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곳곳에서 리딩 컴퍼니가 되는 길은 벤치마킹 수준을 완전 환골탈태해 새로운 창조기반을 만드는 데서 출발한다. 급격한 국제 경영환경에 초밀도의 이해력과 종합적 판단력은 기업 생존을 결정짓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창조적 기업에 요구되는 초영역 인재상은 기존의 모방형 사업모델을 뛰어넘어 시대의 흐름을 꿰뚫는 새로운 사업모델을 창출해 낸다.
기업 경영에서 과거와 현재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이 차이를 알려면 먼저 ‘현재’의 의미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현재는 과거의 유산을 물려받으면서도 그것과 선을 긋지 않으면 새로운 도약을 위한 미래를 열어젖힐 수 없다. 이 점에서 기업 혁신은 놀랍게도 ‘혁신적 결별’과 맞물려 있다. 오늘날 한국 기업의 ‘현재’를 구성하는 요소는 과거의 모방방식이 여전히 지배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같은 모방은 우리를 가두리에 가두어 왔다.
뒤에 있을 때는 선발자에 대한 발 빠른 후행학습을 통해 그 뒤를 뒤쫒을 수 있는 조건이 있다. 하지만 1등이 되는 순간, 지표는 달라진다. 앞을 응시해야만 한다. 변화에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 이는 마치 태풍에 맞선 배가 측면을 부딪치면 끝장인 셈과 같다. 위급한 상황에서는 방향타를 움직여 뱃머리를 거대한 파도의 정면을 향해 몰아야 한다.
급변하는 경영환경의 변화는 기존의 지식 질서나 인재상을 유용하게 활용하게 하기도 하고, 순식간에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지금 우리 기업은 어디에 있는가? 현실 경영조건은 어떤가?
어느 시대나 가치는 일반적이고, 모방 가능할 때에는 ‘따라하는’ 전략을 통해 성장을 촉진한다. 하지만 특별한 가치가 요구되는 시대에는 소위 ‘벤치마킹’이 더 이상 새로울 것 없고, 가치를 창출해 내지도 못한다. 전체 판을 놓고 다시 전략을 짜고, 시작하려는 시도에 오히려 족쇄가 되기도 한다.
많은 기업이 성공적인 이탈을 꾀하지 못하고 과거의 사업, 수익원, 비즈니스 모델에 매몰되어 사라질 운명에 처하는 것은 기존 모델에서 탈출, 탈피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새삼 알게 한다. 조직과 내부 구성원들만의 문제가 아닌, 사업 자체가 그렇다. 왜 창조기업이고, 창의적 초영역 인재이어야 하는가? 이 점을 알기 위해서는 과거의 패러다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흔한 예로 모방형 기업 운용은, 예컨대 유럽의 중세처럼 어두운 면에 가려져 있다. 중세는 근세라는 희미한 불빛을 발견하기 전까지 창조와는 거리 먼, 인간 잠재 가치에 신을 끌어다 해석하기만 한 도그마적 시대와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한번 무너지기 시작한 중세는 봇물 터지듯 걷잡을 수 없을 만치 급속히 와해 됐다. 중세를 무너뜨린 장본인은 다름 아닌 창조적 본능이었다. 이 무렵 사회 전반의 역동성을 《로마인 이야기》를 쓴 시오노 나나미는 이렇게 표현한다.
“중세의 가치관이 무너지는 사태에 직면했기 때문에 새로운 가치관을 창출해내야 했던 르네상스 시대에는 정치인도 경제인도 모두 창작자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후세의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작품을 남기지 않았다 해도 그들은 모두 창작자였다... 이 시기에는 창조한다는 행위가 이해의 '바른 길'(strada maestra)였다.”
세계의 구성 원리와 세계를 운영해 나가는 이른바 ‘이해의 바른 길‘을 구한 르네상스인, 즉, 세계인의 창조적 발상과 활동이 없었더라면, 중세는 더 오래 지속되었을 것이다. 창조 의지는 중세를 밀어내고 새로운 시대를 이 대지에 씨 뿌렸다. 새로운 시대는 모두가 창조적 사고를 할 때 이루어지고, 창조적 인재들이 이끌었다는 점을 유럽의 한 역사는 잘 보여주고 있다.
알다시피 “르네상스는 양보다 질의 시대인 게 특징이었다. 따라서 그 시대에 가장 적합한 국가형태는 두뇌 집단이라 해도 좋을 도시국가였다.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으면, 아무리 우수한 조직도 성공을 바랄 수 없다.” 그들은 암흑의 중세를 부수는 시대의 흐름을 꿰뚫었고, 거기서 무한한 창조적 역량을 드러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연 천재들의 창조성은 오랜 역사와 타문화에서도 배우고자 하는 열정이 있기에 발현될 수 있었다. 이교도의 유물일지라도 그들은 배울 가치가 있으면 배웠다. 그 결과 고대 로마의 유물은 다시금 조명 받게 된다.
창조성은 문화를 이끌어 나가는 것만이 아닌, 경쟁의 패러다임을 바꿔 리딩 국가나 기업을 한 발 더 리드해 나간다. 이 점에서 창조적 행위가 지닌 파급력은 가히 폭발적이다. 우리 곁의 수많은 과학, IT발명품, 기기들을 보라. 얼마나 인간의 생활과 사업 반경을 바꾸고 확장해 놓았는가. 이렇듯 창조성은 다른 시대를 예비케 함으로써 기업 성장의 주요 화두가 된다.
한 시대의 발전 과정상 어느 일정한 시기의 교착상태는 새로운 인재형을 요구한다. 오늘날 한국 기업이 처한 환경도 이와 같다. 새롭게 다듬어진 창조적 인재를 통해 기업은 활로를 찾아야 하고, 선도경영의 일대 국면을 맞이해야 한다. 초경쟁 시대를 뛰어넘으려면 초영역 인재가 필요하다. 응용이 아닌 창조가 새로운 가치, 독특한 고유 가치로 드러나야만 한다. 과거의 패러다임을 뛰어넘는 인재형을 통해 기업의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한다.
기업이 추구해야 할 본원적 경쟁력이란, 내부 가치에 주목하고, 이를 통해 다양한 실천적 실험을 하는 가운데 얻어진다. 새로움으로 낡음을 물리치고, 새로운 미답의 경영 지평을 열어젖히는 것이 핵심 방향이다. 창조는 변혁 시대의 가장 뚜렷한 미래 비전을 담보한 가치이다. 미래를 열어가는 기업이라면 응당 찬란한 창조적 활동에 적극 동참해야만 한다. 그것이 세상을 바꾸고, 기업의 미래를 바꾼다.
전경일 인문경영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