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의 CEO 세종] 무엇을 보는 것 만큼, 보는 방법도 중요하다
세종은 조선이 지금까지 어떻게 왔는지 알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백성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듣고 또 보아왔다. 그는 백성들의 기대가 무엇인지 알고, 그들의 니즈(needs)를 대변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그는 진정 자신이 누구를 리드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 했다.
CEO 세종은 자신이 리드하고 있는 대상이 신생 조선의 신하도 백성도 아닌, 가장 우선 순위에 ‘자기 자신’이 있다는 것을 일찌기 깨달았다. 그리하여 그는 실제로 ‘자기 자신’을 가장 중요한 자기 리더십의 적용 대상으로 삼았다. CEO로서 그의 수많은 훈련은 바로 이것을 충분히 입증하고도 남는다.
세종은 그만큼 특별히 준비된 CEO였다. 하지만 세종의 그러한 자기 인식은 백성들의 자기 인식과는 너무나도 갭이 큰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백성들을 위해 문자를 만들고, 백성들을 위해 알기 쉽게 책을 출판하고자 했다. 세종의 눈높이 경영 - 이를 통해 세종은 진정으로 백성을 바라보는 자기 눈을 ‘높일 수’ 있었다. ‘백성’은 곧 ‘하늘’이었던 것이다! - 은 그로 하여금 오랜 시간 인륜(人倫)으로부터 멀어져 있던 백성들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찾게 하였다. 『삼강행실도』는 그런 목적으로 쓰여졌던 교육용 교재였던 것이다.
세종이 중추원과 윤회(尹淮)에게 명하여 지은 교서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오직, 오전(五典)을 두터히 하여 오교(五敎)를 펴는 도리에 주야로 진심을 다하고 있으나 어리석은 백성이 행할 줄을 몰라 ‘그 기준이 없으므로’ 유신에게 명하여 고금의 충신ㆍ효자ㆍ열녀 등 모범적인 사례를 뽑아 그 사실을 기록하고 시찬을 따라 편집하였으나, 아직도 어리석은 백성이 깨닫지 못할까 염려하여 그림을 붙이고, 이를 ‘삼강행실’이라 하였다.”(『세종실록』 16년 4월 27일)
이렇듯 세종은 바로 그 ‘기준’을 만들고자 했고, 그것을 그의 지혜 경영의 한 방법으로 삼고자 했다. 조선의 제 4대 CEO는 이같은 신념을 평생 동안 바꾸지 않았다. 그의 ‘눈높이 경영’은 바로 이같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세종은 ‘지혜 경영’을 관철해 가는데, 왜 그토록 ‘경학(經學)’을 중시했을까? 그것은 그가 한 말에서도 잘 드러난다.
“경서(經書)을 깊이 연구하는 것은 실용(實用)을 위한 것이다. 바야흐로 경서와 사기(史記)를 깊이 연구하여 다스리는 도리를 차례로 살펴보면, 그것이 보여 주는 나라 다스리는 일은 손을 뒤집는 것 같다.”(『세종실록』 7년 12월 8일)
그는 이처럼 나라를 다스리는 실용적 학문인 ‘경학’을 통해 경영의 지혜를 얻고, 다른 한편으로 ‘역사’로부터는 성공과 실패의 국가 경영사를 배워 장점을 취하고자 했던 것이다. 결국 그는 매우 현실적인 공부를 통해 경영의 방법을 터득해 나간 셈이다. 그만큼 세종의 학문은 실제 경영 세계와 맞물려 있었다.
[쇼맨십인가, 지혜로운 대처 방법인가?]
나이가 들면, 인간은 누구나 다 약해지기 마련이다. 즉, 생노병사의 허무함도 깨닫고, 지나온 자신의 삶과 주변을 돌아보면서 과거를 회상하고 반성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엔 반드시 추모의 정이 따른다.
개인적으로도 불행한 경험 - 세종은 창업자들이 경영권 쟁탈전을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출범한 CEO였으므로 개인적으로도 불행한 경험이 많았다. - 을 간직한 세종은 말년에 불교를 가까이 했다. 이는 유교를 국가 경영 이데올로기로 하는 조선의 지배계급에게는 실로 ‘불가(不可)한 일’이었다. 다음에 소개하는 에피소드는 바로 그런 배경에서 생겨난다.
“임금이 말년에 내불당을 지었는데, 대신들이 궁궐 안에 불당을 짓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만류하였으나 듣지 않았고, 집현전 학사들이 간청해도 역시 듣지 않으므로, 학사들이 물러나와 다들 집으로 돌아가니 집현전이 한 때 텅 비었다. 임금이 눈물을 지으며 황희를 불러 이르기를, ‘집현전 여러 선비들이 나를 버리고 가버렸으니, 장차 이를 어찌하면 좋겠는가’하였다. 이에 황희가 대답하기를, ‘신이 가서 달래겠습니다’하고는 곧 두루 모든 학사의 집을 찾아 돌아오기를 간청하였다.”(『정암의 연주와 중봉의 상소』)
지금으로 보면, 국가 주요 정책을 담당하는 싱크 탱크 요원들이 파업을 한 것인데, 세종이 이를 다루는 방법이 재미있다. 그는 학자이기도 했지만, CEO로서도 결코 약한 인물이 아니었다. 약해 보이기 때문에 강했고, 강함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에 진정으로 강한 CEO였다. 그런 CEO가 굳이 눈물까지 흘려가며 호소할 일이 있었을까? 여기에 바로 세종의 ‘유(柔)의 경영술’이 드러난다.
그는 자신의 약함을 드러내 보여줌으로써, 신하들의 마음을 녹여 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논리적으로 한다면 얼마든지 대응 논리도 있었고, - 실제로 그는 그러한 논리로 반박까지 한 적도 있었다. - 강제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이가 든다는 것, 그리고 지혜의 수(數)가 높아진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을 의미했다. 그것은 작은 자신의 수고로 큰 저항마저 봄 눈 녹여내듯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는 이런 측면에서 슬기로운 쇼맨십도 부릴 줄 알았다. 연출을 했다고나 할까? 하지만, 이것은 우리의 위대한 CEO 세종이 더 이상 ‘젊은 CEO’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해 주는 것이기도 했다.
[세종으로부터 배우는 경영 정신]
* CEO는 ‘인프라’와 ‘시스템’ 만드는 사람이다. 그의 경영 성과는 단발적 성취가 아닌, 지속성을 지닌 ‘기반 만들기’에 있어야 한다. 그것이 오랫동안 수성할 수 있게 만든다.
* 변화의 시기엔 사활(死活)의 문제가 어디서든 갑자기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CEO는 냉철한 판단력과 균형감을 가지고 경영에 임해야 한다.
* CEO는 진정한 삶의 경영을 위한 지혜를 얻어야 한다. 그것이 현실을 뛰어 넘는 것이다.
* 지혜의 경영은 혁신의 구체적인 원칙과 방법 속에 나타난다. 그래서 단순한 지식 경영과 구별된다. 세종의 경영 방식이 빛나는 이유는 지식을 통해 지혜를 불 밝혔기 때문이다.
* 뛰어난 기량 속에 적절한 약(弱)함을 취할 수 있는 자세, 그것이 ‘지혜 경영’의 진수다. 스스로 강하기만 한 자는 자신에게 가장 약한 자가 아닌가!
* ‘자아 경영’은 자신의 기대와 감정을 지배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고 수행하지도 않는다.
* CEO는 자신을 대상으로 리더십을 훈련하는 사람이다. 자기를 리드할 때, 천하를 리드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이 바로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대명제이다. 이렇듯 모든 경영은 자기 경영에서부터 출발한다.
* CEO는 강함을 굳이 강하게 드러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약함에 오히려 상대가 승복하기도 한다. 지혜의 수(數)는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녹여내는 재주’다. 그것은 당신이 한편으로 사람과 사람의 문제를 다루는 연출가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전경일, <창조의 CEO 세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