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예술가 티치아노(Tiziano Vecellio)는 이전 세대의 르네상스 예술가들처럼 다재다능한 사람은 아니었다. 우리가 흔히 르네상스하면 떠올리는 예술가들은 여러 방면에 관심이 지대했다. 보티첼리는 세공 일을 배웠고,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는 조각과 건축을 겸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처럼 온갖 분야에 특출한 재능을 뽐낸 이도 있었다.
티치아노는 이런 선배들과는 달리 오직 회화에만 온 열정을 쏟았다. 그는 탁월한 색채 감각으로 전 유럽에 걸친 명성을 누렸다. 특히 그는 미술사를 통틀어 가장 탁월한 초상화가였다. 티치아노가 그린 초상화는 각자의 개성을 실물보다 더 뚜렷이 살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는 그를 전속화가로 여겼으며, 황제의 아들이자 스페인 왕이었던 펠리페 2세는 물론, 메디치 가문과 교황까지도 그에게 초상화를 맡겼다. 유럽 전역의 굵직한 인물들이 티치아노의 붓끝을 통해 자신의 얼굴을 후대에 남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