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경영 방식은 ‘전문성(expertise)’과 ‘관계성(relationship)’에 근거한다. ‘전문성’이란 지식을 생산하고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하며, ‘관계성’이란 상대방을 존중하고 상대방을 통해 일을 진행하기 위한 우호적인 관계를 말한다. 세종의 ‘전문성’은 그의 지식의 범주와 깊이에서 드러나며, 그의 ‘관계성’은 구체적으로 ‘감동 경영’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학습 관리 시스템을 가동하라]
그리하여 세종은 자신의 멤버들이 한 두 가지의 전문성 - 즉, ‘주특기’ - 을 갖기를 권한다. 그리하여 그는 경연관들에게 ‘전경지학(專經之學),’ 즉 한 가지 경(經)이나 사(史)를 전문적으로 연구하여 정통할 것을 지시했다. 다시 말해, 자기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지라고 강조한 것이다.
이와 같은 소신에 따라 그는 집현전 학사들에게 경사자집(經史子集)을 나누어 주고 매일 매일 각자가 읽고 연구한 범위를 장부에 기록해 매월 말에 보고하게 하였다. 즉, 임직원을 대상으로 학습 관리 시스템을 가동한 것이다.
세종이 이러했던 것은 평범하게 보통의 깊이로 알아서는 안 되는 것들이 국가 경영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옛 제도’를 정확하게 복원해 내기 위해서도 필요했지만, 관리들 자신의 게으름을 쫓고, 스스로 전문인으로 거듭 나겠금 하려는 세종의 ‘신지식인’적인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더구나 공부를 할 때, 당파가 생길 여지도 없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사실, 최만리가 ‘음운학’에 대해 좀 더 지식이 깊었더라면, 그는「훈민정음」반대 이유를 사대의 차원에서가 아닌, 학문적 차원에서 공격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못했고, 그의 부족한 실력은 오히려 「훈민정음」과 세종에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설령 도움이 됐다고 해서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경연장에서 『성리대전』을 펼치면 신하들은 물론이고, 그 자신도 의미를 깊이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그는 당시 지배 계급의 지적 토대가 너무 빈한(貧寒)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그는 모든 면에서 실력 있는 정부를 만들고자, 전문성을 가장 주요한 가치로 삼았던 것이다.
[절에나 가서 공부나 해라]
업무에 지친 집현전 멤버들에게 퇴근 후 ‘과외로 공부’까지 더 하게 하는 것은 실제 무리가 뒤따랐다. 또 어떤 공부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혼자 시간을 갖고 꾸준히 공부해야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있었다. 그리하여 세종은 몇 몇 가능성 있는 인재들을 뽑아 절에 가서 공부하라고 지시를 내린다. 그것은 어찌 보면. 예측할 수 없는 일을 통해 신하들을 일상에서 벗어나겠금 함으로써 다른 방식으로 해결책을 찾아보려고 하는 시도와 같았다. 그리하여 세종은 그들이 특정 영역에서 전문성을 확보하고 나면, 그것을 교육을 통해 전달하고, 이를 지식 경영의 무기로 활용할 계획이었다. 세종이 보기에 이것은 필시 전파교육의 성공 사례가 될 것임에 틀림없었다.
[공부를 위한 특별 휴가]
변계량을 통해 지시를 내리자, 얼마 후 그가 만들어 올린 안은 실로 파격적인 것이었다. 우선 ‘사가독서(賜暇讀書)’라 하여, - 이 말은 ‘휴가를 주어 책을 읽게한다’는 뜻이다. - 집현전 학사들 중 몇 몇 젊은 학사들에게 근무를 면제하고 휴가를 주어 독서에 전념케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집현전 학사인 권채ㆍ신석견ㆍ남수문 이 세 사람을 우선 추천해 올린다.
세종은 그들을 불러 “너희 젊은이들은 장래가 있으므로 지금부터 그 이름을 지우고 각기 집에서 전심 독서하게 하라”(『세종실록』8년 12월 11일)며 그 첫 번째 혜택을 그들에게 주었다.
그리하여 ‘특별 휴가 중의 공부’가 시작되었는데, 문제는 ‘집에서 공부하라’는 지시였다. 그러나 집에서 공부를 하려니 애들은 들뛰고, 손님들은 찾아오고, 가끔 가다가 관에서는 찾아와 업무가 안돌아 간다며 울상이고, 또 “너 휴가 왔냐?”며 한잔하자고 친구들이 찾아오고, 그들을 보고 동네 개들은 짖어 대고...도저히 공부에 집중 되지가 않았다. 그리하여 나중엔 아예 ‘절에나 가라’로 바뀐 것이다. - 이때부터 고시 공부를 절에 가서 하는 풍습이 생겨났다! -
또 과제물로 보자면, 아예 처음부터 공부할 책을 한 두 가지 정해 주어 전문적으로 파고들게 했고, 과제 완료도 대충 얼렁뚱땅 때울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그 예로 권채에게 주어진 과제는 『대학』과 「중용』이었는데, 그는 그것을 확실하게 깨닫는데 꼬박 3년이나 공부해야 했다. 게다가 그는 책에 붙어 있는 주석까지 철저히 파고들었으니, 가히 해당 분야의 박사가 다 돼 집현전에 복귀했음은 너무나도 자명한 일이었다. 사가독서는 단순히 일 잘하는 사람들에게 포상 격으로 주어지는 자기 공부를 위한 연수가 아니었다. 그것은 나라에서 키울만 한 젊은 인재들에게 투자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선택된 사람들만 받는 독서 휴가였으며, 학습 성과는 철저하게 관리되었다.
[휴가지에서 얻은 지식으로 ‘대풍평(大豊平)’의 활력을 얻다]
이러한 사가독서는 유급 휴가였다. 그 비용은 관에서 파격적으로 제공했으며, 선발된 학사들은 전문지식을 높이기 위해 경학ㆍ사학ㆍ과학ㆍ음악ㆍ의학ㆍ천문ㆍ지리ㆍ의약ㆍ복서ㆍ문자학ㆍ음운학 등 각 분야의 학문을 연구케 했다. - 여기서 유념해야 할 것은 절에 들어가 ‘유학(儒學)’만 공부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앞에 열거한 학문들은 나중에 「훈민정음」, 정대업ㆍ보태평, 각종 과학 및 IT기술, 의학서적의 발간 등 세종시대 생산과 문화의 대 전기를 여는데 크게 기여하게 된다. 이것이 한국형 르네상스 즉, ‘대풍평(大豊平)의 세상’을 여는데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사가독서의 수혜자 중에는「훈민정음」비밀 TFF의 일원인 성삼문과 신숙주도 있었다. 이렇듯 사가독서는 자기개발을 위해 학자로서 얻을 수 있는 매우 특별한 특전의 기회였다. 그러나 이러한 사가독서는 그 후 업무 공백 등의 이유로 그다지 활성화되지 않다가 세종 24년에 가서야 다시 실시되었다.
참고로 이때에는 박팽년ㆍ이개ㆍ성삼문ㆍ하위지ㆍ신숙주ㆍ이석형 등이 사가독서를 받아 갔는데, 대제학 권제가 학습 감독관이었다. 이들이 사가독서를 받아 간 곳은 삼각산의 진관사였다. 그러나 신숙주는 그 다음 해(세종 25년) 일본 통신사 서장관으로 뽑혀 공부 도중 진관사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 그 때 신숙주는 자신의 자가 ‘범옹(泛翁),’곧 ‘배 타는 늙은이’요, 이름은 ‘숙주(叔舟),’ 곧 ‘젊은 배’이기 때문에 이렇게 해외 출장이 잦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 말이 씨앗이 되었을까, 훗날 그는 이들 사육신들과 전혀 다른‘배’를 타게 된다. 그것이 바로 세조가 주도한 국가 경영권 찬탈 쿠테타인 계유정란이었다.
[나의 의지가 이러하다]
세종이 자신을 전문적 식견을 갖춘 CEO로 거듭 나게 하고, 더불어 팀원들을 전문가 집단으로 강하게 훈련시킨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의 목적은 바로 국가 경쟁력 강화에 있었다. 그는 경학과 사학에 있어서도 오히려 원조격인 중국보다 우리의 학문적 수준을 높이려고 했다. 또한 국가 경영의 지표가 되는 제반 학술 영역에 있어서도 ‘빌려오되’ 철저하게 ‘우리 것’으로 업-그래이드 시키고자 했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비전을 실천해 줄 실무진으로 뛰어난 인재 양성에 막대한 투자를 단행했던 것이다!
세종의 이러한 노력 가운데 신생 조선에는 진정 뛰어난 인재들이 나타난다. 그리하여 세종은 그들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국가 CEO로서 우리 나름의 탁월한 제도와 문물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정작 세종 자신은 사가독서의 혜택은 커녕, 평생 국가 경영에 과로를 해야 했다. 이는 그 자신 솔선수범한 국가 CEO가 아니면 실로 불가능했다.
[세종으로부터 배우는 경영 정신]
* 독서를 생활화하라. 책 속에 수많은 경험과 경영의 지혜가 들어 있다. 이처럼 가장 뛰어난 지식과 정보는 책 속에서 얻어진다.
* 경영자는 반드시 ‘알아야’ 한다. 경영 활동 중 자신이 잘 모르면서 내리는 지시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 직원들과 지속적으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지시와 지원 그리고 보호와 장려의 의무를 다 하라. 그것이 당신을 그들에게 구체적으로 알게 해 줄 것이다.
* CEO는 직원들의 실패뿐만이 아니라, 성공에 대해서도 준비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만일 당신이 성공을 기대한다면, 당신은 그들이 범할 수 있는 실패에 대해서도 반드시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 자신이 소신과 자존심을 펼칠 때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은 그것이 좁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만일 당신의 심적 상태가 작은데서 출발한다면, 그것은 당신을 작게 만들고야 만다.
* 배워야 알 수 있는 것처럼 알아야만 배울 수 있다. CEO는 그런 차원에서 앎과 배움을 조화롭게 통일시켜 나가는 사람이다.
* ‘전문성’을 갖추라. 전사적 학습관리 시스템으로 전문성을 확보하고 나면, 그 다음엔 그것을 교육을 통해 전파하고, 이를 지식 경영의 무기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 책상 앞에 앉아 있다고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멀리 떠나서 자신을 낯설게 하라. 다른 책도 한번 읽어 보아라. 거기엔 분명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다.
* CEO 스스로 자기 자신을 전문적 식견을 갖춘 인재로 거듭나게 하라. 더불어 팀원들을 강하게 트레이닝 시켜라. 스스로 자신을 ‘업-그래이드’시키면, 이는 사회 전체의 ‘업-그래이드’에 기여하게 한다.
ⓒ전경일, <창조의 CEO 세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