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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발혁신가가 되려면, 시인을 꽉 붙잡을 것!

by 전경일 2025. 8. 7.

2011년 10월 21세기 세계적 혁신가 스티브 잡스의 죽음 앞에서 전 세계 사람들은 그에 대한 추모를 ‘I sad・・・・・・라는 함축적 조사(弔辭)로 표현한 바 있다.

 

잡스가 타개한지 14년 되었지만, 여전히 잡스의 혁신이 어디에 있는지 근원을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은 것 같다. 혁신의 대명사로 그를 떠받을 게 된 까닭이 있었을 텐데 그게 무엇일까? 이제는 시들해진 영광의 이면에 있는 그에 대한 진실을 파헤쳐 보자.

 

14년전 잡스 타계 후 뉴욕의 한 지인에게서 애플 매장에서 벌어진 희대의 사건에 대해 전해들은 바 있다. 아이폰 시리즈를 구입하는 많은 사람들이 나는 잡스의 유품을 산다라고 말했다는 것이었다. 이 점이야말로 잡스가 왜 초발혁신가로 자리매김 되었는지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일례이다. 잡스가 지녔던 위력의 비밀은 고객의 인식속에 내재돼 있었던 것이다.

 

아이폰 출시 초기에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벌어졌다. 어떤 비즈니스가 상품이 없어서 못 판다고 하고, 내려진 셔터 문 앞에서 고객을 밤새우게 한단 말인가? 전통적인 마케팅 이론에 의하면, 이는 극단적인 고객 불만 요소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고객들은 잡스 사후 그가 만든 모바일 기기를 손에 넣으며 특정기기를 유품수준으로까지 격상시켰다. 휴대폰이 유품이 되고, 유물이 되며, 아트(Art)가 되는 상황을 표현할 방법이란 딱히 없다. 그건 경영학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해석해야 할 여지가 있음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그의 진정한 힘은 어디서 온 것일까?

 

잡스는 살아 있을 때 영국의 시인인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에 푹 매료됐었다. 가히 영적 멘토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블레이크라는 시인이 누구이길 레 150여년이나 뒤의 한 IT분야 혁신가의 영혼을 송두리째 빼앗은 것일까? 두 사람은 어떤 면에서 서로를 알아보았던 것일까?

 

블레이크는 16세기 영국의 신비주의(mysticism)시인이다. 별칭도 다양했다. 신비주의자, 몽상가, 성자, 시인, 예언자, 화가, 삽화가, 심지어 미치광이. 이 모든 수식어가 그의 생전에 따라 다녔다. 런던 미술대학의 스티븐 파딩 교수는501 위대한 화가(Great Artists)에서 이렇게 평하고 있다.

 

블레이크는 마음속에 그리던 환상을 기초로 하여, 괴물 같고 악마 같은 형상을 그려냈다. 그때까지 이 같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는 거의 없었고, 이런 그림을 그리고도 건전한 정신을 가졌다고 여겨지기도 힘들었다. 그는 기상천외한 형상과 엉뚱한 상상력으로 대중으로 하여금 자신이 창조한 상상의 세계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그는 미술가뿐만 아니라 작가로서도 유명했는데, 이 두 가지는 공생 관계를 이루었다. 그는 당대에 유행하던 아카데미 미술을 배척했다. 미국 독립 전쟁과 프랑스 혁명의 이념인 자유와 저항 의식으로부터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그는 천사와 성서 속의 예언자들, 그리고 성령의 환상을 실제로 보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성경욥기삽화를 그렸는데(1823~1826), 그 그림은 교회의 관습과 분명히 동떨어져 있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만의 신화를 창조했다. 미치광이 작품인지 아니면 천재의 작품인지 헷갈리지만, 블레이크의 작품은 변함없이 매력적이다.

 

블레이크는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다. 대신, 열네 살 때 판화가 제임즈 바자이어의 도제가 되어, 7년간 중세 건축과 조각을 배우고, 스물두 살 때에는 로열 아카데미 미술학교에 들어가 잠시 수학했다. 그 사이 영적 환상 세계와 접목해 하늘을 직접 만지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접신(接神)한 것이다. 그러다가 스물일곱 살에는 시집을 출판했다. 이듬 해 아버지가 죽자 판화(版畵) 가게를 열어 채색인쇄법을 고안하기도 했다. 그가 손으로 직접 채색한 창조적 양식으로 환상성과 장식성(裝飾性)을 한껏 띠었다.

 

 

블레이크는 어릴 때부터 비상한 환상력을 지녀 신비로운 체험을 표현하고, 자연과 인간의 세계의 순수한 사랑과 아름다움, 인간의 근원에 있는 문제에 집중했다. 신화적 상징을 통해 원초적 체험을 표현하기도 한 그의 예술 세계는 당대는 물론 사후에도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오랫동안 이해되지 않다가 20세기에 들어서야 마침내 새롭게 평가받게 된다. 블레이크의 무한과 이어지는 영적 세계는 스티브 잡스의 정신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림은 천국과 지옥의 결혼에 들어간 삽화.

 

블레이크는 우리 육체의 감각기관을 완전히 정지시킴으로써 감각으로는 도저히 체험할 수 없는 신령한 영혼 세계의 문을 열어젖힐 수 있다고 믿었다. 그에 의하면, 하늘을 나는 종달새는 신이 보낸 전령이다. 또 자신이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신의 음성을 듣고 대필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신비적 감응이 그의 시 세계에는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에게 있어서 예술은 혼신의 열정을 바쳐 추구하는 절대대상이며, 이성적 사고능력이 아닌 직관적 통합 작용이다. 예술을 통해 신(God), 위대한 영혼(Great Soul), 무한(the Infinite)과 만나는 것이다. 그 까닭에 창조적 상상력을 말살해 버리는 이성(理性)은 사악한 죄악인 것이다. 그의 예술 세계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자신이 보는 것을 의심하는 자는 무엇을 하건, 결코 그것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는 창작 활동에 있어서 초능력적 현상으로 영계(靈界)의 직접적인 도움을 받곤 했다. 이런 독특한 방법을 가리켜 오늘날에는 브레이큰 웨이(Blaken way)라고 부른다. 마음속에 형성된 추상적인 영상은 타고난 비상한 상상력을 통해 그의 시야에 구체적인 형상으로 시각화되었다. 프랑스의 작가 조르주 바타유에 의하면, 블레이크는 대개 미친 사람 취급을 받으며 따돌림 당했다. 그가 죽은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사람들이 무의식의 저 밑바닥으로 내려가 결국 올라오지 못했지만 블레이크만은 달랐다. 그는 가장 먼 거리를 여행했지만 온전히 제정신으로 되돌아왔다. 그렇다면 그를 다시 세상 밖으로 끌어 올릴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바로 순수함이다. 순수한 호기심, 상상력, 진정성······. 이게 바로 답이다.

 

잡스가 블레이크처럼 영감의 세계에 빠져든 방식도 이와 같다. 감히 누구도 생각하지 못할 때, 잡스는 매킨토시 컴퓨터에 처음으로 아이콘을 입혔고, 쫓겨난 애플에서 .E’처럼 새로운 비전을 지닌 채, 죽음으로부터 다시 올라왔다. 굴곡이 있을 때마다 그가 본 비전은 눈앞에 어른거렸다. 현재의 혁신을 이루기 위해 미래로 가서 현실에 있어야 할 바로 그 모습을 상상하며 새로운 혁신을 주도했다. 거기에 새로 충전한 비전을 송두리째 들이 부었다. 번뜩이는 사업 통찰력으로 시장의 추이를 날카롭게 응시하다가 자본, 기술, 마케팅, 디자인, 음악 유통 판도 등 필요한 조각을 꿰맞춘 뒤 사자처럼 맹렬한 기세로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가 150여전 시인에 빠져든 건 이런 놀라운 상상력의 세계에서 교감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애플의 쿠퍼티노 사옥 옆길에 붙은 명칭이 왜 무한괘도(Infinite loof)’이며, 본사의 정문 이름 또한 무한괘도 1(Infinite loof) 1’인지를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사실 잡스의 혁신은 획기적인 발은 아니다. 이것저것 유용한 것들을 의미 있고 효율적으로 결합시킨 브리코라주이다. 그런데도 잡스를 영웅으로 만든 건 얼치기 경영학자들과 언론이다. 영운은 고난 속에서 탄생하니 만큼 잡스는 그가 보여준 혁신적인 기술보다 혁신적인 삶 자체가 혁신이었던 것이다. 마친가지로 블레이크의 전인생과 영적세계에서 그가 겪게 된 일들은 남다른 혁신적 시 창작의 배경이 됐다.

 

스티븐 파딩이 평가한 것처럼, 일찍이 그렇게 규율을 파괴하는 그림을 그린 화가도 없었고, 그런 그림을 그리고도 건전한 정신을 가졌다고 평가된 사람도 없었다. 그처럼 기상천외하고 엉뚱한 상상력을 발휘하며, 대중들로 하여금 자신이 창조한 상상의 세계에 주목하게 만든 화가도 없었다. 이 천재 괴팍스러움과 파괴적 정신은 시대를 뛰어넘어 잡스와 이어지고 있다. 그가 작품의 본문에 삽화를 곁들이게 한 점은 잡스가 딱딱한 IT에 아이콘을 입힌 것을 연상시킨다. 나아가 당대에 유행하던 아카데미 미술을 배척한 것은 자신이 창업한 애플에서 쫓겨 난 잡스의 경험과 일체된다. 블레이크는 한 때 정신병원에 입원했었다는 야비한 음모론의 대상이 된다. 잡스가 애플을 떠날 때 그를 쫒아냈던 사람들은 그의 등 뒤에 대고 이렇게 지껄였었다.

또라이······”

인생의 쓰라린 경험이 블레이크에겐 이런 시로 나타났고, 잡스는 온 영혼으로 공명했다.

 

인간은 기쁨과 비탄을 위해 태어났으며

이것을 올바르게 알 때,

우리는 세상을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다.

기쁨과 비탄은 훌륭하게 직조(織造)되어

신성한 영혼에는 안성맞춤의 옷,

모든 슬픔과 기쁨 밑으로는

비단으로 엮어진 기쁨이 흐른다.

-윌리엄 블레이크 순수의 전조(前兆)

 

두 사람은 당대의 관습과 동떨어진 채 자신만의 신화를 창조한 미치광이이자, 이단적 삶을 살다 간 사람들이다. 시대를 뛰어 넘어 그들만이 보여주는 변함없는 매력은 파괴적 초월 정신이다. 이들 미치광이 같은 혁신가들에게 빠지지 않을 수 없는 매력이 이것이다.

 

잡스는 죽기 전 윌리엄 블레이크의 컬렉션을 몽땅 치워 버렸다. 그때 그의 그 같은 행동을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았지만, 그는 서서히 삶을 정리하고 있었다. 미래의 역사가들은 잡스를 더 알기 위해 저 괴기스런 시인 블레이크를 깊이 파고들어야 할런지 모른다.

 

잡스는 블레이크와 닿아 있지만, 우리의 영혼은 누구와 미치도록 목마르게 끈이 닿아 있을까? 짧으나마 강렬한 시구로 영혼을 압도하는 시인들의 놀라운 영감 세계는 혼미하고 흔들리는 시대의 영혼들에게 찬연한 등불이 되어 준다. 지상의 인간 중에서 제 영혼의 무게를 알고 죽는 자는 얼마나 될까? 하물며 영혼의 무게를 재어 본 적이나 있겠는가. ⓒ 전경일 인문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