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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의 CEO 세종] 마침내 새로운 CEO가 탄생하다

전경일 2009. 2. 3. 17:11
태종의 후임 CEO에 대한 기대감은 실로 대단했다. 그는 자신을 뛰어넘는 CEO를 그 자신이 뽑았다는 사실에 스스로 흐뭇했다. 그것은 분명 탁월한 경영자의 면모이다. 하지만 그는 한계가 있었다. 그가 역사에 손을 내밀면 역사는 언제나 그의 손에 묻은 피를 가리켰다. 거기엔 수많은 음모와 술수, 그리고 그의 거대한 욕망 때문에 쓰러진 희생자들의 피가 뒤엉켜 있었다. 형제들이 흘린 피는 그 중 가장 비극적인 예의 하나일 뿐이었다. 태종이 가장 ‘선선(善善)의 선(善)’의 경영을 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세종에게 천의무봉하게 경영권을 넘겨준 일이었다. 그것은 매우 질서정연했고, 신속했으며, 단 한 방울의 피도 묻이지 않고 진행된 일이었다.


[네가 CEO의 전범(典範)이 될 수 있겠느냐?]


더구나 태종이 보기에 후임 CEO가 마음에 든 것은 그가 환경에 적응하는 적응력과 유연성이 높았으며, 자신의 능력에 대한 고정관념이 없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고정관념’이 없다는 것은 무슨 일이든 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것은 일이 잘 되었을 경우 훌륭한 전범(典範)을 만들 수 있다는 차원에서 과거보다 더 ‘큰 일’을 해 나갈 수 있는 CEO의 조건이었다. 더구나 세종은 자신의 자질과 능력 위에 끊임없이 자기 혁신의 노력을 얹고 있었다.


노력하는 CEO를 후원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그가 하는 일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기쁜 일이었다. 태종은 CEO 자리에서 물러나서도 바로 그러한 즐거움을 누렸던 것이다! 그는 후임 CEO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뛰어난 경영 감각과 실적을 보이자, 수성의 과정이 매우 순조롭게 진행될 것임을 직감하고, 안도했다. 그것은 창업자의 일원으로서 그가 느끼기에 충분한 ‘안도감’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후임 CEO 세우기’의 일환으로 충성 서약을 대신 받아주는 일을 기획하게 된다. 그날은 바로 세종이 조선 제 4대 CEO로 취임하는 1418년 8월 18일의 일이었다. 이 날 취임식 직후에 벌어진 뒷풀이 자리에서 태종은 그 자신 조선 창업의 실행자이며, 기획자의 일원으로써 뛰어난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해 주게 되는 것이다.


[뜻 깊은 이ㆍ취임식 - 뒤풀이 자리를 피날레로]


잘 알다시피, 조선초의 문예 활동중엔 군신간의 ‘창화’라는 것이 있었다. 군신간의 창화란 CEO와 임직원이 함께 모여 서로 ‘잘해 보자’고 다짐하는 노래 정도에 해당된다. 하였튼, 이ㆍ취임식 직후 바로 그러한 뒷풀이 마당이 벌어졌던 것이다.(실제 군신간의 창화는 이 때만이 아니라 고려시대에도 있었고 조선시대에도 지속적으로 있었다. 세종시대에도 군신간의 창화는 여러 가지 행사의 뒤풀이로 이루어졌다. 지금처럼 3행시 ‘운 떼봐’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운에 맞춰 연구(聯句)를 여러 사람이 돌아가면서 한 구나 두 구씩 짓는 것이었다.)


이날 뒤풀이 자리에는 전ㆍ후임 CEO인 태종과 세종, 효령대군, 영돈령 유정현, 영의정 한상경, 우의정 이원, 그 밖에 종친, 부마, 육대언(六代言)등이 참석했다. 이때, 태종은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연구(聯句)를 짓겠금 유도했던 것이다. 이것은 바로 CEO와 임직원간의 충성 서약이었다. 그들은 연구(聯句)를 통해 군신간의 지위에 따른 역할을 이렇게 다짐했던 것이다.


임금께서 자리를 베풀어 만세를 기약하고(天設錦筵期萬歲) -유정현

백성은 주린 빛 없이 은혜를 고마워 하네(民無彩色感君恩)-전임 CEO 태종

은혜의 물결이 온화한 말씀 속에 호탕하니(恩波浩蕩溫言裏)-하연

나라 운수는 길이 즐거운 가운데 승평하도다(國步昇平永樂中)-이원

온 나라가 근심 모르는 오늘이여(中外無憂是今日)-한상경

군신이 도에 맞추어 조정을 섬기네(君臣合道事朝廷)-전임 CEO 태종

조정 신하가 산악을 불러 수를 비나이다(廷臣祝壽呼山岳)-허연

사자(嗣子)가 몸을 닦아 조종(祖宗)을 받드니(嗣子修身奉祖宗)-전임 CEO 태종

종사의 안위는 신이 책임을 지겠나이다(宗社若危臣任責)-후임 CEO 세종


세종의 취임식을 마친 뒷풀이 자리에서 태종은 여러 신하와 종친들 앞에서 ‘사자(嗣子),’ 즉 후계자인 세종이 몸을 닦아 국가 경영을 잘 할 테니, 여러 신하들도 도에 맞추어 조종을 섬기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전임 CEO의 이러한 전폭적인 지지에 뒤질세라 세종은 ‘종사의 안위를 책임지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시(詩) 구절을 주고 받으며 판을 리드해 가는 태종과 이를 마지막에 가서 받아 안음으로써 깨끗하게 마무리 짓는 후임 CEO의 지혜를 보라. 이 얼마나 손발이 착착 맞는 경영의 인수ㆍ인계 과정이며, 또 전임 CEO인 태종의 사려 깊은 배려인가? 경영권 이양은 이렇듯 매끄럽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세종으로부터 배우는 경영 정신]


* 피를 묻히고 천하들 얻었다고 할지라도 역사는 내려 보고 있다. ‘희생자’가 없도록 하는 것은 ‘선선(善善)의 경영.’ 그런 경영을 다음 CEO에게 넘겨주는 것은, ‘선선(善善)의 선(善)’의 경영이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당신은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 탁월한 전범(典範)은 ‘고정관념’이 없을 때 얻어진다. 그것은 또한 이전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전범의 조건 없이 당신은 결코 드러나지 않는다. 전범(典範)이 돼라.


* 경영의 인수ㆍ인계 과정은 물 흐르듯 이루어져야 한다. 여기엔 전임 CEO의 사려 깊은 배려와 후임 CEO의 감사의 정이 함께 우러나야 한다. 빼앗으려 하지 말고, 주도록 설득하라. 그것이 당신의 낯을 세운다.


ⓒ전경일, <창조의 CEO 세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