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의 CEO 세종] 백성 사랑이 이 정도는 돼야
세종의 ‘애민(愛民)ㆍ민본(民本)’사상은 ‘공법(貢法)’ 제정 과정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정책을 실시하기에 앞서 세종이 공법의 편의 여부를 묻는 ‘여론조사’를 실시했던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미 그 당시에 매우 선진적인 리서치 방법인 ‘여론조사’를 실시했던 셈이다. 이러한 여론조사는 사실 그의 ‘민주 경영’의 한 모습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이전 CEO들이 취했던 강압적인 방법이 아닌, 백성과 진정으로 호흡을 맞추는 사랑의 실천 행위로 볼 수 있다. 이 점이 세종을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경영자’로 다시금 인식하게 만든는 것이다. 세종은, 공법 시행에 관한 보고를 받고 이렇게 말하고 있다.
“백성들이 좋지 않다면, 이를 행할 수 없다. 농작물이 잘 되고 못된 것을 답사 고험(考驗)할 때에 각기 제 주장을 고집하여 공정성을 잃은 것이 자못 많았고, 또 간사한 아전들이 잔꾀를 써서 부유한 자를 편리하게 하고 빈한한 자를 괴롭히고 있어 내 심히 우려하고 있노라.”(『세종실록』12년 7월 5일 )
세종은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CEO의 정책 추진 취지와 달리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심했다. 오늘날에도 이와 같은 일은 종종 벌어져, 아무리 훌륭한 정책을 펼칠지라도 중간에 ‘새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 게 사실이다. 이런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세종은 현실 인식을 올바로 하고자 했고, 항시 ‘현장을 경영하는’ CEO의 모습을 견지했다.
세종의 이같은 백성 사랑은 다른 분야, 예컨대 그의 위대한 음악적 창작물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그 자신이 직접 작곡한 창작 음악에는 『보태평』ㆍ『정대업』ㆍ『여민락』이 있는데, 이 『여민락(與民樂)』이라는 것이 글자 그대로 ‘백성과 더불어 즐긴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세종의 ‘여민정신’은 5백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면면히 내려와 우리나라 전통음악 연주회에서 빠지지 않는 주요 레퍼토리로 공연되게 된다.
[세종대는 여권 신장의 황금기였다]
한편, 세종은 인권의 사각지대에 주목했다. 이 중 ‘여권(女權)’은 그가 반드시 개선하고자 하는 중점 사항의 하나였다. 그 대표적인 예가 임신ㆍ출산 휴가 법령의 시행이었다. 당시 가장 하층 계급이었던 관비(官婢)들의 임신ㆍ출산의 현실은 인권이 유린되는 가장 처참한 영역이었다. 세종은 이를 개선하고자 자신의 ‘여성관’을 분명히 했다.
“옛날 공노비(公奴婢)는 반드시 아이를 낳고 7일 후에 일을 하였는데, 아이를 두고 일을 하여 어린아이를 상하게 하는 것이 불쌍하여 100일을 더 주도록 명하였다. 그러나 산일(産日)에 임박할 때까지 일을 하고 몸이 피로하면 그 집에 도착하기 전에 아이를 낳는 자가 혹 있다. 만약 산월(産月)에 임박해서 일을 한 달 제해 주는 것이 어떠하겠는가?...상정소로 하여금 이 법을 입안하도록 하라.”(『세종실록』12년 10월 19일)
이처럼 세종은 관비(官婢)까지 기존 산후 7일까지 주던 분만 휴가를 107일로 늘렸다. 분만 전 휴가를 규정하지 않아 큰 문제가 발생했다. 일을 하다가 산기를 느껴 급히 집으로 돌아가던 관비가 길에서 출산을 하는 경우가 생겼다. 이를 개선하고자 세종은 출산 전 휴가를 1개월 더 주면서, 분만 전 휴가가 2개월이 되는 것까지 가능하도록 했다. 그리하여 분만 휴가는 137일에서 167일까지 늘었다.
인류 역사상 관비에게 이와 같은 분만휴가를 줄 생각을 한 군주는 그 예를 찾아 볼 수가 없다. 세종이 분만 휴가에 관한 지시가 있은 지 6일 후 상정소에서는 분만할 달과 산후 100일을 관비의 분만 휴가로 할 것을 청하였고, 그대로 결정되었다.(『세종실록』12년 10월 25일)
그러나 출산 후 몸조리는 산모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세종은 관비의 분만 휴가가 결정되고 난 후 4년 뒤 다음과 같이 지시를 내린다.
“경외(京外)의 계집종(婢子)은 임산월(臨産月)과 산후 100일의 휴가를 주는 것을 이미 일찍이 입법하였으나, 그 남편에게는 전혀 휴가를 주지 아니하고 부리게 하여 구호할 수 없으니 다만 부부가 서로 도와주는 뜻에 어긋날 뿐 아니라, 이로 인하여 혹 죽기까지 하니 진실로 불쌍하다. 이제부터 유역인(有役人)의 처가 아이를 낳으면 그 남편은 30일 후에 부리게 하라.” (『세종실록』16년 4월 26일)
이로써 배우자에 대한 동반휴가가 파격적으로 주어졌던 것이다. 이는 실로 혁신적인 여권 신장이자, 가족 중시 생각으로 지금으로써도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다. 비교하자면, 현재 우리나라 임신 출산 휴가는 법정 기간 90일 이나, 이 또한 직장 생활을 하는 임산부의 경우 출산 후 복직이 쉽지 않아 대부분 출산 전까지 무리해 가며 과로에 시달리고 있는 형편이다. 이는 의심할 나위 없이 산모와 태아의 건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는 우리나라 국가 경영자와 기업주들이 여성, 특히 산모를 어떻게 대하고 있으며, 나라를 이끌어 나가는 다음 세대 주역들에 대해 과연 진정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의심케 만든다. 출산율 최저 현상은 나라의 백년대계를 염두에두지 못한 짧은 정책적 소견과 의심할 바 없이 작은 이익에 매몰되어 빚어지는 현상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역사 이래 백성의 수가 줄며 나라가 흥해지는 경우는 없다는 것을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금의 이러한 정책과 사회적 분위기는 실로 세종대 보다도 한참을 뒤떨어진 것이다. 우리는 이 부분에서 역사상 퇴행해 왔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혁신적인 여권신장은 세종이 아니면 결코 생각해 내지 못할 일이었다. 인권에 대한 그의 생각은 단호하고 분명했다. 이런 일련의 조처들은 실로 세종의 백성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철저했는지 알게 해 준다. 그는 진정 사랑할 줄도, 사랑을 베풀 줄도 알았던 가장 인간적인 CEO였던 것이다.
[세종으로부터 배우는 경영 정신]
* 세종과 같이 오늘날의 국가나 기업 경영자는 ‘대천이물(代天而物)’의 생각을 가져야 한다. 세종이 하늘로부터 국가 경영권을 위임받아 그 소임을 다했듯, 기업경영자는 주주로부터 권한을 위임을 받아 진정 ‘살아가는 즐거움(生生之樂)’의 경영을 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이것이 바로 ‘CEO의 덕(德)’이다.
* CEO란 자기 마음에 비추어 떳떳할 때에라야 ‘위민(爲民) 경영’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이다. CEO는 이렇듯 자기 확신이 있어야 한다.
* 인간적인 끈끈한 정이 경영을 하는데 막강한 휴먼 인터페이스가 되어 준다. 동고동락(同苦同樂)하는 경영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 CEO는 과감히 자기 혁신을 통해 경영의 수준을 끌어 올리는 것이 의무로 부과되어 있다. 이것이 CEO로서 당신의 존재를 의미 있게 만든다.
* 강압적인 방법이 아닌, 남들과 진정으로 호흡을 맞추는 경영을 하라. 그것이 당신을 남과 다른 경영자로 인식하겠금 만든다.
* CEO는 현실을 바르게 인식을 하는 ‘현장 경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그 그 속에서 ‘더불어 즐길’ 줄 알아야 한다.
* 조직 내 여성, 장애인 등 소외 계층에 대해 혁신적인 지원책을 마련하라. 그것이 진정 사랑할 줄도, 사랑을 베풀 줄도 아는 CEO로 만들어 줄 것이다.
ⓒ전경일, <창조의 CEO 세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