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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경영/나에게 묻는다 | Posted by 전경일 2010/03/23 23:49

별을 따다

직장 생활에 푹 빠져 지내다 15년 근속 상으로 가족을 데리고 해외 휴가를 갔다 온 친구가 있었다. 친구가 호텔에서 체크인을 하는데, 갑자기 호텔 카운터 직원이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었다.

“내 이름?”

그는 곧, 대답을 했지만, 그때 불현듯 자신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고 한다.

‘00회사 00부장이 내 이름이었지.’

그 전까지 사회적 직위와 무관하게 자기를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친구는 뭔가 둔기로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별 것도 아닌 일에 괜히 휴가 와서 신경 쓰게 될 것 같아 잊어버리기로 했지만, 아내와 애들이 다 잠들고 나자, 그 친구는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는 밖으로 나왔다고 한다.

동남아 호텔의 벤치에 누워 오랫동안 밤하늘의 별을 올려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대학을 나와서 처음으로 직장을 갖고, 결혼을 하게 되고, 첫애를 낳고, 처음으로 회사에서 누락 없이 간부 진급도 해봤고, 지금은 몇몇 협력 업체를 거느리고 있는 사업부서의 장이다? 그게 자기 전부였다. 지금까지 누구도 자기 보러 “네 이름이 뭐냐”고 물은 적이 없었다. 그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도 특별히 자기를 생각해 보거나 하지는 않았었다. 자기소개를 할 때조차도 그저 시니어 매니저 아무개라는 자기 명함에 찍힌 직책 딸린 이름이 전부였다는 것.

친구는 밤하늘에 무수히 찍힌 별들을 바라보며,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고 한다.

앞으로 더 나이 들면 무엇 하나, 나의 은퇴 이후는? 애들 교육비? 노후는?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자기 처지가 한없이 처량하더라는 거였다. 그렇지! 월급쟁이로 버텨봐야 얼마나 더 벌겠나. 버는 건 고사하고 이젠 버티기도 힘든 세상이니...

생각이 그런 쪽으로 가다보니 부모님 살아생전에 해드린 게 없다는 자책감도 일었다. 그러며, 주위 일가들에게 도움이 되어주지 못했던 거며... 온갖 상념들이 밀려 와 혼자 소리 없이 울었단다.

대책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이디어는 마땅히 떠오르지 않았다. 일단은 회사에 더 있어보지 뭐...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지금은 속 편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어쨌든 지금은 잘 나가가는 편이어 15년 근속으로 가족 휴가도 오게 되지 않았는가? 그러며 그는 스스로 위로했다고 한다.

한동안 마음을 달래다 너무 늦은 것 같아 호텔로비에 들어오니 잠에 골아 떨어져야 할 아내가 호텔 이 곳 저 곳을 뒤지고 있더라는 것. 아내를 부르자, 아내는 다짜고짜 와서는 한다는 말이, “그래, 잠 안자고 나와서 얼마나 잃었어?” 그러며 추궁하더라는 거였다.

그 친구, 부인 질문에 말문이 막혀 버렸다. 그도 그럴 법 한 게 호텔에는 심야 카지노가 밤새도록 불을 밝히고 있었다.

“아냐, 땃어. 많이 땃지... 별도 따고, 세월도 따고, 나 송 인철이도 따고...”

친구는 아내의 손을 잡고는 호텔 방으로 돌아왔다. 호텔에 들어오는 길에 그는 푸르기만 한 밤하늘을 가리키며, “내가 하두 많이 따서 별들도 많이 줄었네.”하며 농담을 던졌다.

“딴 거 있음 다 내놔. 내일 아침에 맛있는 거 먹게.”

그의 아내는 끝까지 그가 한 얘기가 무슨 얘긴지 모르더라는 거였다.

‘그래, 인생엔 부부도 모르는 게 많지...’

그 친구, 왠지 서글픈 느낌만 들더라며 전화를 끊었다. 그나 나나 마흔 넘은 남자들이었다.
ⓒ전경일, <나에게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