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링크>. 이 개념은 한순간 직관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1983, -프랑코 베치나(Gian-franco Becchina)라는 미술상이 캘리포니아의 폴 게티 박물관을 찾아왔다. 자신이 쿠로스 상이라고 알려진 기원전 6세기의 대리석상을 소장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남아있는 수도 적고 그나마도 심하게 훼손된 채 발굴되는 것이 대부분이었던 기존의 쿠로스 상과 달리, 그 입상은 놀랍게도 보존 상태가 거의 완벽했다. 베치나는 1,000만 달러에 조금 못 미치는 액수를 요구했다. 폴 게티 박물관은 신중하게 행동했다. 그들은 일단 쿠로스 상을 임대해 철저하게 조사하기 시작했다. 베치나는 폴 게티 박물관 심의과에 조각상의 최근 궤적이 수록된 서류를 한 다발 제출했다.

 

캘리포니아대학의 지질학자 스탠리 마골리스(Stanley Margolis)가 박물관에 도착했다. 그는 최첨단 기기를 동원해 표본을 분석했다. 마골리스는 석상이 타소스 섬의 고대 채석장에서 캐낸 백운석으로 만들어졌다고 결론지었다. 이 석상은 매우 오래된 것으로, 현대에 만든 모조품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폴게티 박물관 측은 결과에 만족했다. 그리고 조사를 시작한 지 14개월 만에 마침내 쿠로스 상을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쿠로스 상에는 무언가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다. 이를 처음 지적한 사람은 폴 게티 박물관의 운영위원이던 미술사학자 페데리코 제리(Federico Zeri)였다. 그는 꼬집어 말할 수는 없었지만 상의 손톱 부분이 이상하다고 느꼈다. 다음으로 문제를 발견한 사람은 그리스 조각의 세계적 권위자인 에블린 해리슨(Evelyn Harrison)이었다. 그는 쿠로스 상의 덮개를 벗긴 바로 그 순간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감지했다. 뉴욕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관장을 지냈던 토머스 하빙(Thomas Hoving)도 박물관의 보관실에서 조각상을 보았다. 그는 쿠로스 상을 보고 새것(fresh)”이라는 표현을 썼다. 물론 2,000년 된 조각상에 어울리는 말은 아니었다.

 

폴 게티 박물관은 갈수록 걱정이 되어 그리스에서 쿠로스 상에 관한 특별 심포지엄을 열었다. 석상을 아테네로 옮기고 그리스 최고의 조각 전문가들을 초빙한 것이다. 그곳에서 당혹감을 표하는 소리는 더욱 커졌다.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장 게오르그 데스피니스(George Despinis)는 쿠로스 상을 훑어보더니, 이 상은 땅 속에 묻힌 적이 없다고 말했다. 아테네 고고학회장 게오르기오스 돈타스(Georgios Dontas)도 석상을 보고 유리벽이 가로막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이어 아테네의 베나키 박물관장 앙겔로스 델리보리아스(Angelos Delivorrias)는 이 조각상이 모조품이며, 그는 이 물건에 처음 눈길이 닿는 순간 직관적인 반발의 파동을 느꼈다고 말했다.

 

폴 게티 박물관은 고문 변호사와 과학자를 동원해 십 수개월의 힘겨운 조사를 펼친 끝에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고, 몇몇 그리스 조각의 권위자들은 석상을 보는 순간 느낀 직관적인 반발을 통해 대립되는 결론에 도달했다. 어느 쪽이 옳았을까?

 

결국 이 쿠로스 상은 모조품으로 판명되었다. 쿠로스 상의 내력을 추적하면서 조사한 몇몇 서신과 서류들이 위조된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그리스 조각 전문가들이 자세히 살필수록 이 쿠로스 상이 각기 다른 지역과 다른 시기의 몇 가지 양식을 어지럽게 짜 맞춘 혼성품이라는 시각이 우세했다. 결정적으로 한 지질학자가 더 깊이 분석한 끝에 감자 주형을 사용하면 두 달 만에 석상 표면을 오래 되게만들 수 있다는 결론을 이끌어내었다.

 

페데리코 제리와 에블린 해리슨, 토머스 하빙, 게오르기오스 돈타스, 그리고 다른 많은 사람들이 폴 게티의 쿠로스 상을 보고 느꼈던 직관적인 반발은 옳았다. 그들은 처음 보는 2초 동안에 폴 게티 박물관의 조사팀이 14개월에 걸쳐 파헤친 것보다 조각상의 본질을 더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이 어떻게 그 쿠로스 상이 모조품이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논리적으로 알고 있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그저 그들은 알았다.’

 

짧은 순간에 결론을 도출하는 뇌의 영역을 적응 무의식(adaptive unconscious)’ 영역이라 하는데, 최근 심리학에서는 이 같은 의사 결정 방식에 대한 연구가 중요시되고 있다. 적응 무의식은 우리가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데 필요한 많은 데이터를 신속하고 조용하게 처리하는 일종의 컴퓨터이다. 인간이 오랫동안 종족을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은 극소량의 정보를 매우 민첩하게 판단할 수 있는 의사결정 장치를 발달시킨 덕분이다.

 

실제로 심리학자 낼리니 앰버디(Nalini Ambady)는 학생들에게 교수 한 명당 10초 분량의 비디오 세 편을 음소거한 채 보여주었는데, 이것만으로도 학생들이 교수의 자질에 대한 등급을 매기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뒷부분을 잘라 각 5초 분량의 비디오를 만들어 보여주었을 때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딱 2초 분량을 보여주었을 때조차 평가는 거의 일치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2초간의 이 신속한 인식에 본능적으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그들은 결론의 옳고 그름이 공들인 시간과 노력에 비례하리라 여기는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진단을 내리기 어려울 때마다 다른 검사를 요구하고, 사람들은 귀로 들은 이야기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으면 또 다른 의견을 구한다. 아이들에게는 뭐라고 가르치는가? 서두르면 망친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 아는 길도 물어가라이처럼 우리는 되도록 많은 정보를 모아 가능한 한 심사숙고하는 편이 더 낫다고 믿는다. 다시 말해 의식적인 의사결정만을 신뢰한다. 하지만 비상시에는 순간의 판단이나 첫인상이 세계를 파악하는 훨씬 더 나은 도구 역할을 할 때가 있다.

 

사실 자신과 세계를 이해하는 작업에 임할 때, 우리는 거창한 주제에는 큰 관심을 기울이면서 흘러가는 순간순간의 상세한 내막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우리가 본능을 보다 진지하게 대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쌍안경을 들고 지평선을 탐색하는 대신에, 강력한 현미경으로 자신의 의사결정과 행동을 정밀 검사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도 전쟁을 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선반 위의 물건들, 해마다 쏟아져 나오는 영화들, 경찰들의 훈련 방식, 입사 면접 방식 등이 모두 달라질 것이다.

 

글래드웰은 이 작은 변화들을 두루 모아 엮으면 마침내 더 나은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무엇보다, 논리적으로 심사숙고하는 법을 단련할 수 있듯이 순간적인 판단 능력을 키우거나 가르치는 일도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우리 자신과 우리 행동을 이해하려면 눈 깜짝하는 동안의 순간적인 판단도 수개월에 걸친 이성적인 분석만큼 가치가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전경일 인문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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