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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CEO산에서 경영을 배우다

사계(四季)가 넘실대는 통찰의 山 - 겨울

by 전경일 2009. 2. 2.

겨울_고독을 벗 삼아 산을 오르라
그대의 두 발로 굳건히 오르라. 강철 같은 의지로 오르라. 악 쓰며 오르지 말고, 구도자처럼 자신을 향해 천천히 기도하듯 오르라. 산행의 끝에 나는 외롭기만 한 이 산악에서 마침내 나를 넘어선 영혼을 만난다.

 

산이 산을 에워싸고 소리쳐 부르는 산의 땅 한반도. 태백산맥의 등허리를 타고 연봉들이 줄기 쳐 내리다 뫼를 이루고 내를 이루며 남녘으로 흘러가는 곳. 산은 그렇게 국토의 형틀을 만들어 내며 골과 벌을 이룬다. 그 품에 안기면 산 아래서 먹고 사는 삶의 번잡함과 허둥대기만 하는 일상에서 잠시라도 빠져나올 수 있다.

 

 

하던 일을 잠시 밀쳐두고 산을 오른다. 백설이 점령한 겨울산은 앙상하다 못해 뼛속까지 들여 다 보인다. 그 뼈를 바라보는 이나, 치고 오르는 이나 모두 직설적이다, 명료하다, 적나라하다. 군더더기 하나 없다. 그러기에 겨울 산은 냉정하고, 엄정하다.  더할 나위 없이 간결한 가르침을 던져준다. 스스로 느끼는 사람만이 겨울 산이 들려주는 깨우침을 알아차릴 수 있다.

 

 

강원도 양구. 스무 두 해 전 전방근무를 한 곳에서 산행길에 나선다. 백두산 부대 마크처럼 산을 세 개 깎아야 제대를 한다던 그때의 병장은, 지금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어 인생의 절정을 향해 치닫는 사회인으로 살고 있다.

 

 

단풍이 채 물들기도 전에 서릿발은 내려친다고 경제위기, 제2의 IMF... 산꾼 가슴은 황량하기만 하다. 등산로 옆으로 군데군데 토끼 발자국... 산이 에워싸서 하늘이 삼천 평 만하게 보인다는 강원도 산골짜기 겨울산은  수많은 화두를 던진다. 산행 중 일행은 마치 인생이란 아무 구절이나 마찬가지라는 듯 콧노래를 부르지만, 그런 심중은 허공만 울리고 만다.  한 산꾼이 갈까마귀떼를 향해 훠이 훠이 손을 내젖는다.

 

 

위기의 현실. 불현듯 하늘을 나는 새를 보자 독수리가 연상된다. 위기... 차라리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겨울 산이라면 좋으련만 지금은 살얼음 위를 걷고 있다. 고산에서 처럼 발 밑 어디에 크레바스가 있는지 알지도 못한 채 걷고 있는 셈이다. 산행은 그래서 칠흑속의 행군과 다를 바 없다. 현실이 이렇기에 김 홍규 씨는 피가 마른다.

 

 

생각은 바람 따라 흩어지는 나무 위의 눈처럼 한곳으로 모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한 대목만은 분명히 알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위기의 산에다 베이스캠프를 쳐야 한다. 독수리처럼 감히 누구도 엄두내지 못하는 절벽에 둥지를 틀어야 전방을 확연히 조망할 수 있다. 텃새들처럼 민가의 처마로 스밀 게 아니라, 감히 검접할 수 없는 위험 속에서 삶을 도모해야 한다.

 

 

절벽을 치는 바람이 강할수록 독수리는 더 높이 날아오른다. 그럴 때 겨울 산 보다 더 거칠고 야만적인 혹한의 경제위기를 넘어설 수 있다. 깔딱고개를 치고 올라갈 때 의지의 불꽃을 세운 김 씨에게 용기가 솟구쳤다. 속으로는 ‘넘어설 수 있다, 해낼 수 있다!’ 며 소리 없이 외치고 있었다. 위기여 오라! 차라리 내가 더 멀리 날 수 있게 세차게 불어라!

 

 

혹한의 경제위기가 벼랑 끝으로 내몰지만, 바람이 거세면, 독수리들은 이렇게 외칠 것이다. Now, you can fly! 김 대표는 배낭끈을 조이고 눈발 성기는 능선을 타고 오른다. 아마 그곳에 도착하면 저 아래에서는 볼 수 없던 새로운 풍경, 앞뒤마저 분간 안되는 지금의 난마가 한 눈에 보일 듯싶다. 그래서 산행은 홀로 외로이 내면을 오르는 것이다. 

 

 

겨울산은 헐벗었기에 모든 것을 감싼다. 역설적으로 내면을 풍요롭게 한다. 어디 샘이라도 보이면 목을 축이고 일행과 더불어 이 산행을 마치면 된다. 그는 발걸음을 옮긴다.  


전경일, <CEO 산에서 경영을 배우다>