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도전을 생명처럼 여긴 조직의 성공 신화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최후의 만찬>을 작업하는 동안 눅눅한 작업 현장의 습기를 제거하기 위해 난로에 불을 피웠다. 또 그는 실험적으로 역청과 회반죽으로 애벌칠을 한 후에 템페라 화법을 구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난로도 애벌칠도 습기를 제거하는 데 아무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결국 <최후의 만찬>은 완성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표면이 얼룩덜룩해졌다. 레오나르도는 그것이 전적으로 자신의 실수였음을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벽면에 석회를 바르고 그것이 마르기 전에 수용성 안료를 칠하는 안전한 프레스코 화법 대신 안료에 달걀 노른자를 섞어 마른 벽면에 칠하는 템페라 화법을 선택한 것이 결정적인 잘못이었다. 오늘날 심각하게 변형된 그의 벽화를 보며, 우리는 거장도 실수를 통해 배우고 성장한다는 사실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다.
쉬운 것만 찾지 마라!
일본전산(日本電産)은 일본 굴지의 전자부품업체이다. ‘될 때까지 한다’는 그들의 모토는 어려운 상황도 집념과 열정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기업 문화를 보여준다. <일본전산이야기>의 저자 김성호는 그들의 도전과 창조적 기풍에 얽힌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1970년대 원유 가격의 폭등으로 세계 각국은 인플레이션에 시달렸고 앞 다투어 에너지 절감 운동을 펼쳤다. 일본전산의 창업 초기는 이런 경제적 위기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오일쇼크를 어렵고 까다로운 고효율 기술로 승부를 볼 수 있는 기회로 여겼다. 그러나 실적도 변변치 않은 회사가 대기업 담당자를 만나 수주를 따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방법은 더 많이 찾아가서 끈질기게 담당자에게 접근하는 것뿐이었다. 쟁쟁한 기업이 즐비한데다 불황으로 인해 거래처를 줄이려는 상황에서 검증도 되지 않은 회사에 일을 줄 기업은 없었다. 그래서 일본전산은 기존 거래처들이 못하겠다는 것, 어려운 일만 달라는 조건을 내세웠다. 매일 출근하다시피 찾아와 고민거리를 물어보고 문제 해결을 약속하는 나가모리 사장의 모습을 보고 드디어 담당자도 마음의 문을 열었다. 나가모리 사장은 모터의 크기를 석 달 안에 2분의 1로 줄여달라는 다소 무리한 요청을 단번에 승낙하였다.
엄청난 시간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본전산은 처음 약속했던 2분의 1 수준의 결과만큼은 내지 못했다. 그래도 기존 것보다 18% 정도 가볍고 작은 모터를 만드는 데는 성공하였다. 애초부터 반으로 줄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작업을 의뢰했던 담당자는 3개월 만에 18% 축소라는 기적적인 성과에 놀라 자빠졌다. 많은 경쟁업체 중 유일하게 최후까지 남아 연구·개발에 몰두한 일본전산은 그렇게 대기업과의 첫 거래를 트게 되었다. 이 사건은 일본전산 조직 전체에 전해져 특유의 끈기와 도전적인 기업문화를 창조해냈다.
리더의 열정을 전염시키는 가점주의
대기업이나 공기업 대부분의 조직 운용 원칙은 ‘감점주의’다. 실패하면 점수가 깎인다. 그리고 점수가 깎이지 않아야 안정적으로 승진한다. 그래서 실패를 두려워한다. 서로 자존심이나 체면 따위 때문에 실패하고 싶지 않기에, 새로운 것보다는 검증된 일만 하려고 한다. 반면에 일본전산의 조직 운용 원칙은 ‘가점주의(加點主義)’다.
“제대로 하려고 하는 사람의 발목까지 잡는 게 감점주의다. 도약하는 기업을 만들려면 가점주의로 운영해야 한다.” 나가모리가 인재들에게 호통 치며 회사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우면서 얻은 교훈이다. 그는 직원들이 실수하거나 실패한 일에 대해서는 그날로 잊어버린다. 화장실에 가기 전까지는 엄청나게 혼쭐을 내고 다녀와서는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식이다. 실패는 잊어버리고 잘한 일은 계속 점수를 더해 주어 가점주의로 평가해 평균 수준을 위로 올린다. 이렇게 하면 직원 개인뿐 아니라 조직 전체가 점점 성장하게 된다는 논리다.
감점주의 문화에서는 지시받은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이런 문화에서는 혹여 실패하면 평가에서 불이익을 당할 것이라는 인식 때문에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으려 하고, 그로 인해 조직 전체가 정체되거나 활력을 잃는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직원들은 의욕을 잃는다. 적극적으로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다가 실패한 직원보다, 새로운 것을 전혀 시도하지 않은 직원이 훨씬 높은 평가를 받게 되기도 한다. 이것이 감점주의의 폐해다. 대다수의 기업들이 이런 평가 기준으로 의욕 넘치던 직원들을 박제로 만들어 버린다. 이런 조직의 직장인들 중에는 쉬는 날만 기다리거나 시간 때우는 요령만 익힌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가점주의가 없으면 이런 자리 지키는 근성이 강한 사람들이 회사를 지배하게 된다.
일본전산은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 안 된다는 말만 하는 사람은 애초부터 떠나야 할 사람으로 생각한다. 가점을 받을 만한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들의 회사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공감을 갖고 있는 것이다.
1979년, 입사 3년차 주임이었던 핫토리 세이치의 일화는 업계에서 전설처럼 전해지는 이야기이다. 핫토리 세이치는 나가모리 사장의 뜨거운 열정을 이어받아 영업에 열의를 보였고 가시적 성과도 여럿 냈던 활기 넘치는 인재였다. 그러나 경험 부족 탓이었는지 그가 영업한 핸드 마사지기 제조회사가 부도를 내는 바람에 공급한 모터 대금 7천만 엔을 회수할 수 없게 되었다. 이로 인해 일본전산은 순식간에 자금 흐름이 악화되었다.
핫토리는 열심히 뛰고 고생해 얻은 결과가 나쁘게 나오니 실망감이 컸다. 회사에 큰 손해를 입혔으니 미안한 생각에 잠도 잘 수 없었다고 한다. 부도를 낸 회사는 우연히 길거리에서 받은 통신 판매용 책자에 소개돼 있는 것을 보고 직접 방문해 개척한 자신의 거래처였다. 그런 거래처가 부도를 냈으니 핫토리는 엄청난 자책감에 시달렸다.
그러던 중에 나가모리 사장이 핫토리를 불렀다. “이번 일로 자네 공부 많이 했지? 공부했으면 됐어.” 실패의 이유를 깨닫고 앞으로 더 열심히 하면 된다는 말이었다. 나가모리는 열심히 한 일에 대해서는 꾸짖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나 작은 일을 소홀히 했을 때 호통을 친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그 작은 것 때문에 나중에 더 큰일이 터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공부 많이 했습니다. 영업은 물건을 팔고 대금을 회수했을 때에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영업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도요.”
“그럼 됐네. 자네가 손해를 끼쳤다고 생각하는 만큼 다 만회할 때까지 일에 집중하게.”
핫토리에게 이 사건은 엄청난 기폭제가 되었다. 그 후 그는 일본전산 도쿄 지점장이 되었고, 1996년에는 본사 영업 부장, 1998년에는 이사로 취임하면서 국내 영업을 총괄하게 된다. 그는 될 때까지 일한다는 일본전산의 ‘열정문화’를 훌륭히 장착한 주인공이자, ‘실패하면 만회할 때까지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최고 임원에까지 오른 산증인이다.
나가모리는 자신들의 문화를 이렇게 말한다.
“한 가지 일에 실패하고 문책 당해서 회사를 그만두면, 다른 회사에 가더라도 똑같이 그만두게 된다. 한 번 정복하지 않은 실패는 또 다시 엄습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뭔가 새로운 환경만 주어지면 잘할 수 있다는 환상을 버려라. 실패와 포기의 패턴은 유전자 코드처럼 몸과 마음에 세팅된다. 그 세팅을 뒤집어놓아야 동일한 패턴을 반복하지 않게 된다.”
한두 번 시도해서 안 되면 말겠다는 정신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인생도 비즈니스도 결코 만만한 싸움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