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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르하치11

불모의 자연조건이 야생성을 강화시킨다 예로부터 농경민과 유목민이 만나는 접점은 조용할 리 없었다. 거기엔 교역이 있었고, 끊임없는 욕망이 들끓었다. 주로 이 지역의 자연 현상은 최소한의 강우량과 관련지어 생각할 수 있다. 물 부족은 주기적으로 흉년을 가져왔다. 농경민과 유목민의 교역은 쉽게 정치적인 관계를 가져왔다. 힘의 균형이 깨지고 만일 중국의 힘이 약화되면 이는 곧 중국과 민족의 대결구도로 바뀌었다. 예컨대, “거란족이 세운 요는 지리적으로 그리고 행정적으로 북경과 만리장성 바로 북장 현 열하지방에 중심지를 잡았다. 이 지역은 살 수 없을 만큼 춥고(열하에서는 1년중 100일만이 서리가 없는 날이다.) 강우량도 겨우 10내지 15인지 밖에 안된다.” 열악한 자연 환경에서 정복자는 나왔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업도 열악한 조건에서.. 2010. 5. 15.
여진족(女眞族), 그들은 누구인가? 언어학상으로 볼 때 여진족은 퉁구스계에 속한다. 이들은 주로 동북방 삼림지대에서 수렵이나 어로, 농경 생활을 하였다. 그러다가 송화강 상류 지역에서부터 점차 세력을 넓혀나갔다. 이 지역은 한때 우리 역사의 주역 중 하나인 발해가 번성한 곳이었다. 여진이 역사의 무대로 등장한 것은 1114년 여진이 세운 금나라가 한족의 요나라를 밀어낸 때부터이다. 중국 역사의 상당부분이 타민족의 역사라는 걸 보여주는 것은 중국을 다스린 주인이 언제든 변해 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아래 표는 한족과 타민족 왕조 교체시기를 잘 보여준다. 13세기로부터 19세기에 걸친 시기에 중국은 공교롭게도 원(1271~1368), 명(1368~1644), 청(1644~1912)으로 이어지는 왕조 교체기가 있었다. 원은.. 2010. 5. 6.
그때, 동아시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었나? 누르하치가 등장하는 무렵은 원ㆍ명과 명ㆍ청의 남북 교체 중간에 위치해 있었다. 북으로는 몽골과 여진이 병존하면서 몽골의 쇠퇴와 여진의 흥기가 서서히 진행되고 있었다. 대륙의 패권을 겨눌 힘의 중심이 여진으로 넘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전 세계의 주인을 자처했던 몽골에는 당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그 무렵 몽골은 중국에 대한 지배권을 상실한 채 약탈과 조공, 와시무역(瓦市貿易: 시장ㆍ장터에서의 거래를 통한 교역) 등으로 경제를 유지하기에 급급했다. 더구나 변화하는 대명 관계 속에서 몽골은 정치적으로도 체제 통합을 이뤄 내지 못하고 분열상을 보였다. 반면에 여진은 명과 조공ㆍ위소(衛所) 관계를 형성한 이래 와시 무역의 확대, 요동 한인 지배들을 통해 대외경제를 확대시키며 정치 조직의 통합을 .. 2010. 5. 6.
누르하치, 나는 오랑캐다 1583년 한 젊은이가 명나라 군사들에게 쫓기는 몸으로 백두산에 숨어든다. 얼마 후 그는 의협심이 가득 찬 여진 소년 7명과 의형제를 맺고 13명의 기갑병으로 처음으로 군사를 일으킨다. 비록 그에게는 아버지가 남긴 13벌의 갑옷 밖에 없었지만, 이는 13명의 창업 동지의 몸을 감싸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거병을 했어도 다른 동지들은 쉽게 모이지 않았다. 게다가 일족들도 외면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적극적으로 방해하는 자 마저 나타났다. 얼마 지나자 그 밑에는 30여명의 동지들과 수하의 100여명의 부하가 생겨난다. 사나이는 이제 최소한의 자원을 가지고 뜻을 펴고자 일어선다. 때마침 조선에 일어난 임진왜란은 동북아의 세력판도를 급변시켰고, 그는 이 틈을 타 사분오열되어 있던 자기 부족을 통합시켜 나간다. .. 2010. 4. 25.
중국대륙을 M&A한 청태조 누르하치의 경영 비결 겨레의 숨결이 스며있는 광활한 만주는 생생한 역사의 현장이다. 불과 1천 여 년 전에는 ‘천하 경영’을 앞세운 광대한 제국, 고구려가 역사의 중심으로 우뚝 솟았고, 그 후로는 불운한 조국, 발해가 이 땅에서 명멸해 갔다. 빈 땅엔 풀씨가 날아들 듯, 그 후로 이 땅은 영원히 잊혀지는 듯 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오랜 시간 중국의 압제를 받아 온 여진족이 초원의 잡초처럼 무성하게 일어났다. 금(金)에 이어 두 번째로 세운 나라가 청(淸)이다. 여진족의 청은 서쪽으로는 부패할 대로 부패한 명(明)과 맞닿아 있었고, 동남쪽으로는 임진왜란으로 피폐된 조선 사이에 가로놓여 있었다. 청을 세운 이들 여진족은 강대국 틈바구니 숨어 보이지 않게 힘을 축적해 나갔다. 기나긴 굴욕의 세월 끝에 그들은 드디어 창업에 성공하게.. 2010. 4.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