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極端)’은 어느 시대나 혼란기에 일어난다. 이것은 국가나 기업 경영에 있어 어느 한쪽이 대안이 되지 못한다고 여겨질 때, 다른 방향으로 튕겨져 나가는 현상을 뜻한다. 예로부터 국가나 기업 경영의 묘(妙)는 바로 백척간두의 상황에서도 ‘균형’을 잡는 일이다. 최고경영자로서 세종의 경영 능력이 돋보이는 부분이 바로 이 점이다.
세종은 균형 감각이 탁월했다. 극단을 피하고, 어느 세력에도 치우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추상같이 국가 기강을 지켰다. 세종시대에는 단 한번의 공신 책봉도 없었고, 동시에 정치적 보복도 없었다. 공신책봉이 없었다는 얘기는 역모 등의 혼란이 없었다는 얘기로, 신하들만의 도움으로도 나라가 유지될 수 있었다는 얘기다. 또한 합의에 의해 국가 경영이 ‘무난(無難)’히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편, 유ㆍ불ㆍ선이 동시에 교차하고 뒤섞이는 시기이기도 했지만 종교적 대립도 없었고, 이로 인해 지나친 이념적 갈등도 없었다. 더구나 세종은 경영자로써 언론과 여론을 매우 잘 다스렸고, 신하와 당대의 지식인 그룹들을 잘 아울러 사회적으로도 불만 세력이 없이 매우 안정되어 있었다.
[신ㆍ구(新ㆍ舊)간의 조화를 이루라]
이러한 세종의 ‘균형감각’은 실제 국가 경영에 그대로 반영된다. 세종은 전임 CEO인 태종이 취임 초에 자기가 쓰던 신하들은 다 버리고 새로운 인재들을 뽑아서 쓰라고 권하지만, 오히려 태종 시대의 구신들을 고위직에 배치하고, 자기가 뽑은 신하들은 하위직에 포진시켜 신ㆍ구 세대간에 자연스러운 권력 이동과 균형을 꾀한다. 이러한 균형감은 실제 인재 발굴과 국가 경영상 전략이 되어, 세종의 균형 있는 경영 활동에 크게 이바지 한다.
집현전은 이런 의미에서 세종의 노선을 충실히 보좌한 신진 두뇌 집단이었다. 실제 세종의 국가 경영에는 크게 두 개의 축이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그 중 하나가 경연(經筵)과 집현전을 중심으로 한 ‘연구의 축’이었다. ‘실행의 축’은 육조(六曺)가 맡았다.
[‘균형’은 경영의 극치]
세종의 균형 있는 경영은 바로 이들 연구와 실행을 통합해 내는 능력이었다. 그리하여 세종은 이 두 축을 통합해 그 상위직을 정승들이 겸임하도록 함으로써 양자가 자연히 합치 되도록 했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권력 밖으로 밀려 나는 ‘소외’나, 그에 대한 대항 작용으로 나타나는 ‘일탈 행위’는 발생하지 않았다. 바로 이러한 점이 세종시대 균형감의 극치였다.
세종의 이러한 ‘균형 잡기’는 실제 ‘경영의 핵심’인 국가 CEO로서 자기 직분과 ‘하늘의 대리인’으로서 자기인식 사이에 균형감을 잡게 하는 데에도 크게 이바지 했다. 그리하여 그는『용비어천가』에서 CEO의 역할과 의무를 강조하고, 만일 이에 미치지 못할 시에는 역사의 준엄한 평가를 받게 된다는 점을 새삼 강조했던 것이다.
[군신(君臣)간에도 선은 지켜라]
세종이『용비어천가』말미에 CEO에게 요구되는 기본 덕목들을 집어넣어 강조케 한 것은 후대 CEO들에 대한 일련의 정중한 ‘권고(recommendation)’ 이상인 것이다. 그것은 왕권의 보존이 전적으로 국가 CEO에게 달려 있음을 보여준 것이며, 동시에 국가 CEO의 책임 경영을 강조한 것이었다.
세종은 국가 CEO가 하늘을 숭배하며, 백성에게 헌신하는 것에 따라 왕권이 계속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역설함으로써 백성을 대상으로 한 국가 경영에 있어 CEO와 신하간의 역할에 자연스러운 균형을 유지하게 했다. 유교를 경영의 방식으로 취했으나, 이제 모두 유교의 범주 안에 포함될 수 밖에 없는 규칙이 만들어 진 것이다.
그리하여 신하들은 왕의 전횡에 대한 경고로써 가장 모범이 될만한 인물을 예를 들고 있는 데, 그는 다름 아닌 하(夏)의 태강(太康)이었다. 태강은 사냥만을 즐기다가 예의 공격을 받아 국가경영권을 찬탈당한 인물로 전해진다. 태강이 쾌락에 탐닉함으로써 왕위를 잃은 것은 후대 CEO들에게 충분히 암시를 주는 것이었다.
[왕도 ‘사냥감’이 될 수 있다]
이처럼 ‘사냥감’ 중에는 국가 CEO도 될 수 있다는 것을『용비어천가』창작팀은 고전으로부터 예를 들어가며 충분히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실로 국가 CEO에게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이며, 동시에 국가 CEO의 힘은 항시 견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이다.
세종은 자신 또한 ‘유교적 CEO’가 되기로 한 이상, 이를 수용할 수 밖에 없었다. 아니, 세종은 오히려 이 점을 강조하고자 했다. 훗날 연산군 같은 임금은 바로 이러한 선을 넘게 됨으로써 제거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용비어천가』는 교훈을 목적으로 하면서도 국가 CEO와 신하들간의 균형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 국가나 기업 경영에서 균형감을 찾을 수 없다면, 그것은 한 쪽 날개로 날려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힘은 적절해야, 위력을 발휘한다. 이 세상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 만큼이나 강한 힘이란 없다. 이 점이 바로 세종 경영에서 배우는 교훈이다.
ⓒ전경일, <창조의 CEO 세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