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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사보기고

창조적 활동으로 통섭형 혁신을 이끌라

by 전경일 2024. 4. 18.

외환위기 이후부터 지금까지 대한민국처럼 혁신을 좋아한 국가나 기업도 많지 않다. 그간 혁신의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혁신만능주의에 빠진 피로와 무효혁신이 우리 사회와 기업을 장시간 압박해 왔다. 혁신하면 모든 게 다 잘될 것으로 생각한 것도 사실이다. 물론 혁신에 대해 적잖은 오해도 있어 왔다. 우리에게 필요한 진정한 혁신이란 무엇일까?

 

 

흔히, 혁신은 등가죽을 벗기는 것으로 비유되어 왔다. 하지만 혁신의 본질은 등가죽 속의 살과 뼈를 통 채로 들여다보는 것이다. 즉 몸 전체를 들여다 봄으로써 본질을 파악하는데 있다. 조직을 정밀히 청진(聽診)하려는 것, 이것이 혁신하는 이유다. 투시적 혁신이 경영에 도입되면 가죽만 벗겨내는 구조조정이라든가, 사업 재편, 인적 청산 같이 선언적인 혁신과는 다른 차원의 혁신이 보인다. 전체를 꿰뚫어 보는 가운데 혁신이 지향하는 실효성 있는 변화를 모색할 수 있다.

 

그간 한국 기업은 선진문물에 대한 벤치마킹을 통해 상당 부분 성장해 왔고, 이는 나름 유의미했다. 관망을 통한 사업기회 창출이 대세였다. 우리가 알 듯, 초기의 산업 분야가 대부분 벤치마킹을 통한 모방과 진출으로 이루어졌다. 이런 방식은 새로운 산업 분야 진출에 활력을 불어넣은 면도 있지만, 이것으로 활력의 원천을 얻은 것은 아니다. 거의 모든 면에서 기업은 원천소스(source)보다는 어플리케이션(응용)의 적용에 급급해 온 면이 크기 때문이다. 그 결과 현재의 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미래를 담보하는 성장 엔진은 찾기 어려워졌을 뿐만 아니라, 이전의 틀을 뛰어넘는 새로운 시도를 해 볼 기회를 잃은 면이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ㆍ경제의 가장 큰 딜레마는 과거에 성장 원천이었던 핵심경쟁력이 환경이 바뀌면서 핵심 경직성(core rigidity)로 전환되는 극적인 현실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미중 갈등으로 너트크래커에 끼인 호두알 신세가 되었다.

 

이 같은 현실에 대한 각성은 과거에 일어난 창조적 활동을 전혀 새로운 차원에서 살펴보도록 만든다. 전환기 한국 사회는 창조의 본질을 보다 적극적으로 희구하고 있다. 이는 기업 경영에서 보다 강하게 창조성을 구현하도록 요청받고 있다. 경영은 숫자를 도입하여 미래의 기업 상태에 도달하도록 촉진시키는 것이며, 현재의 경영이 창의적 방식으로 마법을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양자간 결합이 경영 행위의 핵심이다.

 

어느 시대건 궁극적인 창조에 이르지 않은 경영은 미래를 이끌어 나갈 수 없다. 이 점에 주목할 때 경영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경지를 열어젖힌다. 벤치마킹의 종언을 선언할 때 새로운 창조적 방법이 찾아지는 것이다.

 

미래를 상상하기 위해선 세밀화를 보듯 과거를 세세하게 알아야 한다. 지난 역사에서 가장 활발하게 창발성이 발현된 시대와 인물들, 그리고 그 시대의 담론, 책무, 비전을 읽어 내려는 통사적(通史的) 접근은 전 역사를 꿰며 시기별로 발현된 창조의 근간을 꿸 수 있는 주요 방법론이 된다. 문사철의 힘이 경영에 접목되는 과정이 이와 같다. 이를 통해 현재의 문제에 대한 해법 및 미래 비전을 찾을 수 있다. 통합적 시각 없이 분리되고 격리된 제한적 프레임으로는 산업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없다. 기존을 뜯어고칠 때 새로운 것이 보인다. 폐기학이 창조의 거름인 까닭은 이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격을 달리한 진()혁신 역량이며, 본질적 혁신을 갱신할 조직적 역량이다. 앞으로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혁신의 방식조차 바꾸게 된다. 요즘엔 혁신의 의미가 보다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지만, 창의력을 증진시키는 일은 혁신의 과제가 아닌, 지적ㆍ경험적 광합성에서 나온다. , 경쟁을 통해 조성된 기회의 빛면을 성장축으로 삼고, 땅 밑에서부터 끌어 올린 수분으로 조직의 생장을 촉진시켜야 한다. 두터운 창조적 인력 풀은 이 같은 혁신 수행의 절대적 요소이다.

 

창조가 풍미하는 시대와 사회는 영역을 뛰어넘는 통합적 사고와 실천력을 필요로 한다. 지금까지 한국 기업에 팽배한 순혈주의, 균질한 인재, 통제, 폐쇄성과 같은 것들은 21세기 생존방식과 한참 거리가 멀다. 창조적 활동은 눈 가리고 아웅 할 수 없다. 새로운 결과물이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남다른 생각과 행동만이 미래를 위한 경영이 될 수 있다. 기업마다 융합형 인재, 창조적 실험이 각별히 주목받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경영학은 단순히 경영방식이나, 물적 기반이 옮겨지는 실체에 대한 관점에 주안점을 두어 왔다. 국가나 기업 환경의 변화가 광속으로 치닫는 시대에 과거의 방식만으론 미래를 현재화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시대를 앞서가는 창조적 사고를 통해서만 앞선 시대를 여는 탁월성의 경영을 이뤄 낼 수 있다. 초영역 인재가 날로 중요해지는 이유이다.

 

이제 본질과 괴리되어 온 혁신은 밀쳐두고, 축적된 지식과 경험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창조시대를 열어가야만 한다. 인재와 경영을 선순환 구조로 가져갈 때 기업은 성장 원천에 접근할 수 있다. 창조의 끝은 창조다. 영역을 뛰어넘는 창조의 파노라마가 기업의 뼛속에 뿌리박혀 있어야 미래의 생존조건은 마련된다. 새로운 성장을 이끌어 나갈 독특한 가치와 전략, 실행 계획을 창조해 내지 못한다면, 힘겹게 지탱해 온 기업의 경쟁력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미래를 사는 가장 강력한 기반은 창조적 사고다. 개인, 기업, 국가 등 전 분야에서 창조성을 성장의 드라이버(driver)로 삼아 우리 기업이 처한 지정학적, 정치경제적 한계를 깨뜨리고 새로운 도약을 꾀해 내야만 한다. 오늘날 경영자들의 몫이 바로 이것이다.

 

전경일 인문경영연구소장, <신용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