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업관리/LG,GS동업비결_구씨,허씨이야기

돈보다는 기회를 움켜잡아라

by 전경일 2013. 4. 29.

돈보다는 기회를 움켜잡아라

 

해방은 열린 판도라 상자처럼 환희와 혼동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일반 국민들이 환희에 들떠 있을 때 정치인들은 새로운 시대의 권력을 잡기 위해 동분서주했고, 기업가들은 새로운 사업 기회를 부단히 탐색하고 있었다. 위기와 기회가 병존하며 모색과 실천이 불확실성이라는 이름으로 서성거리고 있었다. 전쟁과 함께 모든 걸 잃거나, 최대의 수혜자가 되는 극단적 선택도 부(富)의 격변을 잉태해 내며 만삭의 몸으로 찾아왔다. 주체 못할 격변의 시기에 기업가 구인회에게 해방은 어떻게 다가왔을까?

 

그에겐 소상업적 지주 기업가에서 근대적 기업가로 이동하는 기회로 다가왔다.

 

변화의 시기, 구인회의 두뇌 회전과 실행력은 누구보다도 빨랐다. 우선 근대적 의미의 기업가로 변신하기 위해 토지 일부를 재빨리 처분해 현금을 손에 쥐었다. 세상이 바뀐 방식에 맞추어 새로운 경영의 징검다리를 놓고 저 푸른 미지의 초원으로 건너뛰기 위해서였다.

 

그가 돈보다 기회에 얼마나 충실했는지는 땅 처분 과정에서 잘 드러난다. 의령 땅의 경우에는 단지 1년 소작료만 받고 문서를 넘겨주었고, 함안 땅의 경우에는 본인이 직접 가서 헐값에 떨어내며 현금을 손에 쥐었다. 한 시대가 가고 다른 시대가 오는데 토지 따위에 발목 잡혀 있을 시간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업가로서 기회가 스쳐 지나가는 걸 눈 뜨고 지켜 볼 수도 없었다. 들고 있는 땅 문서를 이부자리에 앉은 이를 털어내듯 팔아 치웠다. 그는 재산의 현금화에 목숨 건듯 바삐 움직였다. 땅을 포기하는 대로 돈이 수중에 들어왔다.

 

이제 땅 대신 다시 돈을 손에 쥔 이상, 좁아터진 진주 대신 부산으로라도 내뛰어야 했다. 부산으로의 진출이라! 부산으로 사업의 본거지를 옮기는 것은 진주 장사꾼 구인회로서는 대단한 결정이었다. 훗날 LG가 국내 시장에서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할 때처럼 일대 결정이었다. 이 판단은 몇 년 지나지 않아 대단히 운이 좋았으며 현명한 결정이었던 것으로 판명난다. 한국 전쟁이 발발하며 전국이 초토화되는데 부산만은 전화(戰火)를 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인해 부산으로 피난민들이 모여들자 시장 판도도 바뀌어 대단히 압축된 시장 공간에서 구인회는 사업에 몰두할 수 있었다. 전국의 손님을 일시에 한 곳에 모아 놓고 물건을 팔아 제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부산에서의 성공은 서울이 수복되고 락희 상품이 전국적인 입소문과 함께 확산되는데 크게 기여한다. 구인회로서는 대단한 행운이 항도(港都) 부산과 함께 한 셈이다. 당시만 해도 그는 훗날 LG가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이 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십 여 년 후에 서울로 본사를 옮기게 될 거라는 점도 까마득하게 몰랐다. 주요한 전략 포지션의 선점을 통한 경쟁력 확보는 훗날 LG의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