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경영/이순신 경제전쟁에 승리하라 | Posted by 전경일소장 전경일 2021. 8. 24. 17:30

이순신, 전함 시대를 열다

⟪세종실록⟫을 보면 “이제부터 검선(劒船)에 한자 가량 되는 창검을 만들어 선측에 한 줄로 꽂아 적들이 무기를 가지고 배위로 올라오지 못하도록 정비할 것이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세종 시기 검선 장착의 지식이 훗날 이순신에게 계승된 것이다. ⟪선조실록⟫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이순신의 부하로서 전선 건조를 지도하던 나대용이란 사람이 지난날 전선 25척을 건조할 때 창선(槍船)을 만들었는데 그것은 구조 원리상 판옥선도 아니고 거북선도 아니었으며 칼창을 배에 꽂은 배였다.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인 일본은 거북선에 대해 어떻게 기록했을까?⟪정한위략(征韓偉略)⟫에서는 “적선 중에는 온통 철로 장비한 배가 있어 우리 포로써는 상하게 할 수 없었다”며 거북선의 전술우위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구조적으로 볼 때 거북선은 독특한 전함이었고, 나무배에서 철배로 이행하는 과도기적 단계의 함선구조를 띤다. 돌격선 거북선이 처음으로 효과를 드러낸 것은 사천해전. 이 새로운 무기체계의 등장은 일본 수군이 전의를 상실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장군은 임란이 일어난 해인 1592년 6월 24일 당포 및 당항포 해전의 승전보를 임금께 올리며 ⟨당포파왜병장(唐浦破倭兵狀)⟩에서 다음과 같이 실전 효과를 보고하고 있다. 

일찍이 신이 왜적의 침입이 있을 것을 염려하여 별도로 거북선을 만들었는데, 앞에는 용머리를 붙여 그 아가리로 대포를 쏘게 하고, 등에는 쇠못을 꽂았으며, 안에서는 밖을 내다볼 수 있어도 밖에서는 안을 들여다 볼 수 없게 하였습니다. 비록 적선 수백 척 속에라도 쉽게 돌입하여 포를 쏠 수 있으므로, 이번 출전 때에 돌격장이 그것을 타고 나왔습니다.

여기서 얘기하는 돌격장은 이언량·이기남이다. 이처럼 거북선은 돌격임무와 적선 파괴용 전함이었다. 천·지·현·황 총통 등 여러 화기를 탑재하여 전투 시 철저하게 화력 우세를 점하고, 후속적으로 나머지 전선(戰船)들이 총공격하는 공세 위주의 전투를 벌였다. 

 

거북선과 관련된 다른 기록들

 

<통제영 거북선과 좌수영 거북선의 그림>>

 

거북선 관련, 훗날의 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최해유가 쓴 이순신 장군 행장(行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장군이 좌수사로 부임된 후 왜인의 침입을 예료(豫料)하여 창을 벼리고 쇠줄을 붓는 등 비상 준비를 갖추었고 또 창발적 지혜를 내어 큰 배를 만들었다.”

이순신의 친척 되는 이식(李植)이 집필한 시장에도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그때 왜적과의 관계가 이미 험악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조정이나 민간이나 모두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편안히 있었다. 장군은 혼자 깊이 우려해서 날로 군비를 정돈하고 쇠줄을 부어 포구 앞바다를 건너지르고 거북선을 제조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쇠줄의 구조와 형식에 대하여 전하는 구체적인 사료는 없다. 쇠줄에 의한 방어 및 포위전법은 세계 수군전법에서 적잖은 의미를 지닌다. 2차 세계대전 초 미국은 하와이 해군기지 바다 밑에 쇠그물로 봉쇄하여 방어막을 설치한 실례가 있다.

 

 

한중일 삼국의 전함 비교

당시 한중일 삼국의 군선 제원과 성능은 조선수군이 어떤 장점을 지니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안골포 해전에 대한 일본 측 기록인고려선전기(高麗船戰記)(1592)에는 거북선이 번갈아 달려들고 가까이 접근하여 쏘아대어 왜선이 모조리 격파되었다고 기술되어 있다. 그렇다면 당시 참전한 명군의 배는 어떠했을까?선조실록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명나라 배는 몸체가 작고 또 우리의 꽁무니에 붙어서 다만 소리나 지르면서 기세나 보일 뿐이다.

 

반면, 조선수군의 자랑인 함선의 경우에는 우리나라의 전함은 구조 원리 면에서 매우 크고 우월하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말하기를 왜선 수십 척이 우리의 전함 1척과도 대항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순신이 거북선을 만들고 그것으로 언제나 승리한 것은 대체로 이러한 선박 구조 원리의 유리성에 의거하였기 때문이다라고 증보문헌비고는 전한다. 조선 선박의 구조가 우수하다는 것이 과장된 말이 아니라는 것은 중국 배와 비교해 봐도 잘 알 수 있다.

중국 배 장쿠는 배 밑에 용골이 없고 평탄하면서도 양현 측에만 짧게 붙어 있다. 늑골도 세로보에 의해 보강되지 않았기 때문에 힘을 크게 감당할 수 없다는 결정적인 단점이 있었다. 조선 선박은 왜나 중국 선박에 비해 견고했고 웅장했으며, 성능 면에서 월등했다. 거북선의 늑골은 직선이며 간소화 선형이다. 거북선의 여러 특장점 중 이 간소화 선형에 대해 북한 학계도 선체를 구성하는 골조와 판재에서 곡면을 피하는 선형을 통해 선박 건조 과정에서 노력과 자재를 절약하고 건조 기일을 단축한 장점이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배 밑창을 평면으로 하는 판옥선 구조는 만·간조 시 수위 차에 적응성이 뛰어나 전투 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거북선 구조를 통해 본 기술혁신

 

왼쪽: 조선수군의 주력 함선인 판옥선과 거북선은 건조시 간소화 선형 방식의 설계를 따름으로써 건조시간, 비용, 노력 등 여러 면에서 경쟁우위를 가지고 되었고, 전투 시 우리 지형에 맞는 구조로 적을 제압할 수 있었다. 회전력과 기동성이 높아진 것은 배의 평평한 구조가 큰 영향을 미친다. 또한 선체가 커서 화포나 총통 등 육중한 무기를 싣고 다니는 데에도 크게 유리했다. 왼쪽의 간소화 선형 구조가 판옥선과 거북선의 배 밑 구조, 오른쪽의 비간소화 선형 구조가 일본의 안택선(오른쪽) 배 밑 구조다.

거북선은 오랜 시간 집적된 선박 지식의 모든 특장점을 반영하고 있다. 적을 무력화하기 위해 창선을 꽂고, 화약무기, 철갑판, 선수방패 등을 탑재함으로써 압도적 경쟁우위를 살린 혁신 전함이었다. 거북선은 오랜 시간 누적된 조선 선박 지식의 집합체이자, 지식통섭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일설에 의하면, 이순신 장군은 거북선 건조 시 자라와 거북을 방안에 두고 3개월 동안 관찰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고 보니 자라나 거북의 배 밑 구조와 판옥선 및 거북선의 배 밑 구조는 모두 평평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군은 바닷물이 들고 나는 것을 정확히 관찰해 배의 구조를 설계하도록 했고, 또 전투 시 전략적 타이밍을 정확하게 계산해 적을 궤멸로 몰아넣었다. 임란은 이런 의미에서 보면 지식과 과학의 전쟁이었던 셈이다.

 

 

혁신과 학습의 결정체, 거북선

거북선은 조정의 지시에 의해 건조된 게 아니었다. 장군의 새로운 착상과 거북선 건조의 주역을 맡았던 군관 나대용이 쟁선(鎗船)의 실용화를 역설, 건의하여 기술적 도움을 받아 만든 것이다. 이 거북선은 임란 사상 가장 상징적인 전략무기로 자리매김 된다. 이순신하면 거북선이 떠오를 만큼 장군은 거북선 아이덴티티(identity)’를 갖고 있다. 혁신과 창조의 결과물이 실질 전투에 반영돼 완전무결한 승리를 이뤄냈기에 오랜 세월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새겨진 까닭이리라.

현존하는 국내 최대 단층 목조건물로 기둥만 68개인 여수시 진남관은 400년 이어져온 조선수군의 본영으로 장군은 옥포해전, 사천해전, 당항포해전, 한산대첩 등 승첩을 이곳 전라좌수영에서 이루어 낸다. ‘진남(鎭南)’은 남쪽을 진압한다는 뜻으로 남왜(南倭)에 대한 대응을 뚜렷이 드러내고 있다. 일제는 이순신 정신을 훼손시키고자 일제 강점기에는 진남관을 소학교로 쓰도록 했다. 진남관은 거북선 창제의 본부로 기능했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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