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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르네상스 경영학

차별화를 추구하는 예술가

by 전경일 2024. 6. 26.

르네상스 예술가 티치아노(Tiziano Vecellio)는 이전 세대의 르네상스 예술가들처럼 다재다능한 사람은 아니었다. 우리가 흔히 르네상스하면 떠올리는 예술가들은 여러 방면에 관심이 지대했다. 보티첼리는 세공 일을 배웠고,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는 조각과 건축을 겸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처럼 온갖 분야에 특출한 재능을 뽐낸 이도 있었다.

 

티치아노는 이런 선배들과는 달리 오직 회화에만 온 열정을 쏟았다. 그는 탁월한 색채 감각으로 전 유럽에 걸친 명성을 누렸다. 특히 그는 미술사를 통틀어 가장 탁월한 초상화가였다. 티치아노가 그린 초상화는 각자의 개성을 실물보다 더 뚜렷이 살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는 그를 전속화가로 여겼으며, 황제의 아들이자 스페인 왕이었던 펠리페 2세는 물론, 메디치 가문과 교황까지도 그에게 초상화를 맡겼다. 유럽 전역의 굵직한 인물들이 티치아노의 붓끝을 통해 자신의 얼굴을 후대에 남긴 것이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우르비노의 비너스>가 있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우르비노의 비너스>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마치 유혹하듯이 바라보는 여인의 시선은 감상자들을 매혹시켰다. 일찍이 이처럼 감각적인 여인의 누드화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벌거벗은 여인은 미술사의 에로티시즘에 있어서 중요한 이정표 역할을 한다. 훗날 그려질 많은 누드화들이 이 그림에서 영감을 얻었다.

 

해부학에 관심을 가졌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미켈란젤로에 비하면 티치아노는 소묘 능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티치아노는 정확한 묘사가 아닌 색채로 이야기하는 화가였다. 이 지점에서 그는 다른 르네상스 대가들과 다른 길을 걸었다. 훗날 색깔의 미묘한 변화만으로도 순간을 포착하곤 했던 루벤스, 렘브란트, 르누아르 등의 위대한 인상파 화가들을 떠올린다면, 티치아노가 개척한 길이 후대에까지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티치아노는 전 세대에 비하면 지적으로 뛰어나지 않았고 이론에도 밝지 않았지만, 자신의 차별화된 개성을 살려 명장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그 외에도 미술사에 굵직한 이름을 남긴 거장들의 작품을 보면 하나같이 자신만의 고유한 전략을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보티첼리나 미켈란젤로의 그림이 명확한 형태를 지닌다면, 레오나르도의 그림은 스푸마토라고 불리는 아련한 흐름을 가지고 있다. 라파엘로의 그림은 조화와 완벽을 추구했다. 대가들의 여러 장점을 받아들이면서도 그들보다 따뜻한 인간미가 넘치는 화풍을 지녔다. 카라바조는 자신을 거칠게 다루고 퇴폐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전의 화가들과 판이하게 다른 화풍을 구사했다.

 

이들은 서로의 장점을 흡수하고 영향을 주고받으면서도 자신만이 가진 고유의 특징을 잃지 않고 감상자들의 마음에 독특한 개성을 인식시켰다. 수많은 기업과 조직, 셀 수 없는 브랜드가 난립하는 이 시대에 자신만의 개성을 유지하고 발전시켜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살아남고 싶다면 남이 미처 나아가지 못한 영역으로 나아가 거기서 부각되어야 한다. 차별화는 초경쟁에서 이기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