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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인문역사46

‘일본발(發) 왜구’의 발호-조큐의 난(1) ‘일본발(發) 왜구’의 발호-조큐의 난(1) ⟨광개토태왕비문⟩에 새겨진 명문(銘文) 이후, ‘왜구’가 처음으로 사료에 등장하는 것은 1152년이다. 일본 측 자료인《청방문서(靑方文書)》가 그것이다. 여기에는 고려를 대상으로 해적활동을 한 집단에 대한 최초의 증빙이 엿보인다. 일본 규슈 나가사키현(長崎縣)의 서쪽에 위치한 고토(五島)의 장관격인 지두(地頭) 기요하라 고레카네(淸源是包)가 고려 선박을 탈취한 혐의로 영주로부터 예소직(預所職)을 박탈당했다는 기록이다. 이 기록은 왜구가《고려사》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시기와 대략 70여년의 차이가 있다. 하지만 ‘해상 무사단’의 활동 지역이 일본열도 내 바다를 넘어 멀리 고려 선박을 대상으로 약탈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는 왜구가 어떻게 활.. 2015. 7. 15.
왜구, 그 질긴 악연의 시작 왜구, 그 질긴 악연의 시작 왜(倭)의 성장으로 한중일 간에는 이전과는 사뭇 다른 양태가 벌어졌다. 바다를 무대로 한중일 삼국은 새로운 관계망을 형성하게 된다. 삼국이 처음으로 만나는 지점은 유동성이 가장 큰 바다였고, 바다는 ‘예측 불허의 수단’과 ‘무력’에 의해 자기의 욕구를 드러내는 장소로 가장 적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각국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본질과 성향을 드러내게 되는데, 섬에서 대륙으로 별로 전해 줄 게 없었던 일본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왜구(倭寇)’라는 카드를 내밀게 된다. ‘왜구(倭寇)’는 이런 배경과 방식으로 한중일 역사 무대에 전격 등장하게 된다. 우리나라 기록에 ‘왜(倭)’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삼국사기》신라본기 혁거세조이다. 왜구에 대한 기록은 그 뒤에도 끊이질 않는다... 2015. 7. 8.
왜구의 시작, 왜구의 나라 왜구의 시작, 왜구의 나라 오랜 시간 일본열도는 대륙으로부터 문명의 수혈을 받아왔다. 이 점은 일본이 인정하려 들지 않아도 분명한 사실이며 이에 의문을 제기한다면 한중일 간 역사 이전에 인류의 이동사 마저 부정하는 꼴이 된다. 역사적 사실은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긴 역사 기간 동안, 새롭고 수준 높은 한반도와 중국의 선진문명은 일본인들을 미개에서 문명 단계로 접어들게 한 원천이었다. 일본열도의 원주민 집단은 한반도의 이주민과 함께 한반도 문화를 받아들이며 점차 일본 열도의 독자적인 성향을 갖게 된다. 일본은 오랜 시간 한반도를 젓줄로 해서 문명을 전수받으며 자체 역량을 키워 온 셈이다. 그에 대한 역사적 사실로 서기 700년까지 일본 주민 중 원주민은 단지 10퍼센트에 불과한데 반해, 선진 문화를 가진 .. 2015. 7. 1.
일본의 한반도 침략 불변의 법칙 일본의 한반도 침략 불변의 법칙 일본이 고대로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한반도를 지속적으로 침략해 왔다는 사실은 ‘불변’이다. 또한 일본 내부의 혼란과 이로 인한 생산수단의 곤란함에서 침구했다고 해도 한반도를 지속적으로 침구해 온 사실 또한 ‘고정 불변’이다. 일본은 지금도 우리나라와 만주지방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일본은 과연 이 같은 침략 행위를 멈출 수 있을까? 불행하게도 금세기 내 일본의 이 같은 침략 근성은 사라질 것 같지 않다. 어쩌면 일본 열도가 존재하는 한, 침략의 근성을 포기하는 일은 영원히 없을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의 궤도는 과거의 궤적에서 크게 이탈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싫든 좋든 일본과 맞대고 있는 동아시아 국가들은 일본의 행동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일.. 2015. 6. 24.
한반도 재침 위기의 징후들 한반도 재침 위기의 징후들 오랜 역사상 일본의 한반도 침입은 주기적으로 이루어졌고, 소규모로 진행되다가 끝내 전면전으로 발전되는 일정한 양상을 보여 왔다. 이 같은 패턴은 불변성을 지니기보다 침구의 흐름을 예측케 한다는 점에서 왜구의 침구에는 뚜렷한 ‘법칙성’이 있다. 침구에는 한․일 간 및 양국을 뛰어 넘는 국제관계의 상수와 변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앞으로 더 긴박하고 구체적으로 일본의 침략이 전개된다면, 여러 가변 요인과 상대적 요인이 작용해 전란을 더욱 부채질하는 불쏘시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작금의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은 국제관계가 요동치는 변수로 크게 적용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예컨대 해방 이후로부터 대미(對美) 의존적 외교 관계를 펼쳐 온 한국이 2011년 8월 ‘동해.. 2015. 6. 17.
정한론(征韓論), 근대 왜구의 침략 연료 정한론(征韓論), 근대 왜구의 침략 연료 조선은 임진왜란 전후 7년간 두 번에 걸친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침략으로 일찍이 볼 수 없던 초유의 전란을 경험한다. “토요토미가 일본을 통일한 후 아시아 대륙을 정복하여 일본 중심으로 조선과 중국은 물론 멀리 인도까지 포함하는 대아시아 제국을 건설”하려 한 것은 자체로 망상적 사고였지만 이 지역 민중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잔혹한 왜환(倭患)으로 아타난다. “야심찬 계획의 첫 수순으로 토요토미가 조선을 침공”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400여년 전의 일이지만, 임진왜란은 그때의 침략행위로 한정되어서는 곤란하다. 또한 피해 당사국인 조선만의 문제로 보아서도 안된다. 동북아 3국과 나아가 임란 이후 명의 멸망과 청의 흥기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4국 전쟁적 성격이 있다. 조선.. 2015. 6.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