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강의/세종 | 창조의 CEO

[창조의 CEO 세종] 법은 단 한 가지라도 잘못된 게 없을 때에야 시행한다

전경일 2009. 2. 3. 17:51
 

‘문자’와 더불어 ‘제도적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법(法)’이다. 세종 이전에도 ‘법’은 만들어 졌고, 개선되어 왔다. 그러나 ‘법’다운 ‘법’이 있었다고 보기엔 미흡했다. ‘법’을 바로 세우지 않는 한, 국가 기강은 물론이려거니와 CEO의 국가 경영 방침을 명확하게 밝힐 수도 없었다. 또한, 형을 집행함에 있어서도 공정성을 꾀했다고 할 수 없다. 세종은 법 집행에 앞서 공평무사한 법 제정에 관심을 갖고 이를 밀고 나갔다. 그가 한 다음의 말은 세종이 법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법을 개정할 때에는 현행법에 열 가지의 폐단이 있고 새 법에 한 가지의 폐단도 없다고 판단된 후에야 바꾸어야 한다. 만일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여 법을 제정하려 한다면 백성들이 불신할 것이다.”(『세종실록』15년 10월 임신)


[법 제정에 완벽을 기하라]


누구나 알다시피, 국가의 가장 기본이 되는 시스템 중에 하나가 법체계이다. 그것은 ‘다스림’의 기준이 된다. 그리하여 조선의 창업자들은 국가 경영의 시스템 확립 차원에서 법에 관심이 많았다. 그 결과 나타난 것이『경제육전(經濟六典)』이다.

하지만 세종은 이 법전이 불완전하다고 여겼다. 그리하여 그는 CEO가 되자마자 법전 연구에 착수한다. 세종은 법에 정통한 율사(律師)들을 불러 모아 놓고「법전 개정 프로젝트 팀」을 발족시키며 이 과제를 수행할 것을 지시한다. 그 자신 법학자이기도 한 세종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법 조항을 일일이 살펴보기까지 한다. 이러한 부단한 노력 끝에 법전 개정 프로젝트는 드디어 4년 뒤에 완성되게 된다.

그러나 법의 향상성과 영구성 그리고 안정성을 중시하는 세종의 눈으로 봤을 때 『속육전』은 오류와 중복 투성이였다. 그리하여 이 법전의 초고는 더 검토되어 1429년 3월에 가서야 인쇄되어 배포된다.


이처럼 법전에 철저를 기하기 위하여 세종은 육전상정소 - 지금의 헌법재판소와 같은 기관 - 라는 특별 기관을 설립하여 다시 연구하게 한다. 1433년 1월에 개정 초고가 나왔으나, 이 초고는 다시 검토의 과정을 겪어 마침내 1435년 11월 『신찬 경제속육전』이라는 이름으로 제정되어 공포되기에 이른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세종은 신생 조선이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법체계를 완성하고, 이를 통해 국가 경영의 법적 기준을 마련하고자 했다. 세종은 철저하게 ‘기준ㆍ표준ㆍ원칙’하에 움직이는 원칙형의 국가 CEO였다. 그리하여 그는 유교적 국가 경영이 법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 하에 자신이 신생 조선의 CEO로 재임한 32년 중 전체 17년이라는 절반 이상의 시간을 조선의 법률 제도를 향상시키는데 진력한다.


그는 이 과정을 위임만 하지 않았다. 그 자신 직접 참여해 감독했다. 법전의 각 조항이 만들어 지면, 그것은 반드시 세종의 감수를 받아야 했다. 이처럼 조선 왕조 500년 동안 세종만큼 많은 법률적 지식을 가진 CEO는 없었으며, 또 철저하게 법에 의한 국가 경영을 시행한 CEO도 없었다. 그리하여 세종은 법전에 문제점이 보이면 항시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팀원들을 모이게 해 토론했고, 그 자신도 몇 가지 핵심이 되는 의견을 개진하기도 했다.

언제나 법은 고대법의 선례들과 비교해 모순이 있는지 검토되었고, 동시에 합리성과 타당성을 테스트 받았다. 법이 생명력을 얻기 위해서는 백성들이 얼마나 그 법을 신뢰하고 받아들이는가에 달려 있다고 세종은 생각했던 것이다. 그만큼 그는 현실적인 국가 경영자였다.


[법은 수시로 바뀌어서는 안된다]


세종의 법에 대한 생각은 지극히 원칙적이어서, 법은 일단 세워지면 어떤 불가피한 사정이 없는 한 쉽게 개정되거나 폐지될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취임 초 젊은 CEO로서 의욕만이 앞서 법률 개정을 했던 사실을 훗날 반성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그는 다음과 같이 자기 반성을 통해 법에 대해 보다 신중한 접근을 하게 된다.


“법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법을 정당한 방법으로 시행하는 것은 어렵다. 일단 법이 세워지면, 부득이한 일이 있더라도 법을 폐지해서는 안된다.”


세종이 이렇듯 법에 대해 확고한 자기 신념을 가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가 유교적 이념, 즉 “국가 CEO는 하늘을 대신하여 만물을 다스린다.”는 ‘대천이물(代天而物)’의 사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늘을 두려워하다보니 당연히 국가경영의 대상이자 목표이며, 동시에 국가 경영 자체를 존립케 하는 원천인 백성에 대해 항시 조심하고 염려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형옥(刑獄)을 쓰면서도 그 목적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세종은 형조에 다음과 같이 지시했다.


“옥을 두는 까닭은 죄를 징계하기 위함이지 사람을 죽이기 위함이 아니다. 사옥관(司獄官)이 마음을 써 살피지 아니하여 수인(囚人)이 큰 추위와 무더위에 혹은 질병에 걸리고 혹은 얼고 굶어 비명에 죽는 일이 없지 않으니 참으로 불쌍하다. 중외의 관리들은 나의 지극한 마음을 따라 무시로 친히 살피고 감옥을 닦고 소제하여 항상 청결하게 하고 질병에 걸린 죄수는 약을 주어 구료하고 옥바라지를 할 사람이 없는 자는 관에서 의복과 식량을 주어 구호하라. 그 중 마음을 써 봉행하지 않는 자는 서울은 사헌부에서, 외방은 감사가 엄히 규찰하여 다스리라.”(『세종실록』 7년 5월 1일)


자칫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는 감옥 내 수인들에 대한 세종의 이러한 배려는 CEO로서 그의 자질을 충분히 짐작하게 만든다. 또한 이를 통해 그가 얼마나 법 집행의 원칙을 지켜가면서도 한편으로 인권을 중시했는지 알 수 있다. 그리하여 그는 억울한 투옥 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적 보완책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이를 시행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실제 재판 과정에서 ‘삼심제(三審制)’의 실시로 나타난다.


[재판은 삼심제로 하라]


세종은 형벌의 남용을 염려하여 ‘경벌주의(經罰主意)’와 ‘진상제일주의(眞相第一主意)’를 강조했다. 그리하여 그는 법 집행에 있어 매우 신중해 취임 초기부터 사형수에 대한 삼심제(三審制) - ‘삼복법(三覆法)’을 말함. - 를 시행했다. 여기서 말하는 ‘경벌주의(經罰主意)’라 함은, 인권이 유린되는 지나치게 가혹한 처벌 행위를 금지시키는 것을 말하고, ‘진상제일주의(眞相第一主意)’라 함은 ‘증거’에 근거한 형집행을 말한다. 이는 지금으로 보아도 선진적인 법 집행의 원칙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 이미 그 시대에도 ‘삼심제’가 있었으나, 우리의 역사는 근ㆍ현대에 들어 오히려 법집행의 원칙이 어그러진 예를 수없이 찾아 볼 수 있다. 더불어 인권 유린의 예는 수도 없이 자행되었다! - 동시에 세종은 법관들의 선입견적인 치죄행위ㆍ고문행위 등을 심히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마침내 3천 8백여자에 달하는 장문의 교서를 직접 작성해 법관들에게 지시까지 했던 것이다. 인권 유린 상황에 대해 국가 CEO가 방관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뚜렷이 엿보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사실에 근거해 주의ㆍ주장을 펴라]


그리하여 세종은 그들이 오판한 사례를 4건이나 들어가며 진상을 밝혔는데, 그 말미에 다음과 같이 오판으로 인한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아아! 죽는 자는 다시 살아날 수 없고 형벌로 다친 자는 다시 이어 놓을 수 없으니, 만약 한 번이라도 실수하면 후회한들 어찌 미칠 수 있으랴! 이것이 내가 밤낮으로 긍휼히 여겨 잠시도 마음속에 잊지 못하는 바이다. 죽을 자로 하여금 저승에서 원한을 품지 않도록 하고 살아있는 자로 하여금 마음에 한(限)을 품지 않도록 하고, 모두의 정(情)이 서로 기뻐하여서 감옥이 하나같이 비어있도록 하며, 화락한 기운이 널리 퍼져 비오고 해뜸이 순조롭게 되는 데에까지 이르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세종실록』13년 6월 갑오)


대인권선언이며, 동시에 시적(詩的)인 표현이기도 한 이 말은 세종이 얼마나 백성을 사랑했는지 너무나도 잘 보여주고 있다. 마치 ‘생생지락(生生之樂)’의 경지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이는 세종이 얼마나 인간에 대해 존엄성을 가지고 이를 가장 중요한 자기 경영의 기준으로 생각하고 있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세종의 이러한 인간 존중의 사고는 그의 모든 정책의 근간을 이루며, 세종시대 가장 강력한 국가적 ‘시스템’의 하나인 법체계에 그대로 반영되었던 것이다.


[세종으로부터 배우는 경영 정신]


* 스스로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원칙을 만들고 이를 지켜나가라. 자신이 세운 ‘법’은 자신에게 더 엄격해야 한다.


* 무엇인가를 만들고 이를 적용하고자 할 때, 먼저 합리성과 타당성을 평가하라. 그것이 신뢰를 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한낱 사문서에 불과할 것이다.


* 의욕만 앞세우지 마라. 간혹 가다가 그러한 의욕이 일을 그르치게 만들 수 있다. 현명한 CEO는 자기 신념에 강하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의욕치’ 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 CEO란 경영을 성립시키는 원천인 고객에 대해 항시 조심하고 염려해야 하는 사람이다. 그것이 그의 자질을 바르게 평가하도록 만든다.


* 조직 내 인권이 유린되는 상황을 방치하지 말라. 직장 내 성희롱이나 다양한 형태의 인권 유린 행위는 결국 당신을 침몰시킬 것이다. 그것은 비단 당신의 사업이 손상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당신의 인격을 지키는 행위이기도 하다.


ⓒ전경일, <창조의 CEO 세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