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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태왕16

고조선을 계승한 뿌리 고구려인들은 스스로 믿기를 그들은 자신을 ‘천손(天孫)’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들의 국가는 하늘의 자손들에 의해 통치되는 ‘천손국(天孫國)’이며, 그러기에 그들은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또한 제국의 시민답게 고구려인들은 자주 의식이 매우 강했고, 민족 자아성이 무척 강했다. 고구려인의 독자적 천하관은 중국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다시 말해, 이 같은 천손 개념은 중국 한족 왕조의 추상적인 천자 개념과는 확연히 대비되는 것이었다. 당당한 독립 국가라는 점에서 보다 고구려다운 색깔이 뚜렷히 나타난다. 그러기에 모든 면에서 자신감에 가득 찼고 위풍당당했다. 이 같은 믿음은 천하를 경영하는데 거침없이 나타난다. 광개토태왕비와 중원고구려비는 이런 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능비의 서문과 모두루 묘지명에.. 2010. 5. 15.
고구려의 경영이념, 다물(多勿)사상 고구려는 우리민족이 세운 대표적 국가로 만주일대와 한반도 중부 이북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 및 광범위한 해양영토를 보유한 대제국이었다. 기원전 37년에 남만주에서 건국되었다고 하지만, 그보다 더 오래 전에 세워졌을 것으로 보인다. 기록에 의하면, 그들은 북부여를 계승했는데, 북부여는 현재 북만주인 대홍안령 일대에서 남만주 일대에 걸친 반농ㆍ반유목의 나라였다. 고구려는 건국하자마자 주변에 있었던 소국들을 신속하게 병합해 나간다. 확장의 시점을 실기하지 않고, 국운융성의 기회로 발전시킨 것이다. 그리하여 창업 이래 700여년 이상을 존속하면서 독특한 지정학적 환경 속에서 주변종족들을 아우른 세계국가를 일구어냈다. 이 같은 팽창은 고구려인의 진취적 기상이 반영된 것으로, 막강한 군사력의 기초가 된다. 이런 연유.. 2010. 5. 15.
태왕의 무덤을 지켜야 하는 사람들 광개토태왕의 기록 중 의미심장한 것이 있다. 그것은 태왕이 살아서 자신의 능을 지킬 수묘연호(守墓煙戶)에 대해서 명령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존시유교(存時遺敎)’라 한다. 즉, 태왕은 자신이 죽은 다음에 능을 지킬 수묘연호(守墓煙戶)를 언급하고 있는데, 이들이 내원(來源)하게 된 배경, 능을 지킬 인가(人家)의 수, 태왕 자신이 제정한 조상 묘에 비를 세우는 것, 그리고 연호 등을 제정한 것이다. 이는 능비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나는 구민이 더욱 약(弱)질까 염려하니 만약 내가 죽은 후 (나의) 묘를 안전하게 지키려면 단지 내가 몸소 돌아다니며 약탈(전리품 노획을 뜻함.)하여 온 바의 신래한예(新來韓穢)를 뽑아서 (그들로) 하여금 (수묘와) 청소에 대비토록 하라. 이 명령에서 특기할 점은 수묘제를.. 2010. 5. 6.
광개토태왕비는 태왕의 일생기 고구려는 광개토태왕 재임기(391~412)에 이르러 재도약의 전기를 마련한다. 이 시기는 우리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중차대한 역사적 전환점이 된다. 즉, 고조선 이후 오랫동안 염원해 온 고토회복의 기회를 결정적으로 다시 마련하게 되는 것이다.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라는 왕호 그대로 태왕은 ‘토경(土境)’을 널리 열고 국세를 내외에 떨친다. 이는 빛나는 외정(外征)의 결과였다. 하지만 태왕의 경영 성적이 단순히 외정(外征)의 결과만은 아니었다. 즉, 태왕시기 ‘광개토경(廣開土境)’의 본질은 외적 팽창과 더불어 중앙집권을 통해 왕권을 강화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다. 내정 혁신을 통해 내외 문제를 해결하고, 이를 한 차원 높여 국가 경쟁력으로 업 그래이드 한 것이다. 능비는 .. 2010. 4. 25.
광개토태왕, 시대의 부름에 응하다 태왕이 등극한 시기는 오늘날 분단으로 인해 국운 융성이 가로막혀 있는 한반도가 처해 있는 여건보다 훨씬 더 어려운 시기였다. 선대왕인 소수림왕과 고국양왕이 국가체제를 크게 개혁하기는 했지만, 민심은 여전히 분열되어 있었다. 또한 중국의 5호 16국 시대라는 말이 웅변하듯 국내외 정세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이 같은 상황에서 태왕은 18세 소년 왕으로 등극하게 된다. 나아가 그는 재위 20여년 만에 광대한 대제국을 이룩해 낸다. 그는 어떻게 이 같은 엄청난 위업을 이뤄낼 수 있었을까? 태왕의 왕위 계승은 역사적 필연성을 갖춘 드라마틱한 과정이었다. 부친인 고국양왕은 원래 소수림왕에 이어 왕위를 계승하기 전에는 그저 왕제(王弟)로서 군중(軍中)의 한 장수에 불과했다. 그런 이유로 고국양왕의 태자인 담덕(談德).. 2010. 4. 20.
왜, 지금 광개토태왕인가? 고구려를 세계제국으로 확장시킨 우리 역사상 최대영토를 개척한 태왕의 이름은 ‘담덕(談德)’이다. 중국 측 기록인 『진서(晉書)』에는 ‘안(安)’이라고 적혀 있다. 태왕은 374년에 태어나 제 18대 임금인 고국양왕 재위 3년(386년)에 태자로 책봉되었다가, 6년 뒤인 392년 5월에 제19대 국왕으로 즉위하게 된다. 태왕의 큰아버지는 소수림왕이며, 아버지는 소수림왕의 동생인 고국양왕이다. 기록에 의하면 그는 “태어날 때부터 체격이 웅위하고 기상이 늠름했으며, 뜻이 고상하고 성인(聖人)의 풍모를 지녔다.”고 전해지고 있다. 『삼국사기』「고구려본기」나 권근의 『양촌집』에도 태왕이 “허우대가 매우 크고 활달한 뜻을 가졌다”, “어렸을 때의 모습이 체격이 웅위하고 뜻이 높았다.”고 동일하게 전하고 있다. 기록.. 2010. 4.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