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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묻는다8

요약 좀 해 봐 후배 중에 그림 꽤나 그리는 녀석이 있다. 이른 바, 라는 직업을 갖고 있어서 그런지 쓱쓱 연필을 몇 번만 움직여도 그림 한 장은 거든히 그려댔다. 오랜만에 만난 녀석에게 다짜고짜 달려들어 나를 그려보라고 했다. 녀석은 멀뚱하게 눈을 뜨더니 손사래를 쳤다. “형, 나 그런 거 잘 못해요.” 나는 피식 웃으며 재차 요청을 했다. “나를 좀 요약해 보라고. 왜 그런 거 있잖아? 캐리커천가 뭔가 하는. 술 한잔 산대두.” 후배에게 예술작품으로 그려 주는 것이 아니라는 꼬리표를 달고 그림 하나를 얻었다. 거기다가 내 나름대로 제목 하나 달아봤다. 후배 왈, 내 얼굴을 요약하면 이렇다나. 안경을 꼈고, 코가 크며, 머리는 쭈뼛쭈뼛하다. 내 머리카락은 너무 굵다 등등. 아무튼, 나는 이 캐리커처를 종종 보게 된다... 2010. 3. 30.
기본적인 건 변하지 않는다 가장 기본적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당신은 이것을 기억해야 해요. 키스는 여전히 키스예요. 한숨은 한숨이구요. 세월이 흘러도 이런 기본적인 일들은 여전히 그대로예요.’ 영화 에 나오는 대사다. 키스는 키스다. 내가 십 수 년 전 아내와 연애를 할 때 나눴던 키스가 세월이 지났다고 해서 뽀뽀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살며 가끔씩 잠 못 이루는 밤에 창밖을 내다보며 내쉬는 한숨도 그냥 한숨일 뿐인 거다. 그렇다. 세상이 아무리 달라졌다 해도 내가 알고 있는 사랑은 변치 않으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변치 않을 것이다. 내가 변하지 않는 한, 가장 기본적인 사실인 나의 언젠가 다가 올 죽음도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주변의 사람들이 그렇게 주위에서 사라져갔듯이 말이다. 사랑에 의미를 두는 것은.. 2009. 2. 17.
촌지를 받은 선생님 촌지 사범대를 나와 중학교 선생님이 된 내 친구는 처음으로 발령받은 학교에서 촌지라는 것을 받게 되었다. 받을까 말까. 온갖 생각이 그 앞에 내밀어진 봉투 앞에서 해일처럼 밀려왔다 밀려가곤 했다. 전광석화와 같이 수만 가지 생각들이 어디 숨어 있다가 튀어 오르는지, 일시에 터져 나오더라고 그는 말했다. 거절을 할까, 말까 하면서도 당장 아쉬움이 그를 유혹하는 걸 느끼게 되었다. 작은 것에의 흔들림. 그 다음의 무너짐. 애써 웃는 어색한 웃음... 첫 촌지의 추억을 갖고 있는 친구는 끝내 그 일을 어떻게 처리했을까? 나는 몹시 궁금했지만, 진실이 묻혀버릴까 봐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안 받으려고 했다! 그런데 순간, 부모님 생각이 나더라고 그는 말했다. 얼마 전 형제들끼리 모여 연로하신 부모님의 한약 값을.. 2009. 2. 17.
친구 장례식에 가다 친구 장례식에 가다 ‘아직 죽어서는 안 될 친군데...’ 정말이지 아직 죽어서는 안되는 친구가 죽었다. 세상 사는데 선하고, 남 좋은 일 많이 하고, 늘 서글서글하기만 하던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 아직 꼬마인 애 둘에 이제 삼십대 후반인 부인까지 남겨놓고... 이러면은 안되는데. 운명이 이렇게 가혹하고 모질면 안되는데 하고 나는 넋을 놓았다. 너무나 어이없는 친구의 죽음을 보면서 장례식장 한편에서 혼자 술을 따랐다. 술에 취할수록 내 기억은 이리저리 헤매었지만, 나는 또렷하게 친구 부인의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그 표정 하나만은 잊을 수 없다. 울음, 절망, 깜깜한 앞날, 애들의 입, 황당한 친구처지, 남들의 이목과 눈빛, 빛 빛... 그녀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 이제는 사라진 것이다. 사라져 다시는 볼.. 2009. 2. 6.
머리카락을 발견하다 머리카락을 발견하다 “세상 모든 건 다 때가 있다.”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공부에도 다 때가 있다는 것. 하지만 그땐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납기는 꼭 맞춰야 해! 기한 지나면 다 끝장이라구!” 사회에 나와 첫 직장에서 상사한데 듣게 된 얘기도 ‘때’와 관련된 것이었다. 그때, 내가 다니던 회사는 대기업이었지만 통신 장비를 납품하는 계약상으로 보면 분명히 ‘을’인 회사였다. “지금 이때를 놓치면 다시는 창업을 못할 것 같아.” 오랬 동안 다니던 회사를 나오며 아내한테 한 얘기다. 아내는 묵묵히 응원하며 나를 따라주었고, 나는 조그마한 회사의 사장이 되었다. ‘일신상의 이유로 사직하고자 합니다.’ 이사직을 사임하면서 내가 내민 사직서였다. 사직서를 쓸 때, 나는 이제 .. 2009. 2. 6.
그때 내가 건넌 강물은 아직 거기 있을까? 그때 내가 건넌 강물은 아직 거기 있을까? 어부바! 길을 가다가 다리가 아프다고 꾀병을 쓰는 딸아이를 업어주며 나는 황토 빛 장마 비로 출렁이는 고향의 강물 앞에 가 섰습니다. 장마 비에 논둑을 보러 가신 아버지 등에 업혀 강을 건널 때의 그 느낌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비를 맞아 입술까지 새파래진 나는 우리 집 논밭만큼이나 넓디넓은 아버지 등에 파묻혀 강을 건너오면서 발 아래로 뱅뱅 소용돌이치는 흙탕물을 내려 봅니다. 내겐 두려움 따윈 전혀 들지 않습니다. 가끔, 가파른 물 속, 발밑으로 굴러가는 돌에 채여 아버지는 비틀거리셨지만, 나는 손톱만치도 아버지를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엎힌 그 분은 나의 아버지였으니까요. 아버지는 절대로 쓰러지지 않을 것이라는 걸 나는 알았거든요. 강을 다 건넜을 .. 2009. 2.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