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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되 숲을 보고, 숲을 보되 직원들을 보라. 그중 어디 하늘을 찌를 재목이 있는지...

등로 옆의 메숲을 지날 때면 산꾼 경영자들은 빽빽이 도열한 나무를 보며 상념에 젖어든다. 나무들이 이만큼 자랄 때까지 땅은 과거의 어느 순간에 작고 여린 싹을 내놓아 주었을 게다. 씨앗들은 어디선가 날아와 제자리를 잡기까지 수없이 방황하고 자기연민과 두려움에 온몸을 떨었을지도 모른다. 그처럼 힘들게 제자리를 잡고 모진 비바람을 맞으면서도 쑥쑥 자라난 것을 보면 감격스럽다 못해 탄성이 나온다. 대체 어떤 싹이 이처럼 우람한 모습을 만들어냈을까?

기름지고 넙데데한 땅일수록 나무들은 미끈하게 솟는다. 그런 땅을 만난 씨앗들은 누구보다 행운아이다. 그래서 나무도 팔자소관이겠거니 한다. 그렇다고 그들을 키워낸 토양에만 눈이 가는 건 아니다. 비탈길이든 바위틈이든 비집고 들어가 숫한 세월을 인고하며 온몸으로 바위를 붙잡고 뿌리를 뻗어 내려간 녀석들에겐 더 큰 애정이 솟구친다.

인생사 자기가 할 나름이라는 원칙을 고스란히 비춰주는 그 녀석들을 보면 환경 탓만 해온 나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다. 세상 모든 산의 후미지고 황폐한 조건을 이겨낸 끝에 우람하게 서 있는 나무들을 보면 흡사 그늘에서도 묵묵히 제몫을 다하는 직원들을 보는 것 같아 감동이 느껴진다.

 
열악한 자연은 그저 환경에 불과할 뿐이지만 그래도 싸가지 없는 나무들은 산 탓만 한다. 그래서 삐뚤빼뚤 왜곡되게 자라고 서로 뒤엉킨다. 늘 뭔가가 부족하니 더 달라고 투정을 부리는 직원들 같다.

송문호 사장은 늘 메숲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꼿꼿하게 제몫을 다하며 숲을 이루는 나무를 보면서 상념에 젖는 것이다.

‘직원들을 저렇게 키웠다면...’

속 터지게 하고 답답하고 옹그라진 직원들의 모습이 마음속을 휘휘 휘젓는다. 작은 생각만 하는 그들을 볼 때마다 잡목을 보는 듯한 답답함이 밀려든다. 못난 숲을 보면 배퇴감(背退感)과 그 같은 직원을 길러낸 자신에 아쉬움이 앞선다. 그러나 미끈하게 뻗어 올라간 숲에서는 그 숲을 닮은 직원을 길러내고 싶은 간절함이 더해진다.

아무리 회사 사정이 어려워도 가까스로 월급 날짜를 맞춰주면 늘 월급봉투의 두께를 투정하기 십상이고, 자기가 없어서 회사가 굴러가지 않을 것 같다 싶으면 그간 공 들인 거 다 무시하고 냅다 회사를 바꿔 타는 직원, 기술이 좀 있다 싶으면 수시로 무리한 요구를 해대는 직원, 실력도 없으면서 억수로 잘난 체를 하는 직원들의 뒤틀어진 모습을 생각하면 입맛이 탕약을 삼킨 것처럼 쓰다. 그러다가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면 대개 저 살 궁리만 한다. 송 사장은 눈을 질끈 감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내가 바꾸는 게 낫지. 직원들이 내 맘 같지 않다고 탓해 봐야...’

나무는 산을 닮고 직원은 사장을 닮는다고 하던가? 송 사장은 자기 책망을 앞세웠다.

‘내가 회사의 산이니 부족한 직원들이 늘 어떤 식으로든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거겠지...’

그는 산에서 나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직원을 보고 있었다. 산이 펼쳐 놓은 풍경을 보며 경영의 산에 함께하는 숱한 나무를 보는 것이다. 그는 등로를 가로막는 치받이길, 바윗길, 에움길 같은 것들은 산행을 하며 겪는 흔하기만 한 장애물들, 그 장애를 넘어 등로변에 펼쳐진 온갖 나무들을 보며 나무를 키워낸 산을 본다. 등로를 꼭꼭 다지고 선 나무의 인고와 함께 한다.

“대한민국에서 중소기업을 한다는 것은 말이죠, 헛되이 나무를 심고 가꾸는 것과 다를 바 없어요. 기껏 키워놓으면 대기업으로 날아가고 돈 많이 준다면 언제 그랬냐 싶게 훌쩍 떠나가죠. 이런 일이 일상사죠. 그렇다고 대기업처럼 대우를 해줄 수도 없고. 그야말로 인재 고갈입니다. 쓸 만한 사람 찾느라 발품을 팔다보면 복장이 터집니다. 그래서 산을 찾게 되죠. 산에 와서 나무들을 보면 스스로 반성도 합니다. 저런 나무를 품는 산이 부럽고 나는 왜 저런 큰 산이 되지 못하는가, 왜 큰 나무들을 품지 못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죠. 내가 아무리 커다란 비전을 얘기해도 그때뿐이고 누구도 사장이 기울이는 공은 알아주지 않아요. 참 씁쓸하죠.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잡목만 우거진 산을 보면 불을 지르고라도 종자 좋은 나무로 다시 심고 싶다는 송 사장은 그래도 산을 내려갈 때는 다시금 마음을 다잡는다고 한다.

“우리 업계에서 잘 알고 지내는 분이 있는데, 그분은 사업한 지 한 30년 되셨어요. 그분이 그러시더군요. ‘여보쇼, 송 사장. 너무 실망할 것 없어요. 당신도 언젠가 모시던 사장 섭섭하게 하고 나온 거 아니오. 사장은 전생에 죄가 있어서 하는 거라니까.” 그러면서 그 분은 ‘중소기업은 그저 못난 나무가 산을 지킨다’고 생각하고 경영하는 거라고 하더군요. 30년을 겪어보니 그 말이 딱 맞더래요. 참 마음에 와 닿는 말이더라고요. 하지만 좀 억울하긴 합니다. 숱하게 소주잔 돌리고 상갓집 찾아다니며 밤샘하고 애 입학이나 졸업식 챙겨줘 가며 할 일 다 해 줘도 쥐꼬리만한 잇속에 떠나더라구요. 개중에는 형님 소리하며 달라붙던 녀석이 꼭 같은 업종의 회사를 차리기도 합니다. 실망스런 인간 참 많습디다.”

송 사장이 산을 찾는 이유는 땀을 실컷 흘리고 정상에서 바람을 맞으면 인간사에 찌든 때가 모두 씻기는 듯해서라고 한다. 마치 뽕을 맞은 것처럼 시름이 훌훌 날아가는 맛에 취해 산에 오른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중소기업 사장들이 산에 오르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물론 그 이유는 산 아래서도 수없이 생겨나지만, 무엇보다 배낭을 짊어지고 산에 오르면 산은 어떤 식으로든 위안을 주고 가슴을 쓸어준다. 송 사장은 자신이 전생에 산에 뿌리 내린 나무라 그곳을 찾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덧붙여 자신은 뭐 좀 해보려고 산 아래로 내려간 홀씨에 불과해 바람만 불면 이리저리 흔들리며 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한숨을 지었다.

아마도 많은 산꾼 경영자가 그의 말에 공감할 것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산을 탄다. 숯처럼 새까매진 가슴으로 눈물을 삼키며 산을 오른다.
ⓒ전경일, CEO 산에서 경영을 배우다 


올랐던 산이 낯설어질 때는 산 아래에서 어떤 변화를 겪은 것이다.

몇 해 지나 올랐던 산을 다시 올랐을 때, 뭔가 낯선 느낌에 젖을 경우가 있다. 대체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세월에 따라 산도 달라졌겠지만 사실 산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내가 달라진 것이다. 산은 늘 그랬듯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지만 산꾼은 산 아래에서 무수히 많은 변화를 겪고 다시 산을 오른다. 인생사에는 숱한 변화가 찾아들고 산꾼의 삶과 사업은 그 회오리에 휘둘리게 마련이다. 어느 것 하나 제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산만이 홀로 제자리를 의연히 지키고 있을 뿐이다.

산이 달라졌는가, 아니면 내가 달라졌는가? 산꾼 경영자는 산행을 하면서 산 아래에서 던졌던 화두를 다시 끌어안고 간다. 답을 찾지 못한들 어떠랴. 그들은 이미 산행만으로도 제행무상(諸行無常)의 세계에 빠져든다. 변화에 휘둘려 그 낯선 칼날에 베어져도 그들은 오늘도 걷는다. 걸으면서 세상사를 조망하고 대자연에 지친 심신을 풀어놓는다.

하지만 스스로 지켜야 할 것이 있다. 계절의 변화처럼 무궁무진한 자연 변천사의 현장에서 그 조화를 읽어내고 원칙을 가려내 이를 가다듬어야 한다. 그래야만 중심을 반듯이 세울 수 있다. 결국 경영의 길은 뚜렷한 주관적 선행의지를 드러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햇봄이 찾아든 지리산에 이제 막 봉오리를 터뜨린 떡갈나무 숲을 지나며 구인성 사장 일행은 잠시 멈춰 섰다. 목덜미로 상쾌한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잠시 간단한 행동식(行動食)으로 에너지를 보충하고 다시 7부 능선을 향해 치달을 요량이었다. 서울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구례역에 도착해 노고단까지 버스로 이동한 다음 새벽행군을 시작한 지 4시간 남짓 지났다.

7, 8년을 의기투합해 산꾼으로 동행한 그들은 별별 사연을 다 겪으면서도 경영현장에 서 있는 경영자의 커뮤니티라는 인연의 끈을 끈덕지게 이어왔다. 물론 경쟁도 하지만 신산한 나이에 접어들며 정보도 교환하고 경조사도 챙길 때가 됐다는 것을 몸으로 체득한 사람들이다. 저가 중국산의 도전, 한미 FTA의 향방, 환율, 구인난, 갈수록 쪼그라드는 이익 등 사방팔방이 도전거리였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밥그릇이 날아갈 판인 터라 사업의 깔딱고개를 오를 때 서로 의지가 됐고 자연스럽게 협력이 강화됐다.

무엇보다 그들을 긴장시키는 것은 내가 지금 하는 일이 글로벌 무한경쟁과 무관한 것은 아닌지, 언제 어디서 추격해올지 모르는 경쟁자에게 추월당하는 것은 아닌지, 나만의 눈으로 사업을 바라보며 비즈니스 지형도를 읽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상시적 두려움이었다. 그것은 스스로를 경계하는 반성의 자세였고 본질이 아닌 겉모습에 취해 발을 헛디디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의 산행은 남달랐다.

“봄꽃이 지천인 산야를 누비며 내가 스스로 경계하는 것은 이 풍경에 혹시 현혹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산의 꽃무리에 취하면 탄성을 지르면 그만이지만, 만약 내가 사업을 그런 눈으로 바라본다면 나는 경영의 어느 지점에선가 실족사하고 말 겁니다. 화려한 봄꽃들을 볼 때마다 사업을 하며 온갖 화려한 것에만 눈을 빼앗겨온 것은 아닌지 자문하게 됩니다. 돈, 명예, 사회적 위신, 체면에 신경 쓰느라 사업의 본질에 제대로 다가가지 못할까 염려되는 겁니다. 봄 한철만 화려하게 피어나는 꽃처럼 한살이 경영을 해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죠. 그럴 때는 밤잠이 안 옵니다. 하지만 산에서 비박을 할 때면 그런 두려움은 훌훌 날아가죠. 자연은 내게 엄청난 잠언이자 위안으로 다가옵니다.”

한참을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던 원로회원 임우성 회장이 이제 막 봉오리가 벌어지는 나무를 가리키며 구 사장의 말을 받았다.



“내 생각에 사업이란 저런 거요. 저 나무들을 보세요. 왜 위에서부터 봉오리가 벌어질까요?”

나는 임 사장이 가리키는 나무 끝을 올려다보았다. 수없이 산을 올랐지만 나뭇잎을 키워내는 봉오리가 위에서부터 펼쳐진다는 것은 처음 깨달은 사실이었다. 임 사장이 말을 이었다.

“그건 성장 때문입니다. 위로 영양분을 끌어올려 성장을 도모하고 햇빛을 가장 많이 받는 위의 잎으로부터 광합성을 받아 줄기와 뿌리로 영양을 내려 보내 튼튼하게 하려는 것이지요. 기존의 뿌리와 줄기는 이들이 제 역할을 잘하도록 버팀목이 되어 줍니다. 안정과 성장의 선순환 구조라고 할 수 있는 거죠. 나는 산행에서 만나는 모든 사물에 경영의 신이 들어 있다고 생각해요. 이를 테면 경영 애니미즘이라고나 할까요? 가르침은 어디서나 얻을 수 있어요. 산 아래에서든 산 위에서든 아니면 길 위에서든 사무실에서든... 내가 우리 회사의 성장에 목말라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자라지 않으면 지진아가 되거나 고사(枯死)하고 마니까요.”

나를 비롯해 일행은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젊은 회원들은 ‘아!’ 하고 탄성을 지르는 듯했다. 그들은 고참 회원들이 머리가 희끗한 나이에도 정력적으로 사업을 하는 이유가 산을 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세상과 사업을 조망하는 통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사업은 하늘을 찌르는 나무를 키워내는 일입니다. 그런 나무조차 겨울이 되면 나뭇잎부터 먼저 떨어뜨리지요. 바로 이때가 속으로 알차게 성장을 도모하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겨울에 자란 부위의 나이테는 짧고 나무는 단단해집니다. 내실 다지기지요. 우리도 사업을 이렇게 할 수 없을까요? 산은 참 많은 걸 가르쳐줍니다.”

나는 산꾼 경영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무가 그렇듯 산도 화산폭발이나 지각변동을 통해 지금의 봉우리를 키워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임 회장이 다시 배낭을 둘러매자 누구도 힘들다는 내색을 하지 않고 앞서 걸어갔다. 오히려 그들 속엔 의지가 솟구치는 듯했다. 오늘밤에는 그들이 비박하는 언저리에서 하늘까지 쭉쭉 자라는 나무를 떠올리며 잠을 청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전경일, <CEO 산에서 경영을 배우다>



인문경영/CEO산에서 경영을 배우다 | Posted by 전경일 2010/02/22 13:43

북한산에서

올 해의 마지막 눈을 볼 것 같은 겨울 북한산행을 다녀왔습니다. 앞에 보이는 게 숨은 벽 능선인데요, 우이동 쪽인 동남쪽에선 안보인다고 해서 숨은 벽이라고 하죠. 병풍처럼 치둘러선 능선을 보며, 겨울산의 매력에 푹 빠져들었습니다. 이제 머잖아 잔설마저 사그러들면 봄이 점령할테고, 그러면 겨울의 요정들은 한 동안 북극으로 사라졌다 다시 오겠지요. 산은 죽은듯 조용하지만, 곳곳에 봄을 숨겨두고 있습니다. 얼음 밑으론 눈 녹은 물이 흘러내립니다. 세월이 이렇듯 가고, 한 인생이 또 다시 다음 계절을 맞이합니다. 올 핸 당차게 글을 써야 할 것이로되, 인간의 진면목을 드러내는 글잡이에 가늠없는 붓을 일으켜 세워야 할터인데...

 ⓒ전경일

 


 

벗들과 함께 눈 덮힌 북한산 산행을 다녀왔습니다. 아침에 만나 국수를 한그룻 말아 먹고 오른 길은 눈으로 덮혀 마음마저 청량했습니다. 산은 어느 산이든 겨울산이구나 하는 생각을 언제나 하게되는군요. 마음까지 다 맑아지니까요. 볕드는 곳에는 바위를 하는 분들도 계시고... 벗들과 새해에는 건강하고 하는 일이 다들 잘됐으면 좋겠다는 덕담을 주고 받다보니 하루해가 서녘에 비키기 전에 진관사 앞으로 내려서게 되더군요. <창조의 CEO 세종>이란 졸저에서도 썼었는데, 이 절에 600여년전인 세종 24년 사가독서를 하러 성상문, 신죽주, 박팽년 등 집현전 학사들이 공부하러 들게 되지요. 다음 해 일본어에 능통한 숙주가 일본으로 떠나게 되는데, 떠나며 친구인 성삼문에게 내 이름에 배가 많아(숙주, 범옹) 이렇게 해외 출장이 잦다고 농담을 하게 되지요. 말이 씨가 되었는지 훗날 이 자리에서 공부하던 친구들은 계유정란 때 다들 사육신으로 죽게되지만 숙주만이 배를 갈아 타며 숙주나물이란 별명을 얻게됩니다. 600여전에 살아있지만 다들 죽고 역사의 한쪽에 이름 석자나 일화로 올리고 마는 게 유한한 인생의 본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걸 알면서도 불나방이같이 구는 인생들이 모여 있는 도심으로 삼각산을 에돌아 다시 들어옵니다. 주말, 눈 내린 산이 좋듯 그렇게 깨끗한 마음이 되었으면 합니다. 


마음의 산을 진정으로 갈고 닦아라. 산이 대답할 것이다.

“D그룹은 내가 15년간 몸 바쳐 일한 회사였지. 당시에 세계경영을 부르짖을 정도였으니 얼마나 자부심이 넘쳤겠어. 헌데 총수 한 사람이 전횡을 일삼다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보고 내가 쌓은 산이 진산(眞山)이 아니라, 허산(虛山)이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지. 한번 무너지기 시작하니까 순식간이더군. 하루아침에 내 청춘을 송두리째 바친 경력도 날아가고 어디 가서 그 회사 얘기를 해봐야 돌아오는 건 뻔했어. 망한 회사라는 이미지가 꽉 들어박혔으니까. 회사가 망하면서 내 모든 걸 잃어버린 거야. 그때 인생의 목표를 다시 잡았어. 어차피 취직이 안 된다면 내 산을 올리자고 말이야. 자그마한 동산이라도 좋으니 내 산을 만들자고 생각했어. 그렇게 해서 지금의 회사를 창업한 거야. 처음부터 난 원칙을 세웠어. 앞동산, 뒷동산이어도 좋으니 내실 있게 하자. 사업을 접으면 접었지 차입은 금물이라는 것이 내 원칙이었어. 내 젊음, 내 사회생활, 내 경력과 함께 무너진 경영행태를 반면교사로 삼은 거지.”

산행 중에 휴게소에서 점심을 끓여먹으며 남윤기 사장은 회한이 묻어나는 좌절과 희망을 들려주었다. 주말을 낀 연휴라 그런지 백두대간의 꼭두인 강원도 산에도 사람들이 적잖게 모여들었다. 코펠이 달각달각 끓어오를 때 나는 라면을 넣었다. 돼지고기를 듬뿍 넣어 끓인 그의 김치찌개를 보니 소주 한 잔이 그리웠지만 산행 중의 음주는 금물이다.

“한동안 술에 절어 지냈지. 되는 게 있어야 말이지. D그룹에서 명퇴금 얼마나 받고 나왔냐, 우리 하청업체라도 소개해줄까, 이 어려운 시기에 참 걱정이다, 뭐 특별한 계획이라도 있냐... 친구들의 이런 말이 왜 그렇게 성가시고 짜증스럽던지. 사실은 다들 누구 처지를 고민해줄 주변머리도 못 되는 입장이었거든. 술을 마시며 한 1년을 보냈나? 퍼뜩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때가 마흔다섯 살이었어. 답답한 마음에 이전 직장 사람 중에 산에 오르는 동료와 막걸리를 사들고 북한산에 올랐지. 처음에는 갈 데도 없고 답답해서 올랐는데 거기서부터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된 거야. 산에만 올라가면 이상하게도 빨리 내려가서 뭔가 내 일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마구 밀려들더라고. 다급해지기도 하고. 그런 이상한 설렘, 흥분을 느끼며 내려오면 이놈의 세상은 또 다시 막막하기만 했지.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간신히 지금의 사업거리를 잡았어.”

남 사장은 산과 그 아래를 배회하다 자신이 해온 일이 곧 산이고, 사람이 산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그 산을 헤치며 다니다 오퍼상이라는 사업 아이템을 잡았다. 그는 이전 회사의 인맥을 최대한 활용해 홍콩 바이어를 물색했고 거기서부터 조금씩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종자돈이 마련되자 조그마한 부품 공장을 하나 인수했다. 말이 좋아 부품 공장이지 가내수공업체나 다름없다. 착실히 내실을 다지면서 납품원가를 낮추는 전략으로 회사는 단단히 여물어갔다. 당초의 결심대로 작지만 튼실한 그의 공장은 부채가 전혀 없다.

“내가 직장생활과 사업에서 배운 것은 진산을 쌓아야 한다는 거야. 아무리 작아도 사업체는 탄탄하게 운영해야 하고 진심을 다해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자세로 산을 쌓아야 하지. 나는 사업을 키워 대기업이 되는 것은 바라지도 않아. 바란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많은 사람이 자기 능력은 생각지도 않고 허욕에 들떠 있지. 속빈 강정 같은 회사는 사장뿐 아니라 직원들에게도 죄악이야. 물론 외형과 확장도 중요하지만 나는 언제나 부채비율을 제로(0)로 유지하려고 해. 자칫하다간 공든 탑을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가까이에서 봤기 때문에 내가 이 원칙을 버리는 일은 앞으로 사업을 하는 한 절대로 없을 거야. 남의 돈은 정말 무서운 거야. 그때 온 나라가 그 정도 겪었으면 됐지 또 그럴 수는 없는 거잖아.”

그는 최근의 기업 행태를 날카롭게 꼬집었다. 여전히 기업들이 확장 중심이고 차입 경영의 무서움을 모르며 외형만 늘려 가면 그룹이 되는 줄 안다며 질책이다. 나아가 오너 일가의 전횡이 예전과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며 개탄했다.



그는 진산을 위해 오늘도 산행에 나서는 것인지도 모른다. 산에 오르면 과거의 자신이 비춰지고 밥술께나 먹게 된 지금에 감사하게 된다고 한다. 그는 산에 오르기 위해 집을 나설 때마다 만나게 되는 걸인들 앞에서 언제나 발걸음을 멈춘다.

“사람 팔자 한순간이지. 그 사람들을 보며 미안한 마음을 갖는 게 나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야. 마음이 부자라야 진심으로 산을 오르고, 올리지.”

그와 나는 배낭을 챙겨 어느새 고갯마루를 향하고 있었다. 오늘밤에 달이 휘영청 떠오르고 달 빠진 술잔을 털어 삼키면 그가 그간 묵혀온 이야기보따리를 죄다 풀어낼 것만 같았다.

허산(虛山)은 위산(僞山)이요, 진산(眞山)은 실산(實山)이라!

마음속에서 진산 얘기가 계속 맴돌았다.
ⓒ전경일, <CEO 산에서 경영을 배우다>


조약돌 하나에 세상 모든 게 들어 있다.


간혹 어떤 사람은 상처를 치유할 목적으로 산을 찾는다. 산에 와서조차 버리지 못하고 상처에 베이는 사람도 있지만, 대개 그 상처는 나무등걸처럼 썩어 없어지거나 고사목이 되곤 한다. 나아가 그루만 남은 둥치 에서 새로운 희망의 싹이 트기도 한다. 고통은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가? 그들 내면의 꿈틀거리는 소생력을 보면 자연이 주는 치유력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무엇을 표준이라고 정의할 수 없는 삶의 다양성, 무수한 등로와 하산길의 갈래를 보면 자연스럽게 인생이 연상된다. 길을 닮은 사람들, 인생을 닮은 길... 바로 그 길에서 한 산꾼을 만났다.

“철석같이 믿었던 사람에게 등에 시퍼런 칼을 꽂히는 기분이 어떤 줄 아십니까?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그 기분 모를 겁니다. 동업이 깨지고 사업이 무너지면서 재산을 몽땅 날린 사람의 눈에는 절망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내가 얼마나 깊이 절망감에 빠져들었던지 ‘저 사람 다 망가졌다’는 소리도 들었어요. 사업체 생각만 하면 화가 치밀어 목이 뻣뻣해지고 몸에 쥐가 나서 손조차 펼 수 없었습니다. 이를 갈면서 악에 받쳐 발악을 하기도 했죠. 억울하다고, 이렇게 무너질 순 없다고, 반드시 갚아주겠다고... 간이 엉망이 되면서 얼굴이 새까맣게 타들어갔죠. 거기다 아내가 점점 집을 비우기 시작하고... 그러다가 산꾼 친구의 권유로 산에 오르게 됐지요. 지금은 내 손이 부서지나 이 차돌이 부서지나 내기 하면서 어금니 꽉 깨물고 삽니다. 또 다시 당할 수는 없잖아요. 요렇게 단단하게 돈 벌 겁니다.”

산행에서 만난 김명철 사장은 자신의 의지를 드러낼 때마다 어김없이 입에 힘이 모아졌다. 눈은 매섭게 빛났고 주먹을 쥔 손이 파르르 떨렸다. 그가 손을 펼쳐보이자 손안에는 하도 만져서 반질반질해진 사리 같은 차돌이 들어 있었다.



“앞으로 내가 사업을 다시 한다면 이 차돌처럼 단단하게 할 겁니다. 과거와는 전혀 다를 거란 말입니다. 저 산에 있는 바위가 죄다 바스러질 때까지 오르고 또 오를 생각입니다. 난 반드시 일어날 거고요.”

그는 사뭇 결심을 확인하듯 어금니를 깨물었다. 일행 중 누군가가 말참견을 했다.

“산을 무슨 악으로, 깡으로 다니십니까? 즐기며 다니셔야지...”

영락없이 꾸짖는 투다.

“모르는 소리 마세요. 한을 품어야 산도 오르는 겁니다. 내 원이 모두 풀리면 산에 오를 일도 없을 걸요.”

그와의 대화는 여기서 잠시 끊겼다. 길을 보아하니 우린 갈림길에서 다른 방향을 잡고 하산해야 했다. 나는 김 사장에게 면박을 준 사람처럼 ‘무슨 억하심정으로 산을 오른단 말인가’ 하고 생각했다. 그가 들고 있던 차돌보다 더 딱딱하게 굳어가고 있는 그의 마음이 늦가을의 서리처럼 싸늘하게 다가왔다.

그의 의식을 통째로 두들겨 피멍이 들게 한 사업이란 대체 무엇일까? 기다렸다는 듯 김 사장은 볼트와 너트처럼 꽉 물린 턱을 열었다.

“배웠다는 놈들은 한마디로 남 등치는 데 선숩디다. 간까지 빼줄 듯하더니 요리조리 핑계를 대가며 자기 지분을 늘리다가 결국에는 죄다 빼서 나가더라고요. 그 일당들 등쌀에 도저히 버틸 수 없어서 다 주고 나왔어요. 떠날 때 이를 갈았죠. 어디 두고 보자고요. 나중에 두고 보자는 놈 무섭지 않다는 얘기 틀렸다는 거 꼭 보여줄 거라고 작심했죠. 똑바로 살라고 말하려면 내가 다시 오뚝이처럼 보란 듯 일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악착같이 사는 겁니다.”

나는 산장에서 소주 한 잔을 건네며 그와 말을 틀 때부터 하산길이 어떨지 눈에 그려졌다. 말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한다더니 딱 그 전형적인 예를 보는 듯했다. 사람은 제각기 모든 산의 이름으로 솟아 있다. 산에 오른다고 산기운에 호연해지는 게 모두에게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김 사장은 말을 끝맺었는지 앞서 산길을 재촉하며 나섰다. 산행 동기야 어찌됐든 나는 그가 산의 정기를 받아 앞으로 하는 사업이 차돌처럼 단단해졌으면 좋겠다며 작별의 인사말을 했다.

산에서야 무엇인들 작심하지 못하겠는가? 진짜 문제는 저 아래에 있지 않은가? 자기 마음으로 잡을 수도 있고 놓칠 수도 있는 것이 세상사요, 그것을 시험하는 것이 산의 풍경이라면 결국 산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밤에 김 사장이 털어놓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허방(땅바닥이 움푹 패어 빠지기 쉬운 구덩이)을 딛고 천길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지는 꿈을 천만 번도 더 꾸었습니다. 사업에서 밀려나니 나만 모자란 것 같고, 그게 발목을 잡아 더욱더 일이 안 되더군요. 그 징크스를 깨기 위해 산에 오르고 차돌을 늘 손에 쥐고 다닙니다.”

나는 그가 생활과 사업이 놓여 있는 산 아래에서도 차돌을 손에 쥐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사람들이 산에 오는 이유는 정말 천태만상이다. 죽기 싫어서 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죽기 위해 오는 사람도 있다. 사람을 피해서 오기도 하고 갈 데가 없어서 하염없이 산에 파묻히기도 한다. 머리를 깎기 위해 오는 사람도 있고 속세를 더욱 세게 껴안기 위해 오는 사람도 있다. 산은 도무지 납득하기 힘든 포용력으로 세상만사를 붙잡아주고 있는 셈이다.

김 사장이 사라진 산 뒤꽁무니를 바라보며 나는 생각에 잠겨 터벅터벅 내려왔다. 나는 늘 결정적인 순간에 물러서곤 했다. 차돌은커녕 잘 부스러지는 서벅돌 하나 챙기지 못하고 참 물렁물렁했다. 오래 전, 첫 직장생활을 할 때 선배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김 대리는 1전짜리 딜에 너무 약해. 거기에 대충하니까 다부지지 못한 거야. 우리가 뭘 먹고사는 줄 알아? 귀 떨어진 돈이야. 온전한 엽전이 아닌, 엽전 귀퉁이에서 쬐끔 흐르는 쇳가루를 먹는 거야!”

나는 얼마나 다부져야 김 사장처럼 손에 사리를 들고 다니게 될까? 출산(出山) 중에 보이는 바위나 등산화에 걸리는 뭇 자갈, 심지어 팔색조조차 여물고 단단하기는 나보다 훨씬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삶의 행장이 단단하게 조여진 그 어느 배낭보다 더욱 야무질 것만 같았다.

계곡 사이를 돌 때, 나는 산귀신도 눈치 채지 못할 만큼 재빨리 조약돌 하나를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 지금부터 내 안에 놓일 악착같은 삶의 사리여, 나를 일으켜 세워주게나.
ⓒ전경일, <CEO 산에서 경영을 배우다>



벗과 함께 7월, 신록의 북한산을 올랐습니다. 사기막골에서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해 백운대를 휘돌아, 인수봉 사이를 거쳐 우이동으로 내려왔습니다. 초목은 녹음으로 우거지고, 숨은 벽 바위는 성곽처럼 웅장합니다. 인수봉에 달라 붙은 바위하시는 분들 구경도 하고, 바위란 요런거지, 하며 시범을 보이는 분을 올려 보다 입맛을 쩍 다시고는 하산길을 잡았습니다. 진뜩 땀 흘리고 나니, 몸이 다 재충전된 느낌입니다. 더위에 에어컨 바람만 좋아하지 마시고, 자연을 찾으면 심신이 다 좋아집니다.




 

<경영과 산행의 공통점>


․산행과 경영에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오르는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 아무리 뛰어난 산꾼도 방향이 잘못되면 모든 등반 과정이 물거품이 되고, 심지어 길을 잃어 화를 자초하고 만다. 이는 경영에서도 마찬가지이므로 경영의 산을 오를 때는 속도나 힘보다 방향에 주력해야 한다. 


ㆍ산행에는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등산을 하든 경영의 산을 오르는 과정에는 언제든 위험요소가 등장할 수 있다. 그것을 회피하거나 제거하는 것은 목표를 이루는 분명한 의사결정 사항에 해당된다. 위험을 무시할 때 그 대가는 혹독하다.


ㆍ개척되지 않은 산을 오를 때는 나침반과 지도가 필요하다

산꾼은 현재 서 있는 지점을 알고 오르는 방향을 파악해야 한다. 현재 회사가 지닌 역량, 즉 자기자본, 매출액, 당기순이익, 핵심 역량 등은 경영의 나침반이다. 지도 위의 목적지는 회사의 비전에 해당된다. 나침반과 지도를 이용해 어디를, 어떻게 오를 것인지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로 속을 헤매다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


ㆍ만약에 대비해야 한다

산꾼 경영자는 우천이나 일몰에 대비해 항상 비상용 우의나 랜턴을 챙겨야 한다. 이것은 여느 산꾼의 준비물과 똑같다. 경영의 산에서는 등산을 할 때보다 예상 밖의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산행과 마찬가지로 경영에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것은 안전을 위한 최적의 장치이다. ‘만약’을 간과한다면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ㆍ산을 오르는 사람은 늘 정상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을 듣곤 한다

이는 힘을 더 내게 하려는 선등자나 하산자의 격려이다. 아무리 멀어도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발걸음은 정상까지의 거리를 줄여준다. 마찬가지로 경영의 산에서 정상을 정복하는 데도 이 같은 진리가 적용된다. 전진 없이 이뤄낼 수 있는 것은 없다. 전진 없는 삶은 퇴행이자 철수며 낙오다.


ㆍ위기 때는 피난처를 찾을 때까지 계속 움직여야 한다

경영위기에 처하면 긴급피난, 구조요청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평소에 피난처를 염두에 두고 산에 올라야 한다. 이를 간과하면 위기는 대책 없이 증폭된다. 조난을 당했을 때는 아무리 힘들어도 그곳에 멈춰 서지 말고 피난처를 찾을 때까지 계속 움직여야 한다. 모든 살아있는 것은 움직인다.    


ㆍ언제나 처음이라는 생각으로 임한다

작은 경험은 착시현상을 가져온다. 경영의 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무척 많고, 한 봉우리를 넘으면 또 다른 봉우리가 나타난다. 산행은 늘 시작일 뿐이다. 안전하게 하산할 때까지는 내리막길에서도 계속 등산해야 한다. 처음처럼 내디디면 끝내 등천하의 세상을 볼 수 있다.


ㆍ때론 산에서 귀인을 만나기도 한다

히말라야를 오르는 사람은 운이 좋으면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인도하는 셰르파를 만나게 된다. 경영의 산을 오를 때 그들은 사업의 귀인이 된다. 그러므로 산 아래에서의 관계를 소중히 하고 산에서 만나는 인연도 귀히 여겨야 한다. 


ㆍ인내는 그저 참는 것이 아니다

경영의 산에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다. 그렇게 오르내리는 과정을 참고 견디는 것이 인내다. 일희일비할 필요도 없고 속전속결하려 할 필요도 없다. 인내와 끈기로 산을 오르면 된다.



ㆍ때론 구도하는 자세를 취한다

산에서든 경영현장에서든 나를 갈고 닦을 기회는 무수히 많다. 마음에는 출입이 없다. 늘 스스로를 반추하고 마음을 닦아야 한다. 특히 경영의 산을 오르는 과정을 나를 갈고 닦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산을 타넘은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ㆍ고독은 서로 통한다

산은 고독하다. 산에 오르는 경영자도 고독하다. 고독한 것은 한데 모이게 마련이다. 산과 경영자의 공통점은 둘 다 혼자서 고독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독을 모르면 성숙은커녕 경영의 산 정상까지 다다를 수 없다.


ㆍ산에는 영혼이 있다

이를 증명하듯 민간신앙은 여전히 산에 가서 기도를 한다. 산은 깊은 영혼의 울림을 준다. 또한 산꾼 경영자에게 남다른 각성을 가져다준다. 맑고 투명한 영혼, 하늘처럼 푸르른 영혼을 지니고 싶다면 산의 영혼에 흠뻑 빠져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ㆍ고통을 즐거움으로 받아들인다

산을 오르는 것은 고행일까, 아니면 즐거움일까? 많은 산꾼이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느낀다. 어느 단계에서의 고통은 어느 순간에는 희열로 바뀌게 된다. 그러니 영원히 지속되는 고통도, 희열도 없음을 알고 고통을 즐거움으로 받아들이며 줄기차게 나아가야 한다.



ㆍ9부 능선쯤 오르면 정상까지 치받고 올라가야 한다

정상에 오르는 길에서는 끝부분이 가장 어렵다. 체력은 바닥나고 마음까지 흔들린다. 그럴수록 더욱 정상정복을 생각하며 온힘을 짜내 치받고 올라가야 한다. 특히 경영의 산에서는 그 임계점을 통과해야 사업의 지평이 새롭게 열린다.


ㆍ남다른 시각으로 새로운 산을 바라본다

이미 남이 오른 산을 올라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남이 벌려놓은 사업이나 강자에 의존적인 사업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전인미답의 길은 위험이 따르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난 뒤의 결실은 풍요롭다. 그러니 경영의 산을 오르려거든 눈을 씻고 새로운 사업, 새로운 지평을 바라봐야 한다.


ㆍ오른 만큼 보인다

높이 오를수록 천하를 넓게 볼 수 있다. 오른 만큼 보이는 법이다. 천하를 넓게 보고 천하의 사업을 도모하고자 한다면 높이 올라야 한다. 높이 올라 가장 낮은 자세로 세상을 굽어보아야 한다.


ㆍ정상에 도달하면 딱히 쉴 곳도, 앉을 곳도 없다

정상은 가파르다. 그곳은 산 아래처럼 편편하지 않아 편히 쉴 곳이 없다. 바람도 거세다. 그러니 정상에 오를 때는 영원히 그곳에 머물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르면 반드시 내려와야 할 곳이라는 생각으로 등행 과정 자체를 즐겨야 한다.


ㆍ높은 곳일수록 바람이 매섭다

산꾼에게 몰아치는 도전에는 한계가 없다. 마찬가지로 경영자가 서 있는 자리는 언제나 벼랑 끝이다. 하지만 절벽 끝에 둥지를 트는 독수리는 다른 맹금류가 없는 안전한 그곳에서 세상을 멀리 내다보며 살아간다. 현재의 위치가 칼산일지라도 그 험준함이 오히려 내 방어막이라는 생각으로 기쁘게 받아들여야 한다.


ㆍ산을 오르는 것은 중력에 맞서는 것이다

등산은 역행이다. 마찬가지로 돈을 번다는 것은 역류에 몸을 내던지는 것과 같다. 경영이란 역풍 앞에서도 앞으로 나아가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중력의 힘이 느껴지면 단지 자신이 경영의 산을 높이 오르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전경일, <CEO 산에서 경영을 배우다>


 그것이 무지개였는지 아니면 환영이었는지 몰라도 나는 뭔가를 얻은 것 같았다.


한여름 장마철에 소백산을 오르다가 느닷없이 내리쏘는 소낙비를 만났다. 간신히 판초우의만 뒤집어쓴 채 자연과 함께 온몸을 비에 내맡겼다. 비가 퍼붓는 날에 낙뢰를 피하려면 바위가 솟은 높은 곳이나 나무 아래에 숨지 말란다. 그래서 산중턱 아래 편편한 곳에 서 있다 보니 갑자기 내가 자연과 하나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산에서 비를 만나면 당황하게 마련이지만 흠뻑 젖다 보면 한편으로는 상쾌해진다. 그렇게 자연 세척을 하고 나면 속이 후련해지면서 정신까지 맑아진다.


한동안 장승처럼 서 있었지만 비는 좀처럼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일기예보를 믿은 게 낭패였다. 산 전체가 번쩍이면서 번개가 요동을 치자 더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를 그을 산장을 찾아 이리저리 움직이는데, 갑자기 저 멀리 산골짜기로 운무가 끼면서 뭔가가 솟구치는 것이 보였다. 흡사 용이 허공을 가르며 하늘로 올라가는 것 같았다.


그 순간, 김두창 전무는 그 장엄한 광경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았다고 한다. 나는 어떤 용인가? 용의 승천을 바라보고 있는 나는 과연 경영자로서 용이 될 수 있는가? 저것은 내가 용이 될 징조인가? 그는 가슴이 벅차올라 온몸이 떨렸다고 한다.


주역의 건괘(乾卦)에 보면 다섯 마리의 용이 나온다. 아직 때를 만나지 못하고 물속에 숨어 있는 잠룡(潛龍), 땅 위로 올라온 현룡(見龍), 하늘로 도약을 시도하는 약룡(躍龍), 하늘을 나는 비룡(飛龍), 마침내 하늘 끝까지 날아간 항룡(亢龍)이 그것이다.


그는 자신이 애초에 용으로 태어나긴 한 것인지, 이무기나 백 년도 못 사는 뱀 심지어 그저 발밑에 밟히는 지렁이는 아닌지 온갖 상념에 젖었다고 했다. 연말이면 그룹에서 차기 사장감을 내정할 것이고 그러면 그는 승천의 기회를 얻게 된다. 그저 형식뿐인 계열사 부사장 자리가 아닌 사장으로서 전문경영인의 길을 걷고 싶지만, 승진에서 밀리면 현재의 자리조차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에게 내줘야 한다.


그는 여느 때와 달리 홀로 산을 올랐다. 내면 깊숙이 들어가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또한 영감을 얻고 싶었다.



김 전무의 경영실적은 누가 봐도 눈부셨다. 그러나 이 고지부터는 실적만 갖고는 얘기가 안 된다. 정치적, 외교적 수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위로 올라갈수록 경쟁의 밀도는 한없이 촘촘해지고, 이제는 막바지를 치고 올라가듯 모든 역량을 유감없이 드러내야만 한다.


그런데 자신이 가진 것을 늘어놓고 곰곰이 계가해보니 빈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턱없이 부족하다 싶었다. 어쩐다, 일은 내가 하는 게 아니라 아랫사람들이 하는 것 아닌가? 그룹에서는 뭔가 다른 카드를 요구할 게 분명했다. 정치 경제권과의 두터운 인맥, 리퓨테이션(reputation), 남다른 인성과 뛰어난 리더십을 갖춰야만 했다. 앞에서 굽실대는 아래 임원들을 믿고 순진하게 손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내가 그 자리를 바라고 있소. 이젠 후배들에게 양보할 만 하지 않소?’


그들에게는 이런 암묵적 기대감이 거침없이 흘러나왔다. 이무기들끼리 서로 용이 되려고 이전투구(泥田鬪狗)를 하는 것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김 전무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샐러리맨의 꽃이라는 임원이 되었을 때 그는 태어나 가장 큰 보람을 느꼈다. 그는 자신이 임원이 되기 몇 해 전에 육사를 나와 별을 달고 고향 군지(郡誌)에 이름을 올린 친구를 떠올렸다. 보통은 군수나 상장사 임원, 별을 단 사람 이상, 그리고 부담 없이 고향의 발전기금으로 돈 천만 원 이상 내놓을 수 있는 성공한 기업인이 군지에 올랐다. 이제 나도 고향의 군지에 이름을 올릴 게 확실하지 않은가?


지천명에 사장이 되면 그것은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된다. 고향에서 금배지를 단 사람들은 죄다 그러한 커리어패스를 거쳐 왔다. 김 전무는 속이 탔다. 번개가 으르렁댈 때마다 그의 시선은 용이 사라진 뒷그림자를 쫓았다.


비가 잠시 멈추자 골짜기 사이로 햇살이 비치면서 물안개가 멋진 무지개를 그려주었다. 김 전무는 상서로운 예감이 느껴졌다. 이제 비는 그친 모양이다. 산장으로 갈까 아니면 좀더 오를까? 잠시 망설이던 그는 오르던 길로 나아갔다.


“나는 분명 약룡이야!”


그는 이 말을 되뇌고 또 되뇌었다. 의식 저 밑바닥에서 알 수 없는 어떤 힘이 의욕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이제 산에 오르기 전까지 그의 가슴을 짓누르던 고민과 답답함은 말끔히 사라졌다. 그는 산 아래로 내려가 해야 할 일을 차례로 떠올렸다.


우선 사업부문을 드러내 보일 뭔가를 찾아 대대적인 언론플레이를 해야 한다. 머릿속에서 초스피드로 알고 지내는 기자들의 명함이 스쳐갔다. 그 다음을 생각하던 그는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졌다. 이윽고 정상에 오른 그는 안개가 자욱한 산 아래를 한눈에 내려다보며 호흡을 가다듬은 다음 휴대전화를 꺼냈다.


“회장님, 여기 산이 참 좋습니다. 모시고 왔더라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


그러자 저쪽에서 뭐라고 하는 소리가 가물가물 들려왔다. 아마도 회장은 산을 골프장 정도로 알아들었을 것이다. 전화를 받는 그의 자세가 뻣뻣했다.


“아, 네. 그럼...”


대체 회장의 마음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미궁 같은 그의 심중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약룡? 글쎄...’


김 전무는 마음이 실타래처럼 비비 꼬이는 것 같았다. 갑자기 부장 시절에 라이벌이었다가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체를 꾸린 동료가 생각났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


성철 스님의 법문을 되짚고 내려오는 길에 그는 용이 승천하고 무지개가 뜬 것은 순전히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고 믿기로 했다. 그러자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전경일, <CEO 산에서 경영을 배우다>


봄은 진달래 만발하는 춘정(春情)으로만 오는 게 아니다. 저 산을 찌를 듯 솟는 신갈나무 잎파리 끝에서 오고, 뱁새의 지지지- 울음소리에서 온다. 땅끝에서 가장 먼 자가 가장 이른 봄을 맞이하는 것!  저 이파리들은 이제 열려 이 산야를 잎으로 뒤덮으며 뻗어 나가겠지.  

이번 산행엔 특별한 분과 함께 했다. 영혼의 수도자와 함께 하는 산행은 그래서 즐거움이 여간 아니다. 그의 스페인 순례가 안전하고 멋지게 이루어지기 바란다. 스페인 시골 마을 풍경 사진이나 몇 장 얻었으면 좋겠다. 다음 번 책에 풍경으로 넣게. 그에게 시를 한편 선물로 낭송해 주었다.


이니스프리의 호수섬
                                           -예이츠

나 일어나 이제가리, 이니스프리로 가리
거기 옷가지 엮어 진흙 바른 작은 오두막 짓고,
아홉 이랑 콩밭과 꿀벌통 하나
벌 윙윙대는 숲 속에서 나 혼자 살으리

거기서 얼아즘 평화를 맛보리
평화는 천천히 내리는 것
아침의 베일로부터 귀뚜라미 우는 곳에 이르기까지
한밤엔 온통 반짝이는 빛
한낮엔 보랏빛 기색
저녁엔 홍방울새의 날개 소리 가득한 그 곳

나 일어나 이제 가리, 밤이나 낮이나
호숫가에 철썩이는 낮은 물결 소리 들리나니
한 길 위에 서 있을 때나 회색 포도 위에 서 있을 때면
내 마음 깊숙이 그 물결 소리 들리네


The Lake Isle of Innisfree
                                     
                                -William Butler Yeats

I will arise and go now, and go to Innisfree,
And a small cabin build there, of clay and wattles made:
Nine bean-rows will I have there, a hive for the honey-bee,
And live alone in the bee-loud glade.

And I shall have some peace there, for peace comes dropping slow,
Dropping from the veils of the morning to where the cricket sings;
There midnight's all a glimmer, and noon a purple glow,
And evening full of the linnet's wings.

I will arise and go now, for always night and day
I hear lake water lapping with low sounds by the shore;
While I stand on the roadway, or on the pavements grey,
I hear it in the deep heart's core.
 
박수 받았다. (겸연쩍다)

도선사로 내려와 탁배기 한 잔하는 데 비박하러 가는 사람들이 연신 떨어지는 해를 안으며 산으로 올랐다. 그래, 산에서의 밤은 사람을 깊게 하지...
벗과 비박 산행을 약속하고 인파에 몸을 섞었다. 하늘거리는 사람들 옷이 - 봄이로구나. 내가 겨울을 용케 보내긴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의 순례는 어디로 가는 걸까. 인파 속에서 자신에 물었다.  

ⓒ전경일, <CEO 산에서 경영을 배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