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원과 현미의 경영세계

가깝고 먼 것을 구분할 줄 알면 경영의 산 절반을 넘은 것이다.

산을 오를 때는 종종 착시에 빠지곤 한다. ‘저 정도 높이는 한 시간이면 충분할 거야라고 생각했던 거리도 막상 오르고 나면 두세 시간이 넘게 소요된다. 거리에 대한 감각도 부정확하다. 기껏해야 500미터 전방에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멀리 있다. 오르막에서 내리막을 바라보는 거리도 다르고 목표지점에 강이나 계곡이 놓여 있을 때도 다르다. 매 상황에 따라 정확한 거리를 측정하기란 쉽지 않다.

 

날씨 영향도 크다. 안개가 끼거나 흐리거나 맑은 날씨에 시각만으로 거리를 측정하면 많은 편차를 가져온다. 또한 해가 뜰 때와 해질 무렵이 다르고 등산자의 몸의 상태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산을 오르며 산꾼들은 때로 자기 눈을 의심한다. 의심을 하기에 그들은 산꾼 경영자다. 흐린 눈을 보정하고자 지도와 나침반을 준비하는 것은 기본이다. 높은 산이 없는 국내 산행일 경우, 평소에는 별 볼일 없어 보이던 것들이 악천후나 일몰 무렵에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이것이 산행이 잦아지고 박() 형태를 띨수록 배낭에 챙기는 짐이 점점 늘어나게 되는 이유다.

 

산꾼 경영자는 착시의 위험을 경영현장에서 그대로 느낀다고 고백한다. 눈에 보이는 것과 실제는 언제든 다를 수 있다! 경영에서 위험관리란 실제와 인식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과정이다. 선입견이 과도하게 작용해 객관성을 잃지 않도록 수시로 시각조정을 해야 한다. 특히 특정 사업에 대한 이해나 인식, 시장변동추이에 대한 판단, 진입 전략 등과 관련해 객관성을 확보하는 것은 언제나 중요한 의사결정의 바로미터가 된다.

 

조직에서 관리자급 이상은 반드시 망원(望遠)과 현미(顯微)의 시각을 갖춰야 한다. 멀리 보아야 할 때 현미경을 들이대거나 가까이 보아야 할 때 그 반대로 하면 결과는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다.

경영의 산에서는 먼 산, 가까운 산별로 세워야 할 전략이 다르다.

먼 경영목표를 위해서는 원거리 경영 전략을 세워야 하고, 여건이 허락하는 동안 신속히 목표시장에 진입해야 한다. 기동행군은 경영의 필수다. 이때 단기목표에만 신경을 쓰면 곤란하다. 누가 빨리 전선에 도착해 진지를 구축하고 적을 기다리고 있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리기 때문이다.

 

반면, 인근 산을 목표로 한다면 목표와 성취와의 간격에 초점을 맞춰 단기적으로 조정해나가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이때는 어퍼컷이나 훅보다 작고 빠른 연속 잽이 요구된다. 대학시절에 체대에서 복싱을 하고, 졸업 후 자동차 영업맨으로 시작해 상장사 임원 자리에 오른 태연수 전무는 원근과 경영의 상관관계를 이렇게 빗대 설명하고 있다.

 

어느 산이든 정상에 가보세요. 정상에 서면 장기적 안목이란 말이 생각납니다. 넓은 데를 바라보게 되는 거죠. 만일 거기서 눈앞의 것에 정신이 팔려 있다면, 올라간들 아무 의미가 없죠. 높은 데서는 멀리, 낮은 데서는 가까운 걸음부터 봐야 합니다. 평범한 우리네야 그렇지 못하지만 탁월한 경영자는 이 원근의 조화를 첫걸음부터 안다고 합니다. 어디에 있든 전체 판도를 보고 눈앞의 상황도 예리하게 관찰하는 거죠. 바로 그런데서 남다른 분별심, 통찰력이 나옵니다. 숲에 가려 보이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하느냐고요? 그때 그 사람들은 상상력을 발휘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이 맞는지 계속 시도하면서 확인하고 보정해 나가죠. 산행이 경영으로, 경영 행위가 산행으로 채널이 맞춰져 있는 겁니다. 더구나 방향 감각이나 언제까지 어디에 힘을 쏟겠다는 전략이 분명합니다. 반면 아마추어는 달라요. 그들은 헛힘을 쓰거나 과욕을 부리죠. 그건 전략이 없다는 얘기와 똑같습니다. 성공한 경영자가 우리보다 높이 올라간 데는 다 이유가 있어요. 그게 우리와 그들의 차이점이죠.”

 

그는 자신이 사업차 만난 내로라하는 경영자들은 뭐가 달라도 크게 달랐다고 설명한다. 어느 정도의 차이는 나만의 장점으로 커버할 수 있지만, 그들의 어떤 강점은 그야말로 히말라야 철벽처럼 앞에 떡 허니 버티고 서서 자연 입이 쩍 벌어지게 한단다. 대표적으로 고 정주영 회장이 그런 사람이었다고 한다.

 

산행은 경영자의 크기를 가늠케 하죠. 경영자에게 전략이 있으면 기업도 전략이 있는 겁니다. 경영자가 목표가 뚜렷하다면 불만이 쏟아져 나와도 결국에는 다들 승복하게 됩니다. 하지만 경영자가 단순히 돈만 벌려 하고 일신의 영달만 생각하면 함께할 사람들은 그만큼 줄어듭니다.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비전과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전략이 없으면 목표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 자체로 위깁니다. 어느 기업이 언제까지 어디에 당도하겠다는 게 없으면 길에서 갑자기 어둠을 맞이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럴 땐 황당해지죠.”

 

길에서 어둠을 맞이한다고? 산꾼들은 산행 중에 난데없이 길을 잃거나 목표를 너무 길게 잡아 길에서 어둠을 맞이했을 때의 기분을 잘 알 것이다. 아무리 침착하려 해도 마음속으로 불안감이 엄습한다. 더욱이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에 미리 잠자리를 봐두지 않았다면 여간 불안하지 않다. 이는 경영에서 망원과 현미의 세계를 알고 시의적절하게 전략과 과감한 도전으로 목표를 이루고자 하지 않으면 결과는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산에 오를 때는 앞사람의 발이나 뒤통수만 보며 걷지 마세요. 일행이 있어도 스스로 전략을 짜보고 수정해가며 내 생각과 다른 사람의 생각이 얼마나 다른지 가늠해보는 것이 큰 훈련이 됩니다. 그것은 산행뿐 아니라 산을 내려와 숫자를 만질 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산행에서 작은 실천이 몸에 배게 되는 거죠. 똑같이 산행을 하면서 누구는 열 개를 배워서 내려오는데, 기껏 한두 개를 배워 내려오거나 배운 것 없이 땀만 질질 빼고 내려온다면 너무 아깝잖아요.”

 

그는 대학시절부터 운동선수로 지낸 것이 50대 중반에 들어서도 단련된 몸을 갖게 된 배경이라며 늘 일상에서 필승을 다짐하라고 주문한다. 어차피 오를 거라면 제대로 오르라는 얘기다.

 

경영의 산을 오를 때는 무엇을 가까이 두고 무엇을 멀리 두어야 할지 고려하는 것만으로도 소위 내가 생각하는 거리와 남이 생각하는 거리를 파악할 수 있다. 나름대로 거리의 철학을 설파하는 그에게 충고를 하나 부탁했다. 그러자 그는 히죽 웃으며 한마디만 해주겠다고 말했다.

 

내 앞에 있는 놈이 움직이는 게 보이면 그땐 나하고의 거리가 800미터입니다. 움직이는 게 확인되면 그 놈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죽어라고 걸으세요. 신속히 움직이면 팔다리가 보일 겁니다. 그땐 400미터로 줄어든 겁니다. 옷에 달려 있는 마크가 보이면 이제 150미터로 줄어든 것이고, 상대의 이목구비가 제대로 보이면 그때는 100미터가 남은 겁니다. 만약 상대가 보이지 않는다면 둘 중 하나죠. 내가 2,000미터 뒤로 처져 있거나, 반대로 상대가 죽어라고 내 뒤통수를 쪼고 있는 겁니다. 이걸 알고 가시면 됩니다.”

Copyrights: 전경일 <CEO 산에서 경영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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