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문명은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을 만큼 국경을 초월한 '오이쿠메네(oikoumene; ‘인간세상 전체’를 통칭하는 그리스어)'를 만들어 냈다. 이 유산은 고스란히 21세기로 넘어오면서 기술발전과 인류의 생활방식에 변화를 가속화 했다. 이 쌍두마차야말로 본질적으로 세계화의 양대 축이었다.

 

자유로운 왕래와 교역이 불러온 환경에서 번영하고 약진하는 인류의 한 차원을 그간 우리는 마음껏 구가해 왔다. 이 활력은 일찍이 어떤 인간이 누린 경험치보다도 빨랐고, 멀리 나갔다. 시간과 거리상 유래 없는 혁신이 벌어진 것이다. 이 멋진 신세계가 선사하는 풍요로움에 매료된 인류는 이 좁혀진 환경을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와 부의 증대 기회로 삼으며 21세기의 첫 20년을 보냈다.

 

그러나 좁혀진 세계에 함께 초대된 뜻밖의 손님이 우리의 식탁 밖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그간 간과해 왔다. 그것은 순식간에 나타나 대처할 틈도 없이 급격히 맹공을 가하며 증식되고 확산하는 가공할 존재 - 바로 전염병이다. 이 거칠고 새로운 복병 앞에서 인류는 속수무책으로 허둥거리고만 있다. 전쟁이 벌어진 것도 아닌데, 매일 세계 곳곳에서 수 백명이 생을 졸지에 마감하고 있다. 생의 마지막 순간을 소중한 사람들과 작별 인사도 없이 맞이하고 있다. 환자 가족들은 가슴 아파할 시간마저 빼앗긴다.

 

우리는 그간 무엇을 놓쳐 온 것일까? 세계화로 상징되는 경제활동에 익숙해 온 인류는 지금 마스크나 간단한 의료 기기 부족 앞에서 무얼 깨닫는가? 사적 이익 앞에 공공재가 얼마나 한 치의 고려 대상도 아닌 것으로 치부되고 말았는지 세계 각국의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잘 보여주고 있다. 해서 인간이 만드는 세계의 한계와 통절함을 쓰디쓰게 맛보고 있다.

 

지금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세계(사)적 재난 앞에서 인류는 충분한 공동 대응책 마련해 왔는가? 공공의 연대와 대응으로 물리쳐야 할 질병 예방과 치료에 얼마나 많은 자원을 투여해 왔는가? 이런 노력보다는 탐욕의 질주 속에서 오히려 전염병이 확산될 여건을 스스로 배양해 온 것은 아니었을까? 많은 반성적 사유에 안타까울 뿐이다.

 

지역 차원의 역병이 전세계 전염병으로 전파되는데 불과 며칠 밖에 걸리지 않는 이 속도의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무엇보다 인류는 가까운 경험에서 교훈을 배우지 못한 것 같다. 에볼라, 메르스, 사스 등 지난 10여 년 간 코로나와 같은 전염병의 출현을 예고하는 질병들은 얼마나 발생했었는가? 그러나 선례적 경종은 무시되고 간과되어 온 나머지 작금의 코로나 사태로 번지게 된 것이다.

 

그나마 한국은 정부와 시민들의 선제적이며 자발적 대응으로 잘 해 온 편이지만, 세계 각국이 무방비로 당하는 형국은 너무나 뜻밖이라 어안이 벙벙할 정도다. 그들은 스스로 선진국이라 자처해 오지 않았는가? 코로나 사태가 은폐된 그들의 역량과 진실을 폭로하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화산학자들은 어떤 일이 벌어지기 전에 벌어지는 (선발적) 징후를 가리켜 ‘꼬리가 개를 흔드는’ 법칙이라고 말한다. 폭발 전의 화산이 유독가스를 뿜어 올리는 징후를 보이면 끝내 재앙은 현실이 되고 만다는 경험치에서 착안된 이론이다. 이 법칙을 원용하자면, 에볼라, 메르스, 사스 등이야말로 코로나의 ‘꼬리’였으며, 그 꼬리가 마침내 요동치면서 전 지구를 뒤흔들어 놓는 대재앙으로 발전한 셈이 된다. 한마디로 인류는 징후 예측과 준비에 미흡해 온 걸 뜻한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가적 대응이라는 것을 살펴보면 주객이 전도된 것은 물론이거니와, 본질 파악에서도 한참 못 미친 무지·무능력·무책임의 끝판왕을 보는 것만 같다. '마스크 대신 스카프가 더 낫다'(트럼프 미국 대통령)라든가, '누구도 죽으니 나가서 일하자'(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이거나, '천 마스크를 2장씩 배포하겠다'(아베 일본 총리)는 등의 발언은 그들이 믿는 맹신 때문에 사태가 더 심각해 지고 있어 놀라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들이야말로 우리가 이전에는 잘 몰랐던 인류사적 우울증을 증대시키는 서글픈 광대들이었던 것 아닐까? 아니면 '판데믹 파시스트'들이거나. 

 

이성적이며 현명한 대처가 요구됨에도 불구하고 감정적이며 즉흥적인 대응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이들은 알까? 코로나는 어느 지역적 문제만은 아니기에 어느 국가의 대응책은 타국가의 방역에도 커다란 문제를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각국의 대처 방식이 남의 일만은 아닌 것은 이 때문이다.

 

이 같은 시기, 펜데믹 상황에 맞서 지금은 물론 향후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될 게 글로벌 차원의 대응력을 높이는 제안이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나온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여 진다. 한국 정부가 세계 각국에 코로나 방역(치료) 사례를 공유하고, 전염병 퇴치의 경험을 공동 자산으로 공유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인류사적 전염병에 맞서 글로벌 차원의 방역 경험 전수라는 공유가치의 중요성을 제시한 셈이다.

 

실은 이런 활동이야말로 WTO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펜데믹 상황 앞에서 관료주의의 무기력과 패닉 상태만을 보여준 이 세계 보건 조직은 전 지구인을 실망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한국은 펜데믹 상황을 구체적이며 성공적으로 관리해 나감으로써 전염병 퇴치의 리더십을 보이고 있고, 이런 모습은 우리의 매우 귀중한 자산이 될 거라 보여진다. 한 차원 도약한 베스트 프렉티스(Best Practice)를 한국과 한국인은 실천해 낸 것이다.

 

지금과 같은 위기 앞에서 뛰어난 국제 연대와 대응은 인류를 비극으로부터 구해 내는 주요 방법이 된다. 그 한 예로 1912년 4월 10일에 발생한 타이타닉 호 침몰 사건을 들 수 있다. 이 침몰 사고는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벌어진 참사였는데, 주요인은 래브라도 해류의 영향을 받아 빙산이 남 대서양 횡단 해상 통로로 진입한 데 있다. 물론 이날만 그랬던 건 아니다. 그전에도 빙산과 얼음은 이 해상 통로로 밀려들어 왔다. 1882년~1890년 사이, 그랜드 뱅크 부근을 표류 중인 빙산과 충돌해 14척이나 되는 배가 침몰했고, 40척이 피해를 입었다. 그 외에도 많은 배가 행방불명되었다.

 

타이타닉 호 사고 이후 인류는 어떤 공동 연대, 대응책을 마련했을까? 많은 해양 국가가 북위 42도선까지 남하해 온 빙산의 가공할 위협에 공동으로 대처하기로 하고 1주일도 지나기 전에 타이타닉 호가 침몰한 해역에서 가까운 그랜드 뱅크에 2척의 소형 순양함을 파견해 빙산을 감시하고, 그 위치를 확인해 항해 중인 선박에 빙산 위치를 통보하기 시작했다.

 

그 이듬해에는 세계 감시국 소속의 2척의 감시선이 빙산 감시의 임무를 인계받고, 1914년 1월 30일에는 13개 해양국 대표가 영국 런던에서 회의를 열고 빙산 감시의 책임을 각자 분담할 것을 합의했다. 그 이후 해안 경비대 감시선은 국제 해운업의 안전을 위해 ‘빙산골목’으로 알려져 있는 그랜드 뱅크 부근의 95만 제곱킬로미터 해역을 샅샅이 돌아 감시 활동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다행히 글로벌 대응책이 마련돼 작용한 것이다.

 

지금 인류가 해야 할 일은 바로 전대미문의 전염병 앞에서 협력의 힘을 강화하는 것이다. 국가적 차원을 넘어 인류 차원의 연대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WTO의 제도적 면도 대폭 혁신되어야 할 것이다. 각국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 개체이자, 건강하게 살 권리가 있는 인간 존재로서 세계 시민들도 이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이 대목에서 한국과 한국민은 가장 뛰어난 베스트 플렉티스를 실천해 낸(지금도 하고 있는) 코로나 방역 선도국으로서 주도적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기대에 찬 21세기에 접어든 20년 만에 인류는 전대미문의 도전을 받고 있다. 전 세계를 강타한 전염병으로 문명사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일상의 불편함을 넘어 생존 자체가 위협적인 상황을 지금부터는 상수(常數)로 놓아야만 하는 놀라운 전변을 금세기 인류는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위기의 일상화는 앞으로 보편적 환경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인류는 문제 속에서 지혜의 등불을 꾸준히 밝혀왔다. 끊임없는 부침 속에서도 생존 이상으로 번성해 왔고, 위기 속에서도 지적인 정밀함과 고도화를 강화시키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 왔다. 오랜 시간 멸종의 위협 속에서도 생존과 번영의 양 키(Key)를 움켜쥐고 문명을 주도해 올 수 있던 것은 어떤 환경 앞에서도 새롭고도 혁신적인 방식으로 진화하는 길을 우리 스스로 선택해 왔기 때문이다.

 

인류사의 크고 작은 모멘텀과 달리 지금의 코로나 국면은 그 전과 후가 급격한 판 바꿈 현상을 불러올 것으로 예상되며, 사람들의 인식 또한 과거와 다른 차원으로 이행해 나가게 될 것이다. 공공 의료의 중요성은 최선두가 될 것이다. 이미 '공공(公共)'은 가장 주요한 이슈로 떠올랐다. 

 

오랜 생존과 번영의 키를 쥐고 지금에 이른 인류는 앞으로도 잘해 나갈 수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다만 그 적응 방식은 일찍이 아놀드 토인비가 지적한 바와 같이 새로운 방식의 ‘도전과 응전’의 실험이 될 것 같다. 우리가 맞이한 도전과, 우리가 주도하는 응전의 방식은 국경을 초월한 오이쿠메네에게 하나의 보편적 메시지로 다가올 것이다. ‘인간세상 전체’를 우리가 어떻게 새로이 이해하고, 설계해 나갈 것인가 하는 게 바로 그것이다. 코로나는 지금 전 인류에게 이 해답을 요구하고 있을런지도 모른다. ⓒ전경일 인문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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