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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경영/남자, 마흔 살의 우정

[남자 마흔 살의 우정] 나이 들며 얻게 되는 감정

함께 나이 들며 얻게 되는 감정


내가 어렸을 때에는 요즘과는 달리 형제 관계에서 위아래가 분명했다. 형에게 덤비는 것은 물론, 말 놓는 것조차 상상하지 못했다. 형과의 사이에 생기는 긴장감이 상대적으로 컸던 만큼, 누나들에게는 편안함과 안정감이 느껴졌다. 암묵적으로 여성은 약한 자를 보호해 줄 것이라는 보호본능 때문이었거나, 아니면 누나들이 자발적으로 모성애적 사랑을 쏟아 부어 주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형제들 사이의 확고했던 이런 서열도, 나이가 들고, 결혼해 각자 얘들을 키우면서부터는 훨씬 희박해지는 것 같다. 그때부터 형제들 간의 관계는 좀 더 평등한 방향으로 발전한다. 손위 형제들이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도 않고, 지나치게 과묵하게 굴어 화난 것처럼 보이던 형제도 이제는 그것이 성격상의 차이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지난한 삶이 우리를 어른으로 만들어 내서 그런지 감정 표현에 있어서도 더 이상 헤프지 않다. 아무리 부딪쳐도, 산다는 게 다 그런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면 옳고 그르다는 이유로 아웅 다웅 할 필요도 없어진다. 그저 수긍하면 되는 게 삶에는 대부분인 것이다.


그렇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의 문제보다는,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방향의 문제가 더 중요하다. 삶이 진행되는 방향에 좀 더 집중하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람이 세상과 부딪치며 겪게 되는 경험이 작용한 결과이다. 어쨌든 이 길고 긴 인생의 터널을 지나오면서, 나는 형제들 사이에도 혈육 간의 정과는 다른 우정의 감정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피를 통해 형성된 정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어렸을 때 내게 큰형은 정말이지 무서운 존재였다. 형에게 혼날까봐 어쩔 줄 몰라 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얼마 전, 나는 그토록 높고 멀게 느껴졌던 형이 사실은 아주 약한 면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무렵 형은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었다. 형은 나와 더불어 동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중년남자의 애처로운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오십 줄에 들어선 형을 바라보면 왠지 모를 측은지심까지 일었다. 그러자 가슴 속으로 알 수 없는 감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때 나는 그것이 중년남자끼리 느끼는 우정이나 의리 같은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한번은 큰형이 내게 “자네”라는 표현을 쓰며 말을 건넨 적이 있었다. 그것은 이전에는 결코 들어 본 적 없는 인칭대명사였다. 이름을 부르거나, 어깨를 툭 치거나, 누구 애비라고 불러 주던 때의 느낌과는 사뭇 달랐다. 그것은 내가 머리가 굵고 나이가 들면서, 형도 이제는 나를 손아래 동생으로만 대하기보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 나를 인식하고 있다는 증표였다. 이제 나보다 세상을 더 살은 형은, 동생을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받아들이려고 있고, 해석하고 있었다.


작은 일상의 경험이긴 했지만, 나는 그 일이 있은 후, 형에게 형제간의 우애와는 조금은 다른 감정을 알게 됐다. 그럴 때 형의 어깨는 예전처럼 다부지거나 넓게 느껴지지 않았으며, 이제는 그 뒷모습에서 원만하고 순리대로 살아가는 한 중년 남자의 모습이 읽혀졌다.


속마음이야 어떻든, 나는 이 일을 계기로 형을 대하고 함께 나누는 감정의 행태가 바뀌었음을 느꼈고, 형이 나를 사회를 이끌어가는 당당한 일원으로 받아들였음을 깨달았다. 그뿐이 아니었다. 형의 그런 태도는 내게 각성의 동기를 부여해 주었다.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들과 멋진 우정을 나눈다는 것은, 달리 말해 우리가 좀 더 성숙해졌다는 것을 뜻한다. 우정을 친구 간에 느낄 수 있다는 감정이라고 생각해왔던 내 생각은, 그제서야 제 궤도를 찾을 수 있었다. 형에게 그 같은 감정을 느낀 뒤, 나는 친지간에 느끼는 우정의 감정이 우리의 관계를 더 공고히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은 흔히 주어진 환경 내에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가끔 변화된 환경은 새로운 인식의 기회를 만들어 준다. 같은 맥락에서 내가 나를 “자네”라고 불렀던 형에 대해 느꼈던 우정은 내가 이미 적지 않은 나이를 먹었으며, 이제는 그에 걸맞은 사고와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었다. 또 그런 호칭으로 불리고 나니, 왠지 내가 가족 사이에서 당당히 어른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단순한 호칭의 변화였지만, 그것은 이처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가족 관계와 발전적인 감정의 교류를 보여주었다. 내게는 충분히 의미 있게 다가온 순간이었다.


‘형제들 간에도 우정이란 감정을 느낄 수 있구나!’

누군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면, 그건 그가 한층 어른스럽고 성숙해졌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지금 이 순간, 대한민국에서 중년남자로 살고 있는 형과 나 사이에 좀 더 농도 짙은 우정의 감정이 싹트지 말란 법은 없지 않은가?    

ⓒ전경일, <남자, 마흔 살의 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