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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경영/20대를 위한 세상공부

[20대를 위한 세상공부] 직장은 대한민국 축소판

by 전경일 2009. 2. 17.

직장이란 곳은 대한민국 사회의 모든 문제와 희망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축소판이다


많은 직장인들이 매일 매일 감정의 기복을 겪곤 합니다. 직장생활은 자기 통제력 여부에 따라 희망과 좌절의 평행봉에 걸터앉아 있는 것 같습니다. 똑같은 현상에 대한 반응이나, 심적 상태의 변화도 때와 장소에 따라 다릅니다. 자신이 아닌 환경의 영향이 더 크다는 것이죠.


몇 해 전 인터넷에 무릎을 구부리고 쓰러진 사람 모양의 디자인에 사선을 그은 ‘좌절금지’라는 팻말이 크게 유행한 적 있는데, 아마 직장인들이 겪는 좌절감도 이 표식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더구나 요즘처럼 모든 게 뒤얽혀 있어 복잡하며 다원적 가치가 상존해 있고, 직장 내 무한 경쟁이 벌어지는 시대에는 말이죠.


직장에는 온갖 문화와 관습, 전례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 기업의 업과 관련 있고, 창업시부터 서서히 쌓여온 것입니다. 예전에 전통적인 오프라인 기업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 회사의 사훈은 ‘묵묵하게 일하자.’였습니다. 과연 레미콘 회사다운 발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회사의 한 젊은 직원과 우연히 얘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회사의 문제점을 낱낱이 꼬집어 놀란 적이 있습니다. 더구나 그가 말하는 문제점이 오늘날 한국사회가 지닌 문제점의 축소판 같아 보여 씁쓸하기만 했습니다. 그는 회식 때만 되면 상사들이 부리는 ‘호기’에 죽을 맛이라고 울상을 지었습니다.

“저는 음식을 먹고 싶은데, 결국엔 꿀꿀이 죽을 먹게 되는 거죠. 술도 이 술 저 술 섞어 말아먹는 게 이 회사의 술판입니다. 각자 취향이 달라 통일한다며 상사는 와인, 복분자, 소주, 맥주를 뒤섞어 대접에 붓고 원샷을 강요하는 게 회식 분위기입니다. 술을 음미하는 게 아니라, 배에 들어가면 다 섞이니까 뒤섞어 먹는다니 할 말이 없죠.”


그 얘기를 듣다 보니 오래 전 이솝우화에서 밀가루와 물과 파우더를 함께 먹으면 결국엔 빵을 먹은 효과가 나타나게 된다며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세 가지 재료를 삼키고 벽난로에 배를 디밀던 장면이 생각났습니다. 다른 문화적 환경에서 자라온 후배 사원들은 그런 상사들을 ‘꼴통’ ‘꿀꿀한 선배’라고 부르던 것이 생각납니다. 이것도 ‘문화’라고 불러도 될까요?  


반면, 어느 광고 회사에 걸려 있는 프랭카드는 업의 성격을 잘 드러내 주고 있었습니다. ‘튀지 않으면 죽는다.’ 광고업계에서는 이보다 맞는 말은 없겠죠. 기업은 각자 그 업에 따라 문화도 달라집니다. “디데일한 감각에 호소해야 하다 보니 직원들의 정서가 매우 섬세합니다. 이들을 ‘집단’으로 몰고 가면 개인의 상상력은 없어지는 거죠. 물론 감각이 살아 날 리도 없습니다. 우리의 업은 감성으로 씨를 뿌리고 이성으로 수확을 거두는 것입니다. 당연히 그에 맞춘 문화라야 감동을 주죠.” 직원들과 감성 터치를 하는 걸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는 그 회사 부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앞서 레이콘 사업장에서 광고회사와 같은 문화를 기대한다는 것은? 글쎄요. 어렵겠죠? 


회사마다 이렇게 문화가 다릅니다. 물론 어떤 것은 문화라고 하기엔 너무나 조악할 뿐입니다. 문화는 다르지만 그것을 현대적인 것으로 중화내지 탈바꿈 시켜 버리는 것이 바로 여러분 세대입니다. 요즘의 젊은 친구들을 지칭하는 조어가 여럿 있는데, 여기서는 그들이 다른 사고와 문화를 받아들이고, 참여와 공감을 지향하며, 사적 수용을 중시하는 ‘2.0 세대’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이들은 나이든 선배 직장인들과 비교해 볼때 삶을 바라보는 가치나 태도도 다릅니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내가 너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며, 다른 나를 추구합니다. 그러면서도 조화를 추구하죠. 공감, 공유, 감성, 참여가 강조되는 전형적인 웹2.0 시대의 직장인들의 특징인 것입니다. 저는 이 분들을 21세기형 직장인의 특징이자, 기업의 인적희망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직장인 유형은 이처럼 시대에 따라 진화를 거듭해 온 것입니다.


같은 문화 속에 있는 것 같지만, 철저하게 다른 문화가 뒤섞여 있는 곳이 직장입니다. 사람이 각자 다르다보니 생겨날 수밖에 없는 현상입니다. 다른 문화들끼리 만나 어느 문화는 퇴조를 하고, 어떤 문화는 도도히 밀려옵니다. 누구도 이 문화의 흐름을 되돌려놓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직원들이 그럴뿐만 아니라, 고객이 달라져 있기 때문입니다. 고객에 소구하지 않는 기업문화는 생존조차 위협받게 될 것입니다. ‘고객만족’이라는 말도 다분히 공급자 중심의 마인드입니다. 기업 입장에서 고객이 만족했는지가 아니라, 고객 입장에서  만족했는지를 알려면, 고객공감이 우선일 것입니다.


다양한 가치가 만나 보이든, 보이지 않든, 불꽃을 일으키며 다른 문화로 발전해 가는 곳이 회사입니다. 그럼에도 변하지 말아야 할 가치가 있습니다. 사회적 축소판으로 기업내에서 벌어질 수 있는 분별없는 행동들은 회석되고 퇴출되며 보다 바람직한 문화로 거듭나야 합니다. 윤리의식의 실종, 기업 내 성희롱 등 차별, 폭언과 폭력적 행동, 억압적 분위기 등은 이 사회가 지닌 어두운 면입니다. 이 사회의 문제점이 기업 내에도 고스란히 존재합니다. 기업은 사회적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선진적인 기업들은 이 같은 어두운 면을 개선시켜 나가는 것을 기업의 의무로 받아들입니다. 탁월한 기업이란 이윤추구가 도덕적 법적 테두리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밑바탕으로 합니다.


여러분들은 앞으로 직장생활을 하며 사회라는 곳, 기업이라는 곳의 생리를 알게 되고, 특히나 돈과 함께 돌아가는 경제 매커니즘에서 벌어질 수 있는 온갖 불합리, 부정적 행태를 목격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직장 생활을 하며 배우는 것은 정직하게 땀을 흘리면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만일 이런 가치를 저버린다면 요행으로 성공할 수는 있으나, 영원한 승자가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위대한 기업은 달라도 뭐가 다릅니다. 여러분이 성공적인 직장인이 된다는 것은 이런 유혹과 갈등을 떨쳐 버리고 늘 옳은 스텐스를 취하기 때문입니다. 휩쓸려 다니다가는 성공적인 직장생활은 물론이고, 자신마저 잃게 될 것입니다. 옳음이 있는 곳에 뿌리를 내리십시요. 뒤처지고 늦어보여도 결국엔 앞선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을 곧 알게 될 것입니다.

ⓒ전경일, <20대를 위한 세상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