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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관리/위기관리 _레드 플래그(Red Flag)

베어링스 파산, 투시의 법칙

by 전경일 2009. 2. 6.

제8법칙: ‘깨뜨리지 않고도 속을 보는’ 투시透視의 법칙

-위험의 싹은 외부에서 오는 것 같지만, 실은 내부에서 은밀히 자라난다. 어떤 때에는 독버섯처럼 급속히 자라나며 조직 전체의 시스템을 마비시켜 버린다. 이런 위험요인은 처음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속은 곪아가고 있는 중이라는 걸 알게 한다. 그것이 표면에 드러났을 때에는 이미 늦으며 손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린다. 베어링스의 파산은 그 적절한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닉 리슨(Nicholas Leeson)이라는 젊은 딜러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했다. 놀라운 성과에 대한 보상으로 그와 그의 아내 리사는 세상에서 모든 걸 얻은 것 같았다. 엄청난 급여와 보너스를 받았으며, 주말에는 이국적인 장소나 아파트에서 파티를 즐겼다. 적어도 창업한지 232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 유명한 영국은행이 파산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운명의 사건이 터지기 전날 밤, 리슨은 자신의 책상위에 손으로 "I’m Sorry."라고 쓰적여 놓고는 노트 따위를 챙겼다. 그러고는 밤 11시 30분 싱가폴을 떠났다. 그는 말레시아 쿠알라룸프에서 200마일 떨어진 호텔에 숙소를 정했다. 다음날 아침 7시 30분, 닉의 아내 리사는 급히 택시에 올라타 공항으로 향했다. 아침에 닉이 깨어났을 때, 세상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리슨은 워포드에서 미장 일을 하는 노동자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다. 그는 마지막 수학 시험에서 낙방하고, 학교를 떠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 초 로열뱅크인 코우트스(Coutts)에 취직할 수 있었다. 그의 인생에서 바야흐로 은행 경력이 시작된 것이다. 1989년, 베어링스에 입사한 리슨이 처음 맡게 된 일은 결재업무였다. 그는 상급자들에게 재빨리 인상을 심어 주어 거래업무를 맡게 된다. 이것은 그가 보다 중요한 일에 관여하게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이 무렵 베어링스는 아시아 선물시장에 진출하려는 목적으로 싱가폴에 자회사인 베어링스 선물회사(Baring Futures, Singapore)를 설립하게 된다. 이때 이 불행을 몰고 온 사나이는 선물을 담당하는 매니저로 합류하게 된다.

그는 1992년부터는 인도네시아 지사를 설립하고 일본의 내부사기 혐의 조사에 참여하는 등 일련의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 조직에서 인정받기 시작한다. 그 무렵, 베어링스가 싱가폴에서의 입지강화를 위해 베어링스 선물회사를 설립하자, 리슨은 일본 오사카거래소(OSE)와 싱가포르거래소(SIMEX)간 니케이(Niklei) 225지수선물의 차익거래를 담당하면서 1992년 3월부터 이곳에서 일하게 된다. 그가 맡게 된 차익거래란 두 거래소 중 지수가 싼 곳에서 매입하고 동시에 비싼 곳에 매도하여 위험 없이 차익을 얻고자 하는 거래전략이다. 선물 거래를 통하여 수익을 올리자 리슨은 머잖아 베어링스 싱가폴 지사의 이사로 승진한다.

문제의 발단은 여기서부터 였다. 통상 금융회사들은 거래과정에서 발생하는 경미한 실수를 처리하기 위해 가공 계좌를 두는데, 베어링스의 ‘계좌 99905’가 그것이었다. 1992년 여름, 런던에 있는 베어링스 본사는 리슨에게 별도의 에러 계좌를 개설하여 그간의 작은 실수들을 자체적으로 정리하도록 지시한다. 이는 본사의 업무 편의를 위한 것이었다. ‘계좌 88888’는 이렇게 해서 생겨난다. 그로부터 몇 주 뒤, 본사는 다시 본래 사용하던 ‘계좌 99905’를 통해 본사와 연락하라고 지시하는데, 이때 가장 치명적인 실수가 발생한다. 리슨이 이미 개설한 ‘계좌 88888’가 폐기되지 않고 남게 된 것이다. 그 계좌가 훗날 베어링스를 좌초시켜버리는 주요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닉 리슨이 거느리는 팀이 저지른 사소한 거래실수에서 시작되었다. 1992년 7월 17일, 리슨의 부하직원인 짐 왕이라는 딜러가 니케이지수 선물을 매입하겠다는 고객의 요구를 매도로 잘못 입력하는 바람에 2만 파운드의 손실을 냈다. 손실액이 꽤 컸던 탓에 리슨은 이를 ‘88888 계좌’에 감춘다. 다시 1993년 1월에는 조지 서가 800만 파운드의 손실은 냈다. 이번에는 이를 본사에 보고하면 담당직원은 물론이고, 리슨 자신도 자리에서 물러나야할 판이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리슨은 자신이 만든 ‘계좌 88888’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다. 문제가 점점 커져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이익이 나면 이를 정식계좌에 등록하여 보고했지만, 손실이 난 경우에는 정식계좌에서 빼내 ‘계좌 88888’에 감추어 두었다. 이런 식으로 처리하게 되니까 리슨은 항상 이익을 낸 것으로 되어 있었다. 당연히 뛰어난 실적으로 그는 회사 내에서 주목받는 기린아로 등장한다. 선물거래는 포지션과 시장가격의 움직임에 따라 이익이 나거나 손해를 보게 된다. 리슨은 초기의 작은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차익거래뿐만 아니라, 시장가격의 움직임 방향에 배팅을 거는 투기거래에 나선다.

손실은 점점 커져갔다. 1992년에 200만 파운드였던 것이 1993년에는 2,300만파운드로 늘어났다. 선물거래는 주식이나 채권거래와 달리 이익이나 손실이 거래만기에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시사평가에 의해 이루어진다. 손실에 대비해 초기 증거금을 납부하지만, 그 이상의 손실이 발생하면 해당금액을 거래소에 추가로 납부하게 되어 있다(Margin call). 리슨은 선물거래에서 계속된 손실로 인해 상당한 금액의 마진콜을 납부해야만 했다.

처음에 리슨은 영국 본사에 적당히 둘러대어 자금을 융통했다. 그러나 규모가 점점 커지자 다른 방법을 모색하기로 했는데, 그것은 니케이 225 주가지수의 스트래들(straddle)을 매도하는 것이었다. 스트래들은 동일한 행사가격을 갖는 콜옵션과 풋옵션 1개씩을 합친 것이다. 따라서 주가가 행사가격 중심에서 큰 변화를 보이지 않으면 옵션 프리미엄으로 인해 이익이 나지만, 급등 또는 급락할 경우에는 무한대의 손실이 발생하는 것이다.


리슨이 스트래들을 매도한 것은 향후 주가 변동폭이 작을 것으로 예측하고 이익을 내려는 것보다 선물거래의 마진콜에 필요한 자금동원이 목적이었다. 스트래들 매도는 콜과 풋옵션의 프리미엄 수입 두 가지를 한꺼번에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 한때, 리슨은 스트래들 매도로 큰 돈을 벌어 1993년 7월에는 600만 파운드에 달하는 ‘88888 계좌’의 손실액을 모두 메우고도 남았다. 그런데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당시 옵션시장은 높은 변동성으로 프리미엄이 기초자산가격의 5퍼센트라는 높은 수준을 유지되고 있었다. 리슨은 기초자산의 가격등락이 곧 안정될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시장은 리슨의 희망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니케이 225 지수가 크게 하락해 선물매입과 스트래들 매도에서 누적 손실이 1994년에 2,800만 파운드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런 손실은 모두‘계좌 88888’에 감추어졌다.

이런 손실에도 불구하고 가공거래를 통해 리슨은 계속 훌륭한 실적을 내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리슨은 1994년 중 2,850만 파운드의 이익을 낸 것으로 보고하였고, 그 댓가로 15만 달러의 연봉과 함께 100만 달러의 보너스를 받았다. 리슨의 상사와 동료들도 추가적인 보상을 받았다.

1994년 7월 ‘88888 계좌’의 손실액은 다시 5000만 파운드가 되었고, 그는 내부감사에서 발각되지 않도록 베이링스 은행이 시티은행에 예치한 5000만 파운드의 현금을 ‘88888 계좌’에 입금시키고, 시티은행 게좌를 위조했다. 리슨의 이런 도박에 대해 그는 자신이 고객들의 요구에 따라 거래를 해나가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고, 베어링스 은행은 그의 말만 믿고는 그 거래에 엄청난 리스크가 놓여져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또한 1994년 2월 첫주에 리슨이 1000만 달러를 벌어들이자 베어링스 은행의 경영진은 일제히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리슨이 앞으로도 매주 이런 식으로 실적을 올려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1995년 1월 일본에서는 고베지진이 일어났다. 그에 따라 니케이 225 지수는 다시 하락했다. 당연히 손실이 늘어났다. 이 때 리슨은 이제까지의 손해를 일시에 회복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큰 모험을 했다. 고베지진 복구를 위한 재정지출 증가로 일본경제가 회복되고 주가도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을 근거로 그간의 누적손실을 일시에 만회하기 위하여 주가지수선물을 대량 매입하였다. 한편으로는 계속되는 증거금 납입요구(Margin call)에 맞추기 위해 스트래들을 추가 매도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주가지수는 하락을 거듭한 결과 1995년 1~2월 중 15퍼센트 이상 하락하여, 리슨은 주가지수선물거래에서만 3억 파운드의 손실을 내게 된다. 더불어 스트래들 추가 매도에 따른 손실 1억 2천만 파운드, 일본국채 선물거래 손실 1억 9천만파운드로 합계 6억 1천만파운드라는 막대한 손실이 발생했다. 마지막 순간, 베어링스의 총손실 금액은 13억 달러에 달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결국 베어링스의 주주들은 10억 달러에 달하는 회사 자기 자본의 시장가치가 완전 소멸되어 사실상 빈털털이가 되었으며, 채권자들은 채권액의 20분의 1만큼만을 겨우 건질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 엄청난 도박에 운명을 건 리슨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도피 중 프랑크프루트에서 체포되어 싱가폴로 송환되었다. 체포 후 리슨의 변호인은 런던에 있는 리슨의 상사가 리슨의 행동을 제어하지 못한 것을 비난했다. 그리고 자신은 개인적인 이득을 취한 게 없다고 항변했다. 그는 보고해태로 6년, 문서위조 및 허위로 6개월의 총6년6개월의 징역형을 언도받고 복역하던 중 4년이 지난 2001년에 결장암 진단을 받고 감옥에서 풀려나왔다. 그는 복역 중이던 감옥에서 자신의 자서전 <Rogue Trader(악덕거래인)>을 펴냈는데, 이 책은 훗날 이완 맥그리거가 주연한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의 아내 리사는 그가 싱가폴 감옥에 복역 중 그를 정기적으로 만나고자 항공사 스튜디어스로 취직했다. 하지만 나중에 리슨이 일본 게이샤 여성과 불륜을 피우자 더는 못 참고 이혼했다. 감옥에서 나온 후 리슨은 암에 걸렸지만, 미들 썩스(Middlesex)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했다. 그의 책 <Rogue Trader>이 영화화되고 나서 그는 얼마만큼의 돈을 손에 쥘 수 있게 되었다. 그는 현재 아일랜드 갈웨이 축구클럽의 단장이다. ‘악마의 손’이라는 과거의 악명 덕분에 투자위험을 분석·경고하는 고액강사로 변신해 투자사에 위험성 분석에 관한 강의를 종종하곤 하는데 회당 강연료가 9,800달러(약 910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지금도 온라인 거래회사를 통해 외환거래를 하고 있다.

베어링스 파산 사건은 헤지 없는 거래의 위험성에 대해 충분히 경종을 울린 사례였다. 리슨은 주가지수선물거래에서 투기적 포지션을 취하면서 헤징을 하지 않았다. 또한 손실규모가 늘면서 이를 단번에 만회하기 위해 포지션 규모를 늘려가면서도 여전히 헤징을 무시했다. 베어링스의 파산은 높은 수익률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높은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기본 원리를 무시한 결과였다.


또 다른 교훈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내부통제시스템 상의 문제점을 들 수 있다. 닉 리슨은 본인이 금융거래를 하고, 이에 대한 장부정리까지 함으로써 사실상 대규모 부정을 감출 수 있었다. 또한 당시 베어링스 선물회사의 조직체계는 매트릭스 구조로 되어 있어서, 리슨은 지역본부장과 담당 금융거래팀장에게 교차 보고하고 있었다. 파생금융상품이라는 전문화된 거래에 대해 리슨의 상사들은 자신이 아닌 다른 편에서 챙기고 있겠지 하는 안이한 자세를 보였다. 결국 리슨은 아무런 내부통제를 받지 않고 일을 벌일 수 있었던 셈이다.


한편, 리슨은 거래기간 내내 손실규모를 감춘 채 허위로 이익이 나는 것처럼 보고했기 때문에 상위감독자들이 감독을 소홀히 하는 요인을 제공했다. 남들보다 더 높은 성과를 보이는 거래담당자는 능력이 뛰어난 경우도 있으나, 남들보다 더 큰 위험을 감내한 결과일 수도 있다. 따라서 상위감독자는 리슨과 같이 성공적으로 보이는 거래담당자들에 대해서 오히려 더 면밀한 감독을 했어야 했다.


통제시스템의 결핍은 리슨의 포지션 관리에서도 잘 드러난다. 최후 순간 베어링스선물이 보유한 니케이 225 선물계약수는 43,000건으로 금액으로는 70억 달러에 달했다. 이는 SIMEX의 미결제 잔고의 30퍼센트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슨의 과도한 포지션 보유에 대해 제동을 걸 수 있는 시스템은 없었다. 위험관리의 핵심은 포지션에 대한 위험을 측정하고 적정 위험수준과 비교하여 위험을 줄이거나 늘리는 것이다. 그러나 베어링스는 위험을 측정하지도 않았고, 설령 측정했다고 할지라도 포지션을 통제할 내부시스템이 없었다.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베어링스는 파산을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온갖 래드 플래그는 무시되고 교묘하게 뒤얽혔다. 그 예로, 1995년 2월 8일, 베어링스 런던 본사의 한 고위 임원은 직접 싱가폴로 날아가서 리슨과 그가 주도하는 팀의 거래에 대한 내부감사를 실시했다. 또 2월 20일에는 도쿄 지사의 책임자가 리슨에게 니케이지수 선물 보유량을 줄이라고 충고했다. 1992년 3월 베어링스 내부문건에서도 다음과 같이 지술돼 있다.

“현재 재앙이 초래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에 처해있다. 완전한 규정이 수립되어 있지 않아 재정적인 손실은 물론 고객들의 신뢰를 잃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고는 이상하게도 경영진에게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1995년 1월 11일에는 싱가폴 선물거래소의 회계팀에서 베어링스에 서신을 보내 리슨이 ‘88888’계좌를 보유하고 있는 것에 의문을 제기했다. 같은 시기 리슨이 매일 같이 런던 본사에 추가증거금 지불 명목으로 1000만 파운드가 넘는 금액을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베어링스 본사에서는 이 점에 대해 추호의 의심도 품지 않았다. 게다가 싱가폴 베어링스선물 회사의 사장도 그를 전적으로 신임하고 그에 대한 모든 감사를 접었다. 리슨은 시티은행의 계좌에 5000만 파운드가 있는 것처럼 위조했지만, 누구도 직접 확인해 보지는 않았다. 모든 징후가 붕괴로 몰고 가는 조건이 형성되고 있었던 것이다.


베어링스 사건 이전에도 국제 금융시장에서 터진 잇따른 금융 사고들로 위험 관리에 대한 주의가 지속적으로 환기되어 왔다. 그 예로
1993년 선진국의 은행가, 금융가, 학계 인사로 구성된 ‘G-30’은 관련 사고들의 후유증에도 불구하고 파생금융상품의 활용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시가 기준으로 포지션의 가치를 평가하고 적극적인 위험관리를 할 것을 주창하였다. 이와 유사한 주장은 이미 Moody's, S&P 등 신용평가회사 및 ISDA(International Swap and Derivatives Association)에 의해서도 발표된 바 있다. 1994년 8월 파생금융상품 관련 공공정책을 다루는 DPG(Derivatives Policy Group)는 민간부문의 거래에 특별한 규제를 하지 않는 대신, 자체적으로 위험측정치를 활용한 내부통제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융사고경험을 통한 위험관리 중요성의 교훈은 1994년 10월 J.P. Morgan의 Riskmetrics 발표와 더불어 극대화되었다. Riskmetrics는 처음에는 14개국 300개 금융상품의 분산 추정자료를 제공함으로써 이들에 대한 위험을 측정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 같은 모든 조치와 레드 플래그가 베어링스에서는 간과되고, 무시되었던 것이다.

한 은행의 파산이 아닌, 국가적으로 파산 위기의 경험이 우리에게 있다. 우리에게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온 1997년의 IMF 관리체제는 분명 위험관리의 소홀로 빚어진 쓰라린 교훈이었다. 그 당시 침몰하는 한국경제에서 베어링스의 닉 리슨과 같은 역할을 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우리 중 누군가가 막대한 성과를 보이고 있을 때, 군중은 위험을 인지하거나, 심지어는 의도적으로 인지하려들지 않는다. 또한 위험이 가중될 때 혼탁한 흙탕물 속에서 이익을 취하는 사람은 금방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IMF 10년 만에 그
윤곽을 알고자 한다면, 전모를 파악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베어링스 파산은 교훈을 남겼으나, 한국의 IMF는 금반지를 내다 판 기억만 남긴 채 묻혀버린 건 아닐까?

 

 

<베어링스 금융사고의 교훈>


 베어링스는 1862년 영국에서 설립돼 233년의 유구한 역사와 명성을 지닌 세계 유수의 금융회사였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고객으로 모시고 있었던 이 영국 최고의 은행은 닉 리슨이라는 28세의 젊은 직원으로 인해 하루 아침에 망하고, 1995년 2월 네덜란드의 ING(Internationale Netherisnden Groep)에 단돈 1파운드에 구제 합병되고 만다. 베어링스 사건은 한 직원으로 인해 거대한 회사가 망했다는 점에서 전 세계적으로 큰 충격을 안겨 다 주었다. 나아가 금융위험관리 측면에서 전 세계적으로 파생상품거래의 위험성에 대해 불을 지핀 계기가 되었다. 최근 수년간 베어링스 그룹의 도산과 같은 주요한 금융 사고는 주로 운영리스크 관리 실패에서 비롯된다. 이 같은 금융사고의 원인을 통해 살펴볼 수 있는 기업의 래드 플래그와 대응책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베어링스 증권의 닉 리슨은 파생상품 담당 트레이더인 동시에 자신의 실적을 조작할 수 있는 계리담당자 역할까지 수행했다. 베어링스 내부에는 이런 문제를 통제할 내부관리시스템이 없었다. 이는 기업이 조직 관리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해 시스템을 개선 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문제가 터지고 나서 시스템의 한계를 발견하는 것은 위험을 방조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경영진은 효과적인 내부 회계관리제도를 구축하고 각 업무프로세스 수준에서의 통제활동을 명확히 수립하고, 일상 업무의 일부로서 통제활동을 수행해야 한다. 직원관리, 조직 관리에서 누수가 생기면 기업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흘러가 버리게 된다.


-경영진은 관련 정보가 효과적으로 임직원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하향의 의사소통경로와 함께 상향의 의사소통경로를 구축하여야 한다. 특히, 관련 법규나 행동강령의 위반에 대한 내부고발자 보호제도 및 악의의 내부 고발자에 대한 징계제도도 균형 있게 마련해 두어야 한다. 베어링스는 이 같은 내부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은 까닭에 그 피해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래드 플래그 제8법칙: 사무실 내 독버섯의 법칙


-어떤 조직이든 관리감독을 소홀히 했을 때 위험요인은 서서히 커지며 끝내 걷잡을 수 없을 상태로 조직을 몰고 간다.
이런 문제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징후 예측과 위험 발생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방법들 >

 
-기업에서 내부통제 시스템의 결여, 경영진의 직원관리감독의 해태, 회사 규칙을 강제하지 못하는 것, 거래부서와 관리부서의 분리를 통한 효과적인 감시ㆍ감독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것은 오늘날 기업 곳곳에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일을 맡는 사람과 내부시스템을 보다 건전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래드 플래그를 발동할 시스템을 갖추어 놓지 않은 채 직원 개개인을 탓하는 것은 계기판 없이 운행하는 차량과 다를 바 없다. 경영진은 위기관리를 위해 상호견제와 점검의 장치를 마련해 두어야 한다.

  
-경영진이 수익률 제고에만 관심을 뒀지 위험관리에는 소홀하다면 이는 의심해 볼 여지가 있다. 이럴 때에는 위험의 징후가 나타나더라도 사전 대응은 미흡해 진다. 통계에 의하면, 많은 경영자들이 공장이나 건물이 화재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험에 드는 것을 내켜하지 않는다고 한다 .‘설마 ’‘그럴리 없다.’ ‘나한테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와 같은 맹신이 위험을 증폭시키고 있다. 위험을 방치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는 종종 위험에 뛰어들고자 하는 자기 파괴적 행태를 보인다. 위험의 독버섯은 내부에서 더 완강이 자리잡고 있는 셈이다.


-조직 내 ‘무조건 잘나가는’ 직원이나, 갑작스런 실적향상 또는 실적 하락, 고객의 특이한 움직임 같은 요인들은 충분한 래드 플래그가 된다. 이 같은 점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안이하게 대처했다가는 막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작은 래드 플래그라도 세심히 관찰하면 위험은 그 만큼 줄어든다.


-자기에 대한 과도한 확신이나, 업무 추진시 멈춰야 할 때를 모른다면, 이는 결정적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경영자나 직원 개개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 통제력을 갖추는 것이다. 절제나 통제 능력이 부족해 문제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간다면 기업이나 개인이나 마찬가지로 파산에 이르게 된다. 조직은 직원들에게 보다 정교한 통제역량을 갖추도록 교육 훈련에 더 큰 관심과 투자를 기울여야 한다.

 

 

 <참고자료>

 오세경, 김진호, 이건호, 『위험관리론』, 경문사, 1999.

 왕중추, 『작지만 강력한 디테일의 힘』, 올림, 2005

 닉 리슨, 『금융가의 불한당(원제: Rogue Trader)』, 시공사, 1997.

 김규영, 양채열 외, 『금융구제-이유, 방법, 방향』, 학현사, 2002.

 『TIME』, March, 13, 1995.

 「New life for Leeson?」,『BBC NEWS』, Monday, 25 June, 2001.


ⓒ전경일, <레드 플래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