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감성경영/나에게 묻는다

(14)
새해 첫날이면 일몰을 보러 간다 새해 첫날이면 일몰을 보러 간다 새해 첫날이면 일몰을 보러 갑니다. 남들처럼 부지런하게 전날에 출발해 지리산 노고단이나, 동해안 정동진에서 일출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일몰을 보러 가까운 강화도나 임진강변을 찾습니다. 애들과 아내도 데리고 해지는 광경을 넉넉히 볼수 있는 풍경 좋은 카페나 횟집을 찾습니다. 일몰이 잘 보이는 곳이라면, 새해 첫날을 보내는 방식치고는 멋진 하루겠지요. 내가 일몰을 찾는 건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해 뜨는 광경은 너무나 찬란해 그 광경 하나만으로도 지난 한 해의 기억이 고스란히 남게 될까봐서 입니다. 장엄한 일출 장면을 맞이하는 것도 부산스러워 보이지만, 해 뜬 아침에 정상을 내려오는 것도 내게는 왠지 어색하게만 느껴집니다. 서해의 일몰은 일출 광경만큼이나 장관입니다. 출렁..
요약 좀 해 봐 후배 중에 그림을 꽤나 그리는 녀석이 있다. 이른 바, 라는 직업을 갖고 있어서 그런지 쓱쓱 연필을 몇 번만 움직여도 그림 한 장은 거든히 그려댔다. 오랜만에 만난 녀석에게 다짜고짜 달려들어 나를 그려보라고 했다. 녀석은 멀뚱하게 눈을 뜨더니 손사래를 쳤다. “형, 그런 거 나 못해요. 뭘 그런 부탁을...” 나는 피식 웃으며 재차 요청을 했다. “나를 좀 요약해 보라고. 왜 그런 거 있잖아? 캐리커천가 뭔가 하는. 뭐, 이렇게 비싸게 굴거야야? 술 한잔 산대두.” 후배를 한참 다둑거려서야 예술작품으로 그려 주는 것이 아니라는 꼬리표를 달고 그림 하나를 얻었다. 거기에다가 나는 내 나름대로 제목까지 덜렁 붙였다. 후배 왈, 내 얼굴을 요약하면 이렇다나. 안경을 꼈고, 코가 크며, 머리는 쭈뼛쭈뼛하다. 내..
맛있는 거나 실컷 먹어라 “아니, 퇴원이라뇨?” “환자분 데리고 집으로 가시지요. 맛있는 거나 실컷 드시게 해드리세요.” 건강검진 때 위 내시경 검사를 해봤더니 급히 큰 병원엘 가보라는 말을 듣게 된 친구였다. 부랴부랴 큰 병원에 예약을 하고 검사해 보니 위장 암 말기라고 했다. 병원에서는 묻는 말에 그저 같은 말만 되풀이 했다. 주치의는 조직검사 결과 수술을 해도 이미 늦었다고 말했다. 환자가 고통만 받을 뿐이지, 아무런 효과도 기대할 수 없는 수술은 뭐러 하냐는 거였다. 친구의 아내는 순간, 실성한 사람처럼 눈이 팽 돌더니, 다리에 힘이 풀리며 주저앉았다. 나는 엉거주춤 친구 부인을 부축해 의자에 앉혔다. 암-. 안 걸리면 팔십까지는 무조건 산다는 얘기처럼 암은 정말로 무서운 병이었다. 어떻게 멀쩡한 사람 속에 저렇게 파고들..
별을 따다 직장 생활에 푹 빠져 지내다 15년 근속 상으로 가족을 데리고 해외 휴가를 갔다 온 친구가 있었다. 친구가 호텔에서 체크인을 하는데, 갑자기 호텔 카운터 직원이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었다. “내 이름?” 그는 곧, 대답을 했지만, 그때 불현듯 자신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고 한다. ‘00회사 00부장이 내 이름이었지.’ 그 전까지 사회적 직위와 무관하게 자기를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친구는 뭔가 둔기로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별 것도 아닌 일에 괜히 휴가 와서 신경 쓰게 될 것 같아 잊어버리기로 했지만, 아내와 애들이 다 잠들고 나자, 그 친구는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는 밖으로 나왔다고 한다. 동남아 호텔의 벤치에 누워 오랫동안 밤하늘의 별을 올려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대..
그 여름의 못나니 꽃 그 여름의 못나니 꽃 이태 전이었던가? 여름휴가를 이용해 시골에 갔다 왔다. 새해가 시작되고 나서 정신없이 지내다 가까스로 낸 휴가였다. 특별히 갈 데도 마땅치 않았고, 바캉스하면 으레 떠오르는 바가지 요금에, 12시간 이상 차를 몰아야 하는 고충까지 생각하니 바닷가는 아예 겁부터 났다. 게다가 눈을 밖으로 돌려 해외여행이라도 갈라치면 몇 백 만원 깨지는 것은 한순간이고 빠듯한 살림에 애들을 둘씩이나 매달고 떠나는 그런 해외여행은 쉬운 게 아니었다. 마흔까지 살면서도 해외여행 하나 제대로 가지 못하는 남편으로서 가족에게 미안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애들에게는 거창한 계획이 있는 양 시골 풍경을 그려대기 시작했다. 개울물이 흐르고, 물고기가 노닐며, 반두로 물고기를 잡아 천렵을 하고, 들판에 뛰어 다니는 메..
[나에게 묻는다] 몰래 담배를 피웠다 어렸을 때 포천 사는 큰 이모네 집에 갔었다. 초등학교 4, 5학년 무렵이었던가. 이모는 6.25 동란 중에 과부가 되셨다. 꽃다운 스무 살, 그 때 이복자를 가졌다. 개가도 하지 않고 평생 혼자 사셨다. 이모네 집에는 논이 꽤 컸다. 일하는 일꾼을 두었을 정도였으니까. 영섭이라는 친구였던가? 아무튼, 지금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큰 이모는 군수품 장사를 하셨다. 시댁에서 물려받는 토지와 당신이 평생 가꾸며 벌은 돈을 조금씩 모아 근처에 논밭을 사셨다. 무슨 일인지 작은 형과 나는 어머니와 함께 그 해 여름 이모네 집에 갔었다. 그날 밤, 우리는 일꾼 영섭이가 꼬득여 담배를 피웠다. 이모가 피엑스(PX)에서 빼온 게 분명했다. 영섭이는 중학생은 되어야 할 나이였지만, 학교 문턱도 못간 친구였다. 집안의..
[나에게 묻는다] 가장 기본적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가장 기본적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당신은 이것을 기억해야 해요. 키스는 여전히 키스예요. 한숨은 한숨이구요. 세월이 흘러도 이런 기본적인 일들은 여전히 그대로예요.’ 영화 에 나오는 대사다. 키스는 키스다. 내가 십 수 년 전 아내와 연애를 할 때 나눴던 키스가 세월이 지났다고 해서 뽀뽀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살며 가끔씩 잠 못 이루는 밤에 창밖을 내다보며 내쉬는 한숨도 그냥 한숨일 뿐인 거다. 그렇다. 세상이 아무리 달라졌다 해도 내가 알고 있는 사랑은 변치 않으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변치 않을 것이다. 내가 변하지 않는 한, 가장 기본적인 사실인 나의 언젠가 다가 올 죽음도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주변의 사람들이 그렇게 주위에서 사라져갔듯이 말이다. 사랑에 의미를 두는 것은..
[나에게 묻는다] 중국집 아강춘 중국집 아강춘 지금은 없어진 중국집이 내 추억엔 하나 있다. 아니, 가본 지 오래되어 정확히는 모르지만, 지금은 없어졌을 것이다. 벌써 삼십 년도 넘은 얘기니까. 내 고향에는 중국집이 하나 있었다. 알고 보면, 서너 개 더 있었겠지만, 그 중에서도 이라는 중국집이 제일 컸고, 기억에 남는다. 고향에서 군청 다음으로 가는 가장 큰 기관인 농협 바로 옆에 있었으니까. 어린 내게 이 이상한 이름의 중국집은 우선 뜨물통과 미끌미끌한 돼지기름을 연상시킨다. 그 다음으론, 짜장면이다. 생각만 해도 목에 감기던 그 구수하고 들척지근한 맛.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날, 아버지가 데려가서 짜장면 곱빼기를 사주시던 바로 그곳이다. 곱빼기라. 이 얼마나 흐뭇하고 푸짐한 얘기이냐? 지금 생각해도 호사스럽기 그지없다. 우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