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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의 CEO 세종] 성공이 쉽지 않음은 병이다

전경일 2009. 2. 3. 18:24

 

[성공을 측정하라]  

 

세종은 실무형 전문가들을 발굴해 일을 맡겼다. 그래야 결과도 빠르고, 확실했다. 그는 새로운 인재들을 집현전과 여타 부서로 배치시 그들에게 ‘우리는 이미 성공한 팀이며, 너의 능력은 이 어려운 과업을 충분히 해 낼 만큼 인정받았다’는 점을 부각시키고자 했다.

 

따라서 누구도 낙오자나, 회의론자가 있을 수 없었다. 또한 세종은 그들 스스로 자신의 성공을 관리하도록 했으며, 자신의 능력에 대해 한계를 긋지 않도록 했다. 세종의 이러한 점은 실제 그들의 성과에 있어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그리하여 인재양성의 총사령관인 세종은 스스로 자기 일에 한계를 모르는 철의 두뇌 집단이자, 각 프로젝트를 위한 강력한 테스크 포스팀(TFT)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세종시대 음악업적에 절대적인 역량을 발휘했던 박연도 세종의 이러한 무한(unlimited) 인재 육성 프로그램인 ‘HPI 방식’에 의해 키워진 인물이었다. 프로젝트를 거듭할수록 팀원들은 자기 역량을 초월해 뻗어 나갔고, 이전의 자기기록을 경신함으로써 자신을 물론  CEO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세종은 이 밖에도 악기제작의 일에 전문가 그룹의 일원인 남급ㆍ정양ㆍ장영실 등을 참여시켰다. 여기서 장연실의 역할은 다분히 공학적(工學的) 계산과 기구적(機構的) 분야였다. 이 중 남급은 제기(祭器)주조 및 주전소(鑄錢所)의 감독을 맡은 바 있고, 1420년부터 1422년 겨울에 이르는 기간 동안에는 주자(鑄字)의 일을 맡아 성공시킨 바 있다. 또한 그는 활자제조 및 인쇄분야에서 혁신적인 성과를 내기도 한 기기 제작 분야의 특수 전문인 이었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를 담당한 PM은 당시 공조참판이었던 이천이었다.

 

 

 

 

이천은 대마도 정벌 시 원정용 군선 개발사업에도 참여하고, 원정 부대에도 참여했다. 한편 세종 6년경에는 명나라 천추사로 파견돼 자신의 견문을 넓혔고, 돌아와 새로운 악기를 만들었다. 그는 또 화포제작을 비롯, 환도(還刀)와 창 제작 체계의 정비와 조선(造船) 체계 정비에도 기여했다. 그는 성품이 세심하고 금속공예와 주조법에 조예가 깊어 세종이 주자(鑄字) 인쇄에 관여케 했다. 당시 이천은 ‘경자자(庚子字)’의 완성을 위해 두달 만에 20만개의 주자를 만드는 등 실로 놀라운 성과를 이루어 낸다. 이 밖에도 서운관에서 정초, 장영실, 김빈 등과 노력한 끝에 세종 19년 왕립천문대에 해당하는 대간의와 소간의 등을 건립하였으며, 해시계, 자격루, 옥루, 혼상의 제작에도 깊이 관여하였다.

 

 

 

 

[연속 성공의 발판을 만들다]

 

이 시기에는 어느 한 분야의 성공이 연속적으로 다른 프로젝트의 성공을 가져오며, 프로젝트간 시너지(synergy) 효과를 냈다. 남급은 구리판을 주조하여 글자의 모양과 꼭 맞게 만들어 기존의 동판과 황랍(黃蠟)을 이용한 인쇄방법을 혁신적으로 개선했다. 결과적으로 그는 하루에 두어 장 씩 찍어내던 것을 수 십 장씩 찍어 낼 수 있게 만들었다.(『세종실록』3년 3월 병술) 그 당시로써는 가히 ‘생산성 향상 대상(大賞)’을 받을 수 있을 만한 눈부신 성과를 이루어 냈던 것이다!

 

그는 핵심 엔지니어였다. 그런 그에게 세종은 지속적으로 업무를 부여했고, 이를 철저하게 관리했다. 그리하여 조선의 인쇄술은 이전의 필사시대를 마감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인쇄혁명을 통해 서적 보급이 용이한 새로운 출판 강국의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던 것이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세종대왕이 태어난 해(1397년)에 서양에서는 인쇄술을 발명한 구텐베르그(Johannes Gutenberg)가 태어났다. 인쇄 혁명의 역사적 의의는 유럽의 경우와도 비슷해 인쇄술 발달 이전에는 유럽도 책 수량의 부족으로 인해 대부분 ‘받아쓰기(dictation)’를 해야 했다. 이러한 필사시대의 학자들은 많은 시간과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책을 만들어 냈다. 피렌체의 유명한 책 상인이었던 베스파시아노(Vespasiano da Bisticci, 1422~1498)는 45명의 필사가들을 고용해 22개월 이내에 2백 권의 책을 공급했다고 한다. 이는 5명의 필사가가 1개월 동안에 겨우 1 권 정도를 필사한 셈이라고 하니 인쇄술은 가히 혁명적인 과학기술의 승리가 아닐 수 없었다.

 

 

 

 

[성공이 쉽지 않음은 병이다](『세종실록』4년 11월 29일)

 

 

 

 

세종이 주자소에 지시해 글자 모양을 좀 더 멋있게 고쳐 책을 만들게 하고, 변계량에게 발문을 지으라고 지시했는데, 그 글에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주자소를 만든 것은 많은 서적을 인쇄하여 길이 후세에 전하려 함이니, 진실로 무궁한 이익이 될 것이다. 그러나 처음 만든 글자는 모양이 다 잘되지 못하여 책을 박는 사람이 그 성공이 쉽지 않음을 병되게 여기더니, 경자년(1420년) 11월에 전하께서 이를 걱정하사 공조 참판 이천에게 명하여 새로 글자 모양을 고쳐 만들게 하시니, 매우 정교하고 치밀하였다. 지신사 김익정과 좌대언 정초에게 명하여 그 일을 맡아 감독하게 하여 일곱 달 만에 일이 성공하니, 인쇄하는 사람들이 편리하다고 하였고, 하루에 인쇄한 것이 20여 장에 이르럿다.(『세종실록』4년 11월 29일)

 

 

 

 

이 이야기는 개발품의 품질 개선에 세종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더불어 활자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 했던 모든 엔지니어들이 각고의 노력을 통해 7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내에 성과를 이루어 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모두가 많은 서적을 인쇄해 후세에 전하려는 세종의 교육적 목적 때문에 이루어 진 것이다.

 

 

한편, 프로젝트들은 계속 이어져, 장영실의 공학적 지식과 경험은 악기 제작 분야에서 정밀한 측정과 제작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예를 들어 경석을 채굴하여 그것을 재단해 각기의 정해진 음정을 맞추도록 하는 작업을 500여 매 한다는 것은 현대의 기술로서도 대단히 어려운 작업이었다. 음의 높낮이에 맞춰 돌을 하나 하나 재단하고, 테스트해 봐야 했으니 얼마나 고도의 정밀도과 노력을 요구하는 작업이었는지 상상이 갈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해 세종이 전적으로 지원한 것은 두말 할 나위 없다.

 

 

 

 

세종은 각각의 프로젝트에 대한 지시와 보고 그리고 검토 및 검증 작업을 통해 그 성공 여부와 개선점을 피드백해 주며, 프로젝트를 이끌어 나갔다. 이것은 실로 그 결과에 대해 CEO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성취될 수 없는 일이었다.

 

세종을 비롯해, 그 당시 모든 프로젝트에 참여 했던 핵심 요원들은 실로 성공이 쉽지 않는 것도 하나의 병으로 생각해, 이를 끊임없이 개선하고자 부단히 노력했던 것이다.

 

 

 

 

[세종으로부터 배우는 경영 정신]

 

 

 

 

* 파격적이고, 이전의 구태를 뛰어넘는 혁신적인 조치를 취하라. ‘시대의 한계를 뛰어 넘는’ 경영자가 되지 않는 한, 당신은 경영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없다. 그것이 당신이 이 시대 변혁의 주체가 되는 길이다.

 

 

 

 

* 실적을 중시하라. 실적 없는 경영은 국가든 기업이든 반석위로 올려놓는데, 아무런 ‘힘’도 되지 못한다. 성공한 CEO의 특징은 언제나 실적에 기반 한다는 데 있다. 이는 실제 현실 가능한 목표를 세우고 이를 직접 추진해 나가는 모습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 리더의 중요한 역할의 하나는 조직의 비전을 설정하고, 과업이 수행되도록 지원하는 일이다. 이는 어느 시대의 리더에게나 반드시 필요한 요건이다. 지시를 하려거든, 그 방법도 함께 제시하라. 그것이 결과를 제대로 도출해 내는 방법이다.

 

 

 

 

* 실무형 전문가들을 발굴하여 일을 맡겨라. 그래야 결과도 빠르고, 확실하다. 또 팀을 선발할 때에는 자긍심이 일도록 하고, 그에 따른 어려운 과업을 충분히 부과하라. 그것이 그들의 능력을 한계 긋지 않도록 한다.

 

* 품질 개선에 관심을 가져라. 성공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음을 하나의 병으로 생각하라. 이러한 실패를 개선하려는 시도는 또 다른 분야의 개선으로 이어진다.

 

ⓒ전경일, <창조의 CEO 세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