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을 힘으로 바꾸는 힘, 지속 성장하는 자기 내부의 동력, 인간에 대한 연민과 인정, 화나 적개심을 녹이는 뜨거운 감사의 마음, 사랑하는 사람을 끌어안는 부드러운 포옹… 이런 것들은 가족 관계에서 얻어지는 것들이다.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버팀목- 가족에 대해 알아본다.
소형가전제품 수출입이 주업인 40대 중반 CEO 김만우 대표가 매주 토요일 저녁마다 주관하는 가족 행사는 ‘축하 축하 파티’다. 김 대표가 이 행사를 하게 된 것은 실은 고육지책과 다름없었다. 김 대표는 아이의 시간표를 보고는 그만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CEO인 자신의 스케줄보다도 학원을 몇 개씩이나 다니는 아이 시간표가 더 빡빡했기 때문이다. 어쩌다 일찍 퇴근하는 날에도 아이들하고 대화는 커녕 코빼기조차 볼 수 없었다. 주중에 시간을 낸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였다. 가족 간의 대화는 자연히 미뤄지고 그러다 보니 모처럼 마주 앉는 것도 달을 넘기기 일쑤였다.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대화의 시간을 갖지 않으면 ‘한 지붕 세 가족’이 되어버릴 판이었다. 아이가 자랄수록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한대도 오히려 함께 하는 시간은 점점 줄어드니... 밖에서 사업이 자리를 잡아가거나, 사회적 위치가 안정되어 간다는 것으로 위안 삼을 일이 아니었다. 큰 아이는 벌써 사춘기를 맞이하고 있었고, 인생의 온갖 고뇌란 고뇌는 혼자 맡아서 하는 시기에 접어들어 있다. 하지만 정작 부모인 자신은 아이와 얘기하는 것은 고사하고 일상의 피로에 지쳐 집에 들면 침대에 몸을 던지기 일쑤였다.
언제부터인가 꽤 오랜 시간 대화가 단절되다 보니 말을 거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아이도 참견하지 말아달라고 노골적으로 반응했다. 어쩌다 하는 대화도 아빠가 늘어놓는 잔소리가 대부분이었다. 이러지 말아야지, 요즘 애들은 자라는 환경이 다르잖아, 하고 마음먹어도 영락없이 철없이 구는 아이를 보면 그만 참지 못하고 잔소리가 쏟아졌다. 그러고 나선 후회가 뒤따랐다.
이런 현실과 단절하기 위해 아내와 함께 도입한 것이 ‘축하 축하 파티’였다. 일주일 간 자기에게 있던 일을 이야기하고, 서로 격려해 주는 시간이었다. 처음엔 어색하고, 신기해하던 아이들은 어느새 분위기에 젖어 입을 열었다. 더구나 분위기를 잡아 방안의 전등을 끄고 촛불을 켜 놓아 최대한 감수성을 자극했다. 분위기가 중요하지 않는가.
주말 행사를 기획하고부터는 김 대표의 예전 생각도 적잖이 바뀌었다. 우선 이전처럼 ‘과묵-침묵’은 가정과는 맞지 않는 메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화없는 가정은 가장 심각한 중병을 앓는 환자가 될 우려가 있다. 가정이 활력을 얻게 되는 것은 작은 대화들, 재잘거림, 웃음소리, 때로는 성장기 때의 아이들 사이에 있을 법한 시시콜콜한 다툼, 이런 것들이 모여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자신은 유일하게 침묵을 부르는 바위 같은 존재였다.
가족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김 대표는 자연스럽게 생활 원칙을 하나 세웠다. 주중에는 아이들이나 자신이나 바쁘게 살더라도 주말 한때는 무한한 평화의 시간을 갖자는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삶을 여유롭게 하는 것인지도 깨닫게 되었다. 이처럼 가족 내의 정기적인 행사는 사람이 사는 집에 즐거움을 불러오는 신비한 영약과도 같다.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가정으로부터 출발해 최종적으로는 가정으로 돌아간다. 가정은 외견상 비생산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세상 모든 창조적인 활동이야말로 가정 내에서부터 시작된다. 가정을 외면한 삶과 사회는 설 곳이 없다.
페트리샤 클래포드는 가정의 중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이에게 무지개를 보여주는 동안, 일은 당신을 기다릴 것이다. 그러나 무지개는 당신이 일을 끝낼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다.”
무엇에 중점을 두어야 할지 알게 되었을 것이다.
일상사를 통한 가족 내 유대강화는 아이들을 정서적으로 건강하게 키우는 밑바탕이 된다. 뿔뿔이 흩어지고 마는 일상사를 다시 연결해 내는 일은 핏줄로 이어진 유대의 끈을 사회적으로 다시 확인해 내는 과정과 같다. 삶의 주요한 진리로 부부가 서로 더 긴밀히 연결되고, 아이들이 그 속에서 자라나는 것은 사랑과 행복에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집은 건축물이 아니라, 애정이 깃든 장소다. 가족 간에 나누는 대화가 지닌 마력은 그 자체로 누군가와 가까워졌다고 믿게 만드는 힘이며, 동시에 그것을 통해 사회적 활동과 정서가 더욱 강화된다. 가정은 낮음 음계가 지배하는 곳이다. 저음으로 말하더라도 깊이 있고, 따뜻한 정이 고요히 골고루 퍼져 나간다.
우리는 가족 함께 하는 생활이 바위같이 끄떡없을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세상에 그런 것은 없다. 부부가 이루는 결혼 생활, 가족-가정생활은 단단한 바위라기보다는 오히려 비행기에 가깝다. 계속 날게 해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삐걱거리기도 하고 잡음이 나기도 마련이다. 가정이라는 비행기가 계속 하늘에 떠 있게 하기 위해서는 부부라는 조종사의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 구성원이 노력하면 그 비행기는 한없이 날 수 있다.
일상사를 통한 가족 내 유대강화는 자녀를 정서적으로 건강하게 키우는 원천이다. 뿔뿔이 흩어지고 마는 일상사를 다시 연결해 내는 일은 핏줄로 이어진 유대의 끈을 사회적으로 다시 확인해 내는 과정과 같다. 삶의 우선 순위가 어디에 있고, 긍극적인 지향이 어디에 닿아 있어야 하는지 돌아보게 된다.
대한상의 리서치에 의하면, 우리나라 CEO들은 '인생의 행복조건'으로 '건강'(70.5%)과 '가정 화목'(17.9%)을 가장 많이 꼽는 것으로 나타난다.‘행복한 삶을 위해 가정과 직장 중에서 어디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전체 CEO의 절반 이상인 54.5%가 '가정'을 지목했다. 직장은 가정 생활을 위해 필요한 것이니만큼 가정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주목할 점은‘가정'이 더 중요하다고 응답한 CEO의 비율은 젊은 연령대층일수록 더 높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워라밸이니 하는 말이 젊은 세대에서 더 어필하는 현상과 맥을 같이 한다. 반면, '돈'과 '권력'이라는 응답은 각각 0.6%에 불과했다.
조직 운영 면에서도 가정-가족의 가치를 진작시키는 것은 업무 효율성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독일 헤르티에 재단 연구에 의하면,‘가족 친화적 기업의 생산성은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30% 정도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바쁜 것을 미덕으로나 알고, 일에 중독된 게 인생 전체에 충실한 것으로 이해되는 CEO라면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건강한 가족>의 저자 돌로리스 커런은 이따금 우리는 얼마간의 시간을 함께 ‘허송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시간을 안배하는 일에는 허송하는 시간도 포함되고, 이를 통해 모든 긴장이 해소되며 신체나 정신의 근육이 이완되는 효과가 있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일과 분리되어 있기에 역설적으로 가장 일의 목적, 효과, 생산성과 연관 있다. 일 자체에서는 찾을 수 없는 많은 가치를 가장 기초적인 조직인 가정-가족관계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가족은 구성원들이 개성·존중·긍정·감사·책임·성공 같은 가치를 공유하고 이를 키워가는 데 절대적인 관계를 이룬다. 이 같은 정서적 유대, 가치 공유, 나아가 정신적 자양분 없이 한 인간으로서 정상적인 성장을 이뤄내기란 어렵다.
“가족 구성원으로서 아빠가 해야 할 일은 경제적 목표를 이뤄내는 것에만 있지는 않습니다. 가정은 우리가 살며 추구해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를 알게 하며, 삶의 출발점이자, 궁극적인 종착점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뛰들 그 목적을 실현할 대상이 없다면 무용지물일 것이다. 가족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다.
삶의 지속성은 부단한 정서적, 정신적 유대 활동으로 나타나야 한다. 경영환경에서 늘 도전에 직면할지라도 급한 삶, 가파른 삶이 아닌, 가족의 가치를 돌아보는 삶은 인생의 목적을 되새기도록 만든다.
도로디 카네기는 “가정은 단지 자고 먹고 쉬고 아이를 기르기만 하는 장소가 아니다. 그 이상의 것이다. 그리고 그 이상의 무엇인가가 가정을 의의 있고,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도록 한다. 그 무엇인가는 가족이 서로 나누는 애정, 웃음, 눈물, 기쁨과 슬픔 등의 따뜻한 인간적인 요소로 성립되어 있다.”고 말한다.
불안을 힘으로 바꾸는 힘, 지속 성장하는 자기 내부의 동력, 인간에 대한 연민과 인정, 화나 적개심을 녹이는 뜨거운 감사의 마음, 사랑하는 사람을 끌어안는 부드러운 포옹… 이런 것들은 가족 관계에서 얻어지는 것들이다. 가족이 함께 하는 가정은 정서적 공감대를 함께 긴밀히 나눈다. 기쁨, 슬픔 앞에서 위로하고 끌어안으며, 서로의 맥박을 듣고, 체온을 느끼게 하여 준다. 가정은 본질적 가치를 원천적으로 생산해 내는 곳이다. 가정 내 가치는 직장과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며, 그 사회의 품격 또한 결정한다. 성숙된 사회로 갈수록 가정-가족의 역할은 증대되며, 파급력은 더 커진다.
끊임없는 사랑, 배려, 인내 속에서 가족은 형성된다. 무엇이 나의 삶을 구성하는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지 알 필요가 있다. 우리에겐 경제적이며 정신적인, 유대적인 관계의 든든한 후원자인 - 가족이 있다. #
전경일 인문경영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