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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강의/마흔으로 산다는 것

우린 사는 게 뭔지나 알고 사는 걸까?

by 전경일 2009. 2. 5.


김형, 내가 김형과 만난지도 어언 15년이 지났군요. 아마 둘 다 학교를 졸업하고 첫직장에서였지요. 김형은 중견기업에서 경력 5년차 때 회사를 옮겼다고 했지요.


그러고보니 김형이나 나나 직장 생활을 하며 세상에 참 많이도 부딪쳐 온 셈이군요. 그래 겪어보니 우리가 사는 세상 사람들은 어떻든가요? 다들 자기 삶에 의미를 싣고 살아가지 않던가요? 모두들 고로쇠 나무처럼 삶의 진액을 뿜어대며 말입니다.


어떤땐 남들이 우릴 낀세대라고 불러 퇴근후 소줏잔을 기울이며 헛헛한 웃음을 날리기도 했었지요. 충무로의 그 포장마차, 기억나는지요?

김형 말마따나 우린 ‘이상한 세대의 사람들’인지도 모릅니다. 부모님 세대들로부터는 그 분들과 다른 가치관에 늘 철없는 세대 취급을 받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고보니 우린 칠, 팔십이 넘으신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공통점도 있군요.

어디 그뿐인가요? 부모님을 모시고 살긴 하지만, 우리 애들로부터 섬김을 받기엔 애당초 틀린 세대 아닌가요? 가치관이 변하는 마지막 세대인 셈이죠. 하지만 누가 애들과 같이 살겠다고 바라겠어요? 우리 나름대로 인생을 건강하게 살게 되면 되죠.


낀세대? 정말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직장내에선 어떻습니까? 회사에선 산업화 시대에서 정보화 시대에 걸쳐 있는 교량 세대로 자기 위치도 어정쩡하지 않나요? 두 사회의 다리가 되어 준 세대라는 생각은 눈곱만치도 해주지도 않으면서 요구하는 것만 많지요. 어떤땐 다들 다리를 건너고 나서 딴 소릴 하는 식이라는 생각도 들지요.

김형, 벌써 우린 40대군요.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겁니까? 아니, 어떻게 살아야 이 세상을 제대로 살아 내는 겁니까? 막막하군요.
그러고 보니 얼마전 김형이 내게 보내준 신문 기사가 생각 나는군요. 여기 인용해 보지요.

“2002년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전체 인구의 7.9%. 숫자론 377만명. UN이 정한 <고령화 사회>의 기준인 7%를 이미 2000년에 진입한 상태다. 이런 추세에 의하면 2019년에는 같은 계층이 인구가 14.4%, 대략 730여만 명에 달해 완전한 <고령 사회>가 된다. 지금의 40대가 이에 해당된다.”

이런 애기를 나누며 김형과 나는 늙어서 무엇을 하며 여생을 보내야 할지 고민하기도 했지요. 가장 활동적일 때 은퇴후를 생각해야 한다고. 계산해 보니 우리는 길고 긴 인생 방학을 적어도 30년이나 더 보내게 되는 셈이라고.

더군다나 우리 세대는 우리가 아무리 나이 들었다고 해도 위로 나이든 선배들이 수두룩하니 어디가서 나이 먹었다고 어른 행세도 할 수 없는 세대지요. 아마 더 나이들어도 대접받기엔 틀린 것 같군요. 늙은이 행세하는 게 뭐가 그리 좋느냐구요? 아니, 그렇다면 젊은 사람 취급도 못받는데 어쩔려구요? 나이대로 대접을 받아야지요.

김형은 내게 말했었지요. 늙을래면 혼자서 늙으라고요. 딱 그런 것 같네요. 이제 40대인데 말입니다.

요즘엔 특히나 사는게 만만치 않게 느껴지는군요.
가끔 조기 퇴직자 명단에 든 친구들 이름을 보면 남의 일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아직 몸은 청춘인데 직장에서 벌써 밀려 나야 하는 형편이니 말입니다. 무얼하며 나머지 인생을 보내야할지 정말 걱정이 앞서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저야 좀 더 오래전부터 다른 삶을 준비하고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김형의 물음에 딱 부러지게 대답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예전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것 밖에는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나이든다는 게 다른 경쟁력이 되어야 한다는 절박함 밖에는...

김형, 그런데 김형이 묻는 노후 준비를 바깥에선 ‘방학 숙제’라고 부른다는 걸 들어본 적이 있는지요? 30년 대방학 기간을 위해 우리는 사는 거랍니다.

부모님으로부터 물려 받는 거라곤 별로 없고, 오히려 애들은 아직 초등학교, 중,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이런 걱정부터 해야 하다니 답답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우린 만나 많은 얘기를 했었지요. 그때 소줏잔을 기울이며 김형과 나눈 얘기를  그간 정리해 보았습니다. 실감날지 모르지만, 아무튼 그냥 제 얘기라고 생각하고 들어 주세요.

글도 쓰며 참, 열심히 산다구요?
아닙니다. 김형보다 제가 시간을 좀 더 가져 본 것 밖에는 없습니다. 김형과 대화를 나눈 이래, 밤중에 애들이 자고 나면 혼자만의 시간을 조금 가졌지요. 그러다보니 예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좀더 많이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땐 그냥 앞만보고 살아온 것 같은데, 지금은 이런 물음 정도는 던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는 게 뭔지 알고 살기나 하나? 이런 질문 말입니다.

나는 솔직히 아직 사는 게 뭔지 모르고 삽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그걸 알기 위해 살아 갈 밖에요.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삶의 진국을 겪어보기 위해서 말입니다.

어쩌면 그걸 다 알기도 전에 내 인생에 방학이 오거나, 그 기간 중 불행하게도 내 생이 끝날지도 모르지요. 만일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나는 내 가족을 다 살만하게 해 놓고 떠나지 못했다는 게 무척 미안하겠죠. 하지만, 오늘은 김형이 던진 질문에 대해 자유롭게 내 생각을 풀어 보고 싶습니다.

그럼, 담담히 들어봐 주시길 바랍니다.
사는 게 뭔지도 모르면서 짐짓 아는 체하는 거, 용서 바랍니다.
그럼, 댁내 두루 건강하십시요.

ⓒ전경일, <마흔으로 산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