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의 CEO 세종] 품질 경영의 모범을 만들라
활자뿐만 아니라, 출판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종이다. 제지 능력과 기술은 출판에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세종은 서울에 조지소(造紙所) 를 두어 종이를 생산케 했다. 조지소란 지금으로 얘기하면 국영제지공장에 해당되는 것으로, 여기서는 주로 제지기술과 합리적 생산관리에 관한 업무를 담당했다. 이 공장에는 염색공이 8명, 종이 제조사가 81명 근무하고 있었다. 또 전국적으로도 종이 생산에 관여한 엔지니어는 그 무렵 787명이나 되었다. 이들은 모두 법적으로 우대받고 생활이 보장되는 특권을 누렸다. 그만큼 조선의 종이 생산과 서적의 간행에 기울인 노력을 매우 컸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제지 강국 - 20세기 핀란드가 바로 이랬다. 그리하여 노키아(Nokia)라는 회사가 생겨났고, 그 후 이 회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IT 전문 기업으로 변신한다. - 이 되었다. 따라서 우수한 품질의 종이를 얻기 위해 원료인 닥나무 종자를 일본에서 수입해 들여 와 대량 생산케 했다. 명나라 사신 퉁훼가 그의 ‘조선부(朝鮮賦)’에서 한국 종이의 품질을 높이 평가한 것은 익히 잘 알려져 있다.
세종은 이처럼 꾸준히 R&D를 강화해 나갔다. 그리고 특정 프로젝트에서 파생되는 사업기회도 주목해 지속적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면서 한편으로는 기존 프로젝트들의 성과를 심화시키고자 했다. 그의 이러한 노력은 결국 품질 향상으로 나타난다.
[품질 경영을 하라]
세종은 인쇄 품질을 높이는 데에도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그 만큼 ‘품질’은 중요했다. 세종의 품질관리 경영은 국가경영의 모든 면에서 그대로 적용됐다. 또한 그것은 프로젝트를 맡은 모든 신하들에게도 필수적으로 요구되던 프로젝트 관리조건의 하나였다. 다방면에 걸친 연구와 저술 과제가 부여된 팀원들은 웬만해서는 대충 그 결과를 종료하고, 발표할 수 없었다. 그 많은 프로젝트들이 수없이 검증되고, 다시 쓰여 지면서, 상당한 시간이 걸려 마침내 완수되었던 것은 세종의 철저한 품질 우선주의 정책 때문이었다. 일례로 「훈민정음」 개발 당시 장기간에 걸친 TFT 활동과 CEO 스스로 완벽한 O/S를 만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것은 세종의 품질경영을 엿볼 수 있는 하나의 예이다.
[성과주의가 ‘일등 품질’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일련의 개발 기준은 인쇄분야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인쇄 농도의 대비와 미를 향상시키기 위해 품질 저하에 책임이 있는 부주의한 기술자들은 엄격하게 처벌 받았다. 반대로 성공적인 결과를 도출해 낸 개발자들에게는 상당한 보상이 주어졌다. 이렇듯 세종의 과제 평가 기준은 철저한 성과주의 원칙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하여 교정인과 균자장 - 종이의 각 면에 활자가 선명히 찍히도록 관리하는 일을 맡은 엔지니어 - 은 교정을 하고 나서 교정쇄에 직접 자기서명을 해야 했다. 이 같은 조치는 실로 오늘날 기업의 생산 공정에서 자기 책임주의와 같은 것이다. 그러다보니 누구도 품질에 소홀 할 수 없었다. 품질을 관리하지 않는 한, 비용의 낭비만 가져왔고, 누구도 자기 프로젝트에 대해 주인의식을 갖지 않는다는 걸 세종은 실무 경험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품질 관리의 기준에 따라 주자소에서 일한 직원들은 인쇄 후 읽기 힘든 글자가 있는지 철저히 조사해야 했으며, 만일 실수를 못보고 이를 제출하면 징계를 받기도 했다. 인쇄과정에서 이와 같이 철저한 품질주의를 기울이게 함으로써 인쇄품질은 크게 향상되었다. 이시기 목판인쇄로 한 번의 작업에 300부에서 1,000부에 가까운 책을 찍어내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그러나 활판인쇄는 보통 100부에서 300부 정도만 찍도록 제한되었다. 이것은 활자의 보존을 좋게 해, 품질을 지속적으로 안정시키고자 하는 배려에서 나왔다.
그리하여 양질의 종이, 뛰어난 합금으로 주조된 아름다운 활자, 사이대쪽으로 단단하게 고정된 판 틀에서 찍힌 인쇄는 세종대의 인쇄 수준을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품질을 위해 세종은 앞서 설명한 것처럼, 종이의 질을 개선하고자 일본에서 닥나무 종자를 수입해 재배도 하고, 활자의 주성분인 구리도 수입하게 된 것이다.
세종은 닥종이의 대량 생산을 위해서 세종 21년(1439년) 일본 닥나무의 품종을 도입하여 재배하게 하는 등 매우 과감한 조치를 취한다. 이것은 세종 10년(1428년)에 일본에 갔던 사절의 보고를 참고해 일본 종이의 장점을 기술적으로 받아들인 결과였다.『경국대전』에 지장(紙匠) - 종이 만드는 기술자 - 우대 규정이 있는 것으로 봐서 세종이 얼마나 종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이것은 세종이 지식의 저장과 보존 그리고 전달 매체로써 종이에 대해 바르게 인식했기 때문에 가능한 조치였다.
이 시기 중요한 것은 교서관(校書館, 경적(經籍)의 인쇄와 교정·향축(香祝)·인전(印篆) 등을 맡아 보던 관청을 말한다.) 산하에 있는 주자소(鑄字所)가 금속 활자로 인쇄하는 일을 담당했다는 것이다. 이렇듯 인쇄를 중앙정부가 직접 관리한 이유는 동일한 야금 기술이 무기를 만들고, 엽전을 주조하는 데에도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 앞서 갑인자 주조에 사용된 놋쇠가 미해군의 대포에 사용된 금속의 강도에 필적했다는 말에 주의하길 바란다! - 즉, 핵심 1급 기밀 기술을 정부가 직접 관리하려고 했던 것이다.
또 도화원에 화원으로 등용된 사람이 그림을 그리지 않고 게을리 할 때에는 문책을 하여 벌을 내리기도 했다. 이 일을 비단 화원뿐만 아니라 모든 기능직들에게 게을리 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취해진 조치였다. 이렇듯 인쇄 및 여타 분야에서의 품질제일주의 정책은 실로 세종시대의 품질경영의 전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모든 활동은 세종이 강력한 R&D 활동을 통해 신생 조선의 생산성을 증대시키고자 하는데서 나왔다. 그는 강한 기대감을 가지고 계속 국책 과제를 추진해 나갔다. 그런 의미에서 세종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생산성 향상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CEO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세종으로부터 배우는 경영 정신]
* 효과적인 개혁을 이루어내지 못하면, 생산성 향상은 요원하다. 그럴 때 삶의 환경, 사업의 환경은 피폐해지기 마련이다. 이러한 난관을 돌파하라. 그것이 당신의 임무이다.
* 지금 해결해야 할 가장 근본적이고, 근원적인 문제를 생각하라.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라. 이것은 문제해결을 위한 핵심역량(core competence)의 결집으로 나타난다.
* 조직 내부의 안정을 신속하게 이루면서, 관심을 밖으로 돌려라. 새로운 세상을 감지하게 될 때, 당신은 기회 앞에 서게 된다.
* 삶의 조건을 개선하는 일에 앞장서라. 그것은 작고 사소해 보이나 가장 ‘생활’에 근접해 있는 리더의 의무이다.
* 가능한 한 생산성 향상과 삶의 질 향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라. 흩어진 지식을 모아 ‘지식 경영’을 할 때, 당신은 이와 같은 성공을 얻을 수 있다.
* ‘퓨전’이 되어라. 그것은 준비된 R&D 역량에서 나온다.
* 끊임없이 뛰면서 생각하라. 하나의 프로젝트는 다른 프로젝트들와 연결되면서, 서로를 리드해 나간다. 그리고 그것은 새로운 발전으로 나아간다.
* 가까운 곳, 가까운 과거에서 찾아라. 그곳에 ‘금쪽같은’ 아웃소싱의 대상이 있다.
* 항시 사건과 사물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져라. 그것이 본질을 제대로 깨닫는 당신의 지력(知力)과 경험치를 말해 준다.
* 팀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라. 그들에게 많이 주어라. 그것이 많은 경우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 특정 프로젝트에서 파생되는 사업기회도 주목해 지속적으로 다른 사업 영역으로 확대해 나가라. 그것은 기존 사업의 성과를 심화시키는 것이자, 동시에 품질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 과제 평가 기준을 철저한 성과주의의 원칙에 입각해서 실행하라. 대충 대충하는 나쁜 습관은 결국 비용의 낭비만 가져온다. 이럴 땐, 오히려 누구도 자기 프로젝트에 대해 주인의식을 갖지 않는다.
ⓒ전경일, <창조의 CEO 세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