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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모델 연구: 머크(Merck KGaA)의 Core-Copycat 전략 19세기 말 독일 다름슈타트에서 출발한 머크(Merck KGaA)는, 제약과 화학 중심의 기업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머크를 글로벌 산업계에서 특별한 존재로 만드는 것은 단연 액정(Liquid Crystals) 분야에서의 선도적 입지다. 이 회사는 이제 단순한 소재 공급 기업이 아니라, 빛과 정보, 화면과 유리를 새롭게 바꾸는 기술 기업으로 불린다. 1. 액정을 향한 135년의 여정머크가 처음 액정과 인연을 맺은 것은 무려 1888년. 오스트리아의 식물학자 프리드리히 라이니처(Friedrich Reinitzer)가 감자에서 분리한 콜레스테릴 벤조에이트에서 특이한 상태를 관찰하면서부터다. 이 물질은 고체도 액체도 아닌 독특한 성질을 가졌고, 이 성질은 빛을 통과시키는 데 있어 놀라운 가능성을 보였다.. 2026. 10. 31.
잠곡(潛谷) 김육(金堉, 1580~1658) 조선은 병자호란에서 오랑캐로 일컬어온 여진족의 청나라에 치욕스러운 굴욕을 맛보았다. 이런 상태에서 인조는 명나라에 대한 의리론(義理論)을 고수하는 사림(士林)의 지지를 끌어낼 수 없었다. 따라서 인조는 호란이 끝난 뒤로도 적극적으로 정치를 펴기 어려웠다. 반정으로 정권을 잡았지만, 끝내 실패한 정권으로 귀결된 것이다. 인조를 이어 즉위한 효종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재야 사림을 적극 등용하는 한편 정치적으로는 소위 ‘북벌론(北伐論)’을 은밀히 추진하여 나갔다. 그러나 효종이 재위 10년 만에 작고하였으므로 이 북벌 계획도 무산되고 만다. 이렇듯 별다른 성과나 실적을 만들지 못한 시기에 잠곡(潛谷) 김육(金堉)같이 높은 식견과 실무정책을 편 관료가 현실정치에 출현한 것은 무엇보다도 주목할 만한 일이다. 그.. 2026. 10. 28.
울산대 테크노CEO과정에서 <세상을 이끄는 Good to Great의 인문경영 인사이트>를 주제로 강의했습니다. 2026. 10. 28.
지봉(芝峯) 이수광(李睟光, 1553~1628) 지봉(芝峯) 이수광(李睟光)은 의심할 나위 없이 서양을 조선에 최초로 구체적 물증으로 소개한 사람이다. 특히 중국 내에서 한자・유교 문화권 신자들을 위해 편찬된 천주교 교리서인 󰡔천주실의(天主實義)󰡕를 조선에 소개하여 서양의 학술 및 종교에 관한 관심을 촉발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로 말미암아 갇혀 있던 조선 지식인의 대외관념은 청과 서양 문명에 의해 큰 변화를 겪게 되고, 서구 학술・연구에 관심 갖게 만든다. 이 같은 변화는 다분히 이수광의 영향이 크다. 이 점에서 이수광은 실학의 선구자라 부를 위치에 있다. 이수광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윤경(潤卿), 호는 지봉(芝峰)이다. 아버지는 병조판서를 지낸 이희검(李希儉)이고 어머니는 문화 류씨(柳氏)다. 1582년 진사시에 합격했고, 1585년에는 .. 2026. 10. 25.
비즈니스 모델 연구: 퀄컴과 CDMA 칩셋+IP 두마리 토끼 전략 1985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이고에서는 한 무리의 전자공학자들이 작은 사무실에 모였다. 이들은 단순한 창업가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무선통신의 미래를 완전히 바꿔놓을 야심찬 실험을 준비 중이었다.MIT 교수 출신의 어윈 제이콥스(Dr. Irwin Jacobs)는 당시 누구도 상용화 가능하다고 믿지 않던 통신 기술, CDMA(Code Division Multiple Access)를 통해 세상을 바꾸고자 했다. 이 기술은 시간이나 주파수로 통화 채널을 나누는 기존 방식과 달리, 각 사용자에게 고유의 코드를 부여해 동일한 주파수 대역을 동시에 공유하게 하는 혁신적인 방식이었다. 제이콥스는 CDMA가 통화 품질, 보안성, 스펙트럼 효율에서 기존 기술을 압도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통신업계는 회의적이었다.. 2026. 10. 25.
구암(久庵) 한백겸(韓百謙, 1552~1615) 시대적 환경은 한 사람의 인생 항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한백겸이 살았던 16세기 후반과 17세기 초는 한마디로 난리와 기근의 연속이었다. 1592년에 발발한 임진왜란과 뒤이어 일어난 정유재란으로 조선의 전 국토는 유린당하였다. 또 1594년부터 전 세계를 재앙으로 휩쓴 기상 이변으로 거리는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유랑민으로 넘쳐났다. 내정은 안정되지 못하고 붕당(朋黨)을 넘어 파당(派黨)의 정치적 조짐까지 보이고, 국가 재정은 바닥났다. 세상이 어지럽다 보니 국가 재정의 근간인 토지제도도 극히 문란해졌다.이런 시기에 성리학 위주의 사고에서 벗어나 새로운 학풍을 시도함으로써 실학적 사유의 길을 개척한 이가 있다. 그 선구자 중 한 바로 사람이 구암(久庵) 한백겸(韓百謙, 1552~1615)이다. 한백.. 2026. 10.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