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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르네상스 경영학11

미켈란젤로와 우르비노 호사가들에 의해 미켈란젤로는 괴팍하고 불친절하며 다른 화가의 천재성에 질투를 했던 인물로 그려지곤 한다. 물론 그의 성격이 비사교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나, 그는 적지 않은 제자를 양성했으며 평생 다른 예술가들에 대한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공방 제자와 조수들은 몇 개 장소에서 동시에 작업했고, 로마에 있는 근거지에서는 미켈란젤로가 없을 때도 정상적으로 작업이 진행되었다. 어떤 조수들은 오랫동안 미켈란젤로와 함께 일했다. 그중에서도 ‘우르비노’라고 불린 프란체스코 다마도레(Francesco d'Amadore)는 20년 동안이나 온갖 일을 마다하지 않고 미켈란젤로를 도왔다. 미켈란젤로는 그런 조수들, 하인, 석공과 석수 등을 폭넓게 후원했다.  대형 주문이 들어올 경우에는 피렌체의 성당 작업에서 알게 된.. 2024. 7. 25.
차별화를 추구하는 예술가 르네상스 예술가 티치아노(Tiziano Vecellio)는 이전 세대의 르네상스 예술가들처럼 다재다능한 사람은 아니었다. 우리가 흔히 르네상스하면 떠올리는 예술가들은 여러 방면에 관심이 지대했다. 보티첼리는 세공 일을 배웠고,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는 조각과 건축을 겸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처럼 온갖 분야에 특출한 재능을 뽐낸 이도 있었다. 티치아노는 이런 선배들과는 달리 오직 회화에만 온 열정을 쏟았다. 그는 탁월한 색채 감각으로 전 유럽에 걸친 명성을 누렸다. 특히 그는 미술사를 통틀어 가장 탁월한 초상화가였다. 티치아노가 그린 초상화는 각자의 개성을 실물보다 더 뚜렷이 살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는 그를 전속화가로 여겼으며, 황제의 아들이자 스페인 왕이었던 펠리페 2세는 .. 2024. 6. 26.
혹독하고 끈질긴 훈련으로 도약한 르네상스 대가들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르네상스 시대의 대가들은 대개 하늘이 내린 천재로 여겨진다. 그러나 타고난 재능뿐만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친 재능 개발과 혹독한 훈련이 이들 경쟁력 있는 예술가들을 만들어 냈다. 당시 예술가를 꿈꾸는 아이는 대개 7살부터 15살 사이에 마에스트로의 공방에서 도제가 되어 수련을 받으며 스승과 함께 기거했다. 모든 수련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된다 하더라도 보통 최소 5년이나 걸렸다. 공방에서 도제는 청소나 안료 갈기와 같은 단순작업부터 시작하여, 스승과 함께 밑그림을 그리는 일을 했다. 물론 이 모든 일은 아주 단조롭고 지루한 것이었다. 공방에서는 그림뿐만 아니라 돌을 깎고 귀금속을 녹여 붙이는 것까지 안 하는 일이 없었다. 거기다 작품 생산에서 주문, 거래, 판매까지 모두 관리했다... 2023. 8. 2.
미켈란젤로의 혼을 다한 몰입 미켈란젤로는 많은 걸작들을 탄생시켰지만, 그중에서도 시스티나 성당 천장의 프레스코화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투지와 집념이 만들어낸 경이로운 작품이다. 이 천장화는 교황 율리우스 2세가 1508년에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 재건축의 일환으로 미켈란젤로에게 주문한 것이다. 자신을 조각가로 생각한 미켈란젤로는 처음에는 이 프로젝트를 맡는 것을 탐탁지 않아 했지만, 4년의 기간 동안 그는 이 작품에 완전히 빨려 들어갔다. 교황은 중요한 행사와 미사가 수시로 열리는 곳이니만큼 장기간의 작업은 원치 않았다. 게다가 교황이 돈을 제때 지불하지 않아 보수를 받지 못한 조수들이 모두 피렌체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전투를 벌이느라 항상 로마를 떠나 있었던 교황은 만날 길이 없었고, 미켈란젤로는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을 .. 2023. 5. 16.
다방면에 소양을 쌓은 피렌체의 대가들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를 통치했던 기간 동안, 피렌체는 찬란한 르네상스를 꽃피웠다. 당시 피렌체는 다 열거하기도 힘들 만큼 많은 사상가와 예술가를 배출했다. 건축가 브루넬레스키와 알베르티, 조각가 기베르티와 도나텔로, 시인 단테와 사상가 마키아벨리, 화가 보티첼리, 그리고 만능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 등이 그들 중 일부이다. 메디치를 비롯한 명가의 일원들은 돈 많은 애호가를 넘어 예술에 상당한 소양을 갖추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인본주의 교육을 받고 고전에 대한 지식을 갖추었던 부자들은 좋은 작품을 즐길 줄 알았으며, 그 자신이 뛰어난 예술가인 경우도 많았다. 그들이 비즈니스 영역에만 머물며 폭넓은 문예 분야에 눈을 돌리지 않았다면 르네상스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 기업들이 .. 2021. 4. 14.
피렌체, 이상과 현실을 실용의 이름으로 조화시키다 14~16세기 다른 유럽 지역에 비해 높은 학식과 예술적 취향을 지녔던 피렌체인들은 당시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매우 세속적이었다. 신분에 구애받지 않는 정혼도 서슴지 않았으며, 언제나 대화나 말다툼에 끼어들어 재담을 펼치곤 했다. 피렌체인들에게 최대의 찬사는 ‘교활한’, ‘교묘한’이라는 뜻의 ‘푸르보(Furbo)’라고 불리는 것이었다. 미묘한 뉘앙스를 지닌 이 단어는 높은 지성과 세속적인 지혜를 함께 갖추었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처럼 감상적이지 않은 현실주의가 그들의 삶을 지배했다. 그런 피렌체인들에게 있어 종교는 세속적 변화를 어느 정도 늦추었다. 내핍 경제, 명상과 기도생활, 자선, 겸손, 금욕과 같은 전통적 가치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1년 동안 일요일을 제외하고도 40여 일의 축일을 기념했다. 성.. 2021. 2.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