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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경영/남자, 마흔 이후 | 마흔 살의 우정

[남자 마흔 살의 우정] 일상의 평화, 내 오랜 친구

by 전경일 2009. 2. 6.

 

일상의 평화, 내 오랜 친구

 

여름휴가로 제주도를 찾았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바다는 남태평양 쪽으로 뻗어 있었다. 끝없이 넓고, 한낮의 햇빛 속에서 코발트빛과 에메랄드빛으로 어우러져 빛나는 바다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수영장에서 아이들이 노는 것을 바라보며 햇살 아래 누워 있다가 드디어 파라솔 안으로 기어들어와 시원한 음료수를 한잔 마셨다. 이럴 땐 마티니나, 키스오브 파이어 같은 칵테일도 제격일 텐데... 한가롭고, 평화롭기 그지없는 시간이었다. 

정말 얼마만의 휴가인가? 나는 아내가 눈을 감고 잠들어 있는 것을 보며 휴대폰을 꺼내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주도다, 와, 정말 죽인다.”

“뭐라고? 누굴 약 올리냐?”

대뜸 저 너머에서 불평이 터져 나왔다.

“약을 올린다고? 자식! 그래, 우린 돈 없어 동남아도 못가고, 제주도에 와 있다, 너는 이 땡볕 더위에 휴가도 안가고 돈을 쓸어 담는 모양이구나?”

“하하…… 그래, 즐겨라. 움직일 수 있을 때 실컷 놀아야지.”

친구는 무더운 서울 한복판에서 수출이다 뭐다해서 돈 벌기에 여념 없었다. 기껏 안부전화를 걸었더니 언구럭만 떤다. ‘돈맛을 아는 놈이 돈도 버는 거지…… 나처럼 월급쟁이야, 상상이나 하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돈은 벌어야겠고 휴가는 오고 싶고, 친구 놈에게 약을 오를 대로 올려놓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전화를 끊고 나니 갑자기 멋쩍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무슨 인연이 있길래 휴대폰이 생긴 이래로 서로의 전화번호를 저장해 놓고 수시로 접속하고자 하는가. 나는 왜 무시로 버튼을 눌러가며 저 너머에서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그에게 휴가 이야기, 사는 얘기를 줄창 해대는 것인가.

대학을 다닐 때는 공중전화 박스가 그를 불러내는 도구였다. 최루탄이 날리는 길거리에서 시위가 끝나면 어디에 있는 막걸리 집에서 보자며 전화를 넣었고, 먼저 군대 가서는 외박 나와 전화를 걸었다.

“야, 임마! 잘 지내냐? 나는 전방에서 뺑이 치는데…… 야, 민간인이 한잔 사라……!”

서로가 열심히 물들인 때국물 같은 정감 때문에 인연은 이어지는 것일지 모른다. 참, 많이도 어울렸다. 나는 쏜살같이 지나간 시절들을 회상하며 상념의 바다에 풍덩 마음을 던졌다.

생각해 보면 기이한 일이다. 대체 친구가 뭐길래 이 먼 바닷가에 와서도 회사 일처럼 잊지 못하고 떠올리게 되는 걸까. 친구라는 건 그렇게 익숙한, 아니 뼛속에 밴 습관과 같은 것일까? 부부가 같이 와서도 친구 놈이 생각나다니 참으로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혹시 내가 커밍아웃을 한 것은 아닐까, 혼자 생각하다가 낄낄 웃어대고 말았다.

저녁 무렵 해지는 바다를 바라보며 그와 자리물회 한 접시에 소주라도 한잔 꺾고 싶었던 모양이다. 마누라도 좋지만, 척척 죽이 맞는 놈들을 한둘은 꿰차고 있어야 인생이 외롭지 않은 것 아닌가. 그마저도 없다면, 살아가는 일이 너무 심상하지 않을까 말이다.

생각해 보면 녀석과의 만남은 정말이지 끈질긴 인연으로 이어졌다. 다들 만났다가 헤어지고, 아무리 친했어도 사회라는 포구 앞에서는 바다로 빨려 들어가는 거북 새끼처럼 겁 없이 큰 세상으로 나갔다가 연락이 끊겨져 버린 친구들이 하나 둘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정말이지, 잊혀 지거나 지워졌거나, 누가 먼저 그랬든지 떠난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도 아직도 나는 그와 함께 있다. 욕망만 부풀리며 달리던 때에는 그와의 만남도 불같은 경쟁 속에서 이루어졌지만, 지금은 다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인생의 방향이 자연스레 바뀐 순간, 문득 평생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래야 죽을 때 조금은 덜 서글플 것만 같았다. 고만 고만한 자랑거리로 질투하고, 시기하고, 경쟁하다가는, 친구는 고사하고 인생마저 잃게 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어떤 땐 아무 긴장감 없이 만날 친구가 필요한 법이다. 주말에 아이들 야구 시합이 있을 때, 같이 가자고 얘기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은가. 가볍게 산책 하면서 살아가는 얘기를 나눠도 지루하지 않은 친구. 빨래를 개거나 식기세척기를 비우며 친구와 전화로 이것저것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 이런 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언뜻 보기에는 별 것 아닌 것 같은 이 같은 평화로움이야말로 바로 친구가 주는 행복인지 모른다. 마음의 평화는 댓가 없이 얻어지는 게 아니다. 게다가 지금처럼 개인주의가 심화된 시대엔 이런 공감지대가 더 필요할지 모른다. 언제든 이런 친구를 그리워하는 건, 바로 우리가 홀로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적어도 내게, 혼자만이 아닌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알게 하는 친구가 있다면, 이미 그 자체로 성공한 삶 아닐까. 태평양은 마냥 푸르다. 하늘은 거기서 만난다. 나는 흘러가는 구름 아내 놓여 있다.

ⓒ전경일, <남자, 마흔 살의 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