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직관적으로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고 상황에 가장 잘 맞는 방식으로 업무를 나눈다. 자영업자도 업무와 프로젝트, 고객에 맞춰 스스로를 조직한다. 그러나 직원 수가 늘어나고 기업이 더 크게 성장하면 우리는 어느 순간 조직도를 만든다. 일의 절차를 여러 갈래로 나눈 뒤 성격에 따라 각 담당자에게 할당한다. 그러면서 갑자기 기능적으로 사고한다.
기업의 기능들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
결국 위계질서를 위해 업무 분장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정해진 일은 조금도 즐겁지 않다. 관료주의적 위계질서 아래서 일하는 사람은 중요한 업무를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기능에 초점을 맞춘 분업에 의해 일의 목표, 목적, 의미가 왜곡된다. 이렇게 제도화된 기능들이 전체를 통제하기 때문에 이런 조직에서 동료의식을 크게 기대할 수는 없다.
모든 직원들은 끊임없이 성장해야 한다. 하지만 각 기능을 관리할 자리를 따로 만들어 권력을 부여하는 순간 책임전가 시스템도 작동하기 시작한다. 인사관리 기능을 갖춘 기업이라고 해서 더 좋은 노동력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며, 품질관리 기능을 갖춘 기업에서 더 나은 제품이 생산되는 것도 아니다. 내부감사 기능을 갖춘 기업에서 오류가 더 적게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기능적 조직이 가진 문제의 핵심은 원칙적으로 항상 일과 책임을 분리한다는 데 있다. 예를 들면 사장은 제품의 품질 향상을 위해 그 책임을 생산담당 직원들이 아닌 전문적으로 담당해야 할 부서를 따로 만든다. 뛰어난 능력을 지닌 판매자를 고용하는 책임을 판매담당 직원이 아니라 인사관리 부서에 맡긴다. 이런 식으로 회사에는 모든 중요한 사안을 담당하는 부서들이 따로 있다.
기능적이지 않은 구조에서는 이런 기능들이 다른 형태로 작동한다. 직원들은 다른 부서 동료들의 작업을 보면서 이를 피드백한다. 모든 직원들이 조금씩 감사 기능을 수행한다. 팀장들은 자기 팀이 아니라 자신이 관리할 권한이 전혀 없는 다른 팀을 감사한다. 이런 식으로 서로에게 배우며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기능적 부서는 더 이상 필요 없다.
사업부, 업무분야, 부서: 선사시대의 아이디어
언리더십을 주창하는 닐스 플레깅에 의하면, 역사적으로 볼 때 부서를 나누는 사고의 시발점은 기계를 돌리는 데서 비롯되었다. 기계를 돌릴 때는 시스템을 기능별로 나누는 것이 실용적이다. 기업 조직을 이런 식으로 구성하는 것도 결국 실용성 때문이다. 모든 기업은 경영학 이론에 따라 생산, 유통, 판매, 재정, 인력 등 각 기능을 맡을 부서를 둔다. 더 이상 다른 식으로 생각하지 못한다. 대안이 없으니 오늘날 거의 모든 기업이 기능별로 분화된 것이다. 하지만 조직의 형태에 나타나는 이런 단일문화는 환경의 변화에 극도로 취약하다.
기능에 따라 여러 사업부나 부서로 나누어진 기업들은 매우 비효율적이며 실적도 떨어진다. 더 큰 문제는 그런 기업이 직원들을 바보로 만든다는 점이다. 기능별 업무분야에 묻혀 구성원들은 전체를 조망하지도 못한다. 위계질서에 편입되어 자신들이 더 많은 능력을 지닌 존재라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기능은 언제나 위에서 내려오는 통제에 갇혀버린다. 그러면 점점 의존적으로 바뀌고 고객과 시장으로부터 멀어지며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 위계질서가 필요할 때도 있다. 그렇다고 특별히 규정할 필요는 없다. 위계질서는 필요할 때 저절로 생긴다. 자연스럽고 비공식적인 권위를 통해서 말이다. 어떤 기업가가 사람들을 고용했다면 그는 당연히 그들의 사장이 된다. 그러나 실제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에는 각각의 역할은 다른 식으로 나누어진다.
구글에서는 이런 현상을 흔히 볼 수 있다. 구글에는 공식적인 권력이 없다. 마이크로소프트나 아메리칸익스프레스와 같이 위계질서가 강한 기업에 들어간 직원들은 처음 몇 달 동안 강력한 압박과 기대에 시달려야 한다. 그들은 윗사람을 기쁘게 해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다. 반면에 구글에서는 어떤 직원도 사장을 행복하게 해주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구글의 사장은 아예 자신을 사장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일상 업무에서 그는 팀의 일원일 뿐이다.
중앙에서는 할 수 없다
위계질서는 책임을 져야 할 때 자연스러운 권위를 통해 생겨나야 한다. 제도화된 위계질서 아래서는 책임감이 사라진다. 비즈니스가 피라미드 맨 꼭대기에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조직이 이런 상황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책임이 전체에 널리 배분된 기업은 거의 자동적으로 네트워크 조직으로 옮겨간다. 본격적인 비즈니스는 셀(cell) 단위에서 이루어지고 각 셀들이 서로 네트워크를 이룬다.
이 구조는 결코 혼란스럽거나 제멋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네트워크 조직에도 질서와 방향, 규율과 권력이 있다. 다만 그 방향이 위(최고경영진)에서 아래(셀)로는 최소한의 결정이 이루어지고, 밖(시장)에서 안(셀)으로는 시장 정보 등이 상호 교류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밖은 ‘시장’을 의미한다. 시장에서는 소유주, 자본투자자, 고객, 공급자, 입법가, 노조, 이익집단 등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게임을 벌인다. 시장에서 멀리 떨어진 기업의 중심부에서는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않거나 최소한의 결정만 내리는 것이 더 낫다. 중앙의 권력이 막강할수록 해가 된다. 결정은 시장과 직접 접촉하는 기업의 주변부에서 내릴수록 좋다. 중앙은 단지 지원하는 기능만 갖는다.
북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에서도 멀리 있는 군주가 아니라 실제 그곳에 사는 시민과 귀족이 도시를 다스리게 되면서, 거주자들의 방어력이 향상되었고 생활여건도 나아졌다. 이에 따라 인구가 늘었고 상거래도 활발해졌다. 그러자 상인들은 스스로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길드를 조직했다. 길드는 같은 직업인들의 모임이었고, 따라서 적합한 도제 과정을 마친 자들에게만 회원 자격을 부여하여 서로간의 경쟁을 조율하는 기능을 했다. 길드에 속한 상인들만이 상거래를 할 수 있었는데, 이로써 길드 회원들은 생계를 보장받았고 고객들은 양질의 상품과 서비스를 보장받았으니 모두에게 윈윈(win-win)이었다.
이처럼 최선의 결정은 주변부에서 내려지며 최고의 아이디어 또한 주변부에서 나온다. 개인의 아이디어와 결정이 좋은 것이라면 나머지 조직도 이를 받아들인다. 이런 식으로 혁신을 위한 내부 시장이 생겨난다. 아이들을 위한 놀이공간에 대한 아이디어는 가구업체 이케아의 어느 간부가 생각해낸 것이 아니다. 여러 지점 중 한 곳에서 제안해 현장에서 시범적으로 실시해본 다음 다른 지점으로 확산된 것이다. 이런 아이디어는 시장 가까이에서만 나올 수 있다. 탈중심화는 더 혁신적이고 적응력이 더 뛰어나며 더 강하고 시장 지향적이다.
셀 간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라
셀 안에서 팀들은 오직 시장의 요구에 맞춰 일하며, 명령과 포괄적 통제 따위는 더 이상 필요 없다. 부서, 업무 분야, 기능 따위 없는 셀 간의 네트워크를 구성하라. 책임은 수뇌부가 아니라 셀에서 떠맡는다. 하나의 셀 안에서 3명 이상 20명 이하의 인원으로 구성된 팀이 활동한다. 더 많은 인원이 일하는 팀은 자연스럽게 더 작은 단위로 나눠진다. 인원이 너무 많으면 집단적이고 불투명하며 비효율적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둘로 쪼개져도 각 부분은 독자적으로 계속 비즈니스를 수행한다. 셀은 언제나 자신의 비즈니스를 갖는다.
셀의 규모가 한계에 이르렀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것은 셀의 스트레스 정도를 보면 된다. 규모가 너무 큰 셀에는 정치적 변화가 나타나고 형식적 구조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위계질서를 갖추려는 욕구가 생겨나는 것이다.
집단이 지나치게 자기 위주로 가면서 위계질서가 자리 잡으려고 하는 순간 분할되어야 한다. 하지만 셀은 외부의 힘이 아니라 네트워크 기업의 문화적 특성에 상응하는 방식으로 스스로 분할되어야 한다. 즉 서로의 독립성을 유지하는 한해서 분할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최대치로 규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고어사(W. L. Gore)는 여러 개의 셀을 한데 모아 일봉의 메타셀(meta cell)을 만들고, 그 인원이 150명을 넘지 않도록 제한했다.
셀들은 전통적으로 부서, 사업부, 업무분야에 따라 나누어졌던 여러 기능과 역할, 업무를 하나로 통합한다. 각 셀이 하나의 미니기업인 셈이다. 그들은 성과를 제시하고 독자적으로 대내외에 생산품이나 성과를 판매한다. 셀은 고객을 지향한다. 오직 고객에게만 반응할 뿐 지시를 받지 않는다. 자신의 경제성에 집중하며 기업 안에서 자신의 가치창출을 스스로 책임진다.
이러한 조직은 개방적인 내부 정보체계를 바탕으로 완전히 투명하게 운영된다. 또한 조직 내․외부의 관계에 대해 공통된 인식을 갖게 된다. 내부 네트워크는 시장관계와 요구 방향에 기초하여 단순하게 구성되며, 위계질서가 아니라 네트워크 내의 가치축적에 중점을 둔다.
스위스의 인력개발 회사 에곤젠더(Egon Zehnder International)는 모범적인 셀 조직 기업의 전형이다. 여기서 팀이 구성되는 방식은 간단하다. 고객의 주문을 받은 직원이 함께 일할 다른 직원을 찾으면 된다. 누구든 상관없다. 회사 내 자신의 정보 시스템을 동원해서 프로젝트 파트너를 찾으면 된다. 이 방식은 매우 효율적이어서, 에곤젠더의 능률은 같은 업종의 다른 회사들에 비해 60% 이상 더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