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의 CEO 세종] 경영자의 가장 큰 미덕은 배우는 것이다
세종은 배우는 경영자였다. 삶이 배우는 과정에서 시작해서 배우는 과정에서 끝나는 것이라는 인식을 그는 철저히 했다. 세종의 학구열은 그에게 부여된 국가 경영에 대한 인식과 더불어 독보적인 경영 철학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그러한 연구와 학습을 통해 세종이 추진한 각종 사업들은 최적(最適)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배움에 임해 그는 “무엇보다도 독서하는 것이 제일 유익하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그의 배움의 자세는 자신은 물론 신하들이 지켜야 할 원칙으로 자리 잡았다. 그는 신하들에게 어떤 일을 시키거나, 어떤 기분이 들게 하려면, 스스로 그러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지속적으로 공부하고 연구하며, 현장을 점검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항상 배우라. 항시 손을 놓고 있지 말아라]
세종이 궁중에 있으면서 “손을 거두고 한가히 있을 때가 없었다.”는 말은 바로 세종 스스로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그 자신이 경영의 고수(高手)가 되고자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CEO로서 자기 임무를 알고 한 치의 ‘해이함’도 없이 부단하게 노력했다. 그는 정말로 부지런 했고, 매사에 열심이었다. 오죽했으면 『실록』도 이렇게 전할 정도이겠는가!
“임금으로 즉위해서는, 이른 새벽에 옷을 입고 날이 밝으면 조회를 받고, 다음에 정사를 살피고, 그 다음에 윤대하고, 그 다음에 경연에 나갔는데, 일찍부터 조금도 해이감이 없었다.” (『세종실록』 32년 2월 17일)
[부지런하라. 그것이 시간 관리에 성공하는 길이다]
세종이 이렇게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시간이라면, 아마 새벽 5시경 부터일 것이다. 더구나 한 밤중까지 책을 보며 경영에 몰두했으니, 그의 노력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가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는 각종 프로젝트의 진행 상황, 국제 정세 등에 관한 자료를 참고하면서 실로 숫한 고심을 했다. 그리하여 세상 돌아가는 형국을 제때에, 바로 알고자, 변화하는 세상에 맞춰 ‘중국어’ 공부도 별도로 해 나갔던 것이다.
이것은 학문을 현실 경영에 활용하는 수단으로 삼았다는 걸 의미한다. 실질적으로 국익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경영을 위해 세종은 자기 능력을 배가시키기 위한 실용적인 공부에 결코 소홀하지 않았다.
“근신에게 이르기를 ‘내가 한어(漢語)의 역서(譯書)를 배우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명나라 사신과 서로 접할 때에 미리 그 말을 알면 그 대답할 말을 혹 빨리 생각하여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시었다.”(『세종실록』 5년 12월 23일)
이처럼 항시 공부했고, 또 언제나 국가 경영상 제기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 준비 했다.
이와 더불어 팀원들을 리드해 나갈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은 그들의 역할을 분명히 하고, 그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데 있었다. 그리하여 세종은 자신 또한 그 일을 완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것은 참여로 나타났다.
이렇듯 세종은 자기 혁신과 노력에서 한 치도 부족함이 없었다. 부족한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집념을 보였다. 이처럼 CEO가 스스로 배우고 실천해 나가는데 따라오지 않을 신하들이란 결코 없었다. 이것이 그의 ‘무적의 두뇌 집단’ 을 움직이게 한 힘의 한 요소였음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사료를 참조해 본 CEO 세종의 하루 스케줄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 CEO의 1일 스케줄 *
<오전> 5:00 기상과 동시에 간단한 요기
5:30 조회참석(5일에 한번씩 개최 / 반드시 참석)
6:00 아침공부(조강)
7:00 아침식사(수라상)
8:00 아침문안 인사(대왕대비, 왕대비, 대비 대상)
9:00 승지 및 신료들로부터 업무보고 받음(조계朝啓라 함)
이어 윤대관(輪對官/각 행정부서에서 파견한 관료)으로부
터 업무 보고를 받음
11:30 간단한 점심식사
12:00 신하들과 국가 경영상의 문제 토의
<오후> 1:00 낮 공부(주강)
3:00 상소문 검토, 도승지에게 정책 지시 및 회의 소집
잡무처리(지방파견 관리 및 중앙발령 관료면대. 이때 팔도
의 관찰사나 중요 지역의 수령들은 친히 만나 업무 당부
및 민원 청취)
* 스케줄이 안 잡혀 있을 경우에는 사냥, 격구, 활쏘기 등
으로 체력 단련
5:00 야간에 대궐의 호위를 맡을 군사들 및 장교들과 숙직 관료들
의 명단 확인 및 야간 암호를 정해 줌( 이는 자신의 안전 및
비상 사태에 대처하기 위한 조치임.)
6:00 저녁 공부(석강)
7:00 저녁식사( 수라상+반주)
* 이후 자유시간( 이 시간에도 주간 업무 중 처리되지 않
은 사항은 검토. 이를 을람(乙覽)이라고 함. 대개 밤 9
시~11시까지)
8:00 야간공부(야대)
8:30 저녁 문안 인사
11:00 취침
* 이처럼 하루 일과가 대부분 국가 경영에 관한 공부의 연속으로 이루어 짐.
이 또한 보통 정해진 스케줄이었고, 국가 경영상의 문제나 주요 국가적 프로젝트를 앞두고 밤을 새다시피 했던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한시도 손을 놓고 있을 때가 없었다.”는 세종의 자기 고백은 국가 경영을 위해 얼마나 노심초사 하였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하겠다.
ⓒ전경일, <창조의 CEO 세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