자신에게는 인격이니 하는 말들이 과분한 얘기라며 손사래를 치는 것이었다. 그 분은 당신 스스로 한사코 그 같은 좋은 평가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사양했지만, 주변 사람들의 평은 하나 같이 저절로 고개를 수그리게 되는 분이라고 칭찬이 자자했다.
그 분 말에 의하면, 직장 생활 30년 동안 철없던 나이를 보내고 나서야 주변 사람들이 보였다고 한다. 내가 왜 진작에 이걸 몰랐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 후로 주변의 힘들고 고된 상황을 외면하는 일이 없었다. 후배 사원들의 어려움에 몸소 두 팔을 걷어 부치고 도와준 것은 물론, 상처를 한 동료와는 밤새 포장마차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런 이유로 나이에 걸맞지 않게 주례를 서게 되었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내가 대접 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성경의 말이 딱 맞지. 그러면 누군들 좋아하지 않을 사람 있겠나? 사람은 다 같은 걸, 누구나 자기가 존귀하게 여겨지길 바라지. 나부터도 안그렇겠나? 그렇게 대하면 되는 거네. 직원들에게도, 고객들에게도. 이게 가장 건강한 관계지...”
평소의 과묵함 그대로 상사는 자신이 평생 지켜 온 인생의 가장 중요한 원칙을 피력해 주었다. 그 분은 나와는 부서가 달랐는데, 언제나 공장설비에 대해 가장 꼼꼼하게 챙겼다. 그 분이 맡은 업무에서 사고가 난 경우는 단 한 차례, 십 여년 전, 회사에 악의를 품은 사람들에 의해 일어난 고의적인 방화사건 말고는 없었다. 새벽 4시면 “특별히 아침에 어디 갈 데가 없어서” 회사에 출근한다는 그 분은 출퇴근 시간이 구분 없는 일과를 보냈다. 출근 도장이 필요할리도 없었다.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나 온갖 배고픔을 겪어 본 그 분은 시골 농부처럼 아침에 일찍 일어나 논물보러 나가듯 회사에 나와야 안심이 된다고 했다. 30년 정근상을 받고 퇴직을 하던 날, 그 분은 떨리는 음성으로 단상에 올랐다.
“저는 배운 게 없어, 남들보다 더 부지런히 살고, 이 회사가 내 회사다 하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회사 덕분에 아들 둘과 딸 둘을 다 키워 성가시켰고, 이제는 머리가 허애져 손자들 곁으로 갑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회사가 그리울 것입니다. 다들 보고 싶고, 내 손 때가 묻은 기구들이 보고 싶어질 겁니다. 누구보다 모자란 저였지만, 그런 모자람 때문에 묵묵히 일하다보니 지금 이 자리에 서게 되었네요. 늘 참고, 한 발 양보해 주세요. 직장 생활은 그렇게 하면 성공할 수 있을 겁니다.”
그의 퇴임사가 끝나자, 남아 있는 동료직원들은 전원 기립해 박수를 쳐 주었다. 회사 사랑을 그 분처럼 해야 한다는 것을 다들 느낄 수 있었다. 각자 자기 일터로 돌아가는 직원들의 마음엔 뭔가 흐뭇하고, 정겨우며, 정말 다른 종류의 뭉클한 감동이 일고 있었다. 그것은 상사를 떠나 인생의 선배로부터 듣는 진정한 가르침이었다. 오늘날 기업엔 바로 이 같은 분들이 필요하다. 바쁘게 머리를 굴려도 정작엔 가치를 창조해 내는 것은 다른데 있다. 그것은 자기소임이라는 걸 묵묵히, 돌쇠처럼 하는 것이다. 회사의 인적 재산은 보이지 않지만, 바로 이런 데 있다. 가장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원칙이 회사를 지키는 것이다. ⓒ전경일, <평범한 직원이 회사를 살린다>
“너만 몰랐어?”
회사 내 소식에 누구보다도 빠른 사람이 있다. 입만 빠른 게 아니라, 궁둥이도 가볍다. 그런 까닭에 사방팔방 소식을 전하기 위해 의자에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있을 시간이 없다. 가뜩이나 요즘엔 메신저로 회사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실시간 생중계까지 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누군 어떻고 저떻고, 그래서 등등...
특히 인사이동이나 고과시즌이 되면 이런 얘기에 회사 전화통은 불이 날 정도다. 어느 회사에나 그런 진풍경을 연출해 내는 사람들은 있다는 얘기다. 회사의 그 같은 일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좋지만, 모든지 지나치면 문제다. 특히나 뭔가 잘못된 회사에선 직원들의 정치 참여가 이런 식으로 이루어진다. 루머만 난무한 것이 아니라, 양산되기까지 한다. 쓸데없는 풍문에 귀 기울이지 말고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라고 상사가 독려해도 이런 행태는 쉽게 근절되지 않는다. 심지어는 직원들 간에 누가 어떻게 될 거라는 둥 실생부까지 나돈다. 그야말로 회사 업무가 정상적인 일보다는 풍문에 더 신경 쓰게 된다. 아마도 이는 어느 회사랄 할 것 없이 흔히 나타나는 인사 시즌인 연말연초의 풍경이리라.
이렇게 다들 들떠 있을 때, 이와 정반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명 궁둥이가 무거운 사람들이 그들이다. 사내 소식엔 둔감해도 자기 일이나, 업체에 관한 일, 나아가 시장에 관한 일에 대해서는 빠삭한 직원들이다. 개발자 중에서도 확실하게 자기 분야에 정통한 프로들이 이렇다. 이런 직원은 겉으로 보기에는 정치적이지 못하다. 그런데도 내실 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자기가 경쟁력이 있기 때문에 더욱 정치적 일 수 있다. 보통 직원들 중에는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이런 내실형 인재들이 있기 마련이다. 회사에서 찬밥 대하듯 하면, 결과가 어떻게 될지 미리 알고 있는 눈치다. 벌써 몇 군데에서는 같이 일하자는 스카웃 제의가 와 있다.
물론, 보통 직원들 중에는 꿔다놓은 보리자루 같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직원들도 있다. 이들 대부분은 승진에서 몇 차례 고배를 마셔본 경험도 있다. 그들은 제외지만, 앞서 숨은 인재들은 정말이지 엉덩이가 무겁다. 마찬가지로 입도 무거운 편이다. 다들 정치를 하고 있을 때, 그들은 남과 다르게 행동한다. ‘본연의 일’이 무엇인지 묻지 않아도 잘 안다. 본분을 지킨다는 것, 그것은 대단한 인내와 용기, 그리고 자기 원칙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내 궁둥이는 내 몸무게의 90퍼센트 이상 되지. 궁둥이가 이 정도는 무거워야 개발자 되는 거 아냐?”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보통 직원들은 말 그대로 보통은 아닐 것이다. 그들이 언젠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면 회사는 누구를 붙잡아야 할지 바로 알게 될 것이다. 자기 일에 엉덩이가 무거운 직원을 중용하라. 직장에는 ‘삼중인(三重人)’이 필요한데, 첫째가 입이요, 둘째가 행동이요, 셋째가 엉덩이가 무거운 직원이다. 이 세 가지를 갖춘 직원이라면 필시 그저 평범하기만 한 직원은 아닐게 분명하다. ⓒ전경일, <평범한 직원이 회사를 살린다>
저는 제 자신에 프로근성을 불어 넣기 위해 퇴근 후면 어김없이 책을 붙들고 씨름합니다. 늦깎이인 저는 남보다 여러 면에서 영리하지도 않으니, 모든 일에 걸쳐 오랜 시간 공력을 기울이고자 합니다. 뭐든 한번 시작한 일은 10년은 해보자는 식입니다. 비유컨대, 18세기의 실학자들이 지녔던 벽(癖)과 치(痴)와 비슷하다고 볼 밖에요. 책을 탐독하다가 깨닫게 된 것인데, 물리학에는 ‘멱함수 법칙’이란 것이 있더군요. 이 법칙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큰 사고는 드물지만 정상적이며 그런 사고를 방지하려는 노력은 언제나 실패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즉, 모래더미를 쌓으면 모래알이 흘러내리는 작은 붕괴는 많이 일어나지만, 대규모 붕괴는 드물게 일어나며 어떻게 해도 모든 붕괴는 반드시 일어나게 되어 있다는 원리입니다.
이 같은 원리를 여러분이 다니는 회사에 적용해 보면 어떨까요? 어느 회사나 문제투성이로 비칠 것입니다. 실제로 기업은 문제투성이이며,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문제를 집적해서 만든 집단체로 보입니다. 물론 경제행위를 하는 조직체라고 보아야지요. 예컨대 기업에는 어떤 문제가 있을까요? 고객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곳이 기업이며, 그런 노력의 결과 재화를 얻는 곳이 기업입니다. 그러나 고객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함으로써 더 큰 위험을 짊어지기도 합니다. 그런 곳이 바로 회사 입니다. 내부적으로는 문제해결을 위해 다양한 방법론이나 해법을 제시하지만, 그것이 다른 일에는 문제의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문제 자체를 잡초처럼 뽑아내려고 하지만, 기업이란 토양에는 문제의 씨앗이 파묻혀 있다가 어떤 특정한 계기를 통해 표출되기도 하는 것이죠.
기업에는 왜 이처럼 문제가 많을까요? 바로 ‘사람’ 때문입니다. 신이 아닌 불완전한 사람이 문제를 만들어 내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문제를 생산해 내는 것이죠. 이는 피할 수 없는 현상으로 보입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은 늘 조직혁신이란 걸 단행하고, 구조조정하고, 인사재배치를 하며, 사업부문을 매각 또는 인수하고, 직원 교육에 막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찰싹 달라붙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는 일이 지닌 본질적 요소 때문입니다. 일은 마치 물과 같아서 그 안에 자연스럽게 미생물이 살게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일이 없다면, 100퍼센트 증류수와 같은 조직에는 어떤 미생물도 살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마실 수도 없게 되겠죠.
회사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일-사람-환경-행동의 변화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지며 문제가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기업 문제는 상시적입니다. 컴퓨터 바이러스를 없애기 위해 만든 백신에 달라붙어 바이러스가 더 퍼지거나, 백신 자체가 프로그램간 충돌을 일으키며 바이러스가 되는 피해가 가끔 언론에 보도되는 데 기업도 바로 그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문제 자체로 태어나 생멸을 거듭하는 유기체가 회사인 셈이죠. 문제의 진인을 없애는 게 아니라, 문제 자체를 더 큰 문제, 즉 통제 범위를 벗어난 상태로 발전되지 않도록 도와주는 게 경영자의 몫입니다. 물론 때로는 건전한 문제도 있고, 이런 문제는 기업을 살찌우는 영양소와 같아서 환영할 필요도 생겨납니다.
여러분은 시간상 길고 짧음을 떠나 직장생활을 하며 회사 내 적지 않는 문제를 목도하였을 것입니다. 오늘도 그런 문제는 머리를 지끈지끈하게 아프게 할지도 모릅니다. 그런 문제에 울분을 감추지 못한 적도 있을 거고, 입이 이만큼 나와 푸념을 일삼은 적도 있을 것입니다. 그 결과 문제는 해결되었나요? 오히려 여러분의 인성만 망가지지 않았었나요? 지금 여러분 회사에서 겪고 있는 문제는 다른 회사도 똑 같이 겪고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십시요. 즉, 나만 겪고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인생에서 겪는 다른 다양한 문제들과도 같습니다. 매우 보편적입니다. 아마 요 몇 해 들어 마땅한 성장동력을 찾지 못한 기업들의 문제는 필시 전세계 어느 기업이나 지니고 있는 가장 일반적인 문제일 것입니다. 훌륭한 인재가 회사에 남지 않고 떠나가는 문제, 문제 직원이 있어서 골치 아픈 문제 등도 어느 회사나 지닌 문제일 것입니다. 이처럼 문제덩어리가 회사의 업에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 앞에서 여러분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제 생각에는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의 전환이 필요할듯합니다. 문제의 본질을 선명히 드러내 그에 대한 해결책과 내성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문제가 있다는 것은 오히려 환영할 일입니다. 문제가 없다면 기업도 설 땅이 없을 테니까요.
우리 앞에 닥친 문제는 새로운 방향으로 기업을 생각케 하고, 몰두케 합니다. 그 속에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케 하기도 합니다. 성장 정체의 문제를 심각하게 앓았던 노키아는 제지산업에서 IT산업으로 탈바꿈했고, 종합상사 업종의 한계를 지녔던 삼성물산은 건설부문에서 해법을 찾아 ‘래미안’이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갖게 되었으며, 섬유ㆍ신발 회사들은 밀려오는 저가 중국제, 외산 공략에 맞서 몇몇 성공적인 회사들은 등산화 영역으로 특화되며 생존 했고, 타 성장산업으로 탈바꿈했습니다. 반면 그렇지 못한 회사들은 도산하였습니다. 문제가 해법을 찾게 한 것이지요.
문제의 본질은 여기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그것을 보는 이의 눈, 태도, 심적 상태에 따라 다릅니다. 어떤 문제든 그 자체로 문제가 아니라,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현상에 대한 인식이 문제를 보겠금 만듭니다. 따라서 결국엔 어떻게 인식할 것이냐가 더 중요하다 하겠죠. 많은 기업들이 성장 정체에 곤혹스러워지만, 실제 사업은 성장했는데, 상대적 빈곤감(특히 시장점유율의 하락 같이)으로 인해 정체라고 느끼는 경우가 허다할 것입니다. 물론, 이 경우 시장에서의 지위 하락에 따른 불안심리가 원인일 수 있겠습니다. 심적 상태는 그 자체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굳건한가, 흔들리는가, 단호한가, 우유부단한가 따위의 심적 상태가 문제의 본질일 수 있겠다는 것입니다.
회사 일을 하며 우리는 많은 갈등에 휩싸입니다. 해야 할 것인가, 말아야 할 것인가, 멈춰서야 할 것인가, 더 나아가가야 할 것인가, 이 시장을 도모할 것인가, 포기해야 할 것인가, 정면 돌파를 해야 할 것인가, 우회해야 할 것인가, 따위의 고민은 우리가 늘상 접하는 의사결정상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회사에 불만을 가진 것도 하나의 분명한 문제이며, 무대책으로 만족상태에 빠져 있는 것도 당연한 문제입니다. 장기적 수익원보다는 단기수익을 맞추기에 급급한 빈 카운터(bean counter)들 때문에 갖게 되는 경영상의 우려도 하나의 문제일 것입니다.
문제를 보고, 인식하는 방법이 새로워지지 않으면 문제는 출구를 찾기 어렵습니다. 문제 속에서 문제를 바라보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두었을 때 문제는 문제가 아닌 게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그 일정한 거리가 너무 멀면 인지조차 하지 못하는 정말 큰 문제를 낳을 수도 있겠죠. 문제의 객관화 작업이 필요한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회사에서 접하는 문제는 모양만 달리할 뿐이지 상시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까? 이제는 문제를 뛰어 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기업에는 문제가 항시 도사리고 있으며, 그 총량은 똑 같습니다. 질이나 함량이 다른 여러 문제들이 놓여 있는데, 이 문제들이 뒤얽히며 결정적인 문제가 되지 않도록 문제의 단서들을 잡아 마이너스 시너지가 되는 걸 막아야 합니다. 직원들 내부의 인식을 전적으로 바꿀 수 없다면, 강하고 부정적인 감정이나 사고는 순화시키고, 무화(無化)시키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스스로 느끼는 생각의 패턴도 마찬가지 입니다.
요는 자신입니다. 기업에 도사리고 있는 수많은 문제가 ‘멱함수의 법칙’처럼 작은 문제로 쪼개서 분출되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요는 막을 수 없는 문제로 발전해 가지 않도록 더 큰 문제를 양산해 내지 않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여러분은 수많은 개인적, 업무상 문제를 접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마다 문제의 본질을 깊이 파악하고, 작은 문제를 수용해 큰 문제를 막는, 문제로 더 큰 문제를 막는 이이제이적 사고를 해 보면 어떨까요? 직장생활의 슬기는 이런 것입니다. 이런 색다른 차원에서라도 문제와 가까이 하기 바랍니다. 문제에는 지금 뭔가 벌어지고 있다는 중요한 시그널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었건 우리가 멈춰 서 있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입니다.
ⓒ전경일, <20대를 위한 세상공부>
제가 미국이 한 대학에서 공부할 때의 일입니다. 멀쩡한 날씨에 차를 몰고 멀리 여행을 가는데 갑자기 비가 퍼붓기 시작하더니, 곧 포장도로는 홍수가 날 정도로 물이 불어 올랐습니다. 30여 분 만에 비가 그쳐 다행이었지 계속 퍼부었다면 차와 함께 저는 급류에 휩쓸렸지도 모를 일입니다. 뒤늦게야 깨달은 것이지만 미중부 지역은 갑작스럽게 토네이도가 몰아치거나, 폭우가 쏟아지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대륙형 기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의 장엄함과 규모의 방대함이 동시에 어우러지는 웅장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때의 장면을 지금도 가끔 떠올리곤 합니다. 개인적으로 적잖은 변화가 있을 때에조차 몰려오는 비구름떼를 보는 것 같고, 사회적으로 급변하는 조류를 직시할 때에도 그 같은 현상을 상상하며, 지금처럼 직장인으로 살면서는 조직내ㆍ외적으로 접하게 되는 변화의 국면마다 하늘을 가득 뒤덮는 비구름떼를 봅니다. 그 같은 오래 전 이미지는 현실을 모사할 때에도 똑 같이 제게 적용되는 셈이지죠.
지금 우리에게 덮치는 이 비구름은 무엇인가요? 다름 아닌, ‘글로벌 경쟁환경’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보다 더 크고 강력한 메가트랜드는 지금까지 없었을 것입니다. 현재까지의 교역 방식, 재산 증감, 기업과 개인이 처하게 될 위기, 새롭게 등장하는 기회 등등 모든 게 글로벌 환경과 궤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이미 동남아 여러 나라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빠르게 개방되고 있습니다. 90년대 초 동구권이 개혁 개방을 부르짖은 이후 제2차 빅뱅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지요. 이제는 철저한 자본의 논리에 따라 포장을 뜯어낸 투명박스처럼 속을 낱낱이 들여 다 볼 수 있는 경쟁 구도가 바로 우리 안방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컨대, 대한민국 지방도시의 어느 슈퍼는 외국자본이 참여한 대형마트에 의해 하루 아침에 문 닫게 되며, 중소기업의 일꾼들은 하룻밤 만에 일터를 떠나게 되고 공장에 남아 있던 구식 장비들은 헐값에 중계인 손을 거쳐 베트남으로 수출되어 갑니다. 한국 최고의 서울대는 그저 로컬의 한 대학 정도로 쪼그라들 위기에 처해 있고, 신분을 보장받던 고시합격자의 인생은 로스쿨의 등장과 함께 치열한 밥벌이 경쟁에 돌입합니다. 누구도 사방천지에서 날아오는 세계화의 흐름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아 보입니다. 21세기 들어 농촌에서의 자살은 세계화와 가장 밀접하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이런 비구름이 몰려오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요? 인류학에서는 오래 전 원시인류에 대한 연구가 불붙었었는데, ‘호모 사피엔스’라는 이름이 상징하는 바가 오늘 우리가 처한 현실에 대한 적절한 비유가 될 것 같습니다. 호모 사피엔스의 사피엔스(sapere)는 ‘세계를 맛본다.’는 뜻입니다. 학자들이 왜 그 같은 이름을 붙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들은 새로운 세계를 맛보았기에 네안데르탈인처럼 멸종하지 않고 살아남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신세계란 무엇이었을까요?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뀐 방하기나 간빙기, 혹은 그 두 시기를 건너 뛴 시점 아니었을까요? 지금의 ‘글로벌 환경’이 그와 비슷하다고 봅니다.
기업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값싼 노동력을 찾아 현지에 공장을 세우던 기업들은 아예 본사를 사업하기에 우호적인 국가로 이전도 불사하고 있습니다. 특히 자본의 경우 국적을 초월한지 이미 오래입니다. 두바이는 조세혜택을 받으려는 페이퍼 컴퍼니를 국왕이 직접 나서서 유치하고 있습니다. 자본만 돌아가지 인력이나 시설은 필요 없습니다. 미국 고객의 불만을 응대하는 콜센터는 영어가 쓰이는 인도에서 누군가 전화 받으며 이미 처리되고 있고, 소프트웨어 개발은 본사 직원의 야근 없이 12시간의 시차가 나는 동남아시아 국가의 아침 출근조가 맡아서 24시간 2교대로 처리되고 있습니다. 가격은 인터넷상에 실시간으로, 더구나 전 세계적으로 노출되어 있고, 그에 맞춰 오프라인 매장들은 살기 위해 한 푼 더 내려야만 고객을 붙잡을 수 있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세계화에 반대하든 찬성하든 우리는 이미 우리 몸을 이루는 것부터가 외산 일색임을 알 수 있습니다. 1980년대 미국에서는 미국 내수 산업의 붕괴를 단적으로 드러내준 말로 ‘Made in USA가 사라진다.’고 우려스런 걱정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미국에서는 중국산 장난감에 공급문제가 생기면 아이들한테 돌아갈 크리스마스 선물조차 구하기 어려운 형편입니다. 이 모두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의 상황이 그렇습니다. 우리 먹거리의 80퍼센트는 이미 외산이며, 우리가 회사 근처에서 사먹는 갈비탕은 이미 중국산 통조림입니다. 기업들은 다투어 아웃소싱을 하고 있고, 이는 어느 날 갑자기 외국인에 의해 내 일자리가 날아갈 위기에 봉착해 있음을 암시합니다. 세계화의 문지방만 넘으면 이런 일이 일상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며 많은 기업들이 날아가기도 하고, 더 크게 몸집을 부풀려 가기도 합니다.
이런 변화무쌍한, 상시변화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뭐든 가격만 맞으면 재화는 그쪽으로 움직입니다. 거대한 빨판시대, 거대한 시소의 원리가 지배하는 사회, 거대한 자석이 일으키는 자장권 내에 누구나 노출되어 있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기업들은 가장 정면에서 이 같은 세계화의 혹독한 바람을 맞고 있습니다. 이 같은 현상은 이미 롤로코스트에 올라 탄 것처럼 끝을 봐야만 멈출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떨어져 나가지 않기 위해 매달리거나 버텨야만 하는 게 지금으로선 숙명처럼 느껴집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심리적으로도 전통적으로 우리가 가슴에 품던 조국은 사라지고, 글로벌이 조국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듯합니다. 이런 비유가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세상은 내 의식과 활동을 지배합니다. 이런 시기에 직장인으로서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요? 더욱 웅크려지고 자신 없어 집니까, 아니면 세계를 향해 도약하려는 마음을 갖게 됩니까?
과거의 낡은 가치로는 새로운 시대를 대변할 수 없습니다. 새로운 생존 조건은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여러분이 똑똑한 직원을 넘어 글로벌 인재로 거듭나야만 하는 가장 명확한 이유입니다.
세상을 멈춰 세우지 않는 한, 또는 세상이 멈추어 주지 않는 한, 우리의 일상은 세계화의 격랑 속에서 매일같이 반복됩니다. 좌초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직장-직업에 대한 기존 관념을 부수고 새롭게 인식의 틀을 짜야 합니다. 세계화를 덫이라고 인식하더라도, 그 덫을 벗어나기 위한 방법은 내부적으로 세계화를 통해 더 큰 항체를 키우는 것이어야 합니다. 10여년 전의 외환위기는 그러한 항생제로 우리에게 기억될 것입니다. 그때의 교훈을 새기지 못한 개인, 기업, 국가는 솨락의 길로 한없이 접어들게 될 것입니다.
이미 막을 수 없는 것들을 먹히지 않는 방법으로 계속 시도하는 것은 미친 짓입니다. 예전 방식으로는 어떤 것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동구권이 무너지고 서방 기업이 값싼 노동력을 찾아 그곳에 공장을 세우기 시작했을 때, 중국이 개방화되며 서구 자본이 물밀듯 들어갔을 때 이미 시장은 세계화의 숙주가 되었던 것입니다.
비바람이 그치고 나면 가장 청명하고 화창한 날씨가 다시 찾아옵니다. 그러나 그 시점이 언제일지, 지금보다 더 열악한 환경이 찾아오지 않을지 예측할 수는 없습니다. 아마 우리는 회사 옥상에라도 올라 까치발을 하고 매일 폭풍우와 파고가 얼마나 높을지 예측하는 것으로 하루의 일과를 시작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경쟁이란 모든 것을 경쟁 상태로 끌어들인다는 점에 특징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생과 사를 결정하도록 요구합니다. 세계화에서 상생철학은 극히 이상적인 생각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원시시대의 소도(蘇塗)에나 있을 법한 상상력입니다. 이제 본격적인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여러분의 앞날에 도래할 생존의 방식은 지금과는 많은 점에서 현격히 다를 것입니다. 몰려오는 비구름을 미리 예측하십시요. 얼어붙기 시작하면, 그때 가서 피한을 위한 보금자리를 찾는 건 더욱 어려워 질테니까요. ⓒ전경일, <20대를 위한 세상공부>
직장생활을 시작했다면 이미 많은 남자 직원들은 군대를 갔다 온 나이에 해당될 것입니다. 물론 개인별로 지급된 소총도 있었을 거고, 사격도 해 보았을 것입니다. 총신에는 나선형의 강선이 패어져 있는데요, 탄환이 총신을 통과할 때 이 홈에 의해 회전력을 얻습니다. 왜 이런 홈을 파두었을까요? 그것은 강력한 회전력을 일으켜 총알을 멀리 보내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라는 곳에 나올 때 여러분은 시간이 되어 방아쇠가 당겨지고 장약에서 분출되는 에너지를 얻으며 총알처럼 튕겨져 나왔을 것입니다. 12년간의 정규교육과정이라는 오랜 노력, 즉 길고 긴 터널을 빠져 나왔을 때에야 비로소 멀리 날아가게 된 것이죠. 치열한 경쟁의 홈을 빠져 나와 여러분은 지금 한껏 멀리 날아갑니다.
사회생활에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나이는 누구나 아직 에너지가 충만하고, 멀리 나갈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힘이 빠지면서 더 이상 날아가지 못하게 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언젠가는 멈추고 떨어지게 되어 있으나, 어떤 총열을 빠져 나왔느냐에 따라 더 멀리 갈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 집니다. 총신에 비유해 예를 들었습니다만, 촘촘히 파인 홈은 비유컨대 지금까지 여러분이 쌓아 온 경쟁력과 관련 있습니다. 명문대학을 나오고, 유학 경험까지 있고, 집안까지 좋다면 그야말로 남들보다 훨씬 유리한 무기를 가지고 있는 셈이죠. 이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당연히 출발부터 남보다 큰 탄력을 받을 것은 자명합니다. 그러나 이 같은 여건이 조성되어 있지 않았다면, 처한 조건과 환경 탓만 하면 될까요?
직장 생활을 하면서부터 여러분은 세상을 휘어잡을 또 하나의 무기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제는 이전과는 다른 방식의 경쟁력이 필요합니다. 21세기 지식노동자에게 요구되는 뛰어난 무기의 조건이 무엇인지 여기 나열해 보겠습니다. 우선 상상력입니다. 풍부한 창의적 사고가 기업에서 원하는 인재의 기본 조건임은 두말할 나위 없습니다. 앵무새나 포크레인은 이제 필요 없습니다. 같은 얘기만 하고, 늘 같은 사고만 해대는 앵무새나 힘만 쎈 포크레인은 벌써 오래 전에 대체 되었습니다. 예컨대, 토면학(兎勉學. 토플 책을 들고 도서관에 가서 영어공부에만 열중하는 것)은 경쟁력이 되지 않습니다. 외국인 앞에만 서면 주눅만 드는 공부가 무슨 경쟁력과 관련 있겠습니까? 그보다는 한 두 마디라도 떠들 수 있는 게 중요하겠죠. 이제는 창의력의 시대입니다. 여러분 머리 위의 1억 개의 별을 보십시요. 그것이 우주이고 구글은 그런 상상력으로 지금도 커가고 있는 회사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가치융합입니다. 요즘 흔히 유행하듯 통섭형 인재로 거듭나지 않고 단편적 지식만 나열하다가는 현대와 같은 복잡계의 사회에는 적응하기도 어렵고, 참신한 경영기법을 얻어내지도 못합니다. 이렇게 하다간 비즈니스 세계에선 딱 헛물켜기 십상입니다. 도처에 널려있는 지식을 어떻게 종합해서 나만의 새로운 현장형 지식으로 광합성 해내느냐가 기업에는 필요합니다. 지금 있는 지식만을 고수하는 현상 유지식 방식으로는 기업이 원하는 바, 타 영역으로 더 키워나갈 지적 토대가 마련되지 않습니다. 물론 21세기형 인재조건에서도 멀찍히 떨어져 있을 것은 자명하죠.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스스로 이뤄내려는 의지, 즉 자강노력(自强努力)입니다. 도전에의 의지, 누구보다도 강한 정신적 기반 없이는 어떠한 불세출의 성과도 이뤄낼 수 없습니다. 당연히 미답미문의 미래형 성장동력을 찾아낼 수도 없습니다. 기업은 늘 현재를 넘어서 미래를 얘기하는데, 기업이 말하는 미래란 최종적인 생존자가 되는 것입니다. 자강노력 없이 최후까지 살아남을 기업은 아무래도 찾기 어렵겠죠. 그래서 기업은 늘 지속가능 상태를 유지하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새로운 시도를 향한 돌파력입니다. 지금 우리 기업이 처한 여건은 정체ㆍ소강이라는 말로 압축됩니다. 더 많은 투자를 하고 기업 활동에 활력을 불어 넣으려고 하나 세계적으로 경제는 침체 일로에 있고, 유가ㆍ환율 등 불안감은 더욱 높아갑니다. 리스크에 더욱 민감해 질 수 밖에 없다보니 당연히 투자에 소극적이게 되고, 관망적일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기업 환경에서 그나마 머리 좀 굴리는 직원들은 눈치나 보며 복지부동하기 쉽습니다. 회사는 자연히 보수적 색채가 농후해 지는 것이죠.
이런 고착상태는 기다린다고 풀리지 않습니다. 지금은 성냥 개피를 그어가며 굴을 뚫을 것이 아니라, 다이너마이트를 터드리며 교착상태를 벗어나야 합니다. 당연히 추진력 있고, 돌파력 있는 직원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이들이 현재를 다른 현실로 바꾸어 놓게 될 것입니다.
회사의 속을 뜯어보면 사실상 누군가에게 의지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집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강한 리더십, 믿고 따를 수 있는 여지만 보여도 끌려옵니다. 결국엔 그것이 생존에의 길이라면 자신의 주장 따윈 철회합니다. 그것을 유연성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상사들은 노련한 경험으로 조직을 리드해 가지만, 다른 한편 여러분 같은 젊은 패기에 기대를 걸기도 합니다. 여러분에게 중책이 맡겨지거나, 기대를 보낼 때 그들은 한편으로 나이 들어가는 위축감의 해소를 젊은 피에서 얻고자 하는 매우 본능적인 욕구가 작용하기도 합니다. 마치 아들의 넓은 등을 바라보는 늙은 부모가 든든함을 느끼듯 말입니다. 그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순환의 법칙에 우리가 놓여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에 대한 기대감은 현실에서 개선(凱旋)하는 것으로 드러나야겠지요.
기업이 요구하는 이 같은 탁월한 무기를 갖고 더 멀리, 오래 날아가기 위해 여러분은 지금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저는 앞서 10년을 어느 하나에 몰두하면 전문가 수준이 된다고 말했습니다만, 과연 우리는 일상에서 이 같은 작은 노력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나요? 아직 굴곡 많고, 미래가 어둡다고 생각된다면, 그것이 힘이 되어 나를 더욱 강하게 밀어줄 거라고 확신해야 합니다.
현실은 답답할수록 이전과는 다른 세상을 펼쳐 보입니다. 바로 그곳에 여러분의 젊음이 놓여있습니다. 깊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 올 때 힘차게 도약하세요. 그곳을 어떻게 벗어나느냐에 따라 어디까지 날아갈지가 결정됩니다. 인생의 또 다른 장이 이제 막 시작되는 거죠. 처음이 고통스럽다면 오히려 축하할 일입니다. ⓒ전경일, <20대를 위한 세상공부>
어느 회사건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적잖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회사 일은 남들과 더불어 하는 것이기에 이 같은 대화방법이나 스킬은 중요 관심사일 수밖에 없겠죠. 기업체 교육에서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교과과정이 바로 이 같은 내용입니다. 흔히 커뮤니케이션을 말할 때 인용되는 예가 있습니다. 예컨대, 아마존의 고목이 쓰러졌다. 미국에 사는 사람이 그 소리를 들었어야 하는가? 듣지 않았어도 되는가? 이런 질문의 답은 너무 상식적일 것이므로 논외로 하겠습니다. 또 다른 예로, 내가 길가에서 어떤 예쁜 여자를 만나 쫓아가 온갖 구애를 다 하였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여자가 일본여자라서 내 말뜻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내가 구애를 한 것이냐, 아니냐? 양쪽 질문 다 당연히 답은 ‘아니다’죠.
남이 이해하는 수준으로 이야기 된 것이 아닌 것은 커뮤니케이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혼자 떠들어 대는 말이나, 교장 선생님의 훈시 같이 장황하지만 귀에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 말들은 대화가 된 것이 아니라, 그저 소리를 낸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회사에서 수많은 회의를 일상적으로 하고, 협력업체와 만나는 등 대화에 많은 시간을 공들이지만, 서로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만 확인할 뿐 진정으로 통하는 대화를 나누었는지는 의심스러운 경우가 많습니다. 서로의 입장 차이만이라도 명확하게 알면 그것도 커뮤니케이션이 어느 면에서는 된 것일 텐데 그것마저도 쉽지 않습니다.
직장 상사나 동료하고의 대화에도 이런 차이는 등장합니다. 일전에 나는 후배사원들과 얘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서로간의 생각의 차이를 발견하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마치 하나의 단어에 쓰이는 의미가 중층적인 양 서로 가리키고 있는 의미나 그 일과 연결된 기억들도 달랐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상대가 먼저 단어의 뒷면에 깔린 복선적 의미를 들추며 넘겨 짚고 나가는 바람에 감정이 상하기까지 했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은 이 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상대를 알게 하고, 상황을 정확히 표현해 내는 것은 각자 지닌 선입관과 입장차에 의해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사람은 언제고 자기가 이해한 방식대로 이해하려 하고, 남에게 자신의 이해 범주 내에서 이해시키고자 합니다. 그런 불완전한 소통구조를 가지고 우리는 타인과 통하고자 합니다. 결과는 매번 조금씩 다르다는 점을 발견할 뿐입니다.
우리는 직장 내에서 어떻게 커뮤니케이션해야 할까요? 많은 경우 직장에서 ‘얘기하는’ 커뮤니케이션은 단순히 대화 그 자체의 문제를 말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업무협조를 요청한다든가, 유관부서를 제대로 찾아가야 하는 문제, 나의 일이 아닌 것을 들고 오는 문제에 대한 성가 싫음의 표현, 내 업무 영역이나 권한을 침범했다고 느낄 때 보일 수 있는 반응, 상대를 경쟁자로 인식할 때의 반응, 상대에 대한 약점 뒤집어씌우기, 조직 내 다양성의 부재로 인한 단일한 가치의 독주 등에서 얼마든지 표현됩니다.
상대가 나의 기대에 어긋날 때에도 가장 쉽고 완곡하지만 치명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표현이 ‘저 사람은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많아.’라고 말하기도 하는 것이죠. 이 말은 매우 복잡한 성격을 띠고 있어, 그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기조차 어렵습니다. 둘 간에 다소간의 오해가 있었는데 웃으며 넘어갔다는 것인지, 화해하기에는 너무 골이 깊다는 얘긴지, 상대의 미스 커뮤니케이션으로 조직 전체가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는 말인지, 상대가 잘 적응하지 못하고 늘 문제를 일으켜 내가 매우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얘긴지 애매모호하기만 합니다. 그만큼 쓰는 쪽에서 임의적으로 쓸 수 있는 활용도가 매우 높은 조직용어인 셈입니다. 물론, 직장 내 정치적 술어이기도 합니다.
왜곡된 쓰임새의 여부를 떠나 어찌되었건 직장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커뮤니케이션 문제가 현존합니다. 차이가 만들어 내는 미세한 뉘앙스를 잡지 못해 의사소통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하고, 정말 문제다 싶을 만큼 서로간의 채널이 다른 주파수에 맞추어져 있는 경우도 더러 있을 것입니다. 물론 대화 자체보다 그 뒤의 함의가 훨씬 더 클 수 있다는 얘기도 됩니다. 조직 내 대화에는 수많은 복선이 자리 잡고 있으며, 흔히들 ‘큐션을 때린다.’고 하는 에둘러 표현하고 뒤통수치는 행동 등도 포함됩니다. 그러니 이런 소통 방식에서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제 생각엔 안보이는 것을 읽는 ‘언독(言讀)’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여러분 현명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상대가 하는 말과 말하지 않는 행간을 읽는 능력, 그것을 간파할 때 현명해 질것은 분명합니다.
직장 내 복잡한 커뮤니케이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적절한 해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저는 여러 방식 중 예의 바르고 직접적인 수사법을 권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말을 너무 배배꼬아서 얘기하거나, 에둘러서 얘기하거나, 흐릿하게 얘기하는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노회함 강화된 수사에 익숙한 사회에 살아서 그럴 수 있죠. 대화의 명확성은 떨어지고, 오해는 증폭됩니다. 더구나 이럴 때에는 비정치적이어 덜 스마트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물론 이런 인상이나 평가는 자신에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직장 내 대화 중 90퍼센트 이상이 불필요한 수사이고, 진정으로 서로에게 다가서는, 혹은 일을 합의에 들어서거나 거래를 트게 만드는 커뮤니케이션과 무관하다는 연구를 살펴보면, 이제는 보다 실질대화가 필요한 게 아닌가 합니다. 무효내지 들러리 대화, 입에 바른 말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유효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저는 이런 걸 가리켜 ‘스트래이트(stright)한 대화’라고 표현합니다. 이리저리 군더더기 붙여 본말이 뒤집히는 것이 아니라, 바르고, 정직하게, 자신이 생각한 바를 소신껏 말함으로써 덜 정치적으로 보일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조직 내 커뮤니케이션의 부하(負荷)나 왜곡을 덜고 막을 수 있다면, 그것은 조직 소통에 대단히 큰 기여를 하는 것일 겁니다. 수사가 부족해서 진실이 가려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말보다는 묵묵한 행동이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도움이 된다는 걸 적잖은 직장생활 동안 우리는 자연히 터득하게 됩니다. 우리가 다니는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고도의 심리게임을 대화의 방식으로 취해도 의연하고 당당하게 대할 수 있다면, 그런 야비한 게임의 룰에 넘어가지는 않게 되겠지요.
우리는 말을 간결하고 핵심에 접근하도록 하는 습관을 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위로 올라갈수록 수사는 일파만파의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회사에서 누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말을 할 때면, 그때에는 수사를 집어치우더라도 반듯한 말을 선택하면 어떨까요? 사람이 반듯해 보이고, 어디로 중심 없이 쓸려 다니는 것같이 보이지 않으며, 내공이 분명한 사람으로 비춰질 것입니다. 그리고 끝내 그런 점이 사람들의 우호적 평판을 얻어낼 것입니다. 물론, 비정치적이기도 한 여러분의 용기에 사람들은 가치를 발견하고는 끝내 손을 들어 줄 것입니다. ⓒ전경일, <20대를 위한 세상공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