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강의/세종 | 창조의 CEO

[창조의 CEO 세종] 한글을 다시 본다(3)

전경일 2009. 2. 3. 16:50
 [백성이 부르는 소리를 들어라]


그렇다면 세종은 왜 「훈민정음」을 만들었을까? 그것은 한자를 모르는 백성들과 소통의 수단을 제공하고,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다른 한편으로 세종은 한자에 주목했다.


너무나도 명백하게 우리 글이 아닌 문자가 우리의 생활과 의식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훈민정음」개발은 이러한 냉엄한 현실 인식에 근거한 것이었다. 한자는 그 이질성 때문에 우리의 느낌과 감정의 깊은 곳까지 올곧고 섬세하게 담아 내지 못했다. 또한 복잡하기만 했다. 한자 문화의 영향 속에서 자라나 그것을 자신의 지적 배경으로 하고 있었지만 세종은 그것을 치장하려 들지 않았다. 더구나 세종은 이미 600여년 전에 현대적 경영 이론이기도 한, 복잡함은 결코 단순함을 이기지 못한다는 원리를 잘 알고 있었다.


국가 경영이란 어찌보면 매우 단순한 것이 아닌가? 백성들이 등뜨시고 배부른 것, 이 단순한 것을 얼마나 잘 해내느냐 하는 것이 국가 CEO로서 세종의 가장 중요한 경영 목표가 아니었겠는가 말이다.


외견상 무지해 보이는 백성들의 삶 속에서 그대로 드러나는 생동감은 세종에게 단순하지만, 강한 이미지를 심어 주었다. 행궁을 행차하며 길가에서 만나게 되는 백성들은 세종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혈육으로 느껴졌다. 이런 뜻으로 세종은 백성들이 부르는 소리를 들었고, 그들의 존재를 깨달았으며, 그들에게 다가 갔다. 그리하여 백성들의 마음을 그려내는 백성을 위한 글자를 만들고자 세종은 노심초사했던 것이다.


말을 빗어내는 기관인 입의 모양과 하늘과 땅과 사람과의 조화를 통한 천지인의 원리를 한글이 담아 내고 있는 것은 바로 이같은 이유에서다. 문득, 상상해 보라. 저 먼 대지에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는 사람과 그(그녀)를 밑받쳐 주고 있는 위대한 대지, 그리고 인간의 머리 위를 떠도는 저 영겁의 하늘, 그리고 인간의 입에서 울려나오는 웅혼한 소리... 한글은 그 생김새에서부터 바로 이런 천지인의 원리와 배경을 설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한글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더구나 이 초유의 대과업이 완수되고 나면, 세종은 한글을 통해 국가 경영상 가장 큰 문제를 풀 수 있을 것 같았다. CEO의 지시를 알아듣지 못하는 한, 그가 추구하는 중앙집권의 완수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럴 땐 백성을 위한 ‘위민(爲民) 경영’의 실천이란 요원하기만 한 것이다. 따라서 세종은 나랏말을 통해 전국적 범위에서 초시대적 커뮤니케이션 네트웍 인프라를 구축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처럼 한글은 백성들의 사고의 틀을 갖추는 강력하고 새로운 운영체계(O/S)였다. 이전에 감히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커뮤니케이션 툴(tool)을 세종은 우리 사고체계에 맞게 매우 간단하고 명료한 방식으로 구현해 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시대를 초월해서 영원한 문화의 설계자(designer)이자, 디지털 정보의 경영자이며, 새로운 대중매체의 선구자로 남게 된 것이다.


세종은 알았다. 자구(字句)를 해석하는 것은, 그 해석 하나만으로도 그것을 둘러싼 권력이 반드시 생겨난다는 것을! 그는 바로 문자를 독점하는 권력을 CEO가 되기로 한 결단의 순간부터 해체해 나가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한글 개발에 대한 기득권층의 저항은 상상을 초월했다 ]


그러나 「훈민정음」은 개발이 완료되었어도, 세종25년 겨울까지 반대 여론 때문에 시행에 옮길 수 없었다. 그만큼 기득권층의 저항은 대단했다. 문자를 주요한 권력 쟁취 및 유지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던 시대에 기득권층의 이러한 반대는 세종의 조선 경영권 안정에 적지 않은 위협요인이 될 수도 있었다. 만약의 경우 그들이 딴 생각을 갖는다면 중국의 힘을 빌어 세종을 압박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 등 이른바 ‘한글반대파’ 멤버들의 준동이었다. 훈민정음에 반대하는 그들의 주장은 앞서 최만리가 상소문을 통해 격렬하게 독자 문자의 창제 및 문자의 보편화 현상을 반대한 데서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가자. 최만리 스스로도 밝혔듯이, 그의 주장에는 일관된 모순점이 발견된다. 그것은 독자문자를 가지려는 행위는 바로 “몽골ㆍ서하ㆍ여진ㆍ일본ㆍ서번(티벳)과 같은... 오랑캐의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를 통해 독자문자를 가지려 했던 이들 나라들을 보면 한 때는 세상의 제패하려는(여기서는 팽창주의의 현대적 해석은 논외로 치자.) 시도를 해 보았다는 것이다. 바로 문자 창제는 국운 융성, 국력 상승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금 시기 영미권의 언어가 여전히 강세를 보이는 것은 언어의 사용 하나만으로도 세계 패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세종은 이들 기득권층의 사고에 참담한 생각마저 들었다. 더구나 이런 자들이 집현전 멤버라니! 그리하여 세종은 오히려 지식을 자신의 명분이자 기득권 유지의 수단으로 삼고 있는 그들에게 실력으로 맞대응하는 방법을 찾아내 우회적 방법으로 맹공을 퍼부었던 것이다. 앞서 세종의 질책을 쉽게 바꾸어 말하자면 최만리 등 한글 반대파에게 네가 한글이 뭔 줄 알기나 하면서 말똥구리 똥 운운하는 것이냐?고 강한 어조로 묻고 있는 것이다.


세종은 조목조목 따져 물었다. 이러한 반박논리에는 세종의 음운학에 대한 학문적 실력이 그대로 들어 있었다. “너희가 운서를 아느냐?”는 질의에 이르러 그의 학문적 실력 앞에 제대로 맞서 대항할 능력을 갖춘 반대론자들은 거의 없었던 것이다! CEO의 실력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측면이다.


(다음회에 이어서...)

ⓒ전경일, <창조의 CEO 세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