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의 CEO 세종] 세종 국가 경영 수업을 쌓다
세종의 조선 제 4대 CEO인 세종은 분명 전임자의 기획물임에 틀림없다. 왜 그런가?
태종이나 세종 자신도 잘 알고 있었던 사실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CEO 자리는 적장자(嫡長子)가 승계한다’는 원칙이었다. 이것은 유학을 중심으로 한 조선의 창업 이념으로 봤을 때 결코 쉽게 무너질 수 없는 대 원칙의 하나였다. 따라서 이러한 원칙의 변형은 조선의 사상적 존립 기반을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따라서 누가 봐도 세종은 결코 CEO가 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종은 끊임없이 자기 연마와 준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물론, 태종처럼 언젠가 기회가 오면 ‘낚아 채겠다’는 일념으로 절치부심(切齒腐心)하고, 와신상담(臥薪嘗膽)하다가 얻은 결과는 더 더욱 아니었다. 그는 끊임없는 자기 준비와 자기 수양을 삶의 방식으로 택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능력을 알아 본 매우 혜안 있는 전임 CEO에 의해 발탁된 것이다. 태종은 자신의 부왕(父王)이었지만, 결코 녹녹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 또한 오랜 자기 준비 끝에 그가 선택한 방식대로 CEO가 된 사람이었다.
태종이 칼 위에 역사를 세웠다고 할지라도, 그는 분명 국가를 경영해 본 사람이었다. 그만큼 사람을 볼 줄 아는 안목이 있었다. 그런 ‘무(武)의 화신’인 태종이 자신과는 전혀 다른 캐렉터의 세종을 차기 CEO로 내정한 것이다. 이것은 실로 파격적인 인사 조치이자, 인재 발탁 조처였다. 사실 세종 자신은 병마에 시달렸고, 공부 밖에는 모르는 전형적인 문재(文才)에 가까웠던 것이다.
[세종은 ‘똑ㆍ부’경영자 유형]
세종의 성향을 살펴보면, 그는 CEO의 유형 중에서 ‘똑ㆍ부(똑똑하고 부지런한)’ 경영자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너무 부지런한’ 것이 흠이 될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항상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아 ‘수불석권(手不釋卷)’이란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는 정말 엄청나게 독서를 하였고, 또 총민해 학문에서도 그 어떤 학자도 그를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났다.
그는 특히 역사를 좋아하여 『자치통감강목』 (주희(朱憙:1130∼1200)가 쓴 역사서로 BC 403년에서부터 960년까지 1362년간의 역사를 기술한 책. 역사를 정통(正統)과 비정통으로 분별하고 대요(大要:總)와 세목(細目:目)으로 나누어 기술하였다. 이 책은 역사적인 사실의 기술보다는 의리(義理)를 중히 여기는 데 치중하였고, 너무 간단히 서술해 앞뒤가 모순되거나 틀린 내용이 적지 않은 결점도 지니고 있기도 했다.)을 백 번이나 읽었고, 역사를 통하여 선정(善政)을 한 CEO들의 국가 경영을 몸소 실천 하고자 했다.
CEO가 되기 전부터 그는 국가의 흥망(興亡)과 군신(君臣)의 사정(邪正)ㆍ정교(政敎)ㆍ풍속(風俗)ㆍ외환(外患)ㆍ윤도(倫道) 등 각 방면에 걸쳐 국가 경영에 참고가 되는 도서를 읽었다. 그는 묵묵히 ‘역사’로부터 배웠다. 더불어 그는 왕이 되기 이전에 경사(經史)에 대한 교육을 철저히 받았고, CEO로 취임한 후에도 경사에 대한 공부를 한시도 게을리 한 적이 없었다.
당시 학자들도 어려워 하던 294권에 달하는 엄청난 분량의『자치통감』을 CEO가 된 다음 경연에서 강독하게 하여 3년내 마쳤으며, 주희가 범례를 작성하여 그 제자들이 편찬한 『자치통감강목』을 10번이나 읽었다고 한다. 책은 닳고 닳아서 줄을 다시 묶었을 정도였다.
이러한 깊은 지식으로 말미암아 그가『사기』『한서』 등의 고사를 물으면 당시 경연관들도 제대로 답변을 못해 심지어는 한 과목씩 사서를 전공하여 읽도록 하는 지시하기도 했다. 그는 전문가에게서 전문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세종은 역사학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역대 CEO 들의 장단점을 훤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이것이 그가 조선의 역사를 중국 수준으로 업-그래이드 하는데 크게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