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의 경영: 직무 몰입도를 높이는 업무 친화형 환경을 구축하라
르네상스 이전의 피렌체 건물들은 무분별하게 밀집해 있었다. 각각의 다층 주택들은 이웃에 돌아갈 빛과 공기를 방해하면서 점점 더 높이 치솟고 있었다. 14세기 내내 여러 단체와 시민들로부터 탄원이 있었고, 도시의 환경을 개선시킬 목적으로 위원회가 설치되었다. 또 높은 건물들을 낮출 것을 지시하는 여러 법률이 통과되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이는 당국이 법률을 엄정하게 적용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또 한편으로는 건물주들이 법규를 피하는 데 능란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다 넓은 공간, 적절한 환경 속에 세워진 조화롭고 아름다운 건물에 대한 바람은 도시인들에게 널리 퍼져 있던 야심이었다. 1309년 시에나에서는 웅변적인 포고령이 내려졌는데, 그것은 “시 정부에서 책임을 맡고 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시의 미화에 특별한 관심을 쏟도록 하라. 개화된 사회의 중요하고 본질적인 요인은 시민과 외부인들 모두의 즐거움을 위해 공원과 목초지를 갖추는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14세기에 드디어 빛나는 문명을 증언해 줄 건물이 건축되기 시작했다. 이는 앞서 언급된 바 있는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이었다. 그 주위로는 아름답고 널찍한 길과 건물이 조성되었다. 신중하게 계산된 환경 속에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는 피렌체의 푸른 하늘과 빛나는 태양에 자신을 내맡기며 보석처럼 배치되어 있었다. 지척에 세워진 시뇨리아 광장, 베키오 궁전, 로기아 등에서는 중요한 연설이 행해졌고, 세계 각처에서 온 유력 정치인과 성직자, 외교 사절 등이 영접을 받았다. 14세기 후반에는 메디치가의 후원 아래 여러 축제와 경기 대회가 이곳에서 벌어졌다.
오랜 계획의 결과인 이러한 주변 환경과 대로, 야외 공간들은 15세기의 젊은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끼쳐, 그들의 패널화와 프레스코화, 조각 등에 적극적으로 반영되었다. 도시가 풍기는 분위기는 예술가들을 매료시켜 창작 활동에 동기 부여가 되고 몰입도를 높일 수 있었다.
이상적인 조직이란 이렇듯 구성원 개개인이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환경을 제공하는 조직이다. 그 누구든 최선을 다할 것을 명령할 수는 없다. 직원 스스로가 원해야만 최선을 다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기업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경영인은 직접 뭔가를 하는 ‘행위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여건을 마련해 주는 ‘여건 조성자’이다. 현실적으로 다른 사람이 몰입 상태에 접어들도록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어렵지만, 적절한 여건으로 몰입의 가능성을 높여 주는 것은 가능하다.
이런 기업들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각 회사가 여러 면에서 차이를 지니기 때문에 이를 일반화시켜서 말하기는 어렵지만, 일부 기업은 직원들이 행복을 느끼는 직장으로서 두드러진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기업의 창업 초창기에는 지식 노동자들이 열악한 환경에서도 행복감을 느끼며 엄청난 업무 성과를 내기도 한다. 비밀리에 진행된 우주 실험, 혹은 컴퓨터 혁명을 일으킨 선구자들의 지하 작업실이나 제품 창고에서 그러한 예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정신없이 일에 매진하는 시기를 지나면 우수 직원들이 외부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환경에 신경을 써야 한다. 유능한 인재들이 실리콘밸리나 솔트레이크시티 등에 매료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순회 서커스 공연 기업인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는 순회공연을 다닐 때마다 일종의 조립식 마을 광장을 갖고 다닌다. 공연 지역에 도착하면 그들은 친근하고 편안한 분위기의 마을 광장을 만든다. 공연 단원의 자녀들은 빈에 머물건 스톡홀름에 머물건 상관없이 항상 같은 학교에 다니며, 누구나 광장 주변의 친근한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다.
아이들의 목소리를 가까운 위치에서 들을 수 있는 직장에서는 몰입이 일어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다. 따라서 회사 바로 옆에 보육 센터를 설치한다면 육아 문제로 몰입에 방해를 느끼는 직원들에게 편익을 제공할 뿐 아니라 좀 더 자연스러운 생활 방식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한다. 맛있는 음식이 준비되어 있는 구내식당이나 편하게 쉴 만한 공간을 마련하는 것도 삭막한 직장 분위기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몰입에 영향을 미치는 여건이란 반드시 직장 내 근로 현장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가령 매일 겪는 출퇴근 역시 근로자의 생산성과 행복감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 직장인들 중 상당수는 매일 교통 체증을 평균 두 시간 동안 겪는다. 그래서 회사 주차장에 도착해서는 스트레스와 극도의 피로에 시달려 비틀거리는 것이다. 앞선 생각을 하는 기업들은 먼 지역에 거주하며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힘든 직원들을 위해 통근 버스를 운행하기도 한다. 직원들은 연료비와 스트레스를 줄일 뿐 아니라 버스를 타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여유도 갖게 되며, 서로 다른 부서에서 근무하던 동료 직원들과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도 있다.
근무 환경을 개선시킬 수 있는 보다 확실한 방법은 직원들이 자유롭게 말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회사 방침을 마련하는 것이다. 각자에게 주어진 업무에 대한 재량이나 권한도 부여하고, 업무에 영향을 미치는 의사 결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
몰입의 선결 조건
몰입을 유도하는 근무 환경을 조성할 때 리더의 결단이 없으면 실효를 거두기란 불가능하다. 경영진은 제품이나 수익, 시장 점유율에 앞서 직원들의 복지에 대한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더 바디샵의 창립자 애니타 로딕(Anita Roddick)처럼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CEO는 소수에 불과하다. 로딕은 중역 회의나 주주 회의를 개회할 때 이따금 이런 말로 시작한다고 한다. “아무래도 내년에는 우리 회사 실적이 늘어날 것 같지 않네요. 그냥 쉬엄쉬엄 놀면서 일할 생각이거든요.”
만약 목표가 분명하게 이해되지 않거나 잘못 이해되고 있는 경우에는 직원들이 기업의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 건전한 기업이 지닌 특성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으로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커뮤니케이션을 들 수 있다. 만약 직원들이 기업의 비전과 가치에 대한 경영인의 의지를 신뢰하지 않거나, 반대로 경영인이 부하 직원들을 솔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경우에 그 조직은 곧 자멸하고 만다.
신뢰가 기업 내부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관한 좋은 사례가 있다. 사무용 가구 제조업체인 허먼 밀러(Herman Miller)의 CEO 맥스 디프리의 경험담이다. 필이라는 이 회사 판매 담당 매니저가 한 번은 군부대와 수백만 달러에 상당하는 납품 계약을 맺기 직전이었다. 그때 이 부대의 보급 장교는 이 회사의 납품 가격이 최저가로 낙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약 체결의 대가로 뇌물을 받고 싶어 했다. 필은 장교에게 그렇게 할 수 없노라고 대답했다.
“그럼 당신네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야겠소. 당신은 일자리를 잃게 될 거요.”
그러자 필은 이렇게 답했다. “아니요. 우리 회사는 차라리 계약을 철회하려고 할 겁니다.”
어쨌든 이 납품 계약 건은 잘 마무리되었다. 장교가 최저가 입찰 업체에 제품 발주를 하지 않겠다고 상부에 보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필이 그렇게 당당하게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은 설령 계약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CEO가 자신의 입장을 지지해 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필은 상사를 신뢰했고, 상사 역시 필이 회사의 가치에 따라 행동하리라고 믿었다. 필이 솔직하게 “이번 계약을 따낼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계약이 성사되지 않더라도 회사 경영에는 지장이 없겠지요.”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CEO를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직원들에게 이런 점을 분명하게 밝히는 것은 리더의 중요한 역할이다.
기업에서 이런 목표가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는 데는 여러 이유가 존재하는데, 첫 번째는 해당 기업이나 팀, 그리고 개인의 사명이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즉 리더들 또한 회사의 존재 목적을 정의하는 데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혹은 기업의 사명이 중간 관리자들에게 불분명하거나, 부하 직원들에게 불분명한 경우도 있다. 경영자의 입장에서 모든 직원들을 자신과 동일한 지식 또는 이해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것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일을 등한시하는 것이다. 당신의 회사는 어떤지 돌아보라.
목표를 설정하는 능력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몰입의 경영>에서 기업이 목표를 정확히 설정했다고 해서 이것이 몰입을 경험하기 위한 충분조건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보단 직원 개개인이 매순간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목표나 이를 달성하기 위한 방식을 스스로 설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지시를 성실하게 해낼 수 있지만, 난관에 봉착하면 전략을 신속하게 수정하는 데에는 무척 주저한다. 스스로 일을 처리해 나가겠다는 능동적인 자세가 없다면 대다수의 경우 재앙을 초래한다. 자신의 의도한 목표에 계속 집중하면서 필요한 경우에 전략을 바꾸는 능력은 어떤 활동에서든 성공을 공고히 한다. 수행 목표의 유연성을 높이기 위해 리더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람들로 하여금 직접 일을 하면서 배우게 하는 것이다. 필요한 경우에는 실패도 경험하면서 말이다.
안타깝게도 대다수 직원들은 스스로 설정한 목표 없이 업무에 임한다. 이는 곧 객관적인 여건에 구애받지 않고 효과적인 전략을 개발할 수 있는 준비가 안 된 것이다. 유일한 해결책은 관리자가 직접 나서서 이런 직원들에게 과제를 안겨 주는 것이다. 관리자는 직원이 그 과제의 해결법을 스스로 찾고, 그 해결 과정에서 낙오하지 않도록 안내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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