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나의 상사 한분은 직장을 가리켜, “절간이 따로 없네.”라는 말로 정의했었다. 사회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한 얘기일터인데, 그 말이 의미하는 바가 심장(深長)해서 잊지 않고 지금도 간혹 떠올려 보곤 한다. 남들과 갈등이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는 곳이 회사다. 보이든 보이지 않든 경쟁이 만들어낸 결과다. 경쟁은 건전한 발전을 촉진하는 촉매 역할을 하지만, 때로는 그로 인해 불필요한 무효경쟁을 양산해 내기도 하고, 또 인성이 피폐해지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소모적 갈등은 직원들을 일에 몰두하지 못하게 만들고, 서로간의 인격을 좀 먹게 할 수 있다. 인간적이기보다는 무망한 야망에 휩싸이게 하는 게 적극적인 자세로 오인되기도 한다. 또 어떤 경우엔 조금은 야비해 져야 뭔가를 얻을 수 있는 걸로 비쳐지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도 그런가? 실은 그렇지 않다.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 끝까지 가는 경우란 없다. 결국엔 제 마음을 다스려 남을 이끌 힘을 얻을 때, 리더십이 발휘되는 것이다.
정해진 목표를 놓고 남보다 나아지려는 욕망을 가지게 되는 곳이 직장이다. 회사가 가진 자원은 물론이고, 자신이 지닌 자원조차 효율성을 극대화하려는 곳이 직장이다. 아무래도 심적 고충이 따를 수밖에 없다. 이런 갈등을 겪으면서도 때론 절간에 들어선 수도승처럼 심신을 다스려야 하는 곳이 직장이다. 자기 노력 여하에 따라, 사회생활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인격적 수양을 쌓게 될지, 그저 단순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무미건조한 직장인의 삶을 살아갈지 결정된다. 누구에게나 수양의 환경은 주어졌으나, 누구는 그걸 활용하고, 누구는 주말에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것마저도 적잖은 관심과 노력이 들어니 대단한 일이기는 하다.
우리가 먹고 사는 일을 하면서도 스스로를 훈육할 수 있다면, 그만큼 훌륭한 일은 없을 것이다. 남들이 7급수 같은 물에서 허우적거릴 때에도, 어느 곳에서는 자신과 세상을 밝히기 위해 애쓰는 직원들이 있기에 세상은 여전히 살만하고, 직장은 메마르지 않는다. 희망이 보인다.
직장 내 보통 인재들은 인성 면에서 어떨까?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특별히 훈련을 받은 사람은 아니어도 내면의 곧음은 드러난다. 사람에 부댖기며 어느 한 축이 무너진 데가 있어도 살며 가다듬어 온 정서는 표출된다. 세상일은 파도와 같아서 아무리 거친 돌의 표면이라도 매끄러운 조약돌로 빚어내곤 한다. 만일, 보편적 인성을 지닌 사람이라면, 보다 매끄럽게 다듬어져 있을 것이다. 남들보다 뭐 특별하지 않기에 사람들과 어울리며 기울인 심적 훈련은 보통의 사람들을 훌륭한 인격적 존재로 거듭나겠금 만들어 주곤 한다. 직장은 그런 의미에서 결코 우리 삶에 작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삶에 전반적인 구성요소가 된다.
내 상사 한분은 내가 보기에도 풍부하게 완성된 인격을 갖추신 분이었다. 그 분과 종종 얘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내가 훌륭한 인격을 갖춘 걸 보는 것 같아 많은 점에서 배우고 있다고 말하니까, 그 분은 자신에게는 인격이니 하는 말들이 과분한 얘기라며 손사래를 치는 것이었다. 그 분은 당신 스스로 한사코 그 같은 좋은 평가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사양했지만, 주변 사람들의 평은 하나 같이 저절로 고개를 수그리게 되는 분이라고 칭찬이 자자했다.
그 분 말에 의하면, 직장 생활 30년 동안 철없던 나이를 보내고 나서야 주변 사람들이 보였다고 한다. 내가 왜 진작에 이걸 몰랐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 후로 주변의 힘들고 고된 상황을 외면하는 일이 없었다. 후배 사원들의 어려움에 몸소 두 팔을 걷어 부치고 도와준 것은 물론, 상처를 한 동료와는 밤새 포장마차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런 이유로 나이에 걸맞지 않게 주례를 서게 되었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내가 대접 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성경의 말이 딱 맞지. 그러면 누군들 좋아하지 않을 사람 있겠나? 사람은 다 같은 걸, 누구나 자기가 존귀하게 여겨지길 바라지. 나부터도 안그렇겠나? 그렇게 대하면 되는 거네. 직원들에게도, 고객들에게도. 이게 가장 건강한 관계지...”
평소의 과묵함 그대로 상사는 자신이 평생 지켜 온 인생의 가장 중요한 원칙을 피력해 주었다. 그 분은 나와는 부서가 달랐는데, 언제나 공장설비에 대해 가장 꼼꼼하게 챙겼다. 그 분이 맡은 업무에서 사고가 난 경우는 단 한 차례, 십 여년 전, 회사에 악의를 품은 사람들에 의해 일어난 고의적인 방화사건 말고는 없었다. 새벽 4시면 “특별히 아침에 어디 갈 데가 없어서” 회사에 출근한다는 그 분은 출퇴근 시간이 구분 없는 일과를 보냈다. 출근 도장이 필요할리도 없었다.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나 온갖 배고픔을 겪어 본 그 분은 시골 농부처럼 아침에 일찍 일어나 논물보러 나가듯 회사에 나와야 안심이 된다고 했다. 30년 정근상을 받고 퇴직을 하던 날, 그 분은 떨리는 음성으로 단상에 올랐다.
“저는 배운 게 없어, 남들보다 더 부지런히 살고, 이 회사가 내 회사다 하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회사 덕분에 아들 둘과 딸 둘을 다 키워 성가시켰고, 이제는 머리가 허애져 손자들 곁으로 갑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회사가 그리울 것입니다. 다들 보고 싶고, 내 손 때가 묻은 기구들이 보고 싶어질 겁니다. 누구보다 모자란 저였지만, 그런 모자람 때문에 묵묵히 일하다보니 지금 이 자리에 서게 되었네요. 늘 참고, 한 발 양보해 주세요. 직장 생활은 그렇게 하면 성공할 수 있을 겁니다.”
그의 퇴임사가 끝나자, 남아 있는 동료직원들은 전원 기립해 박수를 쳐 주었다. 회사 사랑을 그 분처럼 해야 한다는 것을 다들 느낄 수 있었다. 각자 자기 일터로 돌아가는 직원들의 마음엔 뭔가 흐뭇하고, 정겨우며, 정말 다른 종류의 뭉클한 감동이 일고 있었다. 그것은 상사를 떠나 인생의 선배로부터 듣는 진정한 가르침이었다. 오늘날 기업엔 바로 이 같은 분들이 필요하다. 바쁘게 머리를 굴려도 정작엔 가치를 창조해 내는 것은 다른데 있다. 그것은 자기소임이라는 걸 묵묵히, 돌쇠처럼 하는 것이다. 회사의 인적 재산은 보이지 않지만, 바로 이런 데 있다. 가장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원칙이 회사를 지키는 것이다. ⓒ전경일, <평범한 직원이 회사를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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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만 몰랐어?”
회사 내 소식에 누구보다도 빠른 사람이 있다. 입만 빠른 게 아니라, 궁둥이도 가볍다. 그런 까닭에 사방팔방 소식을 전하기 위해 의자에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있을 시간이 없다. 가뜩이나 요즘엔 메신저로 회사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실시간 생중계까지 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누군 어떻고 저떻고, 그래서 등등...
특히 인사이동이나 고과시즌이 되면 이런 얘기에 회사 전화통은 불이 날 정도다. 어느 회사에나 그런 진풍경을 연출해 내는 사람들은 있다는 얘기다. 회사의 그 같은 일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좋지만, 모든지 지나치면 문제다. 특히나 뭔가 잘못된 회사에선 직원들의 정치 참여가 이런 식으로 이루어진다. 루머만 난무한 것이 아니라, 양산되기까지 한다. 쓸데없는 풍문에 귀 기울이지 말고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라고 상사가 독려해도 이런 행태는 쉽게 근절되지 않는다. 심지어는 직원들 간에 누가 어떻게 될 거라는 둥 실생부까지 나돈다. 그야말로 회사 업무가 정상적인 일보다는 풍문에 더 신경 쓰게 된다. 아마도 이는 어느 회사랄 할 것 없이 흔히 나타나는 인사 시즌인 연말연초의 풍경이리라.
이렇게 다들 들떠 있을 때, 이와 정반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명 궁둥이가 무거운 사람들이 그들이다. 사내 소식엔 둔감해도 자기 일이나, 업체에 관한 일, 나아가 시장에 관한 일에 대해서는 빠삭한 직원들이다. 개발자 중에서도 확실하게 자기 분야에 정통한 프로들이 이렇다. 이런 직원은 겉으로 보기에는 정치적이지 못하다. 그런데도 내실 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자기가 경쟁력이 있기 때문에 더욱 정치적 일 수 있다. 보통 직원들 중에는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이런 내실형 인재들이 있기 마련이다. 회사에서 찬밥 대하듯 하면, 결과가 어떻게 될지 미리 알고 있는 눈치다. 벌써 몇 군데에서는 같이 일하자는 스카웃 제의가 와 있다.
물론, 보통 직원들 중에는 꿔다놓은 보리자루 같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직원들도 있다. 이들 대부분은 승진에서 몇 차례 고배를 마셔본 경험도 있다. 그들은 제외지만, 앞서 숨은 인재들은 정말이지 엉덩이가 무겁다. 마찬가지로 입도 무거운 편이다. 다들 정치를 하고 있을 때, 그들은 남과 다르게 행동한다. ‘본연의 일’이 무엇인지 묻지 않아도 잘 안다. 본분을 지킨다는 것, 그것은 대단한 인내와 용기, 그리고 자기 원칙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내 궁둥이는 내 몸무게의 90퍼센트 이상 되지. 궁둥이가 이 정도는 무거워야 개발자 되는 거 아냐?”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보통 직원들은 말 그대로 보통은 아닐 것이다. 그들이 언젠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면 회사는 누구를 붙잡아야 할지 바로 알게 될 것이다. 자기 일에 엉덩이가 무거운 직원을 중용하라. 직장에는 ‘삼중인(三重人)’이 필요한데, 첫째가 입이요, 둘째가 행동이요, 셋째가 엉덩이가 무거운 직원이다. 이 세 가지를 갖춘 직원이라면 필시 그저 평범하기만 한 직원은 아닐게 분명하다. ⓒ전경일, <평범한 직원이 회사를 살린다>
고졸사원으로 시작했다.
상고를 나왔으나, 먹고 살려면 기술을 익혀야 될 것 같아 현장을 선택했다.
다들 의아한 눈길로 쳐다보았다. 주판알이나 튕기는 본사 경리 팀에서 일할 것이지 왜 다 굴러들어온 밥도 차버리느냐고. 그런데도 그는 공장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열심히 생활했다. 그게 현장 반장의 눈에 들었다,
어느 날 회사에서 그를 불렀다. 산학협동으로 전문대 인력을 받기로 되어 있는데, 회사측에서도 야간대학을 다닐 ‘학생’을 소수 모집해 보내 줄 계획이라고, 거기에 한번 도전해 볼 생각이 있냐고. 학비는 전액 회사서 부담해 주겠지만, 조건은 대학을 나와서도 회사 생활을 앞으로 5년간은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고. 그간 현장에서 배울 만치 배운 그는 학력에 주눅 들었던 과거의 자신을 발견하고는 주경야독으로 일과 공부를 병행한다.
전문대를 마쳤을 때에는 현장 작업 1팀 반장이 되어 있었고, 해외 기술 이전 차 동남아시아에 발령받아 가게 된다. 거기서 다른 동료들처럼 관광이나 다니고 하지 않고, 2년 동안 착실히 대학원을 마쳤다. 어렵사리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 후 해외 진출이 본격화되고 해외 파견 근무 경험에, 입사 후 학력이지만 석사학위에, 2000년 들어서의 신지식인 열풍에, 그는 본격적으로 회사 내 스뎁진으로 뛰어 들게 된다. 국내 박사학위를 취득한 건 그 후 5년이 지나서였고 그 사이 그는 전무이사가 되어 있었다.
이 이야기는 내가 아는 업계의 한 유력인사의 이력이다. 그는 회사에서 준 그저 평범하기 짝이 없는 기회를 비범한 경쟁력 수준으로 끌어 올렸다. 거기에는 피나는 노력과 함께 자기 각성이 뒤따랐다. 물론, 철저하리 만치 자신을 갈고 닦고자 한 근성이 없었더라면 그는 다른 평범한 동료들처럼 이미 오래전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할 때 일을 손에서 놓아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운이 좋았다. 지내 놓고 보니, 운도 좋았지만,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노력도 대단했다. 스스로 아름다운 깃을 가진 미운 오리였던 것이다.
이런 얘기는 실제 산업화 시대에는 흔하게 벌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 직장 생활을 하며 야간 대학을 다닐 수 있게 교과과정이 생긴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때 보통 교육 과정만 받고 입사해 회사와 더불어 계속 성장한 직원들 중에 지금 내노라 하는 전문 경영인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학력이 낮아서 결국엔 자기 일을 못한다는 건 터무니없는 핑계일 뿐이다. 시작은 그러할지라도 자기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더구나 요즘엔 어느 기업에서나 막대한 교육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단순 업무에서 지식이 결합된 업무로 전환하다보니 업무의 양보다는 질이 높게 평가받는 시대가 되고 있다. 회사의 경영자나 인사 부서도 그것이 장기적으로는 회사의 경쟁력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문제는 이렇게 널려 있는 교육기회조차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하고, 늘 실속 없이 ‘바쁘기만’ 한 직원들이 대다수라는 것이다. 퇴근 후 술자리만 찾아다니다 보니 자기 시간이 날리 없다. 그러다보니 회사가 지원하는 교육비는 그저 급여명세표에 복리후생비 항목을 채우기 위한 용도로만 인식된다. 보통의 평범한, 그러나 발군의 능력을 가진 직원들은 회사와 더불어 계속 성장한다. 비유컨대, 회사가 토양이라면 자신은 나무가 되어 회사와 더불어 경영 환경을 풍요롭게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들의 막강 파워는 일과 공부를 함께 했다는 것, 그러다보니 학력이 현장과 괴리되지 않고 현장과 계속 견주어 지면서 살아있는 지식으로 발전해 갔다. 변증법적으로 체화된 셈이다. 이것이 말로 이론과 실재가 통합된 진정한 실전 교육이다.
오늘날 기업은 조직 내부에 비범한 씨앗을 품은 될 성 싶은 떡잎들을 알아보아야 한다. 경영자들은 그런 사람에 대한 통찰이 운명처럼 요구되고 있다. 사운을 걸고서라도 5년후, 10년후 먹고 살거리를 개발하고 이끌어 나갈 튼실한 종자를 골라내야 한다. 그게 무한 경쟁 시대의 인재론이다. 만일, 맨드라미처럼 가을이 되어 밤 기온이 뚝 떨어지면 꽃 색깔이 더욱 선연해지는 꽃을 찾고자 하는가? 그렇다면 조직의 가장 후미진 곳도 탐문해 보라. 인재는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얼마든지 있다.
ⓒ전경일, <평범한 직원이 회사를 살린다>
그들은 두 발로 일 한다
“업체 좀 갖다 오게.”
“얼마 전 갖다 왔고, 뭐 특별한 일은 없으며, 지금 갈 필요는 없어 보이는데, 그것도 꼭 내가 가야 합니까? 저기 심 대리도 있는데.”
만일 상사의 지시에 이렇게 대답해 오는 직원이 있다면, 충고하건대, 그를 크게 쓸 생각일랑 애당초 마음에 두지 마라. 뛰어 다니며, 발품을 팔아 일을 배우고, 일을 만들어 내려는 직원이 아닌 사람은 결코 크지 못한다. 그들의 소극적이고, 작은 생각이 회사를 작게 만든다. 회사의 의자는 앉은뱅이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뛰며 발품을 파는 친구들을 위한 일과 휴식의 소품이자, 현장으로 달려들기 위한 잠시 잠깐의 생각의 정리소이다.
일의 본질은 특별히 연구직 같은 경우가 아니라면 책상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일은 현장에 있고, 돈도 현장에서 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을 안살림 하듯 하려는 친구는 자기 발전의 안목은 물론이려니와 기회조차도 발견해 내지 못한다. 일은 발품을 팔아서 하는 것이다.
예전의 직장 생활을 할 때였는데, 내 옆에 한 팀이 있었다. 기술 영업을 하는 부서였는데, 회의를 했다하면 김 대리라는 친구는 여지저기 되는 일인지 안 되는 일인지 몰라도 일거리를 계속 물어 날랐다. 업체를 대상으로 영업활동을 하다 보니 이것저것 듣는 게 많아서 그렇다는 게 그 친구의 말이었다. 그런데 한번은 거래처 사장이 방문을 했다가 그를 보고는, 특별히 고맙다고 말을 건네는 것이었다. 회사 서버가 망가졌는데, 그때 업무시간이 종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손을 봐드리겠다며 다 고쳐주고 가더라는 것. 게다가 직원들의 PC중에 사양이 떨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용도별로 요건 요렇게 업그래이드 해라, 바꿔 써라, 며 알려 줘 관리직원 애기만 듣고 바꾸려던 계획을 취소했다는 것. 그로 인해 적잖게 경비 절감을 하게 되었다고 감사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업체 사장의 칭찬에 김 대리는 머리를 긁적였지만, 그날 분명 상사들에게 각인시켜 놓은 게 있었다.
그런 그가 연말 인사고과에서 별로 인정을 받지 못했는지 시무룩해져 있어서 물어 보았다. 벌린 일은 많은데 주어 담은 일은 별로 없어서 별로 좋지 않게 평가받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연간 수주 물량의 10퍼센트 이상이 김 대리의 직간접적인 영업활동 결과로 이루어진 걸 모르는 부서 사람은 없었다.
“잘못된 것만 보이기 시작하면, 그땐 내가 여기 있을 필요가 없는 거지.”
김 대리를 위로 차 따뜻한 율무차를 갖다 주었는데, 때마침 전화가 걸려왔는지 그가 통화하는 내용이 들려왔다.
“아시잖아요? 제 다리 튼튼한 거. 머리 나쁘니 다리는 튼튼해야죠? ...네에? 그냥 남들이 그러더라구요. 발로 뛰어서 먹고 살 놈이라구요...”
그의 얘기를 들으며 나는 속으로, ‘너는 어디 나가서도 밥벌이는 할 수 있을 테니 아무 걱정 말아라.’고 말하고 있었다.
어느 회사건, 회사 안을 속속 들여다보면, 똑똑할수록 입으로 일하는 직원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만일 그들이 뛰면서 머리로도 생각한다면, 천하무적의 기갑병이 될 수 있을 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런 현상은 어느 회사에서고 일반적이다. 그런 직원들이 생산해 내는 것의 50 퍼센트는 사내 루머다. 어찌 그리도 사내 소식에는 다들 정통한지...
하지만 직장 생활에 구력이 쌓일 만큼 쌓인 선배들은 어느 정도 알 것은 다 안다. 사람을 다루다보니 자연스레 터득된 지혜다. 아무리 말이 난무한 직장일지라도 묵묵히 현장을 돌며 실적을 쌓는 직원들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직원들의 성실성이야말로 회사의 경쟁력이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문제는 상대가 그걸 모르겠거니 하고 생각하는 직원들이다.
직장 내에서는 적어도 내 부서 사람들 곱하기 3.5명 정도는 내가 하는 일을 알게 되어 있다. 이 3.5명은 나를 건너 뛰어 나를 알게 되는 사람들의 수이다. 아직도 그걸 모른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소위 직장이란 게 생긴 이래 그걸 아는 경영층들이 있기에 회사는 여전히 돌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임원들에게 물어 보라. 누가 일하는지를. 알고도 모른 척 할 수는 있지만, 그들은 누구나 다 안다. 누구든 다 요령을 부리던, 때론 용쓰듯 뛰던 경험 양쪽 모두 가자고 있으니 말이다.
ⓒ전경일, <평범한 직원이 회사를 살린다>
회사 내 직급이 직급이다 보니 직원 채용 차 내 손에 넘어오는 이력서를 종종 보게 되었다. 이력서를 써 본지는 꽤 오래전 일이지만, 남의 이력서를 받아 보게 되는 것은 뜸한 일은 아니다. 가끔 받아보는 이력서와 자기 소개서는 프로답지 못한 신변 기술이 주종을 이룬다.
“저는 ○○에서 태어나 엄한 부모님의 교육을 받으며...”
이렇게 시작되는 그들 특유의 자기소개서는 식상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감응이 없다고 생각해 온 게 몇 해 전까지의 내 생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들의 이런 소박함이 몰개성으로 낮게 평가될 이유는 없다고 생각된다. 예전의 내 생각과 사뭇 달라진 것이다. 거기엔 개성은 없어도 인간적인 면은 배어 나왔다.
반면, 요즘 튄다는 친구들은 어떤가? 솔직히 튀는 게 뭔지를 알고 저러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내가 아는 잘 나가는 광고기획사의 한 간부는 온갖 요란을 다 떤다. 머리 염색에서부터 한밤중 선글라스까지... 하지만 그것이 정말 개성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일까? 경쟁력의 어느 한 부분이라도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특특한 개성과 진정한 프로 의식에 대해 나는 내가 살아오며 겪은 한 사람의 카메라맨을 잊을 수 없다. 오래전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한 네트워크 TV 방송사에서 일할 때였다. 흔히 나이 들면 방송사에서는 단순 카메라맨으로 남기를 고집하는 경우란 드문데, 그 분은 나이 육십 넘어서도 여전히 계약직으로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그러며 저녁에 퇴근하면 일찍 자고 새벽 3시에 일어나 그때부터 이어폰을 낀 채 히스토리 채널 같은 다큐멘터리에서 새로운 촬영기법을 공부한다고 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의 카메라 워킹에 대해 연구하기 위해서라는 것이었다. 겉모습에 그 분이 그렇게 프로 같아 보이거나 하지 않은 건, 속이 그득 찬 프로이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를 의식하고 거리로 나가면 카메라부터 흔들린다.”
“집중에는 어떠한 쇼맨십도 요구되지 않는다.”
젊은 시절 내게 프로가 뭔지를 잠시나마 일깨워 준 그 카메라맨이 아직도 기억나는 건, 진정한 프로는 자신에 몰두를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 그 때문에 겉멋에 신경 쓸 틈도 없다는 것이었다. 남의 쓸데없는 주목을 받지 않으려면, 남처럼 보이게 하라. 그게 일에 집중케 한다. 바로 그런 것을 알게 해 준 분이었다.
현장을 가보면, 이 같이 수수한, 그러면서도 속은 꽉찬 프로들을 만나게 된다. 그 사람들이 해 내는 일은 그야말로 신기의 경지에 이른 것들이 허다하다. 우리는 인생이나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도 이런 대가들에게 제대로 배우기나 하는 것일까. 그런 생각마저 든다. 오히려 그런 장인들을 만나지 못해 불행한 것 아닌가.
사업에 실패하고 다시 직장생활에 뛰어들어 몇 해 지난 후, 한 선배를 만났다.
“언제 또 할 생각이냐?”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제 다시 시작하면, 차돌처럼 단단하게 할 수는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네도 많이 배웠네...”
내가 보통의 직원들과 프로 근성을 연결시키려는 것은 게중에 우리가 못 보는 진정한 프로들이 겨에 쌀 섞이듯 숨어 있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보느냐 마느냐는 경영자가 누구냐에 달려있다.
서로가 서로를 찾지 못할 때, 개인적으로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사회적으로 손실이 작지 않다. 그러니 어디에 꽃 잎 하나하나라도 제대로 피우기 위해 그 작은 소임에 충실한 프로들이 우리 주위에 있는지 찾아 볼 일이다. 꽃은 어디에고 피고 지었으나, 어떤 꽃이 진정한 향기를 머금고 있는지, 그걸 모른다면이야 말해 무엇하랴. ⓒ전경일, <평범한 직원이 회사를 살린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만일 오늘날에도 아이들 교육에 이와 같은 진부한 격언을 쓴다면,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깎아 내릴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농사가 경쟁력 없는 시대에 농사를 비교해 가며 이렇게 설명 한 들 누가 알아듣겠는가? 더구나 요즘 자라는 아이들 세대라면.
그러나 나는 이 같이 번연한 진리를 귀가 따갑도록 들으며 자라왔다. 아버지는 시쳇말로 표현하자면, 꽉 막힌 분이셨다. 나는 자라며 이 같은 농사군의 가르침에 진절머리가 낫다. 표현부터가 짜증났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어느날 문득, 거울을 보니 반백에, 내 나이 중반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이미 많은 걸 경험한 뒤였다. 사회생활에서의 각자의 처신, 행동규범, 무게감 같은 게 쌓이고 쌓여 있었다. 중년이었고, 대기업 부장이었으며, 가정에 식솔을 데리고 있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큰돈이나, 인맥이라곤 애당초 없었다. 재주라 할 것 같으면, 내 생각을 글로 옮기는 것이었다. 그래서 예전에 S사에 다닐 때에는 사업계획서나 분석보고서 작성에 남다른 두각을 나타냈다. 간결하고 맥을 짚는다는 소리도 들었다. 그게 내가 사회생활에서 들은 최고의 칭찬이었다. 칭찬은 나를 키워 중년에 사회의 한 곳에서 나름의 밥벌이와 역할을 하도록 만들었다.
그후론 없었다. 단 하나, 사업을 시작할 때 어느 정도 규모에 이르자 옛 상사 한 분이 “사업에 소질이 있구나.”하며 격려해 주었던 기억이 난다. 그뿐이다. 그런 내가 나이 들며, 진부하기만 했던 아버지 말씀이 진리라고 생각하게 되는 건 왜 그럴까? 아버지의 ‘콩팥이론‘은 어느 시대, 어느 누구에게나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다. 바뀐 것이다.
세상에 온갖 샛길들이 수없이 많고, 기회의 부적절성도 무척 많건만, 농사군의 미련해 보이는 삶의 방식에 찬사를 보내게 되는 것은 왜 일까? 그건 우리가 살아가는 길에는 반드시 평범한 진리가 가진 힘이 작용한다는 걸 믿기 때문이다. 그 힘이 작용하는 때가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때는 한 사람으로써 성숙하며 보다 체화된 형태로 느끼겠금 되어있다.
회사를 보면,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사람이나, 남을 위하기를 습관처럼 하는 사람들, 남에게 한결 부드럽고 정감가는 말로 대하는 사람들,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의 힘을 잃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럴 땐 행운이다. 이들의 직장 생활 면면을 살펴보면, 그건 한 사람의 직장인으로써의 성공뿐만 아니라, 가장으로써, 사회인으로서 넉넉한 인물됨을 알 수 있다. 특별한 재주나 인맥이 있는 것도 아니며, 없는 집안에서 태어나 제대로 풍족하게 자라난 것도 아닌데 다들 마음씨가 곱다. 그러다보니 주변 사람들도 서로 돕고 싶어진다. 특별히 모나거나 한 것도 아니다. 그러다보니 천하무적이다. 이런 평범한 직원은 개선에의 노력도 본인이 알아서 하지만, 주어진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분발하는 모습이 역력하고, 치열하다.
모두들 자기 이해에 밝은 사회에 살고 있고, 자신을 포장하려 든다. 자신이 경쟁을 초월해 절대적인 입지를 터득하려고 하기보다는 상대에 따라 가변적인 만족을 얻고자 한다. 그러다보니 남을 인정할 수 없고, 남을 끌어내려야 한다. 이런 복잡한 심리 생태계에서 유유히 이 사회를 건전하게 유지하는 뿌리들을 만나게 되면 절로 힘이 난다. 그들이 하는 평범하고, 극히 손 가기 망설여지는 일들 앞에서도 거리낌 없이 나서는 생활 속의 보통의 영웅들을 만나다보면 인생의 깨달음조차 얻게 된다. 언제 그런 사람들과 소주 한잔 같이 해 보시라. 세파에도 흔들림 없이 꿋꿋하게 버텨온 한 집안의 장남과 대작하고 있는 것 같은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못난 맨드래미 꽃과 같이 아무대서나 피어나지만, 오래도록 버티고 서 있는... 세상에 평범을 진리처럼 알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많은 조직은 오래도록 영화를 누릴 것이다. ⓒ전경일, <평범한 직원이 회사를 살린다>
연전에 축구를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상암구장에 갔었는데, 붉은 악마 출신인 이 친구는 골이 터지자 내게, “뒤를 보세요. 공을 넣은 저 선수 말고, 저기까지 전술을 수행해 낸 친구들을요” 하며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 친구 말마따나 공을 쏘아올린 뒤에 포진한 선수들은 다시 긴장 상태로 전방을 주시하는 것이 보였다. 그들 모두가 각자 자기 몫을 재대로 해내는 일체감이 느껴졌다. 나는 그때, 작으나마 깊은 감명을 받았다.
흔히 가치라 함은 겉으로 드러난 결과만을 얘기하는 경향이 있으나, 결과를 만들어낸 동인이자 끊임없이 자기 혁신을 꾀하는 사람들이 해 내는 몫이 크게 작용한다. 화려함 뒤에는 반드시 어둡고 힘든 상황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상황을 견디어 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 같은 역할을 수행한 ‘소리 없는’ 인재들의 가치는 결코 희석될 수 없다.
회사 일도 이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다. 사장상이란 사장상은 혼자 다 휩쓰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그를 뒤에서 지원하는 사원도 있다. 서포터들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기업은 살벌한 약육강식의 경쟁만 있게 될 것이다. 그럴 때에는 인간성의 상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협력에 대한 의지도 실종되고 말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인재들을 다루는 용인술의 핵심은 공을 만들고, 이를 안분하는 것이다. 이것에 실책을 범할 때 기업 내부는 소란스럽고, 심지어는 부침을 더 빨리 겪게 된다. 서포터들은 결코 들러리가 아닌 것이다.
평사원으로 시작해 임원의 한 사람으로 자리 잡기까지 나의 경쟁력을 들여다보면 특별히 내 놓을 거라곤 하나도 없는 것 같다. 한때 창업한 적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것도 배움의 한 과정으로 남았다. 그런데도 직장 내에서 어느덧 상사가 되어 있다. 무엇이 나를 이 위치까지 끌어 올렸을까? 단순히 시간이 지나고, ‘짠밥’을 많이 먹었기 때문에 이룬 성과는 아니리라. 자가 진단을 해 보자면, 나의 경쟁력은 내 몫을 해 내고자 애를 써왔기 때문이다. 거저 된 게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다들 도중에 떨어져 나가니 나의 인내는 그 만큼 성공 가까이 나를 끌고 간 셈이다. 이제부턴 본격적으로 능력을 얘기해야 겠지만, 하여간 지금까진 그렇다는 얘기다. 내 자리를 굳건히 지키며, 맡은 바 소임에서 최상의 결과를 이끌어 내려 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있는지 나는 잘 모른다. 결국엔 자기 포지션을 잘 지키고, 뒤는 축구 선수들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앞서 상암구장에서의 깨달음을 얘기했지만, 인생에는 변함없는 원칙이 있는 것 같다. 어느 조직에서나 화려한 스타 플레이어가 현란한 기술과 멀티형 재능으로 전후를 누빌 때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은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킨다. 이들이 해 내는 일은 그리 커 보이지 않으나, 기업에는 없어서는 안될 가장 핵심적인 일들이다. 보편적인 인간관계, 거래처 직원과 인적 교류 및 굳은 신뢰 관계, 상하간의 두터운 정리 같은 것들은 결코 돈으로 얻어지지 않는다. 최고의 스승을 하루 24시간 곁에 붙여 두어도 얻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보통의 이 특별한 사람들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아무나 자기 몫을 해내는 것이 아니다. 각자가 자기 몫을 해 낼 때 우리는 조직이 경쟁 우위를 지니겠금 이끌어 나가는 것이다. 몫은 나를 많은 직원들과 함께 있게 한다. 몫은 목숨과 같다. ⓒ전경일, <평범한 직원이 회사를 살린다>
나 홀로 인재 유형
신규 법인장이 싱가폴 지사로 부임해 오면서 달라진 거라고는 삐그덕 거리는 소리 밖에는 없다고, 남동수 B그룹 동남아 법인사업부 과장은 말한다.
“저 의자 좀 고치라고 해! 삐그덕 거려서 도대체 참을 수 있어야지.”
지사장이 부임한 뒤로 그들 끼리 나누는 대화는 늘 이런 식이다. 문제의 발단은 신임지사장의 독단 때문이었다. 어찌 보면 카리스마고 어찌 보면 특이한 리더십이라서 처음에는 다들 이상하게 여겼지만 일단 지시하는 방향으로 가 보자는 식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점입가경이었다. 기존의 거래 관행을 무시하고, 외국 바이어를 만나 새로운 제안을 불쑥 던지질 않나, 갑작스럽게 물량 공급을 약속하질 않나, 도저히 뒷감당이 되지 않았다.
무슨 능력이라도 있어서 그러나 싶었는데, 본사에 알아봤더니 그것도 아니고, 오히려 동남아 공급 물량을 줄여 나가는 게 본사 정책이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담당자에게 전화를 해서야 알게 된 거라고 그는 말했다. 신규로 터지는 남미시장 만큼 메리트가 있는 곳도 아니요, 과포화 상태로 금방 물량이 넘칠 동남아에 주력을 집중할 회사는 어디에도 없지 않느냐며 그는 볼멘소리를 했다.
그런 이유로 업체와의 즉흥적인 제안은 장기적으로 볼 때, 본사는 물론, 지사의 사활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그는 완전히 나 홀로 플레이라는 것이었다. 지사 직원들은 본사에서도 스타급이었다던 그가 어떻게 이렇게 업무를 할까,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알아보니, 거의 몰아붙이기형 사업부장이라는 것이었다. 과정이야 어찌 되었건 결과만 중시하며, 결과의 긍정적인 부분은 전체가 자기 실적이 되는 이상한 계산법을 가진 사람이라는 거였다. 그런 연유로 올 A 특진 대상자가 되어 지금까지 승승장구해 왔다는 것이었다.
남 과장은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장 대책도 없다. 지사장 스스로 변해야지, 그 좁은 지사에서 서로 마음 고생해가며 사는 것도 못할 짓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람이 그럴 수밖에 없다면 그가 변하길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포기해야 할 때 포기하는 것도 미덕 아닌가. 사람을 포기해 버리면 그만이라는 생각도 솟구쳤다.
기업은 나 홀로 플레이 하는 곳이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조직의 형태를 갖춘다. 훌륭한 타자는 감독의 지시에 따라 홈런을 날릴 수 있는 상황에서도 번트로 마무리해야만 하는 경우가 있다. 이건 자신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감독의 지시는 조직 전체의 승리와 관련된 의사결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혹 조직 내 ‘나 홀로 스타’인 인재들의 경우에는 솔로 플레이를 즐긴다. 이에 따른 결과는 분명하다. 목표 성취의 실패다.
스타급 인재들의 ‘나 홀로’ 경향은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면 금방 나타나기도 한다. 그들이 자신하는 자기 경쟁력은 회사를 통해 큰 것이 아니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그러다보니 회사가 어려워지면 언제든 떠날 수 있다. 철저한 상황 논리다. 한 때 그들을 믿고 지원했던 모든 자원의 집중적 배치는 전략적 손실로 귀결된다.
본사에서 이 일을 알고 뒤늦게 손을 쓰자, 지사장은 “아니 내가 키운 게 얼만데...” 하며 버럭 화를 내더라는 것이었다. 그가 법인 카드로 업체 접대 차원에서 수없이 회사 돈을 쓴 결과 달라진 것은 하나 밖에 없다는 것. 그는 접대를 하던 회사로 넘어갔고, 직원들은 그 뒷감당에 곤혹을 치러야 했다. 물론, 운영 능력 부족으로 본사 인사팀에서 평가가 나와 다들 인사고과에서 D를 받고 귀국 명령을 받았다는 것 밖에는.
ⓒ전경일, <평범한 직원이 회사를 살린다>
얼마 전, 한 외국계 제약회사의 C임원을 만나게 되었다. 새로 본사에서 지사장이 부임해 왔는데, 그 날 이후로 학습 능력이 엄청나게 요구돼 하루하루가 버겁다며 그는 불만을 털어 놓았다. 외국계 회사를 다닐 정도면 그래도 마케팅이나 영업 쪽은 달인인 사람들이고, 정규교육 과정에서 외국 물 꽤나 먹은 사람들인데, 그런 자신들조차 견디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이유인 즉슨, 신임지사장이 외국 유명대학 교수 출신이어서 사업현장을 마치 경영실험장으로 알고 대책 없이 연구 프로젝트를 벌린다는 것이었다. 그는 마치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이론을 현장에 꿰맞춰 보려는 듯하다고 그는 말했다.
최신 경영이론에서부터 아카데믹한 연구서에 이르기까지 대학 졸업 후 그만 둔 공부를 해야 하니 죽을 맛이라고 했다. ‘단순 무식하게’ 실적을 챙기기만 하면 되는 영업직 직원들은 밀리는 숙제 때문에 거래처 방문을 미루거나 방문 횟수가 줄어 들 수밖에 없다며 푸념했다. 아무튼 로컬 시장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왔어야 했는데, 외국 회사의 높은 시장 점유율만 믿고 돼도 않게 밀어 붙이는 꼴에 이제는 진절머리가 난다는 것이었다.
그런 얘기를 들으며 나는 오늘의 경영자는 과연 경영의 눈높이를 제대로 맞추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는 그런 것에 대해 얼마나 큰 비중을 두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현란한 경영 이론과 과학적 데이터 앞에서 고객의 심연에 빠져드는 경영의 본연은 물 건너 간 느낌이다.
경영의 본질이 경영학을 위한 임상실험 과정 같은 것은 아닐텐데, 과도한 학력, 조직에 지극히 순화된 업무 태도, 나이스한 비즈니스 매너 중심으로 모든 게 변모되어 가면서 우리의 기업 풍토는 팔을 걷어붙이고 현장으로 뛰어드는 소탈한 직원을 찾아보기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분석이었다. 분명, 일리 있는 주장이었다.
많은 기업 창업자들이 몸소 경영의 교과서가 되어 준 배경에는 이들의 슬기가 책에서 나온 게 아니라, 시장에서 굳은 잔뼈 덕분이었다는 것을 요즘 사람들은 간과한다. 특히나 지식을 무기로 하는 사업의 경우엔 이런 현상이 극단적으로 나타난다.
앞서 외국 제약회사의 신임 지사장이 보여 준 태도야 말로 영어로 얘기하자면, 풋내기 학생과제물 거리(college stuff)인 셈이다. 길거리 지식을 들고 나가지 않는 한, 시장을 제대로 이해나 할 수 있을까? 어느 때이고 진정한 경영의 실천자는 시장에 있다. 많은 경우에 회사가 요구하는 똑똑함은 시장과 고객이 요구하는 슬기와는 별개로 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앞서 예를 든 지사장은 자기 ‘눈만 높은’ 인재임에 틀림없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이미 오래 전 거스 히딩크가 한국 축구를 분석하며 한 말거ㅘ 일맥상통한다. “알피엠(rpm)은 무척 높은데 속도는 안난다.” 이런 상황 아니겠는가?
경영에서 만고불변의 진리는, 가장 탁월한 기업은 보통의 직원들과 함께 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작으나 현장에 뿌리를 둔 지식과 경험은 어느 경쟁력 있는 조치보다도 뛰어나다. 그걸 가리켜 우리는 ‘시장지식’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우리가 특별한 눈길을 주지 않고 지나치는 시장과 그곳의 고객을 대상으로 사업을 하는 것이라는 걸 환기해야 할지 모른다. 이 평범한 진리를 간과한 채 우리는 인재론만을 부르짖고 있는 건 아닌지.
나사(NASA)에서나 유용할 고차원의 수학 문제를 필요로 하는 시장은 그리 많지 않다. 그 같은 문제를 즐기는 조직도 문제지만(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곤), 그 같은 문제에 집착하려는 조직은 시장성공과 거리가 멀다. 시장과 동떨어진 이론은 가치를 잉태해 내지 못한다. 오늘날 현란한 학력과 매너, 외국어로 무장한 경영자들은 다시 진솔한 경영 현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땅을 딛고 있을 때에야 경영은 의미 있는 것이다. 조직의 비전이 움트는 땅, 그것이 바로 평범한 직원들 속이다.
ⓒ전경일, <평범한 직원이 회사를 살린다>
회사 내 작은 영웅들
의류관련 중소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는 권 인식 차장은 한숨을 푹푹 내쉬며 장탄식을 하고 있었다. 회사가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 국내 모기업 총수가 천재급 인재의 중요성을 부르짖은 다음, 자기네처럼 오순도순 모여 가족처럼 운영해야만 하는 중소기업에서조차 덩달아 사장이 핵심인재의 중요성을 연일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연유로 새로운 입사 기준에 따라 특별히 채용된 사람들은 해외 물깨나 먹은 사람들이라고 그는 귀뜸했다. 대부분은 현장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식이라고, 그런 게 맘에 안든다고 그는 참았던 불만을 터뜨렸다. 새로 입사한 사람들이 보기에는 모든 게 잘못되었고, 개선되어야 할 사항으로 보이는가 보다고 그는 끝내 불만을 참지 못했다.
그들 말마따나 생산과 관련된 일이니만큼 현장의 업무가 계량화되어야 하는 건 맞지만, 거기서 습득된 오랜 지식은 단순히 숫자로 표기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는데도 늘 같은 처방을 내린다는 것이었다. 얼마 전, 20년 근속의 고참간부들이 견디다 못해 경쟁사로 넘어가게 되면서 회사에서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졌다. 후배 사원들이 작업을 하다 모르는 게 있으면 경쟁사로 이직한 선배들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본다는 것. 그것이 그 회사 인사부서에 흘러들어가자 그 회사에서는 상대 회사에 엄중 항의하더라는 것이었다.
이 모두 핵심인재론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통 직원들의 가치를 간과한데서 나온 행태라는 게 권 차장의 주장이었다. 얘길 듣다보니 일견 타당성 있는 분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선무당이 잡는다고 하지 않던가. 이는 인사 정책상의 균형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 계기였다. 또한 기업 성공을 위해 정말 관심 가져야할 것이 무엇인지 새삼 깨닫게 된 계기였다.
기업에서 후원해야 할 직원은 누구일까? 보통의 직원들은 정말 가치실현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조직이 원하는 바를 마지못해 따라가는 사람들이며, 늘 피교육 대상자이기만 한가? 그들은 찬밥에 불과한 사람들일까? 많은 경우, 현실은 정반대의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많은 성공적인 기업가들이 겪은 경험에 의하면, 조직을 살찌우는 직원은 과분할 정도로 똑똑한 직원도, 인사고과에서 늘 슈퍼A만 받는 소수의 핵심인재도 아니라는 것이다. 핵심은 늘 부분적일 뿐이라는 것. 대부분 조직에서와 마찬가지로 어느 누구든 회사가 창출해 내고자 하는 경영 전반을 다 이해하고, 대변해 내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어느 사업도 현장에 깊숙이 파고들어 계속 어느 영역을 파고 들 때 소기의 목적을 얻게 되는 것이니까 말이다. 결국엔 누가 인내 하며 머리를 좀 더 쓰냐는 문제라는 것.
아이러니컬하게도 현대 기업사는 직원들의 지나친 똑똑함이 회사를 망치는 경우를 수없이 보여주고 있다. 유명 기업인들의 그칠 줄 모르는 금융 스캔들, 회계장부 조작, 내부자 거래 혐의 등은 바로 소수의 똑똑한 인재들이 주도하는 비밀스런 ‘업무’와 관련되어 있다. 어디 그뿐인가? 기업에서 오랫동안 연구 개발한 핵심 기술을 외국 경쟁사에 몇 십억씩 받고 팔아넘기는 직원들도 알고 보면 대부분 그 회사에서는 잘 나가는 소수의 인재들인 셈이다. 반도체 유출 사건으로 유명했던 S사의 이전 사례는 이 점을 잘 보여준다. 이 같은 사례는 한 둘이 아니다. 물론 역량 있는 소위 스타급 인재들을 싸잡아 하는 말은 아니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면 조직은 균형을 잃게 만든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왜 최근 들어 부쩍 보통의 인재들을 키우고 지키려는 노력보다 스타급 인재들에 연연하는 것들이 강세를 떨치고 있는 걸까? 거기에는 ‘스타 1명=1만명’이라는 등식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외견상 그럴 듯해 보이지만 경영에 나타나는 미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어느 시대나 기업의 힘은 특별함과 보편성의 절충이다. 보통의 직원들이 행하는 활동에 앞서 스타급 인재들이 중요한 기여를 하는 건 사실이다. 중요한 일에서 돌파구를 열어젖히기도 한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것.
문제는 그들의 역할이 일단은 그 정도에서 인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상의 전지전능한 능력평가를 내릴 때 조직에선 비극이 시작된다. 예컨대, L사의 핵심 두뇌들은 놀라운 개발 성과를 내고 있다. 학력도 높다. 그러나 정작 그것이 상품으로 이어지는 단계에는 수많은 고졸 생산직 직원들의 참여가 있다. 이들은 단순하기만 한 업무를 하는 사람들인가? 그렇지 않다. 기술을 상품으로 만들어 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생산 과정에서 고객 접점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다. 물론 판매직 사원도 마찬가지다. 박사급 인력이 소요되는 것은 아니더라도 그들의 중요성은 간과될 수 없다.
어느 기업이든 기업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지식이나 기술 자체에 리더십이 있는 건 아니다. 나아가 사업의 본질도 사람의 일반적인 요구를 수렴하기 위한 행위이다. 그런 이유로 기업 성공 요인은 성공적인 노력과 꾸준함의 결과다. 한순간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일어난 무수히 많은 회사들을 보라. 회사 내 개발품이 동시에 수많은 잠재적 경쟁자들을 만들어 내고, 그들이 동시 출시하며 시장이 교란되는 것을 보라. 이제 무엇에 가치를 두고 집중시켜야 할지 알게 되었을 것이다.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보통 직원들은 오랜 시간 기업의 역사를 만들고, 사풍을 다듬으며, 사업의 노하우과 고객과의 관계를 만들어 낸다. 화려하지 않으면서 회사 내 주요한 재원이 된다. 그들의 외견상 밋밋해 보이는 이면에는 기업이 정작 필요로 하는 근면과 성실, 그리고 직장에 대한 애정과 일에 대한 꾸준함이 함께 하고 있다. 이 점은 무엇으로도 살 수 없는 조직의 경쟁력이다. 장기적인 역량에 해당된다. 만일 보통의, 평범한 직원들에게서 이런 로열티를 찾지 못한다면, 회사를 움직이는 진정한 힘을 파악하지 못한다.
현장으로 달려가 보라. 여전히 조직 내 찬밥이지만, 상품을 만들어 내고, 고객을 위한 서비스를 만들어 내고, 실제로 고객을 확대재생산해 내는 직원들이 있다. 그들이야말로 기업에 힘을 주는 작은 영웅들이다. 회사가 이런 보통의 인재들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이 있다면, 그 기업은 성공할 것이다. ‘보는 눈’은 기업의 핵심 경쟁력임에 틀림없다.
ⓒ전경일, <평범한 직원이 회사를 살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