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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퇴원이라뇨?”

“환자분 데리고 집으로 가시지요. 맛있는 거나 실컷 드시게 해드리세요.”

건강검진 때 위 내시경 검사를 해봤더니 급히 큰 병원엘 가보라는 말을 듣게 된 친구였다. 부랴부랴 큰 병원에 예약을 하고 검사해 보니 위장 암 말기라고 했다. 병원에서는 묻는 말에 그저 같은 말만 되풀이 했다. 주치의는 조직검사 결과 수술을 해도 이미 늦었다고 말했다. 환자가 고통만 받을 뿐이지, 아무런 효과도 기대할 수 없는 수술은 뭐러 하냐는 거였다. 친구의 아내는 순간, 실성한 사람처럼 눈이 팽 돌더니, 다리에 힘이 풀리며 주저앉았다. 나는 엉거주춤 친구 부인을 부축해 의자에 앉혔다.

암-. 안 걸리면 팔십까지는 무조건 산다는 얘기처럼 암은 정말로 무서운 병이었다. 어떻게 멀쩡한 사람 속에 저렇게 파고들어 썩은 사과 속처럼 다 망가뜨릴 수 있나 싶었다. 겉으로는 멀쩡하고, 아무 이상 없어 보이는데 말이다.

며칠 후, 친구 부인한테 전화를 해보니 퇴원해서 지금은 시골에서 요양 중이란다. 그러며 남편이 먹고 싶다는 거 다 해주고 싶은데, 별로 먹고 싶은 게 없다고 한단다. 그러며, “당신 나 죽으면 어떻게 살래?” 자주 같은 말을 물어 온단다. 그럴 때면 둘이 껴안고 한참을 운단다. 서러워서. 속아 산 인생이 서럽고, 남편을 더 위해 주지 않은 자기가 미워서.

차를 몰아 친구가 머무는 요양소까지 가는 길에 나는 착잡한 심정뿐이었다. 마음만 무거웠다. 그러면서도 알 수 없게도 마음 한편에서는 ‘조금 일찍 가는 거지.’하는 경박한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사람은 참 알 수 없는 존재다.

친구를 만나서 시골 길을 같이 산책했다. 친구 부인은 쑥물을 받치고 있을 테니 나갔다 오라고 했다. 무슨 얘기를 한단 말인가?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까? 망설이는 내게 친구가 먼저 말했다.

“이렇게 살아서 걸을 수 있는 것만도 기막힌 일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언제 또 보지? 머지않아, 나는 죽어서 땅 속에서 누워 있을 텐데...”

“다 죽잖아.” 나는 담담하게 대꾸해 주었다.

“내 집사람... 재혼, 부탁한다. 아직 젊잖아. 어디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 좀 해 줘. 나 죽어서도 너 고마워할게.”

친구나 나나 고개를 돌렸지만, 그건 서로의 눈물을 감추려 한다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대학 다닐 때, 너 나 때문에 아버지한테 진땅 얻어 맞었지? 소 판 돈으로 친구 학비 도와줬다고?”

“그랬었나?”

“나, 그 돈 못 갚고 가네... 인생이 너무 짧아서 못 갚는 거야.”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친구는 하늘을 바라보며, 목울대를 울렁거렸다. 그렇게 친구와 마지막 밤을 보냈다.

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섟 달 뒤, 나는 친구의 장례식에 갔다 왔고, 첫눈이 내리는 광경을 휴게소에서 차를 세워놓고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수없이 어디로 갔다 오는지 차량의 행렬은 끝이 없다. 나는 잠시 멈추어 섰다.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언제 또 보지?‘

친구의 말이 환청이 되어 들렸다. 그랬다. 산다는 건, 매일 매일 새로운 날들을, 인생의 첫날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라는 걸, 왜 몰랐던가? 무수한 인연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 죄를 짓고, 돈 버느냐고 아등바등 거리고, 예쁜 여자 얻어서 새끼도 낳고 하면도, 왜 하루하루를 속절없이 살기만 했었던가?

고속도로는 연말 차량으로 정체였지만, 나는 천천히 차를 몰며 이 어둠이 가시고 나면 보다 용기 있는 삶을 살리라 다짐했다.

‘산다는 거,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니잖아. 그런데도 그걸 모르고 살다니. 인생? 정말 처음처럼, 태어난 첫날처럼 사는 거라구.‘

그런 생각을 하며 부지불식간에 나는 친구 부인에게 소개할 만한 사람이 누구일지를 생각해 보고 있었다.
ⓒ전경일, <나에게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