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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경영/창조의 CEO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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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안내] 세종과 장영실의 혁신 리더십 [특강안내] 세종과 장영실의 혁신 리더십 세종 12년 10월 23일 기록에는 이런 글이 실려 있다. “임금이 ‘계몽산(啓蒙算)’을 배우는데, 부제학 정인지가 들어와서 모시고 질문을 기다리고 있으니, 임금이 말하기를, ‘산수(算數)를 배우는 것이 임금에게는 필요 없을 듯하나, 이것도 성인이 제정한 것이므로 나는 이것을 알고자 한다.’하였다.” 실록에 의하면, 세종은 수학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공부한 걸 알 수 있다. 세종은 왜 수학을 배웠을까? 간단히 말하자면, 과학 발명품 때문이었다. 세종이 추구하는 신생 조선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과학과 기술이었다. 그런데 왜 그 시기 과학 기술이 특별히 강조된 것일까? 그 이유를 따져 들어가 보면 결국엔 국가를 운용하는 ‘철학’ 때문인 것을 알 수 있다. ..
장영실, 조선의 과학을 만들다 전경일의 경영리더십-잃어버린 성장 동력, 해법은 우리 내부에 있다 역사에서 찾은 창조혁신 성장 정체기에 직면한 글로벌 경제의 화두는 ‘신성장 동력’ 찾기다. 이에 우리 역사가 얼마든지 경영자산이 될 수 있다며, 우리 역사를 조명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특히 과학기술에 집중했던 조선의 세종시대가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국립 고궁박물관에 전시된 자격루는 600여 년이 지난 2007년에 복원돼 세종대왕과 장영실의 첨단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 중앙포토오천년의 우리 역사 자산은 얼마든지 우리 경영자산으로 바뀔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세종시대다. 광휘의 불꽃으로 타오른 600여 년 전 세종대왕 시대를 주목하는 건 위대한 벤치마크 사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시대, 어떤 점이 오늘날의 산적한 문제를 해..
세종의 창조적 역량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
태조 이성계, 혁명에서 창업으로 가는 기나긴 세월을 인고하다 태조 이성계, 혁명에서 창업으로 가는 기나긴 세월을 인고하다 인생의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는다. 하물며 역사의 순간에 다가오는 기회란 더 말할 나위 있으랴. 변방의 무관 시절부터 스스로 이룩한 실력을 바탕으로 마침내 중앙 정계의 실력자가 되기까지 그의 인생은 전투가 벌어지는 현장 곳곳이 결정지었다. 구체적 실적을 증명해 냄으로써 군내에서 지위는 급부상하고, 이를 계기로 요동 정벌을 통수하는 권한이 주어졌다면 이는 호랑이 등에 올라 탄 욱일승천의 기세와 같은 것이리라. 이제 운명은 그의 선택 여하에 달려있었다. 뽑은 칼을 어디로 휘두르느냐에 따라 정벌군 대장으로서 영예를 한껏 드높일지, 역심만 품는다면 하늘 아래 최고지선의 자리를 넘볼지 결정 나는 판이 벌어진 것이다. 조선의 창업자 이성계, 그의 입지전적..
세종, 인재에 대한 철학을 창조의 원천으로 삼다 세종, 인재에 대한 철학을 창조의 원천으로 삼다 영혼이 있는 정치를 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세종시대의 정치적 담론은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그러기에 국가경영상의 목표를 이뤄내기 위해선 실천적 경영철학이 요구되고, 이를 실행할 창조적 정치 집단이 필요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조선의 르네상스를 열은 세종시대의 인재관은 출발한다. 세종이 태어난 시기는 1397년 4월 10일(음력)이었다. 이 시기는 중국에서 명이 건국하고 28년이란 시간이 지난 시점이었다. 대륙의 패권을 놓고 벌인 원(元)ㆍ명(明) 왕조 교체는 세계제국 원을 통해 조성된 국제화 무드의 시기에서 한족 중심의 명으로 동북아 정세가 급변하는 시기였다. 세계의 경영 패권이 바뀐 시점에 조선에서도 새로운 창업이념인 국가 경영철학이 실질 국가경영에..
헌종_세상의 격랑에 두 눈을 감고 격랑은 애써 외면한다고 피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진 세파는 바로 부딪쳐야 살 방도를 찾게 된다. 헌종 연간(1834~1849년)은 조선이 후기로 치달을수록 내․외부적인 도전에 강하게 부딪치는 시기였다. 헌종은 효명세자(익종)과 신정왕후 조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출생해 8세의 어린 나이에 국왕의 자리에 올랐다. 소년왕의 경우 으레 등장하는 외척의 발호와 부정부패는 헌종 대에도 마찬가지였다. 헌종을 만나본다. -왕께서는 어린 나이에 즉위해 역시 대비로부터 수렴청정을 받게 되었지요? 그 만큼 왕권이 휘둘렸다는 얘기가 되는데, 어떠셨는지요? “내 어린 나이에 국왕에 올라 순조의 비인 순원왕후 김씨의 청정을 받게 되었지. 11세가 되었을 때에는 김조근의 딸을 왕비로 받아들이며 안동 김씨의 세도 시대가 열렸고..
정조_넘었으되 넘지 못한 선을 밟다 8세의 어린 나이에 아비의 죽음을 보아야만 했던 아들. 그 아들은 아비를 죽인 할아비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으며, “왕위에 오른 뒤에도 장헌세자(사도세자)의 죽음과 관련된 일에는 절대 관여하지 말라”는 엄명을 받는다. 어려서부터 정치의 비정함을 몸소 깨달았던 아들, 아비의 묘소인 영우원을 참배할 때마다 옷소매를 적실만큼 울어댔던 아들, 아비의 죽음과 같아서는 안되는 것을 알면서도 끝내 ‘독살설’의 주인공이 되고만 아들. 조선의 제22대 국왕, 개혁군주 정조를 만나본다. -왕을 이야기할 때 ‘삼불필지설(三不必知設)’을 먼저 꺼낼 수밖에 없는데요. 세손 무렵일 때 정국은 어땠나요? “왕이 되기 전, 나는 한낱 바람 앞의 촛불에 불과했소. 아비를 죽인 노론계의 홍인한이 ”동궁은 노론이나 소론을 알 필요가 없고, ..
[인문] 영조_탕평, 그리고 부자의 정을 의리로 지키게 하라 재위기간 52년. 조선 21대 국왕 영조만큼 오랜 기간 집권한 왕도 아마 없을 것이다. 대궐우물에서 물 긷는 무수리의 아들로 태어나 28세 때 세자로 책봉되기 전까지 10년이 넘게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 산 영조는 누구보다도 백성들의 삶을 알았다. 평소 몸에 밴 서민적 의식으로 검소하게 생활했고, 백성과 가까이 해 백성의 어려움을 풀고자 했다. 그러나 그에게도 어두운 그림자가 있었으니... 영조를 만나보자. -왕을 얘기할 대 우선 ‘경종 독살설’의 의혹을 먼저 꺼내게 되어 부담스러운데요. 그 속사정을 말씀해 주시죠? “허어. 또 그 얘기인가? 후세도 알다시피 1724년 8월 20일 내가 이복 형님께 보낸 게장과 생감이 원인이 되어 왕인 경종께서 5일 만에 돌아가셨다는 건데, 내 어찌 그럴 수 있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