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경영/르네상스 경영학

라면에 미친 한 리더의 이야기: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

전경일 2025. 4. 25. 11:44

실업자가 개발한 세기의 발명품

세기의 히트상품 인스턴트 라면을 처음으로 개발한 안도 모모후쿠(安藤百福)는 그야말로 기인(奇人)이라 부를 만한 사람이다. 지극한 라면 사랑을 바탕으로, 무려 30년 동안 매일 라면을 먹으며 연구에 정진했으니 말이다. 개발 후에도 30년 동안 매일 라면을 먹으며 연구했다고 하니, 개발 단계에서야 어땠을지 두말할 필요가 없다.

 

1957년 안도는 이사장으로 있던 신용조합이 부도가 나면서 실업자가 된다. 작은 셋방에서 여섯 식구를 부양해야 했던 그는 앞길이 막막했다. 그러던 어느 날 포장마차에서 국수를 먹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는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국수를 만들면 성공하리라는 직감에 휩싸였다. 마당에 작업실을 차리고 먹기 편한 국수 개발에 사력을 다했으나 쉽지는 않은 일이었다. 별 소득 없이 마당에는 버려진 면 찌꺼기만 계속 쌓였다.

 

결국 개발을 포기하려고 할 때쯤 뜻밖의 행운이 찾아온다. 안도의 부인은 남편이 버린 밀가루로 종종 튀김을 만들곤 했는데, 어느 날 안도는 부인이 튀김을 만드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문득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충격에 빠졌다. 밀가루를 튀기면 수분이 증발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는 당장 달려가 면을 튀기기 시작했고 수개월에 걸쳐 실험을 반복한 끝에 ‘순간유열건조법’이라는 기술을 개발했다. 면을 기름에 튀기면 국수가 익으면서 속에 기포가 생기고 국수의 수분이 증발하는데, 그 상태로 건조시켰다가 필요할 때 뜨거운 물을 부으면 그 기포 속에 물이 들어가면서 본래의 상태로 풀어지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이 기술로 탄생시킨 라면이 세계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인 ‘치킨라면’이다. 그의 나이 49세 때의 일이다. 그리고 그때 설립한 회사가 바로 세계적인 라면회사, ‘닛신식품(日淸食品)’이다. 닛신식품은 현재 일본 인스턴트 라면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2010년 대지진으로 일본 전 산업계가 흔들릴 때도 영업이익 345억 엔을 달성하며 전년 대비 26.3%의 성장을 기록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

안도는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는 인생철학을 갖게 된다. 세기의 발명가들을 보면 대개 관찰력이 예리하고 응용력이 뛰어나다. 그것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건 아니다. 자다가도 생각하고, 길을 걷다가도 생각하고, 무의식중에도 끊임없이 생각하며 몰입하였기에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과 행동 속에서 힌트를 얻기도 하고, 남들은 실패로 보는 사건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내기도 했던 것이다.

 

1971년 그는 또 하나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전 세계를 놀라게 한다. 세계 최초의 컵라면인 ‘컵누들’을 개발한 것이다. 컵누들은 식문화사에서 혁명적인 제품이었다. 하나의 용기가 포장재, 조리기구, 식기의 역할까지 다 한다는 것은 누구도 생각 못했던 발상이었다.

 

컵누들에도 안도 모모후쿠의 고차원적 몰입이 이뤄낸 발견이 숨어 있다. 해외 출장을 다녀오던 안도 회장은 기내식으로 마카다미아 땅콩을 받았다. 납작한 사각형의 캔 깡통이 종이 뚜껑으로 덮여 있는 걸 보는 순간, 그의 아이디어 램프에 여지없이 불이 켜졌다. 누구나 손쉽게 어디서든 먹을 수 있는 용기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든 것이다. 치킨라면과 마찬가지로 용기로 쓰일 재료부터 면, 스프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직접 실험하며 검증한 끝에 그는 컵누들 개발에 성공했다. 치킨라면과 컵누들은 지금까지도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라면으로 손꼽히면서 닛신식품을 식품시장의 절대강자로 만들었다.

 

끊임없는 자기 혁신

개발의 난관을 모두 극복하고 신제품을 출시하여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어도 안심할 수는 없었다. 후발주자들이 무섭게 추격하면서 수많은 인스턴트 라면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특히 경쟁자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던 브랜드 인지도나 유통망과 같은 막강한 인프라를 동원해 따라왔기 때문에 주도권을 빼앗기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였다. 닛신식품의 점유율이 하락하기 시작하자 안도 회장은 재도약을 위해 기본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전국의 라면가게를 하나하나 직접 방문하기로 한 것이다.

 

지금은 소비자의 기호에 따라 다양한 맛의 라면을 선택할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라면의 종류는 그리 다양하지 않았다. 특히 최적의 맛을 위한 스프 배합 등이 정량화되기 전이었다. 안도는 일본 곳곳의 숨은 맛집들을 찾아다니며 요리법을 배우고 분석하였다. 식당들의 조리법은 천차만별이었다. 그 모든 조리법들이 신제품 개발의 토대가 되었다. 각 지역의 특성과 소비자의 기호에 따라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는 차별화된 신제품을 출시하면서 닛신식품은 다시금 도약할 수 있었다.

 

닛신식품의 혁신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2005년에는 세계 최초로 우주식 라면 ‘스페이스 라무’를 개발하기도 했다. 무중력상태에서 면과 국물이 분리되지 않도록 하는 기술을 수년간 연구하여 개발했고, 까다롭기로 유명한 미항공우주국의 품질 및 안전기준을 통과했다. 2005년 7월 닛신식품의 우주식 라면은 디스커버리호에 실려 우주까지 가게 되었다. 이 모든 혁신 뒤에는 안도 회장의 라면에 대한 집념과 사랑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불멸의 업적을 이루어낸 ‘미스터 누들’

안도는 회사를 키우는 것뿐 아니라 라면산업 전체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그는 자신의 라면 제조 기술을 독점하지 않고 국내외 업체가 두루 사용할 수 있게 했다. 한국에서 라면이 만들어진 것도 그 덕분이었다. 그가 만약 라면 제조 특허를 독점했다면 라면산업의 역사는 지금과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지금도 라면산업의 중심에는 닛신식품 중앙연구소가 있다.

 

그가 어렵게 연구한 자료들을 공개한 것은 오로지 보다 맛있고 몸에 좋은 라면을 개발하겠다는, 차원이 다른 몰입의 일환이었다. 30년간 매일같이 라면을 먹으며 그가 집중한 부분도 라면의 영양성분이었다. 그는 1964년 일본 즉석식품공업협회를 설립해서 라면 인증기준을 만든 데 이어 1997년에는 세계라면협회를 창설하여 의장이 되었다. 라면의 나라별 품질 격차가 크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품질 표준화 작업에도 힘을 쏟았다.

 

2007년 향년 97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도 안도는 “내가 이 나이에 이렇게 건강한 것은 라면이 건강에 좋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아니겠느냐”며, 누가 먹어도 안전한 라면을 만들겠다는 집념을 놓지 않았다. <뉴욕타임스>는 그의 부고를 전하며 미스터 누들의 업적은 인간이 이루어낸 불멸의 업적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먹을 것이 넉넉해야 세상이 평화롭다

닛신식품은 현재 안도 모모후쿠의 둘째아들인 안도 고키가 맡아 경영하고 있다. 아버지의 대단한 몰입의 열정을 옆에서 봤기 때문일까, 그의 라면 사랑 역시 아버지 못지않다. 업계 최초로 접시와 사발이라는 새로운 용기를 도입하여 접시 컵라면 ‘야키소바 UFO’와 사발 우동 ‘돈베이 키츠네’를 개발하는 등 매년 다양한 신제품을 출시하면서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2010년에는 컵볶음밥을 출시하며 또 한 차례 업계에 돌풍을 일으켰다. 내용물에 물을 붓고 전자레인지로 5분 30초 정도 가열하면 곧바로 요리가 완성되는 컵볶음밥은 편리할 뿐 아니라 맛도 좋아 출시 후 물량 부족 사태가 초래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혼신의 라면왕 안도 회장이 남긴 기업 이념은 ‘식족세평(食足世平)’이다. 먹을 것이 넉넉해야 세상이 평화롭다는 뜻이다. 안도는 한 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흔히 동물 자라에 비유되곤 했다. 재미있는 것은 아들 안도 고키가 자라 같은 아버지에 이어 자신을 두더지에 비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성공할 때까지 라면이라는 본업을 두더지 같은 정신으로 파고, 파고, 또 팔 것이다.”

 

안도 부자를 보노라면 혼신의 힘을 다한 몰입으로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는 모노즈쿠리(최고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는 장인 정신) 정신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